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한국신종교의 가사에 관한 연구는 미개척 영역으로 아직 초기 단계에 있다. 2021년 8월에 박병훈이 박사학위 논문을 발표한1) 후 관련 연구를 왕성하게 진행하고 있으며,2) 김탁이 1편의 논문을 발표한3) 정도에 머물러 있다. 한국신종교 가사에 관해서는 여러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가 있지만,4) 여전히 미진한 편이다.
『만법전(萬法典)』은 대한불교용화종(大韓佛敎龍華宗)의 많은 비밀경전 가운데 하나로 간략하게 언급된5) 이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초판 1991년, 개정증보판 2001)과 김홍철 편저, 『한국신종교대사전』(모시는 사람들, 2016), 한국민족종교협의회에서 발행한 『한국민족종교문화대사전』(2020)6) 등에서 용화교의 많은 경전 가운데 하나로 필사본이라고 그 이름만 전한다. 그러나 불과 몇 명의 전문학자들만 보았을 가능성이 있고, 그 실체와 내용을 짐작할 방법이 전무했다. 다만 『만법전』이 ‘용화교의 경전’ 가운데 하나라는 단순한 기술만 있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법전』이 1986년 3월 20일에 대구직할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신라불교출판사에서 편집 겸 발행인 문창민(文彰敏)의 명의로 인쇄·출판된 국판(菊版)의 책으로 유행되었다.7) 이 책은 1990년 3월 20일에 5판까지 발행하여 많은 사람이 보았다. 이후 똑같은 내용의 책이 1994년 9월 18일에 대구직할시 중구 봉산동의 삼영불교출판사에서 ‘펴낸 이’ 이재근의 명의로 발행되었는데 지면이 커진 신국판(新菊版)으로 간행되었고, 1995년 2월 10일에 2판이 발행되었다. 각 판이 어느 정도로 발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비교적 짧은 기간에 7판이나 발행되어 많은 사람이 읽은 책이다. 그렇지만 『만법전』은 지은이도 밝히지 않았고, 책에도 「해제」가 없어서 단지 불교 계통의 책으로만 인식된 채 지금까지 유포·전승되는 실정이다. 『만법전』에 실린 내용이 전통적인 불교 교리와 달리 매우 독특하다는 점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일부 수련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정한 반향을 일으키면서 상당히 주목받았다.
한편 전남대학교 도서관에 편자미상(編者未詳)의 석판본(石版本) 『만법전(萬法典)』이 OC 3U 만43으로 소장하고 있다. 국한문혼용본(國漢文混用本)으로 96장(張)이다. 이 책은 표기법이 다를 뿐 1986년 이후 인쇄본으로 간행된 『만법전』과 내용상 차이가 거의 없다. 따라서 『만법전』의 석판본과 인쇄본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만법전』의 첫 장에는 “나무미륵존불(南無彌勒尊)”이라는 글귀와 함께 왼손에 여의주를 쥐고 서 있는 미륵불상의 모습이 실려 있다. 이어서 「만법전간행서(萬法典刊行序)」가 1986년 2월 22일에 제2대 국회의원이었던 등각법사(等覺法師) 박성하(朴性夏)의 이름으로 실려 있다. 이 서문에는 『만법전』의 저자, 간행기관, 간행지역 등을 알 수 있는 더 이상의 정보가 전혀 없다. 다만 문창민(文彰敏) 아사(雅士)가 이 책을 가지고 자신을 방문했었다는 기록이 실려 있을 따름이다. 이 『만법전』에 대해 박성하는 “유불선(儒佛仙) 삼교(三敎)에 대한 교리를 윤관(綸貫)한 법전(法典)”이라고 평가하고 있고, “작자나 윤집자(綸輯者)가 미상(未詳)하여 유감 천만이다.”라고만 서술했다. 또 박성하는 풍설(風說)에 의하면 이 책이 “진묵대사(震黙大師)의 편집이라고들 말하지만, 이는 이치에 부당한 와전(訛傳)이다.”라고 밝혔다. 요컨대 『만법전』이 작자 미상의 알 수 없는 책이라고 설명했던 것이다.
작자 미상의 신비한 책이라는 그동안 있었던 세간의 평가를 넘어서 필자는 이 글을 통해 『만법전』이 과연 어떤 성격을 지닌 책인지를 ‘용화교의 경전’이라는 학계의 서술방식에 주목하여 구명하고자 하며, 그 내용은 과연 구체적으로 어떠한지를 『만법전』에 실린 가사(歌詞)를 중심으로 상세하게 밝혀보고자 한다. 나아가 필자는 이러한 연구를 통해 『만법전』의 내용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과 의의를 일정하게 구명하여 그 종교사적 가치와 위상을 다시 정립하고자 한다. 필자의 이러한 연구는 그동안 『만법전』이 이른바 수행자나 도인들 사이에서 그 내용을 정확하게 알기 어려운 신비한 형태의 책으로만 인식되고 유포되었던 상황에서 벗어나, 『만법전』의 실체가 ‘용화교의 핵심 비밀경전’이라는 기존 학계의 연구성과를 확실하게 뒷받침하고, 『만법전』의 실체를 모른 채 신비한 책으로만 알고 있었던 일부 수행자들의 수련과 신앙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연구는 연구사적 입장에서 조명할 때 한국 신종교의 독창적인 가사(歌詞)의 하나로서 향후 가사 연구의 범주를 확대하는 일에도 도움이 될 수 있고, 가사 연구의 한 전범을 마련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새롭게 발굴되는 종교가사의 하나로서 『만법전』에 실린 가사들이 가지는 가치와 의의는 향후 많은 연구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전인미답의 새로운 개척지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Ⅱ. 『만법전』에 실린 가사와 증산교
『만법전』에는 「도덕가(道德歌)」, 「호남가(湖南歌)」, 「불망가(不忘歌)」, 「판결가(判決歌)」, 「뱃노래」, 「채약가(採藥歌)」, 「훈사(訓辭) 1」, 「훈사 2」, 「화서초두문(火書初頭文)」, 「법언록(法言錄)」, 「연풍대(延豊坮)」, 「인과복록편(因果福祿篇)」, 「을해정월초삼일일세도수(乙亥正月初三日一歲度數)」, 「기초가(基礎歌)」, 「극락계안서(極樂稧安序)」, 「귀정가(歸定歌)」, 「생로가(生路歌)」, 「봉사놀음」, 「현법대전원법서(玄法大全源法書)」, 「대명문(大明文)」, 「일월가(日月歌)」, 「대명(大命)」, 「정심가(正心歌)」, 「운벽가(雲壁歌)」, 「만국가(萬國歌)」, 「청룡(靑龍)놀음」, 「대명하강(大命下降)」, 「교령(敎令)」, 「은복(隱伏)」, 「무량가(無量歌)」, 「천국가(天國歌)」, 「팔만장경관음제일장(八萬藏經觀音第一章)」, 「만세화(萬歲華)」, 「화기팔문(華奇八門)」, 「제세신약가(濟世神藥歌)」, 「극생가(極生歌)」 등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만법전』에는 모두 16편의 가사가 수록되어 있고,8) 비록 ‘가(歌)’라는 말이 붙어 있지는 않지만 가사(歌詞)라고 볼 수 있는 문장들도 많이 실려 있다. 그리고 『만법전』은 그 내용을 잘 알기가 어렵고 다만 불교 계통의 문장으로 추정되는 몇 편의 글을 포함한 총 268면으로 이루어진 활자본이다.
