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정읍사>는 현전하는 백제 유일의 노래로서, 오랜 시간의 전승과정을 거치면서 조선시대에는 우리 문자로 기록된 지고지순한 아내의 사랑노래로 일컬어진다. 특히 곡명이 지명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서, 오늘날 지역문화를 보수하고 활성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되어 왔다.
그런데 <정읍사>의 지역문화콘텐츠로서의 활용은 ‘간절히 남편을 기다리는 처(妻)의 노래’라는 통상적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이와 더불어 현대적으로 변용한 <정읍사>의 작품들에서는 여성의 개성적 심리를 밝히고자 하는 부분으로 변용하여 현대의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주고 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1) 특히 <정읍사>의 배경을 부가적으로 제시한 문헌자료에 실린 ‘망부석(望夫石)’이라는 단어는 남편을 기다리는 지고지순하고 나아가 소극적 자세로 부각되는 여인상으로 이해하게 하는 데 일조하였으며, 그 결과 ‘한의 정서’를 담아낸 고전시가의 계통에 <정읍사>를 귀속시켜 슬프고 한 많은 여인의 이미지가 붙박이처럼 고정화된 듯하다. 뿐만 아니라 조선조 고려속요에 대한 음설지사(淫褻之詞) 논란에서 <정읍사>도 자유롭지 않았다는 점을 거론하여, <정읍사>의 해석을 남편의 음행에 대한 걱정을 넘어서서 시기 질투의 감정을 노래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2) 이러한 견해는 <정읍사>를 활용한 지역문화콘텐츠 활성화에 난색을 표하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정읍사>에 대한 어석(語釋) 연구도 논란 속에 있어 그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데도, 작품을 지역문화콘텐츠로 구현할 적에는 여전히 고정된 해석 틀 안에 <정읍사>를 붙박아두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제 <정읍사>에 대한 통념적인 이해를 넘어서서 <정읍사>만이 가지는 의미적 가치를 부각하고 그 의미가 콘텐츠로 온전히 구현될 때가 아닌가 여겨지며, 그렇게 해야 <정읍사>의 전승력도 되살아나지 않을까 전망해 본다.
이에 본고는 <정읍사>의 노랫말 및 관련 문헌자료를 통해 <정읍사> 전승의 구심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천착하고, 지역문화콘텐츠 개발과 확산에 있어 제기되는 문제가 무엇인지 밝혀, <정읍사>에서 부각되어야 할 의미적 가치를 재고해보고자 한다.
II. <정읍사> 전승의 구심적(求心的) 의미
<정읍사>에 대해 언급되는 최초의 문헌은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로, 그중 ‘무고조(舞鼓條)’와 ‘삼국속악조(三國俗樂條)’이다. ‘무고조’는 <정읍사>의 노랫말과는 직접 연결되지 않으며 다만 고려 궁중에서 무고정재(舞鼓呈才)로 쓰였음을 알려주는 내용이고3), ‘삼국속악조’에는 <정읍사>의 배경으로 볼 법한 사연이 수록되어 있다. ‘삼국속악조’와 관련된 내용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정읍은 전주의 속현이다. 정읍 사람이 행상을 나가서 오래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그 처가 산 위에 올라가 바라보면서 남편이 밤길을 가다 해를 입을까 두려워함을 진흙물의 더러움에 부쳐서 이 노래를 불렀다. 세상에 전하기는, 고개에 올라가 남편을 바라본 돌이 있다고 한다.4)
그리고 <정읍사>의 노랫말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조선 성종 24년에 완성된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이르러서이다. 『악학궤범』에도 『고려사』와 마찬가지로 ‘무고정재’와 관련한 기록이 존재하고, ‘시용향악정재도의조(時用鄕樂呈才圖儀條)’에 성종 당시 무고정재의 절차에 대한 설명과 함께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노랫말이 소개되어 있다. 노랫말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前腔 | 하 노피곰 도샤 ①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② 어긔야 어강됴리 |
小葉 | 아으 다롱디리 |
後腔全 | 져재 녀러신고요 ③ 어긔야 즌 드욜셰라 ④ 어긔야 어강됴리 |
過篇 | 어느다 노코시라 ⑤ |
金善調 | 어긔야 내 가논 졈그셰라 ⑥ 어긔야 어강됴리 |
小葉 | 아으 다롱디리5) (번호, 띄어쓰기 필자) |
<정읍사>의 어휘 및 구절에 대한 해석의 논란이 계속적으로 있어왔던 바, 그 하나는 ‘全져재’를 전주시장으로 보거나, ‘온’ 시장으로 보거나, 혹은 ‘後腔全 져재’로 띄어 읽어 음악적 표지로서의 기능을 하는 단어로 보는 견해가 있다. ‘全’을 지명으로 보든, 글자의 뜻을 그대로 풀든, “後腔全 져재 녀러신고요”는 시적 대상이 시적 화자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이고, 『고려사』 악지의 설명으로 보건대 어떤 시장에 행상으로 나가 있는 남편의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구절이라 할 수 있다.
