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면서
한국에서 공공성(公共性)이라는 용어의 역사를 보면, 공공성 개념이 맥락에 따라 달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900년대에 인류의 도덕과 자유를 강조하면서 생존경쟁과 우승열패를 ‘동물의 공공성’이라고 표현한 사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경제적 맥락에서 공공성을 표현한 사례 등을 볼 수 있다.1)
최근에도 공공성 개념의 주요 요소로 ‘인민(시민)이[주체], 공공복리를 위해[과제], 의사소통(공개성)을 거치는 것[방법]’을 공유하는 경향이 있지만,2) 공공성의 개념적 합의 도출은 어려워 보인다. 예를 들어,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보면, 시민사회의 공론장(公論場, public sphere)을 거치는 민주주의 내의 공공성은 사회주의 내의 공공성과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이해관계자들의 참여권 보장, 참여를 위한 정보 공개, 절차적 정당성 보장, 다수의 이익 보장, 처리 결과 공개 등의 조건 충족이라는 규범적 차원을 공유할 수 있지만 그 규범적 조건과 정도에 대한 판단 자체가 여전히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종교 공공성의 경우, 세계적으로 종교가 공적 영역에 참여한 역사는 짧지 않다. 공적 영역이 공공성을 전제한다면 공공성과 종교의 관계는 짧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그에 비해 종교 공공성에 대한 논의의 역사는 길지 않다. 한국의 경우도 해방 이후부터 종교계 일부가 국방·법무·복지·교육 영역 등의 공적 영역에 참여하기 시작하지만 종교의 공적 참여에 대한 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추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2000년대 이후 공공성 개념이 종교 영역에 적용되고 있다. 공공성 개념이 국가, 정부, 경제단체, 학교교육, 언론 등으로 확대되면서, 종교 영역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공공성 개념과 마찬가지로, ‘종교 공공성’ 개념의 합의는 여전히 쉽지 않다. 종교 공공성 개념을 ‘종교의 사회 참여나 사회를 위한 긍정적 역할 수행’으로 본다고 해도, 그 참여나 역할 수행의 내용이 종교적 세계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행연구들을 보면, 종교 공공성에 주목한 연구자들은 대체로 기독교계 공공신학론자나 공공사회학론자들이다. ‘종교와 사회 변화’의 관계를 설명하는 세속화론·탈세속화론·신세속화론 등도 종교 공공성론과 관련되어 있다. 최근의 종교 공공성론자들은 현상 분석을 넘어, 종교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는 ‘참여 지향적’ 주장을 해서 종래 세속화론자들과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기독교계 공공신학론자들도 종교 공공성을 회복하거나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는 종교 공공성론이 ‘종교의 사회 참여를 전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맥락에서 요청되는 부분은 한국 상황에서 종교 공공성 개념의 내용과 의제들을 묻고 역사적 사례가 주는 시사점을 이해하는 일이다. 이러한 시도는 코로나19 이후 ‘종교의 공공성’ 또는 공적 역할에 대한 관심 증가 현상을 고려할 때 중요하다.3)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집합금지나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정책에 대해 종교계 일부가 반발하기도 하고, 공공성 차원에서 종교적 행위가 유보·포기되기도 한다. 종교 공공성 담론도 ‘종교조차 시민사회의 위기상황에서 공적 가치를 존중하고 제도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방향’으로 유통되고 있다.4)
이 글에서는 ‘한국의 상황에서 종교 공공성 개념과 의제들’에 주목하고 종교 공공성 관련 사례들이 주는 시사점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우선, 종교 공공성 담론의 핵심어인 공공성과 신앙을 연결시키는 논의들을 분석하고 의제를 발굴한다. 다음으로, 한국의 종교 공공성 현상을 보여주는 성물 사례들과 ‘천진암터, 주어사지, 서소문역사공원’ 등 천주교의 성지화 사례들을 검토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종교 공공성론이 정치와 종교, 교육과 종교 등을 관통하는 공사(公私) 이분법을 약화시키고 있고, 따라서 종교 공공성을 본질론이 아니라 ‘구성론’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시사점을 얻고자 한다. 천주교의 성지화 사례로 서술 범위로 한정한 이유는 종교 공공성 담론과의 연관성, 최근의 사회적 파장, 그리고 제한된 원고 분량 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II. 공공성과 신앙
