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현대 사회는 급속한 발전과 성장 속에서 물질적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누리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하고 있다. 빈부 격차의 심화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과 열등감, 정신적 가치의 경시와 물질적 가치의 우선시, 개인 및 집단의 이기주의, 그리고 생명 경시 풍조와 같은 사회적 병폐는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보편화는 정보의 과잉 속에서 진실을 분별하기 어렵게 만들었으며, 개인정보 보호의 취약성, 스팸(spam)과 피싱(phishing)의 만연은 현대인의 심리적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한 물질적 성취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심각한 윤리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양심을 바르게 지키며 도덕성을 유지하는 일은 점차 더 어려워질 것이다.
또한, 2020년 2월 이후 한국을 비롯한 다수의 국가들은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으로 인해 사회 전반에 걸친 심대한 변화를 겪었으며, 이는 단순한 의학적 문제를 넘어 생활양식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종교학계 역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도래에 따라, 온라인 종교활동의 전개 방안, 종교 교육과 의료·복지사업의 역할, 치병과 치유에 새로운 논의, 그리고 윤리적·도덕적 문제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급증하였다. 아울러,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러시아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하마스 간의 분쟁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측면에서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동시에 전 지구적 기상이변과 자연재해로 인한 대규모 인명 피해가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와 같은 대규모 사건들 외에도, 현대인은 일상 속에서 무한 경쟁의 시대적 압박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으며, 이는 심리적·정서적 안정성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자괴감, 상실감, 소외감, 우울감, 부적응, 그리고 방향성 상실 등으로 대표되는 심리적 고통은 그 어느 때보다도 깊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가정조차 그 본연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해지면서, 개인의 삶은 전반적으로 피폐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만성 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인구는 급증하고 있으며, 이는 사회 전체의 심리적 건강에 중대한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여전히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로 남아 있다. 이에 대응하여, 정부는 2027년까지 100만 명에게 심리상담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마음 건강을 일상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전(全)주기적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10년 내 자살률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단순히 현대의학의 발전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비록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의료 분야에서 불치병과 난치병의 치료가 가능해지며 평균 수명이 연장되는 등 상당한 성과를 이루었으나, 모든 질병을 완전히 치료할 수 있는 수준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의학을 과학으로 정의하지만, 이는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없다. 의학은 과학적 연구 방법의 도입으로 큰 발전을 이루었으나, 의학을 단순히 과학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그 본질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의학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필수적이며, 이는 인체에서 발생하는 과학적 현상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적 요소, 인간관계, 그리고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의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히포크라테스에 이르기까지, 의학의 기원은 인간을 이해하려는 철학적 토대에서 출발했으며, 이는 의학이 인문학적 기반에서 발전해 온 학문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 전 세계의 의과대학에서도 인문학적 교육의 중요성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1)
동양의학의 경우,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서문에서 세 가지 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방대한 중국 의서를 한 권으로 집대성하는 것, 둘째, 우리나라에서 많이 생산되는 향약(약초)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 셋째, 삶의 수양(修養)을 약물이나 침 치료보다 우위에 두어 신체와 정신의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세 번째 요지인 삶의 수양으로, 치유의 관점에서 수양도 의학의 중요한 영역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양생(養生)’을 치유의 근본으로 삼으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2)
이와 같은 맥락에서 종교 역시 의학사상에 대한 탐구의 중요한 대상으로 간주된다.3) 최종성(2001)은 인간이 겪는 고통 중 가장 보편적인 문제인 질병에 무관심한 종교는 대중으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얻기 어렵다고 지적하였다.4) 따라서 대부분의 종교는 치병과 치유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이를 실천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러한 노력들은 다음 세 가지 이유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첫째, 종교적 치병과 치유에 관한 학술적 연구와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신종교 중 하나인 원불교는 2010년 인문한국 지원 사업에 선정된 후, 2011년 1월 원광대학교에 마음인문학연구소를 설립하고, 현재까지 마음인문학 학술총서를 발간해오고 있다. 또한 원불교 100주년과 원광대학교 개교 70주년을 기념하여, 2016년 2월 ‘근현대 한국 신종교운동에 나타난 치유와 통합’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으며, 이 자리에서 원불교, 대순진리회, 동학, 대종교, 통일교 등 여러 신종교가 참여하여 종교의 치유적 역할에 대해 논의하였다.
둘째, 각 종교는 그 설립 이념에 따라 병원을 운영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순진리회를 예로 들면, 1998년 사회복지사업의 일환으로 분당제생병원5)을 설립하였으며, ‘구제창생(救濟蒼生)·해원상생(解冤相生)·무병사회(無病社會)’라는 비전을 의료사업을 통해 실현해 나가고 있다. 또한 동두천제생병원과 고성제생병원의 개원을 위해서도 지속적으로 힘쓰고 있다.
셋째, 종교 구성원들이 교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실천 수행을 통해 개인의 심신을 건강을 회복하고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실천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가족과 지역사회 전반에 선한 영향을 미치며, 종교인으로서의 역할을 더욱 견고히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종교에서의 치병·치유에 관한 학술적 연구 및 활동의 일환으로, 대순진리회의 주요 경전인 『전경』에 나타난 치병의 사례들을 발췌하여 치유 방법에 따라 유형별로 분류하고 분석할 것이다. 또한, 치병의 원리를 고찰하고 그에 따른 치유적 함의를 탐구하며, 대순사상에서 바라본 치병·치유의 의미와 그 가치를 통해 치유적 실천 수행의 당위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대순진리회의 치병과 치유에 관한 선행연구로는 고남식(1999/2022)6), 차선근(2016)7), 김영주(2017)8), 까이젠민·리우하오란(2020)9) 등의 연구가 수행되었다.10) 본 연구는 이러한 치병과 치유를 주요 주제로 삼아 전반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먼저, 고남식(1999)은 천하개병(天下皆病)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유도(有道)의 확립과 그 방법을 탐구하였다. 안심(安心)·안신(安身)이라는 개념에 내포된 ‘안(安)’의 의미를 고찰하며, 천하의 질병 원인을 음양(陰陽)의 불균형과 신인(神人)의 부조화로 인한 인계(人界)에서의 윤리도덕의 부재(無忠·無孝·無烈)와 관련시켰다. 또한, 증산이 호생의 덕과 인간 생명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치병을 실천했으며, 천하개병(天下皆病)의 상황 속에서 도(有道)를 얻으면 무도(無道)로 인해 발생한 대병(大病)과 소병(小病) 모두에 효과가 있으며, 안심(安心)과 안신(安身)이 대병의 치료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하였다.
