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세계 주요 종교사상의 존재의 대둥지 (The Great Nest of Being) 고찰: 대순사상과 비교하여

허훈 1 , *
Hoon Heo 1 ,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Former Lecturer, Chung-Ang University
*중앙대학교 (전) 강사, E-mail: huhhoon@sen.go.kr

© Copyright 2020,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May 13, 2020; Revised: Jul 06, 2020; Accepted: Aug 01, 2020

Published Online: Aug 31, 2020

국문요약

이른바 ‘존재의 대둥지(The Great Nest of Being)’는 영원철학의 존재론으로서 영원철학의 핵심 개념이다. ‘존재의 대둥지’는 역사적으로 존재해 왔던 세계 종교들의 심층, 즉 존재와 의식의 홀라키(holarchy)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본고에서는 세계 주류 종교들의 심층을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존재의 대둥지를 고찰해 보고, 대순사상에 나타난 존재의 대둥지는 역사적으로 출현했던 이들 대둥지를 종합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밝힌다.

영원의 철학에 따르면, 궁극적 실재에 대한 여러 종교들의 차이가 실제(實際)의 차이가 아니라 단지 용어상(用語上)의 차이에 불과하다. 즉 ‘동일(同一)한 궁극적 실재에 대한 상이(相異)한 표현(表現)’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 언어학적으로 - 존재의 대둥지에 나타난 궁극적 실재관은 ‘동일한 기의(記意, signifié)’, ‘상이한 기표(記標, signifiant)’로 요약된다.

그런데 선행연구에서 밝힌 바와 같이 대순사상에서의 궁극적 실재는 초월적ㆍ인격적 존재인 동시에 내재적ㆍ비인격적이다. 이러한 사실은 특히 대순의 종지(宗旨)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즉 대순의 종지는 기존 종교사상의 존재의 대둥지에서 나타나는 실재에 대한 개념들과 그 지향점을 함축적으로 내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 종교사상들이 내세웠던 이념들을 두루 아우를 수 있는 - 온 우주(The Kosmos)의 네 코너로서 사상한(four quardrants, AQAL)으로 고찰해 보면 - 범(凡) 우주적 이념을 두루 포괄한다.

따라서 대순사상의 종지(宗旨)는 궁극적 실재에 관한 세계 주요 종교사상의 동일한 기의(記意)를 아우르고, 상이한 기표(記標)를 해소할 수 있는 단초(端初)를 제공한다.

Abstract

‘The Great Nest of Being (The Great Chain of Being)’ is a key ontological concept in Perennial Philosophy. The Great Nest of Being shows the depth of the world’s religions that have existed historically, and in this context, they represent holarchies of existence and consciousness.

This paper examines the nests of various beings in order to grasp the depths of the world’s mainstream religions, and reveals that the great nest of being that appear in the Daesoon Thought has the characteristic of synthesizing other nests that have emerged previously in history.

According to Perennial Philosophy, the differences among different religions in regards to ultimate reality are not differences in reality but merely differences in semantics. In other words, these differences are only ‘different expressions of the same ultimate reality.’ Thus, linguistically, ultimate reality in the great nest of being can be summarized as the ‘same in what is signifié (signified, 記意)’ and ‘different in the signifiant (signifier, 記標).’

As stated in a preceding study; however, ultimate reality in Daesoon Thought is both transcendent and personal, as well as intrinsic and impersonal. This fact is specifically stated in the Four Tenets (4大 宗旨) of Daesoon Thought.

In other words, the Tenets of Daesoon implicitly acknowledge not only the concepts of reality and the direction that emerges from the base of existence in existing systems of religious thought, but also can encompass the ideologies of those systems of religious thought. Considering the four quadrants as the Kosmos (AQAL), it encompasses a universal ideology.

Therefore, the tenets of Daesoon Thought encompass the same significance (meaning) of the major systems of religious thought throughout the world in regards to ultimate reality and provide a clue to the solution to the presence of different signifiers (signs).

Keywords: 대순사상; 종지; 영원의 철학; 존재의 대둥지; 기의와 기표
Keywords: Daesoon Thought; Tenets; Perennial Philosophy; The Great Nest of Being (The Great Chain of Being); Signifié (the signified) and Significant (the signifier)

Ⅰ. 서언 및 문제 제기

『전경』에는 세계의 다양한 문화들이 출현하게 된 배경과 각기 다른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 그리고 여러 문화의 정수(精髓)를 간추려 후천 문명의 기초로 삼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세계의 여러 문화와 사상들은 “큰 시비”를 일으키는 문제의 발단이기도 하지만, 반면에 혼란을 바로잡는 법(法)이기도 하고 후천 문명 건설의 토대로 간주되기도 한다.

여기서 여러 문화와 사상의 정수(精髓)는, 종교사상으로 볼 때 심층 차원의 교의와 사상을 의미하며, 시비를 일으키고 혼란을 야기하는 것은 표층 차원의 종교를 말한다. 역사적으로 세계 각지에서 출현했던 영원 철학의 ‘존재의 대둥지(The Great Nest of Being)’1)는 실재(實在)에 대한 심층 차원의 인식과 존재의 홀라키를 나타낸 것이다. 본고에서는 세계 주류 종교들의 심층을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존재의 대둥지를 고찰해 보고, 대순사상에 나타난 존재의 대둥지는 역사적으로 출현했던 이들 대둥지를 종합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밝힌다.

이미 여러 선행연구에서 대순사상은 - 궁극적 실재관에 있어서 - 종합적ㆍ회통적 성격을 지닌다고 적시(摘示)한 바 있다.2) 즉 대순사상에서의 궁극적 실재는 초월적ㆍ인격적 존재인 동시에 내재적ㆍ비인격적이다. 물론 이를 달리 조합하여 ‘초월적 비인격신’이나 ‘내재적 인격신’관도 가능하며, 이외에도 이신론(Deism)이나 범신론(pantheism), 만유재신론(panentheism)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영원의 철학에서 말하듯이, 궁극적 실재에 대한 여러 종교들의 차이가 실제(實際)의 차이가 아니라 단지 용어상(用語上)의 차이에 불과한 것이라면, 궁극적 실재에 대한 그 어떤 상이한 용어들을 추가하고 관점을 더 세분화해 보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다만, 양립(兩立)하기 어려워 보이는 신관이 서로 회통(會通)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동일한 기의(記意), signifié], ‘동일(同一)한 궁극적 실재에 대한 상이(相異)한 표현’[상이한 기표(記標), signifiant]이라는 영원철학의 입장을 지지하게 된다. 나아가 이는 대순사상이 기존 종교들을 포용하고 아우를 수 있는 포괄적 성격을 지녔음을 의미한다. 그 방법은 세계 주요 종교사상들의 인식과 존재의 대둥지를 고찰해 보고, 대순사상의 그것과 비교해 보는 것이다. 존재의 대둥지는 영원철학의 존재론으로서 영원철학의 핵심 개념이다.

본고에서는 이 대둥지를 통해 다양한 종교사상에서 나타나는 궁극적 실재(實在)의 차이가 실제(實際)의 차이가 아니라, 단지 용어상의 차이라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또한 대순사상의 종지(宗旨)에 나타난 실재에 대한 개념들을 분석하고, 이것이 세계 주요 종교사상의 존재의 대둥지에서 나타나는 실재에 대한 개념들과 그 지향점을 함축적으로 내포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Ⅱ. 동서양 종교사상의 인식과 존재의 대둥지

