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여는 글
‘삼간(三間)’이란 말이 있다. 침을 놓는 혈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고,1) 선비의 집은 세 칸을 넘지 않는다[三間之制]는 청빈의 삶을 일컫기도 한다. ‘시간(時間)ㆍ공간(空間)ㆍ인간(人間)’을 합쳐서 삼간이라 부를 때도 있다.
시간ㆍ공간ㆍ인간을 삼간이라고 하는 사례는 고전 문헌에 보이지 않는다. 삼간의 어원을 추적할 단서는 인간이 사람을 뜻한다는 사실에 있다. 전통적으로 중국과 한국에서 인간은 사람이 사는 ‘세상’을 의미했을 뿐이었다. 인간을 ‘사람’의 뜻으로 사용한 곳은 12세기 이후의 일본이었다. 사람으로 정의되는 일본어 ‘닝겐(人間)’은 개화기에 한국에 수입ㆍ정착했고, 그 후에 한국도 인간을 사람이 사는 ‘세상’보다 ‘사람’의 뜻으로 더 많이 활용했다.2) 따라서 사람을 의미하는 인간에다 시간과 공간을 합친 단어인 삼간은 현대에 만들어진 조어(造語)로 보아야 한다.
중국에서는 시간ㆍ공간ㆍ인간을 합쳐서 삼간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일본에서는 時間[지칸]ㆍ空間[쿠우칸]ㆍ仲間[나카마: 동료]를 합쳐서 三間[산마]라고 부른다.3) 그렇다면 시간ㆍ공간ㆍ인간을 합친 한국의 삼간이라는 말도 일본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의미와 사용 맥락이 다르다. 일본에서 삼간은 아이[동료]들의 바람직한 성장 환경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예를 들면 아이들이 놀 시간이나 장소가 없어져 친구가 적어진 상황을 ‘삼간이 없다[三間がない]’라고 한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 삼간은 전통 풍수 혹은 현대 지리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곧잘 쓰곤 하는데, 인간이 시간과 공간으로 구성되는 우주 안에서 존재하고 그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함의를 가진다. 한국의 삼간이 일본의 삼간과 의미도 다르고 사용 맥락도 다르다면, 조어 과정에서 일본의 영향을 일부 받았을지언정 한국의 독자적인 단어라고 해야 한다.
도입부에서 한국의 삼간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인간이 우주 안에서 살아간다는 당연한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동양 전통에서 우주(宇宙)는 시간[往古來今]과 공간[四方上下]을 의미하니,4) 결국 인간은 시간 축과 공간 축의 좌표점 위에서 살아가며, 그 좌표 지점의 변화에 따라 삶의 변화[運命]도 맞이한다는 뜻을 담은 게 ‘삼간’이라는 단어다(<그림 1>).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교차점에서 그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ㆍ공간의 영향을 수동적으로 그저 받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관찰하여 그 의미를 읽고 평가하거나 심지어 가치까지 부여할 수도 있다. 그것을 시간관(時間觀) 또는 공간관(空間觀)으로 부를 수 있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시간관과 공간관은 다시 인간의 삶에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예를 들어 인간 공동체 집단인 국가는 자신의 역사ㆍ문화ㆍ정치ㆍ경제 등을 배경으로 시간과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여 일정한 시간관과 공간관을 발명하고, 그에 근거하여 건국일ㆍ기념일ㆍ국경선ㆍ경제 수역ㆍ보호 구역을 만듦으로써 국가 구성원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종교도 자신의 의미나 가치를 담아 시간관과 공간관을 확정하고, 그로 인해 창출된 기념일과 성지(聖地)ㆍ성적지(聖蹟地)5)는 참여자의 종교적 삶을 구성하는 데 공헌한다.
이 글이 주목하는 것은 종교의 시간관이다. 구체적으로는 대순진리회의 시간관이다. 그러니까 대순진리회는 시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그것으로써 인간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성지ㆍ성적지와 순례를 중심으로 한 공간관 분야에서는 연구 성과들이 조금씩 축적되고 있으나,6) 시간관 연구는 상대적으로 양과 질에서 크게 빈약하였다. 그나마 선행 연구 목록에 포함될 만한 것은 인식론 관점에서 「전교(傳敎)」7)의 시간 단위를 소개하고 개벽의 시간을 구원의 시간으로 규정했던 장병길의 연구(1988),8) 「전교」 역법을 풀이하고 그 연대를 규명한 차선근의 연구(2004ㆍ2005),9) 24절후와 그 시간을 관장하는 신명들에 주목한 이재원의 연구(2012)10) 정도일 뿐이다. 그 외 다른 연구들에서 시간관이 부분적으로 언급되기는 하지만, 대개 한국 신종교의 교집합이라고 주장되는 ‘개벽’의 시기나 운도론(運度論), 원시반본(原始返本),11) 그리고 선천과 후천의 시간 구분 외에는 딱히 이렇다 할 시간관 이슈들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이 글은 대순진리회 시간관에서 향후 깊게 탐구되어야 할 논의 목록들을 발굴하여 정리하고, 그 내용의 일단을 조명하고자 한다.
대순진리회 시간관의 전체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다양한 전략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역법(曆法)에 주목하는 것도 하나의 유용한 접근법이 될 수 있다. 이 글은 시간관 논의의 기초를 놓는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종교학을 포함하는 인문ㆍ사회학계에서 주로 사용하는 관점을 취하고자 한다. 그것은 시간과 경험자의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다. 인간은 시간을 경험한다. 때로는 시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것을 토대로 삼아 이 글은 세 가지의 범주, 즉 ① 측정되고[크로노스] 경험되는[카이로스] 시간, ② 재조정되는 시간, ③ 통치되는 시간을 설정한다. 그리고 대순진리회의 다양한 시간 이야기들을 이 세 범주 안에 분류하여 집어넣고, 그 속에서 다양한 의제(議題, agenda)들을 개발하겠다는 게 필자의 의도다.
이를 위해 이 글은 ① 측정되고 경험되는 시간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② 재조정되는 시간과 ③ 통치되는 시간 논의는 가까운 미래에 다루기로 한다. 측정되고 경험되는 시간을 탐구하는 이 글의 목차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개념을 먼저 설명하는 것을 시작으로(Ⅱ장),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얽힘을 ‘천도와 인사’ 및 ‘시간과 윤리’ 항목으로써 규명하고(Ⅲ장), 카이로스의 전개는 시간의 함수인 ‘도수’와 관련된다는 것(Ⅳ장), 카이로스 경험 유형들은 ‘시간과 기도ㆍ치성’, ‘시간과 공부’임을 설명하는(Ⅴ장) 순서로 되어 있다.