차선근(2016)은 대순진리회의 의학사상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였다. ① 『전경』의 「행록」 5장 38절의 병세문을 중심으로 한 해석, ② 병겁 이전 시대의 인간 개체가 겪는 생물학적 질병에 대한 고찰이다. 대순진리회의 병인론11)과 치유론을 분석하고, 이를 무속과 불교 천태종의 의학사상과 비교하여 상관성을 밝히고자 하였다. 결론적으로, 대순진리회에서 설명하는 병인은 구천상제12)를 공경하고, 참회와 마음을 다스리는 등의 수행을 통해 덕화를 입음으로써 예방하거나 제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대순진리회의 치유론은 수행에서 그 본질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김영주(2017)는 치병보다는 치유에 중점을 두어, 한국 신종교의 치유와 통합이라는 큰 틀에서 대순진리회의 ‘치유와 화합’에 대한 입장을 분석하였다. 김영주는 크게 두 가지로 주제를 다루었는데, ① 종교적 관점에서 치유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② 사회화합과 관련하여 치유가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에 대한 고찰이다. 대순진리회의 치유 프로그램으로서 경전 강독, 이타행, 수련 등 다양한 수행 방법을 제시하며, 사회화합을 위한 가정화목운동의 필요성과 실천 방안을 논의하였다.
에드워드 아이런(2018)은 『전경』의 「제생」편에 나타난 치유 일화를 장소, 요청자, 환자, 증상, 치료, 확인의 여섯 요소로 분석하고, 증산의 치유 방법이 한의학, 민간요법, 무속이 자연스럽게 혼합된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까이젠민·리우하오란(2020)은 ‘제생의세’의 의료사상을 대순진리회의 『전경』에 담긴 핵심 사상으로 보며, 개인 치유뿐만 아니라 사회적 치유의 의미도 강조하였다. 이들은 도교 경전 『도인경』의 ‘제세도인’ 사상과 비교하여 ‘제생의세’의 특징을 밝히고자 하였다.
고남식(2022)은 『전경』 「제생」편의 구절을 네 가지 양상으로 구분하였다: 치병을 통한 제생, 자연재해로부터의 제생, 인간 상호 간 갈등의 화해를 통한 제생, 인간의 자성적 수행에 의한 지혜 계발을 통한 제생. 그는 이러한 구분을 『전경』의 다른 편에 적용하여 제생의 의미를 확장하고, 『대순전경』의 내용과 비교하였다.
이러한 선행연구들의 기여를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본 연구는 『전경』에서 치병과 치유에 관한 모든 내용을 포괄적으로 발췌하고, 이를 보다 세분화하여 그 특징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치병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례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치유적 함의를 명확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기존의 분류 방식에 그치지 않고 더 심도 있는 분석을 통해 새로운 연구적 관점을 제시할 필요성이 있다. 이에 따라 Ⅱ장에서는 고남식, 차선근, 에드워드 아이런의 분류 방식을 보완하고, 『전경』에 나타난 치병의 유형과 그 특징을 새롭게 조명할 것이다. Ⅲ장에서는 치병의 원리를 중심으로 치유적 함의를 크게 두 가지 영역, 즉 천지공사로서의 치유와 실천 수행으로서의 치유로 나누어 재해석할 것이다. 다시 말해, 대순진리회의 경전인 『전경』에 나타난 치병 내러티브를 유형별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증산이 천·지·인 삼계를 치유하고자 한 의미와 인간의 올바른 수행이 지니는 치유적 중요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천·지·인 삼계의 치유와 회복의 과정은 궁극적으로 대순진리회의 종교적 목적 달성을 위한 실천과 부합하며, 이를 통해 대순진리회 수도인의 치유적 실천 수행이 지닌 당위성과 의의를 더욱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Ⅱ. 『전경』에 나타난 치병의 유형과 그 특징
대순진리회의 경전인 『전경』을 분석해보면, 치병과 관련된 구절이 다수 존재하며, 특히 「제생」편의 대부분이 치병에 관한 서사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이 치병 내러티브를 살펴보면, 신체적 질병, 정신적 고통, 도덕적 문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치병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면밀히 분석함으로써, 대순사상의 관점에서 치병을 이해하는 방식을 통찰할 수 있을 것이다.
고남식(1999)은 「제생」편에 한정하여 치병의 사례를 <제생 방법의 분류>13)와 <전경 제생편 치병사례>로 정리하였다. 차선근(2016)은 증산이 병자를 치료하기 시작한 시점을 1902년 전주 화정동(花亭洞)으로 보고, 이때 그는 약재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며, 이후에도 독특한 방식으로 병자를 치료해왔음을 강조하였다. 증산이 직접적으로 병자를 치료한 사례와 직접 치료하지는 않았으나 그에게 의탁하여 치유된 사례를 포함하여 총 49건으로 정리하였으며, 이를 <증산의 치병 방법 분류표>로 체계화하였다. 차선근은 A유형을 약재와 무관한 독특한 처방에 의한 치병으로, B유형을 약재나 음식을 활용한 치병으로 구분하며, 질병 치유 방식이 일관되지 않고 예측하기 어려운 점이 특징이라고 하였다. 또한, 병겁(病劫)이 닥치기 이전 시대의 생물학적 질병에 대한 대순진리회의 치유책은 상제인 증산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덕화를 입고자 발원하고 참회하며, 심신을 안정시키는 수행에 매진하는 것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아울러, 유효적절한 약재 사용 및 천상의 문명을 본뜬 현대과학적 치료 기술의 병행도 언급하였다.14)
이러한 선행연구들의 결론에 대체로 공감하지만, 고남식(1999)의 연구는 「제생」편에 한정된 사례만을 표로 정리하였으며, 차선근(2016)은 『전경』 전체에서 발췌한 사례를 표로 정리하였으나, 증산이 직접적으로 치료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교법」 1-40, 1-43, 3-12와 「공사」 1-15의 구절은 제외하였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증산이 명확한 치료 행위는 하지 않았더라도 병자를 말로 깨우친 후 병이 호전된 경우를 치병 사례로 포함하여, 이후에 제시할 <표 1>에는 『전경』에 나타난 치병의 사례를 총 54건으로 정리하고, 치료 방법을 최대한 세분화하여 8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자 한다. 이에 따라 치병 방법을 ① 글 ② 말(꾸짖음 포함) ③ 심고 ④ 전이 ⑤ 섭취 ⑥ 도포 ⑦ 마사지 ⑧ 기타 특정행동으로 나누어 유형을 설정하였다.
