Ⅰ. 머리말
동양의 전통 역사에서 공(公)과 사(私)의 분명한 구분은 그 사회가 존속하는 토대가 된다는 점이 강조된다. 개인의 삶은 사회라는 공적인 영역 안에서 발전되어 나갈 수 있다는 전제가 있기에 공과 사 논의는 삶의 전반에 걸쳐 있는 주요 문제가 되는 것이다. 특히 각 시대의 지식인들은 국가의 정치권력자인 군주와 관료가 사적인 편의를 도모하면 국가가 위태로워진다고 보고 부국강병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군주와 관료들에게 공직자로서 공명정대한 공무 집행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현대사회에서도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하라는 말은 개인의 처신·처사에서부터 사회의 다양한 윤리 원칙 차원에서 사용된다. 만약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면 논의의 대상과 범주에 따라 같은 행동이 윤리 원칙에 맞는 공적인 행위로 인정되기도 하고 사적인 비도덕적 행위로 비난받기도 한다. 이처럼 공과 사의 논의는 동양의 전통사회에서부터 현재까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대순사상의 문헌 속에서도 공과 사의 엄격한 분리를 강조하는 언명들을 발견할 수 있다. 강증산(姜甑山, 1871~1909)은 “각 성(姓)의 선령신이 한 명씩 천상 공정에 참여하여 기다리고 있는 중이니 이제 만일 한 사람에게 도통을 베풀면 모든 선령신들이 모여 편벽됨을 힐난하리라. 그러므로 나는 사정을 볼 수 없도다. 도통은 이후 각기 닦은 바에 따라 열리리라”1)라고 하여 천상(天上) 공정(公庭)에서 도통을 비롯한 모든 일에 사적인 정(私情)이 없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증산의 종통(宗統)을 계승한 도주(道主) 조정산(趙鼎山, 1895~1958)은 「포유문(布喩文)」에서 “상제께서 한없이 넓게 위에 계시고, 도주님은 광대하게 명(命)을 받드시니, 도수(度數)는 밝고 밝아서 무사지공(無私至公)하다.”2)라고 언명한다. 증산이 짜놓은 천지도수를 풀어나가는 정산은 도수가 일체의 사사로움이 없이 지극히 공정하게 흐르고 있다고 설명한 것이다. 또한 정산의 종통을 계승한 도전(都典) 박우당(朴牛堂, 1917~1995)은 “수도를 잘하고 잘못함은 자의(自意)에 있으나, 운수를 받는 것은 사가 없고 공에 지극한(無私至公) 인도(人道)에 있다는 것은 알아야 한다.”3)라고 하여 운수(運數)를 받는 것은 무사지공(無私至公)한 인간의 도리에 있다고 훈시한다. 이로 볼 때, 대순사상에서의 공과 사 개념은 일반적인 개인의 처신과 처사에서부터 천지 도수의 운행, 그리고 수도인이 운수를 받는 문제까지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요한 논의 대상임을 알 수 있다.
공사론(公私論)은 대순사상의 중요한 논의 대상이지만 지금까지 선행연구에서 단독주제로 다룬 글은 없었으며 다른 주제에 관한 연구를 통해 부분적, 단편적으로 언급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4) 대순사상에서 공·사 개념을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통적 공·사 개념의 특징에 대해 규명해야 할 것이며, 나아가서는 이러한 문화적 특징 중 어떠한 측면이 대순사상의 공·사 개념에 나타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목할 점은 공·사 개념이 유학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논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특히 공·사 논의는 성리학이 지배하던 시대에 강하게 나타난다. 만약 공·사 개념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면 조선왕조가 5백여 년간 유지되기 어려웠을 것이다.5) 그래서 대순사상이 지닌 공사론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통 시대 공사관의 개념적 성격과 범주적 특성을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동양 전통 시대와 조선시대에 나타난 공사론에 관한 연구는 다양한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본 글의 논의 배경으로서 선행연구를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다. 미조구치 유조(溝口雄三)는 중국과 일본에서의 공·사 관념의 변천 과정을 분석하였다. 그는 중국에서의 공·사가 상고 이래로 공정(公正)과 공평(公平)을 지향하는 천하위공(天下爲公)의 의미가 강하였는데, 송대에 들어와 성리학적 사유의 영향을 받아 사회와 개인의 관계이면서도 선과 악의 윤리적 대립 관계로 인식됐다고 주장한다. 즉 공·사 개념이 천리(天理)와 인욕(人欲) 논의와 결부되면서 인욕지사(人欲之私)에 대비되는 도덕적 원리로서의 천리지공(天理之公)의 의미가 강조된 것이다. 그는 이러한 시각에서 사회의 규범은 인정되고 개인의 욕망은 부정되는 양상을 지닌다고 파악한다. 그리고 그는 명대(明代)에 이르러 개인의 욕망까지도 긍정하는 방향으로 공 개념이 확대되고 있었다고 이해한다.6) 또한 이승환은 동양 전통과 조선시대에 나타난 공의 의미를 세 층위로 살펴보았다. 그는 공이 ① 지배권력 및 지배 영역의 의미, ② 공정성·공평성과 같은 윤리 원칙의 의미, ③ 다수·공동을 뜻하는 공의 의미 등으로 사용되었음을 밝혔다. 이러한 점에서 이승환은 공을 지향하는 공익이 윤리적으로 정당성을 획득한 불특정 다수의 이익이라고 정의한다.7) 그리고 장현근은 공·사 논쟁이 도덕(학문)과 정치권력의 관계 속에서 정치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과정으로 파악하였다. 즉, 군주의 권력이 오직 공공성을 위해 행사되어야 한다는 정치과정의 문제라고 지적한 것이다.8)