Ⅱ.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 두 종류로 구분했다. 크로노스는 측정 단위로서의 물리적 시간을 뜻한다. 과거 → 현재 → 미래의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며, 살아가는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시간이자, 고전물리학과 현대물리학에서 다루는 기계적ㆍ연속적ㆍ객관적ㆍ물리적 시간이 크로노스다.12)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물리학(Physics)』(기원전 4C)에서 크로노스, 즉 척도로서의 시간 개념을 ‘이전과 이후에 대한 운동의 숫자(number of motion with respect to the before and after)’라고 정의했다. 여기에는 크로노스 시간의 세 가지 특징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① 특정 기간 지속하는 변화와 운동, ② 적절한 단위로써 측정, ③ ‘이전’과 ‘이후’로 표현되는 일련의 순서나 방향이다.13) 이러한 크로노스는 사건의 발생을 시간별로 순차적으로 기록할 수 있게 한다. 연표(年表) 혹은 연대기(年代記)의 영어 단어가 크로노스(chronos)의 ‘chron’으로 시작되는 ‘chronicle’인 것도 이 때문이다. 크로노스는 경과 시간에 따른 사건의 ‘이전’과 ‘이후’를 측정하는 과정의 사실만 고려하므로, 역사적 행위와 사건의 목적이나 의의ㆍ평가까지는 다루지 않는다.14)
시간의 물리적인 양만 강조하는 것은 크로노스다. 이에 비해 시간의 질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은 카이로스다. 카이로스 시간은 사건의 의미와 목적, 그리고 다른 시대나 다른 상황에서는 가능하지 않았던 결과를 낳는 사건들의 집합체라는 개념을 담아낸다. 그러므로 카이로스는 특정 사건이나 행동이 아무 때나 일어나는 게 아니라 꼭 그 시간에만 일어난다는 의미에서 흔히 ‘적절한 때(right time)’로 번역된다.15) 이 ‘적절한 때’는 전환점이자 결정적인 순간(critical moment), 즉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거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기회의 순간,16) 혹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신상 변화(결혼식ㆍ즉위식 등)가 일어나는 순간, 범상치 않은 존재와 만나는 순간(계시ㆍ奇緣 등)을 포함한다.
카이로스는 구체적 사건을 겪는 행위 주체자의 인생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행위자는 크로노스 시간 속에서 겪는 경험의 정도에 따라 특정 시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바로 그때 크로노스 시간은 카이로스 시간으로 바뀐다. 같은 양의 시간이라도 그 경험에 따라 다른 질로 느끼곤 하는 감성적ㆍ비연속적ㆍ주관적ㆍ심리적 시간 영역으로 전이(轉移)되는 것이다. 둘을 비교하자면, 크로노스가 연대기적(chronological)ㆍ선형적(linear)ㆍ양적(quantitative)ㆍ보편적ㆍ절대적 시간으로서 ‘측정되는(measured)’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시의적(opportune)ㆍ비선형적(nonlinear)ㆍ질적(qualitative)ㆍ편향적ㆍ상대적 시간으로서 ‘경험되는(experienced)’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17)
크로노스 | 카이로스 |
---|---|
의미를 배제한 기계적ㆍ연속적ㆍ객관적ㆍ물리적 시간 | 의미를 담은 감성적ㆍ비연속적ㆍ주관적ㆍ심리적 시간 |
연대기적ㆍ선형적ㆍ양적ㆍ보편적ㆍ절대적 시간 | 시의적ㆍ비선형적ㆍ질적ㆍ편향적ㆍ상대적 시간 |
측정되는 시간 | 경험되는 시간 |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는 종교에서도 활용된다. 흔히, 계시 종교(revealed religion)가 발달한 근동(혹은 중동)과 유럽 문화권에서는 강렬한 경험을 강조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이 우세하고, 자연의 순환 주기와 질서를 중시하는 동아시아에서는 법칙을 강조하는 크로노스의 시간이 우세할 것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오해다. 실제는 지구 대다수 종교ㆍ문화권의 시간관에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는 복잡하게 뒤섞인 형태로 존재한다.18)
인간 역사에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얽히는 일은 다반사다. 크로노스가 ‘이전’과 ‘이후’로써 역사ㆍ사건의 발생 순서만 기계적으로 나열한다고 하지만, 크로노스 시간으로 기록된 역사ㆍ사건은 단절이 아니라 연속선상에서 파악되어야 하고 해석을 통해 의미를 부여받아야만 그 본질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항시 그 변화의 과정이 주목된다. 바로 그 변화의 과정이 ‘임계점(critical point)’을 넘으면 크로노스의 시간은 즉시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바뀐다.19) 예를 들면, 조선 건국의 시간은 1392년이라고 연대기에 기록되지만, 이 사건은 1392년에만 일어난 분절된 장면이 아니다. 1392년 이전에도 조선 건국과 관련되는 사건이 누적되고 있었고, 1392년 이후에도 조선 건국과 관련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1392년은 조선 건국 사건이 임계점을 넘어선 때 혹은 최고 정점인 시간일 뿐이다. 1392년이라는 숫자는 크로노스지만, 연속되던 사건이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조선 건국’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고, 당시 한반도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 ‘조선 건국’을 경험함으로써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사건의 임계점 순간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얽히는 시간이다. 종교는 이 중첩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 이유는 종교를 구성하는 여러 시간적 요소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다. 회심(回心)의 시간, 구도의 길에 나서는 시간, 위대한 스승을 만나는 시간, 깨달음을 얻는 시간, 계시가 내리는 시간, 계승자가 되는 시간, 기도를 비롯한 종교 의례를 하는 시간 등, 종교의 성스러운 시간은 여럿이다. 이 시간은 크로노스에 불과한 양적 시간이 아니라 카이로스의 질적 시간이다. “왜 하필이면 그 시간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해서, 종교는 크로노스가 카이로스로 넘어가는 그 얽힘의 지점을 주목한다. 그리고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며, 그 결과물을 내어놓는다. 이것이 정당성 획득의 과정이다.
Ⅲ. 크로노스에서 카이로스로
대순진리회의 시간관에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얽힘, 그리고 전이(轉移)가 존재한다. 천도와 인사, 그리고 시간과 윤리를 의제로 올려놓고 이 이야기를 풀어가도록 하자.
종교는 다양한 형태의 통과의례나 자연의 주기를 기념하는 의례들로써 인간 또는 공동체를 자연의 흐름에 맞추려고 시도한다. 우주(cosmos)와 인간(humankind)을 연결하는 이런 실천은 대개 멀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가 명명한 ‘anthropocosmic(인간학적 우주론의 또는 인격적 우주론의)’라는 용어로 표현된다.20) 동아시아에도 이런 사유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재이설(災異說, 天譴說), 천인합일설(天人合一說), 천인상관설(天人相關說, 天人感應說)21)로 불리는 사상은 하늘의 일과 인간의 일이 분리된 게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또는 연결되어야 한다는 관념을 전제하는 것이다.
