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마음은 철학사나 인간존재에 대한 규명에 있어 중요한 개념이다. 마음은 인간의 본성, 감정, 의식, 의지, 지각, 인식의 작용을 모두 아우르고 있는데, 이는 한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작용의 일체가 마음으로 상정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1) 마음에 대한 연구는 철학, 종교학, 뇌과학, 심리학 등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주제로, 연구의 역사와 폭이 매우 광범위하다. 본 논문에서는 주자(朱子, 1130~1200)의 관점을 통해 대순사상의 마음을 이해해보고자 한다. 많은 학문분야에 있어 주자학의 관점을 선택한 이유는 첫째, 조선건국 후 지식인의 의식구조에 잠재되어 있었던 사유는 주자학이었으며, 대순사상의 형성시기에 교리의 많은 부분에서 주자학의 용어가 방편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대순신앙에서 주자는 유교의 종장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증산(甑山 姜一淳, 1871~1909)이 주자의 학문을 일정부분 인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되기 때문이다. 셋째, 증산이 저술한 『현무경』의 허령부(虛靈符)ㆍ지각부(智覺符)ㆍ신명부(神明符)에 적혀있는 무이구곡(武夷九曲)2)은 주자와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3)
대순사상에 있어 마음에 관한 기존의 연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마음이 인간뿐만 아니라 천지만물의 중심ㆍ중추ㆍ본질이 된다는 본체론에 관한 연구이며, 둘째는 마음이 몸을 주관함을 강조하여 마음가짐과 행동을 바르게 할 것을 언급하는 수양론에 관한 연구이다. 이러한 연구들의 공통된 논지는 마음이란 일신(一身)을 주재하는 존재의 본질이며, 정신작용의 총체이자, 신(神)이 임하는 통로라는 점이다.4) 여기서 마음에 드나드는 신을 말할 때 기존연구에서는 이를 외재신(外在神)의 범주로만 이해하고 있다. 이는 동양전통의 신과 마음에 대한 이해와 차이를 드러내는 것인데, 도가나 유가 그리고 한의학에서의 마음과 관련된 신은 대부분 내재신(內在神)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내재신에 대한 담론은 정기신이나 혼백의 개념과 연관되어 설명되지만, 아쉽게도 대순사상에서 이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미한 실정이며,5) 기존의 연구가 내재신은 외면한 체, 마음과 외재신의 관계에 집중해 개념화되어 왔다.6) 그리하여 마음의 주체이며 일신을 주재하는 신명(神明)과 마음의 본체인 허령(虛靈)7)이 혼동되어 심령(心靈)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이 생성되었고, 허령을 대신하여 마음이 본체로 여겨지고, 신명을 대신하여 마음이 주체로 인식되어 심관(心觀)에 있어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논의로 이어지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마음이 본체이자 수양의 주체이며, 또한 수양의 대상이 되는 개념적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주자학의 허령ㆍ지각ㆍ신명은 마음의 체용(體用)과 주재를 잘 드러내고 있으며, 대순사상과 주자학의 관련성을 고려할 때, 허령ㆍ지각ㆍ신명에 대한 논의는 대순사상에서 마음에 관한 연구에 유용한 접근이 될 수 있다. 이에 본 논문은 대순사상에서 마음을 주자학에 비추어 체용을 허령과 지각으로 구분하고, 신명을 주체로서 살펴보고자 한다.
Ⅱ. 본체로서의 허령
주자학에서는 천지인의 삼재가 태극이라는 하나의 원리로 이뤄지며, 태극은 만물에 이르러서는 리(理)로, 사람에 이르러서는 성(性)으로 칭해진다. 이러한 삼재에 적용되는 공통된 원리가 있다는 주자의 세계관은 마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주자는 “하늘과 땅과 사람에 모두 같은 마음이 있는 것이며, 하늘 아래의 만물 또한 아무리 미세한 것이라도 모두 마음을 가지고 있다”8)고 하였고, “천지는 그 마음을 보편적으로 만물에 미치기 때문에 사람이 그것을 얻으면 사람의 마음이 되고, 사물이 그것을 얻으면 사물의 마음이 되며, 초목과 짐승이 그것을 얻으면 초목과 짐승의 마음이 되니, 단지 하나의 천지 마음일 뿐이다.”9)라고 언급 하였다. 즉, 사람 마음의 근원을 천지지심(天地之心)이라 밝힌 것으로, 이를 고려할 때, 사람의 마음을 논함에 있어 천지의 마음을 받아 이를 이룸을 인지해야 한다.
