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는 말
이 연구는 선경(仙境)과 음양합덕, 그리고 천지공사(天地公事)의 섭리를 분석하여 조선 미술과 접목하는 입장이다. 이에 대순진리의 태극 사상이 조선 미술에 깊숙이 스민 정황을 찾아내는 연구이다. 이로 말미암아 한민족의 생활이나 습속에 내재한 대순사상이 어떻게 비치는지 파헤친다.
아울러 한민족의 정서나 사상이 어떤 모습인지 대순사상과 창작품을 바탕으로 검토하는 데 따른다. 더욱이 대순사상이 학예에 파고든 정황을 우주론 차원에서 입증하는 데 따른다. 이에 부응한 연구 목적은 대순사상이 내세우는 핵심을 시각 이미지로 생생하게 들춰내는 일이다. 이로써 대순사상과 조선 미술의 결합에 부합하는 문헌과 더불어 실재성을 동시에 확보한다.
그 일환으로 이 연구는 우주론에 입각한 태극 원리로써 대순사상의 세계를 다룬다. 이러한 사상 개념은 조선 미술에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이를 예술 철학 입장에서 분석하여 점검한다. 우선 대순사상을 해결하려는 방안으로 대순진리를 개진하고 이를 조선 미술과 직접 접목한다. 이로써 대순사상이 한국인의 삶에는 어떻게 비치는지 밝힌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 미술의 선정 방법은 민중 생활에 깊숙이 파고든 창작품을 선별한다. 가령 대순사상이 조선시대의 풍속화, 민화, 산수화에 집중하여 나타나는 만큼 이를 단서로 입증과 검증 절차를 시각화하여 다룬다.
이에 따라 분석 대상으로 삼은 창작품은 외래 종교가 범람하던 시기에 등장한다. 이와 연계하여 민중의 삶에 집중하여 한국인의 정서나 사상을 좀 더 심층으로 알아보려는 의도이다. 대체로 외래 종교는 특정 집단이 필요치에 따라 구축한 상태이므로 원형이나 원질을 파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므로 특정 계급이나 권력으로 말미암아 이용 가치를 크게 느끼지 못한 민중과 관련한 창작품에 접근한다. 이로써 창작품에 음양과 태극이 드러나는 점을 부각할 수 있다.
결국, 이 연구에서는 조선 미술에 스민 ‘선경’이 ‘음양합덕’으로 드러나면서 ‘천지공사’의 원리에 기인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근거를 찾고자 한다.
Ⅱ. 대순사상의 형성
대순사상(大巡思想)의 목적은 천지공사에 기인하여 기존 선천 문화에서 드러나는 상극 성분을 상생으로써 후천 선경을 건설하려는 데 따른다. 이른바 대순사상은 종교나 인종, 그리고 사상과 이념을 초월하여 포용으로 맞이하는 데 그 의의를 지닌다. 그런즉 포용에는 만인이 평등하여 두루 보살핌을 받는다는 의미가 깔린다. 그도 그럴 것이 대순사상은 평등사상이 만연할 때 “천도교(天道敎), 원불교(圓佛敎), 증산도(甑山道) 등과 함께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한말에 태동”1)한 종교이다.
여기서 말하는 만인 평등사상은 계층이나 신분이 와해할 경우에 가능하다. 그러므로 대순사상은 무분별로써 일심(一心)이자 일원(一元)의 평등을 지향한다. 사실 불평등한 대상이 확보되면 주ㆍ객이 더불어 성립하는 까닭에 양분화될 소지를 충분히 안는다. 하지만 대순사상은 이러한 이분법에서 멀어지므로 물질이나 대상에 어떠한 구별이나 분파를 멀리한다.
이에 대순사상과 관련하여 살피면, “대순(大巡)이 원(圓)이며 원(圓)이 무극(無極)이고 무극(無極)이 태극(太極)이라. 우주(宇宙)가 우주(宇宙)된 본연법칙(本然法則)은 그 신비(神秘)의 묘(妙)함이 태극(太極)에 재(在)한바 태극(太極)은 외차무극(外此無極)하고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진리(眞理)인 것이다.”2) 말하자면 원은 무극으로, 그리고 무극은 태극으로 나아가는 형국이다. 그러므로 태극은 우주의 본연 법칙을 품기 때문에 외차무극하고 유일무이하다.
태극에는 우주의 순리를 따르는 법칙이 주어지는데, 곧 대순사상이 우주 법칙에 근거하는 단서를 제시한다. 그러니 우주의 순행은 쉼 없이 흐르면서 원만하게 운행하는 천지의 순리인 까닭에 일원으로써 외차무극하고 유일무이한 태극의 섭리처럼 무궁무진하다. 즉 무궁무진하니 무량하기 마련이다. 이는 개벽과도 연결되는데, 이른바 무량한 우주 섭리는 개벽을 지향하는 대순과 마찬가지이다. 필경 대순사상은 원만한 우주의 신비로써 미묘한 진리를 확보한다. 더욱이 이러한 진리는 이분법에서 멀기 때문에 일원으로써 무궁무진하다. 그러므로 무량한 개벽으로 이어진다.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의 수도 요체는 성(誠)ㆍ경(敬)ㆍ신(信)의 삼법언(三法言)으로, 그리고 수행 훈전은 안심(安心)ㆍ안신(安身)의 이율령(二律令)으로 삼는다. 이러한 삼법언이나 수행 훈전은 인간과 관련된다. 더불어 인간의 정신세계에서 일어나는 의식과 무의식에 따라 상호 작용으로 흐른다. 그러므로 훈전에서 강조하는 안심ㆍ안신의 이율령 역시 인간 생활과 직접 연계된다. 이는 삼강오륜이라는 도덕성과 이어지면서 인간 본질을 되찾으려는 계기를 발산한다. 이에 따라 음양합덕(陰陽合德)ㆍ신인조화(神人調化)ㆍ해원상생(解冤相生)ㆍ도통진경(道通眞境)에 기인한 대순진리는 대순사상에서 도통(道通)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한다.3)
특히 영통과 도통에 도달하는 근거를 두고 『대순진리회요람(大巡眞理會要覽)』에서는 “대순진리를 면이수지(勉而修之)하고 성지우성(誠之又誠)하여 도즉아(道卽我), 아즉도(我卽道)의 경지(境地)를 정각(正覺)하고 일단(一旦) 활연관통(豁然貫通)하면 삼계(三界)를 투명(透明)하고 삼라만상(森羅萬象)의 곡진이해(曲盡理解)에 무소불능(無所不能)하나니 이것이 영통(靈通)이며 도통(道通)인 것”4)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대순사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자 천명이다. 특히 도는 ‘도즉아’, ‘아즉도’이기 때문에 서로 생성하는 변화를 자아낸다. 자고로 융통한 경지에 이르면 마땅히 정각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정각하면 ‘삼라만상의 곡진 이해에 무소불능’하다는 진술은 그 어디에도 막힘이 사라지니 영통과 도통에 이른다는 뜻이다. 결국, 대순사상이 추구하는 제언은 인간의 도덕성과 연계되므로 도와 아가 원융하여야 마땅하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도와 아가 품은 원융한 평등의 실천은 일심으로써 일원을 추구하는 수도나 수행에 따른다. 이를 명증화하려는 의도에서 『대순진리회요람』의 일부분을 싣는다.