첫 번째 내용인 공공성과 신앙의 관계론을 보자. 양자의 관계를 공사(公私) 영역으로 구분하는 입장도 있고, ‘종교적 공공성(religious publicness)’이라는 표현처럼 공공성과 신앙의 경계를 모종의 구성물로 보는 시선과 함께 ‘종교도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양자를 연결하는 입장도 있다. 다만, 이러한 입장에서 논의되는 종교 공공성 개념은 명확하지 않다. 때로는 특정 종교의, 때로는 모든 종교의 공공성이 언급되기도 한다. 이러한 균열을 이해하려면 누가 어떻게 공공성과 신앙의 관계를 규정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종교와 공공성을 연결하는 경향은, ‘종교적 공공성, 종교와 국가의 공공성’ 등처럼,5) 2000년대 이후 기독교계와 사회학계에서 나타난다. 그 이후 공공성 개념은 ‘종교의 사회 참여’ 부분을 공유하면서 종교운동뿐 아니라 종교계의 교육이나 복지 참여 활동 등으로 확대되어,6) 종교 공공성에 대한 학계의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기독교계의 경우, 종교 공공성 개념은 공공신학(public theology) 담론의 핵심어로 유통되고 있다. 공공신학 관련 주제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국제공공신학저널』(IJPT: International Journal of Public Theology, 2007년 창간)을 통해 공유되고 있다.7)
한국에도 공공신학이 소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07년에 프린스턴신학교의 맥스 스택하우스(Dr. Max L. Stackhouse)의 공공신학을 소개한 저서가 발간된다.8) 2010년대 이후에는 공적 신앙을 주장한 예일대학교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의 저서들, 공적 정의의 맥락에서 교회-국가 관계를 논의한 저서, 정교분리와 공사 영역의 구분이 ‘복음의 왜곡’으로 이어진다는 성공회 평신도 신학자 윌리엄 스트링펠로우(William Stringfellow, 1928~1985)의 저서 등도 번역된다.9) 주류 신학적 논의와 범주에서 소외된 또는 주변화된 아시아인의 입장에서 신학의 공공성 또는 아시아 공공신학을 모색한 실천신학자들의 저서도 번역되고 있다.10) 이 과정에서 공공신학 관련 주제들도 다양해지고 있다.11)
흔히, 공공신학은 1970년대 루터교 신학자 마르티(Martin Marty)가, 로버트 벨라의 시민종교(civil religion) 개념과 달리, 사회와 국가에 공헌하는 기독교적 관점과 정체성(Christian standpoint and identity)을 드러내려던 용어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이 개념은 ‘공공선(the common good, 공익)을 위한 관심사에 참여해 국가의 복지와 공정한 사회를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12)
그렇지만 공공신학은 합의된 정의보다 여섯 개 이야기를 종합한 신학적 패러다임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① 1970년대 미국의 마틴 마티(Martin Marty)가 공적 삶에서 교회의 윤리적 역할에 주목한 것, ② 트레이시(David Tracy)가 신학이 윤리적으로가 아니라 학문적으로 어떻게 공적 담론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주목한 것, ③ 독일 신학자 후버(Wolfgang Huber)가 하버마스의 공론장에 기초해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공적 역할에 주목한 것, ④ 제3세계에서 민주주의적 해방·자유·정의·인권·평등 등을 위한 투쟁 또는 공적 분노(public anger)에 주목한 것, ⑤ 미국·독일의 공공신학이 세계화 속에서 그대로 이식된 것이 아니라 다원화되었기에 각자 상황에 참여하면서 다른 지역공동체와 의존·협력하는 것, ⑥ 공적 영역 또는 자유주의 공론장이 중립적이라는 신화를 벗어나 다양한 인정욕구와 신념의 각축장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한 것으로 구분된 바 있다.13)
기독교계의 공공신학론에서 지적할 부분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일반은총(common grace)론에 입각한 기독교적 정체성이 공공신학을 관통한다는 부분이다. 이에 따르면, 공공신학은 일반은총론적 정체성을 전제로 사회적 관심사에 참여해 공적 토론을 전개하고 해결책을 모색한다.14) 여기서 일반은총은, 구원의 예정에 국한된 특별은총에 비해, 초인간적 존재가 인간의 모든 것을 베풀거나 통제한다는 개념으로,15) 교회 밖의 문제에도 초인간적 존재의 은총이 개입되어 기독교인의 필연적 참여가 요청된다는 논리로 이어지고 있다. 즉 기독교계에서 신앙[교회]의 공공성은, 일반은총론이 시사하듯,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당위적 근거를 갖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16)
다른 하나는, 공공신학 기원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이 시사하듯, 기독교계가 사회학계의 공적 종교론[공공 종교론]까지 공공신학 범위에 포함한다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사회학계에서는 20세기의 사회 변화 속에서 정치적 다원주의와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 후기 세속화론[탈세속화론], 제도적 교회가 쇠퇴하지만 공론장에서 종교 역할에 대한 요구가 부흥한다는 관점 등을 토대로 종교[주로 기독교]와 정치의 관계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전제로 공적 종교론[공공 종교론]이 논의되고 있다.17) 그리고 공공신학자들은 이러한 사회학계의 여러 논의를 공공신학의 근거나 범주로 끌어들이고 있다.18)
기독교계의 종교 공공성 담론이 보여주는 특징은 일반은총론을 전제로 ‘공공성의 회복’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이런 특징은 뉴노멀시대에 종교적 신념보다 공공선을 우선해야 하고, 종교간 또는 종교·비종교간 연대·협력을 통해 종교가 지역·국가·세계에서 공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종교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 등에서 유추할 수 있다.19) 이런 종류의 주장은 기독교계가 공공성의 근거로 일반은총론을 전제한다는 측면에서 예상 가능한 일이다.