기존 학계의 연구 결과 『만법전』이 증산계열인 용화교(龍華敎)의 핵심 비밀경전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필자는 이 글에서 『만법전』에 실린 가사의 내용을 증산교단의 대표적인 경전 가운데 하나인 『전경(典經)』에서 근거를 찾아보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작업을 통해 『만법전』이 작자 미상의 자료가 아니라 증산계열의 교단인 용화교에서 간행된 책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밝힐 수 있을 것이며, 아울러 『만법전』에 실린 가사들을 ‘증산교가사’라고9) 이름 붙일 수 있는 기초 연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만법전』에는 천지공사라는 용어가 나온다. 천지공사는 약어(略語)로 공사(公事)라고도 표현되는데,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의 언행을 기록한 증산교단의 경전에 가장 많이 나오는 용어다. 이 외에도 증산은 신명공사(神明公事), 청국공사(淸國公事), 무신납월공사(戊申臘月公事), 명부공사(冥府公事), 해원공사(解冤公事), 상량공사(上樑公事), 개벽공사(開闢公事) 등의 용어를 사용하였다. 따라서 증산의 종교적 행위와 관련된 일에 으레 붙여지는 독창적인 용어가 바로 ‘공사(公事)’다. 공사는 “천지의 운행 법칙을 뜯어고쳐서 앞으로 올 새 세상의 모든 세세한 질서까지 결정한 일”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10)
위의 인용문에 ‘천지공사’라는 용어가 나온다는 사실을 살펴볼 때, 『만법전』에 실린 「훈사」는 증산교 계통의 가사가 분명하다. 천지공사는 “하늘과 땅을 포함한 우주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그 원리와 질서를 뜯어고친다.”라는 뜻을 가진 용어로서,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이 독창적으로 처음 사용한 종교적 용어다. 그리고 언덕(言德)도 증산이 강조한 말이다. 증산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베풀 것이 없으니, 오직 언덕(言德)을 잘 가지라.”11)라고 가르쳤다. 따라서 천지공사라는 용어를 읊고 있다는 점을 볼 때, 『만법전』에 실린 가사들이 증산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글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만법전』에는 ‘의통(醫統)’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의통 역시 증산 강일순이 처음으로 사용한 독창적인 조합어다. 증산은 1909년 1월에 지은 친필저작인 『현무경(玄武經)』에서 의통이라는 용어를 2번 사용했다. 또 『대순전경』에는 의통이라는 용어가 6번, 의통인패(醫統印牌)라는 용어가 1번 나온다. 『전경』에는 공사 1장 36절에 한자가 표시되지 않은 채 ‘의통’이 1번 나온다.
오지제자(吾之弟子)는, 일심(一心)으로 봉명(奉命)하고
순일진심(純一眞心)으로 의통(醫統)을 잘 기억하라.
수한도병(水旱刀兵)의 겁재(劫災)가, 서로 체번(替番)하야
그칠 새 없이 인세(人世)를 진탕하나,
아직 병겁(病劫)은 크게 없었나니라.
… 크고 무서운 병겁이 전 세계를 맹습(猛襲)할 때,
몸 돌이킬 여가(餘暇) 없고, 홍수(洪水) 밀듯 하리니,
모든 기사묘법(奇私妙法)을 다 버리고,
의통(醫統)을 잘 알아두었다가
죽는 사람을 많이 살리라.
인명(人命)을 많이 살리면, 복록(福祿)줄이 나오니라.
병겁(病劫)은 내가 그대로, 두고 너희에게 의통(醫統)을 부쳐주어,
오만년무극대운(五萬年無極大運), 조화선경(造化仙境)에
무위화신(無爲化身)하여,
한(限)없는 복록(福祿)을, 누리게 하였으니,
봉명봉명(奉命奉命) 일심(一心)하라. (「대명」)
장차 엄청난 병겁(病劫)이 세상에 만연하게 될 때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줄 신물(神物)이 바로 의통(醫統)이라고 전한다. 이 의통을 사용하여 죽어가는 사람들을 많이 살리면 온갖 복락이 올 것이라는 주장이 핵심이고, 이 일이 앞으로 5만 년 동안 이어갈 무극대운(無極大運)의 조화선경(造化仙境)을 이루는 기초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물론 이 의통이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증산교단에서 각기 다른 교리를 성립하여 제시하고 있다. 요컨대 의통에 관한 일관된 주장과 믿음이 아직은 없다는 말이다.
한편 『만법전』에는 의통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구절도 전한다.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사물(四物)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는지는 더 이상의 관련 기록이 없기에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리고 의통에 “특별한 물건의 형태를 지녔다.”라는 뜻을 가진 ‘인패(印牌)’라는 용어가 덧붙여졌다. 의통이 신비한 형태를 지닌 성물(聖物)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해석은 의통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어떤 물건이라고 풀이한 셈이다.
『만법전』에는 증산을 정확하게 언급한 가사 내용도 몇 군데 확인된다.
고부(古阜) 산천(山川) 바래시고, 후회자탄(後悔自歎) 하신 말씀,
한 말씀 들어주오. …
고부삼보(古阜三寶) 피는 날에, 한 부탁 들어주오. …
백팔중생(百八衆生) 용권(用權)할 때, 첫 공사(公事) 대도법(大道法)에,
한 말씀만 인도(引導)하오. (「도덕가」)
고부는 증산이 태어난 곳이다. 이와 관련하여 “고부(古阜) 양반”(「도덕가」)이라는 표현도 있다. 고부의 삼보(三寶)는 아마도 이 지역에 있는 세 군데의 산을 가리키는 말로 보인다. 이어서 고부 지역에서 법술과 도덕으로 광제천하(廣濟天下)할 때 한 말씀을 내리셔서 뭇 중생들을 부릴 때 처음으로 행하시는 공사(公事)의 큰 도법(道法)을 내려 한 말씀으로 인도해 주십사 하고 읊는다.
봉황(鳳凰)이 춤을 추고, 태을궁(太乙宮)이 개탁(開坼)이라.
… 이 즐거움 이 좌석(座席)에, 대법공사(大法公事) 하여 볼까?
… 인천주(人天主) 이 이치를, 너도 하늘 나도 하늘,
무궁무궁만사지(無窮無窮萬事知)에,
… 오만년지선세계(五萬年之仙世界)에, 첫 공사(公事)가 이것이라.