오직 우리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는 성(誠)ㆍ경(敬)ㆍ신(信) 삼법언(三法言)으로 수도(修道)의 요체(要諦)를 삼고 안심(安心)ㆍ안신(安身) 이율령(二律令)으로 수행(修行)의 훈전(訓典)을 삼아 삼강오륜(三綱五倫)을 근본(根本)으로 평화(平和)로운 가정(家庭)을 이루고 국법(國法)을 준수(遵守)하여 사회도덕(社會道德)을 준행(遵行)하고 무자기(無自欺)를 근본(根本)으로 하여 인간(人間) 본래(本來)의 청정(淸淨)한 본질(本質)로 환원(還元)토록 수심연성(修心煉性)하고 세기연질(洗氣煉質)하여 음양합덕(陰陽合德) 신인조화(神人調化) 해원상생(解冤相生) 도통진경(道通眞境) … 5)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순사상과 한국 철학은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이어왔을 법하다. 이에 『대순진리회요람』에서는 강증산(姜甑山) 성사(聖師)께서 이조 말엽에 진리를 선포하였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일어난 정황을 단지 이조 말엽에 다다라서 비로소 진리를 밝혔을 뿐이다. 이러한 정황은 조선 미술에서도 고스란히 담긴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세세하게 점검하기로 한다.
『대순진리회요람』에서 밝히듯이 조선 말엽의 한반도는 극도로 혼란한 정세이다. 그야말로 종교(宗敎)ㆍ정치(政治)ㆍ사회(社會) 모든 분야에서 ‘보국안민(輔國安民)’의 대순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지경에 빠진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혼란한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방안으로 ‘음양합덕ㆍ신인조화ㆍ해원상생ㆍ도통진경’에 기인한 대순진리는 이를 구제하고 해결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이를 온전하게 해결하려면 ‘보국안민’의 정치와 ‘지상 천국(地上天國)’의 사회를 이끄는 일이다. 즉 창생(蒼生)을 구제(救濟)하는 진리인 셈이다.
자고로 도탄기에 빠져들면 들수록 인간은 나약한 존재로 남기 마련이다. 이에 부응한 대순진리의 삼계공사(三界公事)는 인간 사회를 구제하는 원인이자 필요치였을 법하다. 다음에서 해명의 실마리가 극명하게 진술된다.
강증산(姜甑山) 성사(聖師)께서는 이조(李朝) 말엽(末葉)에 극도(極度)로 악화(惡化)한 종교적(宗敎的)ㆍ정치적(政治的)ㆍ사회적(社會的) 도탄기(塗炭期)를 당(當)하여 음양합덕(陰陽合德) 신인조화(神人調化) 해원상생(解冤相生) 도통진경(道通眞境)의 대순진리(大巡眞理)에 의(依)한 종교적(宗敎的) 법리(法理)로 인간(人間)을 개조(改造)하면 정치적(政治的) 보국안민(輔國安民)과 사회적(社會的) 지상 천국(地上天國)이 자연(自然)히 실현(實現)되어 창생(蒼生)을 구제(救濟)할 수 있다는 전대(前代) 미증유(未曾有)의 위대(偉大)한 진리(眞理)를 선포(宣布)하시며 이에 수반(隨伴)된 삼계공사(三界公事)를 행하시다.6)
대순진리는 대순사상에서 강조하는 평등과 한국 철학에서 내세우는 일원의 제시와 상통한다. 이를테면 ‘일원’은 체용(體用)의 입장에서 말한다. 즉 체용 논리는 본체(本體)와 작용(作用)의 교융 현상을 이른다. 그런 차원에서 인성(仁聲)에 기인한 일원은 음양이기(陰陽二氣)의 원리와 용(用)이라는 작용에 따른다.
다시 말하면 체용의 일원은 용(用)은 체(體)에, 체(體)는 용(用)에 서로 작용하므로 모든 만물이 생성과 변화를 일으키는 순리이다. 이처럼 일원은 천지와도 같은 맥인 까닭에 동정진퇴(動靜進退)한 변화를 내비친다. 그런 연유로 움직임과 고요함, 나아가고 물러남이 항시 변화를 갈구하는 법칙은 “동동왕래(憧憧往來)”7)와도 같다.
으레 우주 법칙도 마찬가지로 천기(天氣)와 지기(地氣)라는 승강(昇降)에 따르기 때문에 만물을 생장하게 이른다. 말하자면 상승과 하강이 순환 이치에 거스르지 않고 쉼 없이 작용하는 섭리이다. 따라서 생성에는 변화가 지속으로 이어지는 연유로 무단절한 순환 양상을 낳는다. 이러한 순환이 우주 섭리에 부응하는 체용에 따른 일원이다.
Ⅲ. 음양합덕과 태극 사상
대순사상의 음양합덕과 태극 사상은 ‘천지공사’의 원리를 기반으로 삼는다. 더 나아가서 선경과 음양합덕 사상은 대순사상을 해득하는 데 중요한 기틀이다. 그런 만큼 이를 분석하여 체득하는 일은 대순진리의 핵심을 깨닫는 계기이다. 더욱이 선경과 우주 개념은 이를 뒷받침하는 발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선경과 우주의 순환 원리는 곧 음양합덕의 이치와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대순진리의 종지가 음양합덕ㆍ신인조화ㆍ해원상생ㆍ도통진경인 만큼 ‘후천선경(後天仙境)’은 천지공사가 지향하는 목표이다. 이를테면 후천선경은 도통진경에 도달하는 가교와도 상응하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는 일은 중대하다. 즉 “천지공사를 시작한 시범부터 우주를 비롯한 인간 세계는 음양합덕ㆍ신인조화ㆍ해원상생 원리에 따라 도수에 맞게 변화하되 궁극적으로는 도통진경으로 나아감을 목적으로 삼는다.”8)
이와 걸맞게 선경의 진리는 예술 창작품과도 연결되는데, 가령 <심우도(尋牛圖)>를 들 수 있다. 그런즉 태극 사상이 기존 종교에서 강조하는 심우도의 틀에서 벗어나 대순사상에서 말하는 심우도에 접근하려고 시도한다. 말하자면 인간 본성의 깨달음에 기인하는 생장염장(生長斂藏)의 태극을 일컫는다.
흔히 심우도는 십우도(十牛圖)로도 일컫는다. 곧 선(禪)의 상징인 <심우도>는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이상으로 삼는다. 작필 순서는 점수(漸修)의 전개를 바탕으로 삼기 때문에 수행 단계에 따라 점차 경지에 도달하는 과정을 표현한다. 그리고 열 단계로 나뉘는 <심우도>는 각각 점수의 상징을 표방한다. 즉 수행 단계는 다음과 같다.
