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연구논문

대순사상의 공사론(公私論)에 나타난 종교적 함의

최정락1,*
Jeong-rak Choi1,*
1고려대학교 박사수료
1Ph.D. Candidate, Department of Philosophy, Korea University

© Copyright 2024,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Apr 25, 2024 ; Revised: Jun 05, 2024 ; Accepted: Jun 25, 2024

Published Online: Jun 30, 2024

국문요약

이 글에서는 대순사상의 공사(公私) 개념에 나타난 종교적 함의에 대한 논의를 다루었다. 이를 위해 논자는 먼저 동양 전통의 공·사 개념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대순사상에서는 동양 전통의 공·사 개념 중에 어떠한 내용이 강조되고 있는지 검토한 후 그 종교적 함의를 논하였다. 동양 전통에서 보면, 공과 사는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이는 ① 지배권력과 기구로서의 ‘공’과 개인 영역으로서의 ‘사’, ② 공동의 이익과 의견으로서 ‘공’과 개인의 이익과 의견으로서의 ‘사’, ③ 공정한 윤리 원칙으로서의 ‘공’과 불공정한 비도덕적 의미로서의 ‘사’ 등의 의미이다. 이중 대순사상에서는 윤리 원칙과 비도덕적인 측면의 공·사 개념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대순사상에서 공·사를 구분하여 수행하는 것은 후천선경이라는 대순진리회가 지향하는 새로운 삶의 질서를 열어가는 중요한 방법이 된다. 사를 억제하고 공을 지향하는 대순사상의 공사론(公私論)은 도덕의 실천을 통해 자신을 변혁하며 증산이 제시한 후천선경에 참여할 수 있는 수행의 견고한 방안이라 할 수 있다.

Abstract

This article examines the religious implications of the concept of public (gong, 公) and private (sa, 私) affairs as presented in Daesoon Thought. To achieve this, the article first explores the three main meanings of gong and sa in the East Asian tradition: ① gong as ruling powers or institutions and sa as the personal sphere, ② gong as communal interests or opinions and sa as individual interests or opinions, and ③ gong as fair ethical principles and sa as unfair, immoral intentions. The analysis reveals that Daesoon Thought strongly emphasizes the conceptualization of gong and sa in terms of ethical principles and immoral aspects. The practice of distinguishing between gong and sa is seen as an important way to open up the new order of life, called the Earthly Paradise of Later World, that Daesoon Jinrihoe aims to achieve. Daesoon Thought’s theory on public versus private, which restrains the private (sa, 私) and prioritizes the public (gong, 公), provides a solid framework for self- transformation through moral practice, enabling participation in the Earthly Paradise of Later World envisioned by Jeungsan, the originator of Daesoon Jinrihoe’s teachings.

Keywords: 대순사상; 공(公); 사(私); 윤리 원칙; 후천선경
Keywords: Daesoon Thought; public and private affairs; ethical principles; paradisiacal land of immortals in the Later World

Ⅰ. 머리말

동양의 전통 역사에서 공(公)과 사(私)의 분명한 구분은 그 사회가 존속하는 토대가 된다는 점이 강조된다. 개인의 삶은 사회라는 공적인 영역 안에서 발전되어 나갈 수 있다는 전제가 있기에 공과 사 논의는 삶의 전반에 걸쳐 있는 주요 문제가 되는 것이다. 특히 각 시대의 지식인들은 국가의 정치권력자인 군주와 관료가 사적인 편의를 도모하면 국가가 위태로워진다고 보고 부국강병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군주와 관료들에게 공직자로서 공명정대한 공무 집행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현대사회에서도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하라는 말은 개인의 처신·처사에서부터 사회의 다양한 윤리 원칙 차원에서 사용된다. 만약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면 논의의 대상과 범주에 따라 같은 행동이 윤리 원칙에 맞는 공적인 행위로 인정되기도 하고 사적인 비도덕적 행위로 비난받기도 한다. 이처럼 공과 사의 논의는 동양의 전통사회에서부터 현재까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대순사상의 문헌 속에서도 공과 사의 엄격한 분리를 강조하는 언명들을 발견할 수 있다. 강증산(姜甑山, 1871~1909)은 “각 성(姓)의 선령신이 한 명씩 천상 공정에 참여하여 기다리고 있는 중이니 이제 만일 한 사람에게 도통을 베풀면 모든 선령신들이 모여 편벽됨을 힐난하리라. 그러므로 나는 사정을 볼 수 없도다. 도통은 이후 각기 닦은 바에 따라 열리리라”1)라고 하여 천상(天上) 공정(公庭)에서 도통을 비롯한 모든 일에 사적인 정(私情)이 없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증산의 종통(宗統)을 계승한 도주(道主) 조정산(趙鼎山, 1895~1958)은 「포유문(布喩文)」에서 “상제께서 한없이 넓게 위에 계시고, 도주님은 광대하게 명(命)을 받드시니, 도수(度數)는 밝고 밝아서 무사지공(無私至公)하다.”2)라고 언명한다. 증산이 짜놓은 천지도수를 풀어나가는 정산은 도수가 일체의 사사로움이 없이 지극히 공정하게 흐르고 있다고 설명한 것이다. 또한 정산의 종통을 계승한 도전(都典) 박우당(朴牛堂, 1917~1995)은 “수도를 잘하고 잘못함은 자의(自意)에 있으나, 운수를 받는 것은 사가 없고 공에 지극한(無私至公) 인도(人道)에 있다는 것은 알아야 한다.”3)라고 하여 운수(運數)를 받는 것은 무사지공(無私至公)한 인간의 도리에 있다고 훈시한다. 이로 볼 때, 대순사상에서의 공과 사 개념은 일반적인 개인의 처신과 처사에서부터 천지 도수의 운행, 그리고 수도인이 운수를 받는 문제까지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요한 논의 대상임을 알 수 있다.

공사론(公私論)은 대순사상의 중요한 논의 대상이지만 지금까지 선행연구에서 단독주제로 다룬 글은 없었으며 다른 주제에 관한 연구를 통해 부분적, 단편적으로 언급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4) 대순사상에서 공·사 개념을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통적 공·사 개념의 특징에 대해 규명해야 할 것이며, 나아가서는 이러한 문화적 특징 중 어떠한 측면이 대순사상의 공·사 개념에 나타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목할 점은 공·사 개념이 유학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논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특히 공·사 논의는 성리학이 지배하던 시대에 강하게 나타난다. 만약 공·사 개념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면 조선왕조가 5백여 년간 유지되기 어려웠을 것이다.5) 그래서 대순사상이 지닌 공사론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통 시대 공사관의 개념적 성격과 범주적 특성을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동양 전통 시대와 조선시대에 나타난 공사론에 관한 연구는 다양한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본 글의 논의 배경으로서 선행연구를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다. 미조구치 유조(溝口雄三)는 중국과 일본에서의 공·사 관념의 변천 과정을 분석하였다. 그는 중국에서의 공·사가 상고 이래로 공정(公正)과 공평(公平)을 지향하는 천하위공(天下爲公)의 의미가 강하였는데, 송대에 들어와 성리학적 사유의 영향을 받아 사회와 개인의 관계이면서도 선과 악의 윤리적 대립 관계로 인식됐다고 주장한다. 즉 공·사 개념이 천리(天理)와 인욕(人欲) 논의와 결부되면서 인욕지사(人欲之私)에 대비되는 도덕적 원리로서의 천리지공(天理之公)의 의미가 강조된 것이다. 그는 이러한 시각에서 사회의 규범은 인정되고 개인의 욕망은 부정되는 양상을 지닌다고 파악한다. 그리고 그는 명대(明代)에 이르러 개인의 욕망까지도 긍정하는 방향으로 공 개념이 확대되고 있었다고 이해한다.6) 또한 이승환은 동양 전통과 조선시대에 나타난 공의 의미를 세 층위로 살펴보았다. 그는 공이 ① 지배권력 및 지배 영역의 의미, ② 공정성·공평성과 같은 윤리 원칙의 의미, ③ 다수·공동을 뜻하는 공의 의미 등으로 사용되었음을 밝혔다. 이러한 점에서 이승환은 공을 지향하는 공익이 윤리적으로 정당성을 획득한 불특정 다수의 이익이라고 정의한다.7) 그리고 장현근은 공·사 논쟁이 도덕(학문)과 정치권력의 관계 속에서 정치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과정으로 파악하였다. 즉, 군주의 권력이 오직 공공성을 위해 행사되어야 한다는 정치과정의 문제라고 지적한 것이다.8)