‘영원철학’은 ‘철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형이상학과 심리학, 그리고 윤리학을 아우른다. 헉슬리(Aldous Huxley, 1894~1963)는 먼저 영원철학은 형이상학으로서 “세계의 본질인 ‘신성한 실재’를 인정”한다고 보았다. 또한 영원철학은 심리학으로서 “인간의 영혼에서 그 ‘신성한 실재와 유사하거나 동일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윤리학으로서 “‘모든 존재의 내재적이면서 초월적인 바탕에 대한 앎’을 인간의 최종 목표”로 둔다고 정의 내린다. 비록 간단한 개념 규정이지만, 여기에는 많은 함의가 들어 있다. 이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내면 <그림 1>과 같다. 우선 기본적으로 ‘신성한 실재’, ‘궁극적 실재’에 관한 내용을 다루기 때문에, 종교를 기초로 한 철학임을 알 수 있다. 헉슬리는 크리스토퍼 이셔우드(Christopher Isherwood, 1904~1986)3)와 스와미 프라바바난다(Swami Prabhavananda, 1893~1976)4)가 번역한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 판(版)의 소개에서 그가 영원 철학의 핵심 특징이라고 믿는 것을 간결하게 요약한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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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영원철학의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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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철학의 핵심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기본 교의(fundamental doctrines)를 발견한다. 첫째로, 물질과 개별화된 의식의 현상 세계(phenomenal world)는 … 모든 부분적 현실들이 그 존재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과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 신성한 근원(Divine Ground)의 표출이다. 둘째로, 인간은 추론에 의해서만 신성한 근원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또한 직접적인 직관(direct intuition)에 의해 그것의 존재를 실현할 수 있고, 추론적인 추리(discursive reasoning)보다 우월하다. 이 즉각적인 지식은 인식하는 사람(knower)과 알려진 지식을 결합시킨다. 셋째, 인간은 이중성, 현상적 자아(phenomenal ego)와 영원한 자아(eternal Self)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내적인 사람, 정신, 영혼 속의 신성의 불꽃이다. 넷째, 지구상의 인간의 삶은 오직 하나의 소원과 목적을 가지고 있다. 즉, 자신을 영원한 자아와 동일시하여 신성한 근원에 대한 단일한 지식을 얻는 것이다.6)

영원철학에 따르면, 거의 모든 종교사상은 영원철학이 제시하는 형이상학, 심리학, 윤리학적 내용을 내포(內包)하고 있다. 영원철학의 윤리학에서 모든 존재에는 내재적(內在的, immanent)이며 초월적(超越的, transcendent)인 바탕이 있다고 하였다. 그 바탕(Ground)이란 신성한 실재(Divine Reality)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내재적 바탕으로 대변(代辯)되는 용어가 - 주로 동양에서 사용되어 왔던 - ‘도(道)’7)라는 용어이며, 외재적ㆍ초월적 존재로 상징되어 왔던 존재를 지칭하는 단어는 주로 ‘신(神)’이다.

하지만, 영원철학에서 ‘신(神)’과 ‘도(道)’는 용어상의 차이일 뿐, 동일한 실재를 지칭한다. 이런 사실은 언어학으로도 설명 가능하다. 언어 기호(記號, signe)는 기표(記表, signifiant)와 기의(記意, signifié)로 나뉜다. 글자 그대로, 기표란 ‘표시하는 것(언어 기호)’이며 기의란 ‘표시되는 것(언어의 의미)’이다. 예컨대 소(牛)라는 기호는 ‘SO’라는 시니피앙과 개념(의미)으로서의 ‘소[牛]’를 갖는다. 아울러 ‘SO’라는 시니피앙은 대소(大小)의 ‘소(小)’가 될 수도 있다.8) 즉, 기표와 기의 사이에는 아무런 필연적인 관계가 없다.9) 따라서 언설(言說)로는 나타내기 어려운 궁극적 실재를 무엇이라고 부르든(signifier), 그 기의(signified)는 동일할 수 있는 것이다.

1. 동일한 기의(記意, signified)

『전경』에는, 세계의 모든 족속들의 각기 다른 특수한 사상, 색다른 문화들의 정수(精髓)를 거두어 후천문명의 기초로 삼는다는 내용이 나온다.10) 그 정수(精髓)에 해당되는 내용은 무엇인가. 본고에서는 영적 체험주의에 기초하여 세계 각지에서 출현한 영원철학이 바로 그것이라고 간주한다. 영원철학에서는 각각의 고등종교가 말하는 실재(實在)와 그에 대한 인식이 사실상 서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를 도표로 나타내면 <그림 2>와 같다.11) 이 그림은 세계 각지에서 등장했던 ‘존재와 인식의 대 홀라키’, ‘존재의 대둥지’를 도식화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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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동서양 종교사상의 인식과 존재의 대둥지 (↔ : 초월적ㆍ인격적 vs 내재적ㆍ비인격적, ↕: 실재 vs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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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본고에서 제시하는 12종의 종교사상들 이외에도 수많은 대둥지가 존재하며, 이들은 모두 이와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 헉슬리는 영원철학을 형이상학, 심리학, 윤리학으로 나누어 정의 내렸지만, 이를 하나의 의미로 축약하여, 켄 윌버는 영원철학을 “실재(reality)와 의식(consciousness)의 대홀라키(Great Holarchy, hierarchy)”24)라고 정의한다. 이에 따라 그림을 ‘의식’과 ‘실재’로 양분하여, i) 성 디오니시우스(St. Dionysius, l402∼1471), 수피즘(Sufism), 아빌라의 성 테레사(St. Teresa, l515∼1582), 탄트라(Tantra), 파탄잘리(Patañjali, B.C. 200?)는 의식(意識, Consciousness)의 하이어라키(영성의 단계)를 표시한 것이고, ii) 신지학(神智學, theosophy), 플로티누스(Plotin, Plotinus, 205~270), 카발라(Kabbala), 베단타(Vedānta), 불교의 식(識)25), 마하무드라(mahamudra), 차크라(chakra)는 실재(實在, Reality)의 하이어라키(사상의 기본구조)를 표시한 것이다.

또한 그림의 좌상한은 궁극적 존재를 초월적(인격적) 존재로 상정하는26) 종교사상들의 대둥지를 나타낸 것이고, 그림의 우상한에는 궁극적 존재를 내재적(비인격적) 존재로 상정하는 종교사상들을 배치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존재의 대둥지와는 달리, 본고에서는 바깥쪽(표층) 동심원으로부터 안쪽(심층, Deep Structures in Religion)으로 상승하는 실재와 의식의 하이어라키로 표시했다. 그리고 중앙에는 다양한 종교사상들의 공통된 가르침을 - “황금처럼 고귀한 윤리의 지침”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하여 - 넓은 의미에서의 이른바 ‘황금률(Golden Rule)’27)로 나타냈다. 그들의 의식과 존재의 최종 하이어라키 즉 궁극적 가르침은 서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중앙에는 황금률을 중심으로 1) 베단타의 “브라만-아트만(투리야티타)” 2) 불교의 식(識)의 “여여(如如)함으로서의 비이원적(非二元的) 의식” 3) 마하무드라(명상의 단계)의 “비명상” 4) 차크라의 “모든 차크라가 실재 속으로 해방됨” 5) 파탄잘리(요가경전)의 “비구름(megha)”28) 6) 최상의 요가 탄트라의 “공(空)” 7) 아빌라의 성 테레사(내면의 삶의 7단계)의 “영적 결혼” 8) 수피즘(하즈라트 이나야트 칸)의 “비이원(非二元)” 9) 신지학(리드베터)의 “모나드/로고스” 10) 성 디오니시우스의 “영광스러운 무(無, 무지의 구름)” 11) 플로티누스의 “절대적 일자” 12) 카발라의 “아인 소프(Ain Soph, 無限)”라는 일반적 대사슬의 “영(靈)”에 해당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이들 모두가 비이원(非二元) 혹은 일자(一者)를 얘기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 일원이 무엇인지는 명료하게 언설로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공(空)’이나 ‘무(無)’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심지어 ‘비구름’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또 일원(一元)이라는 표현보다도 굳이 비이원29)이라고 표현하는 점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표층종교의 관점에서 그림의 좌상한은 궁극적 존재를 초월적 존재로 상정하는 종교사상들인데, 최종 하이어라키가 “아인 소프(=무한)”, “영광스러운 무(無)”, “모나드/로고스”, “비이원” 등의 비인격적이며 내재적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이는 본래 종교 시원(始原)의 관점에서는 궁극적 실재가 인격적ㆍ외재적ㆍ초월적인 존재로 한정되어 있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결국 그림의 최종 하이어라키에 나타난 (일반적 대사슬의) 영적 존재는 좌상한과 우상한 간(間)의 차이점이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좌상한의 “무(無)”와 “절대적 일자”, “비이원”은 우상한의 “공(空)”, “브라만”, “비이원적 의식”과 거의 동일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비교종교학자 휴스턴 스미스(Huston Smith, 1919~2016)는 - 스위스의 종교 사상가이자 영원철학의 선구자 프리초프 슈온(Fritjof Schuon, 1907~1998)30)의 업적에 대해 논하는 자리에서 -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만일 다양한 종교에 어떤 공통점이 없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종교라는 공통 명사로 언급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들이 서로 다르지 않다면 우리는 복수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요는 텅 빈 진실을 어떻게 가득 채우느냐이다. 단수와 복수 사이 선(線)을 어디에 그을 것인가? 그 두 영역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31)