또한 주희의 공·사 개념에 집중한 선행연구가 있다. 권향숙은 『주자어류』에 사용된 공이 남성과 직위의 용례를 제외하고 통치조직(조정이나 관청)과 관련된 것, 보편적인 일, 윤리 원칙으로서의 공평함 등으로 사용되었고, 사는 주관적인 것과 임의로 일을 처리함이라는 용례를 제외하고 개인의 사적 이익, 조직과의 단절 등의 비도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분석한다.9) 윤원현은 주희의 공·사 개념이 천리와 인욕, 인(仁), 시비(是非) 등을 해명하기 위한 성격으로 논의된 것이기에 이 논의들과의 관계 속에서 해석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는 공·사를 보편적 도덕과 개별적 배타성을 띤 것으로 정의한다.10) 황금중은 주희가 말한 공의 용례에는 조정이나 관청과 관련한 일의 의미도 있지만, 그가 철학적인 의미를 둔 것은 공정(公正), 공의(公義), 공평(公平), 공개(公開)와 같은 윤리적인 용례라고 보았다.11) 이외에도 김정현은 중국과 한국의 공 개념이 ‘지배권력=공평·공정=다수’의 의미를 지닌 복합적인 개념으로써 여러 함의를 갖는다고 주장한다.12) 배수호는 유교의 공공성 특성을 지배층과 관료 기구로서의 공, 만물까지 공공성 확장, 화이부동(和而不同)으로서 다양성 존중, 평등성 등으로 살펴보았다.13) 이러한 점에서 성리학적 가치를 지향하던 시대에서 공사론은 대체로 도덕적 원리라는 맥락 속에서 통용되고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들은 동양 전통사상에 나타난 공·사 개념에 대한 이해와 지평을 넓히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하였다. 즉 공·사 개념의 용례를 분석한 선행연구는 이 개념의 전반적인 의미를 종합하고 분석해 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행연구에서는 한국의 신종교 사상에서 공·사 개념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과 설명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않았다. 논자는 본 글에서 한국 신종교인 대순진리회에서 공·사 개념을 어떻게 논하고 있는지에 대해 집중하고자 한다. 대순사상에서는 전통사상에 나타난 공·사 개념 중에 어떠한 층위의 의미가 강조되는가? 그리고 대순사상의 공사론에 나타난 종교적 함의는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본 글은 단순히 대순사상에서의 공사론만을 읽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동양 사상의 공사관 변화를 살펴보고 대순사상의 공사론이 어떠한 특징을 보이며 그것이 동양 사상의 공·사 개념과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대순사상의 공사론이 가지는 의의가 무엇인지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효율적 논지 전개를 위한 이 글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전통 시대 동양 및 한국의 공사론에 내포된 주요한 특징을 짚어보고(2장), 이러한 특징이 대순사상의 공사론에 어떻게 변용되어 나타나는지 살펴보겠다(3장). 이를 통해 대순사상의 공사론 특징과 종교적 함의가 무엇인지 규정하고자 한다(4장). 이러한 시도는 대순사상에서 논의되는 공사론의 성격과 종교적 의의를 찾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Ⅱ. 동양 전통에서 공(公)과 사(私)의 의미
동양의 공(公)과 사(私) 개념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의미의 세분화가 있었다.14) 전통 시대 동양 특히 중국과 한국의 공과 사 개념에 내포된 다양한 의미의 층차를 구분해 내고, 전통의 공사론이 변용되어 가는 과정을 추적해 보는 일은 대순사상의 공·사 개념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중요성을 지닌다. 중국과 한국에서 공·사 개념은 시대적 변천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첨가하며 발전해 왔지만,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15)
동양의 지적 전통에서 공·사 개념에는 고대 국가의 정치기구가 형성되어 감에 따라 지배권력 및 기구를 뜻하는 공과 이에 벗어난 개인 영역을 뜻하는 사의 의미가 있다. 이러한 공·사 개념은 고대의 유학 문헌에서 나타난다. 『주역』에서는 사의 용례보다 공의 용례가 강조되는데, 「대유괘(大有卦)」에서는 천자에게 공물을 바치는 군주를 공이라고 표현한다.16) 그리고 『상서』에서 사용된 공 개념은 권력자를 지칭하는 용례와 제후국의 군주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고,17) 사 개념은 판관이 개인의 이익을 재판 과정에 개입시키는 직무 태도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된다.18)