(「도덕가」)
태을은 태일(太一)과 혼용되어 사용되며, 증산은 태을주(太乙呪)라는 독창적인 주문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리고 대법공사(大法公事)도 천지공사와 비슷한 맥락에서 사용된 용어로 보인다. 인천주(人天主)는 사람이 스스로 하늘이 되는 진리를 의미한다. “너도 하늘, 나도 하늘”은 너와 내가 모두 존귀한 하늘이라는 말이다. 오만년(五萬年)의 선세계(仙世界)를 증산은 “후천 5만 년의 조화선경(造化仙境)”이라고 표현했다.
석가세존(釋迦世尊) 삼천년(三千年)에,
미륵회상(彌勒會上) 운(運)이 들어,12)
대도일월(大道日月) 밝았도다.
일출동방(日出東方) 되자 하니, 고부산천(古阜山川) 빛났도다.
반갑도다, 객망리(客望里)에, 강씨(姜氏) 배를 빌였도다.
대원사(大院寺) 대각후(大覺後)에, 만국세계(萬國世界) 살펴보니,
포덕천하(布德天下) 광제창생(廣濟蒼生),
내가 맡은 운수(運數)로다. (「기초가」)
앞부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3천 년 운이 지나간 후 미륵불의 회상이 오는 운을 맞았으니 큰 도(道)의 일월(日月)이 밝았다고 읊는다. 그리고 해가 동방에서 솟으니 고부(古阜)의 산천이 빛났고, 객망리의 강씨(姜氏) 가문에서 비로소 증산(甑山)이 태어났다고 노래한다. 또 증산이 모악산(母岳山) 대원사(大院寺)에서 1901년 음력 7월에 대각(大覺)한 후 온 세계를 두루 살펴보니,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 1864)가 말한 포덕천하(布德天下)와 광제창생(廣濟蒼生)이 바로 자신이 맡을 운수였다고 읊는다. 수운이 미처 완수하지 못한 운수와 임무를 증산이 맡아 그를 대신하여 행할 것이라는 주장을 노래한 대목이다. 증산이 탄생한 고부군 객망리라는 지명이 정확하게 언급되었고, 증산이 모악산 금산사의 말사인 대원사(大院寺)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을 읊고 있어서, 이 대목이 증산 강일순의 일생에 대해 노래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신미는 증산이 태어난 신미년(1871)을 가리킨다. 신미년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이 세상에 태어난 몸이 (이곳에) 도착하니 때는 바야흐로 을유년(1885년 혹은 1945년)이라고 읊는다. 그런데 을유년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닌 년도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치천하오십년”은 증산의 독창적인 말이고, “39년”은 증산이 이 세상에서 살았던 기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어서 구름이 하늘과 함께 힘써 일하는 때가 바로 오늘이라고 읊는다.
하계(下界)에 내리시사, 일출도수(日出度數) 운(運)을 맞춰,
서양(西洋)에 내리시니, 대법국(大法國)이 빛났도다.
천계탑(天階塔)에 높이 앉아, 천지수(天地數)를 살펴보니,
… 복희씨(伏羲氏) 팔괘운(八卦運)이, 부상(扶桑)에 실리기로,
가만히 살펴보니, 모악산하(母岳山下) 금산사(金山寺)라.
금불(金佛)에 몸을 붙쳐, 팔년(八年) 동안 일을 보니,
팔괘운(八卦運)이 회수(回數)되고, …
고부산천(古阜山川) 돌아드니, 오궁도수(五宮度數) 수(數)가 맞아,
시루 봉하(峯下) 객망리(客望里)에, 강씨(姜氏) 배를 빌어 나니,
… 오만년(五萬年) 빛난 도수(度數), 용화도장(龍華道場) 조얼시구.
… 객망리(客望里)에 봄이 드니, 미륵불(彌勒佛)이 나셨도다.
… 신미구월십구일(辛未九月十九日)에,13) 미륵불이 탄생일세.
삼계도사(三界道師) 우리 성불(成佛), 사생자부(四生慈父) 아니신가? (「만세화」)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階塔)은 『대순전경』의 증보 과정에서 천계탑(千啓塔) 혹은 천계탑(千階塔)으로도 표현되는데,14) 증산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영적(靈的)인 상태로 내려왔던 장소로 믿어진다. 그리고 “13자”는 동학(東學)의 시천주(侍天呪)가 13자(字)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가 1864년 갑자년에 대구에서 처형되어 형장의 이슬로 세상을 떠났고, 그 후 복희씨(伏羲氏)의 팔괘(八卦)의 운에 따라 모악산 아래 금산사(金山寺)의 불상(佛像)에 8년 동안 영체(靈體)인 상태로 의지하던 증산이 비로소 수운이 죽은 지 8년만인 1871년에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노래한 대목이다. 고부군 객망리는 증산이 출생한 장소다. 이어서 증산이 바로 미륵불(彌勒佛)이라고 노래하며, 증산이 1871년 음력 9월 19일에 태어났다고 읊는다. 이 구절만 보더라도 『만법전』에 실린 가사가 증산을 믿고 따르는 사람에 의해 지어졌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Ⅲ. 『만법전』에 실린 가사로 본 용화교
『만법전』에도 도수(度數)라는 용어가 상당히 많이 나오는데, 이는 증산의 영향이 분명하다. 도수(度數)는 회수(回數), 크기를 나타내는 수, 제도, 법도 등을 뜻하는 말이었는데, 증산 강일순이 ‘세상을 다스리는 법칙’이라는 의미로 종교적 재해석을 시도한 용어다. 특히 도수는 ‘새롭게 열릴 후천을 지배할 새로운 법도’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이른바 증산의 천지공사(天地公事)에서 중요하게 사용되었다.15)
7일, 100일 등의 특정한 기간을 뜻하는 말에 도수를 붙여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기간이라고 노래하였다.
큰 도수를 추산하여 개벽도수(開闢度數)를 마련할 때 그 앞에 살고 죽는 두 길이 놓여 있을 것이라고 읊는다. 개벽과 도수를 조합하여 특별한 용어를 사용한 점이 특기할만하다.
천존, 지존, 인존도 증산이 독창적으로 사용한 용어다. 『전경』 교법 2장 56절에 “천존(天尊)과 지존(地尊)보다 인존(人尊)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人尊時代)니라.”라는 증산의 말이 전한다. 그런데 「판결가」에서는 천존, 지존, 인존을 삼존위(三尊位)라고 부르고, 이들 삼존을 합치니 하나의 태극(太極)이 되었다고 노래한다. 천존, 지존, 인존을 태극과 연관시키는 일은 이전의 증산교단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현상이다.
인천시대(人天時代) 나왔다네.