둘은 ‘즌’에 대한 것으로 이를 ‘진창’으로 해석하되 남편의 가는 길이 위험하여 걱정의 마음을 의탁한 표현으로 보는 경우와 ‘유곽(遊廓)’, 화류항(花柳巷)으로 해석하여 남편의 음행을 걱정 및 의심하는 화자의 마음이 담긴 것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특히 ‘즌’를 유곽의 비유적 표현으로 보는 의견은 ‘져재’를 다니는 남편의 모습을 아내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 기웃하는 남편의 모습과 연결지어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셋은 ‘내 가논’에 대한 것으로 이는 ‘내가 가는 앞길’, ‘내가 돌아가는 길’, ‘내 님이 가는 곳’, ‘나와 님이 함께 가는 길’ 정도로 해석되는데 이는 ‘내’를 시적화자로 볼 것이냐, 시적 대상 즉 남편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시적화자와 남편을 모두 포함한 것이냐의 차이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노래 전체의 맥락에서는 남편의 외도로 기울어가는 부부의 인생길로 볼 것이냐, 아니면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집으로)돌아가는 아내의 길 혹은 행상을 떠난 남편이 아내에게로 돌아오는 길로 볼 것이냐로 해석의 방향이 갈리고 있다.
이와 같이 어석(語釋)적 견해차는 <정읍사>에 대한 해석을 크게 두 가지로 방향으로 나뉘게 한다. 그 하나는 행상 나간 남편이 다른 여인에 눈돌리는 것을 걱정하고 의심하는 여인의 노래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읍사>를 행상나간 남편이 무사귀환하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지고지순한 여인의 노래로 보는 것이다.
먼저 남편의 외도를 걱정하고 의심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는 <정읍사>의 음사성(淫辭性) 논란과의 관련 속에서 논의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정병욱ㆍ이어령은 ‘즌’를 여성의 성적 상징으로 해석함으로써 술을 파는 여자를 비유한 것이며, 따라서 남편이 노류장화의 유혹에 넘어간 상황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6) 그리고 권태욱은 일본 고대가요집인 만엽집 소재의 노래와 <정읍사>를 비교하여 ‘정읍사는 장사 떠난 남편을 기다리는 지극히 서정적인 내용을 읊은 겉노래 이외에 남녀 간의 정사 장면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속 노래의 이중적 구조로 된 성애가’라는 주장을 끌어와서 <정읍사>를 음사로 해석하였다.7) 다음으로, 행상을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지고지순한 여인의 노래로 보는 견해는 <정읍사>의 시적화자를 매우 수동적인 형상으로 특정하는 느낌을 배제하기 어렵다. 예컨대 염은열은 <정읍사>가 망부석이라는 설화적 맥락 안에 있음을 전제하고, 망부석이라는 소재가 사랑의 깊이와 기다림의 절실함, 기다리는 사람의 수동성 등이 구체화된 증거물이라는 점을 거론하고 이에 <정읍사>는 ‘지고지순한 아내의 남편에 대한 기다림의 노래’라는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고 보고 있다. 특히 ‘정읍’을 벗어날 수 없는 중세 여성이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달’에 의탁하여 남편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노래가 <정읍사>라고 간주하고 있다.8) 이로 보건대 ‘남편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지고지순한 아내의 노래’라는 주제의식 안에는 여성의 제한적이고 수동적 삶의 자세가 견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백제의 노래 중 유일하게 현전할 수 있었고, 또 조선조에 이르는 남녀상열지사와 충신연주지사의 사이에서 논란 가운데에서도 오랜 생명력을 지닐 수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정읍사>만이 드러낼 수 있는 가치 탐색이 필요해 보인다.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노래로 보거나 먼길 떠나 있는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수동적 여성상이 현대뿐 아니라 전승되던 당대에서도 유의미하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평가절하적이다. 이에 여기에서는 기왕의 두 가지 방향의 해석에 대한 재이해를 시도함으로써, 오랜 전승과정에서 <정읍사>가 지녔던 구심적 의미와 그 가치를 밝혀보고자 한다.
첫째, <정읍사>가 남녀간의 성애와 그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는 음사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읍 사람이 행상을 나가서 오래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그 처가 산 위에 올라가 바라보면서 남편이 밤길을 가다 해를 입을까 두려워함을 진흙물의 더러움에 부쳐서 이 노래를 불렀다.”라는 『고려사』 악지 삼국속악조 기록에 의거하면 ‘밤길’을 비유적인 의미로 간주하지 않는 이상, 분명 남편의 안위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담긴 노래라고 보는 게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굳이 문헌에 제시된 기록을 무시하고 남편을 의심하는 노래로 간주하는 것은 일관되지 않은 논리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노래가 ‘망부(望夫)’의 노래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태도에 의심의 영역이 개입되는 것은 논리의 비약으로 간주될 법하다.
<정읍사>가 남녀관계에서 군신관계로의 의미 확장이 가능한 맥락을 담고 있다는 점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 백제의 노래로 언급되는 5개의 노래 중 <선운산가>, <방등산곡>, <정읍사>는 모두 ‘기다림’의 노래로 설명된다.9) 그중 <선운산가>는 부역나간 남편이 기한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를 않아서 그 아내가 선운산에 올라가 바라보며 부른 것이고,10) <방등산곡>은 방등산에 웅거한 군도에게 납치를 당했던 한 부인이 자기 남편이 구출해주기를 고대해도 오지를 않아 부른 것이라 한다. 이와 관련해 임형택은 ‘기다림’의 정서가 백제의 시가문학에서 비중을 지니며, 중세기의 사회에 애타게 기다리는 ‘여심(女心)의 응고’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11) 한편 5개의 노래 중 <무등산곡>은 무등산에 성을 쌓아 백성들이 이를 믿고 안락하게 살 수 있게 된 기쁨을 노래한 것이고,12) <지리산가>는 지리산에 살면서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여자의 도리를 다하던 여인을 백제왕이 첩으로 삼고자 하여 여인이 죽기를 맹세하고 따르지 않았다13)는 내용의 노래라 한다.