또한 주희의 공·사 개념에 집중한 선행연구가 있다. 권향숙은 『주자어류』에 사용된 공이 남성과 직위의 용례를 제외하고 통치조직(조정이나 관청)과 관련된 것, 보편적인 일, 윤리 원칙으로서의 공평함 등으로 사용되었고, 사는 주관적인 것과 임의로 일을 처리함이라는 용례를 제외하고 개인의 사적 이익, 조직과의 단절 등의 비도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분석한다.9) 윤원현은 주희의 공·사 개념이 천리와 인욕, 인(仁), 시비(是非) 등을 해명하기 위한 성격으로 논의된 것이기에 이 논의들과의 관계 속에서 해석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는 공·사를 보편적 도덕과 개별적 배타성을 띤 것으로 정의한다.10) 황금중은 주희가 말한 공의 용례에는 조정이나 관청과 관련한 일의 의미도 있지만, 그가 철학적인 의미를 둔 것은 공정(公正), 공의(公義), 공평(公平), 공개(公開)와 같은 윤리적인 용례라고 보았다.11) 이외에도 김정현은 중국과 한국의 공 개념이 ‘지배권력=공평·공정=다수’의 의미를 지닌 복합적인 개념으로써 여러 함의를 갖는다고 주장한다.12) 배수호는 유교의 공공성 특성을 지배층과 관료 기구로서의 공, 만물까지 공공성 확장, 화이부동(和而不同)으로서 다양성 존중, 평등성 등으로 살펴보았다.13) 이러한 점에서 성리학적 가치를 지향하던 시대에서 공사론은 대체로 도덕적 원리라는 맥락 속에서 통용되고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들은 동양 전통사상에 나타난 공·사 개념에 대한 이해와 지평을 넓히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하였다. 즉 공·사 개념의 용례를 분석한 선행연구는 이 개념의 전반적인 의미를 종합하고 분석해 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행연구에서는 한국의 신종교 사상에서 공·사 개념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과 설명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않았다. 논자는 본 글에서 한국 신종교인 대순진리회에서 공·사 개념을 어떻게 논하고 있는지에 대해 집중하고자 한다. 대순사상에서는 전통사상에 나타난 공·사 개념 중에 어떠한 층위의 의미가 강조되는가? 그리고 대순사상의 공사론에 나타난 종교적 함의는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본 글은 단순히 대순사상에서의 공사론만을 읽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동양 사상의 공사관 변화를 살펴보고 대순사상의 공사론이 어떠한 특징을 보이며 그것이 동양 사상의 공·사 개념과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대순사상의 공사론이 가지는 의의가 무엇인지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효율적 논지 전개를 위한 이 글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전통 시대 동양 및 한국의 공사론에 내포된 주요한 특징을 짚어보고(2장), 이러한 특징이 대순사상의 공사론에 어떻게 변용되어 나타나는지 살펴보겠다(3장). 이를 통해 대순사상의 공사론 특징과 종교적 함의가 무엇인지 규정하고자 한다(4장). 이러한 시도는 대순사상에서 논의되는 공사론의 성격과 종교적 의의를 찾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Ⅱ. 동양 전통에서 공(公)과 사(私)의 의미

동양의 공(公)과 사(私) 개념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의미의 세분화가 있었다.14) 전통 시대 동양 특히 중국과 한국의 공과 사 개념에 내포된 다양한 의미의 층차를 구분해 내고, 전통의 공사론이 변용되어 가는 과정을 추적해 보는 일은 대순사상의 공·사 개념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중요성을 지닌다. 중국과 한국에서 공·사 개념은 시대적 변천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첨가하며 발전해 왔지만,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15)

1. 지배권력과 기구로서의 ‘공’과 개인 영역으로서의 ‘사’

동양의 지적 전통에서 공·사 개념에는 고대 국가의 정치기구가 형성되어 감에 따라 지배권력 및 기구를 뜻하는 공과 이에 벗어난 개인 영역을 뜻하는 사의 의미가 있다. 이러한 공·사 개념은 고대의 유학 문헌에서 나타난다. 『주역』에서는 사의 용례보다 공의 용례가 강조되는데, 「대유괘(大有卦)」에서는 천자에게 공물을 바치는 군주를 공이라고 표현한다.16) 그리고 『상서』에서 사용된 공 개념은 권력자를 지칭하는 용례와 제후국의 군주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고,17) 사 개념은 판관이 개인의 이익을 재판 과정에 개입시키는 직무 태도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된다.18)

『시경』에서 공·사 개념은 정치권력자의 혈족과 조상, 그리고 정치 지배기구와 지배 영역을 가리키기도 한다.19) 그런데 『시경』에서 주목할 점은 공의 용례에 정치권력자가 나라의 일을 처리하는 장소로서의 개념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시경』 「대아(大雅)·첨앙(瞻卬)」편에는 제후가 행하는 나랏일과 정치적 사무를 뜻하는 공사(公事)라는 용례가 보이고,20) 『시경』 「소남(召南)·소성(小星)」편의 “빨리도 밤길을 가서, 이른 새벽부터 밤늦도록 공소(公所)에 있도다”21)라는 구절에서 공이 공·사를 처리하는 관청을 의미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시경』 「열명중(說命中)」에는 “저 공당(公堂)으로 올라가서 저 뿔잔을 드니 만수무강하리로다.”22)라고 하여 공당이 나랏일을 처리하는 공간이란 의미가 있으며,23) 『시경』 「소아(小雅)·대전(大田)」에는 “공전(公田)에 비가 내려서 마침내 사전(私田)에 미치라.”24)라고 하여 공전은 국가 소속 토지를 의미하고 사전은 개인에 소속된 민전(民田)을 의미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서도 공·사 개념에는 국가권력과 기구의 의미와 개인의 영역과 관련된 의미가 있다. 먼저 공의 용례를 보면, 자연재해로 인한 진휼(賑恤: 흉년에 곤궁한 백성을 도움)의 시행 과정에서 공진(公賑)은 중앙정부가 주관하는 진휼을 지칭하는 말이었고,25) 공고(公故)는 관리가 궁중 행사에 참여하는 일이었으며,26) 공인(公引)은 국가나 관청에서 발급한 통행이나 여행 허가증을 뜻하였다.27) 다음으로 사의 용례를 보면, 사진(私賑)은 지방 관아의 자비곡(自備穀)으로 진행하는 진휼이거나 부호(富戶)의 원납곡(願納穀)으로 진행하는 진휼이었으며,28) 사결(私結)은 관청의 토지 대장에 올리지 않은 개인 소유의 논밭을 가리키고,29) 사무(私貿)는 국가에서 규정으로 금지하는 물품을 개인이 사고파는 행위를 의미였다.30) 이처럼 조선시대에서도 공·사 논의는 국가와 개인 영역의 의미가 있다.

2. 공동의 이익과 의견으로서 ‘공’과 개인의 이익과 의견으로서의 ‘사’

공·사 개념은 공동 이익과 의견, 개인 이익과 의견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예기』 「예운(禮運)」편에서는 고대의 이상적 공동체인 대동(大同) 사회를 묘사하면서 천하위공(天下爲公)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고, 이와 대조적인 소강(小康) 사회를 묘사하면서 천하위가(天下爲家)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31) 『예기』 「예운」편에 따르면 대동사회는 ‘천하를 공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이다. 이는 군주가 국가의 운영을 그 자손에게 사사롭게 넘기지 않고, 현능한 인재에게 줌으로써 공공의 것으로 여긴다는 의미이다.32) 반면 소강사회는 대도(大道)가 은폐되어 ‘천하를 사적인 가정의 소유로 인식’하는 사회이다. 이 사회의 군주는 자신의 지위를 자식에게 세습한다. 따라서 정치권력자뿐만 아니라 개인들도 사적인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회다. 이 구절은 수양을 통해 덕성을 갖춘 사람에게 정치권력이 계승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한 단계 진전된 공·사 개념의 진화를 보여주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33)

조선시대 이이(李珥)는 공동과 개인의 의견이라는 공사론의 측면에서 국가의 큰 정책이나 기조인 국시(國是)에 대해 언급하며 공론(公論)에 대해 말한다. 이이는 많은 사람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의견이 공론이라 하고 공론이 있는 곳이 국시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는 국시란 사람을 이익으로 현혹하는 것도 아니고, 위세로 두렵게 하는 것도 아니며 철없는 어린아이라도 옳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34) 그래서 이이는 국시를 정하는데 사사로운 의견으로 다투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35) 이와 관련해 주희(朱熹)는 국시란 천리(天理)를 따르고 인심(人心)을 화합하여 천하가 모두 옳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36) 그리고 주희는 진정한 국시라면 다른 이론(異論)들이 생겨나지 않는다고 언명하고, 만약 자신의 편견을 주장하여 그사이에 사심(私心)을 꿰어 넣고 억지로 국시라 이름 지으며, 임금의 위엄을 빌려서 공론을 다투려는 행위는 있어선 안 된다고 설파한다.37) 이는 국가의 일을 결정할 때 개인 의견보다 공동 의견을 더 중요시한 당대 지식인의 시각이 드러난 내용이다. 이외에도 조선왕조실록에는 많은 사람이 옳다고 여기는 정당한 의론이라는 의미에서 ‘신민의 공론(臣民之公論)’,38) ‘천하의 공론(天下之公論)’,39) ‘일국의 공론(一國之公論)’,40) ‘만인의 공론(國人之公論)’41) 등의 기록이 보인다.