그 답으로 슈온은 종교의 ‘비교적(秘敎的, esoteric)’인 부분과 ‘통속적(通俗的, exoteric)’인 부분 사이에 선을 수평(水平)으로 긋는다.32)(<그림 3>) 바꿔 말해, 근본적인 차이는 종교[수직선]에 있지 않으며, 수평선 위의 비교주의(祕敎, esotericism)와 수평선 아래의 통속주의(通俗, exotericism)로 나뉘는 것이다. 그래서 비교주의 차원 즉 심층종교에서는 여러 종교들의 초월적 통일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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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종교의 초월적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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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처럼 궁극적 실재에 있어서 실제적인 차이가 없는 것으로 파악됨에도 불구하고, <그림 2>에서 보듯이 여러 종교사상의 인식과 존재의 대둥지에 나타난 세부적인 과정 - 실재와 의식의 중간 하이어라키 - 은 사뭇 달라 보인다. 즉, 동심원 가장 바깥쪽은 ‘물질(物質)’이나 ‘신체(身體)’, 혹은 ‘형상’으로 모두 동일하고, 중앙의 황금률 주위에는 ‘절대적 일자(一者)’나 ‘비이원(非二元)’, ‘무(無)’나 ‘공(空)’으로서 - 언명(言明)하기 어려운 - 어떤 동일한 실재(實在)를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만, 중간 과정에 나타난 하이어라키의 양상은 크게 다르다.

이에, 종교사상들 간의 궁극적 실재에 대한 인식의 과정 혹은 우주관[실재]은 실제적인 차이를 드러내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림 2> 상단의 카발라(유대 신비주의)는 서구 주류 종교의 뿌리가 되는 우주관ㆍ세계관ㆍ인간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그림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송대(宋代)의 학자 주돈이(周敦頤, 1017~1073)가 만들었다는 태극도(太極圖)는 동양의 전통적인 우주관ㆍ세계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양자를 비교해 보면 동양과 서양의 우주관은 물론이고 궁극적 실재에 대한 인식과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33) 다음 <그림 4>, <그림 5>는 각각 태극도(太極圖)와 카발리스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세피로트의 나무(Archangels of the Sephiroth)’다. 양 도설은 동양과 서양의 우주ㆍ세계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도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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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태극도(太極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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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세피로트의 나무(Archangels of the Sephiroth, 生命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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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도는 북송(北宋) 시대에 지어졌으며, ‘전통’ 혹은 ‘구전(口傳)’이라는 뜻을 가진 카발라는 유대신비 사상으로서 ‘카발라(Kabbalah/Cabbala)’라는 호칭은 11세기에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유대신비주의 자체는 훨씬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다.34) 대체로 예수 사후 100년이 넘어 구약 완성 다음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다가 세상에 드러난 것은 13세기 스페인의 유대인 저작에 의해서였다. 이마저도 극히 한정된 몇몇 사람들에게만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 후 카발라 사상은 AD 2~3세기경에 성행했던 그노시스파와 더불어 15세기 이후 그리스도교 세계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시대와 지역을 달리하는 양(兩) 도설(圖說) 공(共)히 우주의 생성[宇宙論]과 인륜의 근원[人性論]을 논하고 있다. 즉 태극도는 만물이 생성하는 발전 과정을 설명하고 도덕론의 기본 방향을 제시한다. 마찬가지로 세피로트의 나무는 “천국에 있는 생명의 나무(일명 생명수(生命樹))”의 의미로서 광대한 대우주와 소우주로서의 인체,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에게 이르는 정신적인 편력을 의미한다.

세피로트의 나무는 세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측에는 ‘자비(慈悲)의 기둥’, 좌측에는 ‘공의(公義)의 기둥’ 중앙에는 ‘균형(均衡)의 기둥’이 있다. 또한 위로부터 유출계 → 창조계 → 형성계 → 활동계로 이어져 사중(四重)구조를 이룬다. 그리고 그림에서 보듯이, 이 세 개의 기둥과 네 개의 세계의 교차점에 10개의 수(數) 세피로트(sephirot, ‘세피’는 수를 세다/셈이라는 뜻)가 발생한다.35) 이 10개의 수를 통해서 현현되지 않은 암묵적 존재(Negative Existence)인 아인 소프(Ein Sof, Ayin Sof: 무한)36)가 현세계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즉, 지고의 1의 세피라 ‘케테르(Kaether: 왕관)’는 아인소프가 최초로 형태를 드러낸 것이고, 맨 아래 10의 세피라 ‘말쿠트(Malchut: 왕국)’는 아인소프의 최종적인 형태로, 물질계를 나타낸다. 그래서 ‘케테르’ → ‘말쿠트’로의 과정은 아인소프의 유출을 나타내는 것이며, 거꾸로 ‘말쿠트’ → ‘케테르’로의 과정은 아인소프의 귀환을 뜻하는 것이다. 특기할 사항은 창조의 원천, 생명력의 원천을 뜻하는 1의 세피라 케테르 아래에 2의 세피라 코흐마(Hokhmah: 지혜)와 3의 세피라 비나(Binah: 이해)가 있는데, 코흐마는 남성의 에너지[양(陽)]이며, 비나는 우주의 여성 에너지[음(陰)]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각 ‘더없이 높은 아버지’, ‘더없이 높은 어머니’라는 별명을 갖는다. 이러한 본질적 특성으로 인해 코흐마는 ‘활동성(活動性)’을 상징하며, 비나는 코흐마에 대응하여 모든 것에 형태(영역)를 부여한다.37)

그런데 카발라에 따르면, 아인소프라는 무한자는 언설(言說)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의 단일체도 아니고, 신성도 아니며, 영도 아니다. 그것은 불가지(不可知)한 존재이며,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38) 그럼에도, 아인소프는 물질계를 유출한다. 만약에 아인소프를 카발라의 ‘현현(顯現)하지 않는 감추어진 신(神)’으로 정의 내린다면, 1~10까지의 단계가 각각 독자적이면서도 다양한 신의 속성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범신론(汎神論)과 다신교(多神敎)와도 일맥상통하는 체계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인소프는 표층종교에서 말하는 외재적ㆍ초월적 인격신으로 한정되지 않는다.39) 초월적이면서도 동시에 내재적인 신의 속성을 이해하기 어렵기에, 편의상 ‘신(神)’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뿐이다. 아인 소프를 쉽게 묘사할 수 없다는 우리 언어상의 한계 때문에, 현재 세피로트의 나무를 해석하는 많은 해설들이 아인소프를 그저 ‘신(神)’이라는 용어로 대체하여 설명을 하고 있다.

이는 궁극적 실재의 속성을 어떤 관점으로 - 내재적ㆍ비인격적 존재로 혹은 초월적ㆍ인격적 존재로 - 보느냐에 따라 그 호칭이 달라진다.

이와 거의 동일한 관점이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의 태극도(太極圖)에서도 발견된다. 우선 첫째, 10개의 구(球)로 이루어진40) 세피로트의 나무와 같이 태극도는 10개의 원(圓)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주의 생성과 인륜의 근원을 논한다. 숫자 10은 양 손의 열 손가락을 기초로 나왔으며, 완성(完成)을 뜻한다. 주지하다시피 모든 계산의 기본이며, 모든 수를 포함한다. 그래서 우주의 상징이자 창조의 패러다임이다. 즉 모든 사물과 모든 가능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둘째, 앞서 세피로트의 나무는 “광대한 대우주와 소우주로서의 인체, 그리고 신에게 이르는 정신적인 편력(遍歷)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위의 숫자 10은 완전수(完全數)로서 1로의 회귀를 상징한다.41) 마찬가지로 태극도는 우주의 절대자 리(理)로부터 건곤남녀(乾坤男女), 만물화생(萬物化生)의 전개를 나타낸다. 그래서 태극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초월적 근원자이며, 동시에 개별적 존재자에게도 서로 상함(相涵)되어 있는 개별 존재의 원리이다. 그래서 태극은 존재론[統體太極, 各具太極]만이 아니라, 도덕적 측면으로 이해(근원으로의 회귀, 복성(復性))42)한다.