태극지리(太極之理)의 본질은 만물을 살리는 의지이며, 이를 마음의 활동으로 여긴다. 이는 생성의 의지로 생생(生生)하여 쉬지 않는 것이며,10) 이는 곧 일체를 살아있게 만드는 생물지심(生物之心)11)라 할 수 있다. 만물 안의 내재된 태극의 리는 만물의 보편적 리성(理性)12)이며, 태극지리에서 비롯된 천지지심은 일체 만물을 서로 다르지 않은 하나로 만드는 보편의 근원이다. 이러한 천지지심은 만물에 있어 자타 분별적인 현상적 마음이 아니라 자타 분별 이전의 심층의 마음인 것이다. 또한 일체가 하나로 통하는 마음은 텅 빈 허(虛)의 마음이며, 비어있으면서도 모든 이치를 담고 있으며, 삼재의 모든 마음을 관통하는 보편의 마음이다. 그리하여 천지지심은 령(靈)하기도 한데, 이는 비어있으되 신령하게 깨어서 활동함을 뜻한다.13) 이 허령한 마음은 깨어있어 어둡지 않은 마음을 말하며, 허령불매(虛靈不昧)하다고 표현된다.14)
천지지심인 이 허령(虛靈)은 인간에 있어 마음의 본체이다.15) 또한 허령불매는 곧 명덕(明德)이며,16) 허령불매의 마음활동을 미발지각(未發知覺)17)이라 한다. 미발은 생각이 싹트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데, 생각이 싹트지 않은 이때에도 주재하는 바가 있어 이 마음을 분발시켜 깨어있게 하는 것이 마음의 허령이며, 이 마음의 본체인 허령(허령성)은 감성이나 이성(사려)보다 더 깊은 심층 마음의 영성(靈性ㆍ虛靈性)이라고 할 수 있다.18)
기존에 대순사상의 연구에서는 허령을 본체로 한 마음의 체용론이 다루어지지 않았다. 배용덕ㆍ임영창은 유심론(唯心論)적 관점을 취하여 인간의 마음이 천지의 주인이 된다고 하였는데,19) 이는 증산사상연구의 초기 관점으로 대순사상의 마음에 대한 연구에서도 계속적으로 답습되고 있다. 이경원은 “심은 심체로서 우주의 본체가 된다.”20)라고 하여 심체와 양명학을 기반으로 대순사상에서의 본체를 마음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양명학의 관점21)은 주관유심론22)으로 아래 『전경』 구절에서 언급되는 천지의 마음을 사람의 마음으로 국한시켜 이해할 소지를 불러일으킨다.
천지의 중앙은 마음이다. 동서남북과 몸이 마음에 의존한다.23)
하늘이 비와 이슬을 내리는데 박하면 반드시 온 사방의 원한이 있게 되고, 땅이 물과 흙을 만드는데 박하면 반드시 만물의 원한이 있게 되며, 사람이 덕과 교화를 베푸는데 박하면 반드시 온갖 일에 원한이 있게 되니라. 하늘이 내리고 땅이 만들고 사람이 베푸는 데는 다 그것이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니라.24)
기존연구는 인간의 마음은 천지 중앙으로서 모든 우주 생명의 본질을 이룬다고 하였다. 전통적으로 언급되는 도(道), 리(理), 기(氣), 태극(太極) 등의 개념을 통한 본체론을 대신하여 대순사상에서는 마음을 본체로 상정하는 것이라 본 것이다.25) 그러나 대순사상에서 본체가 태극이라는 점26)과 「각도문」의 리가 심법을 정한다는 측면,27) 그리고 마음을 기관28)으로 여김을 볼 때 마음을 본체로 언급하는 기존연구는 재고의 여지가 있으며, 위 인용문에서 마음을 단지 인간의 마음으로 상정함도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대순사상의 마음을 주자학의 관점으로 볼 때, 천지지심은 보편의 마음이며 인간은 이 보편의 마음을 부여받은 것이다. 그리하여 천지의 중앙이자 중심은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천지의 마음이고, 이는 천지의 동서남북과 사람의 몸의 의존처(依存處)이자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즉, 천지의 마음을 품부 받은 마음의 허령을 본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용(用)의 측면에서는 천지지심인 인(仁)을 천지인 각각의 마음을 통해 잘 구현해야지 천지인에 원한이 생기지 않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위의 구절은 대순사상에 있어서도 마음은 인간뿐만이 아니라 천지만물에 부여된 공통된 체(體)를 언급한 것이며, 천지인의 체에 대한 용이 마음에 달려있음을 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천지 사이에 태어나 천지의 기를 품부 받으니, 그 체는 곧 천지의 체이고 그 심은 천지의 심이다.29) 인간은 천리를 부여받아 구체적인 현실태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개별적인 존재이며, 그 마음은 부여받은 천리를 간직하여 허령불매하다. 이 마음의 허령성이 허령이며, 사람에 있어 심령(心靈)이라 칭할 수 있다.