『시경』에서 공·사 개념은 정치권력자의 혈족과 조상, 그리고 정치 지배기구와 지배 영역을 가리키기도 한다.19) 그런데 『시경』에서 주목할 점은 공의 용례에 정치권력자가 나라의 일을 처리하는 장소로서의 개념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시경』 「대아(大雅)·첨앙(瞻卬)」편에는 제후가 행하는 나랏일과 정치적 사무를 뜻하는 공사(公事)라는 용례가 보이고,20) 『시경』 「소남(召南)·소성(小星)」편의 “빨리도 밤길을 가서, 이른 새벽부터 밤늦도록 공소(公所)에 있도다”21)라는 구절에서 공이 공·사를 처리하는 관청을 의미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시경』 「열명중(說命中)」에는 “저 공당(公堂)으로 올라가서 저 뿔잔을 드니 만수무강하리로다.”22)라고 하여 공당이 나랏일을 처리하는 공간이란 의미가 있으며,23) 『시경』 「소아(小雅)·대전(大田)」에는 “공전(公田)에 비가 내려서 마침내 사전(私田)에 미치라.”24)라고 하여 공전은 국가 소속 토지를 의미하고 사전은 개인에 소속된 민전(民田)을 의미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서도 공·사 개념에는 국가권력과 기구의 의미와 개인의 영역과 관련된 의미가 있다. 먼저 공의 용례를 보면, 자연재해로 인한 진휼(賑恤: 흉년에 곤궁한 백성을 도움)의 시행 과정에서 공진(公賑)은 중앙정부가 주관하는 진휼을 지칭하는 말이었고,25) 공고(公故)는 관리가 궁중 행사에 참여하는 일이었으며,26) 공인(公引)은 국가나 관청에서 발급한 통행이나 여행 허가증을 뜻하였다.27) 다음으로 사의 용례를 보면, 사진(私賑)은 지방 관아의 자비곡(自備穀)으로 진행하는 진휼이거나 부호(富戶)의 원납곡(願納穀)으로 진행하는 진휼이었으며,28) 사결(私結)은 관청의 토지 대장에 올리지 않은 개인 소유의 논밭을 가리키고,29) 사무(私貿)는 국가에서 규정으로 금지하는 물품을 개인이 사고파는 행위를 의미였다.30) 이처럼 조선시대에서도 공·사 논의는 국가와 개인 영역의 의미가 있다.
공·사 개념은 공동 이익과 의견, 개인 이익과 의견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예기』 「예운(禮運)」편에서는 고대의 이상적 공동체인 대동(大同) 사회를 묘사하면서 천하위공(天下爲公)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고, 이와 대조적인 소강(小康) 사회를 묘사하면서 천하위가(天下爲家)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31) 『예기』 「예운」편에 따르면 대동사회는 ‘천하를 공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이다. 이는 군주가 국가의 운영을 그 자손에게 사사롭게 넘기지 않고, 현능한 인재에게 줌으로써 공공의 것으로 여긴다는 의미이다.32) 반면 소강사회는 대도(大道)가 은폐되어 ‘천하를 사적인 가정의 소유로 인식’하는 사회이다. 이 사회의 군주는 자신의 지위를 자식에게 세습한다. 따라서 정치권력자뿐만 아니라 개인들도 사적인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회다. 이 구절은 수양을 통해 덕성을 갖춘 사람에게 정치권력이 계승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한 단계 진전된 공·사 개념의 진화를 보여주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33)
조선시대 이이(李珥)는 공동과 개인의 의견이라는 공사론의 측면에서 국가의 큰 정책이나 기조인 국시(國是)에 대해 언급하며 공론(公論)에 대해 말한다. 이이는 많은 사람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의견이 공론이라 하고 공론이 있는 곳이 국시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는 국시란 사람을 이익으로 현혹하는 것도 아니고, 위세로 두렵게 하는 것도 아니며 철없는 어린아이라도 옳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34) 그래서 이이는 국시를 정하는데 사사로운 의견으로 다투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35) 이와 관련해 주희(朱熹)는 국시란 천리(天理)를 따르고 인심(人心)을 화합하여 천하가 모두 옳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36) 그리고 주희는 진정한 국시라면 다른 이론(異論)들이 생겨나지 않는다고 언명하고, 만약 자신의 편견을 주장하여 그사이에 사심(私心)을 꿰어 넣고 억지로 국시라 이름 지으며, 임금의 위엄을 빌려서 공론을 다투려는 행위는 있어선 안 된다고 설파한다.37) 이는 국가의 일을 결정할 때 개인 의견보다 공동 의견을 더 중요시한 당대 지식인의 시각이 드러난 내용이다. 이외에도 조선왕조실록에는 많은 사람이 옳다고 여기는 정당한 의론이라는 의미에서 ‘신민의 공론(臣民之公論)’,38) ‘천하의 공론(天下之公論)’,39) ‘일국의 공론(一國之公論)’,40) ‘만인의 공론(國人之公論)’41) 등의 기록이 보인다.
