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대순사상의 요순관

이은희1, 이경원2,
Eun-hui Lee1, Gyung-won Lee2,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대진대학교박사수료
2대진대학교 교수
1Ph.D. Candidate, Department of Daesoon Theology, Daejin University
2Professor, DepartmentofDaesoonTheology, Daejin University
Corresponding Author : Lee Eun-hui, E-mail : leegw@daej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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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Oct 31, 2018; Accepted: Dec 15, 2018

Published Online: Dec 31, 2018

초록

지금 세계는 표본으로 삼을 수 있는 21세기 인간상, 사회상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대순진리회는 역사적 요순을 통해 그 전형(典型)을 보여주고 있다. 대순진리회에서는 이러한 요순을 다시 불러내어 현대에 맞게 되살려내고자 한다. 본 논문은 대순사상이 요순을 어떤 측면에서 이해하는지를 분석하여 요순이 오늘날의 현대인에게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연구이다.

대순사상에서는 개벽(開闢)시대를 당하여 ‘원시반본(原始返本)’이 되므로 ‘요순의 도가 다시 나타난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고대(古代)로의 회귀(回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비바람을 이기며 성장하여 가을에 새로운 열매를 맺는데, 그 열매에는 본래의 씨앗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때의 씨앗은 본래의 씨앗이지만 씨앗 그 자체만이 아니라 모진 시련 후에 거둔 풍성한 경험이 응축된 완전체를 말한다.

대순사상에 나타난 요순은 다음의 네 가지 관점에서 분석된다. 첫째는 성(聖)과 웅(雄)을 겸비한 이상적 인간상, 둘째는 이상세계의 고대적 전형, 셋째는 대순진리회 ‘심법(心法) 수도(修道)’의 고전적 근거, 넷째는 ‘해원상생(解冤相生)’ 진리의 역사적 배경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된다. 그러나 대순사상에 나타난 요순의 의미는 전통사상에 머물지 않고 일정한 차이점도 지니고 있다. 대순사상에서 성ㆍ웅이 겸비된 상태는 위무(威武)와 형벌을 쓰지 않고 조화로써 법리에 맞게 다스리는 모습이며, 그 이상세계는 천지도수가 조정되어 천재지변이 없고 모든 사람이 선하고 지혜로우며 영화를 영원히 누리는 세상이다. 심법을 말하되 그 심법은 상제에 의해 직접 제시된 ‘상생의 도’를 성ㆍ경ㆍ신(誠敬信)으로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요순과 관련된 원한은 대순사상의 핵심진리인 해원상생을 통해 근본적인 원한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요순관에 대한 연구를 통해 대순사상의 이해를 심화하고, 고전적 인물에 대한 상징과 재해석을 통하여 대순사상의 가치를 새롭게 규명하고자 한다.

ABSTRACT

These days, the world finds itself in a time when 21st century human and societal practices can benefit from alternative viable models; as such models are desperately needed. Daesoon Jinrihoe seeks to show one model inspired by the historical kings, Yao and Shun. In Daesoon Jinrihoe, King Yao and King Shun (堯舜 yo sun) are recollected and projected into modern times. This paper is a study that examines what aspects of Daesoon Thought go into understanding Kings Yao and Shun and what insights their example can provide for modern people today.

In Daesoon Thought, the ‘Dao of Kings Yao and Shun’ has appeared again because the ‘Era of the Great Opening (開闢時代 gaebyeok shidae)’ has arrived, and this era is characterized by ‘Seeking Out the Beginning and Returning to the Original Root (原始返本 wonshi banbon).’ This is not simply a return to ancient times. The seeds that fall on the ground grow up to overcome winds and rains, bring forth new fruits in the autumn, and their fruits contain the original seeds. The seeds are simultaneously the original seeds, but not the seeds themselves. Rather, they are complete bodies condensed and infused with abundant experience gained after multitudinous trials.

In Daesoon Thought, Kings Yao and Shun are analyzed from the following four perspectives: first, as an ideal human image that combines the qualities of Sages and Heroes (聖雄 seong oong), second, as the historical background behind the truth of the ‘Resolution of Grievances for Mutual Beneficence (解冤相生),’ third, as an ancient model of the ideal world, and fourth, as Daesoon Jinrihoe’s ‘Mind Dharma (心法)’ and also as the classical basis for the ‘Cultivation of Dao (修道).’ However, the meaning of Kings Yao and Shun in Daesoon Thought is not limited to traditional philosophical thought but also contains certain crucial differences. In Daesoon Thought, the qualities of sages and heroes are combined in a way that does not compromise or penalize, but in accordance with the rule of law and beyond, the ideal world is understood as a world in which there are no natural disasters and everyone enjoys beauty and splendor.

Mind Dharma means the spiritual cultivation of the ‘Dao of Mutual Beneficence’ as presented by Sangje (上帝 the Supreme God) through sincerity, respectfulness, and faithfulness (誠敬信 seong, gyeong, shin). In addition, through the core truth of Daesoon Thought, the Resolution of Grievances for Mutual Beneficence, the resolution of the grudges associated with Kings Yao and Shun will likewise eliminate the root-grudge plaguing humanity and divine beings. In this paper, I intend to deepen my understanding of Daesoon Thought through a study on our theology’s understanding of Kings Yao and Shun, and I also wish to redefine the value of Daesoon Thought through the symbolization and reinterpretation of ancient historical figures.

Keywords: 대순사상; 요순; 성ㆍ웅(聖雄); 이상세계; 해원상생; 심법
Keywords: Daesoon Thought; Kings Yao and Shun; Sages and Heroes; the Ideal World; the Resolution of Grievances for Mutual Beneficence; Mind Dharma

Ⅰ. 머리말

요순(堯ㆍ舜)은 상고시대에 동양적 유토피아를 열었다고 하는 요임금, 순임금을 말한다. 요순을 언급하면 혹자는 왠지 구시대적 빛바랜 유물을 보는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유교문화권에서 요순은 인간의 전형, 군왕의 전형, 태평시대의 전형이었다. 요순은 무려 4,000여 년 동안이나 추앙을 받았던 것이다. 요순은 단순히 중국 고대의 인물이 아니라 동양 문화권의 훌륭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는 역사 초기부터 요순과 같은 많은 성군들의 출현 덕분에 서양과 다른 발전과정을 겪었기 때문이다.1)

이러한 요순은 근ㆍ현대에 와서 하루아침에 외면당해 위인전에도 들지 못하고 신화로만 전락하게 되었다. 첨단과학문명 시대가 도래했는데, 인간소외는 더 심화되고 사회문제, 국가ㆍ종교 간 분쟁문제는 별다른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세계는 표본으로 삼을 수 있는 21세기 인간상, 사회상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요순은 대순사상에서 하나의 위상을 점유하고 있다. 요순관에 대한 연구는 고전적 인물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대순사상의 이해를 심화하고 그 가치를 새롭게 드러내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기존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요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한다.

요순에 관한 기존의 연구는 주로 유교사상과 관련하여 다루어졌다.2) 이는 요순을 추앙한 공자나 맹자에 대한 연구에 비하면 너무나 미미한 수준이다. 기존의 대순사상 연구에서 요순에 관한 연구들은 대부분 단편적이며 요의 아들 단주의 원(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3) 요순 자체를 주제로 한 연구 논문은 아직 없다.

역사적 ‘요순’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고전(古典)으로는 『서경』,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의 유교 경전류와 『사기』, 『장자』, 『태평어람』, 『회남자』, 『산해경』, 『초사』, 『논형』, 『여씨춘추』, 『세본』, 『죽서기년』 등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유교 경전류와 『사기』 이외의 사료들은 요순에 대한 서술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인다.4) 김상준의 연구에 의하면 유교 전통 경전 속의 요순은 성스러운 군주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반면, 그 외의 자료들에는 요마저도 여러 종족들 간의 치열한 투쟁에서의 최종적 승자로 나타나고 있다.5) 비록 요순의 생애에 대한 다양한 버전이 있지만 본고에서는 요순을 ‘성군(聖君)’으로 보는 대순사상의 관점과 유사한 사료를 기본으로 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본 논문은 대순진리회의 소의경전인 『전경』에 근거하여 요순을 바라본다. 이에 필자는 요순을 언급하고 있는 고전적 자료들을 통해 역사적 ‘요순’에 관한 이해를 먼저 하고, 이어서 역사적 요순이 대순사상에서 어떠한 측면으로 되살아나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전경』에서 요순을 언급한 직접적인 구절은 총 여덟 개이다. 필자는 이러한 구절들과 관련된 간접적인 내용들을 찾고 분석함으로써 대순사상의 요순관을 규명해 보고자 한다.