어서 바삐 마음 고쳐, 내 맘 하나 고친 날에,
내 몸은 천국(天國) 백성(百姓), 세인(世人)은 악세계(惡世界)나,
내 몸은 선세계(仙世界)네. (「불망가」)
증산은 천존시대, 지존시대, 인존시대로 시대를 구분했다. 이에 반해 「불망가」에서는 “인천시대(人天時代)”라는 시대를 규정하는 새로운 명명을 시도했다. 인존시대와 함께 인천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노래한 것이다. 이어서 새 시대와 새 세상을 맞이했으니 이에 맞추어 사람들이 어서 바삐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고쳐야 할 것이라고 읊는다. 그렇게 되면 나의 몸은 곧 천국(天國)에 사는 백성과 같이 될 것이고, 내 몸 자체가 바로 신선(神仙)으로 화(化)하는 일이 일어나리라고 노래하고, 이 세상은 자연스럽게 신선세계(神仙世界)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증산이 강조했던 해원(解冤)에 도수(度數)라는 용어를 덧붙였다. 해원의 도수가 작용하는 이 세상에는 어떤 일이나 사물이라도 천대하지 말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조화와 화합하는 가운데 복이 올 것이라고 읊는다. “춘무인(春無仁)이면, 추무의(秋無義)라.”라는 말도 증산이 『전경』 교법 2장 45절에서 했다.
해원은 증산이 자신이 살던 시대를 규정하면서 했던 독창적인 용어다. 사람도 이름이 없던 사람이 명예와 기세를 얻고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도 증산이 했다.
천지간(天地間)에 충색(充塞)한 것, 귀신(鬼神)이니16) 귀신(鬼神)자리 잘 살피소,
나무 풀잎 하나라도, 신(神) 떠나면 말라지고,
벽(壁)에 붙인 흙이라도, 신(神) 떠나면 무너지네.
신(神)에 신(神)이 척이 있네. (「훈사」)
「훈사」의 “천지간에 가득 찬 것이 귀신이다.”라는 표현은 증산이 『전경』 교법 3장 2절에서 “천지에 신명(神明)이 가득 차 있으니, 비록 풀잎 하나라도 신이 떠나면 마를 것이며, 흙 바른 벽이라도 신이 옮겨가면 무너지나니라.”라고 말했던 일에서 연유한 구절이다.
“온 세상에 봄기운이 한 광주리에 가득 찼네.”라는 구절은 『전경』 행록 3장 27절에 증산이 어렸을 때 지은 글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증산은 그 앞 구절에서 천리호정고도원(千里湖程孤棹遠) 즉 “천 리나 되는 호수 길에 외로운 노 젓기가 멀기만 하네.”라고 읊었다고 하며, 제자들에게 “선왕문명(先王文明)이 아닐런가?”라는 말을 심고(心告)하고 받으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위의 인용문은 『만법전』 「법언록」의 전체 내용이다. 그런데 이 글귀는 증산이 직접 썼던 표현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기록이다. 『전경』 예시 31절에는 증산이 신경수의 집에 일월대어명 도수를, 문공신의 집에 천지대팔문의 도수를 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구절도 증산이 『전경』 행록 2장 5절에서 제자들에게 외워준 것이다.
이 구절 역시 증산이 썼던 글과 정확히 일치하는 기록이다.17)
선지포태(仙之胞胎)라는 구절은 『전경』 교운 1장 66절에 나온다. 선지조화(仙之造化)와 조금 다른 표현이다. 그리고 포태는 『대순전경』 4장 98절에는 태포(胎胞)로 나온다.
언청신(言聽信)은 언청신(言聽神)의 오자(誤字)로 보인다. 증산이 1909년 1월에 지은 친필저작인 『현무경(玄武經)』의 첫째 면에 “언청(言聽) 신(神) 계용(計用)”이라는 글귀가 있다. 따라서 「판결가」의 신(信)은 신(神)의 오기(誤記)로 보인다.
기초동량이라는 표현도 증산이 지은 『현무경』에 4번이나 나오는 용어다. 여기서도 『만법전』에 미친 증산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망기군자무도(忘其君者無道)요, 망기사자무도(忘其師者無道)요,
망기부자무도(忘其父者無道)요, 망기은자무도(忘其恩者無道)요,
망기덕자무도(忘其德者無道)요, 망기부자무도(忘其夫者無道)요,
망기부자무도(忘其婦者無道)요, 망기법자무도(忘其法者無道)니라.
(「인과복록편」)
위 인용문의 앞부분은 증산이 『현무경』에서 썼던 구절이다. 뒷부분의 망기부자무도(忘其婦者無道)와 망기법자무도(忘其法者無道)는 덧붙여진 구절이다.
증산이 지은 『현무경』에는 “조선국(朝鮮國) 상계신(上計神), 중계신(中計神), 하계신(下計神) 무의무탁(無依無托)”이라고 적혀 있다. 따라서 「만세화」의 상계신(上界神)과 하계신(下界神)이라는 표현은 오기(誤記)일 것이다.
상생화합(相生和合) 무궁도수(無窮度數),
황계염천(黃鷄炎天) 맞추내니,
삼인동행칠십희(三人同行七十稀)라.
오선위기(五仙圍碁) 벌려 놓고,
… 동지한식백오제(冬至寒食百五除)를,
알고 난 뒤 무기(戊己) 걱정할 것 없다. (「만세화」)
증산은 “삼인동행칠십리(三人同行七十里), 오로봉전이십일(五老峰前二十一), 칠월칠석삼오야(七月七夕三五夜), 동지한식백오제(冬至寒食百五除)”라는 옛글을 제자들에게 외워 주었다.18) 이 시는 중국 명대(明代)의 산법학자(算法學者)인 정대위(鄭大位, 1533~1606)가 지은 『산법통종(算法統宗)』(1593)에 실려 있는 가결(歌訣)인데, 105 이하의 임의의 숫자를 3, 5, 7로 각기 나눈 나머지를 물어서 원래의 특정 숫자를 알아내는 방법을 쉽게 외울 수 있도록 한 것이다.19)
『전경』 교법 2장 33절에 “현하(現下)의 대세(大勢)가 씨름판과 같으니, 아기판과 총각판이 지난 후에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나니라.”는 증산의 말이 전한다.
나는 생장염장(生長斂藏) 사의(四義)를 쓰노니,
이것이 무위이화(無爲而化)라.
… 사람을 대할 때에는 남녀노약 구별 없이 극진히 대접하라.
… 춘무인(春無仁)이면 추무의(秋無義)라. (「대명하강」)
『전경』 교법 3장 27절에 “나는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사의(四義)를 쓰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無爲而化)니라.”라는 증산의 말이 있다.
증산은 제자인 김형렬에게 ‘잘 믿는 자에게 해인(海印)을 전하여 주리라.’라고 말했다.20) 세상을 구원할 보물로 믿어진 해인에 대한 신앙은 오랜 역사를 지닌다. 애초에 불교의 『화엄경(華嚴經)』에서 연유한 해인신앙은 용왕(龍王)의 도장 또는 진인(眞人)이 사용할 보물로 믿어져 왔다.21)
“구중곤륜산, 심심황하수”는 『전경』 교법 3장 47절에 따르면 증산이 제자들에게 외워준 시이고, “일생종차계, 진개호남아”는 증산이 김형렬에게 외워준 한시의 일부다. 뒷부분에 나오는 시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유팽로(柳彭老, 1554~1592)가 지었다.23)
『전경』 예시 54절에 “금옥경방시역려(金玉瓊房是逆旅), 석문태벽검위사(石門苔壁儉爲師)”로 시작하는 한시가 실려 있다. 전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까지는 그 출처가 확인되지 않았다.