사회학계의 경우, 종교 공공성 담론은 근대사회[근대성]와 종교의 관계 설정 차원에서 1960년대 이후 지속된 세속화(secularization)-탈세속화(de-secularization) 논쟁과 관련된다. 이 논쟁은 근대화에서 종교의 쇠퇴를 경험한 서유럽 중심의 세속화론과 종교적 부흥을 경험한 미국 중심의 합리적 선택이론(rational choice theory)에 따른 종교경제론(religious economies)이 대립하는 구도를 띠고 있다. 최근에는 근대성과 종교의 관계를 세속화[쇠퇴]와 탈세속화[활성화]가 아닌 ‘종교의 변모’로 설명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20)
구체적으로, 세속화론은 1960년대에 미국의 버거(P. Berger)와 유럽의 윌슨(B. Wilson)을 통해 제시된 바 있다. 이어, 1980년대 이후 ‘근대화에서 종교가 쇠퇴가 아니라 오히려 시장 상황에 놓여 활성화된다’는 스탁(Rodney Stark), 베인브리지(William Bainbridge), 핑크(Roger. Finke), 이아나콘(Laurence Iannaccone) 등 종교경제론자들의 탈세속화론이 등장한다. 그러다가 1990년대 이후 도블레어(K. Dobbelaere), 카사노바(J. Casanova), 브루스(S. Bruce), 차베스(M. Chaves), 야마인(D. Yamane), 마틴(D. Martin) 등의 신세속화론(neo-secularization)이 등장한다. 신세속화론은 세속화 개념을 ‘종교가 갖는 사회적 중요성의 감소’로 보면서 세속화가 보편적 현상이라는 종래 입장을 거부하고, 세속화 차원을 개인·조직·사회 수준으로 세분화하여 ‘종교의 쇠퇴·활성화’가 아닌 ‘변모’를 설명하고 있다.21)
실제로 호세 카사노바(José Casanova)는 종래 세속화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스페인, 폴란드, 브라질, 복음주의 개신교, 미국 가톨릭의 다섯 사례를 ‘공적 종교(public religion, 공공종교)’ 또는 현대 종교의 탈사사화(deprivatization)와 연관시켜 설명한 바 있다.22) 그리고 ‘공적 종교’에서 공적(public)의 의미를 ‘국가, 정치사회, 시민사회’의 세 차원으로 세분화하고, 세 차원에 따라 종교의 탈사사화 현상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23)
특히 사회학계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종교가 공적 역할로 사회의 ‘공공선’에 기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제한 ‘종교의 공적 사회학’(public sociology of religion, 이후 종교공공사회학)의 등장이다. 이 종교공공사회학은 버클리대학 사회학자 부라워이(Michael Burawoy)가 2004년 미국사회학협회(ASA) 회장 연설에서 강조한 공공사회학의 연장선에 있다.24) 그리고 공공사회학과 종교를 처음 연결했다는 사회학자 마르코프스키(Wes Markofski)가 종교공공사회학 특성으로 ‘사회학자와 대중 간 성찰적 대화, 공적 문제에 대한 규범적 시각, 시민사회에서 종교의 위치와 역할’을 거론한 후,25) 종교공공사회학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 사회학계의 경우, 가족·학교교육 등처럼, 종교가 사회운동가의 관심을 ‘공공에 두도록 하는 요인’의 하나로 인식되고,26) 2000년대 중반 이후 종교 공공성 연구도 늘어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종교 대부분이 주술적·권력지향적·이데올로기적이지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나 70~80년대 도시산업선교회·KNCC인권위원회·개혁불교 등의 역할이 ‘종교 공공성’ 사례였다는 주장,27)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 이후 한국천주교회의 사회 참여를 종교적 성찰성 사례로 보면서 종교의 사회 참여가 유효하다는 주장도 있다.28)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한 기독교 단체들의 찬반론을 종교의 공적 역할로 설명한 경우도 있다.29) 종교의 공론장 참여와 공적 역할이 코로나시대에 사회적 과제이며, 종교가 배타적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 조직과 달리, 소속 신자만의 구원·해탈만 추구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보인다.30)
게다가 공공사회학의 단점을 막아줄 장치로 ‘종교공공사회학’을 제시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알코올치료공동체 사례를 통해 공공사회학이 받는 비판을 종교공공사회학이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종교의 사회통합 역할로 종교시민단체의 두 중심인 ‘돌봄’과 ‘정의구현’ 간 균형을 추구하면서 ‘시민사회에서의 공공성’을 향해 정치적 이슈보다 종교공공사회학을 실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종교시민단체들이 보인 공공성의 특성이 ‘공(公)에서 사적(私的)인 것으로 배제된 개인에 대한 존중과 돌봄 또는 나눔’이며, 사회적 정의구현과 개인적 돌봄 사이의 균형이 중요 과제라는 주장도 보인다.31)
이상의 내용을 보면, 개신교계·사회학계의 종교 공공성은 대체로 ‘종교의 사회 참여’나 ‘공적 역할론’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물론 기독교계와 사회학계가 각각 일반은총론과 사회적 구성론을 전제하여 각각 ‘공공성 회복’과 ‘공공성 강화’를 강조한다는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양자의 공통분모는, 비록 ‘초월적 공공성’이라는 표현이 있지만,32) ‘공사 이분법을 넘어선 종교의 사회 참여’를 강조한다는 지점이다.