이상의 다섯 개 노래 중 노랫말이 유일하게 전해지는 노래가 <정읍사>라는 것이 단순한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전제할 때, <정읍사>가 오랜 시간 전승되며 고려 궁중과 조선 궁중에서 채택될 수 있었던 것은 ‘관탈민녀’의 주제의식이나 성을 쌓아 안전함을 구가할 수 있음을 노래하는 것보다 ‘기다림’이라는 소재가 더 적실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기다림’의 노래 중에서도 <정읍사>가 채택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을 찾지 않는 대상을 원망하고 한탄하기보다는 멀리 떨어져 있는 남편을 걱정하는 것이 더 적실했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이와 관련하여 김명준은 “외적 상황과 화자의 태도로 정리하면 부당한 국가 권력에 대한 원망과 비판은 <선운산>, <방등산>, <지리산>에, 국가 안보에 대한 긍정과 믿음은 <무등산>에, 이것들과 별개로 넉넉지 않지만 일상적인 삶에 대한 소박한 바람은 <정읍>에서 볼 수 있”다고 언급하며, <정읍사>는 강제적 부역이 아닌 자발적으로 행상을 떠난 남편을 향한 노래라는 점14)이 나머지 네 개의 노래와 차별화될 수 있음을 언급하였다. 이러한 논의를 참조하면, 대상에 대한 원망과 비애의 정서가 소거된 가운데 기다림의 자세를 부각하기에 알맞은 노래가 <정읍사>이며, 이는 곧 소박한 부부의 삶이 변함없이 임금을 바라고 기다리는 신하로서의 모습으로 확장 이동 가능함을 내다보게 한다.
이러한 관계 확장 가능성은 조선시대 음사 논란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정읍사> 관련하여 조선시대의 음사 논란은 노랫말 자체보다는 궁중연향 과정에서 소재/주제별 배치에 따라 배제된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15) 음사 논란이 처음 거론되었던 조선 성종 대인데, 이때 여러 편의 고려가요가 음사로 지목되어 산개(刪改)된 바 있으나, <정읍사>는 그 목록에 들어있지 않았다.16) 이 노래가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중종 때인데, 이때에도 그것이 음사로 지목되지 않고 단지 음률이 맞는 ‘효’를 주제로 삼고 있는 <오관산>으로 대체되어 궁중연향에서 퇴출되었지만,17) 다시 숙종 대, 정조 대, 고종 대의 각종 궁중연향에서 <정읍사>가 궁중정재로 여러 차례 공연되었음이 확인된다.18) 이로 볼 때 <정읍사>를 궁중 연향에 포함시킬 것인가 아닌가의 기준은, ‘효’라는 주제로 갈음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거나 아니면 연향 당시 곡조와 음률에 있어 어떤 것이 더 자연스러운가 하는 문제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요컨대 <정읍사>가 노랫말의 문제로 퇴출된 것이 아니기에, <정읍사>의 재용(再用)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문헌 기록과 선행연구에 의거할 때, <정읍사>를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아내의 노래로 보는 가능성보다는 행상 나간 남편의 안위를 걱정하며 기다리는 아내의 노래로 보는 가능성이 좀 더 커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둘째, <정읍사>가 소극적 여성의 모습으로 보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 문제를 논하기 위해서는 <정읍사>의 노랫말 자체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먼저 <정읍사>의 노랫말에서 드러나는 특성 중 하나는 시적화자와 시적대상이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상태라는 점이다. 물론 대부분의 고전시가에서 그리움 혹은 기다림을 노래하는 시가는 당연히 시적대상과 분리된 상황이 바로 시작(詩作) 동기가 된다. 그런 점에서 그다지 특이한 사안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정읍사>가 시적 대상과의 분리된 상황 속에서도 대상과 연결될 수 있음을 전망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를테면 시적대상과의 연결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으로 ‘달’이라는 소재가 주목된다. “하 노피곰 도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①~②)에서 달이 세상 만물을 환하게 비춰주는 존재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정읍사>에서는 그러한 의미로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는 저 달이 높이 뜨게 되면 사랑하는 ‘임’이 있는 곳까지 뻗어나갈 것을 암시한다. 허왕욱은 <정읍사>의 달이 화자의 위치와 화자가 그리워하는 대상 사이에 존재하면서 양쪽을 비추어주고 있다고 설명하며, 달의 이동성보다는 삼각형 꼭지점에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달이 화자와 화자가 그리워하는 대상 양자를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존재한다고 논한 바 있다.19)
이러한 해석은 비가시적 대상을 ‘달’을 매개하여 감지함으로써 시적대상과의 분리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로 읽히며, 이는 마치 프로이트가 얘기하는 포르다게임의 예시와 닮아보인다. 즉 포르다게임을 통해 관계의 상실과 귀환을 반복 경험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동시에 스스로를 치유해나가는 과정과 가까워 보이는 것이다. 대상과의 분리에서 느끼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대상과 자신을 연결하는 안테나 역할을 하는 것이 포르다게임인 것처럼, <정읍사>에서 시적대상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분리감을 유발하고 불안을 유발할 수 있으나, 달은 ‘나’와 비가시적 존재인 시적 대상을 동시에 비출 수 있다는 점에서, 시적화자와 시적대상을 연결시켜 그 불안을 극복하게끔 돕는 중요한 소재로 기능한다고 할 수 있다.
