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종교문화 연구와 코딩
종교문화 연구에 코딩을 활용하는 것은 학계에서 여전히 생소하고 도전적인 시도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종교문화 연구는 해석학적 방법론과 질적 연구를 중심으로 발전해왔으며, 연구자의 직관과 통찰에 기반한 심층적 이해를 추구해왔다. 특히 종교현상학의 전통에서는 종교적 체험의 고유성과 환원 불가능성을 강조해왔고, 사회과학적 접근에서도 종교문화의 맥락의존적 특성을 중시해왔다. 이러한 연구 전통에서 디지털 기술과 코딩을 활용한 분석적 접근은 종교 현상의 본질을 왜곡하거나 단순화할 수 있다고 우려할 수 있다. ‘종교는 문화마다 달라서 하나의 일반적 특성을 추출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프로그램화할 수 있겠는가’라는 비판이나 ‘인문현상은 디지털 숫자로 처리될 수 없다’는 반론이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우려는 특히 종교학의 고유한 방법론적 전통에 비추어볼 때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종교학은 오랫동안 ‘거리두기(epoché)’와 ‘현상학적 기술’이라는 방법론적 원칙을 통해 종교 현상의 고유성을 보존하고자 노력해왔다. 또한 각 종교 전통의 내부자적 관점(emic perspective)을 존중하면서도 학문적 객관성을 추구하는 미묘한 균형을 유지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디지털 방법론의 도입은 종교학의 기본적인 연구 원칙들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최근 인공지능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이러한 전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를 요구하고 있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을 상대로 거둔 승리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를 넘어, 인간의 직관과 창의성이 필요한 영역에서도 인공지능이 놀라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후 등장한 인공신경망 기반의 번역 시스템은 언어의 맥락과 뉘앙스를 이해하는 수준에 근접했으며, AI가 그린 그림이 미술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등 예술 창작 영역에서도 혁신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Chat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의 출현은 ‘인간의 직관이나 해석 능력이 아니면 처리할 수 없다’는 전통적 믿음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양적 데이터 처리 능력의 향상을 넘어, 질적인 차원에서의 혁신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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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기술 환경과 연구 동향의 변화는 종교문화 연구 방법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요구한다.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이라는 이름으로 텍스트 마이닝, 네트워크 분석, 데이터 시각화 등 디지털 분석 기법을 인문학 연구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러한 디지털 방법론이 기존의 질적 연구가 포착하지 못했던 새로운 패턴과 관계를 발견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방대한 종교 문헌에서 나타나는 미세한 개념의 변화를 추적하거나, 종교 공동체의 복잡한 상호작용 패턴을 시각화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본 연구는 이러한 학문적 흐름 속에서 종교문화 연구에 코딩을 활용한 새로운 방법론적 가능성을 ‘디지털 종교학’이라는 관점에서 탐색하고자 한다. 여기서 ‘디지털 종교학’은 단순히 디지털 도구를 활용한 종교 연구가 아닌, 디지털 기술과 종교문화 연구의 창의적 융합을 통해 새로운 연구 지평을 열어가는 학문적 시도로 정의될 수 있다. 이는 기존의 질적 연구 방법론을 배제하거나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보완하고 확장하는 방향에서 접근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본 연구는 디지털 방법론이 종교학의 전통적인 연구 원칙들과 어떻게 조화롭게 결합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떠한 새로운 통찰이 가능한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더욱이 현대 사회에서 종교문화는 점차 디지털 환경과 불가분하게 얽혀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온라인 종교 활동이 일상화되었고, 소셜 미디어를 통한 종교적 표현과 소통이 증가하고 있다. ‘랜선 일출’ 영상의 채팅창에서 이루어지는 집단적 기원이나, ‘성지순례’라는 표현을 차용한 온라인 문화 현상은 새로운 형태의 종교성이 디지털 공간에서 출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심형준 외 2023). 이러한 현상들을 적절히 연구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이 필수적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디지털 종교 현상은 종교의 본질과 경계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에도 도전이 되고 있다.
본고는 다음과 같은 구성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먼저 디지털 인문학의 이론적 배경과 주요 연구 동향을 검토하고, 이것이 종교문화 연구 분야에 주는 방법론적 함의를 살펴본다. 이어서 국내외에서 이미 시도된 코딩 기반 종교문화 연구 사례들을 검토하여, 그 성과와 한계를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특히 텍스트 마이닝, 네트워크 분석, 시각화 등 다양한 디지털 방법론이 종교문화 연구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구체적 사례를 통해 살펴볼 것이다.