3. 공정한 윤리 원칙으로서의 ‘공’과 불공정한 비도덕적 의미로서의 ‘사’

고대 동양에서 공·사 개념은 점차 공정한 윤리 원칙과 불공정한 비도덕적 의미로 사용된다.42) 공·사 의미는 군주와 관리들의 전횡을 막기 위한 당대 지식인들의 언설에 자주 보인다. 『상서』 「주관(周官)」편에는 공적인 것으로써 사적인 것을 없애면 백성들이 진심으로 믿고 따르게 될 것이라고 하여 군주와 관리들이 공적 자세를 지향해야 한다고 훈계하고 있다.43) 그리고 『순자』 「군도(君道)」편에는 직분을 나누고 사업을 순서 있게 하며, 재능에 따라 관리들의 능력을 측정하여 다스리면, 공공의 도(公道)가 발달하게 되고 사사로운 문(私門)은 막히게 되어 공적인 의리(公義)가 밝아지고 사사로운 일들(私事)이 종식 될 것이라고 적고 있다.44) 또한 『좌전』 「양공(襄公) 5년」편에는 계문자(季文子)가 공실(公室)에서 공평함으로 임했기에 세 군주의 재상을 하고도 사적 축재가 없었다는 내용이 보인다.45) 또한 『상군서』「수권(修權)」편에서는 군주와 신하가 한 나라의 이익을 독점하고 관직의 대권을 장악하여 사적인 편의를 도모하면 국가가 위태로워진다고 보았으며, 공과 사의 관계가 국가 존망의 근본이라고 강조한다.46) 이로 볼 때, 당대 지식인들은 국가의 존립이 지배층의 공명정대한 공무 집행에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47)

이러한 중국의 공·사 개념은 송대에 들어와 천리(天理)와 인욕(人欲) 개념과 결부되면서 더욱 강화된 윤리 원칙으로 정립된다. 주희는 이익을 추구하는 사욕을 사심으로 규정하고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없애는 것(存天理, 滅人欲)’만이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언명한다. 이와 관련해 주희는 “천하의 바르고 큰 도리를 가지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 바로 공이고, 자신의 사사로운 뜻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바로 사이다.”48)라고 하고, “무릇 한 가지 일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올바른 것은 천리가 공정한 것이고, 그릇된 것은 인욕의 사사로움이다.”49)라고 한다. 또한 그는 “사사로움이 사이에 들어오지 않으면 공평하며, 공평하면 인(仁)이 된다. 예를 들면 물과 같으니, 조그마한 장애물이라도 만나면 곧 두 갈래가 되니, 모름지기 막힌 것을 제거해야 도도하게 흘러간다.”50)라고 설명한다. 즉, 공의 추구는 ‘공(公)=의(義)=천리(天理)’로 규정되고, 사의 추구는 ‘사(私)=이(利)=인욕(人欲)’으로 정의될 수 있다.51) 주희의 이러한 견해는 근대 이전 동양 사회의 공·사 개념에 내포된 윤리적 특성을 드러내 주는 예이다.52)

조선 사회에서도 공·사 개념은 윤리 원칙과 관련한 개념으로 파악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황(李滉)은 17세의 선조(宣祖)에게 공정무사(公正無私)한 군주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올린다. 그는 「성학십도」에서 공이란 인(仁)을 실천하여 몸소 알게 되는 것이며 ‘사욕을 극복하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 된다는 말과 같다고 언명한다. 그리고 그는 공은 인(仁)이고 애(愛)이기에 효제(孝悌)는 그 작용이 되고 서(恕)는 인을 베푸는 것이며 지각(知覺)은 이를 아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토대로 이황은 사욕을 제거하고 천리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53) 이황에 따르면 공은 공정한 윤리 원칙을 가리키고 인을 베푸는 방법이 되며 천리와 동일시된다. 또한 송시열(宋時烈)은 주희의 문자를 관찰하면, 매번 공과 사의 명확한 구분이 있는데 그 의의가 자신의 편안함만을 찾고 세상 사람들을 구하려는 마음이 없는 것이 인욕(人欲)이고 천리(天理)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고 보았다.54) 송시열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나라를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고 문제 삼은 것이다. 이처럼 조선 사회의 공사관에는 정치권력자와 관료가 사적 욕망을 극복하고 공직자로서의 지녀야 할 공적 덕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미가 나타난다.55) 이외에도 조선왕조실록에는 옳고 그름이 분명해질 것이라는 의미가 담긴 ‘반드시 공정한 논의(必有公論)’,56) ‘본래 공정한 논의(自由公論)’57) 등의 기록이 보인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전통적인 동양의 공사론은 ‘지배권력과 기구로서의 공과 개인 영역으로서의 사’, ‘공동의 이익과 의견으로서 공과 개인의 이익과 의견으로서의 사’, ‘공정한 윤리 원칙으로서의 공과 불공정한 비도덕적 의미로서의 사’의 의미로 발전되어 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시각은 동양의 전통사상을 보는 당대 지식인들의 다양한 견해를 대표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사론은 그 의미를 종합적으로 본다면, 지배권력은 다수의 의견을 반영한 공정한 윤리 원칙으로서 행사되어야 하고 개인적인 영역에서는 불공정한 행위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복합적인 의미로 볼 수 있다.58)

Ⅲ. 대순사상에서 공(公)과 사(私)의 의미

1. 공(公)·사(私) 개념에 대한 증산과 정산의 사유

동양의 지적 전통에서 본 공·사 개념의 세 가지 의미 중에 대순사상에서는 어떠한 의미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가? 먼저 공·사 개념에 대한 대순사상의 관점을 증산의 언명에서 찾아보자. 『전경』에서 천지공사(天地公事, 1901~1909)의 내용을 설명하는 지점에서 공을 지향하는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상제께서 하루는 김 형렬에게 “삼계 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후천 선경(後天仙境)을 열어 고해에 빠진 중생을 널리 건지려 하노라”고 말씀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제 말세를 당하여 앞으로 무극대운(無極大運)이 열리나니 모든 일에 조심하여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죄를 멀리하여 순결한 마음으로 천지 공정(天地公庭)에 참여하라”고 이르시고 그에게 신안을 열어 주어 신명의 회산과 청령(聽令)을 참관케 하셨도다.59)

천지공사는 공사(公事)라는 용어가 보여주듯이 증산이 우주 전체의 질서를 다시 세우기 위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60) 즉 증산의 종교활동인 천지공사는 ‘천지에 대한 공적인 일’이라는 뜻이다. 이는 상극(相克)으로 인해 생긴 모든 원한을 풀어주고[解冤], 상극과 원한으로 어그러진 천지 법칙을 조정하고 고치되 상생(相生)으로 운행되는 질서를 가지게 하며 그 결과로 상극과 원한이 없는 세계가 열리도록 한다[後天開闢]는 것이다. 증산은 자신이 신명을 모으고 종도를 참관시키면서 천지의 운행과 구조를 조정하고 모든 원한을 풀며 개벽시키는 일을 천지공사라고 언명했던 것이다.61) 이처럼 증산에게 공의 범위는 천지 또는 삼계를 대상으로 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우주 질서의 재편과 세계를 건지는 일이라는 종교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전경』에서 천지공사는 천지공정(天地公庭)이라 표현되기도 한다. 증산은 종도들에게 천지공정은 개인적 사심(私心)과 사욕(私慾)이 아닌 순결한 마음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권면한다.62) 증산은 개벽이 일어나는 시기에 “참된 자는 큰 열매를 얻고 그 수명이 길이 창성할 것이오.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하리라. 그러므로 신의 위엄을 떨쳐 불의를 숙청하기도 하며 혹은 인애를 베풀어 의로운 사람을 돕나니 복을 구하는 자와 삶을 구하는 자는 힘쓸지어다.”63)라고 언명한다. 이로 볼 때, 증산의 언명에는 거짓된 사를 없애고 참된 공을 지향하는 도덕적인 측면의 공·사 개념이 드러난다. 그리고 신명이 수찰(垂察)하고 있기에 사에 해당하는 불의를 행할 때 그에 해당하는 벌을 받게 된다는 점이 동양의 고전과 다른 지점이다. 이러한 증산의 공사론은 도통(道通)에 대한 언급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공우가 어느 날 상제를 찾아뵈옵고 도통을 베풀어 주시기를 청하니라. 상제께서 이 청을 꾸짖고 가라사대 “각 성(姓)의 선령신이 한 명씩 천상 공정에 참여하여 기다리고 있는 중이니 이제 만일 한 사람에게 도통을 베풀면 모든 선령신들이 모여 편벽됨을 힐난하리라. 그러므로 나는 사정을 볼 수 없도다. 도통은 이후 각기 닦은 바에 따라 열리리라” 하셨도다.64)

이 구절의 각 성의 선령신이 한 명씩 천상(天上) 공정(公庭)에 참여하고 있다는 표현에서 ‘공정’은 공판(公判)하는 법정이란 의미이다. 그래서 ‘천상 공정’은 곧 ‘하늘 위의 세계(天上)에서 공판을 집행하는 법정(公庭)’이라 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증산이 “나는 사정(私情)을 볼 수 없도다.”라고 한 언명이다.65) 이 언명은 사사로운 정(情)으로 개인이 도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수도를 통하여 닦은 바에 따라 도통이 열리게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66) 『전경』에 “천리의 극진함이 털끝만한 인욕(人慾)의 사(私)가 없나니라”67)라는 내용을 비추어 보면 하늘의 공명정대함은 사람의 욕심에 해당하는 사가 없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도 공·사 개념은 도덕적 공평함과 연결된 의미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증산은 공과 사를 구별하는 것이 천지공사에 임하는 주요한 자세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전경』에는 제갈량이 마속(馬謖)을 처형한 일(揮淚斬之)에 대해 증산이 언급한 장면이 등장한다.68) 이 일화에서 제갈량은 군법에 맞는 공정성을 위해서 측근인 마속을 처벌하게 된다. 이는 공정성을 유지해야 하는 지휘관의 상황에서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일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와 관련해 증산은 종도 김형렬에게 “무한 유사지 불명(無恨有司之不明)하라. 마속(馬謖)은 공명(孔明)의 친우로되 처사를 잘못함으로써 공명이 휘루참지(揮淚斬之)하였으니 삼가할지어다”69)라고 언명한다. 여기서 무한유사지불명(無恨有司之不明)이란 자신이 맡은 임무(有司)를 분명히 완수하지 못하여(不明) 한(恨)을 남기지 말라는 뜻이다. 이는 ‘개인의 재능보다 규정을 준수해야 하고 맡은 일을 정확하게 마무리하지 못하여 한을 남기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언명에 따르면 마속이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부족하였다고 보이는 지점은 공적인 일에 사적인 의견을 개입하여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못한 것이다.70)