『만법전』은 증산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여러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그러나 『만법전』의 저자로 추정되는 서백일과 증산의 관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증산을 상제(上帝)로 부르거나 표현한 대목도 없으며, 다만 서백일을 법사(法師)로 부르고 있을 뿐이다. 서백일이 증산의 직전(直傳) 제자도 아니었으며, 증산과의 관련성을 주장할 정도의 내용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만법전』에 실린 가사에는 작자를 암시하는 몇몇 대목도 있다.
천상(天上)에 무곡성(武曲星)이, 전라도(全羅道)에 나리셨네.
자세 자세 살펴보니, 백운산하(白雲山下) 광양(光陽)이라.
푸단님 빈 삿갓에, 광양을 찾아가서,
천기(天機)를 살펴보니, 반갑도다 칠성리(七星里)에,
서씨(徐氏) 배를 빌였도다. 심중(心中)에 반가와서,
서씨(徐氏) 찾아 단속하고, 출세시(出世時)를 기대(企待)하니,
계사정월초육일(癸巳正月初六日), 신시(申時)에 탄생하니,
복희씨(伏羲氏) 팔괘운(八卦運)에, 사신인수(巳身人首) 맞춰시니,
어이 아니 반가울까? …
갑진정월(甲辰正月) 초삼일후(初三日後), 사람마다 다 전하라.
(「기초가」)
하늘에 있는 무곡성(武曲星)의 기운이 한반도의 전라도 땅에 내렸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백운산 아래 광양(光陽)이라고 노래한다. 광양 가운데도 칠성리에 사는 서씨(徐氏) 문중에 무곡성의 기운을 받은 아기가 탄생했는데, 그때가 계사년(1893) 음력 1월 6일 신시(申時)였다. 그는 복희씨가 그렸다는 전설이 있는 선천팔괘도(先天八卦圖)에 응하여 태어난 인물인데, 복희씨처럼 뱀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한 형상이었다고 전한다. 그 아기가 성장한 후 11살이 되는 갑진년(1904) 1월 이후에 사람들에게 자신의 탄생을 널리 알리라고 읊는다. 기나긴 생물학적 성장 과정을 거쳐 비로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인생의 새로운 행로를 결정짓는 시기가 바로 갑진년이었다는 작자의 회고담을 읊은 대목이다. 여기서 무곡성의 기운을 받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믿어지는 인물이 바로 서백일(徐白一, 1893~1966)이다. 훗날 용화교(龍華敎)<대한불교용화종(大韓佛敎龍華宗)>를 세운 서백일은 1893년 1월 6일 전남 구례군 문천면 금정리에서 태어났다. 11세 때 선엄사에 들어가 15년간 수도 생활을 했고, 그 후 전국에 있는 여러 사찰을 두루 돌아다녔다고 전한다. 1931년에는 전남 구례군 간문면 구고미에서 ‘금산사미륵불교포교소’라는 간판을 걸고 차경석(車京石, 1880~1935)의 보천교(普天敎)를 믿던 신도였던 조제승(曺悌承)과 함께 ‘미륵불교’를24) 포교하였다. 얼마 후에는 서백일이 직접 교주가 되어 포교하다가, 사찰령 위반혐의로 6개월 금고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이어 1933년에 서백일은 자신의 본적지에 구성사(九星寺)라는 절을 짓고 인근 각지에 몇 곳의 포교소를 설치하였으며, 1935년에는 경남 하동읍으로 이주하여 일본 일련종(日蓮宗) 포교사를 가장하고 포교하였으나, 다시 사기와 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어 복역하다가 해방 직전에야 풀려나왔다.
이후 서백일은 1947년에는 지리산에 상불사(上佛寺)라는 절을 짓고 ‘용화교(龍華敎)’라는 간판을 걸었다. 1950년에는 전주시 완산동에 원각사(圓覺寺)를 세웠고, 완주군 우전면 정동리에 남일사(南一寺)를 세워, 원각사에는 여수좌(女首座) 1백 명, 남일사에는 남수좌(男首座) 1백 명을 두었다. 1953년에는 김제군 금산면 청도리 산기슭에 용화사(龍華寺)를 건립하고 ‘대한불교용화종’으로 등록하였다. 서백일은 이곳을 신성시하여 전국의 신도들에게 장차 후천개벽(後天開闢)이 일어날 때 살아남을 곳은 용화사의 성화대(聖化臺)를 중심으로 한 30리 안이라고 역설하여 이 절 주위로 모이게 했다. 이에 당시 경상도와 제주도 등지에서 수백 세대의 신도들이 용화사 주위로 몰려들었다. 이때 서백일은 자기를 신격화시켜 자신은 ‘만법현무(萬法玄武)’로서 돌아오는 용화세계(龍華世界)를 주도할 인물이라고 선전하였다. 당시에 그가 신도들의 금품을 사취하고 부녀자들을 농락한다는 소문이 떠나지 않았다. 마침내 서백일은 1961년에는 여수좌였던 조화자, 이순애 두 여인의 고발로 인해 보호자 간음죄로 1년 6개월의 선고를 받아 복역하던 중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마침내 서백일은 1966년 3월 27일에 자기 밑에 있던 수좌 출신의 소윤하(蘇潤夏)라는 청년의 칼에 맞아 사망했다.25)
어느듯이 을유(乙酉)에, 봉지봉(逢之逢)이 기유정월(己酉正月),
새벽달에 우리 현무(玄武), 대보단(大寶壇)에 내가 올라,
호(號) 부르니 참말로, 생각하니 우리 현무(玄武),
치천하오십년(治天下五十年)에 (「대명하강」)
을유년(1945)과 기유년(1969)이 서백일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특히 기유년(1969)은 이미 서백일이 죽은 지 만 3년이 지난 시점이기에 관련을 짓기가 어렵다. 어쨌든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현무(玄武)”는 서백일 자신을 가리키는 용어다. 그는 현무라는 말을 자신의 호로도 사용했는데, 아마도 증산의 친필저작인 『현무경(玄武經)』에서 따온 말인 듯하다. 그리고 “치천하오십년(治天下五十年)”은 증산의 말인데, 그 기점을 언제로 잡느냐는 여러 관점에서 가능하며 자유로운 해석에 열려 있는 상태다.
하늘에 있는 무곡성의 기운을 받고 이 땅에 태어난 인물을 찾아보니, 바로 만법현무라고 불리는 서백일이 아닌가 하고 노래한다. 이어서 서백일이 제자들을 받아들이니 광양 땅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는 일이 마치 봄기운과 같이 새롭다고 읊는다.