여기에는 종교 텍스트의 디지털 분석(예: 경전 연구, 종교 담론 분석), 종교 네트워크 연구(예: 종교 공동체의 관계망 분석, 종교 사상의 전파 경로 추적), 종교문화의 시공간적 분석(예: GIS를 활용한 종교 유적 연구, 종교 의례의 시간적 패턴 분석) 등이 포함된다. 또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종교 모델링(religious modeling) 연구의 가능성도 검토한다. 이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종교적 신념과 행동의 역동성을 모델링하는 시도로, 복잡계 이론과 인지종교학의 통찰을 결합한 새로운 연구 방법론이다.
나아가 빅데이터 분석과 AI 기술의 발전이 종교문화 연구에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과 도전과제를 종합적으로 논의한다. 특히 인공지능의 발전이 종교현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종교학의 근본적인 질문들(예: 종교의 보편성과 특수성, 종교적 경험의 본질, 종교와 문화의 관계 등)에 어떤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이를 통해 디지털 기술의 활용이 종교문화 연구의 지평을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지, 그리고 기존의 질적 연구 방법론과 어떻게 생산적인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지를 모색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탐구를 통해 디지털 시대의 종교문화 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연구 패러다임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론적 시도가 될 것이다. 이는 단순한 방법론적 혁신을 넘어, 종교문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보다 풍부하고 다층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Ⅱ. 디지털 인문학과 디지털 종교학
‘디지털 종교학’이라고 하면 생소한 명칭이지만 ‘디지털 인문학’이라는 명칭은 항간에 잘 알려져 있다. 디지털 인문학이라는 큰 범주에서 보면 디지털 종교학도 그리 불가능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디지털 인문학의 하위 범주로 디지털 종교학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인문학이 논의된 지 이미 한참 되었다. 국내에서도 관련 연구 성과가 상당히 축적되었다.1) 디지털 인문학은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방식으로 수행하는 인문학 연구와 교육, 그리고 이와 관계된 창조적인 저작 활동을”을 일컫는다.2) 하나의 분과나 학제적 분과로 규정하기도 하지만 실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학문적인 ‘실천 공동체’ 혹은 ‘운동’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3)
안드레 파체코(André Pacheco)는 디지털 인문학의 학술활동을 <그림 2>4)와 같이 도식화해서 설명한다. 그가 그리는 디지털 인문학은 활용하는 자료, 그 자료를 가공하는 방법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지 기존의 인문학 학술활동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것으로 그려진다. 다만 디지털 기술을 인문 자료에 적용할 때, 그동안 묻지 못했던 질문을 하게 될 수 있다. 그런 차이들은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다.5)
좀 더 구체적으로 이 분야의 주요 연구 활동을 살펴보면, 디지털 리소스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디지털 자료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인문학 자료의 디지털화와 아카이빙, 그리고 DB 구축과 같은 디지털 데이터 구축 활동이 있다. 그리고 인문 자료의 주 형태가 텍스트이다 보니 “텍스트 및 언어 자원의 색인·통계 처리” 작업도 있다. 다음으로 “데이터베이스와 멀티미디어, 그리고 대규모 원시 데이터에서부터 전자적인 방법으로 의미 있는 사실을 찾아내는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 작업이 있으며, 그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시각화(Visualization)” 등의 작업이 있다.6)
20년 전만 하더라도 인문 자료는 그렇게 많이 디지털화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동안 DB 구축 사업이 성과를 착실히 축적하여 이미 연구 환경이 크게 달라져 있다.7) 아울러 동시대의 인문 자료는 디지털 자료로 생산되는 경우가 많은 상황이다(가령 대중에 유행하는 관념은 SNS 데이터가 1차 데이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 힘입어서 데이터 분석 기법을 활용한 인문학 연구작업은 크게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데이터 분석 기법을 적용하기에 적당한 데이터는 빅데이터라 불리는 디지털 자료다. 인간이 일일이 확인하기 불가능한 자료를 컴퓨터를 이용해 그 특성을 파악하고, 그 정보를 활용하여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결과를 내게 된다(물론 항상 보장된 것은 아니지만). 빅데이터는 통상 사이즈가 어마어마하게 큰 것을 말하는데, 정의된 스키마가 있어 데이터 처리가 용이한 정형 데이터와 그 외 질적 특성을 가진 비정형 데이터(텍스트, 오디오, 영상, 이미지 등)로 구분된다.