다음으로 증산의 종통을 계승한 정산이 공·사에 대해 언급한 구절을 살펴보자. 『전경』에는 정산이 1927년에 선포한 「포유문(布喩文)」이 있는데 이 글에 “다행히 이 세상에 한량없는 대도가 있으니, 나의 심기를 바르게 하고, 나의 의리를 세우고, 나의 심령을 구하여, 상제의 임의에 맡기라. 상제께서 한없이 넓게 위에 계시고, 도주님은 광대하게 명을 받드시니, 도수(度數)는 밝고 밝아서 무사지공(無私至公)하다. 인도하심이 아닌가! 끝없는 극락 오만년 깨끗하고 번성한 세계”71)라는 기록이 보인다. 여기서 “도수는 밝고 밝아서 무사지공하다.”라는 정산의 언명은 곧 ‘밝고 밝은 하늘의 법칙은 사사로움이 없이 공명정대하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72) 정산은 “상제께서 짜 놓으신 도수를 내가 풀어 나가노라”73)라고 하였는데, 증산이 짜 놓은 도수를 정산은 천지공사의 설계에 맞게 공정하게 풀어나가는 존재이다.74) 그렇기에 정산은 하늘의 법칙인 도수는 사사로움이 없이 공명정대하다고 말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전경』의 내용을 통해서 인간의 마음에는 공적인 성격의 마음과 사적인 성격의 마음이 있다고 보는 증산과 정산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공적 성격의 마음은 양심을 지향하는 마음으로 올바른 도덕적 판단을 가능하게 하고, 사적 성격의 마음은 인간의 부정적 욕망을 품은 마음으로 공적 의식의 드러남을 방해한다. 이것이 공과 사에 대한 증산과 정산의 기본적인 사유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는 개인의 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천지공사라는 공적인 일을 행할 때 신명의 수찰과 함께 도통과도 연결된 수양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결국 동양고전에 나타난 공과 사에 대한 논의 중에서 증산과 정산에게 두드러지는 것은 도덕적이고 공정한 윤리적 태도이다.

2. 공(公)·사(私) 개념에 대한 우당의 사유

우당은 증산과 정산의 종통 계승자로서 그의 「훈시」 속에는 대순진리회의 주요 개념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다. 먼저 우당이 공·사 개념의 중요성을 설명한 내용을 보자.

수도를 잘하고 잘못함은 자의(自意)에 있으나, 운수를 받는 것은 사가 없고 공에 지극한(無私至公) 인도(人道)에 있다는 것은 알아야 한다.75)

우당은 수도를 잘하고 잘못함은 자유로운 의지 능력을 가진 인간의 수행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순진리회에서 지향하는 운수(運數)는 사가 없고 공에 지극한 인도(人道)76)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77) 우당은 공·사 논의가 개인의 처신·처사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운수와도 연결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78) 우당의 이 언명은 증산이 모든 일을 풀어 각자의 자유의사에 맡기고 모든 일에 마음을 바로 하라고 하며 “사곡한 것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 되니라. 이제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하여 마음에 먹줄을 겨누게 하고 사정의 감정을 번갯불에 붙이리라. 마음을 바로 잡지 못하고 사곡을 행하는 자는 지기가 내릴 때에 심장이 터지고 뼈마디가 퉁겨지리라. 운수야 좋건만 목을 넘어가기가 어려우리라.”79)라고 한 언명과 연결되어 이해할 수 있다. 증산은 신명이 사람에게 임감하게 하여 사정(邪正)을 감정(勘定)한다고 설명한다.80) 공에 해당하는 진실되고 공명정대한 행위를 한 자와 사에 해당하는 사곡(邪曲)을 행하는 자는 운수의 갈림길에서 다른 결과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공과 사 구분은 수행의 핵심으로 강조된다는 점에서, 대순진리회의 중요한 종교 윤리로 인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당은 운수를 결정짓는 주요 개념인 공과 사를 어떠한 의미로 정의할까?

  • ① 사(私)는 인심이요 공(公)은 도심(道心)이니, 도심이 지극하면 사심(私心)은 일어나지 못 하느니라.81)

  • ②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사심(私心)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모든 죄악의 근원이 내 마음속에서 비롯되므로 사욕(私慾)을 누르고 공명정대(公明正大)한 도심(道心)을 드러내도록 힘써 나가야 할 것입니다.82)

우당은 『대순지침』에서 공(公)은 도심(道心)이고 사(私)는 인심(人心)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우당은 「훈시」에서 인간은 언제든 사심에 빠질 위험이 있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언명하고 사욕을 누르고 공명정대한 도심을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순진리회에서 도심은 순수한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어서 도덕적인 마음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는 “공명정대한 도심을 드러내도록 힘써 나가야 할 것”이라는 언명과 “말은 마음의 소리요 덕(德)은 도심(道心)의 자취라.”83)라는 표현에서 확인된다. 도심에 비해 인심은 반드시 비도덕적인 마음이라고 할 수 없지만, 부도덕으로 흘러갈 위험성이 있는 마음이다.

여기서 문제는 인심을 사심 자체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심이란 비도덕적인 면이 강한 경우를 말한다. 만일, 사심이 부도덕성 그 자체라면, 인심이 발동해 사심에 흐르면 악하게 된다. 하지만 인심이 배가 고플 때 음식을 찾는 마음이라면 그 자체로서 악한 마음은 아니다. 그래서 인심은 선과 악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에 인심이 곧 사심이라고 볼 수는 없다.84) 우당의 공과 사 개념은 <공(公) = 도심(道心) = 공명정대(公明正大) / 사(私) = 인심(人心: 사심으로 흐를 수 있는 경향) = 사욕(私慾)>의 도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도심이란 공명정대한 마음을 가질 때 생겨나고, 사심이란 인간이 사욕을 가질 때 생겨난다.85) 이로 볼 때, 공은 공정, 공평과 같은 보편적 윤리 원칙을 의미하고 사는 불공정한 행위나 사적인 행위를 가리키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공·사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우당의 「훈시」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점은 선각자가 후각자를 대함에 있어서 공과 사를 분명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설명한 지점이다.

  • ① 포덕은 덕을 편다는 말이니 겸허(謙虛)와 지혜의 덕으로 사(私)로 인하여 공(公)을 해치지 말고 보은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86)

  • ② 공사(公私)의 분(分)과 상하(上下)의 의(義)를 바로 지켜서 도인의 본분을 다하고, 자기를 반성하여 상극(相克)을 막도록 하라.87)

  • ③ 상호 은의로써 수임임원은 항상 반성하여 동작(動作)을 바르게 하고 공사(公私)를 가려 마음의 장벽을 무너뜨려야 한다.88)

우당은 선각자와 후각자 상호 간에 은의를 잊지 않아야 하고 선각자인 임원은 공과 사를 분명히 구분해서 공명정대하게 처신·처사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당은 선각자의 이러한 지속적인 노력이 있을 때 후각자에게 심복(心服: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성심을 다하여 순종함)을 받을 수 있게 된다고 훈유한다.89) 만약 선각자가 일을 처리하면서 사심으로 인한 편벽된 처사와 불공정한 일을 의도적으로 만들게 된다면 후각자는 불평불만을 가지게 되고 이로 인하여 조직의 화합을 깨트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우당의 이러한 공과 사에 대한 견해는 증산과 정산의 관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증산과 정산은 한결같이 수도하는 선각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의 윤리적 공정성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에 자기반성과 성찰이 중요함을 인정한다.90)

선각자가 자기 사사로움을 제거하고 공을 지향해서 일을 해야 함은 선각자와 후각자 상호 간의 소통을 위한 중요한 방법이 된다. 이러한 소통을 위한 사사로움을 제거하는 방법으로서 일상의 자기반성은 선각자가 도의 일을 행함에 앞서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우당은 “임원들이 수반들을 대순진리로 지도교화함으로써 도인들은 일정 일동이 사정(私情)에 치우쳐 경거망동한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다.”91)라고 하고 “모든 도인들은 처사에서 무편무사(無偏無私)하고 공명정대하여 욕됨이 없게 하라.”92)라고도 훈시한다. 이는 당장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발전과 성과보다는 윤리도덕을 지향하는 종단의 조직을 구축하려는 우당의 신념이 담긴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우당은 「훈시」에서 공정한 것과 삿된 것이라는 윤리적 의미로써 공과 사를 구분하여 규정한다. 우당은 수도를 하는 한 개인에게서도 도덕적인 소통의 경향을 공, 이기적 욕심에 이끌려 도인 상호 간의 관계에서 폐쇄적 성향을 보이는 것을 사로 규정한다고 볼 수 있다. 우당에게서 공 개념은 도심으로서 공명정대함을 의미하는 것인데 현실에서는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서 사회적 구성원 누구나 승인하고 긍정할 수 있는 객관성과 보편성을 갖는다. 반대로 사 개념은 인심으로서 부도덕으로 흘러갈 위험성이 있는 것인데 현실에서는 주관적이고 은폐적일 수 있는 것으로서 공동체에서 서로의 의견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구성원 간의 소통을 막는 요인으로써 논의된다. 이러한 공·사 논의는 우당에게서도 도통과 직결되는 수양의 핵심 관건으로 강조된다.