자연ㆍ우주 또는 천을 인간과 묶는 사고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얽힘을 가져왔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인들은 시간을 단순한 세월의 흐름으로 보지 않고 규칙적인 천지 변화[易ㆍ天時]를 담은 천도(天道)로 규정했다. 그리고 거기에 인간의 삶[人事]을 맞춤으로써 인도(人道)를 세우고자 했다.22) 해ㆍ달ㆍ별이 만드는 시간은 인간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으로도 여겨졌다. 별을 의미하는 ‘숙(宿)’과 운명(運命)을 결합한 ‘숙명(宿命)’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유래한다.23) 태어난 생년월일의 사주팔자(四柱八字)로 운명을 추단하는 것 역시 이런 사유에 기초한다. 하늘이 알려주는 시간 법칙은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이었으니, 개인 운명만이 아니라 농사(農事)를 비롯한 모든 인사(人事)도 거기에 따라야 하는 것이었다.24)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헌이 『여씨춘추(呂氏春秋)』 「십이기(十二紀)」와 『예기(禮記)』 「월령(月令)」이다. 이 서적의 저자들은 크로노스, 즉 해ㆍ달ㆍ별로 측정되는 시간[天時]을 1년 12달로 정리하여 맹춘(孟春)ㆍ중춘(仲春)ㆍ계춘(季春), 맹하(孟夏)ㆍ중하(仲夏)ㆍ계하(季夏), 맹추(孟秋)ㆍ중추(仲秋)ㆍ계추(季秋), 맹동(孟冬)ㆍ중동(仲冬)ㆍ계동(季冬)이라 이름하고, 그 자연의 법칙에 따라 천자의 생활과 정치ㆍ군사 및 농사를 비롯한 인간의 생활방식을 다양하게 규정했다.25)
천시로 규정되는 천도는 측정되는 시간인 크로노스에 준거한다. 인사는 인간의 경험이다. 천시에 인사를 맞추는 일은 크로노스가 인간 경험 영역으로 들어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시간은 크로노스의 규칙성을 유지하면서 카이로스의 특징을 지니게 된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얽힘이 발생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근대 한국에서 출현한 대순진리회의 시간관에도 동아시아 전통의 이러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겹침이 엿보인다.
우선, 대순진리회는 인간이 크로노스의 시간을 체계적으로 인지하게 된 것이 요임금 시절이라고 본다.
상제(증산)께서 요(堯)의 역상 일월성신 경수인시(曆像日月星辰敬授人時: 해ㆍ달ㆍ별의 운행을 헤아려[曆象] 사람들에게 때[時]를 알려주도록 하였다)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천지가 일월이 아니면 빈 껍데기요, 일월은 지인(知人)이 아니면 허영(虛影)이요, 당요(唐堯)가 일월의 법을 알아내어 백성에게 가르쳤으므로 하늘의 은혜와 땅의 이치가 비로소 인류에게 주어졌나니라.” 하셨도다.26)
‘역상일월성신(曆象日月星辰) 경수인시(敬授人時)’의 문헌 출처는 『서경(書經)』 「우서(虞書)ㆍ요전(堯典)」이다. 일월과 별의 움직임을 살펴 때[時間]를 알린다고 함은 『주역』에서 천문을 관찰하여 시간의 변화를 파악한다(觀乎天文, 以察時變)고 했던 것과 같다.27) 해ㆍ달ㆍ별을 관측하여 그 주기를 정하는 일을 역상(曆象)이라 하고, 『서경』 「주서(周書)ㆍ홍범(洪範)」도 세(歲: 년)ㆍ월(月)ㆍ일(日)ㆍ성신(星辰)ㆍ역수(曆數)를 오기(五紀: 다섯 개의 벼리)라고 하였으니,28) 일월과 별의 규칙적인 주기로 파악되는 시간이란 구체적으로 역법(曆法)을 의미한다. 일월과 별이 알려주는 것은 그 주기성을 통한 시간의 법칙이다. 즉 측정되는 크로노스의 시간이다.
위 인용문에서 보듯이 대순진리회에서 최고신 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로 추앙받는 강증산(姜甑山, 1871~1909)은 해ㆍ달ㆍ별의 시간이 요임금 시대에 헤아려졌다고 말했다. 요임금이 크로노스의 시간을 역법으로 체계화하도록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증산은 이로써 하늘의 은혜와 땅의 이치가 비로소 인간에게 전해졌다고 밝혔다. 이 말은 인간의 삶이 일월의 시간 법칙을 담은 역법에 따른다는 것으로서, 곧 천시의 천도에 따라 인사를 펼칠 것을 강조하는 동아시아의 시간관과 같은 맥락임을 보여준다. 요임금이 구체화한 역법, 즉 측정되는 시간 크로노스에 맞추어 인간이 삶을 경험해야 한다면, 그 순간 크로노스는 카이로스가 된다.
증산의 다음 발언도 유사한 인식을 보여준다.
세상 사람들이 절후문(節候文)이 좋은 글인 줄을 모르고 있나니라. 시속 말에 절후를 철이라 하고 어린아이의 무지몰각한 것을 철부지라 하여 어린 소년이라도 지각을 차린 자에게는 철을 안다 하고 나이 많은 노인일지라도 몰지각하면 철부지한 어린아이와 같다 한다.29)
절후란 태양의 1년 움직임[黃道]을 15°씩 24등분으로[黃經] 나눈 24절기를 의미한다. 증산은 크로노스 시간을 표현한 24절기의 글귀가 좋다고 하면서, 절후 즉 철에 따른 삶을 살 수 있어야 철부지 신세를 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주어진 시간 법칙인 천도에 따라 인사를 만듦이 인간의 ‘현명한(철을 아는)’ 생활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서 측정되는 시간 크로노스와 경험되는 시간 카이로스가 겹치는 지점에 인간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순진리회에는 이와 관련한 논의가 많다. 예를 들어 증산이 쓴 글귀들 가운데 “연월일시분각(年月日時分刻)이 차례로 돌아가니[輪廻], 이 모두는 원형이정(元亨利貞)한 천지의 도이다.”,30) “하늘[天]에는 해와 달의 밝음이 있고, … 천도(天道)가 (해와 달의) 밝음에 있기에, 인간은 해와 달에 따라 움직인다.”31)라는 부분, 박우당(朴牛堂)이 “천리(天理)와 인사(人事)의 합일성을 밝혀 만상만유(萬象萬有)가 도 안에서 생성 존재하고 있는 진리를 확신케 하여야 한다.”32)라고 한 훈시 등도 천도와 인사의 관계를 밝혔다는 점에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얽힘으로 조명될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시간의 경험은 윤리로 곧잘 나타났다. 대순진리회 시간관에도 그런 내용이 들어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증산의 뒤를 이어 종통(宗統)을 세운 조정산(趙鼎山, 1895~1958)이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천지의 도이고,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간과 신명의 도이다.”33)라고 쓴 글귀다.
정산이 거론한 원형이정은 나고[元/生] 자라며[亨/長] 완성하고[利/斂] 근본이 되는[貞/藏] 만물의 원리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원은 봄[春], 형은 여름[夏], 이는 가을[秋], 정은 겨울[冬]에 각각 대응한다. 『주역』은 원이 인(仁), 형이 예(禮), 이가 의(義), 정이 지(智)라고 설명하고, 군자는 인의예지의 사덕(四德)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34) 이렇게 원형이정은 시간을 사시(四時, 四季)라고 하는 법칙으로 공식화하면서, 만물의 존재와 운행을 설명하는 기본 개념이라는 위상도 갖는다. 원형이정의 개념이 이렇게 확장하는 이유는 주희(朱熹, 1130~1200)의 『주역본의(周易本義)』에서 찾을 수 있다.