그런데 인문학 영역에서는 데이터의 절대적 크기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연구를 위해 그동안 다뤄왔던 데이터보다 사이즈가 크고 디지털화가 용이한 자료들이 데이터 분석 방법론을 적용해 다루기에 적당한 자료로 인식되고 있다. 가령 DB화된 역사 자료는 데이터의 절대적 크기로는 빅데이터라 불리기 어렵지만, 사람들이 일일이 자료를 확인해서는 쉽게 파악할 수 없는 크기의 자료라고는 말할 수 있다. 실제로 데이터 분석 기법을 적용한 연구들은 이전의 인문학 연구와는 다른 유의미한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다.8)
최근 연구 사례를 하나 보자. 장재원·정혜윤의 「세르누다의 『현실과 욕망』에 관한 디지털 인문학적 분석 시도」(2022)는 세르누다의 시집 『현실과 욕망(La Realidad y el Deseo)』(1924~1962)을 텍스트 분석 기법을 적용하여 전후기의 차이를 시각화해 보여주고 있다.9) 전기 시집과 후기 시집 사이의 차이는 이미 많은 연구들을 통해서 규명된 바 있다.10) 그러나 그들은 세르누다의 『현실과 욕망』에 대한 “텍스트 마이닝 분석”이 “객관적 지표들에 기반”한 “실증적” 연구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11)
장재원·정혜윤은 『현실과 욕망』에 사용된 어휘의 빈도값(절대, 상대, TF-IDF 값12)), 감성 분석,13) 공기어 분석(co-occurrence analysis)14)을 통해서 세르누다 시의 전후기 특징을 구분해 낸다. 시각화된 정보를 통해서 몇몇 특징은 독자들로 하여금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아래의 그림은 위 논문에서 단어의 빈도를 시각화한 것이다. <그림 3>의 ‘단어 구름’(word cloud)은 한눈에 전후기에 주로 사용된 단어를 분간할 수 있게 해 준다. 감정 분석의 시각화 이미지(<그림 4>)는 긍정적 어휘와 부정적 어휘의 빈도값을 쉽사리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연구는 기존 연구 결과를 ‘가시화해서 구체적으로 확인’한 데 의의가 있고, 새로운 질문과 통찰을 보여준 사례는 아니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이는 저자들도 결론에서 밝히고 있는 바이다. 다만 이러한 연구 방법의 범용성을 생각한다면, 연구 지평을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충분히 그 의의를 적극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인문학자 개인이 긴 시간을 들여 세르누다의 시를 분석해서 얻은 결론과 몇 줄의 코딩으로 분석한 결론이 거의 비슷하게 나왔기 때문에, 이러한 연구 방법이 연구의 효율화(분석 시간의 감소), 연구의 확장(더 많은 작품의 분석)에서 큰 강점이 있으며, ‘새로운 지평’을 만들어 낼 잠재력이 있음을 충분히 보여주는 것 같다.
아울러 다양한 영역의 데이터를 연결해서 어떤 새로운 정보를 추출할 수 있는 인문 자료들도 데이터 분석 기법 적용이 의미 있을 것이된다. 가령 체셔와 우버티는 지도 정보와 환경, 생태, 인문 정보 등을 결합해서 사람들이 세계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15) <그림 5>는 1514~1866년까지 노예 무역의 흐름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이 그림이 “그동안 노예무역을 논할 때 다른 국가들에 가려졌”던 브라질의 존재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한다.16)
디지털 인문학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분야는 인문학 분야 중에서도 언어학, 문학, 역사학이다. 이 분야들은 연구 자료를 디지털화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그 덕분에 컴퓨터를 활용한 분석도 어렵지 않다. 그래서 이러한 분야들이 디지털 인문학을 선도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한국 디지털 인문학 연구 성과들도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국내 디지털 인문학은 자료의 디지털화와 이를 활용한 기초적인 데이터 분석, 역사 및 문화컨텐츠 디지털화, 디지털 아카이빙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디지털 자료를 기반으로 한 확장된 연구의 경우는 아직 걸음마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평가된다.17)
해외 디지털 인문학 연구 동향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는 토픽 빈도값 시계열 그래프를 보면, 해외 연구 트렌드는 국내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18)정유경(2020)이 다룬 여러 토픽 중에서 국내 및 해외 디지털 인문학 연구 경향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토픽만을 뽑아서 보면 <그림 6>과 <그림 7>과 같다. 해외의 경우 디지털 아카이빙에 대한 관심은 낮아졌지만, 말뭉치(corpus), 소셜 미디어(SNS), 문화에 대한 연구들이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국내는 ‘온라인콘텐츠’와 ‘4차 산업혁명’이란 키워드가 부상하고 있어 해외와 차이를 보인다.