미발심체(未發心體)의 허령성은 곧 ‘인(仁)’이면서 동시에 ‘인의 마음’이다.30) 천에서 얻은 것은 단지 인 일 뿐이기에 인이 심의 전체이다. 이 인으로부터 넷으로 나누어 말하면 인의 인, 인의 의, 인의 예, 인의 지가 되며, 인은 사덕(四德, 인ㆍ의ㆍ예ㆍ지)을 겸비하여 아우른다.31) 인의 기운은 따뜻한 봄날의 기운이고 그 이치는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이다. 이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안배하지 않아도 저절로 처음부터 온전하게 유행하는 것이며, 사사로운 뜻에 의해 생긴 간격을 없애면 다른 사람과 자기가 하나이고 외물과 자기가 하나라는 것을 저절로 깨달아서 공정한 도가 자연히 유행하는 것과 같아진다고 하였다.32) 주자는 “인을 의ㆍ예ㆍ지와 상대하여 말한다면, 본체가 된다. 오로지 인만을 말한다면, 본체와 작용을 겸한다.”33) 하였는데, 이는 즉 천지지심인 인은 본연지성인 사덕을 총괄하여 그 기반이 되는 것으로, 허령의 인과 사덕의 인을 구별한 것이다.34) 이렇듯 주자의 마음은 천지지심으로 관통되고 있으며 이는 리성이자 영성이고, 생생의 마음이자 인의 마음이다.
주자는 “오직 마음은 텅 비어있고 밝아서 완전히 통하는 것이니, 앞의 성(性)과 뒤의 정(情)을 통괄해서 말하는 것이다. 성에 근거하여 고요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을 마음이라 할 수 있으며, 정에 근거하여 느껴서 통하는 것을 마음이라 할 수도 있다.”35)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텅 비어 밝아서 완전히 통하는 것은 마음에 허령을 뜻하며, 성과 정을 통괄하여 말함은 마음이 성과 정을 겸하고 있음을 말한 것인데, 이것이 심통성정(心統性情)이다.36) 이는 또한 미발심체의 마음활동의 바탕 위에서 비로소 성이 발해서 정으로 드러나게 됨을 말하기도 한다. 천지지심의 인은 미발심체(허령)의 덕이고, 사단의 인은 미발심체의 인으로부터 분화된 구체적 덕목 중의 하나이다. 허령은 발(發)37)하기 이전의 미발(未發)이고 ‘미발지각=허령성=인=인의 마음’이다. 본심이 발하고 난 뒤의 이발(已發)은 정으로, 측은지심은 인의 성이 발해서 생긴 이발의 감정이다.38)
무극은 하늘의 무극한 이치이며 하늘은 이치를 사람에게 주고 사람은 도를 하늘로부터 받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늘이 주시는 것을 느끼고 도를 받음을 믿으며, 믿음은 오로지 하늘에 대해서만 하고, 받드는 것은 오직 도로써 한다. 하늘로부터 부여된 인의예지신을 수행하여…몸가짐을 바로 하고 익혀 성(性)을 이룸으로써 지성(至誠)에 이르면 하늘은 반드시 감응하여 심령(心靈)이 저절로 통하게 된다. 심령이 통하면 무극한 이치에 통하고 하늘을 알게 된다. 하늘을 몸으로 하여 하늘과 그 덕을 합하고 천지와 참여하기에 이른다. (「무극도 취지」)39)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원리를 벗어나 그 수명이 존속되지 못하여 온 것은 만상의 생성 변화가 천리ㆍ지기ㆍ인사의 순환 섭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체는 장구하며 지구는 윤동(輪動)하고 인생은 내왕무상(來往無常)하다. 하지만 강유지리(剛柔之理)40)를 받아 행하는 인간에서 도가 밝혀진 까닭으로, 인생은 하늘로부터 받은 성리(性理)를 땅 위에서 바로 행한다. 이것이 수도요, 이제 수도하여 성도하는 성사재인(成事在人)의 인존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41)
대순사상의 천리는 무극, 태극, 리, 천도, 인의예지신, 성 등으로 주자학에서 다루어지는 범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순사상에 있어 인간사물은 천리 안에서 그 천리를 품부 받은 존재라고 언급되고 있으며, 사람은 “리로써 마음의 법을 정한다.”42)고 하였다. 그리하여 마음에 정한 성리를 땅위에서 올바로 드러내는 것이 인간의 가치를 온전히 실현하는 것이라 언급한다. 이렇게 천지지심을 품부 받고 이를 마음에 정하여 구현한다는 맥락은 주자학에서의 천지지심을 구현함과 이해를 같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천지지심은 인의 마음이며 생생의 마음이다. 