셋째로,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는 “무극이면서 태극이고, 태극이 움직여 양(陽)을 낳으며, 움직임이 극에 달하면 고요해지고 고요하면 음(陰)을 낳는다.(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라고 하였다. 이는 창조의 원천 1의 세피라 케테르가 무극(無極)의 극성을 띄고 있으며, 그 아래에 있는 우주의 남성 에너지[양(陽)]와 여성 에너지[음(陰)]를 나타내는 2의 세피라 호크마, 3의 세피라 비나로 연결되는 것과 같다. 이어지는 4세피라 헤세드는 양의 극성, 5세피라 제부라는 음의 극성을 띄며, 그 중앙의 6의 티페렛트는 무극의 극성을 띤다. 간단히 말해, 우측 기둥의 2, 4, 7 세피라는 양의 극성, 좌측 기둥의 3, 5, 8 세피라는 음의 극성, 그리고 중앙 기둥의 1, 6, 9, 10세피라는 무극의 극성을 띄는 것이다.

넷째, 태극도설에서는 “고요함이 극에 달하면 다시 움직이며, 한번 움직이고 한 번 고요하면서 서로 상대방(相對方)이 근원이 된다”고 하였다.43) 이 역시 세피로트 나무의 ‘활동성(活動性)’을 상징하는 호크마는 모든 것에 형태(영역)를 부여하는 비나와 서로 대응(對應)하는 관계를 이루는 것과 같다. 비나는 호크마에서 나왔지만, 음양 상관관계와 마찬가지로 동등한 관계다.

다섯째, 양(兩) 도설 하단의 “건도성남 곤도성녀(乾道成男, 坤道成女)”와 9세피라 “예소드(Yesod: 기반)” 역시 서로 유비된다. 건곤(乾坤)을 이루고 남녀가 탄생하려면 리(理)와 음양오행의 기(氣)가 오묘하게 결합(結合), 응결(凝結)하여야 하는데, 예소드 역시 ‘아스트랄체(The Astral Body)’로서 영혼과 육체의 중간에 있다고 하는 영기(靈氣)를 뜻한다.

그리고 여섯째, 당연한 귀결이지만, 세피로트 나무의 10세피라 말쿠트(Malchut: 왕국)의 구체적인 의미는 오감(五感)을 통해 알 수 있는 이른바 ‘물질적(物質的) 왕국’이다. 태극도의 만물화생(萬物化生)과 그 의미가 서로 다르지 않다.44)

이로써 태극도와 세피로트의 나무(생명수) 간의 궁극적 실재에 대한 관념과 인식의 과정 혹은 우주관ㆍ세계관은 - 용어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 실제적으로 매우 유사함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양자(兩者)의 인식과 존재의 대둥지는 서로 의미가 상통한다.

그런데 카발라의 아인소프를 규정짓기 어려웠던 것처럼, 태극도 역시 ‘무극(無極)’과 ‘태극(太極)’이라는 실재(實在)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지? 알기 어렵고, 또 양자 간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이냐?하는 중요한 과제를 남긴다.

무극은 원래 유가의 경전에는 없었던 용어로 도가의 『도덕경』45)이나 『장자』46), 혹은 『열자』47)에 등장한다. 글자 그대로 보면, “끝이 없다”는 말이지만, 주자는 이치는 있지만 형체는 없는 진리라는 의미로 이해한다. 태극의 ‘태(太)’는 크다는 뜻이고, ‘극(極)’은 표준 또는 끝을 의미하여, ‘위대한 표준’ 혹은 ‘위대한 궁극적인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48)

이에 따라, 일반적으로 무극과 태극은 비인격적이며, 내재적인 존재로 간주된다.

이상과 같이 양 도설을 종합해 보면, 심층 종교의 - 우주생성의 주체로서의 - 궁극적 실재는 서로 일치하며, 그 차이는 용어상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 상이한 기표(記標, signifier)

종교들의 심오한 부분에 있어서 거의 동일한 개념을 사용하고 있고 종교의 초월적 통일이 가능하다면, 이들 종교사상간의 실재를 나타내는 통속적인 용어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켄 윌버는 그의 첫 저작 『의식의 스펙트럼(The Spectrum of Consciousness)』에서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먼저, 윌버는 의식의 전체적인 양상을 7개의 계층구조모델로 설정한다.49) (1) 정신의 수준(levels of mind or spirit or the universal mind) (2) 초개인 대역(the transpersonal Bands or levels) (3) 실존의 수준(the existential level) (4) 생물사회적 대역(the biosocial bands) (5) 자아의 수준(the ego level) (6) 철학적 대역(the philosophic bands) (7) 그림자 수준(the shadow level)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1)의 정신(우주적 마음)의 수준을 경험하고 (3)의 실존의 수준으로 내려와 그것에 관하여 얘기하려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그 ‘종교적인’ 경험을 오직 이용 가능한 상징(象徵)으로만 표현할 수 있다.50) 다시 말해 (4)의 생물사회적 대역(문화적 이데올로기, 특이성, 패러다임의 다양성)에 의하여 공급되는 상징으로만 표현 가능하다.

따라서 통속적인 종교들이 다양성을 보이는 것은 결국 생물사회적 대역의 다양성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예수, 샹카라(Sankara),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가 (1)의 정신의 수준을 경험하고 (3)의 실존의 수준으로 내려와 (4)의 생물사회적 대역에 의하여 공급되는 상징으로 표현하면, 그들은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하게 된다. 예수는 유대 신학으로, 상카라는 힌두교의 용어를 사용할 것이며, 과학자 슈뢰딩거는 물리적 이론의 용어를 이용할 것이다. 이는 결국 (3)의 실존(實存)수준은 다양한 통속적인 종교들의 수준인 반면 (1)의 정신(精神)의 수준은 통속적인 종교의 ‘초월적 통일’의 수준이라는 사실을 뜻한다. 다시 말해 종교는 실존 수준에서 의견이 갈라지지만 정신 수준에서 한데 모아진다. 그래서 슈온은 앞의 <그림 3>과 같이 종교들이 하나로 합해지는 삼각형 모양의 그림을 그리고, 상단의 ‘비교주의’와 하단의 ‘통속주의’ 사이에 선을 수평(水平)으로 그은 것이다. 윌버의 주장을 간단히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그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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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동일한 궁극적 실재에 대한 여러 종교들의 표현상의 차이가 나타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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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우리의 실존 수준은 통속적인 종교들의 수준으로서 서로 의견이 갈라지지만, 정신의 수준에서는 통속적인 종교들의 ‘초월적 통일’이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51)은 모든 종교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언급할 경우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런 주장은 기독교가 유일한 방법이 아님을 내포하고 따라서 ‘개종의 열광’을 위한 연료가 증발하여 텅 비게 만들기 때문이다.”52)

Ⅲ. 대순사상에 나타난 존재의 대둥지

1. 상이한 기표의 해소

대순사상에 나타난 존재의 대둥지의 실재 수준에 대한 묘사는 구체적이다. “서양의 모든 문물은 천국의 모형을 본뜬 것”53)이며, 인계와 천상신명계의 관계 또한 서로 연동(連動)되어 있다. 예컨대, “사람들끼리의 싸움은 천상에서 선령신들 사이의 싸움을 일으키나니 천상 싸움이 끝난 뒤에 인간 싸움이 결정되는”54) 것이다. 또한 천계(天界)의 실상에 대해서도 상세히 밝혀주고 있다. “하루는 김 송환(金松煥)이 상제께 여쭈기를 “하늘 위에 또 하늘이 있나이까.” 상제께서 “있느니라”고 대답하시니라. 또 그가 여쭈기를 “그 위에 또 있나이까.” 상제께서 “또 있느니라”고 대답하셨도다. 이와 같이 아홉 번을 대답하시고 “그만 알아두라”고 이르셨도다.”55) 뿐만 아니라, 「교운」에서는 “삼라 만상의 근원이 수기를 흡수하여 생장하느니라. 하늘은 삼십 육천(三十六天)이 있어 상제께서 통솔하시며 전기를 맡으셔서 천지 만물을 지배 자양하시니 뇌성 보화 천존 상제(雷聲普化天尊上帝)이시니라. 천상의 전기가 바닷물에 있었으니 바닷물의 전기로써 만물을 포장하느니라”56)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내면 <그림 7>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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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대순사상에 나타난 존재의 대둥지와 궁극적 실재 1. 개체 수준 : 육신(肉身)-혼백(魂魄)-신귀(神鬼)57)-영선(靈仙) 2. 실재 수준 : 지계(地界)-인계(人界)-천상신명계(天上神明界)-천상(天上) 위의 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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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에서 삼십육천(三十六天)을 통솔하시는 구천상제(九天上帝)58)는 불가에서 말하는 미래불로서의 ‘미륵(彌勒)’59)이기도 하고 내재적ㆍ비인격적 존재로 간주되는 ‘무극(无極)’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의 현재 인식은 (예컨대) ‘미륵불(彌勒佛) = 무극(無極)’이라는 등식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이는 궁극의 실재에 대한 사유와 인식의 과정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즉, 시대에 따른 사고방식에 어떤 변화가 생겼다는 의미다.