수행의 시작 단계인 심우(尋牛), 본성을 서서히 느끼는 단계인 견적(見跡), 서서히 본성을 확인하는 견우(見牛), 삼독(三毒)에 물든 상태에서 견성(見性)을 상징하는 득우(得牛), 삼독의 번뇌를 떨쳐버리는 목우(牧牛), 피안의 세계로 나가는 기우귀가(騎牛歸家), 본성이 낳은 방편을 망각하는 망우존인(忘牛存人), 자신도 잊은 상태로 깨달음을 얻는 경지인 인우구망(人牛俱忘), 이분화에서 멀어진 일원화된 주ㆍ객 형국으로 지혜를 깨닫는 반본환원(返本還源), 복덕(福德)으로 중생 제도를 상징하는 입전수수(入廛垂手)이다.
한편 대순사상의 후천개벽을 상징하는 <심우도>는 인간 본성의 깨달음을 동자와 소로 상징화하여 그린 그림이다. 여기서는 심우도 5폭, 즉 ‘도통진경(道通眞境圖)’으로써 천지인 삼재가 후천개벽의 선경 세상에 도달하는 장면이다. 이는 천재상이 다가왔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우주 만물이 융섭으로 순화하면서 후천개벽을 맞이하는 정황이다. 이를 함축하면 “심우도 5폭, ‘도통진경’은 도를 통하여 참다운 경지에 도달함을 말한다. ‘도지통명’은 도가 밝아진 후천개벽을 이룬다.”9)는 진술이다.
이처럼 선경 세상은 우주 만물의 순환 원리와 서로 동화 작용을 일으키는 데, ‘스스로 그러한’ 의미로써 자연(自然) 섭리를 따른다. 더욱이 우주는 시작이나 끝(始終)이 사라진 무한대를 형성하는 까닭에 변화를 끊임없이 지속으로 잇는다. 그래서 우주의 본질은 시종이 전무하니 애초 시작이라 할 만한 여건이나 원인도 아예 사라진 셈이다. 당연히 처음부터 시작이 무존하니 끝도 없다. 다만 시종이 서로 우주 질서에 순응하여 어디론가 끝없이 흘러갈 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생장염장’의 개념 역시 우주 질서와 마찬가지 이치이므로 무한대로 뻗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을 따른다. 이에 “변화의 시간대를 네 단계로 구분하면 ‘생장염장’이 된다. … 생장염장은 생명의 율동으로 형상화한 우주 질서이며 하늘 이치이다.”10)
이와 같은 맥락으로 살필 때 대순 우주론에서 태극이 품은 초월성은 무극을 따른다. 말하자면 대순 우주론은 무극으로 치달으니 마땅히 태극 원리처럼 변화를 반복하면서 무한대로 나아간다. 이러한 우주론은 원의 섭리와 연결된다. 곧 원의 이치는 무한 반복의 무극으로써 시종(始終)이나 양분이 무의의한 우주의 초월 섭리를 맞는다. 이처럼 우주는 공공(空空)하고 또 공공하면서 일원 세계를 거듭 품는다. 이에 태극은 무한한 초월성에 따른 무극으로 흐르는 만큼 일원의 순리를 이룬다.
우주의 무극에는 시공간이 분리되지 않고 서로 융화하기 때문에 무공(无空)한 상태가 끊임없이 흐른다. 이처럼 무공한 우주는 쉼 없이 운행하면서 무한으로 치닫는 섭리를 자아낸다. 따라서 우주론에서 태극은 음양을 낳고 음양은 사괘(四卦)를 낳고 사괘는 팔괘(八卦)를 낳듯이 양단으로 구분 짓는 이원론은 성립되기 어렵다. 결국 태극은 음양, 사괘, 팔괘로 무한히 뻗는 무극의 세계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서 “무극은 음양의 이원성이 존재하지 않는 ‘일자(一者)’ 논리이면서 동시에 상대 세계를 초월”11)한다. 곧 “천지지도(天地之道)”12)이다. 말하자면 우주는 역의 근본이며 역은 무한히 순환하는 천지의 질서를 변화로 다스린다. 따라서 변화는 무경계하며 무분별하니 양분화된 이단 논리에서 벗어나는 도(道)와 마찬가지이다.
대순사상에서 추구하는 음양합덕은 “정음정양의 도수”이다.13) 여기서 “‘정’은 ‘올바름’으로, 음과 양의 바른 합덕 이치로 생각 이치를 밝힘이다.”14) 정병화는 음양상합(陰陽相合)에서 음양합덕 사상을 찾는 데, 이는 상대성에서 떠나 관계지향으로 나아가는 원리이다. 그러므로 무상관(無常觀)한 까닭에 서로 융섭을 이루는 구조이다.
혹여 상대화로 음양을 간주할 경우 주ㆍ객이 저절로 형성되어 음양합덕은 이원 논리만 난무하기에 이른다. 왜냐하면 두 다른 하나로 음양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음양이 천지에서 기인한 태극이라고 간주할 때 변화의 장으로써 무궁무진한 섭리를 영위하기 마련이다. 즉 “물불가궁야(物不可窮也)”15)의 순리이다. 따라서 음양합덕은 그 어디에도 치우치는 바를 마다하지 않는 무근(無根)이며 무상(無象)일 뿐이다. 이에 “‘관계의 존재론적 우선성’을 음양상합”16)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 탓에 음양합덕은 “인을 양으로 삼고 신을 음으로 삼아 서로 교합한 후에는 변화의 길이 열린다.”17) 즉 음양합덕은 인간(人)인 양과 신(神)인 음이 서로 교합하는 섭리를 자아낸다. 교합에는 항시 변화라는 도를 이룬다. 그러니 음양이 서로 대상으로써 주어진 정황에는 교합이라는 변화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이러한 변화는 대상마저 상합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음양은 합덕 양상으로 무궁히 흐른다.
기실 음양합덕은 신인조화ㆍ해원상생ㆍ도통진경과 맥을 함께 이루는 대순진리이다. 이러한 대순진리의 종지(宗旨)는 “성(誠)ㆍ경(敬)ㆍ신(信)의 삼법언(三法言)으로 수도(修道)의 요체(要諦)”18)가 바탕이다. 삼법언 역시 음양합덕의 본질에서 강조하는 인간과 신, 그리고 음과 양의 교합이자 상합을 다스리는 깨달음이다. 필경 성ㆍ경ㆍ신은 인ㆍ신, 음ㆍ양과 서로 조화롭게 무궁한 변화를 창출하는 우주 진리의 핵심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더욱이 “‘음양합덕’이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뜻이다. 논리적인 표현을 빌리면 ‘부분’이 곧 ‘전체’라는 뜻이다.”19) 이 말인즉 부분은 전체요, 전체는 부분이라는 논리와 상응한다. 더불어 사람이 하늘이라는 말 역시 하늘은 사람이라는 논리와도 같은 맥락을 취한다. 그러니 사람이나 하늘은 선후나 상하가 배제된 형국이라서 오로지 서로 융통 관계로써 끊임없이 변화를 창출할 뿐이다.