하늘의 춘하추동은 가장 분명히 알 수 있으니, 봄에는 낳고 여름에는 기르고 가을에는 거두고 겨울에는 저장한다. 비록 네 계절로 나누어졌어도 끊임없이 낳는 뜻이 일찍이 관통되지 않은 적은 없으니, 설사 참혹하게 눈이 내리고 서리가 치더라도 역시 이것은 끊임없이 낳는 뜻이다.43) 이렇듯 천지인의 삼재는 원형이정이라는 순환 섭리 안에 있다. 특히 천지는 순환의 섭리를 차착이 없게 구현하고 있으며, 서리와 눈이 내리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주자는 이 또한 하늘의 생물지심이며, 인이라 하였다.44) 즉 인의 뜻을 가지고 오로지 인을 구현하려고 해도 천지는 순환에 의해 숙살(肅殺)하는 과정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대순사상에도 이러한 천지인의 순환 섭리를 언급한다. 하지만 특기할만한 것은, 천지인의 마음은 같은 근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이 하늘과 땅보다 크다고 언급한 점을 들 수 있다.45) 이 구절에 대한 정확한 의미는 밝힐 수 없으나, 인사의 도덕적 삶에 있어서의 천지지심의 구현은 천지보다 더 온전하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하나의 가능태이며, 선악을 뚜렷이 지각하여 온전히 인의를 구현하여 덕화를 후하게 하는 성인이나 인존(人尊)의 경지에 이른 이를 말한다. 이러할 때, 천지의 순환에 의한 인의 구현보다 인간의 인의 구현이 크다고 할 수 있으며, 인간의 마음이 천지의 마음보다 크다는 의미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천리의 구현이 사람을 통해 이루어져 도가 이루어진다는 성사와 성도를 인존시대의 도래를 통해 가능태가 아닌 실재로 이루어 질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Ⅲ. 작용으로서의 지각
마음은 기운이 모여 형체를 이루고 리와 기가 합해지면 지각할 수 있다.46) 품부된 리를 지각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외부 사물을 감각과 의식으로 지각하기도 하는데, 이는 심이 형이상적인 것을 지각하는 기능도 있고 형이하적인 것을 지각하는 기능도 있음을 말한다.47) 그중에서 리에 대한 지각은 “사람에게는 본래 명덕이 모두 갖추어져 있고, 덕 속에 인의예지가 있다. 다만 외물에 빠져 밝지 못하면 곧 묻혀버린다. 그래서 대학의 도는 반드시 먼저 이 명덕을 밝히는 것이다. 만약 배울 수 있다면, 이 명덕을 지각하여 항상 스스로를 보존할 수 있다.”48)라고 하여, 명덕을 지각하여 천리를 보존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기에 대한 지각은 “심은 사람의 지각이니 몸을 주재하고 사물에 응하는 것이다.”49), “그 손에 아픔을 주면 손이 아픔을 알고, 그 다리에 아픔을 주면 다리가 아픔을 안다.”50)고 하여 외부 사물을 대상으로서 감각하여 의식하는 기능을 말한다. 이는 곧 형이하적ㆍ감각적 기능에 속한다.51)
이렇게 리와 기의 측면에서 지각을 나눌 때, 지각된 것은 도심(道心)과 인심(人心)이다. 본질적인 리에 대해 지각된 것은 도심이고, 사물의 감각적인 속성에 대하여 지각된 것은 인심이다.52) 또한 지각이 의리를 따라가면 곧 도심이 되며, 귀나 눈의 욕구를 따라가면 인심이 된다.53) 마음의 지각은 하나일 뿐인데 인심과 도심의 차이가 있다고 한 것은 인심은 형기의 사사로움(私)에서 생기고 도심은 성명의 올바름에서 근원하여, 지각된 것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54) 또한 도심은 천지지심인 인의 마음을 지각한 것이며, 본성인 인의 이치를 자각하고 자기를 다스리는 공부의 경지가 지극한 상태를 공(公)이라고 한다.55) 이는 사사로움과 반대되는 것으로 사(私)가 마음속에 개입되지 않으면 공정하고, 공정하면 곧 인하게 되는 것이다.56) 즉, 공공의 도덕성은 인에 기반을 두어 확립되며 감성이나 이성보다 더 깊은 심층마음의 영성에서 비롯된다.57) 그리하여 공공의 도덕성은 인에 기반을 둔 도심에서, 사사로운 욕심은 인심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다. 이렇듯 리와 기를 지각한 마음의 도심과 인심은 마음에 있어 이발과 용(用)의 측면을 가리킨다.