Ⅱ. 역사적 ‘요순’에 관한 이해

1. 생애

요임금은 16세에 천자에 즉위하여 100년 정도 재위한 성군(聖君)으로 불린다. 요는 삼황오제의 한 사람으로 성은 기(祁) 또는 이기(伊祁), 이름은 방훈(放勳), 호가 요(堯)이다. 국호 또는 시호는 도당씨(陶唐氏)이고, 당요(唐堯)라고도 한다. 『사기』에 따르면 요는 하늘처럼 인자하고 신처럼 지혜로우며 부유하나 교만하지 않고 존귀하나 태만하지 않으며, 노란색 모자를 쓰고 흑색의 옷을 입고 흰 말이 끄는 붉은 마차를 탔다고 한다.6) 요의 정치사상의 요지는 ‘중(中)’이었다. 요는 큰 덕을 밝힘으로써 모든 종족이 친하도록 하였고, 여러 관직의 직분을 분명하고 공명정대하게 하여 모든 제후들이 단합하도록 하였다.7) 인재등용을 신중히 하고 정사를 맡겨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정치를 하여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요를 방훈(放勳)이라 한 것은 덕을 천하에 밝힌 공적이 큼을 말한다. 요는 네 가지 덕(欽明文思), 곧 공경스럽고 밝고 문채롭고 생각함의 덕을 힘쓰지 않아도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었고, 그의 공손하고 겸양한 처사로 그 덕이 사방에 미치어 백성들까지도 감화되어 화합하게 되니 나라가 화평해졌다고 한다.8) 요는 말 대신 몸소 솔선수범하여 백성이 저절로 감화되게 하는 법을 보여주었다.

요는 재위한지 70년에 제위(帝位)를 이어받을 사람을 물색하였다. 신하들로부터 장남인 단주(丹朱)와 신하인 공공(共工) 등을 천거 받았으나 요는 용납지 않고, 신하 사악(四岳)에게 물려주려고 하였으나 사악은 사양하였다.9) 그 후 요는 순을 천거 받아 두 딸을 시집보내고 아홉 명의 아들을 보내어 함께 생활하게 하여 내외 모습을 살폈다. 그 외 여러 직책을 맡겼으나 순은 잘 수행하였다고 한다. 이렇듯 요는 순을 3년간 시험하고 28년의 섭정을 맡겼다가 세상을 떴다. 요가 죽고 삼년상을 마치자 순은 단주에게 천하를 양보하고 남하의 남쪽으로 피했으나 제후들이 조근할 때 단주에게 가지 않고 순에게 왔고, 사람들이 단주가 아닌 순의 공덕을 찬양하자 순은 하늘의 뜻으로 여기고 도성으로 가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10)

순임금 역시 삼황오제의 한 사람으로 성은 요(姚)이고, 이름은 중화(重華), 국호는 유우(有虞) 또는 우순(虞舜)이다. 순은 순수한 인간성을 그대로 발휘하여 인의(仁義)를 이룬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由仁義行]11) 순의 부친은 맹인이라는 뜻의 ‘고수(瞽瞍)’라 불리며, 순의 모친이 죽어 재가를 해서 아들 상(象)을 얻었다. 고수는 상을 편애하고 순을 미워해 죽이고자 하였기에 순은 도망 다녔으며 어쩌다 작은 잘못이라도 지으면 곧 벌을 받았다.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은 지극정성으로 부모를 섬겨서 20세에는 효자라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순은 부모뿐 아니라 오만하고 불인(不仁)한 동생인 상에게도 잘 대했다고 한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순은 기주 출신이지만 역산에서 농사를 지었고, 뇌택에서 고기를 잡았으며, 하빈에서 도자기를 빚었고, 수구에서 일용기구를 만들고, 틈이 나면 부하로 가 장사도 했다고 한다.13) 순이 하는 일마다 인근 사람들 모두 서로 밭의 경계도 양보하고 장소도 양보할 정도로 덕이 높아, 순이 사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14)

순은 부모에게 미움을 받아 요에게 천거되는 30세까지 결혼도 하지 못했다. 과거의 결혼은 부모의 승낙 없이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순은 요에게 천거되어 부모의 허락 없이 요의 두 딸과 결혼했다. 말하자면 순은 어쩔 수 없이 권도(權道)를 행한 것이다.15)

순이 섭정을 잘하여 요로부터 상을 받자 순을 질투한 부모와 이복동생은 더욱 욕심을 내어 순을 두 번이나 죽이려고 했다. 순을 죽인 후 그 재산을 차지하고 순의 처까지 빼앗고자 하였다.16) 순은 기지(奇智)를 발휘해 겨우 살아남았다. 그럼에도 순은 부모와 동생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동생의 거짓말을 믿어주면서 도리어 신하들을 다스리는 데 도와달라고 부탁한다.17) 순은 지극정성으로 부모를 공양하고 우애를 구현하여 50세에는 결국 부모와 동생을 감화시켰다. 이러한 지극한 효심과 인품으로 30세에 추천을 받아 요에게 등용되어 3년간의 시험과 28년간의 섭정을 거쳐 천자에 재위한지 50년 되던 해에 세상을 떴다.18) 순은 약 110세 정도의 나이에 남쪽을 순행하며 시찰하다가 창오(蒼梧)의 들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2. 사상적 위상

현대 중국인들은 역사의 기원을 요순보다 앞선 헌원 황제(軒轅黃帝)로 생각하고 자신을 황제의 후손이라고 여긴다. 이에 반해, 공자는 황제에 대한 언급 없이 요순을 조종(祖宗)으로 받들고 요순을 계승하고자 하였다[祖述堯舜].19) 맹자의 요순 숭앙은 임금과 신하의 도를 구현하고자 한다면 언제나 요순을 표본으로 해야 하고[法堯舜],20) 사람의 성품이 선하다고 말할 때 반드시 요순을 예로 들었다[言必稱堯舜]21)는 말로 확인할 수 있다.

요순을 맹자는 유가적 관점에서 ‘이상적 인간의 표상’과 ‘이상적 윤리의 표상’ 등으로 본다.22) 요순의 유학사상적 위상은 공맹 유학사상의 연원이고, 유가의 이상적 인간인 성인의 표상과 이상적 정치를 한 성군의 표상이며, 유교 도통연원의 시발자로서 인도(人道)의 모범이 되고, 도의 표본이 된다는 점이다.23)

이렇듯 공맹을 지나면서 요순은 ‘완전한 성스러움의 유교적 표현’24)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 이유는 공맹의 시대는 폭력이 홍수처럼 범람하여 전쟁이 끊임없고 갈수록 대규모화 되었을 뿐 아니라 골육상잔이었기 때문인데, 유교의 창건자들은 당대의 정치 현실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혐오에서 ‘폭력이 제거된 성인 군주 이념’을 탄생시킨 것이다.25) 당면한 시대의 문제해결을 위하여 필요로 하는 인간상은 재창조되고 신화는 변용되기 마련이다. 공맹 이전의 요순의 위상은 알기 어려우나 공맹을 거치면서 요순은 매력적으로 어필이 되고 재맥락화되어 역사상 큰 산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요순신화가 재창조되고 널리 퍼진 것은 춘추 전국 시대(기원전 770~221) 후반기였다.26) 중국의 전국 시대에도 수십만 명이 전쟁에 나가 죽었고, 진시황의 통일 이후엔 대규모 토목 공사에 동원되는 등 백성들은 폭압 정치에 시달렸다. 진시황이 죽은 뒤에도 유방과 항우의 전쟁이 이어졌고, 한나라가 세워진 이후 사마천 당시까지도 타민족과 벌이는 전쟁에 나가야 했다. 이렇듯 불안하고 비참한 삶이 계속되면서 사람들은 평화로운 요순시대를 꿈꾸었다.

요순을 언급한 책 중 핵심 문헌인 『서경』 역시 공자가 편찬하면서 첨삭했을 가능성이 있는데다가 서경 58편 중 25편이 동진(東晋) 때의 위작(僞作)으로 밝혀졌다.27) 그러나 『서경』이 수천 년 동안 세상에 미친 영향력을 볼 때 그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하겠다. 처음부터 신화였든 실화였든 간에 요순이 혹 구전으로 내려오다가 후대에 기록되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희망이 집약된 축적물이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요순은 오랫동안 유교문화권 사람들의 이상적인 군주상이자 인간상이고 태평시대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요순의 도가 재현되지 않자 요순시대는 서양의 에덴동산과 같이 되돌아가기 힘든 낙원의 상징이 되고 만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살펴보자.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요순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닮아야 하는 모범적 인간상이었다. 특히 군주의 자리에 있는 자는 요순 같은 성군이 되기를 끊임없이 요청받았고, 요순 같은 다스림으로 태평성대를 구가해야할 책임을 져야 했다. 대표적으로 정암 조광조,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등은 당시의 임금을 요순과 같은 성군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조선시대 영조는 세종을 ‘조선의 요순’으로 받들며 그 맥을 이어받아 자신을 요순이라고 칭하게끔 했을 정도이다.