고대 동양에서 공·사 개념은 점차 공정한 윤리 원칙과 불공정한 비도덕적 의미로 사용된다.42) 공·사 의미는 군주와 관리들의 전횡을 막기 위한 당대 지식인들의 언설에 자주 보인다. 『상서』 「주관(周官)」편에는 공적인 것으로써 사적인 것을 없애면 백성들이 진심으로 믿고 따르게 될 것이라고 하여 군주와 관리들이 공적 자세를 지향해야 한다고 훈계하고 있다.43) 그리고 『순자』 「군도(君道)」편에는 직분을 나누고 사업을 순서 있게 하며, 재능에 따라 관리들의 능력을 측정하여 다스리면, 공공의 도(公道)가 발달하게 되고 사사로운 문(私門)은 막히게 되어 공적인 의리(公義)가 밝아지고 사사로운 일들(私事)이 종식 될 것이라고 적고 있다.44) 또한 『좌전』 「양공(襄公) 5년」편에는 계문자(季文子)가 공실(公室)에서 공평함으로 임했기에 세 군주의 재상을 하고도 사적 축재가 없었다는 내용이 보인다.45) 또한 『상군서』「수권(修權)」편에서는 군주와 신하가 한 나라의 이익을 독점하고 관직의 대권을 장악하여 사적인 편의를 도모하면 국가가 위태로워진다고 보았으며, 공과 사의 관계가 국가 존망의 근본이라고 강조한다.46) 이로 볼 때, 당대 지식인들은 국가의 존립이 지배층의 공명정대한 공무 집행에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47)
이러한 중국의 공·사 개념은 송대에 들어와 천리(天理)와 인욕(人欲) 개념과 결부되면서 더욱 강화된 윤리 원칙으로 정립된다. 주희는 이익을 추구하는 사욕을 사심으로 규정하고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없애는 것(存天理, 滅人欲)’만이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언명한다. 이와 관련해 주희는 “천하의 바르고 큰 도리를 가지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 바로 공이고, 자신의 사사로운 뜻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바로 사이다.”48)라고 하고, “무릇 한 가지 일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올바른 것은 천리가 공정한 것이고, 그릇된 것은 인욕의 사사로움이다.”49)라고 한다. 또한 그는 “사사로움이 사이에 들어오지 않으면 공평하며, 공평하면 인(仁)이 된다. 예를 들면 물과 같으니, 조그마한 장애물이라도 만나면 곧 두 갈래가 되니, 모름지기 막힌 것을 제거해야 도도하게 흘러간다.”50)라고 설명한다. 즉, 공의 추구는 ‘공(公)=의(義)=천리(天理)’로 규정되고, 사의 추구는 ‘사(私)=이(利)=인욕(人欲)’으로 정의될 수 있다.51) 주희의 이러한 견해는 근대 이전 동양 사회의 공·사 개념에 내포된 윤리적 특성을 드러내 주는 예이다.52)
조선 사회에서도 공·사 개념은 윤리 원칙과 관련한 개념으로 파악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황(李滉)은 17세의 선조(宣祖)에게 공정무사(公正無私)한 군주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올린다. 그는 「성학십도」에서 공이란 인(仁)을 실천하여 몸소 알게 되는 것이며 ‘사욕을 극복하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 된다는 말과 같다고 언명한다. 그리고 그는 공은 인(仁)이고 애(愛)이기에 효제(孝悌)는 그 작용이 되고 서(恕)는 인을 베푸는 것이며 지각(知覺)은 이를 아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토대로 이황은 사욕을 제거하고 천리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53) 이황에 따르면 공은 공정한 윤리 원칙을 가리키고 인을 베푸는 방법이 되며 천리와 동일시된다. 또한 송시열(宋時烈)은 주희의 문자를 관찰하면, 매번 공과 사의 명확한 구분이 있는데 그 의의가 자신의 편안함만을 찾고 세상 사람들을 구하려는 마음이 없는 것이 인욕(人欲)이고 천리(天理)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고 보았다.54) 송시열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나라를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고 문제 삼은 것이다. 이처럼 조선 사회의 공사관에는 정치권력자와 관료가 사적 욕망을 극복하고 공직자로서의 지녀야 할 공적 덕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미가 나타난다.55) 이외에도 조선왕조실록에는 옳고 그름이 분명해질 것이라는 의미가 담긴 ‘반드시 공정한 논의(必有公論)’,56) ‘본래 공정한 논의(自由公論)’57) 등의 기록이 보인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전통적인 동양의 공사론은 ‘지배권력과 기구로서의 공과 개인 영역으로서의 사’, ‘공동의 이익과 의견으로서 공과 개인의 이익과 의견으로서의 사’, ‘공정한 윤리 원칙으로서의 공과 불공정한 비도덕적 의미로서의 사’의 의미로 발전되어 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시각은 동양의 전통사상을 보는 당대 지식인들의 다양한 견해를 대표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사론은 그 의미를 종합적으로 본다면, 지배권력은 다수의 의견을 반영한 공정한 윤리 원칙으로서 행사되어야 하고 개인적인 영역에서는 불공정한 행위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복합적인 의미로 볼 수 있다.58)
Ⅲ. 대순사상에서 공(公)과 사(私)의 의미