전생애 발달단계 중 영아의 인지발달 초기단계의 특성 중 하나는, 눈앞에 물체가 보이면 따라가고, 물체가 사라지면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발달이 이루어질수록 영아는 물체가 보이지 않더라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대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개념을 발달심리학에서는 ‘대상항상성’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개념이 획득될 때 영아는 분리-개별화의 과정에 이를 수 있으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엄마와의 안정적인 애착관계 형성이라고 한다.20) 타인에 대한 안정된 감각은 관계에 대한 신뢰를 가능하게 하고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사고하고 움직이도록 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상 항상성은 생애 초기만이 아니라, 인간의 전생애 과정에서 두루두루 영향을 미친다. 잠복기와 청소년기 그리고 특히 성인기 초기 집을 떠나 독립할 때도 이런 과제는 재작업이 필요하며, 우리가 결혼할 때, 자녀를 가질 때, 옛 직장을 떠나 새로운 직장으로 옮길 때, 다른 도시로 이사할 때, 자녀가 취업해서 집을 떠날 때, 퇴직을 준비할 때, 배우자나 다른 사랑하는 이의 상실에 직면했을 때, 우리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때 등등 분리의 문제는 우리를 되찾아 와서 지속적인 해결을 요구한다.21) 그러기에 대상항상성은 전생애 발달과정에서 요구되는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대상항상성이 온전히 확보될 때 이는 자기항상성까지 동반케 한다. 즉 온전한 자기됨(selfhood)을 통한 자기항상성이 확보되면, 상대방이 보이지 않더라도 내가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내가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더라도 상대방에게 회귀해야 한다는 불안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상대방이 올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운영해나가는 힘까지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대상과의 분리에 대한 심리학적 이해는 <정읍사>에서 남편의 부재 상황에 대응하는 화자의 태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사랑하는 대상과 상실 혹은 분리된 상황에서 ‘달’이라는 소재는 시적대상과 시적화자를 연결시켜줌으로써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내가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더라도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게 하는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보는 달을 임도 보고 있다는, 그래서 내가 임을 보지는 못하지만 달을 통해 임을 느낄 수 있다는 안정감은 분리를 경험하는 가운데에서도 슬픔에 매몰되거나 불안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이지 않게 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그런데 시적화자는 달을 통해 시적대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안정감을 얻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져재 녀러신고요 즌 드욜셰라”(③~④)에서 기왕의 논의는 ‘즌’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집중되어 왔으나, 달리 보면 이 구절은 시적 화자의 관심과 시선이 시적 대상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새롭다. 혼자 남겨져 있다는 화자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기보다는, 시적 대상의 행방과 상태에 집중하면서 타자중심의 사고 패턴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아중심적 사고에서 타자중심의 사고로 옮겨가는 것 역시 발달심리학에서 중요한 성장 요소 중 하나로 간주한다. 특히 유아의 전조작기에서 유아는 자아중심성이라는 특성을 보이는데, 타인이 자신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느끼고 지각한다고 여기고 타인의 관점에서 조망하지 못하는 특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동일한 산(山)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관점에서 보느냐 아니면 타인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산의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면 유아는 정상적인 발달단계를 거치고 있다고 설명된다.22) 이는 물론 유아기 주요 발달과업일 뿐, 유아기에만 적용되는 특성은 아니다. 이러한 과업 역시 전생애에 걸쳐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적용되고 영향을 미친다. 주체적인 삶을 운영하되, 그것이 자기중심적이지 않을 수 있다면 그 또한 건강한 삶의 지표가 될 수 있으며, 이는 ‘나’로 하여금 상대방이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초석이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정읍사>의 “져재 녀러신고요 즌 드욜셰라”(③~④)는 상대방과 공간적으로 분리된 상황에서 오로지 홀로 남은 자신의 상황에 대한 집중보다는 화자와 떨어져 여기저기를 다니며 고생하고 있을 시적대상의 상황에 집중하는 것으로 이해되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불안 초조해하는 모습은 소거되고 오로지 시적대상의 안전에만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넉넉함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고대가요 <황조가>에서 “외로워라 이몸은 누구와 함께 돌아갈까[念我之獨 誰其與歸]”의 구절은 쌍으로 노니는 꾀꼬리와 대비되어 홀로 남아 있는 자신의 처지에 집중한 것이며, 이러한 화자의 태도는 훗날 정파에 휩쓸려 이도 저도 못하는 유리왕의 미성숙한 정치행태와 맞물려 비난을 면치 못하는 내용으로 인용되기도 한다.23) 그런 점에서 시적 대상과의 분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분리된 상황에 매몰되어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황조가>는, 대상과의 분리 상황에서도 대상의 안위에 집중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정읍사>와 상당히 대비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하겠다.