‘디지털 종교학’과 같은 작업이 ‘종교문화’를 다루려 한다는 점에서 해외 디지털 인문학의 최신 트렌드와 부합하는 면이 있다. 정유경(2020)을 통해서 볼 때 국내 디지털 인문학 분야에서도 머지않아 문화 연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리라 예상해 볼 수 있다.
이 이름은 한국 종교학계에서 본격적으로 관련 논의들이 전개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이미 이 명칭에 걸맞은 학술적 결과물들이 나오고 있다.19) 사실 국내에서도 단지 ‘디지털 종교학’이라는 이름으로 규정되지 않았을 뿐, 어느 정도 해당 명칭에 부합하는 학술적 작업은 시도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20)
이런 새로운 분과의 명칭이 제시될 때 응당 ‘영어로 어떻게 쓰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디지털 인문학’은 흔히 ‘Digital Humanities(DH)’로 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비슷한 조어 방식으로 생각할 때, ‘Digital Religious Studies’ 혹은 ‘Digital Study of Religion’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경우에 ‘Digital Religion Studies’가 사용되는 예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다소 결이 다른 명칭으로 보인다.
최근 ‘디지털 종교’라는 주제가 서구에서 떠오르고 있는데, ‘Digital Religion Studies’는 그런 주제의 연구를 말하는 것이다. ‘디지털 종교’에 대한 연구와 ‘디지털 종교학’은 어떻게 구분되어야 하는지도 생각해 봐야 할 듯하다. 그에 앞서 ‘디지털 종교학’의 영어 표기 사례들을 일별해 보자면, 외국에서는 ‘Digital Humanities in Religious Studies’, ‘Digital Humanities and Religious Studies’ 혹은 ‘Digital Study of Religion’ 정도가 쓰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21)
‘디저털 종교학’, ‘디지털 종교’, ‘디지털 종교 연구’는 구분될 필요가 있다. ‘디지털 종교’는 비교적 쉽게 어떤 것인지 생각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한 종교 활동(웹, 모바일 등)을 가리킨다. 그래서 ‘인터넷 종교’라는 명칭도 사용된다. 이런 현상에 대한 연구를 ‘디지털 종교 연구’라고 할 수 있겠다. 디지털 인문학이나 디지털 종교학은 방법론에 초점이 맞춰진 개념이다. 물론 자료의 디지털화 작업도 넓은 의미에서 해당 분야의 작업으로 인정되고 있다. 다만 자료의 디지털화도 궁극적으로 데이터 분석 기법을 적용하기 위한 것임을 고려하면 방법론에 더 방점이 찍힌다고 하겠다.
그렇기에 ‘디지털 종교’에 대한 연구가 자동적으로 ‘디지털 종교학’ 연구가 되는 것은 아니라 하겠다. 디지털 종교 연구에 사용될 수 있는 방법론은 다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구분이 엄밀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는다. 디지털 종교학이라는 명칭이 자리 잡게 된다면 ‘디지털 종교 연구’도 그 범주에 포괄해서 논의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코딩을 이용한 종교문화 연구’라는 측면에서 ‘종교 모델링(시뮬레이션)’22) 연구도 디지털 종교학에 포함시켜서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시각은 다분히 ‘computational study’를 ‘digital study’와 구분하지 않는 것이다. 가령 전산 인문학(Computational Humanities, CH)과 디지털 인문학을 구분하는 시각에서는 전자를 데이터 분석 기법을 활용한 인문학 연구, 후자를 데이터 디지털화 및 DB화에 치중하는 분야로 구분한다. 즉 CH는 컴퓨터 사이언스에 가깝게 DH는 인문학에 가깝게 위치시켜서 구분한다.23) 이런 시각에서는 종교 모델링(시뮬레이션)은 ‘전산(계산) 종교학’으로 불리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다만 필자는 CH와 DH를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는 시각에서 시뮬레이션 연구도 디지털 종교학라는 이름 하에 다루고자 한다.