서양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으로 인하여 국가 자체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게 되면서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영웅’ 담론이 지배하게 되고 요순은 완전히 배척되었다. 조선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경향과 맞물려서 어떤 때는 세종대왕보다 그 덕성이 하위로 밀려나는 등, 요순은 단지 과거 중국의 군주일 뿐 현실과는 거리가 먼 고대의 신화적인 존재로 보편적인 이상향은 아니라고 선언된다.28)

유영옥에 따르면, 중세에서 근대로의 시대 전환기에 열강의 침입과 함께 서구문명이 유입되면서 요순은 일시의 전범으로만 평가되어 이상향 요순의 지배 담론은 퇴색하고, 정전(正典)이었던 유교경전과 사서 역시 우리의 삶과 사회의 중심 자리에서 외면되었기에 “유교적 이상향 요순의 형해화(形骸化)”가 일어났다.29) 요순은 앙상하게 남은 잔해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근대 계몽기에 알렉산더ㆍ나폴레옹ㆍ징기스칸 등의 정복영웅,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나 미국의 워싱턴, 우리나라의 이순신 같은 구국 영웅 등, 영웅적 인물들이 위인으로 받들어져 국가와 민족을 구원하려는 강한 열망을 투사하여 한 시대를 풍미하는 영웅 담론이 창출되었다.30) 이러한 풍조가 한동안 지속되더니 현대에 와서는 영화나 드라마 배우들, 가수들, 스포츠 선수들이 영웅의 자리를 대체하고 닮고 싶은 인물로 등극하였다. 이제 요순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듯하다. 더 이상 요순을 모범적인 인물로 언급하는 일은 찾기 힘들다.

이렇게 세상에서 이미 잊혀진 요순이지만 대순진리회의 경전 속에서는 엄연히 하나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언급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요순을 이념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다음 장에서는 요순이 대순사상에서 어떠한 상징과 가치를 지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Ⅲ. 대순사상에 나타난 ‘요순’

강증산(姜甑山, 1871~1909) 상제31)께서는 이 세상에 있는 말로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본다고 하였다. 상제께서는 19세기 말엽의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나 단어를 들어 상징과 비유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32) 구원자는 불교전통에 따라 자신을 ‘미륵’에 비유하였고, 이상적 인간상에 대해서는 도교의 ‘신선’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였다. 또한 이 세상에 새로 출현하는 진리는 ‘요순의 도’로 비유하였다. 이와 같이 『전경』에 나타나 있는 ‘요순’에 담지된 의미를 분석한 결과 네 가지 정도의 의의가 발견된다. 첫째 성ㆍ웅 겸비의 이상적 인간상, 둘째 이상세계의 고대적 전형, 셋째 대순진리회 ‘심법 수도’의 고전적 근거, 넷째는 ‘해원상생’ 진리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를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겠다.

1. 성ㆍ웅 겸비의 이상적 인간상

대순사상에서 말하는 요순은 이상적 인간상으로서 ‘성(聖)’과 ‘웅(雄)’을 겸비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요순을 포함한 신성은 임금과 스승의 지위가 한 갈래인 진법의 상징적 인물로, 개벽시대를 당하여 원시반본의 도수가 되어 진법이 다시 나오고 요순과 같은 성인의 출현이 예시되고 있다.

효(소호 금천씨)ㆍ욱(전욱 고양씨)ㆍ곡(제곡 고신씨)ㆍ훈(제요 도당씨)화(제순 유우씨)ㆍ우(제우 하우씨)로 내려오는 초통 초회 때에는 세세로 성인[聖]이었다.…우왕 이후 탕왕이 있고 탕왕 이후 문왕이 있었다. 한 회에 한 명의 성인이 회기에 응하였다. 중통에서 세대가 점점 내려오면서 성인[聖]은 도를 행하지 못하고 다만 교(敎)만 전하였다.33)

옛적에 신성(神聖)이 입극(立極)하여 성ㆍ웅(聖雄)을 겸비해 정치와 교화를 통제 관장(統制管掌)하였으되 중고 이래로 성과 웅이 바탕을 달리하여 정치와 교화가 갈렸으므로 마침내 여러 가지로 분파되어 진법(眞法)을 보지 못하게 되었느니라. 이제 원시반본(原始返本)이 되어 군사위(君師位)가 한 갈래로 되리라.34)

첫째 구절에서 요순은 성으로 인정받고, 도를 행하는 정치와 가르침을 펴는 교화를 겸한 성군이다. ‘성’은 『시경』과 『서경』에서 왕과 주위에서 그를 보좌하는 재상들에게 국한된 지배자들의 정치적 능력을 우선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이다.35) 인간의 표준[極]을 세우고 성ㆍ웅을 겸비해서 정치와 교화 모두를 행한 존재는 신성이다. 그러므로 대순사상에 의하면 요순은 신성에 속하며 성ㆍ웅을 겸비한 인간상에 해당한다.

후에 성인의 의미는 유가들에 의해 재정의되어 모든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로, 보편적 인격의 완성자로 심화된 것이다.36) 성ㆍ웅 겸비는 ‘내성외왕(內聖外王)’의 개념과 통한다.37) 내성외왕은 내면에 성스런 덕성을 갖추고 외면으로는 왕과 같은 역량을 갖춘 상태로 ‘수기이안인(修己以安人)’과도 연관된다. 성학(聖學)의 내용은 인격을 올바로 정립하는 개인의 수양적 성취로서의 내성과 대외 관계에서 덕치에 의한 왕도를 구현하는 사회적 공용으로서의 외왕을 포괄하는데, 이것이 유교사상의 ‘수기치인(修己治人)’이다.38)

『전경』에 따른 성인 요의 ‘외왕’적인 모습은 역법을 알아내어 백성에게 전하여 하늘의 은혜와 땅의 이치가 인류에게 비로소 베풀어지도록 한 것이다.39) 순의 ‘내성’적인 측면은 『전경』의 “열풍뇌우불미(熱風雷雨不迷)”40)라는 구절에서 확인된다. 순이 요로부터 삼년간 시험을 받을 때 매서운 바람과 우레 치는 빗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순의 도량이 큰 측면을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순의 ‘외왕’적인 측면은 섭정의 명을 받고 가장 먼저 천체 관측 기구인 선기옥형(璿璣玉衡)을 정밀하게 살펴서 일월성신(日月星辰)의 운행을 밝혀내어 백성들이 농사 때를 잃지 않도록 한 것이다.41) 또 순은 맡기는 일마다 훌륭하게 처리해서 백성이 오륜을 잘 따르게 하고 백관의 질서가 잡히게 하고 손님을 맞아 사방에 화목한 기운이 일어나도록 한 것42) 등도 마찬가지다.

대순사상에서도 요순과 같은 성인의 마음과 영웅의 도략 겸비를 강조한다. “제생 의세(濟生醫世)는 성인의 도요, 재민 혁세(災民革世)는 웅패의 술이라. 벌써 천하가 웅패가 끼친 괴로움을 받은 지 오래되었도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상생(相生)의 도로써 화민 정세하리라. … 대인을 공부하는 자는 항상 호생의 덕을 쌓아야 하느니라. …”43) ‘호생의 덕[好生之德]’은 순이 신하인 고요(皐陶)에게 공을 치하하자 고요는 백성이 잘 다스려져서 중(中)에 맞게 된 것은 순의 호생지덕이 민심을 흡족히 만족시킨 까닭이라며 순에게 공을 되돌리면서 처음 나온 말이다.44)

대순사상은 생명을 사랑해서 구제하고 세상을 고치고자 하는 ‘호생의 덕’이 없으면 영웅의 도략은 웅패의 술수에 불과해서 세상을 혁신하겠다고는 하나 오히려 재앙을 끼치게 됨을 일깨운다. 내적인 마음과 뜻이 참되지 못하면 외적인 행동이 참답지 못하게 되어 결국 도통이라는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45) 이처럼 성과 웅은 체용(體用)관계로서 어느 한 가지만 가지고는 원하는 목적을 올곧게 달성할 수 없다. 마음은 성인의 바탕으로 닦고 일은 영웅의 도략을 취하여야 되고,46) 명덕(明德)을 수행하고 재덕(才德)을 계발하여 지선(至善)에 이르도록 힘써나가야 한다는 것이다.47) 내적인 마음은 성인의 바탕으로 자신의 명덕을 밝혀 나가고, 외적인 일 즉 직분 수행에서는 영웅의 도략인 재지(才智)와 덕행(德行)을 일깨워 지선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처사(處事)에 있어서는 성인과 같은 덕으로만 대응하는 것은 부족하므로 웅적인 재능 겸비가 필요하다.48)

상제께서 강세할 당시 구한말의 사람들은 정치ㆍ사회적인 도탄기(塗炭期)를 맞이하여 요순과 같은 성군을 간절히 기대했을 것이다. ‘현무경’에 의하면 ‘도가 있으니 도에는 덕이 있고 덕은 화(化)가 있으며 화에는 육(育)이 있고 육에는 억조창생이 있어 그들이 바라고 받드는 것이 있는데 그가 당요이다[願戴有唐堯]’.49) 당요는 요의 시호이다. 이것은 후천에 관한 천지공사의 기초동량이 된다. 이 구절은 수많은 사람들이 요와 같은 덕성과 능력을 갖춘 정치적 지도자를 고대한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어리석고 재능이 부족한 사람도 요와 같은 사람을 닮고자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요순도 위무와 형벌이란 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다. 순은 섭정을 하면서부터 코 베고 다리 베고 사형시키는 등의 묵(墨)ㆍ의(劓)ㆍ비(剕)ㆍ궁(宮)ㆍ대벽(大辟) 등의 오형(五刑)을 제정하였다.50) 이것은 순이 영웅의 도략을 씀에 있어서 위무와 형벌을 썼다는 대표적인 증좌이다. 그러나 순은 신하로 하여금 형벌을 쓰되 형벌이 없어지도록 하여 백성들이 중정에 맞도록 하였다고 한다.51)