주목할 부분은 종교 공공성과 관련하여 종교의 사회 참여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학계에서 종교 언어의 번역 문제가 논의 주제로 부각되고 있지만, 그 외에도 종교 공공성과 관련하여 향후 논의가 필요한 의제들이 적지 않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종교 언어의 번역 문제이다. 이 문제는 공론장에서 종교적 색채의 노출 여부와 관련된 번역 논쟁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 논쟁은 라이 윌리엄스(Rhys H. Williams)나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처럼 종교 언어를 세속적·보편적·시민적 언어로 번역해야 종교적 신념이 시민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입장, 찰스 테일러(Charles M. Taylor)처럼 민주주의사회에서 각자에게 의미 있는 언어로 공적 토론 과정에 참여할 권리가 보장되기에 번역이 필수가 아니라는 입장, 데이비드 마틴(David Martin)처럼 번역이 필수지만 종교 언어의 특성상 번역해도 본질적 덕목이 약화되지 않는다는 입장 등으로 구분된다.33)
둘째, 기독교 외 종교 공공성의 근거 문제이다. 이 문제는 서구에서 종교 공공성 담론이 대체로 유신론 배경의 기독교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했다는 데에서 시작된다.34) 비서구와 기독교 외의 종교들을 고려할 때 ‘기독교 외 종교의 공적 역할 또는 사회 참여의 당위적 근거’를 묻는 일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셋째, 종교 공공성 담론 내 종교간 평등 문제이다. 종교 공공성 담론은 종교의 공적 역할이나 공공성 강화를 지향하지만, 특히 한국에는 특정 종교 이외의 종교들이 공적 영역에 들어가지 못하는 제도적 또는 사회적 현실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종교 공공성 담론에서는 공적 영역의 종교간 불평등의 해소 방안에 대한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물론 종교적 신념과 공공선을 연결하지 않는 경우도 존재할 것이기에 ‘종교 공공성 담론이 종교적 신념과 무관하게 공론장으로의 참여를 강제하지 않을까’라는 물음도 가능하다.
넷째, 공론장 내 종교와 비종교간 위치 문제이다. 이 문제는 민주주의의 공론장에서 참여 주체들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동일한 조건이 보장된다면, 종교단체도 공론장에서 ‘비세속적 단체’로 특별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참여 주체들과 동일한 수준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시선을 전제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은 공론장에서 종교단체나 종교전문가들이 ‘특별한 주체’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지, 종교적 색채를 가지고 참여하는 것이 공론장에서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 등의 물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다섯째, 종교 공공성 담론 내 종교 연구자의 참여 가능성 문제이다. 기독교계의 공공신학은 대체로 특정 종교를 위한 호교론적 성격을 보이고, 종교공공사회학은 ‘더 좋은 사회’를 위한 참여를 지향한다. 그렇다면 종교 연구자들도 ‘호교론이나 더 좋은 종교’를 지향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가능하다. 이는 ‘종교 공공성이 종교 연구자에게 분석 용어인지 실천 용어인지’를 묻는, 그리고 이론과 실천의 관계를 묻는 것이다.
III. 성물과 공공성
두 번째 내용인 성물(聖物, sacred object)과 공공성 부분을 보자. 국제적으로 성물에 대한 연구는, 2000년대 이후 ‘물질의 종교(material religion)’라는 맥락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2005년에 Material Religion이라는 국제학술지도 창간된 바 있다. 여기서 ‘물질의(material)’라는 표현은 종교적 그림이나 건물뿐 아니라 종교 관련 자금 조달이나 급여 같은 경제적 차원이나 신체와 물리적 세계에 대한 태도 등을 포함한다. 그리고 물질의 종교론은 관념과 물질 간 이분법이나 절대적 우위성을 채택하지 않기에 유물론적 종교론과 다르며, 종교를 지적·영적 활동으로 보고 물질적 믿음과 관습을 세속적·비종교적인 것으로 무시하는 사유와도 다르다.35) 물질적 종교는 성물을 포함한 ‘물질에 대한, 물질을 통한, 물질을 유지하기 위한 믿음·관습·태도·실천·공간·이미지·시스템 등을 총칭’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한국 종교학계의 경우에는 대체로 2010년대 이후부터 ‘물질의 종교’라는 맥락에서 성물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선행연구들에서 성물은 ‘물질의 종교’라는 맥락에 놓여 있다.36) 그렇지만 아직까지 성물을 공공성의 차원에서 주목한 시도는 미진한 편이다.
성물은 물질의 종교라는 맥락에서 볼 때 공공성과 무관해 보일 수 있지만, 그 힘이 개인을 넘어 집단적 차원, 종교 내부나 외부에서 발휘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공성과 연결될 수 있다. 이 때 성물의 힘이 종교 내부에서 집단적으로 발휘되는 경우를 ‘종교 안 공공성’, 종교 밖에서 발휘되는 힘을 ‘종교 밖 공공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후자는 주로 성물이 문화재(cultural assets)로 지정·등록’된 경우나, 비종교 기관이 특정 종교와 관련된 물품을 보유·공개하는 경우 등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우선, 성물은 특정 종교와 관련되기에 ‘종교 안 공공성’에 해당한다. 천주교의 경우를 보면, 성물은 대체로 전례 기도나 신심 행위, 즉 ‘신심을 위해 사용하는 물건’으로 이해되고 있으며,37) 전례 행위와 관련된 것도 있고,38) 신자들의 신심 행위와 관련해 본당에서 운영하는 성물 판매소에서 개인적으로 구입하는 것도 있다.