원(元)은 생물(生物)의 시작이니 천지의 덕이 이보다 먼저인 것이 없다. 그러므로 때에 있어서는 봄이 되고, 인간에게 있어서는 인(仁)이 되어 모든 선(善)의 으뜸이 된다.
형(亨)은 생물의 통함이니 사물이 이에 이르면 아름답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때에 있어서는 여름이 되고, 인간에게 있어서는 예(禮)가 되어 모든 아름다움의 모임이 된다.
이(利)는 생물의 이룸이니 사물이 각각 마땅함을 얻어 서로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때에 있어서는 가을이 되고, 인간에게 있어서는 의(義)가 되어 그 분수의 조화를 얻음이 된다.
정(貞)은 생물의 완성이니 실리(實理)가 갖추어져서 있는 바에 따라 각각 족하다. 그러므로 때에 있어서는 겨울이 되고, 인간에게 있어서는 지(智)가 되어 모든 일의 근간이 된다.35)
동아시아인은 원형이정을 시간 춘하추동과 윤리 인의예지에 연결하면서, 공간 동서남북으로까지 더 확장했다. 그러니까 시간과 공간[방위]을 뭉쳐서 이해하고, 그것을 인간의 수행 지침과 묶는 독특한 사유체계를 만들었다(<표 2>).36)
천도의 사덕(四德) | 元 | 亨 | 利 | 貞 | |
사시(四時) | 春 | 夏 | 秋 | 冬 | ← 시간 |
사방(四方) | 東 | 南 | 西 | 北 | ← 공간 |
인도의 사덕(四德) | 仁 | 禮 | 義 | 智 | ← 인간 |
시간과 윤리의 결합(정확하게는 삼간, 즉 시간ㆍ공간ㆍ인간의 결합)은 동아시아의 전통이다. 시간을 윤리로 이해한다는 것은 측정되는 크로노스를 인간 행동 경험[윤리 실천]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는 뜻이므로, 크로노스의 카이로스 전환을 말한다. 정산의 상기 글귀도 이와 같다. 그러니까 정산은 동아시아인들이 사유했던 시간과 공간의 결합으로써 만든 인간의 행동 규범, 즉 크로노스의 측정을 카이로스의 경험으로 활용함을 말한 것이다.
대순진리회에서 시간과 윤리의 결합은 다음 두 가지 지점에서 특징적이다. 첫째는 정산이 인의예지를 ‘인신지도(人神之道)’라고 표현함으로써 인간만이 아니라 신명도 ‘더불어’ 따르는 길이라고 한 데 있다. 그러니까 동아시아 전통이 천시에 따른 인간의 윤리를 강조했다면, 대순진리회는 천시에 따른 인간과 ‘신명’의 윤리를 같이 강조했다는 데에서 차이를 찾을 수 있다. 정산의 이 지적은 인간과 신명을 분리해서 보지 않고 합일로 보는 대순진리회의 독특한 관념인 신인상합(神人相合)ㆍ신인조화(神人調化)ㆍ인존(人尊)과 맞닿아 있다. 이 종교언어들의 설명은 여러 글에서 찾아볼 수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는다.37)
두 번째 특징은 인의예지의 실천이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惻隱之心)ㆍ수오지심(羞惡之心)ㆍ사양지심(辭讓之心)ㆍ시비지심(是非之心)의 사단(四端)38) 발현이라는 동아시아 전통과 결이 다르다는 데 있다. 증산은 다음과 같이 인의예지를 다르게 정의함으로써, 맹자의 사단과는 다른 실천을 요구했다.
不受偏愛偏惡曰仁 | 편벽된 사랑도 편벽된 미움도 용납하지 않음을 인이라 하고 |
不受全是全非曰義 | 모두 옳거나 모두 그르다고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음을 의라 하고 |
不受專强專便曰禮 | 오로지 강제하거나 오로지 편한 것을 용납하지 않음을 예라 하고 |
不受恣聰恣明曰智 | 교만한 총명을 용납하지 않음을 지라고 한다.39) |
맹자와 증산의 설명을 대비시킨 것이 <표 3>이다. 맹자의 사단 설명은 ‘~을 하라’는 행동 촉진형이다. 이와 달리 증산의 설명은 ‘~을 하지/받아들이지 말라[不受]’는 행동 제한형이다. 이 차이는 맹자가 마땅함이라는 명분으로 ‘무조건적 당위성’을 강조했다면, 증산은 특정한 감정이나 가치ㆍ처신ㆍ행동에 치우치지 말고 상황을 잘 판단하는 ‘선택적 유연성’을 강조한 데서 온 것이다. 아마도, 맹자가 일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가치를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단을 설명했다면, 증산은 일인칭 주인공 시점(주관적)에 일인칭 관찰자 시점(객관적)까지 더 고려하여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단을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맹자의 사단이 어떻게 실천해야 할 지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규범 윤리에 가깝다면, 증산의 사단은 실천에 전제되는 감정ㆍ인식ㆍ가치의 본질을 먼저 성찰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보는 메타 윤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순진리회에서 시간과 윤리의 결합[四德, 四端]은 동아시아의 전통을 이어받았지만, 재해석을 통한 실천을 요구하는 독창성을 가졌다고 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인간은 천시에 맞는 삶을 영위하거나 혹은 그것을 윤리로 치환하여 도덕적 수행을 하고자 한다. 이로써 시간은 측정에서 경험의 영역으로 옮겨가니, 곧 크로노스에서 카이로스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크로노스 시간 원(元/春)은 만물의 시작으로 규정되고, 사랑과 미움이 편벽되지 않은 인(仁)의 실천으로써 경험되면 카이로스로 전환된다. 크로노스 시간 형(亨/夏)은 만물이 통하고 성장함으로 규정되고, 행동 요령이 억지로 강제되거나 방만해지지 않는 예(禮)의 실천으로써 경험되면 카이로스로 전환된다. 크로노스 시간 이(利/秋)는 만물의 이룸으로 규정되고, 모두 옳다거나 모두 그르다거나 하지 않는 의(義)의 실천으로써 경험되면 카이로스로 전환된다. 크로노스 시간 정(貞/冬)은 만물의 완성이자 근본으로 규정되고, 총명이 지나쳐 교만해지지 않는 지(智)의 실천으로써 경험되면 카이로스로 전환된다.