동양의 지적 전통에서 본 공·사 개념의 세 가지 의미 중에 대순사상에서는 어떠한 의미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가? 먼저 공·사 개념에 대한 대순사상의 관점을 증산의 언명에서 찾아보자. 『전경』에서 천지공사(天地公事, 1901~1909)의 내용을 설명하는 지점에서 공을 지향하는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상제께서 하루는 김 형렬에게 “삼계 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후천 선경(後天仙境)을 열어 고해에 빠진 중생을 널리 건지려 하노라”고 말씀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제 말세를 당하여 앞으로 무극대운(無極大運)이 열리나니 모든 일에 조심하여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죄를 멀리하여 순결한 마음으로 천지 공정(天地公庭)에 참여하라”고 이르시고 그에게 신안을 열어 주어 신명의 회산과 청령(聽令)을 참관케 하셨도다.59)
천지공사는 공사(公事)라는 용어가 보여주듯이 증산이 우주 전체의 질서를 다시 세우기 위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60) 즉 증산의 종교활동인 천지공사는 ‘천지에 대한 공적인 일’이라는 뜻이다. 이는 상극(相克)으로 인해 생긴 모든 원한을 풀어주고[解冤], 상극과 원한으로 어그러진 천지 법칙을 조정하고 고치되 상생(相生)으로 운행되는 질서를 가지게 하며 그 결과로 상극과 원한이 없는 세계가 열리도록 한다[後天開闢]는 것이다. 증산은 자신이 신명을 모으고 종도를 참관시키면서 천지의 운행과 구조를 조정하고 모든 원한을 풀며 개벽시키는 일을 천지공사라고 언명했던 것이다.61) 이처럼 증산에게 공의 범위는 천지 또는 삼계를 대상으로 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우주 질서의 재편과 세계를 건지는 일이라는 종교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전경』에서 천지공사는 천지공정(天地公庭)이라 표현되기도 한다. 증산은 종도들에게 천지공정은 개인적 사심(私心)과 사욕(私慾)이 아닌 순결한 마음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권면한다.62) 증산은 개벽이 일어나는 시기에 “참된 자는 큰 열매를 얻고 그 수명이 길이 창성할 것이오.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하리라. 그러므로 신의 위엄을 떨쳐 불의를 숙청하기도 하며 혹은 인애를 베풀어 의로운 사람을 돕나니 복을 구하는 자와 삶을 구하는 자는 힘쓸지어다.”63)라고 언명한다. 이로 볼 때, 증산의 언명에는 거짓된 사를 없애고 참된 공을 지향하는 도덕적인 측면의 공·사 개념이 드러난다. 그리고 신명이 수찰(垂察)하고 있기에 사에 해당하는 불의를 행할 때 그에 해당하는 벌을 받게 된다는 점이 동양의 고전과 다른 지점이다. 이러한 증산의 공사론은 도통(道通)에 대한 언급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공우가 어느 날 상제를 찾아뵈옵고 도통을 베풀어 주시기를 청하니라. 상제께서 이 청을 꾸짖고 가라사대 “각 성(姓)의 선령신이 한 명씩 천상 공정에 참여하여 기다리고 있는 중이니 이제 만일 한 사람에게 도통을 베풀면 모든 선령신들이 모여 편벽됨을 힐난하리라. 그러므로 나는 사정을 볼 수 없도다. 도통은 이후 각기 닦은 바에 따라 열리리라” 하셨도다.64)
이 구절의 각 성의 선령신이 한 명씩 천상(天上) 공정(公庭)에 참여하고 있다는 표현에서 ‘공정’은 공판(公判)하는 법정이란 의미이다. 그래서 ‘천상 공정’은 곧 ‘하늘 위의 세계(天上)에서 공판을 집행하는 법정(公庭)’이라 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증산이 “나는 사정(私情)을 볼 수 없도다.”라고 한 언명이다.65) 이 언명은 사사로운 정(情)으로 개인이 도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수도를 통하여 닦은 바에 따라 도통이 열리게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66) 『전경』에 “천리의 극진함이 털끝만한 인욕(人慾)의 사(私)가 없나니라”67)라는 내용을 비추어 보면 하늘의 공명정대함은 사람의 욕심에 해당하는 사가 없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도 공·사 개념은 도덕적 공평함과 연결된 의미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증산은 공과 사를 구별하는 것이 천지공사에 임하는 주요한 자세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전경』에는 제갈량이 마속(馬謖)을 처형한 일(揮淚斬之)에 대해 증산이 언급한 장면이 등장한다.68) 이 일화에서 제갈량은 군법에 맞는 공정성을 위해서 측근인 마속을 처벌하게 된다. 이는 공정성을 유지해야 하는 지휘관의 상황에서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일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와 관련해 증산은 종도 김형렬에게 “무한 유사지 불명(無恨有司之不明)하라. 마속(馬謖)은 공명(孔明)의 친우로되 처사를 잘못함으로써 공명이 휘루참지(揮淚斬之)하였으니 삼가할지어다”69)라고 언명한다. 여기서 무한유사지불명(無恨有司之不明)이란 자신이 맡은 임무(有司)를 분명히 완수하지 못하여(不明) 한(恨)을 남기지 말라는 뜻이다. 이는 ‘개인의 재능보다 규정을 준수해야 하고 맡은 일을 정확하게 마무리하지 못하여 한을 남기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언명에 따르면 마속이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부족하였다고 보이는 지점은 공적인 일에 사적인 의견을 개입하여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못한 것이다.70)