천주교에서 해당 물건이 성물로 기능하려면 성직자에게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과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 있다. 전자는 성물의 축복이 ‘준성사’이기에 ‘신심 증진을 위한 성물 축복 예식’을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다.39) 이 입장에서 보면, 성직자가 집전하는 ‘성물 축복 예식’은 천주교 관련 물건을 ‘성물’로 바꾸는 의례 행위가 된다. 나아가, 이 의례를 거친 경우에 성물의 효력이 성물 축복 예식을 받은 사용자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입장도 있다. 이는 중고 사이트를 통한 성물 매매 행위를 교회의 처벌 대상이라고 보면서도(교회법 제1380조), 성물이 지나치게 많을 경우에 이웃에게 선물하거나 바자회에 기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견해에서 확인할 수 있다.40)
그에 비해, 후자는, 성직자의 축복을 받지 않은 묵주로 기도해도 효과가 있듯이, 성직자의 축복을 받지 않아도 성물의 효과가 있다는 입장이다.41) 이 입장에서는 성물 축복이 ‘신심 행위’라는 점, 즉 성물 축복 자체보다 신심 행위가 중요하다는 입장이 부각된다. 그리고 그에 따라 성물 축복 예식을 거친 성물을 구입하거나 전달받은 사람이 다시 성물 축복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
한편, 불교의 경우를 보면, 성물은 ‘성보(聖寶)’라는 용어와 통한다. 성보는 4종류(유형·무형불교문화유산, 시설물 및 경승지, 불교적 자료)로 구분되고, 삼보(三寶: 불·법·승)나 불교의 교리와 신앙에 기초를 두기에 시간적·공간적 제약이나 미적 가치판단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또한 성보는 조성할 때부터 예배 대상이 될 때까지 엄격한 의례에 따라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신앙심이 작동해 영험(靈驗)이 일어나기도 한다.42) 이는 성보가 불교 내에서 사적 영역이 아니라 공적 물질로 존재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불교의 경우에는 사찰 단위 성물에 의례가 수반되는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 사례가 사찰에 불상을 조성할 때 불상 안에 사리와 여러 유물을 봉안 또는 장엄하는 복장(腹藏) 의례이다.43) 또한 불사리(佛舍利)나 고승사리(高僧舍利)나 괘불 등을 다른 장소로 옮길 때 진행하는 이운의식(移運儀式), 진신사리 봉안법회 등도 있다.44)
천주교와 불교의 사례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성물의 힘이 의례를 통해 확보된다는 점이다. 천주교의 경우에는 미사전례용 성물도 있지만, 앞서 서술했듯이, 신자 개인들의 성물이 ‘성물 축복 예식’이라는 의례를 거쳐 사용되는 경우가 흔하다. 불교의 경우에도, 비록 신자 개인의 성물에 대한 의례는 거의 없지만, 불복장(佛腹藏) 의례처럼 사찰 단위 성물에 의례가 수반된다. 이처럼 의례는 성물이 종교 안에서 공적 물질(public material, 공공성을 지닌 물질)로 존재하게 만들기에 ‘종교 안 공공성’의 핵심 요소가 된다. 그리고 이는 종교적 성물이 본래부터 성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임’을 시사한다.
다음으로, 성물의 힘은 ‘종교 안’에서만 작동하지 않는다. 이는 성물과 문화재의 관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실상 문화재는 법적으로 지정·등록된 것이기에 공적 영역에 속한다. 구체적으로, <문화재보호법>에서 문화재 유형은 ‘유형·무형문화재’와 ‘기념물·민속문화재’로 구분되고, 다시 지정·등록 주체[국가 - 시·도]를 기준으로 지정·등록문화재로 구분된다. 그리고 문화재에는 ‘인위적·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민족·세계 유산으로서 역사·예술·학술·경관의 가치가 큰 것’이라는 정의가 관통하듯이,45) 그에 대한 연구는 공공성 차원에서 이루어진다.46)
그렇지만 성물이 문화재로 지정·등록된 후에도 특정 종교의 성물로 기능할 경우에 성물과 문화재의 경계는 공사 영역으로 단절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문화재로 지정·등록된 사암이나 성당이나 교회 등이 있고, 성물이 문화재로 지정·등록되어 비배제성·비경합성의 특징을 지닌 공공재(公共財, public goods)가 된 이후에도, 경우에 따라 특정 종교의 의례 공간으로 활용되는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다.47)
이런 사례들은 문화재와 성물이 공사 영역으로 단절되는 것이 아니며, 공사의 경계도 ‘구성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공사의 희미한 경계는 비종교 기관이 특정 종교 관련 물품을 보유·공개할 때 해당 종교가 개입하는 현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정 종교의 성물이 ‘종교 밖’에서 문제가 된 사례와 관련해, ‘물질의 종교(material religion) 또는 물질로의 복귀(material turn)’ 맥락에서 진신사리를 둘러싼 2005년 이후 경기 가평의 현등사와 삼성문화재단 간 법적 갈등, 2006년 이후 조계종과 국립중앙박물관 간 사리 소유권 논쟁을 다룬 우혜란의 연구(2017)에 주목할 수 있다.48)