디지털 인문학이라는 전례에 비춰 보면 디지털 종교학은 일단 다음과 같은 연구 활동 영역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그림 8> 참고). 데이터 디지털화, DB구축, 텍스트/자연어 분석, 네트워크 분석, 이미지 분석, 융합 데이터 분석, 시각화, 모델링 등이 그것이다.
한국 종교학계에서 ‘디지털 종교학’이라는 분과 명칭이 제시된 적은 아직까지 없었다. 그러나 디지털 인문학이 유행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고려해 보면, 이 분과의 등장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미 비슷한 연구 작업들은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몇몇 유형, 가령 텍스트 분석의 경우는 방법이 용이하기 때문에 쉽게 ‘디지털 종교문화 연구’에 적용할 수 있다.24)
디지털 종교학은 단순히 디지털 도구를 종교 연구에 활용하는 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연구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마치 디지털 인문학이 자료의 디지털화나 도구적 활용을 넘어 새로운 연구 질문과 방법론을 제시하듯이, 디지털 종교학 또한 종교현상에 대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텍스트 마이닝을 통한 종교 문헌 분석은 단순히 기존 분석을 자동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연구자가 직관적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거시적 패턴과 숨겨진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런 사례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령 대규모 종교 텍스트에서 시대별 개념 변화와 사상의 흐름을 추적하거나, 서로 다른 종교 전통 간의 영향 관계를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시각화할 수 있다면, 이는 기존 연구 방법으로는 시도하기 어려운 새로운 차원의 분석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더욱이 디지털 종교학은 현대 종교문화의 실시간 변동을 포착하고 분석할 수 있는 혁신적 방법론을 제공한다. 소셜 미디어상의 종교적 담론 분석, 온라인 상의 종교적 활동 패턴 연구, 종교적 실천의 디지털 변형 과정 추적 등은 현대 종교문화 현상의 역동적 측면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는 단순한 연구 도구의 현대화가 아닌, 종교문화 연구의 지평을 근본적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 종교학은 방법론적 혁신을 통해 종교문화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 방식을 제시하고, 기존에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연구 주제를 다룰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는 종교학 연구의 외연을 확장할 뿐만 아니라, 종교문화 현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 자체를 심화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Ⅲ. ‘디지털 종교학’의 맹아
종교학이 방법론적인 면에서 독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언어학·역사학 연구 방법론은 용이하게 종교 연구에 적용이 가능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언어학, 문학 분야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뭉치 분석일 것이다. 이런 식의 연구에 대해서는 개략적인 아이디어를 방원일이 제시한 바 있다.25) 그는 캔트웰 스미스의 작업과 구글 앤그램(Ngram)을 연결지어 설명한 바 있다. 그 당시에는 앤그램을 활용한 언어 연구가 ‘빅데이터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던 시기였다.26)
위의 아이디어는 굳이 앤그램을 사용하지 않아도 ‘종교 개념사’ 연구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코딩을 이용해 DB 자료를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최근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https://nl.go.kr/newspaper)에 DB화된 신문 기사 자료에서 1883년에서 1910년 한일합방 이전까지 시기의 ‘종교’ 용례27)를 찾아서 이를 검토해 보았다.28) 전처리 후 검토해야 할 기사는 약 1,200건 정도였다. 이 경우 파이썬을 활용하여 텍스트 분석을 하면 용이하게 ‘종교’라는 단어가 쓰인 독특한 양상을 비교적 단시간에 분석해 볼 수 있다. 이 연구는 한일합방 이전 근대 신문기사에서 ‘종교’라는 용어가 사용된 맥락을 추적해서 개념 사용 용례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한 작업이었다. 이 같은 개념사 연구의 경우도 디지털 자료를 활용하고, 텍스트 분석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디지털 종교학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종교학으로 포괄될 수 있는 연구에 ‘빅데이터’ 혹은 ‘빅데이터 분석기법’으로 ‘종교’를 다루려 한 연구들이 포함된다.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kr)에서 ‘빅데이터’와 ‘종교’라는 키워드로 검색(국내학술논문 범위)해 보면 다음과 같은 논문들을 찾아볼 수 있다.29)
다만 3번 연구의 경우는 ‘빅데이터’가 제목에 등장하지만 단지 ‘종교적 지식’을 수식하는 말로 쓰고 있어 디지털 종교학 연구에 포괄하기 어려워 보인다. 4번과 5번의 경우도 ‘빅데이터’에 대해서 언급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1과 11은 DB나 아카이브 구축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수준이다. 직접 DB 구축 등을 시도한 작업은 아니지만 다루는 주제상 디지털 종교학 연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으나 시론적 논의에 머물고 있다. 2, 13, 14는 기구축 데이터 혹은 검색 툴을 이용하여 데이터를 수집하고 해당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가공 데이터를 활용한 사례이다. 6~10, 12, 14는 텍스트 마이닝, 텍스트 분석기법을 적용한 연구들이다.