이 논의에 한 가지 덧붙여 둘 게 있다. 그것은 원형이정-춘하추동의 크로노스는 세월 흐름에 따라 ‘하나씩 순차적으로’ 맞이해야 하지만, 인의예지는 ‘늘’ 실천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시간에 윤리를 대응시킨 동아시아의 논리는 부분보다 전체를 우선시하는 동아시아 특유의 전일적ㆍ유기적 사고관을 기초로 한다. 동아시아인들은 元/春/仁ㆍ亨/夏/禮ㆍ利/秋/義ㆍ貞/冬/信을 개별적으로 떼어놓고 이들을 순차적으로 맞이한다고 여긴 게 아니라, 元亨利貞-春夏秋冬-仁義禮智를 하나의 덩어리로 놓고 통합적으로 경험하는 것으로 사유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시간-윤리의 결합 논리는 개별적 개체의 크로노스가 카이로스로 하나씩 순차적으로 전환되는 게 아니라, 순환 주기[春夏秋冬/元亨利貞]의 크로노스 전체가 카이로스로 단번에 전환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Ⅳ. 카이로스의 전개 : 도수(度數)
인간의 시간 경험을 이끄는 장치가 있다. 대순진리회에서 그것은 도수(度數)로 설명된다. 경험되는 사건과 그 시간 전개는 도수라는 개념으로 풀이된다는 뜻이다. 이 장에서는 이것을 살피도록 한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에서는 인간이 경험하는 길흉(吉凶)이 시간에 따라 일어난다고 보았다.40) 이사ㆍ건축ㆍ결혼ㆍ장례 등의 주요 활동을 길일(吉日)ㆍ흉일(凶日)에 맞추거나, 태어난 연월일시의 사주(四柱)를 해석하면서 10년마다 바뀌는 대운(大運)에 따라 길흉을 추단하고, 토정비결이나 주역 점괘로 운세를 보는 풍습이 그 사례다. 이런 생활방식은 사건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된다는 게 아니라, 시간이 사건을 불러일으킴을 전제한다. 그리고 일어나는 사건은 곧 인간 경험으로 이어진다. 바로 크로노스의 영역이다. 소강절(邵康節, 1011~1077)의 원회운세설(元會運世說)도 이런 사고를 반영한 것이다.41)
만물의 일생이든, 우주의 운동이든, 역사든, 인간의 운명이든 간에, 그 모두를 전개하는 것은 시간이다. 대순진리회에서 이 사유가 잘 나타나는 게 도수라는 단어다. 다음 증산의 발언으로부터 이것을 살펴보자.
최덕겸ㆍ김자현ㆍ차경석 등의 종도들이 상제와 함께 있을 때 최덕겸이 “천하사는 어떻게 되오리까?”고 상제께 여쭈는지라. 상제께서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를 쓰시면서 “이렇게 되리라.” 하시니 옆에 있던 자현이 그것을 해석하는 데에 난색을 표하니 상제께서 다시 그 글자 위에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를 쓰시고 경석을 가리키면서 “이 두 줄은 베 짜는 바디와 머리를 빗는 빗과 같으니라.”고 일러 주셨도다.42)
천하사(天下事)란 세상 모든 일을 말한다. 증산은 그것이 12개의 지지(地支)로 된다고 밝혔다. 방위 또는 시간을 12로 나누는 개념은 동아시아만이 아니라 바빌로니아, 이집트, 그리스, 멕시코 등지에도 있었다. 다만 그 동물 구성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43) 동아시아에서 12개의 지지는 오행이 땅에서 육기(六氣: 風寒暑濕燥火)로 작용하고,44) 방위ㆍ시간도 12개로 구성된다는 논리로 설명된다.
증산은 이러한 12지지 위에 10개의 천간(天干)을 쓰면서 베를 짜는 바디 또는 머리를 빗는 빗의 원리와 같다고 하였다. 이것은 명백히 천간과 지지의 조합인 육십갑자(六十甲子)를 의미한다. 천간과 지지의 조합은 은나라 갑골문에 일부 보인다. 그때 이미 일진 기록에 활용되었다는 뜻이다.45) 하지만 육십갑자 전체가 확정되어 연대를 표기한 것은 한나라 시대인 기원전 105년[丙子年] 때 시작되었다.46) 오늘날에도 육십갑자는 연월일시의 시간을 표기하는 부호로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 그렇다면 증산의 발언은 천하사, 즉 세상 모든 사건이 육십갑자로 표기되는 시간에 따라 전개된다고 말했던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증산은 시간에 따른 이러한 일의 진행을 도수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설명했다. 전통적으로 도수는 도(度)를 나타내는 수치나 계량의 표준을 뜻하지만, 규칙ㆍ제도ㆍ도리ㆍ법칙, 그리고 한국에서는 천체 운동의 원리와 그 수치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던 개념이다.47) 증산이 ‘역사와 사건의 전개’로 재해석한 도수는 아마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우주 운행의 원리이자 그 질서와 만물 운동의 법칙. 적절한 시기에 이르면 일정한 순서에 따라 이루어지고 진행되는 절차이자 프로그램. 또한 여기에 어떠한 일을 완성하거나 이루는 데 필요한 기간(시기, 때), 그리고 그 일의 시작과 끝이 되는 시점이라는 뜻까지도 모두 포함한다. 증산은 상제로서 삼계 대권을 가지고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거나 정리하여 새로운 도수들을 만들었다.”48)
도수 개념에 들어있는 키워드들인 순서, 절차, 기간(시기, 때), 시작과 끝은 모두 시간을 의미한다. 시간의 추이에 따라 정해진 시간이 되면 특정한 일이 특정하게 일어난다는 뜻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특정 사건이나 행동은 아무 때나 일어나는 게 아니라 꼭 그 시간에만 일어난다는 의미에서 카이로스는 흔히 ‘적절한 때(right time)’로 번역된다. 따라서 도수는 카이로스에 해당한다.
대순진리회에서 카이로스 특징을 갖는 도수의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다. 1903년 무렵, 증산은 자신을 따르던 무리[從徒]에게 때가 되면 진인(眞人)이 등장하여 자신의 뒤를 이을 것임을 예언하면서, ‘시유기시(時有其時) 인유기인(人有其人)’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49) ‘때에도 그때가 있고, 사람도 그 사람이 있다’라는 뜻의 이 글귀는 적절한 때에 특정 사건과 인물이 나타난다는 뜻이니 곧 카이로스를 말한다. 또한 이것은 시간을 변수로 삼으면서, 특정 시간만을 해(解, solution)로 취한다는 의미에서 ‘시간의 함수(function of time)’라고 이름할 수 있다.
이러한 카이로스이자 시간의 함수가 곧 도수라는 사실은 증산의 다음 발언에서 살필 수 있다.