현등사와 삼성문화재단 간 법적 갈등은 현등사 측이 2005년 8월 현등사 3층 사리탑에 있던 사리 2과와 ‘현등사’ 명문이 적힌 사리구의 반환을 구매자[삼성문화재단]에게 요구하는 민사소송으로 시작된다. 현등사 측은 ‘사리장엄구와 달리 사리 자체를 문화재로 지정된 사례가 없다’는 문화재청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진신사리가 신앙 대상이지 취득 대상이 아니며, 법률적으로도 사체의 일부이기에 매매·유통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삼성문화재단 측은 송곳니나 머리카락 등 유명인의 일부 사체가 경매 대상이 되는 것처럼 사리 유물이 거래 대상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대응한다. 재판부가 2006년 7월 삼성문화재단의 소유권을 인정하지만, 항소심 도중 삼성문화재단 측이 사리 및 사리구 일체의 반환을 결정하고, 양측이 조계사에서 현등사 3층석탑 진신사리 이운행사를 갖고 사리와 사리구 일체에 대한 인계서를 교환하면서 법정 공방이 마무리된다.49)
그에 비해, 조계종과 국립중앙박물관 간 사리 소유권 논쟁은 2006년 5월 국립중앙박물관이 부처님오신날에 맞추어 개최한 폐사지(廢寺址) 출토품 사리 관련 특별전에 대해 조계종이 문화재청의 기존 해석처럼 ‘진신사리는 문화재가 아니기에 전시 대상이 아니고, 공개 시에 적합한 불교의례[이운법회·친견법회]가 필요하며, 예배 대상이기에 반환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발생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불사리도 <문화재보호법>에 의한 국가귀속문화재이자 문화유산이며, 법적으로 반환이 어렵다고 대응한다. 이 논쟁은 2016년 5월 이후 조계종과 국립중앙박물관이 박물관 수장고의 사리들이 예경 대상이라는 데에 합의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전국 국공립박물관에 소장된 사리의 ‘장기대여’를 결정하면서 마무리된다.50)
그렇지만 진신사리가 문화재와 같은 공공재인지 신앙과 예배 대상인지의 문제는 사찰 경내에서 조성·운영하는 성보박물관의 진신사리 전시와 관련해서도 반복되고 있다. 조계종단이 운영하는 불교중앙박물관을 비롯해 일부 성보박물관이 진신사리에 대해 ‘보관을 넘어 전시하는 현상’은 조계종이 종래에 사리가 문화재가 아니며 사체의 일부이기에 전시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던 것과 배치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51)
이상의 내용처럼, 성물이라는 종교적 물질은 종교 내부에서 힘을 발휘하는 ‘종교 안 공공성’과 함께, 경우에 따라 공공재로 기능하면서 공사 영역을 희미하게 만드는 ‘종교 밖 공공성’이라는 특성을 보여준다. 2014년에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이 삼성문화재단 측에서 현등사로 반환한 진신사리를 처음 전시하면서 본래의 2과가 아니라 5과로 전시해 논란이 있기도 했지만,52) 진신사리 관련 논쟁과 전시 현상은 진신사리에 대한 ‘공공재 vs 신앙 대상’이라는 대립 구도를 약화시킨다. 성물이 동시에 공공재로 기능할 경우, 공공성과 신앙의 경계는 단절이 아니라 ‘종교 안 공공성’과 ‘종교 밖 공공성’의 중첩으로 새로 구성되는 것이다.
IV. 성지화와 공공성
세 번째 내용인 천주교의 성지화와 그에 대한 문제 제기 사례를 보자. 이 사례들에서 공공성 개념이 성지화의 반대 논리로 사용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관련 사례로는 천진암(天眞庵) 터, 2014년 이후의 주어사지(走魚寺址), 2011년 이후의 서소문역사공원 조성 사례 등이 있다.
첫 번째 사례인 천진암터는 앵자봉(鶯子峰) 서쪽인 경기 광주시 퇴촌면에 있고, 한국천주교 발상지, 한국 가톨릭 진원지 등으로 인식되어 ‘천진암성지’로 조성된 상태이다. 조성 경위를 보면, 1975년부터 변기영 신부가 천진암터를 매입하고, 한국천주교회200주년(1984년)에 맞춰 ‘성역화’를 추진한다. 그에 따라 1979년 광암 이벽(曠菴 李檗, 1754~1785)의 묘 이장,53) 1981년 사적지 신청, 정약전(丁若銓) 묘 이장 등이 진행된다.54) 비록 1981년 12월경 천진암의 원위치에 대한 의견 대립이 있었지만55) 주차장 부지와 천진암 피정의 집 건립 후보지 추가 매입 등이 지속된다. 현재, 천진암성지에는 광암성당, 한국천주교회창립사연구원, 조선교구설립자묘역, 천진암터·창립성현 5위묘역, 200주년 기념비, 성모경당, 천진암박물관 등이 있고, 1986년에 확정된 천진암대성당 건립 100년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56)
두 번째 사례인 주어사지는 앵자봉 동쪽인 경기 여주시 산북면 주어리에 있고, 주어사의 창건·폐사 연대가 정확하지 않지만, 여주시의 시지정 문화재 제19호로 등록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2009년 당시 여주군(2013년 시 승격)은 주어사지의 지표 및 학술조사로 건물터 5기를 확인한 후, 주어사지를 역사적 명소로 만들고자 2010년부터 2011년 사이에 탐방로와 안내간판 설치 등 정비를 진행한다. 2012년에는 천주교 강학 장소라는 의미를 부여해 여주군 문화재(향토유적)로 지정한다. 여주시는 주어사가 1779년 녹암(鹿菴) 권철신(權哲身)과 정약전(丁若銓) 등이 천주교 강학을 했던 한국천주교 발상의 요람지로 중요한 문화재이며, 광주 천진암과 함께 교회사뿐 아니라 민족사에서도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57)