무릇 천지공사와 관계 짓는 음양의 섭리가 서로 융통하니 만민평등 사상이 자리하기 마련이다. 이에 따라 “음양합덕은 기감(氣感)에 근거한 감성의 횡단매개에 의해 이루어지는 수평적 감성상통에 그 요체가 있다.”20) 그런즉 음양합덕에 따른 만민은 공공성을 띠기 때문에 당연히 대립에서 떠나 수평 감성으로 흐른다는 논리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음과 양은 두 다른 개념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만 그 어느 하나라도 존속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음양에는 매개항이 필요한데 김용환은 이를 두고 “‘사이(between)’, ‘함께(together)’, ‘초월(transcendence)’”21)로 이해한다. 결국 음양합덕은 음양이 상호 융통하는 이유로 그 어떤 장벽이나 구획이 그어지지 않는 묘미를 지닌다. 이를테면 “동정유상(動靜有常)”22)하다. 그래서 음양에는 보지 못하는 무경계가 무한하게 흐른다.
이른바 무경계는 경계가 없다는 의미라기보다 경계 자체를 불인한다는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음양에는 경계 지을 만한 구조가 애초 무존한 셈이다. 이로 말미암아 음양합덕은 무한한 무경계일 뿐이다.
대순사상에 근거한 ‘천지공사’는 우주 만물이 잉태하는 ‘태극 사상’과 그 흐름을 공유한다. 특히 천지공사는 시공에 따른 ‘선천(先天)’ㆍ‘후천(後天)’ 시대와 ‘천지인’이 개벽(開闢)을 이루는 형국이다. 이에 근거할 때, “시간적으로는 ‘선천’ 시대와 ‘후천’ 시대를 구분하는 ‘개벽’의 기점이며, 공간적으로는 ‘천지인’의 삼계가 완전히 새로운 원리와 구성을 이루는 기점이다.”23)
개벽에 이르는 천지공사는 도탄에 빠진 인간 세계에 스며들어 후천선경으로 인도하는 가교 역할을 담당한다. 이 모든 정황에서 일어나는 원인은 지상 천국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이를 성취하려면 후천선경에서 만민평등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온전한 수평으로 구축된다. 그러므로 천지공사의 목적은 고통스러운 지경에 빠진 인간을 구제 혹은 인도하여 관계 지향으로서 후천선경을 머금게 하는 일이다.
필경 개벽으로 지상 천국의 후천 세계를 갈망하는 이유는 도탄에 빠진 선천 세계에서 떨어져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려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 이를 두고 신과 인간의 변화를 강조하기도 한다. 그런즉 “천지공사는 낡은 선천 세계를 뜯어고치고 개벽하여 선경의 후천 세계를 여는 것이다.”24) 즉 천지공사는 ‘음양합덕’의 기초인 만큼 음양의 부조화를 조정하여 음양이 합덕할 기틀을 다지는 일이다. 이른바 음과 양이 합덕하는 데에는 동등한 정음정양(正陰正陽)의 관계가 성립된다.
결국 증산의 천지공사론은 “증산의 자기 인식과 세계 인식으로부터 출발”25)한다. 이른바 천지공사론이 지향하는 바는 곤궁에 빠진 인류를 구제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선천 세계의 반성과 더불어 후천 세계의 희망을 인식하여야 마땅하다. 이를 바탕 삼아 자신과 타인이 모두 하나라는 융화된 일원 논리로 후천 세계를 맞이하여야 진정한 천지공사론의 본질에 도달한다.
대순사상에서 태극은 우주 만물의 근원을 밝히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 일환으로 『전경(典經)』에 이르기를, “도주께서 병인년 봄 어느 날 공부를 마치고 담뱃대 도수라고 하시면서 담뱃대의 담배통과 물부리에 크고 작은 태극을 그려 여러 개를 만들어 여러 종도들에게 등급별로 나눠 주시고 일반 신도들에게는 제각기 설대에 태극을 그려 넣게 하셨도다.”26)라고 전한다. 이는 모든 만물에 태극 원리가 내재한다는 보편성을 일컫는다.
말하자면 도주께서 어느 봄에 담뱃대 도수로 종도나 신도 모두에게 담뱃대의 담배통과 물부리, 그리고 설대에 태극 문양을 그려 나눴다는 언급만 짚더라도 대순진리가 우주의 본질을 담은 사상임에 틀림 없다. 이는 “일월운행, 일한일서(日月運行, 一寒一署)”27)의 섭리를 헤아린다. 그런즉 태극이 우주 만물의 변화 양상을 자아낸다고 간주할 때 음양 이치와 직접 결부되는 일은 자명하다.
이와 관련해서 “구천상제가 대순하기에 태극 이치를 주관”28)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태극은 천지에서 음양을 낳고 음양은 오행을 낳는 우주 순리를 따른다. 따라서 태극은 음양 원리에 따라 만물의 근원을 캐는 셈이다. 결국 태극 생성은 대순에 근거한 구천상제를 따르는 국면이다.
이로 말미암아 태극이 “음양 대대라는 존재 원리의 한 측면을 내재하고 있다.”29)는 견해도 살필 만하다. 이에 음양은 대상화라기보다 공존으로 평등을 낳는 일심 원리에 기인한다. 그런즉 일심에는 음양이 서로 교합하는 순리를 동시에 담는 상징도 함유한다. 결국 음양은 우주 만물이 교합으로 품는 이치와 마찬가지인 까닭에 무한히 일심으로 뻗어 나가는 형국을 취한다.
더 나아가서 태극을 현상학(現象學, phenomenology)으로 비유하는 설도 주목할 만한 논리이다. 이에 “태극과 ‘살’은 공히 음(보이지 않는 것)과 양(보이는 것)이라는 이원화된 분화 속에서 생성 변화의 원리와 질료적 이미지를 다 같이 함유하고 있다.”30)
덧붙여 말하면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가 『보임과 보이지 않음(Le visible et l’invisible)』31)에서 피력한 이론대로라면 ‘보임’과 ‘보이지 않음’은 뒤섞임 작용으로써 상호 작용을 일으키는 논리이다. 이는 상호 교응 관계로서 교차(chiasm) 성격을 띤다. 일명 ‘살(la chair)’이라는 후기 현상학의 핵심이 태극 원리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점만 남기기로 한다.
Ⅳ. 대순사상과 조선 미술의 융합
조선 미술은 동양 사상이나 철학의 영향을 적극 수용하기 때문에 작품 분석의 방법론 역시 이에 걸맞게 논의한다. 그러므로 서구 미학에서 강조하는 논리에 관심을 집중하기보다는 동양 철학의 관점으로 접근한다. 특히 동양 예술은 합리성이나 이성관, 그리고 직선 사관에서 떠나므로 본문의 서술 방식도 여기에 촛점을 맞춘다. 따라서 작품 분석 방법론은 동양의 논리학을 바탕으로 다룬다.
조선 미술에는 대순사상이 오랜 세월 동안 시기와 지역, 그리고 계층을 불문하고 더불어 이어왔다. 여기에는 단순히 대순사상과 조선 미술의 융합 차원을 넘어서서 한민족의 의식이나 정신을 대변하고 공유하는 상생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런 만큼 조선 미술에는 한민족의 삶과 더불어 대순사상이 상호 공유 차원에서 상당 부분 동일성을 띤다는 사실은 괄목할 만하다.