상제(증산)께서 六월 어느 날 천지공사를 마치신 후 “포교 오십년 공부종필(布敎五十年工夫終畢)”이라 쓰신 종이를 불사르시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이윤(伊尹)이 오십이지사십구년지비(五十而知四十九年之非)를 깨닫고 성탕(成湯)을 도와 대업을 이루었나니 이제 그 도수를 써서 물샐틈없이 굳게 짜 놓았으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하셨도다.50)
대순진리회에서 위 일화는 정산이 진인(眞人)으로서 종통을 세워 증산의 후계자가 되고, 1909년부터 1958년까지 50년 동안 증산의 뒤를 잇는 도수와 공부를 하게 될 예시였던 것으로 받아들여진다.51) 그러니까 ‘시유기시 인유기인’으로서, 때가 되면 진인이 나타나 50년 공부로써 증산의 뒤를 이어 새로운 기틀을 연다는 뜻이다. 증산은 이것을 ‘오십년 공부종필’ 혹은 ‘오십이지사십구년지비’의 도수라고 밝히고 있다. 이 사례에서, 도수란 적절한 때[시간]가 되면 특정 사건이 일어나며, 특정 기간[시간] 이어지고, 시작과 끝[시간]이 존재함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살필 수 있다. 그러므로 도수는 시간의 함수이자 카이로스에 해당한다.
증산이 새롭게 해석한 도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첫 번째는 도수를 만들고 풀어나가는 측면이다. 대순진리회에서 도수에 대한 이 역할은 오직 증산ㆍ정산만 맡을 수 있는 것으로 믿어진다.
증산은 도수를 만물의 운행 법칙이자 질서로 규정하고, 선천에서는 상극의 지배를 받아 도수가 어긋나게 되었다고 판단했다.52) 그리고 삼계(三界)의 대권을 주재하여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의 무궁한 선운(仙運)을 열어 낙원을 세운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바로 그가 1901년부터 1909년까지 행했던 삼계공사(三界公事)이자 천지공사(天地公事)다.53) 인간의 처지에서는 만물의 운행 법칙이자 질서인 도수를 받아들이고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증산은 자신이 삼계의 대권으로써 도수를 뜯어고치고 새로 만든다고 하였다. 인간의 처지에 그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대순진리회가 증산을 최고신으로 신앙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니까 증산이 도수를 뜯어고칠 자격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기에 그를 하느님으로 인정한다는 말이다.54) 도수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뜯어고치고 새로 만든다고 한 것은, 도수에 대한 증산의 독특한 종교적 해석 결과다.55)
대순진리회는 증산이 이전의 도수들을 뜯어고쳐 정리하고 새로 만들었으며, 정산은 그 도수들을 풀었다고 믿는다. 이것은 정산이 “상제(증산)께서 짜 놓으신 도수를 내가 풀어나가노라.”56)는 말에 근거한다. 도수를 짠다는 것과 도수를 푼다는 것의 차이는 증산과 정산의 역할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대순진리회에 의하면, 증산은 최고신으로서 삼계 대권을 주재하여 천지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새로 짬으로써 후천이라고 하는 지상선경(地上仙境)을 계획하고 설계했다. 정산은 그 뒤를 이어 종통을 세우고, 증산의 계획과 설계를 이어받아 시공ㆍ시행으로써 구체화했다.57) 이로 미루어 보면, 증산이 도수를 짰다는 것은 후천 설계와 계획으로, 정산이 도수를 풀었다는 것은 그 설계와 계획의 시공ㆍ시행으로 각각 이해할 수 있다.
도수가 조명되는 두 번째 측면은 도수에 따라 일을 행한다는 데 있다. 대순진리회에서 도수에 대한 이 역할은 일반 도인들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믿어진다. 우당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훈시했다.
우리의 도가 신도(神道)이기 때문에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라도 도수(度數)가 차면 천기자동(天機自動)에 의해 말을 하게 됩니다. 생각이 나고, 예감으로 느껴지는 것은 천기자동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일지라도 그 말은 하늘이 시켜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58)
도에서는 도수(度數)라고 하고 사회에서는 운(運)이라 한다.59)
우리의 진리, 이론에 있어서 운에 맞으면 이것을 도수(度數)라 한다. … 운이라는 것은 사람이 태어나기 전에 어느 날에 어떻게 나서 어디서 커서 어떻게 된다는 등등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진리라 한다. 즉 천지가 열릴 때에 언제, 무엇이, 어떻게 된다는 것, 그것을 운기(運機)라고 한다. 운기란 우리가 태어나고 죽고 하는 것이 천지가 시작될 때 다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하고 나하고 이 자리에서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다 정해져 있는 것이다. 오다가다 잠깐 만나는 것도 운이라고 하고 연분이라 한다. 그 과정을 그대로 나가니까 이것을 도수라고 한다. 도수에 맞으면 틀림없이 된다. 이론에 맞고 천지도수에 맞는 것이다.60)
이에 의하면, 보통의 인간은 도수를 짜거나 풀어나가거나 할 수 없다. 정해진 도수, 즉 적당한 때가 도달하면 자동[天機自動]으로 사건이 전개되며, 그에 의해 인간은 움직이고 역사가 만들어진다. 우당은 이것이 운(運)과 같다고 했다. 증산이 하늘의 주재자로서 도수를 새로 만들었고, 정산은 그것을 풀어나감으로써 구체화했다면, 이제 인간은 도수가 닿는 대로 행하게 된다는 말이다.
정리하자면 도수는 시간의 함수로서, 적절한 때에 특정한 사건이 발생하는 카이로스의 전개를 의미한다. 대순진리회의 도수는 두 가지 측면에서 다르게 조명된다. 증산과 정산의 입장에서 도수는 폐기되고 만들어지고 구체화한다. 이에 비해 보통 인간 입장에서 도수는 받아들이고 순응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도수는 시간의 함수이자 카이로스지만, 그 경험되는 시간은 증산ㆍ정산의 경우와 보통 인간의 경우에서 다르다고 해야 한다.
이 절을 마치기 전에 시간의 함수인 도수와 관련하여 한 가지 짚어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선천에는 ‘모사(謀事)가 재인(在人)하고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라’ 하였으되 이제는 모사는 재천하고 성사는 재인이니라.”61)고 한 증산의 발언 해석 문제다. 혹자는 증산의 이 발언이 도수 사상을 담았다고 규정하고, 앞으로는 선천과 달리 인간이 하늘을 대신하여 모든 일을 결정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한다.62) 필자는 그 의견에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첫째, 일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모사가 도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모사가 도수를 만드는 일이라면, 선천에 모사를 인간이 했으므로 선천에는 인간이 도수를 짜고 만들었다는 뜻이 된다. 대순진리회 세계관에서 도수는 우주의 운행 법칙이나 진행을 말하는 것인데, 선천에 인간이 그것을 만들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선천의 인간 모사는 인간이 도수를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증산의 상기 발언을 도수의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둘째 이유는 도수가 적절한 때가 되면 무조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인간의 의지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도전은 도수가 운이라고 하였다. 몇몇 인간은 놀랄만한 의지와 노력으로써 운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증산의 상기 발언은 운을 극복하고 바꿀 가능성의 정도를 말한 게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역사의 절대적 흐름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도수가 인간의 노력으로써 실현될 수도,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면, ‘모사재천 성사재인’은 도수와는 다른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옳다.