2000년대 초반에 ‘계산 종교학’30)이라는 이름의 기획이 제시된 바 있고,31) 이와 관련된 연구들이 출판되었다.32) 인공지능, 인지과학 이론의 발전에 힘입어 인간의 종교적 삶에 대한 모델링(시뮬레이션)을 제안한 것이었다. 유권종과 박충식 등의 연구는 유교의 도덕 심성론(퇴계의 심성론)을 “인공지능 이론과 관점에 의해 현대화된 도덕 심성모델”을 만들어서 “그 모델에 입각하여 예 교육 효용이 발생하는 심(心)의 원리와 작용을 설명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유치원 아동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예 교육 결과의 경험적 자료를 기초로 예 교육 시뮬레이션”을 한다.33)
이 기획은 ‘종교적 삶도 계산될 수 있다’는 주장(코딩한 시뮬레이션을 작동시켜 이론/모델 검증)이었다. 그러나 종교 연구자들에게는 다소 황당한 주장으로 비춰지며 외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종교 모델링은 지금에 와서 외면하기 어려운 연구 분야로 부상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진화인지적 종교 이론(바꿔 말하면, 자연과학적 종교 이론)의 발달이 자리하고 있다. 현실과 시뮬레이션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코드를 통해서 구현할 수 있으면서 현실에 대한 설명력을 갖는 과학적 이론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비로소 시뮬레이션 검증이 의미를 갖게 된다.
선구적인 종교 모델링 연구라면 윌리엄 심스 베인브릿지(William Sims Bainbridge)의 God from the Machine을 꼽을 수 있다(Bainbridge 2006). 베인브릿지의 연구를 소개하는 국내 논문은 「종교적 인공지능 시뮬레이션 : 스타크-베인브릿지와 뒤르켐의 종교적 인지 모형 비교연구」가 유일해 보인다.34) 최근 미국에서는 템플턴 재단의 지원을 받아 Modeling Religion Project가 시도된 바 있다(프로젝트 홈페이지 : https://www.ibcsr.org).
이런 연구들은 역사·문화 자료로 검증하기 어려운 ‘종교 활동의 이점’ 혹은 그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수행한다.35) 사람들의 행동 전략을 최대한 최근의 과학적 이론에 입각해서 코딩하여 다양한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이 기대한(가설의) 효과를 발휘하는지 시뮬레이션을 통해 살펴보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종교적 극단주의를 보이는 경향이 있는지를 검토해 볼 수 있다.36) 종교를 적응 시스템으로 볼 때, “정당성의 위기에 대응하여 사회적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 종교를 포함한 특정 유형의 사회 시스템의 회복력에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37) 아울러 종교가 사라지는 사회의 특성을 CREDs 이론(credibility enhancing displays theory)에 기반한 시뮬레이션 연구가 시도되기도 했다.38)
이러한 연구들의 검토를 통해 우리는 디지털 종교학의 잠재력과 방법론적 혁신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들 연구가 단순한 디지털 도구의 활용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텍스트 기반 분석 연구들은 방대한 종교 문헌에서 인간 연구자가 직관적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거시적 패턴과 숨겨진 연관성을 발견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장재원·정혜윤의 연구가 보여주듯, 감성 분석과 공기어 분석은 기존의 질적 연구 방법을 보완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더욱이 심형준의 ‘종교’ 개념 연구는 개념의 역사적 변천을 실증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온라인 종교문화 연구의 경우, 현대 종교성의 새로운 형태를 실시간으로 포착하고 분석할 수 있는 혁신적 방법론을 보여준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종교적 실천의 디지털 변형 과정을 추적하고, 현대인의 종교성이 어떻게 표현되고 변화하는지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도전적이면서도 큰 잠재력을 지닌 영역은 종교 모델링 연구다. 유권종·박충식의 시도가 보여주듯,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종교 현상에 대한 이론적 모델을 검증하고 새로운 가설을 생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는 종교학 연구의 과학적 엄밀성을 높이는 동시에, 복잡한 종교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 방식을 제공한다.