다음으로 증산의 종통을 계승한 정산이 공·사에 대해 언급한 구절을 살펴보자. 『전경』에는 정산이 1927년에 선포한 「포유문(布喩文)」이 있는데 이 글에 “다행히 이 세상에 한량없는 대도가 있으니, 나의 심기를 바르게 하고, 나의 의리를 세우고, 나의 심령을 구하여, 상제의 임의에 맡기라. 상제께서 한없이 넓게 위에 계시고, 도주님은 광대하게 명을 받드시니, 도수(度數)는 밝고 밝아서 무사지공(無私至公)하다. 인도하심이 아닌가! 끝없는 극락 오만년 깨끗하고 번성한 세계”71)라는 기록이 보인다. 여기서 “도수는 밝고 밝아서 무사지공하다.”라는 정산의 언명은 곧 ‘밝고 밝은 하늘의 법칙은 사사로움이 없이 공명정대하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72) 정산은 “상제께서 짜 놓으신 도수를 내가 풀어 나가노라”73)라고 하였는데, 증산이 짜 놓은 도수를 정산은 천지공사의 설계에 맞게 공정하게 풀어나가는 존재이다.74) 그렇기에 정산은 하늘의 법칙인 도수는 사사로움이 없이 공명정대하다고 말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전경』의 내용을 통해서 인간의 마음에는 공적인 성격의 마음과 사적인 성격의 마음이 있다고 보는 증산과 정산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공적 성격의 마음은 양심을 지향하는 마음으로 올바른 도덕적 판단을 가능하게 하고, 사적 성격의 마음은 인간의 부정적 욕망을 품은 마음으로 공적 의식의 드러남을 방해한다. 이것이 공과 사에 대한 증산과 정산의 기본적인 사유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는 개인의 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천지공사라는 공적인 일을 행할 때 신명의 수찰과 함께 도통과도 연결된 수양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결국 동양고전에 나타난 공과 사에 대한 논의 중에서 증산과 정산에게 두드러지는 것은 도덕적이고 공정한 윤리적 태도이다.
우당은 증산과 정산의 종통 계승자로서 그의 「훈시」 속에는 대순진리회의 주요 개념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다. 먼저 우당이 공·사 개념의 중요성을 설명한 내용을 보자.
수도를 잘하고 잘못함은 자의(自意)에 있으나, 운수를 받는 것은 사가 없고 공에 지극한(無私至公) 인도(人道)에 있다는 것은 알아야 한다.75)
우당은 수도를 잘하고 잘못함은 자유로운 의지 능력을 가진 인간의 수행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순진리회에서 지향하는 운수(運數)는 사가 없고 공에 지극한 인도(人道)76)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77) 우당은 공·사 논의가 개인의 처신·처사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운수와도 연결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78) 우당의 이 언명은 증산이 모든 일을 풀어 각자의 자유의사에 맡기고 모든 일에 마음을 바로 하라고 하며 “사곡한 것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 되니라. 이제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하여 마음에 먹줄을 겨누게 하고 사정의 감정을 번갯불에 붙이리라. 마음을 바로 잡지 못하고 사곡을 행하는 자는 지기가 내릴 때에 심장이 터지고 뼈마디가 퉁겨지리라. 운수야 좋건만 목을 넘어가기가 어려우리라.”79)라고 한 언명과 연결되어 이해할 수 있다. 증산은 신명이 사람에게 임감하게 하여 사정(邪正)을 감정(勘定)한다고 설명한다.80) 공에 해당하는 진실되고 공명정대한 행위를 한 자와 사에 해당하는 사곡(邪曲)을 행하는 자는 운수의 갈림길에서 다른 결과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공과 사 구분은 수행의 핵심으로 강조된다는 점에서, 대순진리회의 중요한 종교 윤리로 인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당은 운수를 결정짓는 주요 개념인 공과 사를 어떠한 의미로 정의할까?
우당은 『대순지침』에서 공(公)은 도심(道心)이고 사(私)는 인심(人心)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우당은 「훈시」에서 인간은 언제든 사심에 빠질 위험이 있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언명하고 사욕을 누르고 공명정대한 도심을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순진리회에서 도심은 순수한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어서 도덕적인 마음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는 “공명정대한 도심을 드러내도록 힘써 나가야 할 것”이라는 언명과 “말은 마음의 소리요 덕(德)은 도심(道心)의 자취라.”83)라는 표현에서 확인된다. 도심에 비해 인심은 반드시 비도덕적인 마음이라고 할 수 없지만, 부도덕으로 흘러갈 위험성이 있는 마음이다.
여기서 문제는 인심을 사심 자체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심이란 비도덕적인 면이 강한 경우를 말한다. 만일, 사심이 부도덕성 그 자체라면, 인심이 발동해 사심에 흐르면 악하게 된다. 하지만 인심이 배가 고플 때 음식을 찾는 마음이라면 그 자체로서 악한 마음은 아니다. 그래서 인심은 선과 악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에 인심이 곧 사심이라고 볼 수는 없다.84) 우당의 공과 사 개념은 <공(公) = 도심(道心) = 공명정대(公明正大) / 사(私) = 인심(人心: 사심으로 흐를 수 있는 경향) = 사욕(私慾)>의 도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도심이란 공명정대한 마음을 가질 때 생겨나고, 사심이란 인간이 사욕을 가질 때 생겨난다.85) 이로 볼 때, 공은 공정, 공평과 같은 보편적 윤리 원칙을 의미하고 사는 불공정한 행위나 사적인 행위를 가리키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공·사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우당의 「훈시」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점은 선각자가 후각자를 대함에 있어서 공과 사를 분명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설명한 지점이다.