이와 비교하면 대순사상의 영웅의 도략에는 위무와 형벌이 존재하지 않는다. 상제의 천지공사에 의해 선천 세상의 한계가 극복되어 새로 열리는 후천선경에서는 위정자들이 화권이 열려 분에 넘치는 법이 없고 ‘위무(威武)와 형벌을 쓰지 않고도 조화로써’ 창생을 법리에 맞도록 다스리기 때문이다.52) 즉 대순사상에서 지향하는 성ㆍ웅 겸비의 경지란 자신의 명덕을 구현하여 늘 중정(中正)에 머무르고, ‘위세ㆍ무력과 형벌’ 대신 ‘조화’로 세상을 통제ㆍ관장하는 모습이다. 조화는 신과 인간이 서로 의지하고 이끄는 이법[神人依導]으로 신인조화(神人調化)의 경지에서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대순사상에서 성인의 덕성적인 부분은 요순과 비슷하지만 영웅의 도략적인 측면은 요순과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요순의 경지에서 더 나아간, 신명과의 협력을 통해 인간의 한계가 극복된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상술한 것처럼 대순사상에서는 성과 웅을 겸비한 요순의 비유를 통해 인간이 노력해야할 이상적인 인간상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수천 년 동안 이상적 인간의 모델이었던 요순을 되살려 내어 21세기의 인간도 지향해야할 전통적 본보기임을 강조한다.

2. 이상세계의 고대적 전형

대동사회(大同社會)를 잠시 열었다고 평가받는 요순은 대순사상에서 이상세계의 고대적 전형(典型)으로도 나타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원시반본은 정치와 교화를 통제 관장할 수 있는 요순과 같은 신성이 다시 나타나 진법을 보여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런 진법을 통해 요순이 열고자 했던 이상세계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으로도 해석가능하다.

요순이 이루고자 했던 대동사회에 대해 알아보자. 다음의 대동 개념에는 자연재해에 대한 언급은 없고 평화로운 인간 사회상에 대한 모습만 그려지고 있다. 대동(大同)은 『예기』에 의하면 “대도(大道)가 행하여져 천하는 공(公)을 위하니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이 선택되고, 믿음을 익히고 화목함을 닦아 사람들은 그 친부모만 홀로 부모로 여기지 않고 친자식만을 홀로 자식으로 여기지 않으며, 사람들은 재물을 불필요하게 자기에게 저장하지 않고, 도둑질하고 사회를 어지럽히는 도적은 일어나지 않아 바깥문을 닫지 않는다”는 의미이다.53) 달리 말하면 대동사회는 대동사상을 실현한 주체로서 대도를 행하는 성군이 다스리는 사회이면서 남과 내가 본성을 회복하여 인(仁)과 조화(調和)로 충만된 지극히 좋은 인간 사회가 되어 만물이 모두 하나가 되는 사회이다.54) 이 사회는 군주 한 사람에 의해 아래의 전체 백성이 영향을 받는 구조이다. 요순이 윤집궐중하여 ‘중’으로 세상을 다스리자 백성들이 중정(中正)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례를 예로 들 수 있다. 이것이 무위이치(無爲而治)이다.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행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행함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 백성들이 임금의 크나큰 덕에 감화를 받아 자발적으로 대동사회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55)

요순이 이루었다고 하는 태평한 사회의 삶의 상태는 ‘격양가(擊壤歌)’, ‘강구요(康衢謠)’ 등에서 확인된다. 요는 천자의 자리에서 50년이 지난 후 민심을 살피러 나갔는데 아이들과 노인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일상생활이 편안하니 나한테 임금의 힘이 소용없다는 노래 가사를 통해 요는 태평성대가 되었음을 알고 안심했다고 한다.

이런 요순시대에도 미흡한 점이 있었다. 태평성대였다고 하지만 자연재해가 있었고 원이 발생했으며 형벌과 빈부의 차별이 있었고 모든 사람이 요순처럼 되기 어려웠다. 9년간의 대홍수로 백성들이 고통을 겪은 이유는 요가 홍수를 다스릴 만한 적합한 인재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후에 순이 우(禹)라는 인재를 얻어 비로소 홍수를 다스렸다고 한다. 순은 섭정을 하면서부터 사형을 비롯한 오형(五刑)이라는 형벌제도를 제정했으며, 굶주리는 빈민들이 존재했고 백성들이 화친하지 않고 오륜을 따르지 않아 신하들로 하여금 바로잡도록 명을 내리기도 했다.56) 이는 요순 시기의 불완전한 면을 시사한다. 역사상 최고의 태평성대를 누렸던 요순시대였지만 천재지변은 피할 수 없었고, 형벌제도가 필요하였으며, 그 덕을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게 하는 것은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공자도 자신을 닦아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요순도 오히려 부족하게 여기고 근심하였다고 한 것이다. 이처럼 요순시대는 완전하기보다는 인간의 한계가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요순은 대순사상에서 신성 또는 성인, 성군, 성왕으로도 나타난다. 대순사상은 제생의세라는 성인의 도로 다스리는 시기를 ‘성인시대’, 재민혁세라는 다양한 웅패의 술을 이용해 정치하는 시기를 ‘영웅시대’라고 명명한다. 생명을 구제하고 세상을 고치는 것은 성인의 정치방법이고, 백성에게 재앙을 끼치면서 세상을 혁신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영웅들의 정치방법이다. 타인을 죽이는 죄를 지으면서 자신은 성공하고자 하는 웅패(雄覇) 즉 영웅과 패자들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오랜 세월 많은 괴로움을 받아왔다고 한다.

대순사상에 따르면 상제의 천지공사로 천지의 도수가 바뀌어서 인간의 삶의 방식 자체가 선천과는 전혀 달라지게 된다. 지난 선천 영웅시대는 죄로써 먹고 살았으나 후천 성인시대는 선으로써 먹고 살게 된다.57) 영웅시대에서는 타인을 무시하거나 폭력을 써도 성공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성인시대는 오히려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존중하며 타인을 앞세우고 자신은 뒤로 물러설 때[自卑而尊人 先彼而後己]58) 성공한다. 이것은 상제의 천지공사로 도수가 바뀌어 선천에는 돈의 눈이 어두워 불의한 사람을 따랐으나 후천에는 돈의 눈이 밝아져 선한 사람을 따르는 이치로 인함이다.59) 사람들이 요순과 같은 인물이 되고자 자발적으로 노력하게 된다면 자연히 인간이 바라던 유토피아가 현실화되고 ‘인존시대(人尊時代)’60)가 열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요순이 잠시 이루었다고 하는 태평한 사회상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이상세계가 오만 년이라는 영원한 세월동안 지속될 수 있다. 이 이상세계를 대순사상에서는 후천 성인시대, 후천선경(後天仙境), 지상선경(地上仙境), 청화오만년 용화선경[淸華五萬年龍華仙境],61) 무량극락 오만년 청화지세[無量極樂五萬年淸華之世]62) 등으로 부른다. 대순사상이 보여주는 후천의 청사진은 다음과 같다.

후천에는 사람마다 불로불사하여 장생을 얻으며 궤합을 열면 옷과 밥이 나오며 만국이 화평하여 시기 질투와 전쟁이 끊어지리라.63)

후천에는 또 천하가 한 집안이 되어 위무와 형벌을 쓰지 않고도 조화로써 창생을 법리에 맞도록 다스리리라. 벼슬하는 자는 화권이 열려 분에 넘치는 법이 없고 백성은 원울과 탐음의 모든 번뇌가 없을 것이며 병들어 괴롭고 죽어 장사하는 것을 면하여 불로불사하며 빈부의 차별이 없고 마음대로 왕래하고 하늘이 낮아서 오르고 내리는 것이 뜻대로 되며 지혜가 밝아져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시방 세계에 통달하고 세상에 수ㆍ화ㆍ풍(水火風)의 삼재가 없어져서 상서가 무르녹는 지상선경으로 화하리라.64)

인간의 한계로 생기는 고통에는 늙고 병들고 죽는 것, 어리석음, 원울과 탐음의 번뇌 등이 있는데, 대순사상은 후천에는 이것마저도 극복된다고 한다. 빈부의 차별, 위무와 형벌, 전쟁, 천재지변 등 사회와 자연의 한계상황도 마찬가지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요순 때 존재했던 위무와 형벌을 전혀 쓰지 않고도 조화로써 법리에 맞도록 세상을 다스린다고 한다. 억조창생이 요임금을 바라고 받드는 이유가 요와 같은 성ㆍ웅을 겸비한 위정자를 만나 평화롭고 살기 좋은 세상에서 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모든 사람의 지혜가 밝아지기 때문에 요가 인재등용에서 실패한 사례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게 된다.