하지만 대순사상에서는 이러한 시대의 인식을 뛰어 넘는다. 대순의 봉축주(奉祝呪)는 “무극신 대도덕 봉천명 봉신교(无極神 大道德 奉天命 奉神敎)”로 시작된다. 특히 무극신(無極神)의 개념60)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데, ‘무극신’은 우주의 본체를 의미하는 ‘무극(無極)’과 보통 초월적 존재의 의미로 사용하는 ‘신(神)’의 조합(組合)이다. 즉 내재성과 초월성이 동시에 표현된다. 또한 도덕(道德)은 내재적이지만, 천명(天命)은 인격적 천(天)의 관념을 드러내며, 신교(神敎)의 신(神)은 분명하게 외재적ㆍ초월적 존재로서 나타난다. 반면에, 대부분의 현(現) 종교사상들은 시대에 따른 인식의 변화를 겪음으로써 표층 종교화된 것이다.

2. 대순 종지(宗旨) : 동일한 기의의 아우름

대순사상의 ‘중심 가르침’ 혹은 ‘근본이 되는 중요한 뜻’ 즉 종지(宗旨)에는 인격적 신(神)과 비인격적 도(道)가 함께 내포(內包)된다. 대순의 4대 종지는 음양합덕(陰陽合德), 신인조화(神人調化), 해원상생(解冤相生), 도통진경(道通眞境)이다.

다음 <그림 8>에서 ❶은 ❷와, ❸은 ❹와 개념상 밀접하게 연관된다.61) 구체적으로, ❶, ❷의 신은 음(陰), 인간은 양(陽)으로서 서로 음양의 관계에 있으며62), 음양합덕이 되면 ❷의 신과 인간도 서로 합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신인이 조화(調化)를 이룬다는 뜻이다. 바꿔 말해 음양합덕은 신인조화(神人調化)의 전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신과 인간이 동등하게[調] 만나 조화(造化)를 이루기에, “조화(調化)”라는 - 사전에도 등장하지 않는 - 신조어를 쓴다. 또한 포원(抱冤)ㆍ상극(相剋)은 서로 불통(不通)하는 것이지만, ❸의 척(慼)을 풀고[解冤] 남을 잘 되게 하는 상생(相生)63)은 ❹의 소통[通]의 길64)이기에 진경(眞境, 道卽我我卽道65))에 이르게 한다. 결국 ❶과 ❸을 통해서 ❷와 ❹가 각각 실현66)된다. 이렇듯, 대순의 4대 종지가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이를 도식화하면 <그림 8>과 같다. 그림에서 네 개의 종지를 하나의 원으로 표시한 것은 하나의 원만구족(圓滿具足)한 완결된 이념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또한 대순의 종지가 우주적 이념을 두루 포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온 우주의 네 코너(The Four Corners of the Kosmos67))”라고 불리는 사상한(四象限, four quardrants)으로 표시했다.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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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온우주의 네 코너로 나타낸 대순의 4대 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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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서 보듯이, 좌상상한은 어떤 우주적 요소의 내면적ㆍ개인적ㆍ문화적 측면을 뜻하며, 우상상한은 외면적ㆍ개인적ㆍ사회적 측면을 말한다. 또한 좌하상한은 내면적ㆍ집합적ㆍ문화적 측면을 뜻하며, 우하상한은 외면적ㆍ집합적ㆍ사회적 측면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선 좌상한의 음양합덕과 해원상생은 내면(內面)의 일이며, 우상한의 ‘신인(神人)’과 ‘진경(眞境)’69)은 외적(外的)으로 드러나는 존재 혹은 양상이다. 또한 위의 두 상한은 개인적 측면, 아래 두 상한은 집합적 측면이라고 하였는데70), 음양합덕을 이루고 신인 조화를 도모하는 것은 각자의 수양과 수도에 따른 것이지만71), 해원(Resolution of Grievances)과 상생(Mutual Beneficence)72)을 실천하고 진경을 이루는 것은 타자를 전제하고 타자와 더불어 도모해 나가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사상한의 원의(原義)에 따르면, 대순의 종지에는 ‘개인으로서의 할 일[I, 음양합덕]과 궁극적인 지향점[It, 신인조화]’, ‘우리로서 할 일[We, 해원상생]과 궁극적인 지향점[Its, 도통진경]’이 동시에 드러난다. 이외에 다른 조건의 이념을 더 추가할 수 없기에 온 우주의 네 코너인 것이며, 대순의 종지가 전 우주의 이념을 두루 포괄한다고 말할 수 있다.73)

여기서 2)의 신인조화의 신(神)과 4)의 도통진경의 도(道)는 각각 인격적(초월적) & 비인격(내재적) 존재를 뜻한다는 점에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74) 이것은 대순의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가르침[종지]에 나타난 궁극적 실재의 두 양상을 암시한다.75)

앞서 <그림 2>에서 베단타의 “브라만-아트만”, 아빌라의 성 테레사의 “영적 결혼” 등은 일반적인 용어로 ‘신인합일(神人合一)’ - 대순 종지에서의 신인조화 - 을 의미하며, 마하무드라의 “비명상(非冥想)”이나 차크라의 “실재 속 해방”, 불교의 식(識)에서의 “비이원적(非二元的) 의식” 등은 어떤 궁극적 경지 - 대순 종지에서의 도통진경 - 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이로써 대순의 종지는 세계 주요 종교사상들의 궁극적인 지향점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이념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신(神)’은 인격적ㆍ외재적ㆍ초월적인 존재를 의미하며, 이에 비해 ‘도(道)’는 비인격적ㆍ내재적이다.76) 그래서 대순사상에서도 “도(道)란 부단불식(不斷不息)하여 무형무적(無形無跡)하고, 무성무취(無聲無臭)”77)한 것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위의 도설에서도 보듯이 “도는 우주 만상의 시원(始原)이며 생성(生成) 변화의 법칙”78)이다. 즉 도는 “끊이지 않고 쉬지도 아니하며 형태도 없고 자취도 없으며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고 하여 비인격적ㆍ내재적 속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Ⅳ. 결어

『영원의 철학』 해제에서, 오강남은 “‘영원의 철학’으로 세계 종교의 심층을 보다”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의 바탕에 동서를 꿰뚫는 심층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현재 세계의 주류적인 종교들이 표층 차원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존재의 대둥지(The Great Nest of Being)’는 역사적으로 존재해 왔던 세계 종교들의 심층, 즉 존재와 의식의 홀라키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켄 윌버가 지적했듯이, 영원철학은 비교종교학자 휴스턴 스미스가 언급한 바 있는 “잊혔던 진리”를 다시 확인시켜준다. 다시 말해 영원철학은 세계 주요 고등종교들이 상실한 심층 차원의 교의가 무엇인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나아가 대순사상은 세계 심층 종교들의 교의를 내함(內含)하고 있으며, 대순사상에 나타난 존재의 대둥지는 기존의 대둥지들이 어떻게 회통될 수 있는지79) 명시적으로 밝혀준다. 특히 대순의 종지(宗旨)는 대순사상에 나타난 인식과 존재의 대둥지를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기존의 여타 종교사상들이 내세웠던 이념들을 두루 아우를 수 있는 - 온 우주(The Kosmos)의 네 코너로서 사상한(four quardrants)으로 고찰해 보면 - 범(凡) 우주적 이념을 두루 포괄한다.