이 글은 ‘모사재천 성사재인’을 해원 맥락에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이제 범사에 성공이 없음은 한마음을 가진 자가 없는 까닭이라. 한마음만을 가지면 안 되는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무슨 일을 대하든지 한마음을 갖지 못한 것을 한할 것이로다. 안 되리라는 생각을 품지 말라.”63)고 했던 증산의 발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해원시대(解冤時代)다. 이것의 세팅은 하늘의 모사다. 인간은 누구든 의지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다 이룰 수 있는 해원의 시대를 맞이했다. 성사는 오직 인간의 마음 씀씀이와 노력 여하에 달렸다. 그러니까 ‘모사재천 성사재인’ 현상을 하나의 도수가 닥친 것으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모사 자체가 도수를 만드는 것이라거나, 인간이 하늘을 대신하여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것으로까지 확대 해석하는 일은 도수 본연의 의미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
Ⅴ. 카이로스의 유형들
이 장에서는 대순진리회에서 경험되는 시간 논의를 좀 더 조명할 것이다. 종교가 시간을 다루는 방식은 인간의 일상을 영적인 영역으로 이끄는 핵심 열쇠 가운데 하나이므로,64) 종교의 시간 경험은 중요하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종교가 설정한 특별한 시간을 특정한 방식으로 경험함으로써 평범하지 않은 삶을 접하게 된다. 이것을 하나씩 간단히 들여다보기로 하자.
대개 종교는 시간을 의례 시행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즉, 종교에서 시간은 공간과 함께 ‘준수(observance)’해야 하는 것, 그리고 의례 참여(ritual participation)의 문제로 취급된다.65) 종교인에 의해 선택된 성스러운 시간은 창조주나 초인적인 조상 또는 스승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았거나 우주의 주목할 만한 움직임을 기록한 때로서, 기념되는 대상의 가르침이나 정신을 구현한다. 그 패러다임의 힘은 시간의 성스러움을 재충전한다. 이를 위해 거룩한 문구나 경전 암송을 포함하는 다양한 의례가 실시된다.66) 성스러운 시간을 맞이하는 종교인은 자기가 속한 종교의 초월성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스러운 시간은 곧 의례의 시간이다.67)
대순진리회의 시간과 의례 연결 지점은 여러 곳이다. 그 가운데 첫째는 기도와 치성(致誠)이다. 기도는 대순진리회의 목적(도통과 개벽)을 달성하기 위해 상제와 소통하며 기원하는 의례로서68) 12종의 주문69) 봉송으로 이루어지는데, 다음 <표 4>와 같은 정해진 시간에 집행된다.70)
평일(平日) 기도 | 아침 7시[辰時], 낮 1시[未時], 저녁 7시[戌時], 밤 1시[丑時] |
주일(主日) 기도 ※ 甲日, 己日 | 아침 7시[辰時], 낮 1시[未時], 저녁 7시[戌時], 밤 1시[丑時] 밤 11시[子時], 아침 5시[卯時], 낮 11시[午時], 저녁 5시[酉時] |
핵심은 시간을 오행으로 치환하고 그것을 기도 의례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데 있다. 간단히 살피자면, 평일 기도는 진술축미(辰戌丑未)의 시간에 한다. 진술축미는 오행에서 토(土)에 해당하며, 토는 만물의 운행을 상징한다(<그림 2>).71) 상제는 만물을 운행하는 주체이고, 만물 운행의 원리는 토이며, 토를 상징하는 시간은 진술축미이기에, 상제와 소통하며 종교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기도는 이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주일 기도는 갑일(甲日)과 기일(己日)에 하는 기도를 의미하는데, 평일 기도의 진술축미 시간과 함께 자오묘유(子午卯酉)의 시간에도 기도를 더 행해야 한다. 자오묘유는 동서남북의 사정(四正)을 의미하면서 수화목금(水火木金)을 상징한다. 수화목금은 원형이정이자 춘하추동에 상응한다. 이렇게 갑일과 기일의 주일 기도는 수화목금과 토가 합친 오행의 시간을 모두 활용한다.
주일 기도 또는 평일 기도를 할 때는 12종의 주문 전체를 한번 읽은 후에, 기도주와 태을주 주문을 읽는다.72) 여기에는 순서가 있다.
시간에도 음양이 있고 날짜에도 음양이 있어 그날의 음, 양에 맞추어 기도주, 태을주를 읽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수도 공부다.73)
위 인용문은 우당의 훈시다. 이에 의하면, 시간을 모은 날짜에는 음과 양이 있으니, 천간이 갑병무경임(甲丙戊庚壬)인 날은 양일(陽日)이 되어 태을주를 먼저 읽고, 천간이 을정기신계(乙丁己辛癸)인 날은 음일(陰日)이 되어 기도주를 먼저 읽는다. 이러한 우당의 설명은 의례와 시간의 결합 방식을 보여준다.
정리하자면, 대순진리회 기도는 시간을 의례의 기준으로 삼는데, 그 기준이란 만물 그리고 그것의 운행을 상징하는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만물 존재와 운동의 상징을 담은 시간이 기도 의례의 시행으로 연결되고, 여기에서 카이로스는 종교적 삶을 이끈다.
치성은 대순진리회의 중요한 역사나 시간을 경축ㆍ기념ㆍ감사하고 성신(誠信)을 표현하거나 고유(告由) 혹은 사죄를 위해 올리는 의례를 말한다.74) 치성이 이루어지는 시간은 <표 5>75)와 같다.
주목할 것은 절기에 행하는 치성이다. 원단ㆍ대보름ㆍ추석ㆍ입춘ㆍ입하ㆍ하지ㆍ입추ㆍ입동ㆍ동지의 절기들은 만물이 존재하고 성장하는 원형이정을 확장한 형태라는 점에서, 우주의 운행 법칙을 담은 시간이 절기 치성의 시행 기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76) 따라서 절기 치성은 기도와 마찬가지로, 만물의 존재성과 운동성을 담은 것으로 이해되는 시간을 영적 체험의 통로로 삼는다. 체험되는 시간인 카이로스가 종교적인 것이 되는 지점이 여기이기도 하다.
대순진리회에서 시간과 의례가 연결되는 두 번째 지점은 공부(工夫)다. 현재 시행되는 공부에는 시학공부(侍學工夫)와 시법공부(侍法工夫), 두 종류가 있다.77) 시학과 시법은 36명(임원 12명, 남자 평도인[外修] 12명, 여자 평도인[內修] 12명)이 모여 하루 동안 짜인 규칙에 따라 행하는 공부인데, 이 규칙은 시간과 의례의 조합에 따른다.
짧게 살펴보자면, 하루 24시간을 전반부 12시간과 후반부 12시간으로 나누고, 임원 12명은 전반부와 후반부 1시간씩 총 24시간을 공부하며, 남자 평도인과 여자 평도인 12명씩은 각각 하루 3시간씩 남자 총 36시간, 여자 총 36시간 합쳐 72시간을 공부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숫자 12ㆍ24ㆍ36ㆍ72는 시간 단위다. 12와 24는 12시와 24시 또는 12월과 24절후의 시간 숫자다. 36과 72도 우주의 시간을 상징하는 숫자다. 36과 72의 구체적인 의미는 시학공부를 마친 후 차례로 치러야 하는 3개의 강식, 즉 초강식(初降式)ㆍ합강식(合降式)ㆍ봉강식(奉降式)을 설명한 우당의 다음 훈시에서 찾을 수 있다.