<정읍사>에 나타난 시적화자의 태도는 다음 “어느다 노코시라 내 가논 졈그셰라”(⑤~⑥)라는 구절을 통해 더욱 심화된다. 일견으로는 시적화자가 그리움에만 매몰되어 다른 생각은 다 집어치우고 남편에게 이제 가지고 있는 모든 짐을 내려놓고 빨리 집에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며 이는 장사치의 아내로서 가졌을 법한 생활감정에서 멀어지는 해석이라고 지적하기도 하였다.24) 그러나 짐을 놓고 돌아오라는 화자의 표현은, 만약 만선(滿船)을 바라며 남편을 기다리고 있을 아내의 기대와 달리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어부의 입장이었다면 상당히 위로가 될 법한 표현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즉 물건을 다 팔지 못하고 돌아올 남편의 발걸음이 혹여나 무겁지 않을까 염려하는 화자라면, ‘가지고 있는 짐을 놓고 오셔도 된다’는 표현은 남편에게 심적 부담감을 덜어내고 위로를 전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시적 대상에 대한 관심과 염려가 과도하여 혹여나 시적대상에게 부담을 주거나 불편함을 줄 수도 있음을 헤아리기까지 하는 화자의 심정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내 가논 졈그셰라”(⑥)는 “어느다 노코시라”와 같이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의 발걸음이 무겁지 않게 하려는 이유를 뒤에 배치하여 강조한 결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1)내가 남편을 마중나가는 길이 저물지 않기를, 혹은 2)남편이 나에게 돌아오는 길이 저물지 않기를, 혹은 3)남편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나의 삶이 저물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⑥), 남편이 돌아올 때는 어떤 부담도 갖지 않기를 바란다(⑤)는 화자의 소박한 소망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한다. 특히 3)과 관련하여 볼 때, 모든 일을 전폐하고 오로지 남편만을 기다리는 것은 남편의 부담을 내려놓게 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내 인생 길이 수동적인 기다림으로 점철된 것이라면, 대상과의 분리-개별화 과제는 여전히 미해결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다리되 남편의 길뿐만 아니라 ‘나’의 길도 밝힐 수 있는 기다림이라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운영해나가며 남편이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을 더욱 밝게 이끌어주는 원동력이 된다. 이는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서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는 구절을 연상케 한다. 오지 않고 있는 대상과의 만남 자체보다는 만남을 기대하며 보내는 시간을 더욱 의미있게 꾸려나가는 화자의 태도는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기다림의 형상이지 않을까 한다.25) 이와 마찬가지로 <정읍사>의 ‘내 가논’는 화자가 시적대상과의 만남 자체의 목적보다는 만남에 이르기 위한 ‘과정’을 의미하며, 그 과정을 귀하게 여기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어느 날 가볍고 즐거운 발걸음으로 남편이 귀환할 것이라는 소망을 담아낸 표현이라 짐작된다.
이처럼 <정읍사>는 자신을 대상과 고립된 존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달빛을 받는다는 위로를 통해, 둘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좁혀나가고자 하는 성숙한 인식 태도를 보인다. 소통이 부재한 일방적 타자화가 아니라 상대방이 있는 곳을 환기하며 스스로를 그곳으로 옮겨놓으려는 탈경계적 태도를 보이는 <정읍사>의 시적 맥락은 후대에 음설지사 논란에서 제외되고 궁중연향에서 불릴 만한 건강성을 담보한 노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남녀관계에서 상호 안정적 관계를 유지하며 상대방의 입장을 지지하고 배려하는 가운데 그 공고함을 다져가는 내용은 임금과 신하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덕목으로 확장 이동 가능할 수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러기에 남녀상열지사, 충신연주지사의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던 근거가 되지 않을까 한다.
Ⅲ. 지역문화콘텐츠로서의 활용 문제
<정읍사>가 보이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여인의 기다림, 타자 중심적이고 탈경계적인 이해는 남녀관계에서, 혹은 군신관계에서, 나아가 모든 신뢰가 요구되는 대인관계에서 많은 감동을 안겨줄 만한 요소가 있다고 보인다. 이러한 요소를 부각하여 콘텐츠로서 활용 및 확장한다면, 그동안 답보상태에 놓인 지역문화콘텐츠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교육콘텐츠와 상담 및 치료현장에서도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그동안 <정읍사>의 후대적 변용은 <정읍사>의 구심적 의미를 온전히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그 가치를 실각하는 결과를 보여준 것이 아닌가 되묻게 된다. 예컨대 조선후기 실학자 이익의 『해동악부』에 소개된 <정읍사> 역시 이러한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보인다.
秋泉咽山河 | 가을 샘물 온 산에서 흐느끼는데 |
兩地同明月 | 님 계신 곳에도 저 밝은 달은 있으리라 |
同明月 | 밝은 달은 함께 볼진대 |
凄風苦雨幾年離別 | 찬바람 궂은 비 맞으며 몇 해나 떨어져 있으나 |
等閒黃葉知時節 | 무심한 단풍잎은 시절을 알리건만 |
泥塗漠漠行人絶 | 막막한 진창길엔 행인마저 끊겼네 |
行人絶 | 오가는 사람마저 없으니 |
魂飛滄海貝宮珠闕 | 이 혼은 푸른 바다 용궁으로 날아 들리라26) |
위의 시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밝은 달리 시적화자와 님을 비추고 있지만, 시상은 시적화자가 처한 현실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상황은 찬바람 궂은 비 맞고, 행인마저 끊긴 상황으로 묘사되어 슬픔의 정조를 일관되게 드러낸다. 그리고 슬픔은 혼이 푸른바다 용궁에 날아들리라는 표현을 통해 그 비극적 상황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님을 기다리는 상황을 무기력하고 슬프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홀로된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어 궁극에는 죽음으로까지 비화되는 상황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조선후기 이후 <정읍사>의 기다림의 이미지는 시의 구심적 의미와 멀어져 한으로 점철된 수동적이고 희생적인 여인상으로 고정화하는 데 일조했으며, 후대에서도 <정읍사>에서 박제화된 여성의 이미지를 연상 및 반복하게 된 사유가 된 것은 아닌지 추측된다.