우당은 선각자와 후각자 상호 간에 은의를 잊지 않아야 하고 선각자인 임원은 공과 사를 분명히 구분해서 공명정대하게 처신·처사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당은 선각자의 이러한 지속적인 노력이 있을 때 후각자에게 심복(心服: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성심을 다하여 순종함)을 받을 수 있게 된다고 훈유한다.89) 만약 선각자가 일을 처리하면서 사심으로 인한 편벽된 처사와 불공정한 일을 의도적으로 만들게 된다면 후각자는 불평불만을 가지게 되고 이로 인하여 조직의 화합을 깨트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우당의 이러한 공과 사에 대한 견해는 증산과 정산의 관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증산과 정산은 한결같이 수도하는 선각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의 윤리적 공정성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에 자기반성과 성찰이 중요함을 인정한다.90)
선각자가 자기 사사로움을 제거하고 공을 지향해서 일을 해야 함은 선각자와 후각자 상호 간의 소통을 위한 중요한 방법이 된다. 이러한 소통을 위한 사사로움을 제거하는 방법으로서 일상의 자기반성은 선각자가 도의 일을 행함에 앞서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우당은 “임원들이 수반들을 대순진리로 지도교화함으로써 도인들은 일정 일동이 사정(私情)에 치우쳐 경거망동한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다.”91)라고 하고 “모든 도인들은 처사에서 무편무사(無偏無私)하고 공명정대하여 욕됨이 없게 하라.”92)라고도 훈시한다. 이는 당장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발전과 성과보다는 윤리도덕을 지향하는 종단의 조직을 구축하려는 우당의 신념이 담긴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우당은 「훈시」에서 공정한 것과 삿된 것이라는 윤리적 의미로써 공과 사를 구분하여 규정한다. 우당은 수도를 하는 한 개인에게서도 도덕적인 소통의 경향을 공, 이기적 욕심에 이끌려 도인 상호 간의 관계에서 폐쇄적 성향을 보이는 것을 사로 규정한다고 볼 수 있다. 우당에게서 공 개념은 도심으로서 공명정대함을 의미하는 것인데 현실에서는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서 사회적 구성원 누구나 승인하고 긍정할 수 있는 객관성과 보편성을 갖는다. 반대로 사 개념은 인심으로서 부도덕으로 흘러갈 위험성이 있는 것인데 현실에서는 주관적이고 은폐적일 수 있는 것으로서 공동체에서 서로의 의견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구성원 간의 소통을 막는 요인으로써 논의된다. 이러한 공·사 논의는 우당에게서도 도통과 직결되는 수양의 핵심 관건으로 강조된다.
Ⅳ. 맺음말
공과 사에 대한 대순사상의 관점에서 보면, 동양의 지적 전통에서 보이는 ‘지배권력과 기구로서의 공과 개인 영역으로서의 사’나 ‘공동의 이익과 의견으로서 공과 개인의 이익과 의견으로서의 사’라는 의미보다는 ‘공정한 윤리 원칙으로서의 공과 불공정한 비도덕적 의미로서의 사’의 의미가 강하게 나타난다. 즉, 대순사상의 문헌에서는 윤리적 영역과 비도덕적 영역의 공과 사에 대한 논의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공·사 개념의 설명에서 증산, 정산, 우당의 주된 관심은 자기 수양으로서 사를 배제하는 공의 지향과 공명정대함이라는 도덕성의 확장에 집중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순사상에서 추구하는 공·사 개념에는 도의 법규에 따라 행하는 수도의 일에서나 사회 속에서 인간관계 맺음에 있어서 객관적이고 투명한 자세가 중요시된다. 여기에서는 동양의 지적 전통에서 보이는 공사론과는 다른 몇 가지 지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대순사상의 공사론에는 증산이 행한 천지공사가 무사지공(無私至公)하게 행해졌으며 현재에도 그 공사의 내용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 전제된다. 증산은 천지공사를 천지공정(天地公庭)이라고 표현하는 것에서 드러나듯이 사를 배제한 공을 추구하였고, 정산은 이를 무사지공의 도수(度數)라고 표명한다. 증산이 짜놓은 천지도수를 풀어나가는 정산은 도수가 사사로움이 없이 공정하게 흐르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둘째, 공의 지향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윤리적 영역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명의 수찰과 함께 도통과도 연결된다는 점이다. 증산은 사사로운 정(情)으로 개인이 도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수도를 통하여 닦은 바에 따라 도통이 열리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마음을 바로 하지 못하고 사곡을 행하는 자는 후천선경에 참여하기 어렵다고 언명한다. 그리고 우당은 대순진리회에서 지향하는 운수(運數)는 사가 없고 공에 지극한 인도(人道)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신명공판(神明公判)이란 수도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훈시한다. 셋째, 공과 사의 구분은 수도인이 자신의 위치에서 본분을 다하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화합을 이루는 방법이라는 점이다. 우당은 선각자가 공·사를 가려 공명정대하게 행동한다면 후각자는 불평불만을 품지 않게 되고 이로 인해 조직의 화합을 가져오게 된다고 훈유한다. 선각자는 도의 법규를 준수하고 후각자와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공을 지향해 나가는 것이 강조되는 것이다. 이러한 대순사상의 공사론에 보이는 특징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내용은 대순사상의 종교적 성격을 나타낸다고 이해할 수 있다.