이러한 양상은 조선 미술품에 깊숙이 남아 지금까지 전해온다. 이 때문에 조선 미술품에 깃든 태극 상징과 대순사상의 태극 분석은 한민족의 정신문화를 이해하는 처사이다. 이에 따라 조선 미술에 나타나는 태극 논리가 다양한 이념과 사상을 배경으로 오랫동안 변화와 변질을 거듭하지만 여기서는 대순사상의 태극 논리를 추구한다.
한민족의 삶 역시 인간이나 인류의 순환 흐름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를 우주론 관점에서 밝히면 ‘무위이화(無爲而化)’로 간주한다. 즉 『전경』에서는 “나는 생ㆍ장ㆍ염ㆍ장(生長斂藏)의 사의(四義)를 쓰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無爲而化)니라.”32)고 적고 있다. 말하자면 우주 변화의 순환 원리를 두고 낳고 성장하고 거두고 감추는 ‘생ㆍ장ㆍ염ㆍ장’의 섭리로 이해하면 타당하다.
이러한 생ㆍ장ㆍ염ㆍ장과 관련하여 『전경』에는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의 무궁한 선경의 운로를 열어서 선천에서의 상극에 따른 모든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道)로써 세계의 창생을 건지려는 상제의 뜻은 이미 세상에 홍포된 바이니라.”33)고 전제한다. 결국 선천에서 일어난 상극의 악재를 풀어 상생하는 도의 세계인 후천선경으로 진입하는 일이 상제의 뜻이라는 진술이다. 그뿐만 아니라 후천 세계에서 상생을 추구함으로써 창생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이에 걸맞게 조선 미술에는 태극 원리에 기인한 후천 세계를 상징화로 이끄는 창작품이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표출한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조의 영ㆍ정조대에는 조선 미술이 부흥한 시기인 탓에 많은 예술가가 진경산수나 풍속화 등에서 독특한 화풍을 양산한다. 하지만 조선 미술이 지향하는 화맥(畵脈)이나 화법(畵法)에 따른 염려도 간간히 내비친다. 일례로 고유섭(高裕燮, 1905~1944)은 “소위 「동인(東人)의 습기(習氣)」라는 것이 약점으로 대개는 들어가 있다. 이것이 예술적으로 잘 승화되면 「조선적 특수성격」으로 추앙할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논할 건덕지가 못 되는 것”34)이라고 토로하기도 한다.
조선 미술사 거론에서 인간 가치와 인격 완성, 그리고 자유 경지에 기초한 주류를 산수화로 간주하는 경향도 더러 나타난다. 가령 “예술이 인간의 궁극적 가치를 대변하고 인격 완성과 자유의 경지를 이상으로 삼는 길이라고 한다면, 단연 산수(山水)가 그 주된 역할을 감당하게 마련”35)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산수화가 조선 미술의 주류를 이룬 적이 간간히 드러나지만, 절대치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한민족의 예술 정서는 창작품이라는 실증 자료가 입증하듯이 다양성과 다변화를 이룬 탓에 조선 미술 역시 이에 호응한 상황이다. 그런 연유로 말미암아 대순진리와 관련한 한민족의 삶은 특정 사상이나 정서에 얽매이지 않는 우주의 변화 양상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러한 주류 정황을 완전히 뒤집는다.
사실 조선 미술 영역 가운데 산수화, 풍속화, 민화 등에서는 기법이나 화법을 막론하고 다각화한 작풍으로 태극 사상이 등장한다. 이러한 태극 사상은 대순진리에 부응하는 만큼 조선 미술의 여러 분야에 걸쳐서 다양한 방법으로 전개된다. 일례로 우주론에 따른 변화의 장이다. 말하자면 우주론에 근거하는 변화는 진퇴(進退)의 상(象)이며, 강유(剛柔)는 주야(畫夜)의 상이다.36)
이른바 변화는 『주역(周易)』, 「계사전상(繫辭傳上)」에 쓰인 “변통막대호사시(變通莫大乎四時)”37)라는 언어와 합치된다. 즉 변통(變通)은 사시(四時) 변화로써 무궁하게 만물이 전변하는 소통을 일컫는 의미이다. 따라서 조선 미술과 한민족의 삶은 변통하는 태극의 변화 국면을 머금는 셈이다.
조선 미술은 역사 이래로 제각각 특수성을 발휘하면서도 변통으로써 변화를 거듭 지향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이를테면 ‘서화일치(書畵一致)’라는 문화 풍토가 일례이다. 필시 서화일치는 문필뿐만이 아니라 그림과 교합 입장을 줄곧 강조하는 화론(畵論)이다. 이유인즉 우주론에 근거한 서화일치는 지필묵(紙筆墨)과 성격이 맞닿은 천ㆍ지ㆍ인(天ㆍ地ㆍ人)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가령 천지인은 ‘하늘=지’, ‘땅=묵’, ‘사람=필’로 이해된다. 이에 음양론에서 흰색 종이는 하늘, 검은색 묵은 땅, 인간의 색인 황토는 사람을 상징한다. 마땅히 동양 예술에서 지필묵이 추구하는 사상의 바탕은 오랜 세월 동안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대순사상 역시 지필묵의 중요성을 심오하게 강조한다. 이에 『전경』에 따르면 “어느 때 종도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상제께서 ‘선비는 항상 지필묵을 지녀야 하나니라’고 말씀하셨도다”39)는 대순사상에 기인한 우주론을 대변하는 문구이다. 곧 지필묵은 천지인의 상징으로써 우주 교합과 더불어 융섭을 추구하는 태극 형국과 동일하다. 응당 태극은 <태극원기도(太極元氣圖)>에서 처럼 천ㆍ지ㆍ인에 따라 인ㆍ의ㆍ예ㆍ지(仁ㆍ義ㆍ禮ㆍ智)를 구성한다.
의당 묵화(墨畵)에서 지필묵으로 운필하는 체득은 우주 변화의 창출을 도모하는 과정이다. 여기에는 변화의 장이 강조되는데, 이른바 선천학(先天學)에서는 상수 원리로써 선천팔괘도(先天八卦圖)를 내세우기도 한다. 이를테면 “북송 소옹(邵雍)이 창시한 도교 사상에 근거하는 선천학을 일러, ‘세상의 변화를 추정’하기 위해 선천팔괘도를 만들었다.”40)고 강조한다.
이러한 우주 변화에는 음양 순리가 따른다. 으레 음양은 천지의 도로 일컫는다. 즉 천지의 도는 “음양(陰陽)은 천지(天地)의 도(道)이니, 만물(萬物)의 강기(綱紀)이며, 변화(變化)의 부모(父母)이며, 생살(生殺)의 본시(本始)이며, 신명(神明)의 부(府)이라.”41)는 명시와 다름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우주론에서 추구하는 음양 변화는 단절된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런 연유로 유위법(有爲法)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마땅히 무위법(無爲法)도 무존(無存)한 셈이다.