<정읍사> 전승 과정에서 붙박인 수동적 여인상의 이미지는 오늘날 여러 교육콘텐츠나 문화콘텐츠에서 반복 및 변주됨으로써, <정읍사>를 지고지순하게 남편을 기다리는 수동적 여인상으로 그려내거나, 남편의 불륜을 알고 있는 아내의 비애와 분노를 그려내기도 하였다.
남편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여인상은 교육현장에서 여인을 ‘석화(石化)’된 존재로 설명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해 보인다. <정읍사>를 고구려의 <치술령곡>27)과 동일한 모티프의 노래로 이해하는 가운데, ‘망부석’을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돌로 굳은 한이 서린 여인으로 박제화시킨 예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 예로, ‘천재학습백과’에 소개된 <정읍사>에 대한 내용을 참조하여 설명한 한 교육콘텐츠 내용에서는 <정읍사>를 김소월의 <초혼>과 견주면서, “망부석 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에 “‘초혼’은 전통 의식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노래한 김소월의 시이다. ‘초혼’에서는 임과의 이별 상황에 마주한 화자가 임을 애타게 기다리고 만나고자 하는 소망의 극한이 ‘돌’로 응축되어 나타나는데, 이는 ‘정읍사’의 화자가 임을 기다리다가 돌이 되고야 말았다는 망부석 모티프와 연결된다. 두 작품의 여성 화자는 임의 부재로 인한 그리움과 두려움의 정서를 간절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라고 하여, <정읍사>의 화자가 기다림의 한이 응축되어 ‘돌’이 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덧붙여,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우리의 전통적 여인상은 희생, 순종, 인고 등의 미덕을 가진 여인이었다. 이 노래의 화자 역시 행상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걱정하고 무사히 귀가하기를 기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 여인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전통적 여인상은 고려가요 ‘가시리’, 김소월의 ‘진달래꽃’ 등에서도 엿볼 수 있다.”28)라고 하여, 일방적으로 기다림을 강요당하는 수동적이고 희생적인 여인상의 전형을 <정읍사>에서 보여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고려사』 악지에는 “세상에 전하기는, 고개에 올라가 남편을 바라본 돌이 있다고 한다”라고 하여, 고개 위의 돌에서 남편을 바라보았다는 내용이 있을 뿐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돌이 되었다는 내용은 나와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읍사>를 <치술령곡>과 동일한 모티프의 노래라고 획일화하여 오해하고 있으며, 석화된 여인상은 결국 ‘수동적’인 여인상과 결합하여 고정시켜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남편의 불륜에 대해 분노하는 여인의 이미지는 어느 예술전공자의 공연예술을 위해 소개한 시나리오에서도 발견된다. 그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보름달이 뜬 어느 날 밤, 말끔한 옷차림의 아내와 행상인이 각각 다른 공간에서 다소 어색한 듯 조심스레 인사를 한다. 이들은 며칠 전 5주년 결혼기념일을 맞이한 부부이다. 행상인은, 출장 중 우연히 아내의 생일에 맞추어 귀국하게 되고 선물을 고민하던 중 직장 내 예쁘고 일도 잘하는 여자 직장 상사를 만나게 된다. 행상인은 그녀가 착용한 목걸이와 같은 제품을 아내에게 선물하게 된다. 어느 날, 행상인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오고 전화를 받으러 방으로 들어가는 걸 본 아내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행상인의 핸드폰에서 유독 많이 전화가 걸린 번호로 전화를 걸어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행상인은 상사의 지방출장에 대한 전화를 받고 지방행 열차를 탄다. 옆자리에 앉은 처음 만나게 된 매력적인 여자와 대화를 나누게 되고 다시 만날 약속을 잡는다. 한편, 아내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다시 그 번호로 전화를 하고 전화 속의 직장 상사와 만날 약속을 잡는다. 아내는 자신이 행상인에게 선물 받은 목걸이와 같은 제품을 한 직장 상사에게 남편와의 내연의 관계로 오해를 하게 된다. 아내는 직장 상사의 아름답고 당당한 모습에 분노를 느껴 살인을 하게 되고 같은 시각, 행상인은 다시 만난 그녀와 잠자리를 한다. 그들은 매번 이렇게 해왔다는 듯 고해성사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29)
<정읍사>를 활용한 예술공연을 시도하고자 한 이 전공자는 제작 배경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일부 연구에서는 ‘즌 ’를 여성의 성적인 상징으로 해석함으로써 술을 파는 여자를 비유하고 남편이 처음부터 음심을 품고 자의적으로 행한 외도가 아니라 노류장화의 유혹에 넘어가서 충동적으로 벌어진 일이라는 뜻으로 보기도 했다. 중종실록 13년 4월조에는 음사라는 견해가 실려 있었고 궁중에서는 폐지되고 새로 만든 악장인 오관산(五冠山)으로 대용하였다. 남편의 외도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다리던 여인은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갔다.’가 아닌, ‘다른 여자가 남편을 유혹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여인은 가정을 지킨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모른 척하고 있다”는 내용에 착안하여 공연물을 구성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조선시대 중종대에 음사논란에서 <정읍사>가 <오관산>으로 대체된 것은 단순한 음설지사라는 노랫말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전공자 역시 조선시대 음사에 대한 쟁점을 획일화하여 <정읍사>에 적용한 오류를 범한 것은 아닐까 예상된다. 그 결과 이 연구자는 <정읍사>에서는 대상과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화자의 정서를 전달하고 이어주는 매개체를 통해 그리움의 정서를 표현함으로써 달이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게 하는 큰 구실을 하는 반면, 공연물 <정읍사>에서는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내를 의존적이고 수동적으로 그림과 동시에 아내의 고뇌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무의식적 공포의 표출이 잘못된 방향으로 표현된 결과물이라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다.