신미구월십구일(辛未九月十九日)은,
금왕지절(金旺之節) 맡아 있고,
계사정월초육일(癸巳正月初六日)은,
목왕지절(木旺之節) 맡았나니,
금왕지절(金旺之節) 숙살(肅殺) 아래,
목왕지절(木旺之節) 양생문(養生門)을,
아니 찾고 산다든가? (「극생가」)
신미년(1871) 9월 19일에 태어난 증산(甑山)은 금운(金運)이 왕성한 절기를 맡았고, 계사년(1893) 1월 6일에 태어난 현무(玄武) 서백일(徐白一)은 목운(木運)이 왕성한 절기를 맡은 인물이라고 노래한다. 이제 서방(西方) 금(金)이 만물을 숙살(肅殺)하는 때를 맞이하여 목(木)이 왕성해지는 계절의 삶을 도모하는 문을 찾지 않고서야 어찌 살아날 수 있겠느냐고 읊는다. 서백일이 다가올 이상세계인 목운(木運)의 시대인 ‘봄’을 주도할 인물이라고 강조한 대목이다.
무인오월(戊寅五月) 십오일(十五日)에,
만법현무(萬法玄武) 억조창생(億兆蒼生),
자옥도수(度數) 단신(單身)으로 맞춰내니,
축인(丑寅) 구멍 간방(艮方)이요.
… 무인오월 십오일에, 화액문(禍厄門)이 열리기로,
옥중고생(獄中苦生) 눈물 간에, 진사(辰巳) 구멍 당도하니,
사삼팔(四三八) 첫 머리라.
경진오월(庚辰五月) 이십구일(二十九日), 천문(天門)이 열리기로,
옥중출옥(獄中出獄) 되고 보니, 부산(釜山)이 밝았도다.
(「극생가」)
무인년(1938) 5월 15일은 서백일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그는 감옥에 갇히는 시련을 겪었는데, 이 사건에 대해 억조창생을 살리려다가 스스로 옥(獄)에 갇히는 도수(度數)에 따라야 했다고 설명한다. 축인(丑寅)은 연도(年度)를 표시하는 듯하고, 간방(艮方)은 어떤 방향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인다. 이처럼 서백일은 자신이 감옥에 갇히게 된 사건을 가사 형태로 표현하였다. 또 서백일은 감옥에서 온갖 고통을 겪다가 진년(辰年)과 사년(巳年), 즉 경진년(1940)과 신사년(1941)에 비로소 풀려났다고 읊는다. 경진년(1940) 5월 29일에는 감옥에서 나와 부산으로 갔던 일을 노래했다. 서백일은 기묘년(1939) 5월 9일에 대구 배심원에서 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그리고 서백일은 임오년(1942) 6월 1일에 다시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및 사기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서백일 자신이 읊은 가사의 내용이 더욱 정확한 것으로 판단되는데, 앞으로 더욱 정확한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경진동지(庚辰冬至) 후삼일後三日)에, 자옥도수(度數) 또 당하니,
천수(天數)를 어이하리?
… 칠년고액(七年苦厄) 문왕도수(文王度數),
다 맞추고 천문(天門)을 다시 여니,
오십토(五十土) 미신(未申)구멍,
갑신동지(甲申冬至) 출옥(出獄) 현무(玄武),
대전(大田)에 나타나니, 광명사해(光明四海) 빛이 나니,
대전이 밝았도다. (「극생가」)
서백일은 경진년(1940) 12월에 또다시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는 이 또한 하늘이 정해준 운명이라고 노래한다. 모두 합쳐 7년 동안 겁액(劫厄)을 맞이했던 전설적 제왕인 문왕(文王)과 같이 고난을 겪고 난 후, 서백일은 미년(未年)과 신년(申年) 즉 계미년(1943)과 갑신년(1944)을 지나 마침내 갑신년(1944) 동지(冬至)에 대전에서 출옥했다고 읊는다.
무자년(1948)부터는 무기(戊己) 토(土)의 기운이 왕성한 화운(火運)의 시대가 돌아왔다고 노래한다. 그런데 무기(戊己)는 오행(五行)으로 본다면 토운(土運)에 해당하므로 약간의 착오가 있는 듯하다. 경자년(1960)에는 금운(金運)이 와서 다시 팔액(八厄)의 고난을 맞이했다고 읊는다. 증산 사후에 태어난 인물인 서백일을 새로운 운수를 지닌 인물로 부각하여 새 시대를 이끌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서백일의 탄생 시기와 생애 동안 일어났던 주요한 연도를 노래하여 그의 위대성을 강조하는 점은 다른 증산교단의 주장과 대동소이하다.
『만법전』의 가사에는 ‘개벽(開闢)’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개벽이라는 용어를 노래하는 일 자체가 한국신종교 개벽사상의 오랜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자(子)와 오(午)는 서로 갈등과 대립하는 위치에 놓여 있는 지지(地支)다. 개벽은 이들 상충되는 지지를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새로운 질서와 원리로 진행될 것이다. 어쨌든 개벽의 이 운수는 그 누구도 막거나 거부할 수 없는 우주의 법칙 그 자체다. 봄바람이 거세고 악랄할지라도 봄이 되어 피어나는 꽃은 도저히 막기가 어려운 이치와도 같이, 자연의 힘으로 진행될 개벽운수는 거부될 수 없는 원리라고 노래한 대목이다.
또 개벽은 동양과 서양에 널리 퍼지는 괴질의 운수로 올 것이라고 한다. 개벽의 핵심 정체가 바로 급성전염병의 발발이라고 믿어지는 것이다. 개벽의 본질을 괴질운수로 파악한 일은 동학(東學)의 수운 최제우 이래로 정립된 한국신종교 개벽사상의 독창적인 모습이다.
허허 이것 왠 일고? 동서양 괴질운수(怪疾運數),
새로 개벽(開闢)된단 말을, 전설로 들었드니,
내 당할 줄 내 몰랐네.
… 복귀빈천(福貴貧賤) 영웅호걸(英雄豪傑), 장사(壯士)라도 호원(呼怨) 없는, 개벽세상(開闢世上) 개벽중(開闢中)에,
내 빠졌네 아이구 이것 왠 일인가? (「제세신약가」)
동양과 서양 모두에 갑자기 들이닥칠 괴질의 운수가 있은 다음에 새로 개벽이 될 것이라는 전설이 예부터 있었다고 노래한다. 그렇지만 다가오는 개벽은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곧 인류가 맞이하게 될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점을 노래했다. 부귀, 복록, 빈천도 개벽을 당해서는 모두 소용이 없고 영웅호걸과 힘센 장사라 하더라도 원한을 호소하지 않는 개벽된 세상이 곧 올 것이라고 읊는다.
『만법전』에는 오만년(五萬年)이라는 용어도 자주 보인다.
앞으로 5만 년 동안이나 이어갈 신선세계(神仙世界)를 이룩하기 위한 첫 공사(公事)가 바로 이 일이라고 노래한 대목이다.
오만년(五萬年) 대복(大福)을 받을 근원이니, 잘 기억하라.
… 오만년 무궁복(無窮福)이, 눈앞에 나타나니,
일심(一心)을 놓치 말라.
일심을 못 가진 자는, 이 배를 타기가 어려우리라.
만일 이 배 탄다 하면, 승학선관(乘鶴仙官) 조화(造化) 배라.