무릇 음양에 따른 변화 양상은 “생기는 것(生)과 머무는 것(住)과 사라지는 것(滅) 등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유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위법이 존재하지 않는데 무위법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42)라는 언급과도 일치한다.
응당 우주의 섭리는 심오해서 시ㆍ공간이 무궁무진한 무한 세계를 향한다. 그리고 무종(無終)이어서 생사(生死)나 출입(出入)이 무실체한 까닭에 형상조차 무의의(無意義)하다.43) 더욱이 우주는 시ㆍ공간에 따른 경계에서 벗어나므로 주ㆍ객의 이분화 역시 떠난 상태이다. 이는 천지 운행으로써 역행(易行)이 순응하는 순리이다.44) 말하자면 역행에는 무궁한 변화로 말미암아 태극이 따르는 섭리를 머금는다. 그러니 역행하는 순응에는 태극에 기인하는 음양이 주ㆍ객으로 나뉘지 못하는 이유로 변화만을 쉼 없이 창출한다.
혹여 주ㆍ객으로 나뉜 이분화에 물들면 ‘합생(concrescent)’에 따른 주체만이 직접태로 남을 뿐이다. 그래서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의 말대로 “그 주체 자신의 자기 구성(self-constitution)을 생생하게 지향함으로써 성립된다. 따라서 그 지향하는 최초 단계는 신의 본성에 뿌리를 내리며, 그 지향하는 완결은 자기 초월에 기인한 주체(subject-superject)의 자기 원인(self-causation) 작용에 의존한다.”45)
필경 우주론에서 역의 운행은 주ㆍ객이 나뉘지 않은 까닭에 천지 변화를 창출하는 태극 사상의 근거이다. 이러한 태극 사상은 조선 미술에 배인 대순사상을 어떠한 형식과 방식으로 도출하는지 명료하게 들춰낼 단서이다.
16~17세기 조선은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과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1637)을 겪은 직후이므로 조선의 평온과 더불어 후천 세계에 도달하려는 분위기가 고조로 달한 시기이다. 이에 걸맞게 조선 화단(畵壇)에서도 이를 적극 반영하는데 대체로 태극 사상이 스민 신산(神山) 표현이 해당한다. 이러한 화풍은 대체로 도통(道通)으로 드러난다. 이를테면 겸제(謙薺) 정선(鄭敾, 1676~1759)의 <금강전도>(그림 2), <금강내산전도>(그림 3)에서는 태극 사상을 적나라하게 부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진홍섭은 “정선의 작품이 탄탄한 구성력과 밀도를 가지는 것은 음양오행에 관심 많은 그가 허실(虛實)ㆍ소밀(疏密)ㆍ경중(輕重)ㆍ동정(動靜) 등 상대적인 양상”46)을 간직하기 때문이라고 전제한다. 이 말인즉 ‘허실ㆍ소밀ㆍ경중ㆍ동정’의 역설은 태극 변화에 따른 역의 논리를 피력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다. 곧 <금강전도>나 <금강내산전도>는 양분화된 구도를 상생으로 맞아들인다. 이처럼 음양오행에 따른 태극 사상은 상극 요소에서 떠나 천지공사 원리를 따른다.
사실 <금강전도>나 <금강내산전도>는 제각각 드러나는 물상(物象)의 포치(布置)에서 태극 원리를 찾는다. 그런 만큼 경영(經營), 즉 ‘S’자 구도에서 더욱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가령 <금강산도>와 <금강내산전도>의 화면 우측의 암산(巖山)과 좌측의 토산(土山) 사이로 태극 구도가 형성된 경우이다. 이는 『주역』에서 발상한 양상인데,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의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서도 태극 사상을 다룬다.
이에 “겸재의 <산수도>에 대한 기문(記文)이 이르기를, … 겸재 노인이 『주역』을 좋아하여 역(易)의 이치를 잘 알았다고 한다. 대저 역의 이치를 아는 자는 변화시키는 데 뛰어난 법이니, 겸재 노인이 화법이 역에서 우러나와서 그렇게 변화로운가 보다”47)라고 언급한다. 또한 『금석집(錦石集)』에는 금강산을 예찬하는데, “일만 이천 봉이 한 줌 안에 다 들었으니, 겸재의 신필이 여기에서 더욱 뛰어나게 되었구나. 개성 사람에게 팔려 간 것을 탄식하지 마소. 지극한 보배가 결국 우리나라 안에 있으니까 말야.”48)
이렇듯 금강산은 한민족의 얼이 서린 명산이자 신산을 상징한다. 한민족이 금강산에서 정기를 받으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겸재가 <금강산도>나 <금강내산전도>에 우주론이 잉태한 태극 사상을 곁들게 작필한 화풍에서 역의 순리가 두드러진다. 말하자면 금강산에는 역으로써 만물을 다스리는 신성(神性)이 깃든 셈이다.
한편 <금강산도>나 <금강내산전도>는 주봉(主峰)이 객봉(客峰)과 환포(環抱)하는 환포법(環抱法)을 활용한 그림이다.49) 더불어 제각각 봉우리마다 은현(隱顯)한 화법을 용이하게 적용한다. 여기서 은(隱)은 은물(隱沒)이 사라지는, 그리고 현(顯)은 드러나는 현상이라고 간주할 때 용필법(用筆法) 역시 서로 교융하는 태극 논리를 펼친다.50) 이러한 태극은 천기(天機)로써 천지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 작용이다.51) 천기에 따른 조화는 자연이 낳은 최상이라 할 만한 화경(化境)을 낳는 데, 겸재는 이를 금강산 장면으로 연출한다. 그만큼 “화경은 조화의 묘를 얻은 경지, 자연의 최고 경지를 이른다.”52)
또한 금강산 묘사의 화법에서는 물상 포치에만 안주하기보다 태고의 원초성을 태박(太朴)으로 이끈다. 즉 “태박은 원시 상태의 질박한 큰 도로, 자연 사물의 태고 적의 가장 순수한 것을 이른다.”53) 이른바 태박에는 원기(元氣)가 꿈틀거리기 때문에 천지(天地)의 정기(精氣)로서 우주 창제를 이끈다.54)
이른바 천지의 정기에는 우주 만물의 원질인 원기가 돋아나는 탓에 태허(太虛)와도 같은 맥을 따른다. 즉 태허는 우주 만물이 변화로 산합(散合)하는 허령(虛靈)을 체현(體現)한다. 곧 태극은 태허(氣)의 변화를 주재하는 원리인 셈이다.55) 그러니 “흩어져서 이치에 있으면 만 가지로 다름이 있고, 통합하여 도에 있으면 두 가지 이치가 없다. 이 때문에 역에 태극이 있어 이것이 양의를 낳는 것이니 태극은 도이고 양의는 음양이다.”56)라는 표방이 설정된다.