이러한 연구 성과들은 디지털 종교학이 단순한 연구 도구의 현대화가 아닌, 종교문화 연구의 지평을 근본적으로 확장하는 새로운 학문 분야로 발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데이터에 기반한 실증적 분석과 전통적인 질적 연구 방법의 창의적 결합은, 종교(문화) 현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한층 심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Ⅳ. 디지털 종교학의 가능성
종교 연구의 진정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 호들갑스럽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연구 트렌드가 앞으로 상당 기간 주목을 받고, 연구 방법론의 주류로 자리매김하리라는 예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바이기도 하다. 여기에서는 이 분야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검토가 이 분야에 대한 과도한 기대나 유행에 무비판적으로 편승하지 않고 연구의 중심을 잡아 나갈 수 있는 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그리고 유력한 연구 범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개념사 연구와 그 확장 연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개념어 변화, 활용양상, 태도/감정 분석이 시도될 수 있을 것이다. 다뤄질 수 있는 개념은 ‘종교’만이 아니라 사이비, 이단, 미신, 귀신, 악마, 천국, 지옥 등등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작업은 지금 동시대의 여러 디지털 자료를 활용해서 다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종교’ 개념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학자들이 전개하는 종교 개념에 국한되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종교 개념을 논의의 대상으로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종교사 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이 좋은 참고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경전 분석 작업이 쉽게 예상해 볼 수 있는 이 분야의 연구일 것이다. 이미 디지털 인문학 분야에서 관련 시도가 있기도 했다.39) 해외에서도 관련 연구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40)
예를 들어, 성소 위치와 지리 정보, 시간에 따른 변화를 추적하는 연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종교의 변화나 시대 변천에 따른 종교 지도의 변화상을 그려보는 작업이 될 것이고, 종교의 기능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예시하는 연구로는 「인터넷 세대 청소년 주술 ‘글자스킬’의 믿음 구조와 실천」이나 「한국의 온라인 종교문화에 대한 시론적 연구 : 온라인 종교활동과 종교적 표현상의 특이 사례를 중심으로」, 「성지 밈(聖地 meme) 소원 댓글의 유행과 온라인 종교문화상의 함의 : ‘쿠키 닷컴’ 게시물 댓글 텍스트 분석을 중심으로」, 「‘갓생살기’라는 의례화된 행동의 출현과 변화, 그리고 그 시사점」을 꼽을 수 있다.41) 소위 ‘디지털 종교’에 대한 연구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디지털 종교는 기성 종교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주로 ‘미신’으로 포착되긴 하지만 인지종교학적 관점에서 보면 ‘자연 종교’적 행동 양식으로 볼 수 있다. 가령 수능 부적으로서 ‘수능 포카’ 같은 유행을 추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디지털 종교’ 연구 주제 중의 하나이지만, 따로 구분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미디어 기반 행동 방식의 변화와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구텐베르크의 인쇄 혁명이 만인에게 경전에 대한 접근성을 높였고, 새로운 종교 운동에 활력을 불러왔다.