Ⅳ. 맺음말

공과 사에 대한 대순사상의 관점에서 보면, 동양의 지적 전통에서 보이는 ‘지배권력과 기구로서의 공과 개인 영역으로서의 사’나 ‘공동의 이익과 의견으로서 공과 개인의 이익과 의견으로서의 사’라는 의미보다는 ‘공정한 윤리 원칙으로서의 공과 불공정한 비도덕적 의미로서의 사’의 의미가 강하게 나타난다. 즉, 대순사상의 문헌에서는 윤리적 영역과 비도덕적 영역의 공과 사에 대한 논의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공·사 개념의 설명에서 증산, 정산, 우당의 주된 관심은 자기 수양으로서 사를 배제하는 공의 지향과 공명정대함이라는 도덕성의 확장에 집중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순사상에서 추구하는 공·사 개념에는 도의 법규에 따라 행하는 수도의 일에서나 사회 속에서 인간관계 맺음에 있어서 객관적이고 투명한 자세가 중요시된다. 여기에서는 동양의 지적 전통에서 보이는 공사론과는 다른 몇 가지 지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대순사상의 공사론에는 증산이 행한 천지공사가 무사지공(無私至公)하게 행해졌으며 현재에도 그 공사의 내용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 전제된다. 증산은 천지공사를 천지공정(天地公庭)이라고 표현하는 것에서 드러나듯이 사를 배제한 공을 추구하였고, 정산은 이를 무사지공의 도수(度數)라고 표명한다. 증산이 짜놓은 천지도수를 풀어나가는 정산은 도수가 사사로움이 없이 공정하게 흐르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둘째, 공의 지향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윤리적 영역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명의 수찰과 함께 도통과도 연결된다는 점이다. 증산은 사사로운 정(情)으로 개인이 도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수도를 통하여 닦은 바에 따라 도통이 열리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마음을 바로 하지 못하고 사곡을 행하는 자는 후천선경에 참여하기 어렵다고 언명한다. 그리고 우당은 대순진리회에서 지향하는 운수(運數)는 사가 없고 공에 지극한 인도(人道)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신명공판(神明公判)이란 수도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훈시한다. 셋째, 공과 사의 구분은 수도인이 자신의 위치에서 본분을 다하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화합을 이루는 방법이라는 점이다. 우당은 선각자가 공·사를 가려 공명정대하게 행동한다면 후각자는 불평불만을 품지 않게 되고 이로 인해 조직의 화합을 가져오게 된다고 훈유한다. 선각자는 도의 법규를 준수하고 후각자와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공을 지향해 나가는 것이 강조되는 것이다. 이러한 대순사상의 공사론에 보이는 특징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내용은 대순사상의 종교적 성격을 나타낸다고 이해할 수 있다.

대순사상에서는 모든 일에 있어서 은폐적 경향을 지닌 사보다는 밝은 경향을 지닌 공에 대한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수도의 구체적 지침을 설명한 『대순지침』에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모여서 수도하는 사회적인 존재인 것을 전제하고 수도 공간에서 경계해야 하는 것은 공명정대함을 저버리고 사사로운 의도를 숨기려는 사욕이라고 보고 있다.93) 여기서 밝게 드러냄을 지향하는 공은 윤리적이고 긍정되며, 은폐하는 속성을 갖는 사는 부정된다. 사적 욕망을 품을 수 있는 인간은 자기 이익에 자유로울 수 없어 도덕 실천의 갈림길에 있어서 사사로운 이익에 매몰될 확률이 비교적 높다. 그러나 인간은 식색(食色)과 안일(安逸)과 같은 생리적인 욕구만을 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제어할 수 있는 도덕적인 마음이 있다. 이러한 구분을 명확하게 하려고 대순사상에서는 도심을 지향하는 수도를 강조한다.

사욕을 억제하고 공을 지향하는 삶을 추구하는 대순사상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매 순간 사욕의 유혹과 싸워야 하는 수양의 공간이다. 증산, 정산, 우당은 인간이 공과 사의 두 가지 마음의 성격을 가진 존재임을 알려준다. 즉 그들은 인간이 수양을 통해 공(公)을 지향한다고 할지라도 자기 이익과 결부되면 다시 사(私)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웠다. 만약 순간의 유혹에 빠져 자기 이익을 채우고 조직의 공정함을 깨트리면서까지 개인의 사욕을 채운다면 이는 운수를 받는 것과 멀어지는 것일 것이다. 사회가 질서 있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적 욕망을 어느 정도 억제하고 사회의 공공성을 중시해야겠지만, 종교의 윤리 내에서 공을 지향하는 윤리 이상을 설정해 놓고, 그 규범과 일치하도록 사욕을 억제하는 것은 수도에서 운수와 직결된 문제가 된다.

대순사상의 이상적 인간관은 후천선경에서 사회의 평범한 구성원이 아니라 후천선경을 이끌 지도자 수준으로 잡고 있다. 이에 따르면 도통군자는 상생의 원리에 자신의 가치관을 부합시킴으로써 사적인 개인이 아닌 사회적 공공성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즉, 도통군자는 후천선경에서 추구하는 가치와 윤리를 지향하는 공적인 일을 행하며 타인들을 포용하며 사회를 이끌게 된다. 대순사상의 이상적 인간관에 어느 정도 접근했느냐에 따라, 상등(上等), 중등(中等), 하등(下等)에 해당하는 도통을 받게 되고 그에 맞는 공적인 권한을 행사하며 사회를 이끌 자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94) 이런 점에서 후천선경은 증산의 뜻을 받들어 무사지공(無私至公)한 마음을 지닌 도통군자가 이끌어가는 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도통을 지향하며 수행하는 사람은 자기의 사적 영역을 넘어 우리라는 공공의 정신을 지향해야 한다. 공과 사의 측면에서 대순사상의 종교 윤리는 현재의 단기적인 욕망을 추구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삶을 설계해 가는 인간상을 만들고 추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즉 대순사상에서는 수양하는 사람이 윤리적으로 정당성을 의미하는 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로 볼 때, 대순사상의 이념이 바탕이 된 공의 지향은 종단의 역사에서 철저하게 추구되어야 하는 개념이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대순사상의 공·사 논의는 증산이 행한 천지공사에 담긴 광구천하(匡救天下)·광제창생(廣濟蒼生)의 대의(大義)를 펼치는 관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수도인이 행하는 도의 공적인 일은 증산의 대의를 편다는 종교적 경건성이 포함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순사상 공사론의 종교적 함의는 사를 배제하고 공을 지향하는 관점과 더불어 후천선경의 참여를 결정짓는 행위로까지 연결되는 것으로 정의된다. 예를 들어, 수행자가 공에 지극한 인도(人道)로써 처신 처사를 지속한다면 이는 일의 공로와 더불어 품성이나 인격에 대해서도 윤리 원칙의 관점에서 평가받게 된다. 하지만 수행자의 무사지공(無私至公)한 행위는 사람들로부터 신임(信任)을 받게 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수행자는 일의 과정에서 신명의 공판을 받기도 하고 마음 자세에 따라 그에 맞는 신명의 호위를 받으며 운수를 받을 수 있는 존재로 변화해 나갈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공과 사를 구분하여 수행하는 것은 사회구성원들과 화합하는 방법이며, 나아가 이 수행을 통하여 후천선경이라는 대순진리회가 지향하는 새로운 삶의 질서를 열어가는 중요한 방법이 되는 것이라 하겠다. 이로 볼 때, 공정성을 축으로 하는 대순사상의 공사론에는 종교적 함의가 내포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결국, 사를 억제하고 공을 지향하는 대순사상의 공사론은 도덕의 실천을 통해 자신을 변혁하며 증산이 제시한 후천선경에 참여할 수 있는 수행의 견고한 방안이라 볼 수 있다.

Notes

대순진리회 교무부, 『전경』 13판 (여주: 대순진리회 교무부, 2010), 교운 1장 33절.

『전경』 교운 2장 41절, “洋洋上帝在上, 浩浩道主奉命, 明明度數, 無私至公.” 이에 대한 해석은 대순진리회 교무부, 『대순지침』 2판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12), p.91을 참조.

『대순지침』, p.93.

최근 선행연구를 보면, 박병만은 “대순사상에서는 인심·도심을 각각 사와 공으로, 양심·사심은 각각 선과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라고 분석하였다. 그는 『대순지침』의 글을 분석하며 대순사상에서 인심·도심이 대립적 가치로 규정되고 있음을 밝혔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대순사상의 공·사 개념에 대한 폭넓은 논의로는 확장되지 않았다. 박병만, 「대순사상의 인심도심론(人心道心論) 연구」, 『대순사상논총』 47 (2023), pp.158-159; p.165.