천재지변이 수시로 일어나고 인간의 한계가 존재하는 불완전한 선천 상황에서 요순은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여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세계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원시반본이라 하지만 대순사상에서 말하는 후천선경은 과거 요순의 대동사회 그 자체를 말하지는 않는다. 상제의 천지공사에 의해 도수가 바뀌고 새 하늘 새 땅이 열려서 선천의 한계가 극복되어 천재지변까지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낙원이 실현되는 세상이다. 요순은 대순사상에서 말하는 이상세계의 고대적 전형으로서 후천선경에 대한 이해를 보다 용이하게 하고, 그 세계를 우리로 하여금 쉽게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3. ‘심법(心法) 수도(修道)’의 고전적 근거

상제께서 ‘많이 읽으면 도에 통한다’65)고까지 표현한 『서경』의 「서문」을 살펴보면 요ㆍ순ㆍ우가 서로 전한 심법인 ‘중(中)’이 핵심 내용이다. 요가 순에게 전한 심법은 “윤집기중(允執其中)”66)이다. 진실로 그 중간을 잡으라는 뜻이다. 순은 우(禹)에게 좀 더 부연설명하여 그 심법을 전한다. 사람의 마음은 오직 위태롭기만 하고 도심은 미약하기만 하므로 오직 정밀하고 한결같이 하여 진실로 그 중을 잡으라고 말한다.67) 요순의 다스림은 도에 근본하고 그 도는 마음에 근본을 두는데, 덕(德), 인(仁), 경(敬), 성(誠)이라고 하는 것은 말은 비록 다르나 이치는 하나이고 이 마음의 묘리를 밝힌 것일 뿐이다.68) 공자는 중을 인으로 바꾸어 설명했을 따름이다. 맹자는 성은 하늘의 도[天道]이고 성실하고자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도임을 밝히고 있다.69) 천도인 성은 인간 본성에 내재화되어 있으므로 성실함을 생각하고 행할 수 있는 것이다. 내재된 이법이란 곧 심법이므로 소강절은 선천의 학을 심법이라고 단언한다.70)

도에 통하게 한다는 ‘중’의 심법은 하늘의 도에 근거한다. 대순진리회 ‘종운(鍾韻)’에서 천기(天氣)가 하강하고 지기(地氣)가 상승하고 인도(人道)가 중정(中正)하고 조화(造化)가 비로소 정해지니 만유가 구비된다고 한다.71) 인도는 그 뿌리가 천도이므로 인도가 중정을 이룰 때 천지의 기운을 바르고 크게 쓸 수 있게 되어 조화가 일어난다.

『전경』에서도 심법이라는 용어가 언급된다. 상제께서는 김형렬에게 ‘심법’을 전수하고 ‘9월 19일’까지 수련을 계속하도록 하였다.72) 그러나 『전경』에는 이 심법이 무엇인지 자세한 설명이 없다. 하지만 교운 2장 23절에 도주(道主) 조정산(趙鼎山, 1895~1958)은 상제께서 구세제민(救世濟民)하고자 강세한 날인 ‘9월 19일’에 치성을 올린 후에 “분명조화성공일 요순우왕일체동”73)이라 말하고, 재실에서 매일 밤낮으로 치성을 올리고 공부하였다. 요순우왕이 한 몸으로 같다는 것은 도로써 같고 그 마음으로써 같다는 의미일 것이다. 결국 세 사람이 주고 받은 심법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순우가 서로 마음을 통하고 진리로서 일체가 된 것처럼, 상제께서 ‘광구천하(匡救天下)’하고자 강세한 날에 도주 조정산은 치성을 드렸다. 조정산 역시 ‘구세제민’의 뜻을 품고 상제의 ‘대순진리(大巡眞理)’에 감오득도(感悟得道) 하였으므로74) 그 마음과 진리는 일체가 되었음을 표방한다. 조정산 도주는 구천상제와 이렇게 마음과 도로 일체가 됨으로써 뜻하는 바인 광구천하의 일이 성공하리라는 것을 확언(確言)한 것이다.

요순은 혈연관계를 떠나 덕망 있고 국정수행능력이 있으며 천명(天命)이 내리는 자에게 왕위를 선양함으로써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도통(道統) 전수는 대순진리회의 역사에 있어서 강증산 구천상제와 도주 조정산, 그리고 도전(都典) 박우당(朴牛堂, 1917~ 1995)의 종통(宗統) 과정과도 맥락이 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상제께서 김형렬에게 심법을 전수한 것처럼 요순의 심법이 비단 도통 전수자에게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서전 서문을 많이 읽으면 도에 통한다는 의미는 마음의 이법인 중의 이치를 깨달아 도에 통한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노력만 하면 누구나 요순처럼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요순은 중의 심법으로 도통전수자만이 아닌 백성들도 그 중정의 경지에 이르도록 노력했다. 순이 오륜을 잘 펴서 백성들이 중도(中道)에 맞게 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심법을 전한 목적이 백성까지 중정에 이르게 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일 것이다. 수신(修身)으로 밝힌 명덕은 타인에게로 나아가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이루게 한다.

상제께서는 종도들에게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통정신(通精神)이 나오노라.”75)고 하였다. 통정신은 마음을 속이지 않는 진실한 본연의 모습으로 서로 마음을 통하고 도를 전하는 심법을 지칭하는 것일 것이다. 통정신은 서로 심정을 통하도록 상호 은의(恩義)로써 항상 반성하고 공사(公私)를 가려 상통하는 문답으로 마음의 장벽을 없애서 혼연일체가 된 상태이다.76) 그리하여야만 진리가 올바르게 전수되어 일심(一心)을 견지(堅持)할 수 있게 된다. 심법을 통해 성인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확인하는 것이 대공(大公)의 마음을 얻는 것이므로,77) 뜻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심법의 정수(精髓)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대순사상의 신앙 조목인 신조(信條)에서 중의 심법을 확인할 수 있다. 신조에는 성ㆍ경ㆍ신(誠敬信)이라는 삼요체(三要諦)가 있다.78)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성과 경은 요순우가 전한 심법과도 통한다. 지극한 성과 경으로 수행을 하게 되면 중정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대순사상은 구천상제를 공경하고 정성을 다하여 영원히 모신다는 정신으로 기대한 목적을 달성하여 직분을 수행해내는 성ㆍ경ㆍ신이 강조된다. 성과 경이 성인의 바탕을 키우는 것이라면 신은 일심으로 기대한 목적을 이루어내는 영웅의 도략적인 면과 연결된다. 요순이 전한 심법을 수용하여 대순사상에서는 신조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순진리회의 수도인들이 반드시 지켜야할 지침서인 『대순지침』에서도 지극한 성으로 바르게 도 닦기를 힘쓰라고 강조한다.79) 마치 요순이 중을 써서 백성을 중도에 맞게 한 것처럼 대순진리회는 개개인이 성경신으로써 대순진리를 실천해서 그 수행의 덕으로 사회를 변혁시키기를 기대한다.

상제께서 서전 서문을 많이 읽으면 도에 통한다고 한 뜻은 단순히 많이 읽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늘의 도인 성을 값진 보배로 삼아 지극한 성으로 바르게 도 닦기를 힘쓰면 중정에 이르게 되고, 서로 심정을 통하여 결국 도에 통하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심정으로 닦은 공이 크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나의 심령(心靈)을 구하여 상제를 향한 영시(永侍)의 정신인 일심(一心)으로 나아가는 것은 증산, 정산, 우당의 심법을 체득하는 것과 다름 아닐 것이다.

한편 요순의 심법은 대순사상에서 ‘요순의 도’로 상징화되어 나타난다.

류 찬명이 어느 날 상제를 모시고 있을 때 상제로부터 요ㆍ순(堯舜)의 도가 다시 나타나리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전하는도다.80)

주자는 상고시대로부터 성신(聖神)이 하늘의 뜻을 계승하여 극을 세움[繼天立極]으로써 도통이 전해지게 되었다고 한다.81) 극(極)은 근본(根本), 표준, 중정82)의 뜻이다. 성인들이 천도를 깨달아 중의 심법을 인간관계에 적용하여 인도의 표준인 ‘인륜(人倫)’으로 표현하였다. “수도는 인륜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혀 나가는 일”이므로83) ‘요순의 도가 다시 나타난다’고 하는 것은 ‘인륜’과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요순이 오륜을 제정하여 인도의 표준[人極]을 세운 것처럼 인륜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혀 나가는, 이 시대에 적합한 도가 나타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다시 나타나는 요순의 도는 구천상제께서 대순하신 진리로서 ‘상생(相生)의 도’를 뜻할 것이다.84)

조정산은 전교(傳敎)를 통해 과거 황제 헌원(軒轅) 때로부터 원(元)이 시작된 후 성인들이 나와 세상을 다스리고 가르쳐왔으나 점점 진법을 보지 못하게 되었는데, 이제 새로운 원이 시작되는 시기에 이르러 새로운 도가 출현했다고 선포하였다.85) 이것은 선천에서 황제가 입극하고 요순 등이 인륜을 세워 인도의 표준을 세웠던 하나의 큰 도수가 마감되고, ‘상생의 도’라는 과거에도 현재도 들어보지 못한 하나의 법이 다시 세워짐을 알린 것이다.