<표 1>은 앞서 언급한 8가지 유형 중 단일한 방식으로 치유된 사례를 유형별로 분류하고, 각각의 발생 횟수를 제시한 것이다. 예를 들어 ① 글: 7회는 『전경』에서 글이라는 단일한 방법을 통해 치병된 사례의 총 횟수를 의미한다. 54건의 사례 중 32건이 한 가지 방식을 사용하여 치병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표 2>는 두 가지 이상의 방법이 결합된 치유 사례들을 정리한 것이다. 예를 들어, ① 글: 6회는 복합적인 치유 방법 중 글이 포함된 사례의 총 횟수를 나타낸다. 더불어, 54건의 사례 중 22건이 복합적인 방식을 통해 치유된 것으로 파악된다.
단일한 방법이든 복합적인 방법이든, 그 치유 방식에서 일관된 규칙이나 원리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치유의 원리가 대순진리회에서의 최고신격인 증산의 의도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시사하며, 그 원리를 명확히 규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① 『전경』에서 증산이 글로 치유한 사례는 7회에 해당하며, 그 서사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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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이 사정을 들으시고 상제께서 가라사대 “이는 그 여인의 불평이 조왕의 노여움을 산 탓이니라” 하시고 글을 써서 병욱에게 주시면서 아내로 하여금 부엌에서 불사르게 하셨도다. 아내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부엌에 나가서 그대로 행하니 바로 와사증이 사라졌도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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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상제께서 의관을 불러 글을 써주시고 “이것을 그대가 자는 방에 간수하여 두라” 이르시니 그는 황송하게 여기고 이르신 대로 행하였느니라. 그는 그날부터 잠에 들 수 있더니 얼마 후에 해소도 그쳐 기뻐하였도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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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 그날 오후에 성백은 별안간 오한을 일으켜 심히 고통하더니 사흘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있노라니 상제께서 성백을 앞에 눕히고 글 한 절을 읽으시니 그가 바로 쾌유하였도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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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이를 긍휼히 여기사 상제께서 그로 하여금 아침마다 시천주를 일곱 번씩 외우게 하셨도다. 그가 그대로 행하더니 병에 차도가 있어 얼마 후에 완쾌되었도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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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상제께서 명하신 대로 六十四괘를 암송하고 갑자기 각통으로 생긴 오한 두통을 즉각에 고쳤느니라. …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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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동곡 김 갑진(金甲辰)은 문둥병으로 얼굴이 붓고 눈섭이 빠지므로 어느 날 상제를 찾고 치병을 청원하였도다. 상제께서 갑진을 문 바깥에서 방쪽을 향하여 서게 하고 형렬과 그 외 몇 사람에게 대학 우경일장을 읽게 하시니라. 十여 분 지나서 갑진을 돌려보내셨도다. 이때부터 몸이 상쾌하여 지더니 얼마 후에 부기가 내리고 병이 멎었도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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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 상제께서 그 집 주인을 보시더니 “저 사람이 창증으로 몹시 고생하고 있으니 저 병을 보아주라”고 종도들에게 이르시고 “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신민 재지어지선(大學之道在明明德 在新民在止於至善)”을 읽히시니라. 집 주인은 물을 아래로 쏟더니 부기가 빠지는도다. … 21)
글을 사용하여 치유한 사례는 세부적으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A)에서는 증산이 쓴 글을 불사르게 한 방식이고, (B)에서는 증산이 쓴 글을 보관하게 한 방법이다. (C)에서 (G)까지는 모두 글을 읽는 방식으로 치유가 이루어졌으며, (C)에서는 증산이 직접 읽었고, (D)와 (E)에서는 환자가 직접 읽게 하였으며, (F)와 (G)에서는 환자가 아닌 다른 종도에게 글을 읽게 하여 치유가 이루어졌다. 사용된 글의 종류를 살펴보면, (A)와 (B), (C)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이 명시되지 않았지만, 시천주, 64괘, 대학 등 특정한 글이 사용된 사례도 존재한다. 또한 <표 2>에서 복합적인 방식으로 사용된 6회를 포함하면 총 13회가 사용되었으며, 전체 유형 중 글과 섭취가 동일하게 사용한 빈도수가 두 번째로 높은 편이다. 이와 같이 글을 사용한 치유 사례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사용된 텍스트의 구체적 내용이 때로는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A), (B), (C)와 같은 경우에서 증산이 쓴 글의 정확한 내용이 밝혀지지 않은 반면, 시천주, 64괘, 대학과 같은 특정 경문이나 고전 텍스트가 사용된 경우는 그 텍스트의 상징성과 영적 효능이 더욱 강조됨을 추측할 수 있다. 이는 증산이 텍스트의 신성한 의미와 상징성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특히, 이러한 경문이 치유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점은 증산이 텍스트를 단순한 읽기의 차원을 넘어, 신성(神性)과 직접 연결된 치유의 매개체로 활용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증산이 행한 글을 통한 치유는 언어의 힘을 빌려 신체적, 정신적, 도덕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텍스트의 위력을 강력하게 인식하고 활용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② 『전경』에서 증산이 말로 치유한 사례는 9회이며, 그 서사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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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손 병욱(孫秉旭)은 고부 사람인데 상제를 지성껏 모셨으나 그의 아내는 상제의 왕래를 불쾌히 여기고 남편의 믿음을 방해하였도다. 어느 날 병욱의 아내가 골절이 쑤시고 입맛을 잃어 식음을 전폐하여 사경에 헤매게 되었느니라. …