열 석 자(字) 만날 적에, 천악(天樂)이 낭자한데,
나의 좋고 나머지는, 너의 차지 될 터이니,
일심줏(一心柱)대 잘 바루라. (「대명하강」)
오만년의 큰 복을 받을 근원을 잘 기억하라고 노래한 다음, 오만년 동안 이어갈 무궁한 복록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일심(一心)을 놓치지 말라고 읊는다. 이어서 일심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구원의 배를 타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며, 이 배는 학(鶴)을 탄 선관(仙官)들이 조화를 부려 몰아갈 것이라고 읊는다. 여기서 “열 석 자”는 13자로 이루어진 동학(東學)의 주문(呪文)이다. 동학의 주문을 외우면 하늘의 음악이 낭자하게 들릴 것이니, 좋고 나머지가 자신의 몫이 되리니 일심의 기둥을 바르게 하라고 읊는다.
『만법전』은 삼교합일(三敎合一)을 주장하지만, 그 가운데 불교를 중심으로 한 구원관을 제시하고 있다.
사바세계와 용화회상은 불교적 용어다. 사바세계는 불교에서 이 세상을 가리키는 말이고, 용화회상은 미륵불이 펼치는 이상향을 가리키는 용어다. 그리고 극락도 불교적 이상세계를 가리킨다. 다만 궁을선(弓乙仙)의 궁을(弓乙)은 조선 중기 이후 전해 내려오는 한국의 고유한 비결용어다. 이 궁을을 선(仙)과 연관시키고 있는 대목이 특기할만하다.
어서 바삐 마음을 고쳐먹고 용화회상의 극락세계에 같이 가 보자고 권유한 다음, 조화선경의 화장세계가 되면 부귀공명과 엄청난 복록이 있을 것이니 어떻게 하면 모두 즐길 것이냐는 기쁨을 노래한 대목이다.
미륵불이 세상에 출현하여 집집마다 선학(仙學)을 가르친다고 노래한 다음, 용화회상(龍華會上)의 당래불(當來佛)의 가르침에 대해 노래한다. 미륵불, 용화, 당래세존 등은 불교적 용어다.
팔만천세조화(八萬千世造化)배에, 우리 용화회상(龍華會上),
미륵세존(彌勒世尊)님을 모셔 높이 실고,
그 다음 혈식천추(血食千秋) 도덕군자(道德君子) 우리 법사(法師) 가득 싣고, 진묵대사(震黙大師) 도사공(都槎工)에 (「만국가」)
인용문에 나오는 용화회상, 미륵세존, 법사 등은 불교적 용어다. 그리고 진묵대사(震黙大師, 1562~1633)는 조선 중기에 살았던 신비한 이적을 나툰 이승(異僧)이다. 혈식천추도덕군자는 굳이 말하자면 유교적 용어다. 그런데 증산은 혈식천추도덕군자들이 모는 구원의 배의 도사공을 맡은 인물이 동학농민혁명의 전봉준(全琫準, 1855~1895)장군이라고 말했는데, 「만국가」에서는 불교 인물인 진묵대사라고 노래한 점이 독특하다.
미륵불이 펼치실 용화회상과 전라북도 모악산에 있는 금산사(金山寺)와 연관하여 노래한다. 금산사의 전통적인 미륵신앙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대목이며, 증산이 바로 금산사 미륵불의 현신이라는 증산교인들의 믿음을 반영하고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이처럼 『만법전』의 가사는 전통적인 유불선 가운데 특히 불교에 주목함으로써 불교와의 친연성을 강조한다는 점이 다른 증산교단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만법전』에 실린 가사는 인간이 죽은 후에 가는 세상을 상정하지 않았다. 살아서 누리는 이상향을 꿈꿨다.
죽은 후에 갈 것이라는 극락세계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고, 이제 살아서 누릴 수 있는 극락세계가 돌아왔다고 노래한다.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자신이 있게 말하기 어렵다. 「판결가」는 “생전극락”을 노래함으로써 이 세상에 건설되는 이상향을 지고의 가치라고 노래한다.
48가지 서원(誓願)을 가진 당래불이 해와 달에 눈을 밝게 뜨고 지상천국을 만들어낼 것이니 어서 바삐 염불하라고 노래한다. 여기서 지상천국은 사후에 간다는 천국과 대비되는 용어와 개념이다. 「연풍대」는 지상에서의 구원을 원하고, 사후의 구원을 거부하고 있다.
생전극락지상천국만팔천세(生前極樂地上天國萬八千歲)에 무한영생(無限永生)하니, 인인(人人)이 천인(天人)이라. … 사후극락(死後極樂)은 영퇴(永退)하고 생전극락성립(生前極樂成立)하야 천추불멸불사지락(千秋不滅不死之樂)이 현출(現出)하리라. … 지상천국(地上天國)하야 인인안락(人人安樂)하야 (「인과복록편」)
살아생전에 올 것이라는 극락세계는 바로 지상천국이요, 인간이 10,800세나 살 수 있는 무한한 영생이 보장되는 새 세상이니 사람마다 천인(天人)이 될 것이라고 노래한다. 이어서 사후극락은 영원히 물러나고 이제는 생전극락이 이루어져 영원히 불멸하고 죽지 않는 복락이 세상에 드러날 것이라고 읊는다. 그리고 지상천국이 되면 사람들이 모두 편안하고 즐거움을 누릴 것이라고 노래한다.
지상천국의 좋은 세월이 이루어지면 우리 법사(法師)의 팔자가 가장 좋을 것이라고 읊는다. 실제로 용화교에서는 용화교의 교단 본부가 있는 지역을 구원의 중심지라고 주장했으며, 특히 금산사(金山寺) 인근 30리 안에 들어와야 구원받는다는 강력한 교리를 세워 수많은 신도의 호응을 이끌기도 했다.
Ⅳ. 『만법전』에 실린 가사의 의의
『만법전』의 가사는 다가올 개벽이 현세구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지상천국(地上天國)에 대해 노래했고, 사후의 이상향이나 극락은 거부한다. 동학 이후 전개된 한국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개벽사상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만법전』에는 이에 대해 좀 더 진전된 새로운 해석은 부족한 편이다.