요순은 천도가 내면에 내재된 성품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어 인도를 밝혔다면, 대순사상은 인간의 몸으로 강세한 ‘구천상제’라는 존재에 의해 직접 천ㆍ지ㆍ인 삼계(三界)가 따라야 하는 도가 제시된 것에 차이점이 있다. 요순이 백성에게 가르칠 때 오륜으로 사람들을 아름답게 하고자 하였던 것처럼 대순사상에서도 삼강오륜을 중시하여 인륜을 바로 행하지 않으면 도통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인간관계의 핵심윤리인 ‘삼강오륜(三綱五倫)’은 대순진리회의 수칙에서도 역시 강조되지만 유교의 삼강오륜과는 그 맥락에 있어 차이가 있다. 대순사상에서 강조하는 삼강오륜은 ‘상생의 도를 바탕으로 한 인륜’이라고 할 수 있다.

요순은 인도를 잘 행하고 인륜을 밝힌 대표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대순사상에서 무너진 상도(常道)가 다시 세워진다는 상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대순사상에 나타난 심법은 상제를 영원히 모신다는 정신을 늘 지니고 상제께서 직접 내어놓은 ‘상생의 도’를 성ㆍ경ㆍ신을 다하여 일심으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대순진리회 경전에 나타난 요순은 ‘심법 수도’의 고전적 근거의 역할을 하고 있다.

4. ‘해원상생(解冤相生)’ 진리의 역사적 배경

전통 유교사상에서는 인품에 있어서나 정치에 있어서 요순을 하나의 결점도 없는 깨끗한 상태로 그려왔다. 반면 대순사상에서는 요순의 어쩔 수 없는 인간적 한계를 지적한다. 요는 최선을 다했지만 자식이 원(冤)을 품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였고, 순은 자식의 효성을 알아보지 못한 장님이라는 뜻의 고수라는 이름을 아버지에게서 벗기지 못해 한(恨)을 맺게 되었다. 요와 단주, 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상제께서는 이들을 통해 무슨 가르침을 전하고자 하는 것일까?

역사적으로 평가할 때 요순의 왕위선양과정은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대순사상의 관점에서는 아름다운 것만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선양과정에서 요가 자신의 아들 단주에 대해 ‘은송(嚚訟)하여’86) 왕위계승자로 적합하지 않다고 평가하여 생긴 단주의 ‘원’ 때문이다. 다만 요는 맏아들 단주에게 바둑을 가르쳤을 뿐이다. 단주로부터 시작된 원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종자가 계속 퍼져서 인간을 파멸지경에 이르도록 하였다고 한다. 『전경』에서 “머리를 긁으면 몸이 움직이는 것과 같이 인류 기록의 시작이고 원의 역사의 첫 장인 요의 아들 단주의 원을 풀면 그로부터 수천 년 쌓인 원의 마디와 고가 풀리리라. 단주가 불초하다 하여 요가 순에게 두 딸을 주고 천하를 전하니 단주는 원을 품고 마침내 순을 창오에서 죽게 하고 두 왕비를 소상강(瀟湘江)에 빠져 죽게 하였도다. 이로부터 원의 뿌리가 세상에 박히고 세대의 추이에 따라 원의 종자가 퍼지고 퍼져서 이제는 천지에 가득 차서 인간이 파멸하게 되었느니라.”라고 한다.87)

이 스토리는 유교 전통의 경전과 비교했을 때 차이가 난다. 단주가 제위를 물려받지 못해 원을 맺고 순을 창오에서 죽게 하였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상제께서 예로 제시한 이야기는 세상에 퍼진 여러 버전 중의 하나로, 조선 단학파에서 흘러나온88) 민간에 떠도는 스토리일 수 있다.

상제께서는 ‘머리를 긁으면 몸이 움직이는 것과 같이’ ‘인류 기록의 시작’이고 ‘원의 역사의 첫 장’인 단주의 원을 강조한다. 이것은 단주의 원이 사실이라기보다는 ‘근원적인 원’이라는 ‘상징’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병을 고치려면 뿌리까지 뽑아야 하듯, 원도 뿌리까지 뽑아야 완치가 가능하다. 천지를 파멸지경까지 이르게 한 이 세상의 원울(冤鬱)을 풀기 위한 첫 공사에서 제 1원인으로 단주의 원이 지목된 것이다.

선행연구에 의하면 단주의 이야기는 원이 발생하는 대표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고,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서 원의 감정이 지배한 인류역사를 상징적으로 묘사하는데 필요한 이야기이다.89) 단주는 그의 불초로 인해 부왕으로부터 신임을 받지 못하고 철저히 소외당하여 부왕에 대한 원망과 순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이때의 원은 향외적 증오와 향내적 회한이 결합된 부정적 정서의 복합체로 보았다.90) 대부분의 연구에서 단주의 원은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자신을 불초하다고 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왕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원 등으로 설명된다. 이와 달리 최동희는 단주의 원은 요순 때 막강한 지배권이 시작되면서 어떤 막강한 힘의 억압에 단주가 민중의 입장에서 품은 저항의식과 심한 반감에 의한 것이라 한다.91) 이때의 지배방법이 민중억압의 시작이기 때문에 ‘원의 역사의 첫 장’이라고 표현할 만하다는 것이다.

요는 순을 시험하면서 두 딸과 아홉 명의 아들을 보내 함께 생활하도록 하면서 순의 행동을 관찰하게 하였는데, 아홉 명의 아들 역시 더욱 성실해졌다고 사마천은 기록한다.92) 아홉 명의 아들 중 단주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후대에 단주는 더욱 나쁘게 평가되어 거만하고 포악하다고 서술된다. 이는 『서경』 「익직(益稷)」편에 나오는 것으로 위(僞)고문상서에 해당한다.

요가 세상을 떠난 후 순이 단주에게 제위를 양보하고자 한 기록도 있다. 맹자는 순이 요의 3년 상(喪)을 마치고 단주를 피해서 남하(南下)의 남쪽으로 가니 제후들이 단주에게 가지 않고 순에게 와서 조회를 하는 등등의 일이 계속 생기자 그때서야 천자의 자리에 앉았다고 하였다.93) 단주는 『사기』의 「제왕본기」에 의하면 요임금의 뜻에 따랐으며 후에 상당한 영지를 소유하고 조상의 제사를 이어받았다고 한다. 이와 다르게 정재서는 신화적 연구를 통해 『사기』 「오제본기정의」에 인용된 『죽서기년』에서 순이 요와 단주를 연금시켜서 서로 보지 못하게 하고 왕위를 찬탈한 기술에 따라 오히려 단주가 탐학했다고 억울하게 누명을 덮어쓰게 되어 깊은 원한이 생겼으리라 추측한다.94) 차선근은 단주가 약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권익을 대변하고자 하였으나 요와 정치적 노선이 달랐으므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큰 포부를 이루지 못한 원을 품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론하면서 단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95) 이처럼 역사적 사료에서는 단주의 원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데 상제께서 드러내어 강조한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본다.

단주는 요의 뛰어난 신하들에게 제위에 가장 먼저 추천받은 인물이다. 신하들은 요의 맏아들 단주를 ‘계명(啓明)’,96) 곧 열려서 밝고 총명하다고 평했다. 이렇듯 요의 훌륭한 신하들이 인정했음에도 단주는 정작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요의 생각에 단주가 적임자가 아닐 수 있으며, 단주가 아버지의 뜻과 같지 않아서일 가능성도 있으며, 선양의 사례를 남기기 위해 요가 어쩔 수 없이 단주를 배제했을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순 역시 부모에게 최선을 다함에도 인정받지 못하여 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며 부족한 자신을 자책하고 원망했었지만97) 결국에는 인정을 받았다.98) 이처럼 단주의 이야기도 최선을 다했으나 ‘지친(至親)관계인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부족한 자신을 향한 한’을 뜻할 수 있다. 역사상 요순의 찬양 하에 더 소외되고 그늘진 단주는 바둑의 시조라는 이름만이 있을 뿐이었다.

요순을 성인으로 보는 대순사상의 전체적인 관점 하에서, 본 연구는 단주의 원을 ‘인간의 근원적 욕구 불충족에서 생긴 원한’으로 보고자 한다. 이때의 근원적 욕구는 타자에게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자기 존중의 욕구’99)일 수 있다. 다시 말해 단주의 원을 ‘자기 존중의 욕구 불충족으로 인한 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존감의 욕구는 ‘누구나 지니는 인류 보편의 기본적인 욕구’의 하나로 ‘원의 뿌리’에 해당하는 자격을 지닌다.