병욱의 아내를 불러 앞에 앉히고 “왜 그리하였느냐”고 세 번 되풀이 꾸짖고 외면하시면서 “죽을 다른 사람에게 가라”고 혼자 말씀을 하시니라. … 응종의 집에서 밤을 새우고 다음날 새벽에 구릿골로 행차하셨도다. 가시는 도중에 공우에게 “사나이가 잘 되려고 하는데 아내가 방해하니 제 연분이 아니라. 신명들이 없애려는 것을 구하여 주었노라. 이제 병은 나았으나 이 뒤로 잉태는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과연 그 후부터 그 아내는 잉태하지 못하였도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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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상제께서 김 보경에게 글을 써 주시면서 이르시기를 “너의 소실과 상대하여 소화하라.” 보경이 그 후 성병에 걸려 부득이 본가로 돌아와 달포 동안 머물고 있을 때 웅포에 살던 소실은 다른 곳으로 가버렸느니라. 상제께서 그에게 가라사대 “본처를 저버리지 말라” 하시고 성병을 곧 낫게 하셨도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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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상제께서 천원(川原)장에서 예수교 사람과 다투다가 큰 돌에 맞아 가슴뼈가 상하여 수십 일 동안 치료를 받으며 크게 고통하는 공우를 보시고 가라사대 “너도 전에 남의 가슴을 쳐서 사경에 이르게 한 일이 있으니 그 일을 생각하여 뉘우치라. 또 네가 완쾌된 후에 가해자를 찾아가 죽이려고 생각하나 네가 전에 상해한 자가 이제 너에게 상해를 입힌 측에 붙어 갚는 것이니 오히려 그만하기 다행이라. 네 마음을 스스로 잘 풀어 가해자를 은인과 같이 생각하라. 그러면 곧 나으리라.” 공우가 크게 감복하여 가해자를 미워하는 마음을 풀고 후일에 만나면 반드시 잘 대접할 것을 생각하니라. 수일 후에 천원 예수교회에 열두 고을 목사가 모여서 대전도회를 연다는 말이 들려 상제께서 가라사대 “네 상처를 낫게 하기 위하여 열두 고을 목사가 움직였노라” 하시니라. 그 후에 상처가 완전히 나았도다.24)
말로 치유하는 방식은 단일한 방식 중 가장 많이 사용되었으며, 꾸짖는 방식도 말로 치유하는 유형에 포함하였다. 따라서 (A)와 같이 꾸짖는 사례는 3회, (B)와 같이 교훈을 주는 방식은 5회, (C)와 같이 가해자에게 복수하려는 마음을 풀어주어 상처를 치유한 사례는 1회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표 2>에서 복합적인 방식으로 사용된 3회를 포함하면 총 12회이며, 전체 유형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방식 중 말은 사용한 빈도수가 세 번째로 높은 편이다.
③ 『전경』에서 심고를 통해 치유된 사례는 2회이며, 자세히 그 서사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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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박 공우의 아내가 물을 긷다가 엎어져서 허리와 다리를 다쳐 기동치 못하고 누워 있거늘 공우가 매우 근심하다가 상제가 계신 곳을 향하여 자기의 아내를 도와 주십사고 지성으로 심고하였더니 그의 처가 곧 나아서 일어나느니라.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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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황 응종의 아들이 병으로 위급하게 되었기에 응종이 청수를 떠 놓고 멀리 상제가 계신 곳을 향하여 구하여 주실 것을 두 손을 모아 발원하였더니 아들의 병세가 나으니라. 이튿날 응종이 동곡 약방으로 가서 상제께 배알하니 가라사대 “내가 어제 구름 속에서 내려다보니 네가 손을 모으고 있었으니 무슨 연고이냐”고 물으시므로 응종이 사유를 자세히 아뢰었더니 상제께서 웃으셨도다.26)
종도가 멀리 떨어져 있는 증산을 향해 지성으로 심고하며, 가족의 병이 낫기를 기원한 사례는 총 2회이다. (A), (B)에서 박공우와 황응종은 『전경』에서 각각 16번씩 등장하는 인물로, 증산이 천지공사를 행할 때에도 자주 함께 참여하였고, 그 결과 증산에 대한 깊은 믿음으로 심고를 드린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표 2>에서 복합적인 방식으로 사용된 1회를 포함하면 총 3회이며, 전체 유형 중 심고는 도포와 회수가 동일하다.
④ 『전경』에서 전이(병을 옮김)를 통해 치유한 사례는 1회이며, 그 서사는 다음과 같다.
또 상제께서 김 낙범의 아들 영조(永祚)가 눈에 핏발이 생겨 눈을 덮어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그 안질을 자신의 눈에 옮겨 놓으시고 그의 아들의 안질을 고치셨도다.27)
『전경』에는 병을 전이시켜 치유하는 방법이 단일 방식으로 1회, 복합 방식으로 4회 사용되었다. 병을 전이시키는 대상이 증산 자신인 경우도 있으며, 부인에게서 남편으로 옮긴 경우, 노승과 개에게 전이시켜 대신 죽게 한 경우, 그리고 전선과 같은 사물에 전이시켜 버린 경우도 있었다.
⑤ 『전경』에서 섭취를 통해 치유한 사례는 4회이며, 그 서사는 다음과 같다.
(A)에서는 음식 등을 섭취하게 하는 방식이며, (B)에서는 약을 마시게 하는 방식이다. 동일한 폐병 환자라 하더라도 섭취시키는 것의 종류는 일관되지 않고 다양하게 나타난다. 또한, <표 2>에서 복합 방식으로 사용된 9회를 포함하면 총 13회이며, 전체 유형 중 섭취는 글과 동일하게 두 번째로 가장 많이 사용한 방법이다.
⑥ 『전경』에서 도포를 통해 치유한 사례는 2회이며, 그 서사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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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그들이 떠나간 후 겨우 장씨는 정신을 되찾고 집에 돌아왔느니라. 얼마간 지나서 상제께서 장씨에게 들러 그 시말 이야기를 들으시고 “생지황(生地黃)의 즙을 내어 상처에 바르라”고 말씀하시니 장씨가 그대로 행하니 그날로 몸이 회복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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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내가 없으면 여덟 가지 병으로 어떻게 고통하리오. 그 중에 단독이 크리니 이제 그 독기를 제거하리라” 하시고 부인의 손등에 침을 바르셨도다.