물론 <정읍사>를 모태로 한 다양한 변주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변주의 출발은 <정읍사>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교육콘텐츠에서의 와전이나 고정된 선입견의 개입이 오히려 <정읍사>의 다양한 재창조 가능성을 희석화할 우려가 있다. 실제로 박제화된 <정읍사>의 고정적 이미지는 여러 형태로 변주되는 지역문화콘텐츠에서도 반복되는 현상이 없지 않다. 전북 정읍시에서는 <정읍사>를 모티브로 하여 ‘정읍사문화제’라는 지역축제가 이어져오고 있으며, 가무악극 <정읍사>와 오페라 <ᄃᆞᆯ하 노피곰 도ᄃᆞ샤>가 공연되기도 하였다.
가무악극 <정읍사>는 1990년대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지역문화축제의 수가 급증하던 무렵 정읍시에서 정읍사문화제를 개최하게 되었고, 가무악극 <정읍사>는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하여 만든 작품이다.30) 정읍사문화제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백제가요 정읍사의 역사적ㆍ문학적ㆍ문화적 가치 보존과 정읍사 여인의 부덕 부도 정신 계승, 모두가 함께하는 맛과 멋 그리고 흥이 있는 즐겁고 행복한 축제 구성”이라는 기본 취지 아래 1990년부터 지역축제가 이어져 왔으며, 2022년에는 ‘정읍사 망부상 부조’를 설립하는 행사도 열린 바 있다. 그리고 2003년에 <정읍사>의 배경설화에 기반하여 가무악극을 창작 공연하였음을 소개하고 있다. 가무악극과 관련하여 박진태는 <정읍사>를 활용해 정읍 지역문화로의 회귀와 축제로의 부활을 도모하는 시도에 대해 고무적이고 귀감이 될만한 사례라고 평가한 바 있다. “정읍사 전설을 ‘한 여인이 사랑하는 님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다는 슬픈 사랑 이야기’로 인식하고, 월아와 그녀의 남편 이외에 제3의 남자 해장을 추가로 설정하여 가무악극을 창작”한 것이라고 소개하였는데,31) 특히 사랑하는 님이 돌아오지 않는 상황에서 점차로 쇠약해져 죽어가지만 일편단심 님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돌이 되었다는 결말의 내용은 월아라는 여주인공의 ‘기다림’을 숭고함으로 덧입힌 결과이지 않을까 한다.
오페라 <ᄃᆞᆯ하 노피곰 도ᄃᆞ샤>는 2004년 전주소리오페라단(단장 우인택)이 전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모악당에서, 그리고 정읍의 정읍사예술회관에서 공연된 바 있다. 이 작품은 이후 오페라 <달하 비취오시라>라는 제목으로 개작되어 여러 차례 공연되어 왔다. 그러나 개작과정 속에서도 골자를 이루는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사비성 궁녀 월영은 나당 연합군의 침입 때 윤간을 당하고 눈이 멀게 된다. 퇴각하던 정읍지역 사병에게 구조되어 호족 정윤돈의 집에서 기거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돌 다루는 기술이 좋은 양곤이라는 청년과 만난다. 양곤은 월영을 연모하지만 정윤돈은 미모가 빼어난 월영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다. 월영은 자신을 한결같이 아껴주는 양곤을 신뢰하고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평소 월영을 질투하던 정윤돈의 아내는 간계를 꾸며 양돈과 월영을 궁지에 빠뜨리나 둘은 가까스로 탈출한다. 인적이 드문 산골에서 둘만의 행복한 생활을 시작한 월영과 양곤은 곧 생계의 어려움으로 위기를 맞게 되고 양곤은 장삿길을 떠난다. 그러다 양곤은 신라군에 끌려가고 이런 사실을 모르는 월영은 굶주림과 끝없는 기다림에 지쳐 선 채로 돌이 되어 죽는다.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양곤은, 돌로 변해버린 월영을 보고 비탄에 잠기고 그녀를 위해 눈을 조각해준다.32)
정인숙은 오페라 <ᄃᆞᆯ하 노피곰 도ᄃᆞ샤>를 원전인 <정읍사>와 비교논의한 바 있는데, 망부 모티브를 활용한 점은 원전을 계승한 것이라 하겠지만, 국가의 멸망과 다양한 인물들의 갈등국면을 드러내어 서사구조의 확대와 갈등이 심화되었다는 점과 주인공 월영의 수난의 반복으로 비극적 결말을 부각한다는 점에서 원전을 변용한 측면도 드러난다고 설명하였다. 특히 『고려사』나 『악학궤범』에는 여자가 돌로 변했다는 내용이 없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그럼에도 오페라 <ᄃᆞᆯ하 노피곰 도ᄃᆞ샤>에서는 월영이 그리움과 기다림에 지쳐 마침내 돌로 변하는 것으로 설정한 것은 비극적 효과의 극대화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33)
이처럼 가무악극 <정읍사>와 오페라 <ᄃᆞᆯ하 노피곰 도ᄃᆞ샤>의 줄거리는 사뭇 달라 보인다. 특히 가무악극 <정읍사>에서 도적이 등장하거나 오페라 <ᄃᆞᆯ하 노피곰 도ᄃᆞ샤>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점이 다르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도적이 등장하든 전쟁이 일어나든 두 주인공 남녀의 사랑이 고난 속에서 싹트게 되는 필연적 이유가 된다는 점에서 보면, 이야기의 뼈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멀리 행상 나간 남편을 기다린다는 점이 그러하고,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다 굶주림과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두 작품이 이러한 골자를 유지할 수 있었던 근거는, 두 작품 모두 백제노래 <정읍사>를 망부의 노래로 간주하되 망부의 상황을 비극과 절망이 점철된 과정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정읍사>의 망부 상황을 비극적 상황으로 간주하고 그 상황에 놓인 여인을 비련의 여인으로 설정하는 것은 실제 <정읍사>의 가사 자체보다는 그 가사를 경험하는 많은 감상자들의 편향된 인식의 개입 결과일 수 있다.