세 번째 사례인 서소문역사공원 조성 사업은 2011년 7월 천주교서울대교구가 정부·서울시·중구청에 ‘서소문 밖 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사업’을 제안하여 시작된다. 중구청은 2014년에 설계공모를 진행한 후, 비록 천도교 측의 반대가 있었지만, 2019년 5월에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을 개관하고, 6월부터 서소문역사공원을 개방한다.58) 천주교를 핵심 주제로 삼아, 역사공원은 주제공원의 하나로 ‘도시의 역사적 장소나 시설물, 유적·유물 등을 활용해 도시민의 휴식·교육을 목적으로 설치’한다는 <공원녹지법>의 요건을 충족한 것이다.59)
그런데 2014년 이후 천주교의 성지화 작업에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된다. 이와 관련해, 천진암터와 주어사지의 성지화 문제는 주로 불교계(조계종)가 제기한다. 서소문역사공원의 성지화에 대해서는 주로 천도교 측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불교계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선, 천진암 성지화 문제는 2021년 광주시가 남한산성과 천진암을 잇는 7개 코스의 순례길 조성 사업을 추진하면서 부각된다. 2021년 8월에 광주시는 수원교구와 ‘천진암성지 광주순례길 조성 및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다.60) 그렇지만 광주불교사암연합회와 조계종 등이 남한산성의 축조·수성과 천진암의 불교 역사를 무시해 종교화합을 저해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사업 중단을 촉구한다. 이에 광주시는 사업 명칭을 ‘광주역사둘레길’로 바꾸고,61) 2022년 4월에 조계종과 ‘광주역사둘레길 조성 및 운영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다. 광주시에 따르면 순례길 조성 사업은 2025년 말까지 완료된다고 한다.62)
다음으로, 주어사지의 성지화 문제는 불교계가 주어사지복원위원회의 신부 참여와 천주교의 토지 매입 소식에 위기를 느끼고 2014년 7월 ‘주어사 원형복원 발원을 위한 1000일 기도’, 비석과 부도탑의 복원, 사찰 역사의 사장·왜곡을 막기 위한 건의서 전달 등을 결정하면서 시작된다.63) 그리고 동년 9월에 수원교구 산북공소 측이 주어사지에서 미사 봉헌을 계획하고 용주사신도회가 설치한 현수막과 연등 철거를 요청했지만, 신도회가 거부하면서 주어사지를 둘러싼 갈등이 표면화된다.64)
불교계의 주어사지 성지화에 대한 비판은 지속된다. 비록 2014년 11월 토론회에서 가톨릭과 불교계가 주어사의 역사를 공유하고 종교평화 공간으로 만들자는 해법이 제시되기도 했지만, 2015년 12월에는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가 ‘여주시 산북면 역사 알리기 강연회’를 열고 주어사 강학터 성지화를 추진한다고 비판한다. 2016년 12월에는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가 천진암과 주어사터 성지화를 경계하고 역사 인식 공유와 종교간 평화를 명분으로 역사순례길 행사를 진행한다. 그 이후에도 주어사지는 불교계 언론의 관심을 받는다.65)
불교계는 2020년대에도 주어사지에 주목한다. 이와 관련해, 2021년 10월에 조계종 전국비구니회에서 조직한 주어사·천진암 종교공존위원회가 관련 특강을 진행하고, 비구니회는 천진암과 주어사를 천주교만의 성지로 만드는 것을 배타적·침략적 행위로 규정한다. 대한불교청년회는 ‘역사바로알기 운동본부’를 조직해 ‘주어사지 역사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동년 11월에는 BTN불교TV가 천진암과 주어사의 불교 역사를 조명하면서 천주교만의 성지화에 반대하는 방송프로그램(2부작)을 제작한다. 2022년에는 5월에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주어사 관련 유물을 공개하고, 7월에 전국비구니회가 행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66)
다음으로, 서소문역사공원 조성 사업 문제는 2014년경부터 천도교와 서소문역사공원 바로세우기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측이 제기한다.67) 역사공원 기공식이 있던 2016년 2월 당시에도 천도교중앙총부는 서소문 밖 처형지가 천주교인 외에 갑신정변 주도자나 동학농민혁명 지도자들과 관련되어 특정 종교에 편향된 성지가 아닌 진정한 역사유적지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반대 입장을 표명한다.68)
천도교 측과 대책위의 반발이 지속되자, 중구의회는 2017년 6월 행정사무조사 특별위원회(이하 조사특위)를 구성한다. 그리고 조사특위는 보고서에 ‘역사공원이 특정 종교의 성지화가 아닌 역사적 가치를 담은 공간’이어야 하고, 완공 후 특정 종교의 위탁·운영을 지양해야 한다는 건의를 담는다. 중구의회는 보고서를 승인하면서 2017년 12월 사업안을 통과시키고, 중구청은 2018년에 직접 관리할 지상공원 외의 시설에 대해 민간위탁운영자 모집공고를 한다. 그렇지만 천주교서울대교구 유지재단만이 지원해 수의계약이 체결되고, 2019년 5월과 6월 각각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과 서소문역사공원이 개방된다.69)
이상의 천진암 터, 주어사지, 서소문역사공원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천주교의 성지화에 반대하는 측은 ‘다른 종교의 유산·역사·가치가 지워진다는 논리’를 활용한다. 불교계가 천진암 터와 주어사지 성지화에 대해 ‘불교계의 유산과 역사와 천주교인을 숨겼다가 폐사에 이르게 된 자비의 정신이 지워질 위기’를 부각시킨다면, 천도교계는 서소문역사공원 성역화에서 동학의 유산과 역사가 지워질 위기를 부각시킨다.