(A)에서는 환자가 스스로 도포하게 한 경우이며, (B)에서는 증산이 직접 환자에게 도포한 경우이다. 또한, <표 2>에서 복합 방식으로 사용된 1회를 포함하면 총 3회이며, 전체 유형 중 도포는 심고와 회수가 동일하다.
⑦ 『전경』에서 증산이 마사지를 통해 치유한 사례는 단일 방식 0회, 복합 방식 6회이다.
… 그의 아들 석(碩)을 사랑으로 업어 내다가 엎드려 놓고 발로 허리를 밟으며 “어디가 아프냐”고 묻고 손을 붙들어 일으켜 걸려서 안으로 들여보내면서 닭 한 마리를 삶아서 먹이라고 일러 주시니라. 이로부터 석의 폐병이 나았도다.
<표 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단일한 방식으로 사용된 사례는 없으며, 위와 같이 다른 치유 방식과 복합적으로 사용된 사례만 있다. 마사지의 방식은 보통 다리나 배를 마사지하거나, 허리를 발로 밟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⑧ 『전경』에서 기타 특정 행동을 통해 치유한 사례는 7회이며, 그 서사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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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상제께서 서울에서 여러 공사를 보시던 어느 날 해솟병에서 제생(濟生)된 오 의관의 아내가 다년간의 지병인 청맹으로 앞을 잘 못 보는지라 그 여인이 또한 병을 고쳐 주시기를 애원하거늘 상제께서 그 환자의 창문 앞에 이르러 환자와 마주 향하여 서시고 양산대로 땅을 그어 돌리신 후 돌아오시더니 이로부터 눈이 곧 밝아져서 오 의관의 부부가 크게 감읍하고 지성으로 상제를 공양하였도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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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그 후 또 김 경학이 병들어 매우 위독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상제께서 경학에게 명하시어 사물탕(四物湯)을 끓여 땅에 묻고 달빛을 우러러보게 하시더니 반 시간 만에 병이 완쾌하였도다.31)
(A)에서는 증산이 환자와 상관없이 직접 특정 행동을 통해 병을 치유한 경우로, 이러한 사례는 단일 방식에서 4회, 복합 방식에서 4회 총 8회에 해당한다. (B)에서는 증산이 직접 행동하기보다는 환자나 다른 사람에게 특정 행동을 지시하여 치유한 경우로, 이러한 사례는 단일 방식에서 3회, 복합 방식에서 12회 총 15회이다. 또한, <표 1>에서 단일 방식으로 사용된 7회와 <표 2>에서 복합 방식으로 사용된 16회를 포함하면 총 23회이며, 전체 유형 중 기타 특정 행위가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방법으로 가장 많이 사용한 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유형과 더불어 종도들이나 환자들에게 특정 행동을 지시하여 병을 치유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나타나는데, 증산이 행한 치유 방식은 단순히 최고신의 덕화를 받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적극적인 수행을 요구하는 종교적 실천임을 시사한다. 이는 증산의 치유 사상의 실천적 측면을 더욱 강조하며, 신명과 인간의 협력적 관계를 통해 치유가 이루어지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표 1>과 <표 2>, <표 3>에 나타난 치병 사례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가장 많이 사용한 방식은 기타 특정 행동이며, 글과 섭취는 두 번째로 많이 사용하였다. 특히 단일 방식에서는 말과 글을 활용하여 치병하는 사례가 많이 나타난다. 정재서(2020)의 연구에 따르면, 『전경』에서 증산은 종도들에게 공사나 특정 상황에 맞춰 창작하거나 인용한 시구를 자주 들려주었으며, 시(詩)는 산문과 달리 상징과 비유를 통해 직접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의미를 전달한다. 이러한 형식은 큰 도리를 일부러 감추고 자발적인 깨달음을 유도하는 데 적합하다. 따라서 증산이 종도들에게 시를 읊어주거나 명문과 고전 소설의 구절을 낭독하고 인용하는 행위는, 영향력 있는 원본을 복제하여 동일한 효과를 재현하려는 미메시스적 법술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32) 이는 증산이 다양한 상황에 맞춰 적절한 글을 활용하여 다각적으로 치유를 실천했음을 나타낸다.
유형 | ① 글 | ② 말 | ③ 심고 | ④ 전이 | ⑤ 섭취 | ⑥ 도포 | ⑦ 마사지 | ⑧ 기타 특정 행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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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방식 | 7회 | 9회 | 2회 | 1회 | 4회 | 2회 | 0회 | 7회 |
복합 방식 | 6회 | 3회 | 1회 | 4회 | 9회 | 1회 | 6회 | 16회 |
합계 | 13회 | 12회 | 3회 | 5회 | 13회 | 3회 | 6회 | 23회 |
순위 | 2위 | 3위 | 6위 | 5위 | 2위 | 6위 | 4위 | 1위 |
아울러, 증산은 자신의 말이 곧 약이며,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거나 거슬리게 하며, 병든 자를 일으키고 죄에 걸린 자를 풀어주기도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33) 이처럼 말로 치유한 사례도 전체 유형 중 사용 빈도수가 세 번째로 높은 편이며, 꾸짖는 방법도 넓은 범주에서 말로 치유한 사례에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치유 방식은 병을 일으키는 기운이나 신(神)적 존재를 물리치는 원리로 이해될 가능성이 크다.