대순사상에서 마음의 작용에 대한 논의는 주자학의 리ㆍ기의 지각과 그에 따른 도심ㆍ인심과 유사함을 볼 수 있다. 대순사상에서도 마음의 표현에는 양심과 사심이 있다고 하여, 마음이 작용하여 드러남(已發)을 천성으로부터의 양심과 물욕에 의하여 발동되는 사심으로 구분 짓고 있다.58) 즉, 양심은 형이상의 천성을 지각한 도심을 말하며, 사심은 형이하의 형기를 지각하는 인심을 말한다. 그리하여 본래 자신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성을 마음의 표준으로 삼고 양심을 속이지 않을 것을 지향하며, 이것이 곧 자신의 양심에 대한 정직이며 진실임을 밝히고 있다. 나아가 양심을 통해서 사물로부터 일어나는 물욕인 인심의 사사로움을 근절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지각에 있어 “사(私)는 인심이요 공(公)은 도심이니, 도심이 지극하면 사심은 일어나지 못하는데,”59) 마음의 온전한 본체는 담연하게 텅 비어 있고 밝아서 온갖 이치가 모두 갖추어져 있으며, 조금이라도 사사로운 욕망이 끼어들지 않기 때문이다.60) 지각의 능력에는 선악(善ㆍ不善)이 없으나 구체적 지각된 사유에는 선악이 있게 됨으로,61) 자신의 정신을 형기가 아닌 천성의 지각에 집중하여 양심의 주도하에 삶을 영위해야 하며, 대순사상에서 이러한 삶은 선으로서의 삶으로,62) 자연히 복이 따르게 된다고 언급되고 있다.63)
주자는 마음에 대하여 “심은 사람의 몸을 주재하는 것이고, 하나이면서 둘이 아니요, 주가 되지 객이 되지 않으며, 사물에 명령을 내리지 사물에게 명령을 받지 않는 것이다.”64)라고 하여 마음의 주된 성격이 주재함임을 말하였다. 사람에 있어 마음의 주재는 우선 신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65) 또한 “마음은 몸을 주재하는 것이고, 뜻은 마음이 드러난 것이며, 감정은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의지는 마음이 가는 곳인데, 감정과 뜻에 비해서 더욱 중요하다. 기운은 우리의 혈기(血氣)로서 몸에 충만한 것인데, 다른 것에 비해서 형기(形器)가 있기 때문에 비교적 거칠다.”라고 하여 감정과 의지 그리고 기운66)에 주재함을 말하였다. 여기서의 주재는 이치나 몸에 대한 지각에 기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며, 마음을 다잡아서 흐트러지지 않게 하고 내외를 주재하여 마음을 밝힘은 지각을 통한 주재로서 경(敬)이라 할 수 있다.67)
주자의 경에 대해 더 살펴보면, 경이란 일에 따라서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여 삼가고 두려워하며, 방일하지 아니하는 것이다.68) 그리하여 항상 몸과 마음을 수렴하여,69) 정신을 수습하고 지금 여기에서 마음을 오로지하고 한결같이 하는 것이다.70) 마음에는 아직 발동하지 않아 고요할 때가 있다. 이때의 미발의 본성을 지각함이 도심이고, 이를 존양(存養)하는 것이 경이다. 또한 마음에는 사물과 접하여 이미 발동하여 움직일 때가 있다. 이때 이발을 지각함은 인심인데, 이를 성찰하는 것이 또한 경이다. 나아가 몸가짐과 태도를 단정엄숙하게 하는 것도 경이다. 따라서 경은 내외, 동정, 미발과 이발을 두루 포괄하는 마음의 수양원리이자 실천 방법이다.71) 한편으로 “경이란 두려워함(畏)과 서로 유사하다. 몸과 마음을 수렴하여 외모를 단정히 하고 내심을 순수하고 한결같은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니, 방종하지 않는 것이 곧 경이다.”72) 그리하여 외천명(畏天命)이란, 예(禮)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말라는 것이며, 경계하고 삼가고 두려워함은 모두 천명을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이다.73) 이는 곧, 경이 하늘에 대한 외경심에서 저절로 드러나는 마음의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대순사상에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마음의 주재함이 언급된다. 