이승환, 『유교담론의 지형학』 (서울: 푸른 숲, 2004), p.162 참고.

溝口雄三, 『中國の公と私』 (東京: 硏文出版, 1995); 미조구치 유조, 『중국의 공과 사』, 정태섭·김용천 옮김 (서울: 신서원, 2004).

이승환, 앞의 책 (2004), pp.164-178.

장현근, 「군주권력의 공공성을 둘러싼 논쟁 : 공천하인가, 사천하인가」, 『정치사상연구』 27 (2021).

권향숙, 「주희의 공과 사 : 구구웅삼(溝口雄三)의 주희 공사(公私)관 비판적 검토」, 『철학탐구』 30 (2002).

윤원현, 「주희의 “공·사(公·私)” 개념과 공론(公論)」, 『율곡학연구』 17 (2008).

황금중, 「공(公)과 사(私)에 대한 주희의 인식과 공공성 교육」, 『교육사상연구』 26 (2012).

김정현, 「동아시아 공(公) 개념의 전통과 근대 공동체의식」, 『민주사회와정책연구』 13 (2008).

배수호·김도영, 「유학에서의 공공성 논의 : 행정학 맥락에서 이해하기」, 『한국행정학보』 48 (2014).

한국, 중국, 일본의 공·사 개념의 차별성과 관련해서는 미조구치 유조, 앞의 책 (2004), pp.91-132 참조. 본 글에서는 다루지 않지만, 서양의 공·사 개념에 대한 논의는 야규 마코토(柳生眞), 「동서양 공공성 연구와 한국적 공공성 탐구 : 교토포럼의 연구 성과를 중심으로」, 『퇴계학논집』 20 (2017); 소병선, 「공공성에 관한 동·서철학적 고찰」, 『동서철학연구』 83 (2017); 장현근, 「공사(公私) 관념의 변천을 통해 본 동서양 정치사상사에서의 공공성 담론」, 『한국행정학보』 4 (2021) 참조.

논자는 동양 전통에서 공·사 논의를 선행연구에서 공통으로 언급된 내용을 토대로 세 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그리고 이 장의 논의는 이승환의 연구(앞의 책, 2004, pp.164-178)를 토대로 전개하였음을 밝힌다.

『周易』, 「大有卦」 14, “公用亨于天子, 小人弗克.”

『尙書』, 「周書·立政」, “嗚呼. 繼自今後王, 立政, 其惟克用常人. 周公若曰, 太史, 司寇蘇公. 式敬爾由獄, 以長我王國. 玆式有愼, 以列用中罰.”; 같은 책, 「說命中」, “惟說命總百官. 乃進于王曰, 嗚呼, 明王奉若天道, 建邦設都. 樹后王君公, 承以大夫師長. 不惟逸豫, 惟以亂民.”

같은 책, 「周書·呂刑」, “民之亂, 罔不中聽獄之兩辭, 無或私家于獄之兩辭. 獄貨非寶, 惟府辜功, 報以庶尤. 永畏惟罰.”

정치권력자의 조상과 혈족을 의미하는 공의 용례는 공자(公子), 공손(公孫), 공족(公族), 선공(先公) 등이 있다. 그리고 관직과 기구를 의미하는 공의 용례는 공로(公路), 공행(公行), 공소(公所), 공관(公館) 등이 있다.

『詩經』, 「大雅·瞻卬」, “婦無公事, 休其蠶織.” 이에 대한 주석에는 “공사(公事)는 조정의 일이고 잠직(蠶織)은 부인의 일이다(公事, 朝廷之事, 蠶織, 婦人之業).”라는 내용이 보인다.

같은 책, 「召南·小星」, “肅肅宵征, 夙夜在公.”

같은 책, 「大雅·瞻卬」, “躋彼公堂, 稱彼兕觥, 萬壽無疆.”

『周禮』, 「夏官司馬」, “大獸公之, 小禽私之.”

『詩經』, 「大雅·大田」, “雨我公田, 遂及我私.”

『헌종실록』 3권, 헌종 2년 12월 14일(1836년), “今年嶠農, 未免全歉, 當設公賑者, 至爲三十四邑鎭之多, 民勢切急, 可以想見.”

『고종실록』 45권, 고종 42년 6월 17일(1905년), “邇來諸般公故, 懈弛成習, 亦嘗有所申飭, 而至於親行, 全不成班綴, 不過幾人而已.”

『태종실록』 14권, 태종 7년 9월 27일(1407년), “東北面都巡問使李稷啓, 禁靑州以北無公引人物往來, 從之.”

『고종실록』 21권, 고종 21년 4월 6일(1884년), “擧皆捐廩兩等, 私賑全島賴活.”

『인조실록』 33권, 인조 14년 7월 26일(1636년), “則私結者, 各邑或有除出若干結, 私役於官家, 而不役於公賦.”

『명종실록』 22권, 명종 12년 1월 23일(1557년), “其家私貿, 每於朝京之行, (據)授通事等, 倍徵於本價. 其黷貨無厭, 罔有紀極.”

『禮記』, 「禮運」. “大道之行也, 天下爲公, 選賢與能, 講信, 修睦. … 故外戶而不閉, 是謂大同. 今大道旣隱, 天下爲家, 各親其親, 各子其子, 貨力爲己. … 禹湯文武成王周公由此其選也. 此六君子者未有不謹於禮者也. 以著其義, 以考其信, 著有過, 刑仁, 講讓, 示民有常. 以著其義, 以考其信, 著有過, 刑仁, 講讓, 示民有常. 如有不由此者, 在埶者去, 衆以爲殃. 是謂小康.” [“대도(大道)가 행해지는 시대에는 천하를 공적인 것으로 여기니, 어질고 유능한 사람을 선발하여 신의(信義)를 강론하고 친목을 닦는다. … 그래서 바깥문을 닫을 필요가 없으니 이를 대동(大同) 사회라 한다. 지금은 대도(大道)가 이미 행해지지 않아 천하를 사적인 가문(家)의 것으로 여기며, 사람들은 각자 자기 부모만을 부모로 여기고, 자기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며, 재화와 노동력을 자기를 위해서 사용한다. … 우(禹), 탕(湯), 문(文), 무(武), 성왕(武成), 주공(王周)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으로 선택되었으니, 이 여섯 군자는 예를 삼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예라는 규범으로 의(義)를 드러내고 신(信)을 이루며 허물을 드러내고 인(仁)을 본받게 하고 겸양(謙讓)의 도리를 강설하여 백성들에게 상도(常道)가 있음을 보였다. 만일 이 규범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권세를 가진 사람이라도 제거하였으니, 백성들이 재앙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를 소강(小康) 사회라 한다.”] 이 편의 번역은 권오돈 역해, 『(신역) 예기』 (서울: 홍신문화사, 1996), pp.199-200 참조.

정현(鄭玄)은 이 구절에 대해 “공은 공동과 같다. (군주의) 자리를 양위(讓位)하여 성현에 줌은 집안의 일이 아니다(公猶共也, 禪位授聖, 不家之).”라고 주석하고 있다. 공을 공동의 뜻으로 사용한 용례는 『장자』 「천운(天運)」편 “명예란 사회 공공의 기구이니, 혼자서만 많이 가지려 해선 안 된다(名, 公器也, 不可多取).”라는 구절에도 보인다.

대동사회와 소강사회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권정안·복대형, 「『예기(禮記)』 대동사회에 대한 고찰」, 『한문고전연구』 36 (2018) 참조.

『栗谷先生全書』 卷7, 「辭大司諫兼陳洗滌東西疏」, “人心之所同然者, 謂之公論, 公論之所在, 謂之國是, 國是者, 一國之人, 不謀而同是者也. 非誘以利, 非怵以威, 而三尺童子, 亦知其是者, 此乃國是也.” 조선시대 학자의 문집은 ‘《한국고전종합DB》(https://db.itkc.or.kr)’의 원문과 번역을 참고하였다.

『栗谷先生全書』 卷7, 「辭大司諫兼陳洗滌東西疏」, “況國是之定, 尤不可以口舌爭也.”

『朱熹集』 卷24, 「與陳侍郞書」, “夫所謂國是者, 豈不謂夫順天理· 合人心而天下之所同是者耶?”

같은 책, 卷24, 「與陳侍郞書」, “誠順天理合人心, 則固天下之所同是也, 異論何自而生乎? 若猶未也, 而欲主其偏見, 濟其私心, 彊爲之名, 號曰國是, 假人主之威以戰天下萬口一辭之公論, 吾恐古人所謂德惟一者似不如是,”

『명종실록』 7권, 명종 3년 4월 20일(1548년), “今而不罪, 日月愈久, 則有尾大難掉之患, 而竟致噬臍之悔. 此非臣等之言, 實一國臣民之公論也.”

『광해군일기』 88권, 광해 7년 3월 25일(1615년), “伏願殿下, 勿以人廢言, 而忽天下之公論也.”

『정조실록』 40권, 정조 18년 5월 25일(1794년), “大臣之言, 卽三司之言也; 三司之言, 卽一國之公論.”