무엇을 도라 하느냐? 전 우주, 천지 전체, 모든 것이 생하고 크고, 수많은 생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온갖 법칙, 변칙, 조화를 도라고 한다. 5일을 1후(侯)라 하고, 3후(侯)면 보름이라 하니 이것이 1절후다. 1절후가 음과 양으로 한 달을 이룬다. 한 달이 세 개 모여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철이 되고 1년이 되는 것이다. 1년에는 72후가 있고 24절후가 있고 12달이 있다. 시간이 모여서 날이 되고, 날이 모여서 달이 되고, 달이 모여서 1년이 된다. … 1후는 5일이고 그 이치로 주일을 본다. 공부도 여기에 맞추어서 한다. 5일을 공부하게 되면 5개 반이 되고, 이게 모여서 초강식(初降式)을 한다. 보름이 되면 초강이 3번이고 합강(合降)이 된다. 이것을 자리공부라 한다.78)
1ㆍ2ㆍ3월은 봄, 4ㆍ5ㆍ6월은 여름, 7ㆍ8ㆍ9월은 가을, 10ㆍ11ㆍ12월은 겨울이다. 한 달은 30일이고 5일마다 1후가 있다. 기후(氣候)할 때의 후(候)다. 1후마다 주일기도를 모시고 초강식을 한다. 1후가 셋이 합하면 한 절후가 되고, 1절후마다 합강식을 한다. 한 달에는 절후가 둘, 후가 여섯이 있다. 그래서 1년 12달에는 72후와 24절후가 있다. 이것을 가리켜서 도라고 한다. 앞으로 5일에 초강, 15일에 합강, 45일에 봉강식을 하니 이것이 바로 자리공부다.79)
도는 음양이고 사상ㆍ오행이며 1년, 12월, 360일이다. 모든 조화ㆍ법칙은 음양에서 나온다. 음양의 원리에 의해 1년 12월에 사철이 다 들어가 있으며, 또 여기에 72후(侯)가 들어있어 모든 조화가 그 안에 다 있다. 음양의 이치로 변화하니 그것이 도이다.80)
우당은 1년, 12월, 360일이 도(道)라고 말한다. 완전체 원(圓)을 360°로 보고, 편의상 1년을 360일로 불러왔던 것이 동아시아 전통이다. 360의 10%인 36도 우주를 의미하는 숫자로 인식되었고, 36의 두 배인 72 역시 그러한 위상을 갖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니까 36은 360일 1년을 상징하는 시간의 숫자로 이해될 수 있다.
12개(세분하면 24개)의 시(時)가 모여서 날이 되고, 날이 모여서 달이 되고, 달이 모여서 1년이 된다. 우당은 이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우주 만물의 모든 조화와 삶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강식(降式)은 크로노스의 시간을 기준으로 정해지니, 5일이 모이면 1후(候)가 되므로 1후마다 주일 기도를 모시고 초강식을 한다는 것, 1후(5일)가 3개 모이면 1절후(15일)가 되므로 합강식을 한다는 것, 1절후가 3개 모이면 3절후(45일)가 되므로 봉강식을 한다는 것, 3절후가 24개 모이면 72후가 되어 1년이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러니까 72는 곧 1년을 이루는 후라는 시간을 의미한다.
간단하게 살폈다고 하더라도, 대순진리회의 시학ㆍ시법공부가 시간과 결합한 종교 행위라는 사실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이 글에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기도나 치성이 특정한 시간을 선택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면, 시학ㆍ시법공부는 시간을 ‘구성’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는 차이가 있다. 기도ㆍ치성이 경험되는 카이로스 시간을 영적 체험의 통로로 삼는다면, 시학ㆍ시법 공부는 그 시간을 짜고 만들어 나간다는 게 각각의 특징이다. 그러므로 시학ㆍ시법 공부는 카이로스를 통해 새로운 크로노스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실은 ② 재조정되는 시간과 ③ 통치되는 시간을 논의하는 다음 시간관 연구(Ⅱ)에서 다룰 것이다.
Ⅵ. 닫는 글
지금까지 대순진리회 시간관을 밝히기 위하여, 측정되고[크로노스] 경험되는[카이로스] 시간 범주 안에 몇몇 의제들을 집어넣고 논의하였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대로, 지구 대다수 종교ㆍ문화권의 시간관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뒤섞인 형태를 띤다. 대순진리회 시간관 역시 마찬가지다. 측정되는 시간을 경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대순진리회의 모습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중첩으로 보이기도 하고, 크로노스에서 전개되는 사건이 임계점을 넘어 종교적 색채를 띠면서 카이로스로 전이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특징적인 면모도 물론 있다. 그것은 카이로스를 이끄는 장치로 시간의 함수인 도수가 설정된다는 점, 시간 개념에서 치환된 윤리는 독창적 재해석을 통해 인간과 신명에게 동시에 적용되는 행위 규범으로 거듭남으로써 동아시아 전통의 시간-윤리 결합과는 색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점, 시간을 참여와 준수의 차원에서 적극 활용한 결과가 기도ㆍ치성ㆍ공부라는 점이다. 기도와 치성은 시간을 경험과 결합하는 카이로스에 중점을 둔다면, 시학ㆍ시법 공부는 카이로스를 통해 새로운 크로노스를 구성하는 데 중점을 둔다는 사실은 향후 논의를 이끄는 핵심이다.
천도와 인사, 도수, 기도, 치성, 공부를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개념 위에 얹어낸 이 논의들은 대순진리회 시간관 연구의 서설(序說)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 글은 대순진리회 시간관 연구의 외연을 넓히는 데 일정하게 공헌하리라 본다. 대순사상에 익숙하지 않은 외부 연구자들에게 자료와 이슈를 제공함으로써 연구의 문호를 여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이요, 나아가 대순진리회의 주요 수행 가운데 하나인 시학공부와 시법공부의 시간 개념 이해를 심화시킴으로써 실천 분야의 연구 진작에도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 뒤를 이을 신선한 관점과 설명들이 개발되기를 기대한다.
Ⅰ장에서 밝힌 대로 이 글은 대순진리회 시간관의 세 가지 범주 가운데 ① 측정되고[크로노스] 경험되는[카이로스] 시간만 다루었다. 필자에게 당장 주어진 숙제는 ② 재조정되는 시간과 ③ 통치되는 시간의 범주 속에서 의제들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 논의의 핵심은 대순진리회 도인들이 추구하는 목적인 도통(道通)과 후천개벽이 시간과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밝히는 데 있다. 조만간 이 숙제를 매듭지어서, 대순진리회 시간관의 전체 밑그림 스케치를 완수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