성지화의 반대 논리는 ‘공공성의 약화 논리’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21년 불교계 포럼에서는 천진암 터와 주어사지 사례가 ‘종교적 공공성, 문화적 공공성, 공공성지’ 등의 표현들로 공격 대상이 된다.70) 서소문역사공원 사례는 2016년 연구에서 ‘공공성’ 확보 없이 추진된 사례이며 서소문 일대 역사를 재현하기보다 특정 집단의 역사만 부각시켜 사회적 갈등을 초래했다고 지적된 바 있다.71) 또한 2019년 11월 천주교개혁연대·종교투명성센터·종교자유정책연구원 관계자들이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사업을 평가하면서 정부 예산이 투입된 공간이 가져야 할 공공성이 약하고, 여러 역사적 가치와 사상을 전체적으로 품는 취지에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한다.72)
게다가 공공성의 약화 논리는 ‘종교편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19년 2월 종교투명성센터가 서소문역사공원의 내용과 예산 감시의 명분으로 ‘종교편향이 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을 내세운 바 있다.73) 2020년에도 ‘종교와 재정 좌담회’나 대책위 관련자들이 지적한 서소문역사공원 사례의 문제점으로 ‘종교편향’이 제기된 바 있다.74) 그리고 종교편향 불교왜곡 범대책위원회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해미국제성지, 천진암·주어사, 공공합창단, 국방부·법무부’ 항목을 종교편향 코너에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75)
이처럼 천주교의 성지화에 대한 반대 논리는 ‘다른 종교적 유산·역사·가치의 소멸’로 시작해, ‘공공성의 약화, 종교편향’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종교 공공성 개념에 다른 종교에 대한 배려와 흔히 종교차별의 전단계로 인식되는 종교편향 예방 등을 포함하는 불교나 천도교 측의 논리는, 비록 그에 대한 다른 종교의 수용 여부나 정도를 알 수 없지만, 정치나 경제 등 다른 영역의 공공성 개념과 다른 부분이다.
Ⅴ. 나오면서
이 글은 공공성 개념이 종교 간 또는 종교와 사회 간 매개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종교 공공성 개념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종교 공공성 개념의 핵심인 공공성과 신앙의 관계 규정과 의제들을 고찰한 후, 공공성과 관련하여 성물과 천주교의 성지화 사례들을 검토하였다.
구체적으로, 공공성과 신앙 부분에 따르면, 주로 기독교계와 사회학계에서 종교 공공성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보인다. 일반은총론을 전제한 ‘공공성 회복론’이나 사회적 구성론을 전제한 ‘공공성 강화론’ 등 주요 전제나 지향점에 차이가 있지만 ‘사회 참여와 변화’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리고 신학자들은 사회학계 논의까지 공공신학 범주로 끌어들이고, 사회학자들은 공공종교사회학적 실천을 위해 기독교적 세계관을 활용한다. 이렇다보니 종교[신앙]과 사회를 매개하는 공공성론에는 ‘기독교 외 종교의 공공성 근거, 공적 영역에서 종교간 평등, 공론장에서 종교단체의 위치’ 등이 의제가 된다. 또한 공공신학자와 사회학자들의 사례에 비추어 종교 연구자들의 참여 가능성 문제도 정체성 관련 의제가 될 수 있다.
성물과 공공성 부분에서는 종교 공공성을 ‘종교 안 공공성’과 ‘종교 밖 공공성’으로 구분하였다. 그 구분에 따르면, 천주교와 불교의 성물 사례들에서 의례는 ‘종교 안 공공성’을 확보하는 데에 핵심 요인이다. 그리고 불교의 진신사리 논쟁 사례는 ‘종교 밖 공공성’이 구성된다는 점과 공사 영역의 경계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중첩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사례들은 종교 공공성이 공사 영역의 경계를 넘나들며 맥락에 따라 구성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성지화와 공공성 부분에서는 천진암터, 주어사지, 서소문역사공원 등의 성지화와 그에 대한 다른 종교의 반대 논리를 분석하였다. 이 성지화 사례들은 천주교 내부에서 ‘종교 안 공공성’을 창출하지만, 여러 종교가 얽힌 공론장에서 ‘종교 밖 공공성’으로 평가된다. 성지화에 반대하는 측은 ‘천주교가 다른 종교의 유산과 가치를 지운다는 논리’를 세우고, 이 논리를 공공성을 약화시키거나 종교편향을 유발한다는 논리로 확장한다. 이 사례들은 공공성 개념이 종교 공공성 개념이 맥락에 따라 확장되거나 재구성될 수 있으며, 따라서 종교 공공성 개념이 본질적인 것처럼 보여도 그 이면의 구성적 차원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끝으로, 종교 공공성 개념은 종교에 관한 다양한 논의를 도출하는 매개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이 글에서는 종교 언어의 번역, 기독교 외 종교 공공성의 근거, 종교 공공성 담론 내 종교간 평등, 공론장 내 종교와 비종교간 위치, 종교 공공성 담론 내 종교 연구자의 참여 가능성 등의 의제들을 제시하였다. 그렇지만 종교단체를 자발적 결사체로 본다면 ‘신자의 충분한 참여 보장 문제’도 종교 내 공공성 관련 의제로 설정될 수 있다.
이러한 의제들을 관통하는 부분은 ‘종교 공공성이 보편적 본질을 갖는 것처럼 보여도 공사(公私) 경계를 넘나들면서 재구성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공공성과 신앙의 경계가 단절되지 않고 맥락에 따라 ‘종교 안 공공성’과 ‘종교 밖 공공성’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성물 사례들, 공공성 개념을 성지화의 반대나 종교간 공존이나 종교 편향 방지 논리로 활용한 사례들은 종교 공공성이 어떤 맥락과 효과를 겨냥해 구성된 것인지를 인식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준다. 나아가 이 시사점은, 마치 특정 세계관을 전제한 종교 언어가 공론장에서 공적 언어로 발화될 때 의사소통을 위한 번역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처럼, 특정 맥락에 놓인 종교 공공성이 배려, 평등, 자유 등의 가치와 연관된 것인지를 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