말은 마음의 외침이고 행실은 마음의 자취이며,74) 마음은 일신을 주관하며 전체를 통솔 이용하나니, 그러므로 일신을 생각하고 염려하고 움직이고 가만히 있게 하는 것은 오직 마음에 있다.75) 그러므로 그 정신의 지각방향성에 따라 지각된 양심과 사심은 나아가 몸의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이다.76) 주재함의 핵심은 마음에 품부된 천리를 자각함에 있다. 천리는 곧 ‘마음의 허령(심령)’이다. 심령을 구하여 자각함은 그 천리의 기준에 항상 비추어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바로잡는 것이며, 천리에 부합된 인간상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순사상에서 우주대원(宇宙大元)의 진리는 사람만이 깨달아서 닦을 수 있는 것으로,77) 마음에 부여받은 태극의 리를 자각하여 마음의 법으로 삼아서, 천지지심인 인을 구현하는 삶을 살 것을 역설하고 있다.78)
대순사상에서 마음의 주재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양심과 사심을 구분해 양심으로 주재하도록 함이며, 다른 하나는 양심에 집중하여 오래도록 유지함이다. 이는 곧 마음의 경(敬)과 일심(一心)을 말한다.
심신(心神)의 동작을 받아 일신상 예의에 적중케 행려(行勵)함을 경(敬)이라 함79)
敬-(나) <83.10.26>, 사람은 누구나 마음을 먹는 대로 행동하게 되는데, 옳은 일도 마음에 두지 않으면 바로 행하지 못한다(有其心 則有之 無其心 則無之).” 하였으니, 도인들은 대월상제(對越上帝)의 영시(永侍)의 정신을 권권복응(拳拳服膺)하여야 한다.80)
敬天-(나) <83.10.26>, 도인들이 구천상제님의 대순진리의 봉교신앙(奉敎信仰)에 사려(邪慮)없는 경건일념(敬虔一念)을 다하는 마음이 경천이다.<83.10.26>81)
대순사상에서 심신의 동작을 받는다 함은 ‘마음의 신명(心神)’이 주재함을 말하며, 신명이 양심을 지각하고 이를 예로 드러냄을 경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경은 또한 경천으로 하늘에 대한 경을 말하는데, 이 하늘은 곧 대순진리회 신앙의 대상인 구천상제를 뜻한다. 마음의 허령인 태극지리와 천지지심은 곧 상제의 이치와 마음이자 이를 주재하는 영성이므로, 상제를 모시는 정신을 늘 마음에 간직하는 것은 경과 일심을 의미하며, 하늘에서 부여받은 천성과 천지지심을 구현하겠다는 것이 된다. 이렇게 하여 나의 마음이 밝아지고 닦여져서 종교적 목적인 도통에 이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82)
마음을 다스리는 측면에 있어서도 지각과 경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을 통한 천성에 대한 지각의 상태가 일심으로 오래됨은 마음이 편안한 상태인 안심(安心)으로 여길 수 있다. 안심은 『대순진리회요람』에 “사람의 행동 기능을 주관함은 마음이니 편벽됨이 없고 사사됨이 없이 진실하고 순결한 본연의 양심으로 돌아가서 허무한 남의 꾀임에 움직이지 말고 당치 않는 허욕에 정신과 마음을 팔리지 말고 기대하는 바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항상 마음을 안정케 한다.”83)라고 언급되어 있다. 여기서 주재함(主管)이 마음에 있다는 말은 마음의 신명이 양심으로 지각함을 말하는데, 이는 편벽됨이 없고, 사사됨이 없고, 진실하며, 순결한 본연의 마음을 말한다. 또한 양심으로 지각한 경의 상태는 남의 꾀임이나 허욕을 따라 함부로 움직이지 않으므로 마음이 안정됨을 말한다. 그리하여 마음이 안정되고 차분해진 상태는 몸의 안정에 이르게 되며, 이러한 안심안신(安心安身)은 곧 대병의 약84)이 됨을 언급한다.85)