이로써 태허에 기인한 태극 생성이 맺힌 금강산은 한민족에게 도의 성지이자 우주 만물의 시원인 셈이다. 이와 걸맞게 역은 하늘을 따르므로 만물을 이롭게 보살핀다.57) 그러므로 역은 천하를 다스리는 섭리에 순응한다. 결국 태극은 천하의 이치를 운행하는 역의 논리와 맞닿는다.58)
신윤복(申潤福, 1758~1814년경 추정)이 활동했던 18~19세기는 조선의 국운이 기울어지는 시대이다. 또한 철저한 신분제로 말미암아 양반 사회의 부정부패와 인간 존중의 황폐화로 백성이 고초를 호소하던 시기이다. 이러한 원인으로 사회 질서는 혼탁해지고 신분 제도 또한 서서히 무너지는 상황이 초래된다. 그도 그럴 것이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는 인간 평등이나 인간 존엄을 찾아 나서는 계기로 발전한다. 이른바 실의에 빠진 창생을 구제하여 보국안민에 도달하려는 정황이 움트기 시작한다. 이는 천지공사의 목표인 후천선경을 지향하는 백성의 간절함이 배인 탓이다. 이를 반영하는 참고 그림 가운데 하나로 『혜원전신첩(惠園傳神帖)』의 <주사거배(酒肆擧盃)>(지본(紙本) 채색, 28.2×35.6㎝, 국보 135호, 18세기, 간송미술관 소장) 등이 이를 입증한다.
이에 따른 사회 정황을 풍속화에 적나라하게 반영한 신윤복은 무속(巫俗), 습속, 풍류, 무도(舞蹈), 주막(酒幕) 장면 등 다양한 사회상을 연출한다. 특히 신윤복의 <쌍검대무>(그림 4)는 음양 원리에 입각한 태극 사상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화작이다. 또한 <쌍치도(雙雉圖)>(그림 5)는 원상 안에 쌍치 모습으로 배치된 태극 구도를 양의(兩儀)로써 드러낸다. 이러한 도상은 천도(天道)와 인도(人道)의 이파문(二巴紋)으로 형성된 음양태극과 마찬가지 원리이며 우주 만물의 생성ㆍ소장(消長)을 상징한다.
음양은 도야(陶冶)로써 도증(陶蒸)인 까닭에 천지 조화를 이룬다. 그러니 도증과 같은 천지는 끊임없이 이원(二元)에서 떠나 융화하는 순리를 내포한다.59) 이는 음양기도(陰陽氣度)와도 동일시되는 맥락이다. 즉 음양은 조화로운 기운으로 간주하는 데, <쌍검대무>에서 두 다른 검무 무용수의 자태가 이에 해당한다. 이를테면 검무 무용수가 청색과 홍색 치마를 제각각 착용한 상태로 이행하는 무도(舞蹈)는 또 다른 음양 상징이다. 곧 음양이기가 표방하는 조화의 극치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음양기도(陰陽氣度)는 음양이 조화하는 기운의 법칙이다.”60) 가령 검무 무용수가 서로 교차하면서 보폭을 옮기는 춤사위는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也)”한 형국을 따른다.61) 이를테면 음과 양의 두 기류가 서로 교환하면서 양은 음으로, 음은 양으로 운행하는 우주 만물의 원질 섭리를 표출한다. 이처럼 음양에 따른 교차 양상은 소식(消息) 원리를 담는다. 소식 역시 소(消)에는 음기(陰氣)의 소멸, 식(息)에는 양기(陽氣)의 생성이 동시에 발출하는 데,62) 이 모두는 음양 섭리에 따른 검무 무용수의 동선과 동일하다.
또한 검무 무용수의 보폭은 동정(動靜)을 서로 교차시키면서 활약한다. 즉 “미어동정(微於動靜)”63)이 추구된다. 특히 앞과 뒷모습으로 상반된 검무 무용수의 배치는 음양 섭리로 파악할 만큼 인온(絪縕) 이치를 품는다. 곧 인온은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천지이다. 또한 남녀의 정(精) 역시 만물을 일으키는 역리(易理)이다.64) 따라서 인온은 『주역(周易)』, 「계사하(繫辭下)」편에 “천지인온, 만물화순(天地絪縕 萬物化醇)”이라고 나타나듯이 인(絪)과 온(縕)의 기(氣)가 서로 융합하여 천지를 운행한다는 뜻이다.65) 이와 같은 맥락으로 살필 때 <쌍검대무>에서도 마찬가지로 천지음양이 서로 조화로써 호흡하는 융화 현상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인온은 무분별한 까닭에 천지가 창조되기 이전인 혼돈(混沌)세계를 내비친다.
무릇 검무 무용수의 자태는 태극 구도를 취하면서 우주의 운행 법칙에 성실히 순응하는 국면이다. 또한, 음양으로 배치된 홍색 무용수와 청색 무용수의 치맛자락 형상이 화면 가운데로 향하면서 태극의 순환을 돕는다. 즉 차별이 떠난 혼연(渾然)을 지향하는 모양이다.66)
결국 두 검무 무용수는 태극 원리에 기인하여 하나로 ‘혼화(混化)’되면서 서로 융섭을 이룬다. 즉 혼화는 일원으로 융화되는 순리이며, 동시에 순행으로써 거듭 변화를 헤아린다. 일명 “유혼화ㆍ태화(有混化ㆍ胎化)”67)의 논리와 마찬가지 이치를 자아낸다. 여기서 ‘태화’는 낡고 고인 세계에서 아주 떠나 새로운 변화를 창출하는 뜻을 담는다. 이러한 국면은 대순진리가 표방하는 종지와 뜻을 함께 이룬다. 말하자면 대순사상이 표방하는 이른바 선천 문화에서 일어난 상극 현상을 상생으로 창도(唱導)하여 후천 선경에 도달하는 천지공사의 이치와 동일하다.
태극 운율로 움직이는 검무 무용수의 조화는 가히 천지 자연의 이치를 대변하는 만큼 변통을 품는다. 이는 우주의 진리에 다가서는 세계와 매한가지이다. 그런 차원에서 대순사상이 후천 세계로 지향하는 세계와 닮아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천지자연의 조화는 화의(畵意)에서 두드러지게 내비친다.
이에 “화공(化工)은 자연스러운 조화(造化)ㆍ자연스럽게 형성된 공교함을 가리킨다. 조화(造化)는 만물을 창조하고 기르는 대자연의 이치 또는 천지ㆍ우주를 가리키는 말이고,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신통하게 된 사물, 또는 그것을 나타내는 재간을 이른다.”68) 곧 천지자연에 따른 조화는 무념(無念)한 탓에 공무(空無) 현상을 이른다. 말하자면 무념하니 마땅히 무작위로써 무의의하다는 뜻이다.
민화(民畵)라는 용어 발생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하지만 그 시원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지닌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의 겨레 그림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붙여진 예는 1959년 유종열(柳宗悅)에 의해서 『민화(民藝)』 8월호에 발표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조선 민화(朝鮮民畵)」에서 비롯된다”69)라고 언급한다. 아무튼 사정이 이럴진대 여기서는 민화에 담긴 태극 사상만을 다루기로 한다.