Footnotes

1) 본래 ‘존재의 대사슬(great chain of being)’이라고 한다. 그런데 통합사상가 켄 윌버(Ken Wilber, 1949~)는 이를 ‘존재의 대둥지’로 재(再) 명명(命名)한다. “‘존재의 대사슬’은 조금은 잘못 명명된 듯한데, … 우주의 실재적 모습은 각 상위의 차원이 그 하위의 차원(들)을 감싸 넣거나 접어 넣는 ‘존재의 대둥지(겹둥지)’에 더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주 만물은 근원적으로 평등하고 또 서로 연결이 되어 있어 ‘하나(One)’라고 할 수 있지만, 상대적인 위계ㆍ계층적 질서가 있다는 것이다. 영원철학에서는 생명과 마음, 그리고 영혼은 홀라키(holarchy, 홀론(holon)의 계층)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한다.(Ken Wilber, The Marriage of Sense and Soul: The Marriage of Sense and Soul Integrating Science and Religion (New York: Random House, 1998), p.8. ; Huston Smith, Forgotten Truth: The Common Vision of the World’s Religions (New York: HarperSanFrancisco, 1992). p.62.) 홀론은 그리스어 홀로스(holos, 전체)와 온(on, 부분)의 합성어로서 온우주가 “전체인 동시에 다른 전체의 부분인 존재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칭하는 용어다. 홀론의 계층 즉 다(多) 수준적 실재(實在)를 홀라키라고 한다.

2) 허훈, 「영원철학(The Perennial Philosophy)으로 본 대순사상의 궁극적 실재」, 『대순사상논총』 32 (2019), pp.137-173.

3) 영국 태생의 미국의 소설가ㆍ극작가로서 1930년대 베를린을 배경으로 한 여러 편의 소설을 썼다. 인도 베단타 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스와미 프라바바난다의 신봉자가 된다.

4) 인도의 철학자이자 승려로서 미국으로 이주하여 1930년 남부 캘리포니아에 베단타 협회(Vedanta Society)를 설립한다.

5) ‘영원철학(Philosophia perennis)’이라는 용어가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Leibniz, 1646~1716)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는 헉슬리의 주장과는 달리, 15세기 이탈리아 고전 히브리어 학자 아고스티노 스테우코(Agostino Steuco, 1497~1548)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진다. 이에 따라 일부 학자들은 영원철학을 스콜라주의(Scholasticism), 특히 토미즘 학교(Thomistic school)와 동일시하는가 하면, 대개는 플라톤주의를 포함한 많은 다른 학파들에 귀속시키려고도 하였다. 하지만, 이들 연관 관계는 보다 최근의 것인 반면, 스테우코에게는 철학과 신학을 모두 포용하고 단지 하나의 지혜나 사상의 학파와는 관련이 없는 영원한 지혜로 확인된다. Alan M. Laibelman, The Other Perennial Philosophy: A Metaphysical Dialectic (Lanham: University Press of America, 2000), p.5.

6) ibid., p.6.

7) 물론 ‘도(道)’는 우주의 초월적인 궁극 실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인식은 “도는 땅강아지나 개미에게도 있고 심지어 분뇨(糞尿) 속에도 있어 그야말로 ‘없는 데가 없다’는 것”이다. 도를 인격적 존재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신(神)’ 역시 ‘내재신’으로 파악될 수 있다.

8) 허훈, 『한눈에 보는 세계철학사 : 3천 년 철학의 흐름과 맥락을 읽다』 (서울: 양철북, 2015), p.376.

9) 시니피에(기의)와 시니피앙(기표) 사이의 이러한 관계를 언어 기호의 자의성(恣意性 arbitrariness)이라고 한다.

10) 『전경』, 교법 3장 23절, 예시 12절.

11) 이 그림의 각각의 홀라키 내용은 Ken Wilber, Integral Psychology: Consciousness, Spirit, Psychology, Therapy (Boston: Shambhala, 2000), pp.195~218에 나오는 내용을 도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림의 각주(12~23)는 각 종교사상의 홀라키를 확인할 수 있는 참고문헌이다.

12) Khenchen Thrangu, Essentials of Mahamudra: Looking Directly at the Mind Rinpoche (Boston: Wisdom Publications, 2004) 참조.

13) 한자경, 『성유식론 강해: 아뢰야식』 (파주: 서광사, 2019) 참조.

14) Arvind Sharma, The Philosophy of Religion and Advaita Vedanta: A Comparative Study in Religion and Reason (PA: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2008) 참조.

15) Thomas Ashley-Farrand, Chakra Mantras; Liberate Your Spiritual Genius Through Chanting (San Francisco: Red Wheel/Weiser, 2007) 참조.

16) David Gordon White, The Yoga Sutras of Patanjali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9) 참조.

17) Gershom Gerhard Scholem, Kabbalah (New York: Plume Books, 1978) 참조.

18) Ajit Mookerjee, Tantra Asana: A Way to Self-realization (New York: Random House, 1973) 참조.

19)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Interior castle): 아빌라의 테리사』, 황혜정 옮김 (서울: 요단출판사, 2011) 참조.

20) 루돌프 슈타이너, 『어떻게 초감각적 세계의 인식을 획득할 것인가』, 양억관ㆍ다카하시 이와오 옮김 (서울: 예하, 1992) 참조.

21) John M. Rist, Plotinus: The Road to Realit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2) 참조.

22) Saint Dionysius of Alexandria, St. Dionysius of Alexandria (KY: Create space Independent Publishing Platform, 2015) 참조.

23) A. J. Jarthur John Arberry, Sufism (NY: Dover Publications, 2001) 참조.

24) Ken Wilber, A Brief History of Everything (Boston & London: Shambhala, 1996), p.52.

25) <그림 2>에도 나와 있듯이, “불교에 따르면 공상(共相, 의식세계)의 관념 세계뿐 아니라, 지상의 물리세계까지도 모두 우리의 가장 심층식인 아뢰야식의 전변(轉變) 결과이다.” 즉 “우리의 허망 분별적 개념인 공상뿐 아니라 객관세계인 자상(自相, 감각세계)까지도 우리 마음의 변현(變現)이다.” 그래서 불교의 식(識)을 실재(實在)의 하이어라키로 분류한다. 한자경, 『명상의 철학적 기초』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8), p.105, p.108.

26) 이러한 구분은 이들 종교사상에 대한 우리의 현재 인식 즉 표층종교에서의 인식을 염두에 둔 것이다. 심층종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다.

27) 본래 「산상수훈」 안에 있는 것으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라는 가르침을 말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종교인들, 철학사상가들이 그들의 도덕규범을 황금률 형식으로 표현해 왔다. 칸트는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고 하였고, 『논어』에서는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고 하였다.

28)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뜻을 굽히지 않고 깨달음의 상태를 추구하면, 마치 구름에서 비가 내리듯 진리의 구름에서 자유와 기쁨의 비가 내린다”는 의미다.

29) ‘비이원(非二元)’을 산스크리트어로는 ‘아드바이타(Advaita)’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불이(不二)’라고 한다. 영어로는 ‘Non Dual’, ‘Non-Duality’, ‘Non Dualism’이라고 번역한다. 주지하듯이, 불이문(不二門)은 사찰로 들어가는 3문(三門) 중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을 지칭한다. 불교에서는 불이(不二)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불(佛)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30) 『The Transcendent Unity of Religions(종교들의 초월적 일치)』라는 책을 쓴 슈온은 더 구체적으로 ‘영원의 종교(religio perennis)’라는 말을 쓴다.

31) Ken Wilber, The Spectrum of Consciousness (Wheaton IL: Theosophical Pub. House, 1993), p.248.

32) Frithjof Schuon, Huston Smith, The Transcendent Unity of Religions (Wheaton: Quest Books(IL), 1984), p.xii.

33) 만약 동서양 각각의 우주관ㆍ세계관을 나타낸다는 세피로트의 나무와 태극도설 간의 유비관계를 찾기 어렵거나 찾을 수 없다면, 영원철학의 진리성을 의심할 수 있는 하나의 반증 사례가 될 것이다.

34) 카발라의 핵심을 다루는 도서로는, 바히르(Bahir), 헤이카롯(Heichalot) 등이 있는데, 1세기 때 나온 저작으로 추정한다. 카발라의 근본경전 『조하르(Zohar)』는 13세기경에 나왔다. 『조하르』는 2세기 시므온 벤 요하이라는 랍비와 그의 제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픽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스페인에 살던 모세 드 레옹(1250∼1305년경)이라는 사람이 1280년~1300년 사이에 이 책을 세상에 유포하기 시작하였다. 오강남, 『종교심층을 보다』 (서울: 현암사, 2011), p.72.