『순조실록』 8권, 순조 6년 3월 29일(1806년), “批旨若曰, ‘萬餘章甫之論, 卽國人之公論也.’”

『설문해자』에는 공과 사의 어원에 관한 다음과 같은 해설이 실려 있다. ① “공(公)은 공평한 분배를 뜻한다. 공은 팔(八)과 사(厶)에서 유래한 글자며, 팔(八)은 등진다(背)는 의미이다. 한비자는 ‘사(厶)를 등지는 것이 공(公)이다’라고 하였다.”, ② “사(厶)는 ‘간사함’(姦衺)을 뜻한다. 한비자는 ‘창힐이 문자를 만들 때 스스로를 빙 둘러 에워싼 모양을 사(厶)라고 하였다.’라고 말하였다.” 『說文解字』 卷三, “八部: 公:平分也. 从八从厶. 八猶背也. 韓非曰:背厶為公.”; 『說文解字』 卷十, “厶部: 厶部: 厶: 姦衺也. 韓非曰:「蒼頡作字, 自營為厶」 凡厶之屬皆从厶.” 『설문해자』에는 사(私)에 대한 풀이도 있다. “사(私)는 벼(禾)를 말한다. 화(禾)와 사(厶)에서 발음이 나왔다. 북쪽 지방에서는 벼(禾)의 주인을 이름 하여 사(私)의 주인(主人)이라고 하였다.” 『說文解字』 卷八, “私部: 私 禾也. 从禾厶聲. 北道名禾主人曰 私主人.” 개인의 경작지인 사(厶)에는 벼를 심었을 것이고 벼의 주인이 사(私)이니 사(厶)는 사(私)로 전용되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원문은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https://ctext.org)’을 활용하였다.

『尙書』, 「周官」, “以公滅私, 民其允懷.”

『荀子』, 「君道」, “明分職, 序事業, 材技官能, 莫不治理, 則公道達而私門塞矣, 公義明而私事息矣.” 이 외에도 『순자』 「왕패(王霸)」편에서는 군주가 공정하지 않으면 신하들이 충성을 다하지 않게 된다고 하고 『순자』 「유효(儒效)」편에 따르면 보통 사람은 자기의 뜻이 사적이면서도 남들이 공정하다고 여겨주기를 바라는 사람이고, 작은 선비는 자기 뜻이 사사로움을 참은 뒤에 공정해지는 사람이며, 위대한 선비는 공정함으로 안정되는 사람이다. 그에 따르면 보통 사람은 장인, 농부, 상인이 되고, 작은 선비는 대부와 사(士)가 되며, 위대한 선비는 천자의 삼공(三公)이 된다. 『荀子』, 「王霸」, “人主不公, 人臣不忠也.”; 『荀子』 「儒效」, ‘人論’ 참조.

『左傳』, 「襄公五年」, “君子是以知季文子之忠於公室也: [相三君矣, 而無私積, 可不謂忠乎?]”

『商君書』,「修權」, “今亂世之君臣, 區區然皆擅一國之利, 而管一官之重, 以便其私, 此國之所以危也. 故公私之交, 存亡之本也.” 상앙(商鞅)보다 100년 뒤의 법가 사상가 한비자(韓非子)도 필부들은 사적인 편의들을 도모하고 군주는 공적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사적 편의를 방지하여 공을 세우도록 하는 것이 공적 이익이라고 주장한다. 『韓非子』「八說」, “匹夫有私便, 人主有公利. 不作而養足, 不仕而名顯, 此私便也; 息文學而明法度, 塞私便而一功勞, 此公利也.”

중국 춘추전국 시대를 지나 당나라 시기에는 ‘공’이 법 제도의 공정성으로 인식되고 ‘사’는 군주의 사적 욕망으로 받아들여졌다. 『貞觀政要』, 「公平」, “古稱至公者,蓋謂平恕無私. … 故知君人者,以天下為公.”; 『貞觀政要』, 「求諫」, “自古帝王多任情喜怒, 喜則濫賞無功, 怒則濫殺無罪. 是以天下喪亂, 莫不由此.”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장현근, 앞의 글 (2021), pp.78-80 참조.

『朱子語類』 卷13, 45條, “將天下正大底道理去處置事, 便公, 以自家私意去處之, 便私.” 이와 같은 시각은 정이(程頤)에게서도 보인다. 『二程文集』 卷2, 「答横渠先生定性書」, “夫天地之常, 以其心普萬物而無心; 聖人之常, 以其情順萬事而無情. 故君子之學, 莫若廓然而大公, 物來而順應.”

같은 책, 卷13, 30條, “凡一事便有兩端:是底卽天理之公, 非底乃人欲之私.”

같은 책, 卷6, 104條, “無私以閒之則公, 公則仁. 譬如水, 若一些子礙, 便成兩截, 須是打倂了障塞, 便滔滔地去.”

이는 『맹자집주』,「양혜왕(梁惠王)·하(下)」편에서 “천리를 따라서 천하에 공적으로 하는 것은 성현이 본성을 다하는 것이고, 인욕에 방자해서 일개인에만 사사롭게 하는 것은 중인들이 천리를 멸하는 것이다(循理⽽公於天下者, 聖賢之所以盡其性也, 縱欲⽽私於⼀⼰者, 衆⼈之所以滅其天也).”라는 의미와 같다.

주희의 공론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권향숙(2002), 윤원현(2008), 황금중(2012)의 앞의 글; 이승환, 앞의 책 (2004), pp.172-174 참조.

『退溪先生文集』 卷7, 「進聖學十圖」, 仁說, “公者, 所以體仁, 猶言克己復禮爲仁也. 蓋公則仁, 仁則愛, 孝悌其用也. 而恕, 其施也. 知覺, 乃知之事. … 其言有曰, 克己復禮爲仁, 言能克去己私, 復乎天理, 則此心之體無不在, 而此心之用.”

『宋子大全』 卷67, 「答朴和叔」, “比年熟觀考亭文字, 每於出處, 極有公私之辨, 其意蓋謂自求安逸而無救世之心者, 決是人欲而非天理也.”

성리학에서는 사욕을 억제하고 천리에 일치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가르치며 자연법칙 수준의 공공성을 지향한다. 인간은 사욕을 억제하는 만큼 공공성에 다가가고 공적인 사회인인 군자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공공성과 관련된 유학의 성인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김형찬, 「자아 확대의 두 가지 길 : 유학의 성인관과 근대의 시민관에 대하여」, 『퇴계학보』 145 (2019) 참조.

『현종개수실록』 16권, 현종 8년 2월 19일(1667년), “必有公論者辨之, 臣何敢呶呶自解乎?”

『고종실록』 35권, 고종 34년 1월 13일(1897년), “臧否自有公論, 而非爾等之所可言也.”

이승환, 앞의 책 (2004), p.178 참고. 이승환은 이 책에서 전통 공사관의 근대적 변용을 분석하며 “윤리적 정당성을 획득한 다수의 의견”을 공으로 여겨온 전통시대의 공 관념은 현대사회에서도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전경』, 예시 17절.

조선시대 ‘공사’라는 말은 공적인 일을 뜻하는 말이다. 『세종실록』 13권, 세종 3년 8월 5일(1421년), “무릇 의논의 대상이 될 만한 공사(公事)는 정부(政府)나 여러 조(曹)가 한 장소에서 가부를 회의하여, 서로 논란한 뒤에 계달(啓達)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凡擬議公事, 政府, 諸曹一處會議, 可否相詰啓達, 是固然矣).” 그리고 홍범초는 “公事란 官長이 公的인 일을 公席을 열어 公議에 붙여 공변되게 의결하고 공정하게 집행하며 國利民福을 증진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甑山은 당신의 父祖之國에서 治世의 이상으로 삼았던 일상화된 公事의 깊은 뜻을 취하여 災殃에 싸인 온 人類와 神明을 건지는 새로운 종교의 원리가 되게 하고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하여 公事라는 말 위에 天地 두 글자를 붙인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공사라는 의미에는 공정한 집행이라는 도덕적 의미가 내포된다.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홍범초, 「증산의 천지공사에 나타난 미륵사상 : 증산은 어떻게 전래의 한국미륵사상을 구현하였는가?」, 『한국사상사학』 6 (1994), p.156 참조.

천지공사의 정의에 관한 내용은 차선근, 「한국 종교의 해원사상 연구 : 대순진리회를 중심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 논문, 2021), p.101 참조. 천지공사의 교리적 의의에 관한 내용은 이경원, 「구천상제론의 시각에서 본 천지공사의 실제와 교리적 의의에 관한 연구」, 『대순사상논총』 22 (2014) 참조.

‘천지공정’이란 증산 고유의 용어이다. 조선시대 문헌에서 ‘공정(公庭)’은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이는 ① 군왕의 종묘, ② 조정(朝廷), ③ 공무를 보는 공당(公堂)이나 공판하는 법정(法庭)의 의미 등을 지녔다. 이에 대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 ① 『詩經』 「邶風·簡兮」, “碩人俣俣, 公庭萬舞. 有力如虎, 執轡如組.”; ② 『정조실록』 35권, 정조 16년 5월 26일(1792년), “凡遇節日、望闕、拜表、迎詔等禮, 君臣上下, 皆具朝服, 肅虔將事, 而獨此進京陪臣等, 乃於玉帛會同之際, 只行於外國之私朝, 而旋廢於天子之公庭, 豈非紊亂乖悖之極乎?”; ③ 『정조실록』 35권, 정조 16년 5월 26일(1792년), “至於與之兩造頭面, 核實歸一云云, 有萬萬不成事理者, 當兩造於公庭乎? 當頭面於私室乎?”