이런 측면에서 ‘인터넷 종교성’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온라인 환경에서 사람들의 종교적 관념과 실천은 어떤 경향을 가지고 변화하는가 하는 의문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42) 그 경향성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자들이 ‘쉬운 종교’화(化) 경향으로 포착하고 있긴 하다. 그 경향성은 과연 사회에 어떤 파급 효과를 가져올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변동 문제에서 종교 활동 양상 변화의 실시간 모니터링 가능성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어떤 이론적 기초도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if-스토리’일 따름이지만, 온라인 종교 활동의 특성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다면 실시간 변동(사람들의 종교적 감정 표현, 자연종교적 실천 양상)을 추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어떤 집단적 행동 양상의 선행 혹은 후행 지표로 판별될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종교 현상은 복잡한 문화 현상이기 때문에 사실 심리학·사회학 등의 방법론은 물론 게임 이론에 근거한 실험이나 현대의 빅데이터를 활용한 연구라 할지라도 인과적 효과를 규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종교적 행동을 시뮬레이션 해 보는 것은 대규모 행위자 집단의 행동 효과라는, 현실에서 실제로 측정할 수 없는 문제를 어느 정도 다룰 수 있게 해 줄 것이다.43)
위의 연구 분야들은 모두 한국 종교 연구에 적용할 수 있다. 방법론의 특성상 특정 지역 연구에만 적합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관념적 상상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한국인들의 생각’을 추출하는 데에는 이러한 종교(문화) 연구 접근법이 큰 강점을 보이라라 여겨진다. 물론 여론조사 기법으로 이를 어느 정도 추정하지만, 자기 보고형 조사가 현실을 다소 왜곡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되는 문제이기도 하다.44)
이러한 다양한 연구 가능성들은 디지털 종교학이 지닌 두 가지 중요한 혁신적 특성을 보여준다. 하나는 기존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연구 영역을 열어준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 연구 방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특히 실시간 종교문화 변동 연구는 디지털 종교학만의 독특한 강점을 잘 보여주는 영역이다. 전통적인 종교학 연구가 이미 발생한 현상을 사후적으로 분석하는 데 주력했다면, 디지털 방법론은 현재 진행되는 종교문화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포착하고 분석할 수 있게 한다. 온라인 종교 활동의 패턴 분석이나 소셜 미디어상의 종교적 담론 변화 추적은 이러한 가능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종교 모델링 연구의 경우, 종교현상에 대한 이론적 가설을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복잡한 종교적 행위와 신념 체계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함으로써, 우리는 종교문화의 동역학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종교학 연구의 과학적 엄밀성을 높이는 동시에, 종교현상에 대한 예측적 이해의 가능성도 열어준다.
더욱이 디지털 종교학은 학제간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 텍스트 분석, 네트워크 분석, 시각화 등의 방법론은 종교학과 인접 분야들을 창의적으로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종교현상에 대한 더욱 풍부하고 다층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가능성들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여러 과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 연구자들의 디지털 리터러시 향상, 적절한 연구 윤리의 정립, 방법론적 엄밀성의 확보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들은 디지털 종교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가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디지털 종교학은 종교현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는 단순히 연구 방법의 현대화를 넘어, 종교문화 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종교학의 학문적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Ⅴ. 결론
디지털 종교학은 지역 연구보다 종교에 관한 일반이론 수립 및 검증 부분에서 획기적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일반이론의 수립과 검증을 할 수 있는 수단(특히 종교 모델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데이터 과학의 접목을 통해서 그동안 규명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연구 질문들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종교학은 정보산업화 사회가 고도화되어 가며 종교학과 같은 학문의 시대적 적합성이 떨어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반전 카드’가 될 수 있다. 일반이론에 대한 탐색은 현실에 적용하고 구현할 수 있는 이론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또 실시간 종교문화 변동 측정 가능성도 앞서서 언급한 바 있는데, 산업적 활용 가능성이 점쳐지는 응용 이론 수립의 길이 열릴 수 있다. 물론 측정 방법론 등을 수립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있긴 하다. 이 부분에서 성과를 얻게 된다면, 정보산업화 사회에서 종교(문화) 연구 분야의 지속 가능한 학문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그림 11>).
아울러 유의사항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데이터 분석툴이 종교연구 분야에서 ‘전가의 보도’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연구자들이 이를 유효한 방법론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제법 많기 때문이다. 특히 데이터의 특성이 왜곡될 가능성을 통계학적 수준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 근원적인 문제라고 하겠다(예를 들어, ‘심슨의 역설’이나 ‘통계의 함정’). 분석툴이 유효하게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 특성, 해석의 학술적 한계 등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 사전지식이 요구된다. 단순히 코딩 스킬과 데이터 분석툴을 다루는 스킬을 배우는 것만으로 가능하지 않고 통계학적 지식이 요구된다.45)
인문학 연구자들에게는 이런 소양을 갖추는 문제가 이 분야의 큰 진입 장벽이 될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이를 우회할 수 있는 길이 없지 않다. 바로 그런 전문 지식을 획득한 연구자들과 협업을 통해서 연구를 수행하는 방법이다. 이 분야의 연구들이 ‘공동 연구’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그만큼 높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도메인 지식’(연구 분야의 전문지식)이 데이터 분석에서 주목되고 있는 추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데이터 과학자와 인문학자(+종교학자)의 공동 연구는 가능할 뿐 아니라 권장될 만한 것이다.46)
마지막으로 이러한 가능성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연구자 양성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디지털 종교학 연구에 대한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종교학 분야의 커리큘럼에 관련 교과를 반영하여 인재 양성에서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