민화의 소재나 향유 계층은 광범위해서 과히 한민족 그림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 가운데 우주론에 입각한 태극 사상의 표현은 음양 원리로서 상생상극(相生相剋)을 대변하며 동시에 한민족의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실마리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민화는 “음양의 상생상극의 자연학적인 원리에 부합되는 대상을 재발견한다는 의미에서 복제되었으며, 이런 자연스러운 소재가 곧 인간의 감정이나 사상을 의인화하고 있음도 주목할 일”70)이라고 이해하는 견해도 받아들일 만하다.
그런 만큼 태극이 가미된 민화는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나 정신세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근거이다. 물론 여기에는 음양에 따른 상생과 상극의 교합 논리를 반영한다. 즉 음양은 상생상극의 원리를 따르는데 태극 민화가 이러한 양상에 부합한다. 이를테면 <주사채부적도>(그림 6)는 8폭으로 구성된 병풍이다. 그 가운데 한 폭에는 태극 팔괘를 상징하는데, 사귀 퇴치가 목적인 부적이다. 여기에는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정신세계가 점철되며, 동시에 내세관을 갈구하는 심리 작용이 투영된다. 이는 지상 천국으로 나아가는 대순진리의 후천 세계와 유사하다.
그 뿐만 아니라 <화조기명화분도>(그림 7)는 우주 만물의 이상 세계인 불로장생을 상징한다. 이 장면에서는 백학, 영지, 소나무, 달, 불로초, 구름 등이 화분과 어우러지면서 하나의 우주 만물을 태극 원리로 연출한다. 특히 화면 하단에 자리한 태극 문양은 인간의 생로병사를 대변하는 상징 도식에 해당한다. 그만큼 이 그림이 추구하려는 의도는 인간 세계의 갈등과 고뇌에서 해방하려는 갈망 해소에 주어진다.
그 밖에 태극 문양은 <문자도>(그림 8)에도 확연히 드러난다. 즉 ‘치(恥)’자로 쓰인 이 문자 그림에는 백이숙제(伯夷叔齊)가 들어갔다는 수양산(首陽山)과 이층 건축물, 그리고 활짝 핀 옥매화가 등장한다. 또 화면 우측 상단에는 태극 문양이 음양을 상징한다. 부연하면 부끄러운(恥) 세상살이와 결별하고 수양산에서 태극 이치를 깨닫는다는 의미로 내비친다.
기실 채묵법(彩墨法)은 음양 이치에 따라 채색과 수묵 양식을 동시에 가미한다. 이는 색과 묵을 음양에 맞춰 적절하게 배치한 경우이다. 이처럼 채묵법에서는 농담(濃淡) 용법(用法)으로 음양 원리를 자아낸다. 이는 음양 교합을 상징하는 홍염(烘染) 기법과 그 맥을 함께 이룬다. 즉 주변과 어우러지게 스미는 홍염의 용법으로 말미암아 농담이 서로 융화를 헤아린다.71) 더욱이 홍염은 『회사발미(繪事發微)』에서 언급하듯이 “낙필섭경이홍염(落筆涉輕而烘染)”72)이라고 일컫는다. 이러한 형국은 음양 원리에 기인하여 농담이 서서히 물드는 침윤(浸潤) 효과를 융합으로 이끈다.
이로써 음양 기법의 운용에는 기세(氣勢)가 상생(相生)하는 형국을 드러낸다. 상생에는 채묵이나 농담 등으로 표현되는데, 이른바 무한대로 변화를 거듭하는 음양의 변환(變幻) 이치와 맞닿는다.73) 그럼으로써 온화한 화기(和氣)가 흘러 충융(沖融) 하기에 이른다.74)
음양은 음양합덕으로 이해된다. 즉 음양합덕은 강유(剛柔)의 체(體)인 까닭에 천지(天地) 순리의 체와 같은 형국을 취한다.75) 더불어 음양은 변화로써 괘(卦)를 이루며 강유로써 효(爻)를 일으키는 국면이다.76) 이러한 변화는 『주역』 「계사전(繫辭傳)」에 생(生)하고 거듭 생하는 바를 역(易)이라고 일컫는 “생생지위역(生生之謂易)”77)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역변은 지속으로 순환하는 생의 원리를 따른다.
민화에 나타난 태극 사상을 바탕으로 살필 때, 미술의 흔적은 “모방이 아니며, 또한 본능이나 훌륭한 취미에 따라 만들어진 그 무엇도 아니다.”78) 따라서 주체에 따라 고착된 사물이나 구획된 물질에 얽매이는 시각 효과는 더더욱 경계할 대상이다. 혹여라도 시각이 낳은 형상에만 집착할 경우 화자라는 주체와 대상이라는 객체가 저절로 성립되면서 이분화로 치닫게 마련이다.
그런 이유로 가령 “파악(prehensions) 이론은 자연(nature)을 이분화(bifurcation)하려는 시도에 따라 극복으로 구체화한다.”79) 더불어 “파악은 상호성으로서 관계를 나타낸다.”80) 결국 민화에서 드러나는 양상은 천지자연에 기인한 태극의 음양 원리인 만큼 우주론에 스민 한민족의 정신세계를 대변한다. 이는 대순진리에서 강조하는 태극의 논리와 상통하는 점이다.
Ⅴ. 나가는 말
이 연구는 조선 미술에 스민 대순사상을 예술 철학 차원에서 분석하는 일이다. 이에 따라 음양합덕과 태극 사상이 조선 미술에 내재한 상황을 찾아내는 일은 대순사상이 민중과 동화한 정황을 들추는 근거이다. 더불어 조선 미술에서 대순사상을 점검하는 시도는 조선 미술의 양식뿐만이 아니라 한민족의 생활과 의식, 그리고 정신세계를 생생하게 확인할 기회이다.
그 일환으로 2장에서는 대순사상의 형성을 밝혔다. 3장에서는 ‘선경(仙境)’과 ‘음양합덕’ 사상의 구조, 그리고 ‘천지공사(天地公事’)와 ‘태극’ 사상을 우주의 운행 법칙에 기인하여 밝혔다. 이에 천지공사의 운행 법칙과 태극 구조를 접목했다. 4장에서는 대순사상과 조선 미술의 융합 차원에서 한민족의 삶과 더불어 창작품에 나타난 대순사상을 분석했다.
이른바 창작품 분석은 실증 자료로 드러내는 데에는 유용한 효과인 만큼 조선 미술에 배인 대순사상을 정밀하게 밝힐 단서이다. 이를테면 <금강전도>, <금강내산전도>, <쌍검대무>, <쌍치도>, <주사채부적도>, <화조기명화분도>, <문자도>에서 선경, 음양합덕, 천지공사의 이치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그 결과 대순사상에 나타난 태극 사상이 조선 미술에 고스란히 스민 정황을 입증했다.
이 모든 진술을 고려할 때, 대순진리가 추구하는 태극 사상은 만물이 상호 생성하면서 변화를 따르는 섭리이다. 그런즉 태극 사상은 한민족의 삶에 지대하게 자리하여 ‘상생(相生, Mutual life-saving, mutual life-bettering)’으로 융화하는 섭리에 상호 응대한다는 점을 도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