Ⅳ. 주체로서의 신명
주자의 정(精)ㆍ기(氣)ㆍ신(神)에 대해서 살펴보면, 우선 사물에 정ㆍ기가 있는 것에는 바로 혼(魂)ㆍ백(魄)이 있다고 하였다.86) 정은 사물의 형(形)과 체(體)이다. 사물은 형체를 위주하고 기를 기다려 생하게 된다.87) 체와 백은 곱고 거친 정도가 뚜렷하여 확연히 구별되지만 혼과 기는 그 차이가 미세하다.88) 백은 정기이고, 기와 교감할 때 곧 신이 있게 된다. 혼은 발양되어 나오는 것이며, 백이 있으면 곧 신이 있는데, 바깥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백은 정이고, 혼은 기이다. 사람의 경우는 마음이 곧 신에 해당하며 이른바 “형체가 이미 생겨나면, 신이 지각을 드러낸다.”89)고 말하는 것이 이 뜻이다.90) 혼은 양기이고 기를 주재하며, 백은 음기이고 형을 주재한다. 형기를 주재함은 신을 말한 것이다.91)
주자의 정기신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면, 정은 사물의 형체를 이루는 것으로 기와 더불어 사물을 생하게 한다. 정으로부터 백이 있게 되고, 혼은 기로부터 발양되는데, 백이 기와 교감하는 과정 중에 신이 있게 된다. 이 신은 정ㆍ백ㆍ혼보다 맑고 고운 기로서 정과 기를 주재한다. 또한 신은 마음에 있어 지각의 작용을 일으키는 주체라고 볼 수 있다.
사물로부터의 정이 혼백을 강하게 만들고 맑은 정기는 신명에 이르게 된다.92)
問 : “이미 신이 이 몸을 주관한다면, 심은 또 어디에 있습니까?”, 朱子曰 : “신은 바로 심 중에서 지극히 묘한 것이지만, 기 속에 섞여 있는 것으로 말하면 역시 기 뿐이다. 신은 또 기 중의 정밀히 묘한 것이지만, 기를 만나서 다시 거칠어진 것이다. 정도 거칠고 형도 거칠다. 혼이니 백이니 하는 것은 다 거친 것을 말한 것이다.”93)
問 : “心의 神明은 여러 理를 妙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합니까?”, 朱子曰 : “神은 이렇게 精彩가 나고, 明은 이렇게 光明하다는 것이다.”라고 답하였다. 또 말하기를, “心은 일이 없을 때는 도무지 보이지 않으나, 사물을 응접할 때는 바로 그 속에 있다가, 일이 끝나면 또 보이지 않으니, 이렇게 신출귀몰한다.”94)
나라는 존재는 정기신을 몸으로 삼고, 천지의 허령한 본성을 품부 받은 존재이다. “천지에 가득 찬 것을 나의 몸으로 삼고, 천지가 거느린 것을 나의 본성으로 삼는다.”95)고 하였으므로, 천지만물은 태극의 리와 더불어 천지의 기운을 받아 생성된 것이다. 천지에 가득 찬 것은 음양의 기이며, 정ㆍ형과 혼ㆍ백 그리고 신은 모두 기에 속하지만 청탁에 의해 구분된다. 기의 측면에서 볼 때, 마음은 정신혼백으로 구성된 정상(精爽)96)한 기라고 볼 수 있다.97) 이러한 마음은 정신혼백을 유기적으로 통일시켜 작용케 한다. 그중에 신은 마음속에 가장 맑고 정묘한 기로서, 이는 혼ㆍ백ㆍ정의 기보다 형이상이지만 허령한 본체와 비교 할 때는 자취가 있는 것으로 형이하에 속하는 것이다.98)
마음에서 정신혼백이 유기적으로 작용할 때 신명한 모습을 띠고 허령한 능력을 드러낸다.99) 정상과 신명은 마음의 두 측면을 말한 것으로, 정상은 심의 기가 갖는 물리적 특성으로서 다른 기와 구별되는 차이점을 말한 것이고, 신명은 정상한 마음의 기가 갖는 표현적인 특징을 말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정상은 심의 기, 즉 심을 이루는 소재 자체가 갖는 내면적 특징이며, 신명은 그 기의 기상ㆍ형상이 갖는 외면적 특징이다.100) 여기서의 신명의 외면적 특징은 바로 주체로 일신을 주재함을 말한다.