더 나아가, 음식이나 약을 섭취하게 하거나 환부에 도포하는 방식은 표면적으로는 일반적인 치유 방법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동일한 병증에 대한 처방이 일관되지 않고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의술의 차원을 넘어 천지공사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정재서(2020)는 증산의 상징적 행위가 프랙탈 구조를 반복하는 미메시스 원리에 따라 우주적으로 확대된다고 주장한다.34) 이러한 맥락에서, 증산의 치병 행위도 이 원리에 따라 병을 치유하면서 동시에 천지의 도수를 조정하는 작업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증산은 차경석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물었을 때, 의술을 행한다고 말하였으며,35) 의법을 화정동에서 처음 시작하면서 이경오의 병증을 보고 괴상한 병세라고 표현하며, ‘모든 일이 작은 일로부터 큰 일을 헤아리는 법이니 이 병을 표준으로 삼고 천하의 병을 다스리는 시험을 하겠다’고 말한 바36)도 있다. 결론적으로, 증산의 치병 활동은 단순한 의술 이상의 복합적 의미를 내포하며, 이 치유 과정은 천지공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접근은 증산의 행위가 지닌 종합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어디까지나 추론의 범주에 속하며, 증산의 모든 행위의 의도와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이다. 증산이 자신의 공사에 대해 “대인의 일은 마땅히 폭을 잡기 어려워야 하며, 만일 폭을 잡힌다면 어찌 범상함을 면하리오”37)라고 언급한 바와 같이, 그 의도는 쉽게 규명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시각에서 고찰하는 연구는 충분히 가치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차선근(2016)의 연구에서도 증산의 치병 사례에 대해 다양한 해석과 가설이 제시된 바 있으므로, 본 연구에서는 <표 1>에 대한 해석과 관련해 중복되는 논의를 생략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한 내용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치병이 이루어진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을 진행하였으나, 이번에는 병이 치유되지 않은 사례를 중심으로 『전경』의 구절을 통해 고찰하고자 한다.
<표 4>를 분석한 결과, 병이 치료되지 않은 사례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증산이 치료를 시도하지 않은 경우이며, 둘째는 증산이 제시한 해결 방법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해 치유에 실패한 경우이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증산이 공사에 몰두하고 있는 중에 의탁을 받은 상황’, ‘신명으로부터 노여움을 사 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 ‘증산과의 약속을 어겨 병에 걸린 상황’, ‘해결 방법을 제시받았으나 정성이 부족해 치유에 실패한 상황’ 등 특정한 사유가 있을 때, 증산이 병을 낫게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다른 구절에서도 <표 4>의 사례처럼 신명으로부터 노여움을 사거나, 증산과의 약속을 어겨 병에 걸린 사례들이 더 존재하며, 비슷한 상황에서도 치료가 이루어진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공존한다.
신명의 노여움을 받아 병이 발생한 사례를 세 가지 비교해보자. 김병욱의 아내는 증산과 종도들을 위해 점심 준비를 하던 중, 무더운 날씨에 불평을 하다가 갑자기 와사증에 걸렸다. 증산은 이를 조왕의 노여움으로 보고, 병을 고치는 방법을 알려주었으며, 그 방법을 실행하자 병이 나았다.38) 손병욱의 아내 역시 증산의 왕래를 불쾌히 여기고 남편의 믿음을 방해하다가 신명들의 노여움을 받아 식음을 전폐하게 되었으나, 증산은 그녀의 병을 치료하며 더 이상 잉태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39) 반면, 강팔문은 증산의 이름을 대고 주식을 청한 뒤 대금을 치르지 않고 떠난 후로 배가 붓고 사경을 헤매게 되었는데, 증산은 그가 신명들의 노여움을 사 죽게 되었으니 어찌할 수 없다고 하였다.40) 이 세 가지 사례는 모두 신명에게 노여움을 사 병이 발생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는 단순히 신명에게 불경했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증산의 신격을 인지한 신명들이 증산에게 불경한 행위를 한 것에 대해 노여움을 표출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41) 이 세 사례의 차이점으로는 병이 치유된 두 사례의 경우 남편이 모두 증산의 종도였던 반면, 강팔문의 증산과의 연고가 없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증산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병이 발생한 사례를 두 가지 비교해보자. 증산이 종도들에게 공사(公事) 중 호소신이 올 것이니 웃지 말라고 경고했으나, 정성백이 웃음을 터뜨려 오한을 겪게 되었다. 그러나 증산이 그를 치료해 주었으며, 병은 완쾌되었다.42) 반면, 이경문은 증산이 정해준 기한 내에 공사를 마치지 못해 수전증에 걸렸으나, 병을 고치는 처방은 제시되지 않았다.43) 이 두 사례의 공통점은 모두 증산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외의 이유나 차이를 명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증산이 단순한 치유자가 아니라, 신명들과의 관계와 도수(度數)의 조정을 통해 병의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고 대응하는 복합적인 역할을 수행했음을 의미한다. 증산의 치병 행위는 당시 그를 따르려는 종도들의 숫자를 증가시키고, 천지공사를 수행할 때 중요한 인물들이 적시에 동행하거나 참관하도록 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치병과 기타 이적들은 증산에 대한 종도들의 믿음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나아가, 증산의 치병 활동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 것뿐만 아니라, 천지까지 그 범위를 확장하여 선천 세상의 문제를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천지공사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논의는 Ⅲ장에서 더욱 깊이 있게 다루고자 한다.
Ⅲ. 치병의 원리로 본 치유적 함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경』에 나타난 치병의 유형과 특징을 통해 우리는 치유의 원리를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천지공사로서의 치유, 둘째는 실천 수행으로서의 치유이다.
앞장에서 『전경』에 기록된 치병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치유의 원리를 살펴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첫 번째 치유적 함의는 천지공사로서의 치유에 관한 것이다.