35) 각 세피라의 명칭과 뜻은 다음과 같다. ① 케테르(Kether: 왕관) ② 호크마(Hokhmah: 지혜) ③ 비나(Binah: 이해) ④ 헤세드(Hesed: 자애) ⑤ 제부라(Gevurah: 신의 힘) ⑥ 티페렛트(Tifereth: 미(美)) ⑦ 넷사(Netsah: 승리) ⑧ 호드(Hod: 영광) ⑨ 예소드(Yesod: 기반) ⑩ 말쿠트(Malkuth: 왕국)

36) 현현(Manifestation)되지 않은 음(陰)의 3단계 존재에는 아인(Ain: 공허), 아인 소프(Ain Soph: 무한), 아인 소프 오르(Ain Soph Aur: 무한한 빛)가 있다.

37) Charles Poncé, Kabbalah: an introduction and illumination for the world today (San Francisco: Straight Arrow Books, 1973), p.129.

38) ibid., pp.95-96.

39) ibid., p.72.

40) ibid., p.100.

41) 피타고라스는 10을 완전수(그리스어로 테트라크티스(tetraktys))라고 하며, 신성(神性)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1+2+3+4=10”에서 1은 점, 2는 선, 3은 면, 4는 공간을 나타내며 그 합인 10은 우주축으로서의 1을 중심으로 삼는다. 흥미롭게도 10을 한자로, 종횡의 길이가 똑같은 ‘십(十)’으로 쓰는데, 이 역시 동서를 뜻하는 ‘ㅡ’과 남북을 뜻하는 ‘|’이 모두 갖추어져 완전성(完全性)을 상징한다는 통설이 있다.

42) 위로부터 1~3 세피라는 “천상의 삼각형”이라 하고, 다음 4~6 세피라는 “도덕의 삼각형”이며, 7~9 세피라는 “마법의 삼각형”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 개(삼각형)는 신성을 뜻하고 네 개(6 세피라 이하 10 세피라 말쿠트까지)는 세속[失樂]을 의미한다. 여기서 신의 영역에 도달하고자 하는 사람은 물질계 왕국 말쿠트로부터 출발해, 32경로(10세피라 + 22길)를 통과하면서 각 세피라의 비법을 얻어 왕관 케테르로 향한다. Charles Poncé, Kabbalah, pp.125~129.

43) 이황, 『성학십도』,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

44) 이상과 같은 내용은 양자가 거의 일치한다. 다만, 태극도 음정양동(陰靜陽動) 하단의 오행(五行)과 4의 세피라에서 8의 세피라까지의 유비 관계에 대해서는 좀 더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아직까지 국내외를 막론하고 태극도와 생명수(세피로트의 나무)를 비교하는 선행연구는 전혀 없었기에, 향후 보다 진전된 연구 성과물이 나오기를 고대해 본다. 오강남은 “세피로트는 … 동양의 태극도와 비교한다면 무극에서 태극, 태극에서 음양이 구분되어 나온 형식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만 짧게 언급한다. 오강남, 앞의 책, p.73.

45) 도덕경 28장 “천하의 법도가 되면 참다운 덕에 어긋나지 않아 끝없는 도(道, 無極)로 돌아간다(爲天下式, 常德不忒, 復歸於無極)”고 하였다. 『노자 도덕경』, 박일봉 옮김 (서울: 육문사, 1988), p.92.

46) 장자 재유(在宥) 편(篇)에서는 “무궁한 문으로 들어가 끝없이 광대한 들판에서 노닐고자 합니다.(入無窮之門 以遊無極之也)”라고 하였다. 『역주 장자 2』 안병주ㆍ전호근 옮김 (서울: 전통문화연구회, 2007), p.113.

47)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사물의 마지막과 처음은, 애초에 끝없이 무궁할 뿐이다.(物之終始, 初无極已.)”라고 하였다. 『列子』, 列禦寇ㆍ王强模 譯注 (台北: 臺灣古籍出版社, 1996), p.158.

48) 이황, 『성학십도』, 이광호 옮김 (서울: 홍익출판사, 2007), p.31.

49) Ken Wilber, The Spectrum of Consciousness (Wheaton, IL: Theosophical Pub. House, 1993), pp.94~95. “무수한 의식의 단계 중에서 단순함과 설명의 용이성을 기준으로 나는 세 가지 주요한 대역 (그리고 나중에 기술할 그보다 작은 네 가지 대역)을 선택했다, 우리는 이들을 ① 에고 수준, ② 실존 수준, ③ 정신 수준이라 부른다.(보다 작은 대역은 초개인, 생물사회적, 철학적, 그리고 그림자 수준이다.).” ibid., p.6.

50) 『도덕경』의 첫 구절은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이다. 즉 “도를 설명하여 말할 수 있으면 이미 상도(常道)가 아니며, 이름을 이름 지어서 부를 수 있으면 그러한 이름은 이미 상명(常名)이 아니라”고 하였다. 물론 이에 대한 상이한 주석은 얼마든지 많다.

51) 물론 여기에는 초월적 유일신관만을 고집하는 표층 종교들 모두가 해당한다. 현재 세계의 고등종교 중에서 특히 서구 종교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52) Ken Wilber, The Spectrum of Consciousness, p.249.

53) 『전경』, 교운 1장 9절.

54) 같은 책, 교법 1장 54절.

55) 같은 책, 행록 4장 4절.

56) 같은 책, 교운 2장 55절.

57) 『중화경(中和經)』에는 혼ㆍ백(魂ㆍ魄)과 신ㆍ귀(神ㆍ鬼)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나온다. “情者는 魄也라. 耳目之視廳이 爲魄하고 氣者는 魂也라. 口鼻之呼吸이 爲魂하니 二者合而成物하나니라. 魂也者는 神之感也오. 魄也者는 鬼之感也라. 合鬼與神이니 敎之至矣로다. 死則謂魂魄하고 生則謂精氣하나니 天地間共公底鬼神이니라.” 『중화경』 (김제: 대흥기획, 1989), pp.64-65.

58) 『전경』 「행록」편에서의 구천(九天)과 「교운」편에서의 삼십육천(三十六天)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불교의 경우 부파불교시대 아비달마(Abhidharma) 불교가 확립한 불교우주관에서 분류되는 천상에는 28천(욕계 6천, 색계 18천, 무색계 4천)이 있는데, 욕계6천 가운데 도리천(忉利天)에만 별도로 33천이 또 있다. 구천과 삼십육천도 이와 같은 구조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59) 『전경』, 행록 2장 16절. “상제께서 가라사대 ‘나는 곧 미륵이라.”

60) 이에 대해서는 태극도 본부, 「취지서」, 『태극도통감』 (부산: 태극도, 1956)을 참고할 수 있다.

61) ❶~❹의 앞의 두 음절의 낱말은 뒤의 두 음절의 낱말과 주술관계를 이룬다. 그래서 음양이 합덕하고 신인이 조화(調化)를 이루는 것이며 도통이 곧 진경인 것이다. 그런데 ❸의 척(慼)을 푸는 일 ‘해원(解冤)’과 남을 잘 되게 하는 ‘상생(相生)’은 반드시 정합적(整合的)인 관계라고 할 수 없다. 물론 “해원이 되어야 상생이” 되지만, 해원은 상생의 전제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남을 잘되게 하라”는 상생이 척(慼)을 푸는 해원보다 적극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만고(萬古)에 쌓였던 모든 원울(冤鬱)은 ‘해원(解冤)’뿐만 아니라, ‘보은(報恩)’이라는 양원리(兩原理)인 도리(道理)로 풀리는 것이다. 즉 신인의도(神人依導)의 이법(理法)은 해원(解冤)을 위주(爲主)로 하지만, 보은(報恩)으로 종결(終結)된다. 상생의 도 역시 크게 둘로 나누어 해원상생(解冤相生)과 보은상생(報恩相生)으로 구분한다. 『대순지침』 (서울: 대순진리회출판부, 1984) p.27; 『대순진리회요람』 (서울: 대순진리회교무부, 1969) p. 8; 『포덕교화기본원리(其二)』 (여주: 대순진리회출판부, 2003), p.6.