대순사상에서는 모든 일에 있어서 은폐적 경향을 지닌 사보다는 밝은 경향을 지닌 공에 대한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수도의 구체적 지침을 설명한 『대순지침』에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모여서 수도하는 사회적인 존재인 것을 전제하고 수도 공간에서 경계해야 하는 것은 공명정대함을 저버리고 사사로운 의도를 숨기려는 사욕이라고 보고 있다.93) 여기서 밝게 드러냄을 지향하는 공은 윤리적이고 긍정되며, 은폐하는 속성을 갖는 사는 부정된다. 사적 욕망을 품을 수 있는 인간은 자기 이익에 자유로울 수 없어 도덕 실천의 갈림길에 있어서 사사로운 이익에 매몰될 확률이 비교적 높다. 그러나 인간은 식색(食色)과 안일(安逸)과 같은 생리적인 욕구만을 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제어할 수 있는 도덕적인 마음이 있다. 이러한 구분을 명확하게 하려고 대순사상에서는 도심을 지향하는 수도를 강조한다.
사욕을 억제하고 공을 지향하는 삶을 추구하는 대순사상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매 순간 사욕의 유혹과 싸워야 하는 수양의 공간이다. 증산, 정산, 우당은 인간이 공과 사의 두 가지 마음의 성격을 가진 존재임을 알려준다. 즉 그들은 인간이 수양을 통해 공(公)을 지향한다고 할지라도 자기 이익과 결부되면 다시 사(私)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웠다. 만약 순간의 유혹에 빠져 자기 이익을 채우고 조직의 공정함을 깨트리면서까지 개인의 사욕을 채운다면 이는 운수를 받는 것과 멀어지는 것일 것이다. 사회가 질서 있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적 욕망을 어느 정도 억제하고 사회의 공공성을 중시해야겠지만, 종교의 윤리 내에서 공을 지향하는 윤리 이상을 설정해 놓고, 그 규범과 일치하도록 사욕을 억제하는 것은 수도에서 운수와 직결된 문제가 된다.
대순사상의 이상적 인간관은 후천선경에서 사회의 평범한 구성원이 아니라 후천선경을 이끌 지도자 수준으로 잡고 있다. 이에 따르면 도통군자는 상생의 원리에 자신의 가치관을 부합시킴으로써 사적인 개인이 아닌 사회적 공공성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즉, 도통군자는 후천선경에서 추구하는 가치와 윤리를 지향하는 공적인 일을 행하며 타인들을 포용하며 사회를 이끌게 된다. 대순사상의 이상적 인간관에 어느 정도 접근했느냐에 따라, 상등(上等), 중등(中等), 하등(下等)에 해당하는 도통을 받게 되고 그에 맞는 공적인 권한을 행사하며 사회를 이끌 자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94) 이런 점에서 후천선경은 증산의 뜻을 받들어 무사지공(無私至公)한 마음을 지닌 도통군자가 이끌어가는 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도통을 지향하며 수행하는 사람은 자기의 사적 영역을 넘어 우리라는 공공의 정신을 지향해야 한다. 공과 사의 측면에서 대순사상의 종교 윤리는 현재의 단기적인 욕망을 추구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삶을 설계해 가는 인간상을 만들고 추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즉 대순사상에서는 수양하는 사람이 윤리적으로 정당성을 의미하는 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로 볼 때, 대순사상의 이념이 바탕이 된 공의 지향은 종단의 역사에서 철저하게 추구되어야 하는 개념이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대순사상의 공·사 논의는 증산이 행한 천지공사에 담긴 광구천하(匡救天下)·광제창생(廣濟蒼生)의 대의(大義)를 펼치는 관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수도인이 행하는 도의 공적인 일은 증산의 대의를 편다는 종교적 경건성이 포함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순사상 공사론의 종교적 함의는 사를 배제하고 공을 지향하는 관점과 더불어 후천선경의 참여를 결정짓는 행위로까지 연결되는 것으로 정의된다. 예를 들어, 수행자가 공에 지극한 인도(人道)로써 처신 처사를 지속한다면 이는 일의 공로와 더불어 품성이나 인격에 대해서도 윤리 원칙의 관점에서 평가받게 된다. 하지만 수행자의 무사지공(無私至公)한 행위는 사람들로부터 신임(信任)을 받게 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수행자는 일의 과정에서 신명의 공판을 받기도 하고 마음 자세에 따라 그에 맞는 신명의 호위를 받으며 운수를 받을 수 있는 존재로 변화해 나갈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공과 사를 구분하여 수행하는 것은 사회구성원들과 화합하는 방법이며, 나아가 이 수행을 통하여 후천선경이라는 대순진리회가 지향하는 새로운 삶의 질서를 열어가는 중요한 방법이 되는 것이라 하겠다. 이로 볼 때, 공정성을 축으로 하는 대순사상의 공사론에는 종교적 함의가 내포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결국, 사를 억제하고 공을 지향하는 대순사상의 공사론은 도덕의 실천을 통해 자신을 변혁하며 증산이 제시한 후천선경에 참여할 수 있는 수행의 견고한 방안이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