『전경』, 예시 30절.

같은 책, 교운 1장 33절.

『대순전경』 초판(4-63)에서 ‘사정(私情)’이라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경』구절의 양상과 의미에 관한 연구로는 고남식, 「강증산 관련 경전의 변이에 대한 고찰 : 천지공사 이전의 내용을 중심으로」, 『종교연구』 50 (2008); 고남식, 「연대기(年代記)로 본 강증산의 생애에 대한 『전경』구절의 양상과 의미 : 『증산천사공사기』와 관련하여」, 『대순사상논총』 44 (2023) 참조.

도통과 도통진경에 대한 논의는 최정락, 「도통진경(道通眞境)에 이르는 두 가지 길 : 대순진리회의 윤리적 수도와 신앙적 수도를 중심으로」, 『대순종학』 1 (2021) 참조.

『전경』, 행록 2장 17절.

같은 책, 권지 2장 38절, 이 일화는 읍참마속(泣斬馬謖)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에 대한 기록은 『三國志』 卷35, 「蜀書, 馬良傳」 참조.

같은 책, 권지 2장 38절.

이 구절에 관한 내용은 강대성, 「전경 성구 : 무한 유사지 불명(無恨有司之不明)」, 『대순회보』 221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19) 참조. 또한 사의 용례와 관련해서는 『전경』에 증산의 명을 어기고 종도 차경석이 사사롭게 일 처리를 한 일화가 등장한다. 증산이 차경석에게 돈을 주면서 “돌아가서 쌀을 팔아 놓으라”고 하였는데 차경석이 그 명을 어기자, 이를 알게 된 증산은 이후로 차경석에게 일을 맡기지 않게 된다. 『전경』, 행록 4장 53절 참조.

『전경』, 교운 2장 41절, “幸於此世 有無量之大道 正吾之心氣 立吾之義理 求吾之心靈 任上帝之任意 洋洋上帝在上 浩浩道主奉命 明明度數 無私至公 引導乎 無量極樂五萬年 淸華之世” 이에 대한 해석은 『대순지침』, p.11을 따랐다.

『전경』에는 “상제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도수로써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치어 물샐틈없이 도수를 짜 놓으셨으니 제 한도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게 되니라.”(예시 16절)라고 적고 있다. 증산은 천지의 도수를 주관하고 천지의 상극 도수를 상생 도수로 바꾼다.(공사 1장 1~3절, 교운 1장 66절, 예시 6절) 우당은 도수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훈시」를 한다. “도는 변한다. 변화가 있어야 조화가 생긴다. 인력(人力)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신명이 만들어준다. 도에서는 도수(度數)라고 하고 사회에서는 운(運)이라 한다.(1988. 12. 5)”, “한 과정을 넘으면 다음 과정이 오는 것을 사회에서는 운이라 하고 우리는 도수라 한다.(1989. 12. 29)” 이와 관련해 이상호는 『대순전경』 초판 서문에서 도수(度數)라는 용어가 “엇더한 狀態를 어느 時期에 이르러 豫定대로 現實케 하는 것 卽 이 時代를 어느 에 엇더한 狀態로 變動하야 推移케 한다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이정립은 『대순철학』에서 “度數란 것은 循序節次 卽프로그람이라는意味이니 玉京에서 그聚合된神明의 總力을發動하야 世界舊秩序의 漸進的解消의프로그람과 新秩序의漸進的生成의 프로그람을 決定하고”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이상호와 이정립도 증산이 만든 우주 법칙이 도수에 따라 세계에 펼쳐지는 것으로 주장한 것이다. 이정립, 『대순철학』 (서울: 대법사편집국, 1947), pp.157-158. 그리고 도수에 관한 최근 선행연구로는 김탁, 「증산과 정산의 도수(度數)사상」, 『대순사상논총』 30 (2018) 참조.

『전경』, 교운 2장 48절.

대순진리회에서 조정산은 강증산 다음의 신격으로 여긴다. 대순진리회 신앙의 대상은 구천상제인 강증산이고 도주 조정산은 구천상제의 명을 받드는 존재이다.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차선근, 「대순진리회 상제관 연구 서설 (Ⅱ) : 15신위와 양위상제를 중심으로」, 『대순사상논총』 23 (2014) pp.274-283 참조.

『대순지침』, p.93.

인도(人道)는 현실 속에서 수행자가 도덕의 실천을 통해 자아의 완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운수(運數)는 우주의 법칙이라고 볼 수 있다. 대순사상에서 후천선경은 천지가 생겨난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것이 아니라 증산의 강세와 천지공사로 인해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수도를 통해 운수를 받는다는 것은 개인이 후천선경에 참여하여 도통을 받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대순지침』에는 “운수를 받는다고들 하나 그것 역시 도를 닦아 도통하는 데에 있느니라.”(p.38)라고 한다. (심사위원 한 분은 성리학의 천리(天理)나 공리(公理) 개념에 윤리적인 의미 이전에 우주론적인 의미가 있다는 점과 대순사상의 운수는 천리나 공리 개념처럼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공적으로 수행된다는 점을 지적해 주셨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연구에서 심도 있게 다룰 예정이다.)

대순진리회 교무부, 「천계탑 : 무사지공(無私至公)」, 『대순회보』 26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1991) 참조.

『전경』, 교법 3장 24절, 우당은 『대순지침』에서 “신명공판(神明公判)이란 운수를 받는 자리에 가서 있는 것이 아니고 수도 과정에서 먼저 받는다”(p.94)라고 훈시한다. 공판(公判)이란 말은 신명이 인간의 잘못을 공평하게 판단한다는 뜻이기에 여기서도 공은 공평성이라는 도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점을 알 수 있다.

『대순전경』 초판, 9-10, “이졔 神明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臨監하야 마음에 먹줄을 잡히여 邪正을 勘定하야 번개불에 달니리니 마음을 발우지 못하고 詐僞를 甘行하는 者는 至氣가 돌 에 心膽이 破裂하고 骨節이 錯遠하리라.”

『대순지침』, p.93.

『대순회보』 1, 「우당 훈시」(1983. 7. 25).

대순진리회 교무부, 『대순진리회요람』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03), p.19.

우당이 언명한 도심과 인심은 성리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주희는 도심을 성명의 바름(性命之正)과 천리의 공(天理之公)에 연결하고 인심을 형기의 사사로움(形氣之私)과 인욕의 사사로움(人欲之私)에 연결한다. 주희에 따르면 도심은 천리(天理)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인심은 형기(形氣)에 뿌리를 둔다. 주목할 점은 주희가 형기지사는 중립적 의미로 사용하고 인욕지사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형기지사는 넓은 의미의 사로, 인욕지사는 좁은 의미의 사로 해석하면서 형기지사가 인욕지사를 포함하는 관계로 보는 것이다. 즉 주희에게 사의 주된 용례는 좁은 의미의 사인 인욕지사와 연결되어 있다. 『朱子語類』 62卷 37條, “問: 或生於形氣之私. 曰: 如飢飽寒煖之類, 皆生於吾身血氣形體, 而他人無與, 所謂私也. 亦未能便是不好, 但不可一向狥之耳.”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황금중, 앞의 글 (2012), pp.238-241 참조.

이에 대해 박병만은 “인심은 인간의 생명 활동과 종족 보존을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의식색과 같은 생리적 욕구이며, 도심은 도덕 실천과 더불어 대순진리회가 지향하는 가치와 이념을 실현하고자 하는 공적 욕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순사상에서는 ‘사심’을 물욕에 의해 일어나는 욕심이며 버려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심은 인심과 같다고 볼 수는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논자는 그의 관점에 동의하고 논의를 전개한다. 이에 관한 내용은 박병만, 앞의 글 (2023), p.166 참조.

『대순지침』, p.19.

같은 책, p.26.

같은 책, p.67.

『대순회보』 8, 「우당 훈시」(1988. 3. 27), “체계를 확립함에 있어서는 임원과 수반 상호 간에 서로의 은의(恩義)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임원들은 수반 도인들이 있음으로써 임원의 위치에 있을 수 있으니 그 은의를 잊지 않아야 하며 항상 마음의 문을 열어 남의 의사를 존중하고 행동 처사를 바르게 함으로써 공(公)과 사(私)를 분명히 행할 때에 수반 도인들로부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심복(心服)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즉, 상호 간에 통심정(通心情)의 자모지정(慈母之情)으로 수반 도인들을 대하여야 합니다.”

『전경』, 교법 3장 29절, 교운 2장 59절 참고.

『대순지침』, p.82.

같은 책, p.84. 이와 관련해 「우당 훈시」(1988. 4. 21)에는 “임원은 편벽됨이 없어야 하고 사(私)가 있어서도 안 된다. 신임을 받도록 노력하고 모든 처사에 있어서 공명정대하게 처신·처사하라. 공명정대하면 불평이 없다. 불공평은 사(私)다.”라는 기록이 있다.

『대순지침』, p.82, 84 참고.

『전경』, 교운 1장 34절, 예시 45절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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