『만법전』은 증산 강일순의 탄생과 그의 언행에 대해 노래한 대목이 많이 보인다. 그러므로 『만법전』에 실린 여러 가사는 증산사상에 기반을 둔 ‘증산교가사’라고 규정할 수 있다. 『만법전』의 가사는 증산의 독창적인 용어인 공사, 도수, 해원 등의 용어를 자주 인용하여 노래했지만, 그에 대해 새롭게 평가하지는 않았다는 한계가 있다. 증산의 언행을 기록한 『대순전경(大巡典經)』의 내용을 가사체의 표현을 빌려 그대로 인용하여 노래했을 따름이다. 증산교의 교리체계를 가사의 형태로 소개하려는 시도 자체는 새롭다. 따라서 이러한 일은 다른 증산교파에서는 이전 시기까지는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업적이라는 점은 인정된다. 증산교의 교리에 대해 가사체로 노래함으로써 그에 대한 대중화를 시도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만법전』은 인물 중심의 구원관을 제시했다. 특히 서백일이라는 용화교를 창시한 인물의 탄생과 투옥 등의 개인사를 노래하기도 했다. 용화교 교주가 직접 자신의 인생사에 있었던 중요한 사건을 가사로 읊었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 교주가 구원의 절대자로 자처한 것이다. 따라서 『만법전』은 증산에서 서백일로 이어지는 구원관을 확립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만법전』은 작자 미상의 책이 아니라 용화교에서 교주인 서백일의 생애와 사상을 드러내기 위해 편찬한 책이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그리고 『만법전』은 유달리 불교와의 화합을 추구했다고 평가된다. 특히 불교의 미륵신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불교적 구원관과 증산교의 구원관을 서로 화합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물론 『만법전』의 결론과 핵심은 용화교의 교주인 서백일을 미륵불의 화신으로 믿는 믿음을 강조한 것이기는 하다.
『만법전』은 우주의 질서와 원리인 도수(度數)에 대해서만 주로 노래하여 천시(天時)만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며, 지리(地理)나 인화(人和)는 생략하거나 도외시했다. 일반적으로 교단의 중심 건물이나 주요한 건물이 세워진 장소에 대해 신성화(神聖化)하여 노래하거나 기리는 일이 보통인데, 『만법전』에는 이러한 구절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도수(度數)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사실만 지나치게 강조하여 수련이나 주송(呪誦)은 불필요하거나 도외시하는 경향을 엿볼 수 있다. 나아가 『만법전』에는 도덕적 심성의 함양과 수양에 대해서도 별로 언급하지 않고, 단순히 특정한 인물을 추종하라는 가르침만 내리고 있을 뿐이다.
『만법전』에는 증산에서 연원한 의통(醫統)에 대한 새로운 주장을 펼쳤다. 특히 의통인패(醫統印牌)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의통이 특별한 형태를 지닌 물건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해인(海印)의 신비한 조화력(造化力)을 강조하기도 했다. 의통과 해인의 신비한 조화력에 의존하고 수련이나 주송(呪誦)을 소홀히 하는 태도가 엿보인다. 의통과 해인을 지니고 등장할 구원의 절대자에 믿음이 집중된 경향이 확인된다. 그리고 전통적인 비결의 핵심인 궁을(弓乙)에 대해서는 단 한 번만 언급하고 있어서 비결가사로 보기도 어렵다.
Ⅴ. 맺음말
『만법전』의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그동안 신비한 수련서 혹은 불교 계통의 서적으로만 이해되었던 일에서 벗어나, 증산교단의 한 파인 서백일의 용화교(龍華敎)에서 간행한 책으로 그 정체가 구명되었다. 지금까지는 『만법전』의 이름만 전해졌을 뿐, 그 구체적인 내용을 분석하여 증산교단의 하나인 용화교에서 발행한 서적이라는 주장은 없었다. 필자는 이 글에서 『만법전』의 구체적인 구절을 『대순전경』과 비교하여 그 가사들이 증산사상의 영향으로 읊어졌다는 점을 밝혔다. 따라서 『만법전』에 실린 가사들은 실체가 분명한 ‘증산교가사’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만법전』 소재의 가사가 ‘증산교가사’라는 점이 밝혀졌고, 특히 서백일의 용화교에서 간행되었다는 사실이 석판본 『만법전』과 인쇄본 『만법전』이 동일하다는 점에서 확인되었다. 아마도 용화교가 번성할 때인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에 석판본 『만법전』이 간행되어 일정한 양이 유통되었지만 용화교의 폐쇄성이라는 특성상 은밀하게 이루어져 일부 신도들만 볼 수 있었던 경전이었을 것이다. 이후 용화교가 세간의 비난을 받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던 시기를 벗어나자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인쇄본 『만법전』이 작자와 연원을 밝히지 않은 채 간행되어 공개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만법전』에 실린 가사를 다른 증산교단의 가사들과 비교 분석하여 용화교의 특성이 제대로 밝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만법전』에 실린 가사에는 천지공사(天地公事), 의통(醫統), 도수(度數), 서신(西神), 천존(天尊), 지존(地尊), 인존(人尊), 치천하오십년(治天下五十年), 해원시대(解冤時代) 등 증산교단에서 고유하게 사용하는 용어들이 많이 언급되었고, 증산의 탄생장소, 탄생 시점, 성씨, 생존 기간 등이 읊어져 있다. 그리고 증산이 했다고 전하는 말을 그대로 인용하여 노래하였고, 오선위기(五仙圍碁), 상씨름, 생장염장(生長斂藏), 언청신(言聽神), 기초동량(基礎棟樑), 해인(海印), 상계신(上計神) 등의 증산 고유의 용어에 대해서도 읊고 있다. 특히 증산이 제자들에게 외워준 한시(漢詩)의 일부 구절이 그대로 인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만법전』에 실린 가사는 틀림없는 ‘증산교가사’의 하나다.
『만법전』의 가사에는 한국신종교 개벽사상의 독창적인 전통이 확인된다. 괴질운수(怪疾運數), 개벽도수(開闢度數), 조화선경(造化仙境), 오만년(五萬年), 무극대운(無極大運) 등의 용어가 읊어진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개벽사상의 전개 과정에 『만법전』의 가사가 포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만법전』의 가사에는 한국신종교 개벽사상의 핵심이 잘 드러나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만법전』에는 불교적 구원관도 확인이 가능한데, 특히 미륵신앙(彌勒信仰)을 중점적으로 노래하였다. 그런데 『만법전』은 전통적인 불교의 미륵신앙과는 다르게 미륵불의 기운과 능력을 지닌 특정한 인물의 탄생을 예고하고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미륵세존(彌勒世尊)과 용화회상(龍華會上)을 강조하면서도 전북에 있는 모악산(母岳山) 금산사(金山寺)를 특별하게 읊고 있어서 금산사를 중심으로 한 증산이 바로 미륵불로 오셨다는 증산교인들의 믿음을 긍정적으로 노래한다. 나아가 『만법전』에는 용화교(龍華敎)의 교주인 서백일(徐白一)의 탄생일, 탄생장소, 수감 년도, 출옥 시기, 호(號) 등이 언급되어 있어서 이미 세상을 떠난 증산을 대신하여 이 세상에 나온 구원의 절대자가 바로 서백일이라고 은근히 주장하고 있다.
이 글을 통해 『만법전』이 증산교단의 한 교파인 용화교(龍華敎)에서 간행한 책이라는 점이 다시 한번 밝혀졌다. 따라서 앞으로는 『만법전』의 내용을 증산교의 교리에 바탕을 두고 평가해야 할 것이며, 불교 계통의 책이 아니라 한국신종교의 개벽사상을 계승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서적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 연구가 좀 더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비록 가사라는 형식의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만법전』에 실린 여러 가사는 증산교의 교리체계를 나름대로 노래한 ‘증산교가사’의 주요한 한 부문을 차지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