정읍에서 지속되어온 정읍사 관련 축제와 그에 따라 개발된 콘텐츠에 대해, ‘행상의 처’가 망부석이 되었다는 언급은 없는데도 정읍사 문화제에서는 행상의 처가 확실하게 망부석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며, 정읍 문화제의 정체성 확보가 시급함을 논한 김지현의 의견은 필자의 주장에 힘을 더한다.34) 오늘날의 정읍 문화제의 본령은 하나의 문화체험을 하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거기에서 창출되는 교육적 효과에 희열을 느끼는 것에 있음을 강조하고 일방적인 보여주기식 행사는 지양해야 함을 역설(力說)한 것이다.
창작을 하는 데 있어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보장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원가사를 차용하는 과정에서 원가사에 대한 이해는 어떤 것인지, 또 원가사와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를 짚고 넘어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차용의 과정에서의 오독 혹은 오해는 제2의 전승, 제3의 전승의 과정을 통해 <정읍사>를 변질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읍사> 기반의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콘텐츠 개발은, 기다림의 미학이 희생과 고통을 감내하며 비극에 이르는 것에 있다는 논리로부터 벗어날 때 그 활로가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정읍사>는 기다리는 시적 화자와 떠나있는 시적 대상이 상생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음으로써, 시적 화자의 맺혀 있는 마음을 풀어내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논리를 정읍의 지역문화콘텐츠의 원천으로 삼는다면, 전통문화의 생산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건강한 문화일 때 더욱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게 하는 기반이 될 것이며, 보다 건강한 지역사회문화를 만들어가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35)
오늘날 문화콘텐츠산업은 원형적 문화 요소를 발굴하여 새로운 미디어 및 장르와 융ㆍ통합하는 도전적 시도를 통해, 문화의 자생력을 이해하고 재구력(再構力)을 실천하는 창조적 경험의 장이다. 또한 다양한 현대적 문화가치를 창출하는 각광받는 기반 산업인 동시에, 특정 분야의 독점영역이 아닌, 각 분야의 통섭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기적 영역이다.36) 그러나 지역문화의 콘텐츠를 개발하고 활성화하고 시너지를 이끄는 데 있어서도 그 본령은 법고창신(法古昌新)의 정신에 있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정읍사>만의 건강한 여인의 모습은 정읍 지역문화를 부각하는 데 유의미하게 사용될 수 있으며, 나아가 오늘날 요구되는 여성상과 부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시너지는 배가될 수 있지 않을까 전망해 본다.
Ⅳ. 결론
백제 유일 현전 가요 <정읍사>의 선행연구의 큰 흐름은 남편의 음행에 대한 걱정과 의심의 노래로 보는 견해와 행상 나간 남편을 간절히 기다리는 지고지순한 아내의 노래로 보는 견해로 나뉜다. 전자는 <정읍사>를 음설지사 논쟁과 관련된 견해로, 아내의 질투 혹은 분노의 감정이 부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후자는 남편의 안위를 바라는 아내의 태도가 수동적인 여성상을 그려내는 데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 두 가지 해석은 오늘날 지역문화콘텐츠로 <정읍사>를 활용할 적에 얼마만큼 효용적일 수 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이에 본고는 <정읍사>의 음설지사 논란과 노랫말 분석을 다시 시도함으로써 콘텐츠로서의 활용가치를 재확인하는 데 목표를 둔 것이다. 분석의 결과 <정읍사>의 음사 논란은 노랫말보다는 궁중연향 과정에서 필요 여부에 따라 제외된 것이며, 후대에 다시 재용되었다는 점에서 노랫말 자체가 음사의 문제로 부각될 만한 요소는 적다고 보았다. 그리고 노랫말 분석을 통해서는 시적대상과의 공간적 분리를 부재로 이해하지 않는 성숙한 태도가 여성화자에게 드러나며, 나아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기다림의 자세를 보여준다고 이해되었다.
이러한 분석 내용은 <정읍사>가 교육콘텐츠로서 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문화를 활성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