단주의 원은 인류 보편의 대표적인 원의 상징으로 상제께서 인존시대를 열기 위해 ‘선택하였다’고 할 수 있다. 상제께서는 해원시대를 맞이하여 약하고 천하고 어리석어서 존중받지 못하고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들을 찾아 쓴다고 하였으므로100) 소외되고 버림받은 존재들의 해원을 중요하게 여겨 단주의 원을 해원공사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해원공사의 밑바탕에 ‘인존사상(人尊思想)’이 깔려 있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힌트이다. 상제께서 이 시대를 ‘해원시대’ 또는 ‘인존시대’로 표현한 것은 둘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을 암시해 준다.101) 해원공사는 인존시대를 실현하기 위한 기초공사이자 핵심공사이기 때문이다.

대순사상에 따르면, 인류역사는 상극의 원리에 지배되어 단주의 원처럼 욕구 불충족으로 인한 원한 발생 사례들이 계속 쌓이면서 원의 종자가 퍼지고 퍼져 가득 찬 원으로 인해 천ㆍ지ㆍ인의 삼계가 꽉 막히어 갖가지의 재앙이 일어나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다.102) 원의 역사의 상징적 시작인 단주의 원을 푸는 해원공사를 통해 수천 년 쌓인 묵은 원들이 서서히 풀리게 된다. 상제께서 소외된 단주의 원에 관심을 둔 것도 인존과 해원의 시작일 수 있다.

단주의 해원은 오선위기(五仙圍碁) 공사를 통해 대운이 열려 풀리게 된다.103) 바둑은 아버지인 요가 창작하여 아들에게 가르친 것이다. 풍수지리에서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는 형상인 오선위기형(五仙圍碁形)은 부모산 중의 부(父)의 산인 회문산(回文山)에 있다. 이것은 단주를 시조로 하는 바둑이란 매개물을 통해 부자(父子)를 재회하게 함으로써 부자간에 화해를 이끌어내는 공사로 보인다. 단주가 ‘천지 부모’인 상제로부터 명을 받은 것[丹朱受命]104)은 아버지의 인정을 받았다는 상징이 된다. 이로써 단주의 원이 풀릴 뿐만 아니라 자식 교육을 잘못하여 자신을 닮지 않은 불초(不肖)한 아들을 두었다는 것과 아들에게 원을 맺는 상황을 제공하여 마음이 불편했던 성인 요의 오점(汚點)도 완전히 소멸된다. 단주도 인정받아 떳떳이 자기 가치실현을 함과 동시에 요도 아버지와 성인이라는 이름값을 온전히 하게 된다. 이것은 가정에서부터 사회에 이르기까지 자기 위치에서 한 존재로서 존중받아 상호간 막힘[冤]을 풀어 본성을 회복함으로써 결국 인간 각자가 자신의 가치실현을 다한다는 상징을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해원공사를 통해 사회의 최소 기본관계인 부자관계의 원이 해소됨에 따라 대운이 열려 풀리게 되는 것이다[家和萬事成].

원의 실마리가 풀리면서 점차 만고에 쌓였던 모든 원울(冤鬱)이 해소되고 모든 존재가 상생의 삶을 살도록 하는 원리가 ‘해원상생’이다. 이처럼 요임금에 얽힌 스토리는 대순사상의 핵심진리인 해원상생의 역사적 배경이 된다.

한편 순에 대한 대순사상의 관점은 더욱 독특하다.

세상에서 우순(虞舜)을 대효라 일렀으되 그 부친 고수(瞽瞍)의 이름을 벗기지 못하였으니 어찌 한스럽지 아니하리오.105)

세상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순은 대효라 불리지만 한을 남기고 있다. 그 이유는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선명하듯 자신이 대효라고 불리어 천자가 된 배경엔 아버지 고수가 있기 때문이다. 순은 자신을 죽이려는 악독한 부모에게도 효를 다했는데 오히려 이것이 심성 고운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는 장님이라는 뜻으로 아버지가 ‘고수’라 명명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 ‘고(瞽)’나 ‘수(瞍)’ 모두 맹인(盲人)이란 의미이다. 고수는 순을 미워하고 후처와 그 자식을 편애해 늘 순을 죽이려고 했을 정도이다.

사실 아무리 장님이라도 이름난 효자이자 천자의 아버지를 고수라고 함부로 부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로 볼 때 순이 한을 맺은 것은 아버지가 맹인도 아닌데 자기 자신 때문에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을 한 셈이 되어버린 것이다. 평생 부모를 사모하고 인정받고자 노력했던 순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이 대효로 이름나고 천자가 된 것이 오히려 아버지에게 ‘고수’라는 오명(汚名)을 씌워 역사에 길이 남게 한 것에 대해 한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순과 같은 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새로운 효의 실천방법이 요청된다. 이 지점에서 대순사상은 선천의 효 윤리의 한계를 지적하고 어떠한 원한도 발생하지 않을 해원상생적 효 윤리를 제시한다.106) 해원상생의 효 윤리는 자식뿐만 아니라 부모의 도리도 동시에 강조하고 더 근본적인 천지 부모에게까지 효를 행하여 은혜를 갚아야 함을 요청한다. 이것이 대순사상적 대효라 할 수 있다.107) 그래서 부모 또한 한 인간으로 생과 수명과 복록을 준 천지 부모에 대한 효를 행하기 위해서 실천수행이 요구된다. 인간과 만물을 마냥 길러주던 천지가 이제 사람을 쓰고자 하는 시대에 이르렀고,108) 거기에 참여하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도리가 된다. 이제 인간은 그 천지공정에 참여해서 도통을 함으로써 천지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道通天地報恩]109) 여기에서 더 이상 원이 발생하지 않는 효가 가능하게 된다.

요약하면 요순의 왕위선양과정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순 역시 효를 다하지 못한 원을 가지고 있다. 대순사상에 있어서 요순은 원의 고대적 근거를 품고 있는 대표적 상징 인물이다. 원의 뿌리가 된 요순에 관한 역사는 천지공사를 통해 그 근본적인 원한을 해소하게 된다. 요순은 이러한 대순사상의 해원상생 진리의 역사적 배경이 되고 있다.

Ⅳ. 맺음말

원시반본으로 제시된 대순사상에 나타난 요순의 상징적 의미는 과거와 차이가 있다. 대순사상에서 성ㆍ웅이 겸비된 상태는 인간의 한계가 초월되어 위무와 형벌을 쓰지 않고 조화로써 법리에 맞게 다스리는 모습이며, 그 이상세계는 천지도수가 바뀌어 천재지변이 없고 선으로써 먹고 사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일시적이지 않고 영원히 지속가능한 선경이 된다. 요순처럼 심법을 말하되 그 심법은 상제에 의해 직접 제시된 ‘상생의 도’를 성ㆍ경ㆍ신을 다하여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요순의 왕위선양과정에서 근원적 욕구 불충족으로 인해 발생한 소외된 단주의 원한은 상제에 의해 원의 대표적 상징으로 선택되어 대순사상의 핵심진리인 해원상생의 역사적 배경이 되고, 요순과 관련된 원한은 해원상생의 진리를 통해 근본적인 원한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사랑받고 존중받고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들이다. 자기 자신이 요순 같은 사람이 되려고 자발적으로 노력하고 타자를 존재 자체로 존중해 줄 때, 그 열매로 진정 자신도 존중받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음과 동시에 타자까지도 가능하게 함을 인식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종교의 역할이 중대해진다. 종교의 목적은 교화(敎化)를 통해 이러한 표본 사례들을 사회적으로 확대하는 데 있다고 본다. 이러한 연구논문도 그 일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세상을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이 먼저 각성하여 지성(至誠)을 다하여 요순 같은 표본이 되도록 노력하는 일일 것이다. 비록 이러한 덕을 쌓은 사람들이 소수라 하더라도 그 영향력은 적지 않으리라고 본다. 21세기의 새로운 인간상과 사회상의 표본이 필요한 이때, 대순사상에 나타난 요순관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Footnotes

1. 서양은 장기간의 신화시대를 거쳐서 기원전 8~9세기가 되어서야 성숙한 인격이 나타났지만 중국에는 천 년이나 앞서서 성군들이 갑자기 나타나 이성적ㆍ윤리적 인간 세계가 형성되어 서양과 같은 전주기가 결핍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그리스의 호머(Homer)나 헤시오도스(Hesiods) 또는 인도의 베다(Vedas) 같은 작품이 없다. 김충열, 『중국철학사』 (서울: 예문서원, 1994), p.97.

2. 요순을 언급한 간접적인 연구들은 다소 있는 편이나 요순을 주제로 한 직접적인 연구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직접적인 연구를 살펴보면, 학위논문으로는 이유란의 「맹자의 요순관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0)가 있고, 학술논문으로는 금종우의 「요순의 정치와 정책원리에 관한 일고찰」 (『교육연구지』 2, 1964), 이승률의 「郭店楚簡 『唐虞之道』に見える:「愛親」と「孝」思想の特質」 (『한국철학논집』 11, 2002) 정도가 있다.

4. 참고로 『장자』 「도척」에는 요는 자애롭지 못하고[不慈], 순은 불효(不孝)라고 한다. 『장자』 내편, 한용득 역해 (서울: 홍신문화사, 1997), p.47.

8. 같은 책.

9. 같은 책, 「요전」 3, 4.