62) 『전경』, 제생 43절, “人爲陽 神爲陰 陰陽相合然後 有變化之道也.”

63) 같은 책, 「제생」 43절에는 “水生於火 火生於水 金生於木 木生於金”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런 구절을 들어 “남을 잘 되게 하라.”는 상생의 의미를 모든 만물로 확대ㆍ적용하기도 한다.

64) 『대순진리회요람』, p.9. “삼라만상(森羅萬象)의 곡진이해(曲盡理解)에 무소불능(無所不能)”한 것이 도통(道通)이다.

65) 『대순진리회요람』, p.9, p.16.

66) 단, 이것은 시간상의 순서가 아니라, 논리상의 순서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항녕은 “음양합덕의 원리가 시간적 전개로 신인조화를 이루고 공간적 전개로 해원상생을 이룬다.”고 보았다. 이항녕, 「대순 종지의 문명사적 의의」, 『대순사상논총』 6 (1998), p.45.

67) ‘Cosmos’는 가장 낮은 차원인 물질로만 구성된 우주인 반면, 그리스어 단어 ‘Kosmos’는 물질, 몸, 마음, 영혼으로 구성된 ‘온 우주(total universe)’를 뜻한다. 피타고라스 학파에 의해 도입된 이 용어는 물질우주(cosmos 혹은 물질권(physiosphere)), 생명(bios 혹은 생물권(biosphere)), 마음(psyche 혹은 이성(nous, 정신권(noosphere)), 신(神, theos 혹은 신성의 영역(divine domain))을 모두 내포한다. Ken Wilber, The Integral Vision: A Very Short Introduction to the Revolutionary Integral Approach to Life, God, the Universe, and Everything (Boston: Shambhala, 2007), p.115.

68) 기존의 대순 종지에 대한 연구는 이항녕, 안종운, 정대진, 최영진, 이경원, 김상일, 최동희, 양무목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위에 같이 4대 종지 간(間)의 유기적 관계를 우주적 이념의 관점에서 파악하려는 시도는 찾아 볼 수 없다. 우주의 모든 이념은 <그림 8>과 같이 ‘개인과 집합 & 내면과 외면의 조합’, 그리고 ‘1(I)ㆍ2(We)ㆍ3(It, Its) 인칭’으로서 완결된다. 이것이 사상한의 의미다.

69) ‘경(境)’의 의미는 ‘하나의 세계(世界)’ 혹은 ‘경지(境地)’를 가리킨다. 도통진경이 실현된 상생의 세상(世上)이 곧 후천선경이다.

70) “저 남성은 여성이다.”라는 말은 모순(矛盾)이지만, “저 남성은 여성적이다.”라는 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상한에서 좌상ㆍ우상 상한은 ‘개인’이 아니라 ‘개인적’이며, 좌하ㆍ우하 상한 역시 ‘집합’이 아니라 ‘집합적’ 측면임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좌상ㆍ좌하 상한 역시 ‘내면’이 아니라 ‘내면적’이며, 우상ㆍ우하 상한도 ‘외면’이 아니라 ‘외면적’이다.

71) ‘덕(德)을 쌓는 일’은 내면적ㆍ개인적인 일이다. “덕(德)에는 음덕(陰德)과 양덕(陽德)이 있다. … 상제님께서는 ‘모든 일에 외면수습을 버리고 음덕에 힘쓰라. 덕은 음덕이 크니라.’(교법 2장 18절) 하시고, 김형렬이 상제님께 자식을 태어주시고도 그 부모에게 알리지 않으시니 무슨 까닭이신가 하는 질문에 ‘내가 할 일을 할 뿐이고 타인이 알아주는 것과는 관계가 없느니라. ….’(교법 3장 11절)라고 하셨다. 수도인은 … 남이 몰라주는 것에 개의치 말고 숨은 덕행을 쌓아나가야 하겠다.”(교무부, 「덕을 닦기에 힘쓰고 마음을 올바르게 가지라」, 『대순회보』 175 (2015)).

72) 좌하상한의 해원상생은 집합적이며 문화적 측면을 뜻한다고 하였다. 이미 “상생(Co-living in Harmony) 문화”, “상생 윤리(Mutual Ethos)”라는 용어는 널리 회자되고 있다.

73) 사상한에 따르면, 오직 네 개의 상한을 모두 충족시킬 때라야 흠결 없는 온우주의 진리가 된다. 그래서 “진리의 네코너”라고 부른다. 즉, 단 하나의 상한이라도 누락된다면 그 진리는 부분적ㆍ파편적 진리에 머문다는 것이다.

74) 선행연구에서, 윤재근 역시 “‘신(神)’과 ‘도(道)’가 동서양의 종교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고 하면서, 양자의 의미가 합일적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네 종지 중에서 ‘신인조화(神人調化)’를 ‘신’과 ‘도’의 두 측면으로 나누어 본다. 그는 ‘천(天)’ 개념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개념으로 보면 양(兩) 개념은 서로 다른 개념이 되지만, 대순사상의 입장에서 보면 “신과 도라는 측면이 일체를 이룬다”고 보았다.(윤재근, 「神人調化에 나타난 神人關係 硏究」, 『대순사상논총』 3 (1997), p.416, p.434.) 사상한에 따르면, 좌상한의 내적 측면(❶, ❸)이 외면적으로 드러난 것이 우상한(❷, ❹)이다. 그런데 왜 ❹를 거론하지 않고, 굳이 ❷의 신인조화를 신과 도의 두 측면으로 나눈 것인지 의문이다.

75) 타 종교의 경우 문헌상으로 밝히는 명시적인 종지를 찾기 어렵다. 즉 내세우는 종지는 비교적 분명하지만, “우리 교(敎)의 종지(宗旨)는 ~이다.”라고 문헌상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불교는 ‘각(覺)’, 유교는 ‘중(中)’, 도교는 ‘도(道)’, 기독교는 ‘하나님’을 종지로 삼는다. 심지어 이슬람교의 종지는 “성전(聖戰)에 참여해 죽는 자이라야 천당으로 간다.”로 파악되기도 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동학은 제3대 교주인 손병희가 ‘인내천(人乃天)’을 종지로 선포하였고, 원불교는 「원불교교리도(圓佛敎敎理圖)」에서 ‘일원(一圓)’을 종지를 삼는다고 밝힌다. 또한 ‘대한불교조계종’의 경우 “본종은 … 직지인심, 견성성불, 전법도생(傳法度生)함을 종지로 한다.”(종헌 제1장 제2조)라고 하여 종지를 뚜렷이 밝히고 있다.(http://www.buddhism.or.kr/) 하지만, 이들 모두 궁극적 실재의 두 양상을 포괄하지 못한다.(‘인내천’의 경우 ‘천(天)’의 해석 여부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76) 하지만, 천사도(天師道)의 『노자상이주(老子想爾注)』에서는 ‘일(一)’과 ‘도(道)’를 우주의 본체로 상정한다. 이것이 분화되면 기(氣)이고 이 기가 모아진 것이 ‘태상노군(太上老君)’이라는 인격신이라고 한다. 즉 도(道, 무(無))는 시공을 초월한 보편진리이고, 이 초월적인 도가 노군(老君) 혹은 천존(天尊)등의 유(有)의 신(神)들로 응화(應化)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도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로서 그것의 신격이 노군(老君, 도군(道君))이다. “사람이 완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일(一)을 떠나선 안 된다. 일(一)은 도(道)이다. … 일(一)이 형체를 흩뜨리면 기(氣)가 되고, 형체를 취합하면 태상노군(太上老君)이 되어 항상 곤륜(崑崙)을 다스린다. 혹은 허무(虛無)라고 일컫기도 하고, 혹은 자연(自然)이라고 일컫기도 하고 혹은 무명(無名)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모두 동일한 것을 지칭하는 것일 뿐이다.(欲全此功無離一 一者道也 … 一散形爲氣 聚形爲太上老君 常治崑崙 或言虛無 或言自然 或言無名 皆同一耳.)” 饒宗頤, 『老子想爾注校箋』 (香港: 蘇記書莊, 1956), p.18.

77) 『대순지침』, p.91.

78) 같은 책, p.44.

79) 『전경』, 예시 73절. “오늘날은 동서가 교류하여 판이 넓어지고 일이 복잡하여져서 모든 법을 합하여 쓰지 않고는 혼란을 능히 바로잡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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