천지공사란 증산이 1901년부터 1909년까지 9년에 걸쳐 수행한 일련의 종교적 행위를 의미한다. 증산은 이 과정에서 천지에 맺힌 모든 원한을 풀고, 천지의 운행 법칙을 상극에서 상생으로 바꾸었으며, 후천의 새로운 선경을 열기 위한 도수(度數)를 마련했다. 여기서 도수란 증산이 실행한 천지공사의 결과가 적절한 시기에 이르면 일정한 순서에 따라 나타나고 진행되는 절차이자 프로그램을 의미한다. 과거 한국에서는 관아의 관장이 공무를 처리하기 위해 수하의 관리들을 모아 회의를 열 때 ‘공사를 본다’고 표현했는데, 증산은 신명들을 소집하고 종도들을 참관시키며 천지의 구조와 운행을 재조정하는 자신의 행위를 ‘천지의 공사’라고 칭한 것이다.44)
『전경』에서는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다.”45)고 설명한다. 증산은 선천의 세계를 진단하며 이를 ‘종기를 앓음’46), ‘진멸할 지경’47) 등의 병적인 상태로 비유하였다. 천지와 인간으로 구성된 삼계 중, 천지는 신명(神明)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묵은 하늘’48), ‘명부의 착란’49)과 같이 부정적 상태가 지속되어 인간의 노력과 의지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악순환이 발생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진단을 바탕으로 증산은 천지공사(1901~1909)를 통해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을 바로잡고자 하였다.50)
천지공사로서의 치유에 대해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구절은 『전경』 공사 1장 3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내용을 보다 심층적으로 고찰해보면, 증산의 치유 사상은 천지와 인간이 불가분의 유기적 관계에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는 선천 세계를 상극의 지배로 인해 인간과 만물의 원한이 삼계에 가득 차고, 그 결과 천지가 본래의 질서를 상실한 상태로 진단하였다. 이로 인해 세상은 각종 재난과 혼란에 빠졌다고 판단한 증산은, 이러한 상극적 질서를 바로잡기 위하여 천지공사를 통해 우주의 질서를 상생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특히, 증산은 천지의 질서를 재정비하고 신명의 조화를 통해 원한을 해소함으로써, 상생의 도를 구현하고 후천의 이상 세계를 건설하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는 천지가 먼저 치유되고 바로잡혀야 인간의 치유 또한 가능하다는 깊은 통찰을 반영하고 있다. 천지공사는 단순히 물리적 질서의 회복을 넘어서, 천지와 인간 간의 상호 조화와 균형을 회복하려는 치유적 활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증산은 천지의 도수(度數)를 정리함으로써, 천지와 인간의 상생적 관계를 회복하고, 이를 통해 인간의 원한과 병폐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나아가, 증산은 천지의 조화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인간 사회의 질서와 도리가 자연스럽게 확립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천지와 인간의 상생적 질서가 회복된 후에야 인간의 실천적 도리도 성립될 수 있다는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다.
결론적으로, 이는 천지가 치유되어 상생의 질서가 확립될 때 인간이 진정한 치유와 회복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중요한 원리를 담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증산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대순진리회의 종지와 신조, 목적, 훈회, 수칙 등 모든 원리의 근간을 이루며,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다시 정리하자면, 증산은 인간뿐만 아니라 천지의 신명까지도 치유의 대상으로 보았으며, 상극에 지배된 천지와 만물이 자생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진멸 직전의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증산은 삼계공사를 통해 우주의 질서를 상극에서 상생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증산의 천지공사에는 천·지·인 삼계를 고쳐 살리고자 하는 치유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이는 대순진리회의 종지와 신조, 목적, 훈회, 수칙 등 모든 원리의 기초가 된다.51) 이러한 원리들은 증산의 천지공사를 통해 정립되었고, 정산의 오십년공부종필(五十年工夫終畢)로 완성된 것이다. 더 나아가, 증산과 정산의 사상(뜻)을 계승한 우당의 종단사업은 천리(天理)와 인사(人事)의 합일을 위한 실천을 의미하며, 이러한 실천에는 치유와 회복의 원리가 필연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원한으로도 천지의 기운이 막힐 수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52) 원한이 다시 상극을 조장하고 새로운 원한을 불러오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인간의 마음 상태와 이를 위한 실천 수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53) 이러한 맥락에서, 다음 절에서는 실천 수행을 통한 치유적 함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두 번째 치유적 함의는 실천 수행을 통한 치유이다. 대순진리회의 실천 수행은 개인의 도덕적 완성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온 세상의 완성을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대순진리회의 교리와 훈회·수칙, 기본사업인 포덕·교화·수도와 3대중요사업인 구호자선사업·사회복지사업·교육사업 등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다시 말해, 개인의 수양을 바탕으로, 그 덕을 사회와 세계에 확산시켜 지상신선 실현과 지상천국 건설을 이루고자 하는 대순진리회의 거시적 비전을 실현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각자가 스스로 바르게 실천할 때, 이는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주변인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중요한 원리가 드러난다. 『대순지침』에서도 솔선수범의 중요성은 여러 차례 강조되는데, 이는 먼저 모범적으로 바른 실천을 통해 가정과 이웃을 감화시키고, 그 결과로 가장 가까운 이들로부터 인망(人望)을 얻게 되어 더 많은 사람에게 밝고 선한 기운을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바르게 실천할 때, 비로소 남도 바르게 교화하고 이끌 수 있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원리이다. 즉, 남을 잘 되게 하려는 상생의 기본 원리는 솔선수범에 있으며, 단순히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정화목의 중요성은 여러 종교에서 중시하는 윤리적 덕목 중 하나로서, 금강대도 또한 ‘우주가화’라는 개념을 통해 가정화목을 핵심적인 실천 덕목으로 제시하고 있다.54) 대순진리회의 창설자인 우당역시 수도하는 과정에서 가정화목의 실천을 필수적으로 강조하였다. 대순진리회의 ‘가정화목’은 삼강오륜을 바탕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도리를 다하려는 노력을 요구하며, 이는 단순히 전통적인 ‘가화’의 의미를 넘어 가정을 화목하게 하는 과정이 수도의 일환으로 운수와도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로 간주된다.55)
아래의 <표 5>는 『전경』에서 발췌한 인륜도덕과 관련된 구절들을 정리한 것이다.
<표 5>에 나타난 구절들을 통해 증산이 인륜도덕의 준수를 얼마나 강조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수도와 별개로 생각할 수 없는 문제이며, 교리 실천과 수행 과정에서 인륜도덕의 준수가 필수적인 전제 조건임을 시사한다. 우당(牛堂) 또한 “훈회를 실천하여 생활화해야 한다. 마음을 속이지 않는 데서 서로가 신뢰할 것이고, 언덕을 잘 가지므로 화목할 것이며, 척을 짓지 않는 데서 시비가 끊어질 것이고,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데서 배은망덕이 없을 것이며,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이니 이것이 우리 도의 인존사상이며 바로 평화사상인 것이다.”56)라고 훈시한 바 있다. 더불어, 『대순지침』에서도 “수도는 인륜(人倫)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혀 나가는 일인데 이것을 어기면 도통을 받을 수 있겠는가.”57)라고 한 내용은 앞서 언급한 내용들과 맥락을 같이 한다. 따라서 훈회58)에서 강조하는 내용들, 즉 “1. 마음을 속이지 말라, 2. 언덕을 잘 가지라, 3. 척(慽)을 짓지 말라, 4.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 5. 남을 잘 되게 하라”와 수칙59)에서 강조하는 “1. 국법을 준수하고 사회도덕을 준행하여 국리민복에 기여할 것, 2. 삼강오륜은 음양합덕·만유조화 차제 도덕의 근원이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며, 부부화목하여 평화로운 가정을 이룰 것, 3. 무자기는 도인의 옥조니, 양심을 속이지 말고 혹세무민하는 언행을 삼갈 것, 4. 언동으로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후의로써 남의 호감을 얻을 것, 5. 자신을 반성하여 과부족이 없는가를 살펴 고쳐나갈 것” 등 대부분이 윤리적 덕목과 각자의 위치에서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은 물질문명의 발달에 따라 인간의 마음이 통합되지 못하고, 외부 환경의 기대와 요구에 의해 분열되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인간성 상실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으며, 인간성 회복은 분리되고 소외된 내적 세계를 재통합하고 인간 전체성을 회복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60) 그러므로 각 개인의 마음과 몸을 치유하는 데에서 출발하여, 궁극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치유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일 것이다.