11. 『맹자』, 「이루장구」 하 19.

13. 같은 책.

14. 같은 책.

15. 이에 대해 맹자의 제자들이 문제 삼자, 맹자는 순이 부모에게 알렸다면 결혼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대변한다. 맹자에 의하면 결혼은 사람의 대륜(大倫)인데 부모께 고하여 결혼을 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인륜을 어기는 셈이 되고 그로 인해 부모를 원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맹자』, 「만장장구」 상 2.

17. 같은 책.

18. 『서경』, 권덕주 역해 (서울: 혜원출판사, 1995), p.44. 사마천은 순이 58세에 요가 죽고 61세에 천자에 즉위하여 39년만인 약 100세경에 창오의 들에서 죽은 것으로 기술한다. 사마천, 앞의 책, 「우순본기」, p.62.

19. 『중용』 30.

20. 『맹자』, 「이루장구」 상 2.

21. 같은 책, 「등문공장구」 상 1.

23. 같은 글, pp.12-20.

25. 같은 글, pp.66-71. 사료의 분석에 따르면 춘추시대가 시작되는 기원전 722년에서 464년까지 540회의 제후국 간 전쟁이 있었으며 130회의 제후국 내의 내전이 있었던 것으로 집계된다. LewisㆍMark, Sanctioned Violence in Early China (New York: SUNY Press, 1990), p.36. 같은 글, p.66, 재인용.

27. 권덕주 역해, 앞의 책, pp.15-16.

29. 같은 글, p.295.

30. 같은 글, p.313.

31. 강증산 상제께서는 선천의 묵은 하늘과 땅을 뜯어고치어 새로운 하늘과 땅을 여는 천지공사(天地公事)를 1901~1909년까지 9년간 행한 후 화천(化天)하였다고 한다. 대순진리회에서는 강증산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 줄여서 ‘구천상제(九天上帝)’로 신앙한다. 이하 ‘상제’로 표기한다.

32. 대순진리회 여주도장 포정문에 있는 창설유래에서 “오직 우리 성사(聖師)께서는…혹(或)은 율령(律令)으로 혹(或)은 법론(法論)으로 혹(或)은 풍유(諷諭)로 혹(或)은 암시(暗示)로써 연운(緣運)을 따라 허다(許多)한 방편(方便)으로 설유(說諭)하시어…”라고 한다. 상제께서는 연운을 따라 여러 가지 방편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대순진리회의 『전경』에는 역사적 사실과 상관없이 상징과 비유로 표현된 것이 많다.

33. 『전경』, 교운 2장 26절 ‘전교(傳敎)’, “傳囂頊嚳勛華禹 初統初會世世聖…禹後有湯湯後文 一會一聖應會期 中統由來世漸降 聖不道行但敎傳.”

34. 같은 책, 교법 3장 26절.

36. 같은 책, p.81.

37. 유교는 내외를 합쳐 파악하여 내성외왕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도덕과 정치의 일치 혹은 철학과 정치와의 합일이다. 정인재, 『양명학의 정신』 (서울: 세창, 2014), p.62.

39. 『전경』, 교운 1장 30절, “상제께서 요(堯)의 역상 일월성신 경수인시(曆像日月星辰敬授人時)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천지가 일월이 아니면 빈 껍데기요, 일월은 지인(知人)이 아니면 허영(虛影)이요, 당요(唐堯)가 일월의 법을 알아내어 백성에게 가르쳤으므로 하늘의 은혜와 땅의 이치가 비로소 인류에게 주어졌나니라」 하셨도다.”

40. 같은 책, 공사 2장 9절.

41. 권덕주 역해, 앞의 책, pp.31-33; 『전경』, 예시 31절, “상제께서 여러 종도들의 집에서 선기옥형 도수를 정하시니”. 순이 제위를 물려받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선기옥형을 살핀 것으로 볼 때, 상제의 선기옥형 도수 공사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설명가능하다고 본다.

49. 같은 책, 교운 1장 66절.

51. 같은 책, 「대우모」 2, p.50.

53. 『예기』, 「예운」.

55. 권덕주 역해, 앞의 책, 「요전」 1, p.20, 참조.

56. 같은 책, 「순전」 4, 5, pp.34-40.

57. 『전경』, 교법 2장 55절, “…이제 후천 중생으로 하여금 선으로써 먹고 살 도수를 짜 놓았도다.”

58. 같은 책, 예시 55절.

59. 같은 책, 교법 1장 63절.

60. 같은 책, 교법 2장 56절,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라.”

61. 같은 책, 교운 2장 33절.

62. 같은 책, 교운 2장 41절.

63. 같은 책, 예시 80절.

64. 같은 책, 예시 81절.

65. 같은 책, 교법 2장 26절.

66. 『논어』, 「요왈」 1.

68. 같은 책, 「서문」.

69. 『맹자』, 「이루장구」 상 12, “誠者 天之道也 思誠者 人之道也”

70. 이창일, 『소강절의 철학』 (서울: 심산, 2007), p.379; 『황극경세서』 관물외편, 2장 21절, “先天之學 心法也.”

73. 같은 책, 교운 2장 23절.

74. 같은 책, 교운 2장 6절.

75. 같은 책, 권지 1장 11절.

81. 『중용』, 「중용장구서」.

83. 『대순지침』, p.37, “수도는 인륜(人倫)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혀 나가는 일인데 이것을 어기면 도통을 받을 수 있겠는가.”

84. 『전경』, 예시 9절, “상제께서 오셔서 천지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에 쌓인 원한을 풀고 상생의 도를 세워…” 앞에서 인용한 교운 1장 16절에서도 “내가 이제 상생의 도로 화민정세(化民靖世)하리라.”고 하였으므로 새로 출현하는 도가 ‘상생의 도’를 지칭함을 알 수 있다.

85. 같은 책, 교운 2장 26절.

86. 『서경』, 「요전」 3. ‘은송(嚚訟)’은 어리석어 말에 진실성이 없고 논쟁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88. 정재서, 앞의 글, p.16.

90. 같은 책, pp.188-189.

92. 『사기본기』, 「우순본기」, p.52.

93. 『맹자』, 「만장장구」 상 5.

94. 정재서, 앞의 글, p.15.

97. 『맹자』, 「만장장구」 상 1.

98. 같은 책, 「만장장구」 상 4.

99. 매슬로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생리적ㆍ안전ㆍ소속감과 사랑ㆍ자기 존중ㆍ자아실현의 욕구 등의 5단계로 설명하면서 안전ㆍ소속ㆍ사랑ㆍ자존감에 대한 욕구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충족될 수 있다고 한다. 몇몇 병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지니는, 자신에 대해서 안정적이고 호의적인 평가를 받고 싶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중을 받고 싶은 욕구가 자기 존중의 욕구이다. 에이브러햄 매슬로, 『동기와 성격』, 오혜경 옮김 (파주: 북이십일, 2009), p.9, pp.84-97. 자존감의 욕구는 현대에 와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101. 같은 책, 공사 1장 32절. 『전경』에 ‘인존시대’는 한 번, ‘해원시대’는 아홉 번 나온다. 상제께서는 천지보다 인간을 최상위에 위치시키는 ‘인존’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인간존중시대가 열림을 선언한 것이다. 교법 2장 20절의 “때는 해원시대이므로 덕을 닦고 사람을 올바르게 대우하라.”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102. 같은 책, 공사 1장 3절 참조.

103. 같은 책, 공사 3장 6절, “…회문산에 二十四혈이 있고 그 중에 오선위기형(五仙圍碁形)이 있고 기변(碁變)은 당요(唐堯)가 창작하여 단주를 가르친 것이므로 단주의 해원은 오선위기로부터 대운이 열려 돌아날지니라.”

104. 같은 책, 공사 2장 9절. 지면상 대략 풀이하자면, 상제께서 동곡약방의 약장을 15간으로 하고, 그 가운데 간에 ‘丹朱受命’이라 쓰고 ‘목단피’를 넣은 것은 목단피(牧丹皮)로 단주의 가슴답답증을 치유하고 단주(丹朱)를 중앙 토(土)라는 왕의 자리에 위치시켜서 진리(15)에 따라 백성을 다스리도록[牧] 명(命)을 내린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105. 같은 책, 교운 1장 44절.

106. 차선근의 연구에서 대순진리회의 효 윤리는 인존을 바탕으로 부자간의 상생적 관계를 도모하며, 부모와 자식의 수행이 동시에 요구되고, 조상을 위한 향화와 수도를 하여 종교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포함한다. 이에 더하여 종교적 구원을 위한 필수 윤리라는 위상이 부여된다. 차선근, 「대순진리회의 효 윤리에 나타난 종교성 연구」, 『대순사상논총』 27 (2016), pp.170-200.

107. 『대순진리회 요람』 (여주: 대순진리회 교무부, 2010), p.20. 훈회(訓誨)에서 천지의 은혜가 가장 먼저 제시되고 있다.

109. 같은 책, 예시 88절; 『대순지침』, p.19, “포덕(布德)은…겸허와 지혜의 덕으로…보은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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