최시형의 생명 사상에서도 생명 살림의 이치는 먼저 내 몸과 마음을 살리는 데서 시작한다고 하였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먼저 치유하여 평안을 찾지 않고서는 세상의 평화와 화해, 치유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시형은 “마음으로써 마음을 다스리는 이치를 알면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된다”61)고 말했는데, 이는 약이 필요 없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모든 치유에 앞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근본이 된다는 뜻이다. 또한 그는 생활습관을 조절하여 기운을 바르게 하는 것이 모든 치유와 생명 살림의 기본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생명 살림이 사회적으로 확장되면 ‘사회적 치유의 살림 운동’이 된다고 설명하였다.62)
이처럼 각 개인이 본성을 회복하고, 심기(心氣)를 바로잡기 위해 실천 수행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수도를 통해 자신의 심령을 통합하거나 정화하는 것은 자신의 순수하고 깨끗한 본모습을 되찾는 과정이며, 이는 곧 자신의 마음이 밝아져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품성(天稟性)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63) 우당이 “내 마음을 거울과 같이 닦아서 진실하고 정직한 인간의 본질을 회복했을 때 도통에 이른다.”64)고 주장한 것과 같이, 이러한 심령 통일의 과정은 결국 자기 본성의 회복을 뜻하며, 양심인 천성을 되찾는 과정도 모두 치유의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Ⅴ. 결론 : 치유적 실천 수행의 당위성과 그 의의
오늘날 우리는 인간성이 상실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현실과 인간상을 반영한 드라마, 영화, 웹툰 등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들이 대중의 깊은 공감을 얻고 흥행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로 인한 불안감과 상실감 같은 정신적 고통의 치유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현대의학만으로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모든 병증을 완전히 치료하기 어렵기 때문에, 종교가 수행하고 기여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깊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신체적 병증이 발생했을 때는 의학적 치료가 필수적이지만, 정신적 고통과 사회적 병폐를 치유하는 데 있어 종교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본 연구는 이 점을 바탕으로 누구나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윤리도덕에 기반한 심신의 실천수행이 통합적 치유를 가능하게 할 중요한 대안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건강한 종교는 인간의 내면적 성숙과 진정한 자아실현을 위한 교리적 목표와 실천 방안을 제시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사회적 차원의 치유에도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각 종교가 지닌 치유적 함의를 도출하고, 이를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작업은 충분히 가치 있는 연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중요한 삶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인간과 인간·인간과 자연·인간과 만물·사회적 관계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 종교학계를 포함한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의학의 영역과 종교의 역할을 구분하여, 종교는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간성과 모든 관계의 상생적 전환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해야 한다. 이러한 역할은 종교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순기능으로 이해될 수 있다.
본 연구는 『전경』에 나타난 치병의 유형과 그 특징을 분석하고, 치유적 함의를 두 가지 차원으로 고찰하였다. 천지공사로서의 치유와 실천 수행으로서의 치유라는 두 차원의 분석은, 천지가 먼저 치유되고 정상적으로 공정하게 운행되어야 인간의 올바른 실천을 통한 회복(치유)도 가능하며,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졌을 때 비로소 인간개조(지상신선실현)와 세계개벽(지상천국건설)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특히, 대순진리회의 실천 수행은 개인의 치유를 넘어, 이를 통해 세계의 치유를 도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개인의 도덕적 완성과 내적 평화는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될 때, 전체 사회와 세계의 병폐를 치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순진리회의 실천 수행은 개인적·사회적 치유를 넘어, 전 지구적 차원의 치유와 상생을 목표로 하는 종교적·윤리적 실천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상생의 실현이자, 대순진리회의 궁극적 비전을 달성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현재 대순진리회의 종지·신조·목적·훈회·수칙 및 기타 수도 방법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한다면, 그 수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치유의 과정이 병행된다고 할 수 있다. 치병의 원리를 통해 살펴본 치유적 함의는 우주적 차원에서의 천지공사로서의 치유와 인간적 차원에서의 실천수행으로서의 치유로 구분될 수 있으며, 천·지·인 삼계의 치유 및 회복의 과정은 궁극적으로 대순진리회의 종교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과 연결된다. 이는 치유적 실천수행의 당위성과 그 의의가 중요함을 시사한다.
철학자들은 바른 길(正道), 즉 사람들이 잃어버린 행위의 ‘도’를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도(道)는 질서의 정수이며, 이를 따르는 것은 곧 질서를 세우는 일이다.65) 증산도 “이제 말세를 당하여 앞으로 무극대운(無極大運)이 열리나니 모든 일에 조심하여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죄를 멀리하여 순결한 마음으로 천지 공정(天地公庭)에 참여하라”66)고 하였다. 해원상생(解冤相生)은 우주적⋅인간적 두 가지 차원에서 동시에 실현되어야 하며, 이에 따라 인간은 해원상생의 우주적 흐름에 맞추어 종교윤리로서의 해원상생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67) 이러한 실천 수행은 곧 천지 공정에 참여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대순진리회의 덕은 해원과 보은의 진리를 구현하여 상생을 이루는 진리로 제시되며,68) 이는 곧 상생의 도(道)와 부합되는 실천이 곧 덕(德)이 된다는 원리를 의미한다.
향후, 대순사상뿐만 아니라 각 종교의 치유적 가치를 심층적으로 탐구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연구가 다양한 학문적 접근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