이러한 주자의 정기신과 대순사상을 비교해보면, 먼저 기운의 측면에 있어 사람은 천지가 낳은 것이고, 또한 천지의 기운을 받음을 언급하고 있다.101) 몸에 있어서는 오장(肝, 心, 肺, 腎, 脾)의 오기(木, 火, 金, 水, 土)가 순환하여 온 몸의 관절을 이루며 그 기가 전신의 맥을 따라 관통함을 언급하는데,102) 이는 사람의 몸이란 천지의 기를 받아 이룸을 말한 것이다. 또한 정ㆍ기로 유래된 혼ㆍ백의 존재를 밝힘과 사후에 혼은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는 언급103)은 주자의 혼백에 관한 이야기와 유사하다. 특히 마음과 신의 관계에 있어 신이 용사할 수 있는 기관을 마음이라고 하였다. 주자가 마음의 ‘신이 형기를 주재한다’함은 대순사상에 있어 ‘마음이 일신을 주관하여 만기를 통솔한다.’104)는 것과 유사하다. 또한 주자의 ‘신명은 마음을 집으로 삼아 오르내린다.’105)는 언급과 대순사상에서 “사람의 마음은 신106)의 중요한 용사기관이요, 신이 출입하는 문이며 왕래하는 길이다.”107)라는 구절은 신과 마음에 관한 이해가 상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주자는 사람의 정신혼백이 마음과 관련이 있어, 외부사물과 접촉하여 반응하는 신체적인 감각과 내부의 정신적 사려와 지각활동이 신의 작용과 연관됨을 말한다. 이는 마음의 신명을 말할 때 내부의 기적(氣的) 작용으로 언급한 것이다. 이에 반하여 대순사상의 마음과 신명에 있어 내재적 정신혼백의 작용과 더불어 외재신의 감응(感應)을 말하며,108) 나아가 외재신의 출입으로 인한 체질이나 성격의 변화를 언급함으로서 차이를 보인다.109) 그리하여 대순사상에서 신명에 관한 언급은 내재신과 외재신을 같이 고려해야한다.
『주역』에서 성인은 덕을 바탕으로 신을 드러내고 있으며,110) 이를 신묘하게 밝힌다고 하여 신명이라 이름 하였다.111) 주자는 『주역』에서의 신명 개념을 마음에 안배시켰다. 마음은 사람의 신명이니, 모든 리(理)를 갖추고 있고 만사에 응한다. 성(性)은 마음에 갖추어져 있는 리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 마음은 전체 아님이 없으나 리를 궁구하지 않으면 가리워진 바가 있어 이 심의 기량을 다하지 못한다.112) 일반적으로 마음이 일신의 주인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형기를 주재하며 지각의 주체가 되는 마음의 신명이 주인인 것이다. 이에 마음의 본 기량을 다한다고 함은, 신명이 마음의 본체인 허령을 지각하여 그 천지지심을 온전히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본성은 마음이 가지고 있는 리이며, 마음은 리가 모이는 곳이다.113)
마음은 본성을 본체로 삼으니, 마음이 리를 갖추고 있는 까닭은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114)
깨닫는 것은 ‘마음의 리’(허령)이고, 깨달을 수 있는 것은 ‘기의 영’(신명)이다.115)
천지지심인 리는 사람에 있어 마음의 본체와 본성이 된다. 이 리를 궁구하여 밝고 맑게 하여 마음의 기량을 다해야하는데, 이때 리를 궁구하며 깨달을 수 있는 주체는 마음의 신명이다. 주자학에서 신이 태극의 리를 구현함을 신화(神化)라고 하는데,116) 신화의 신은 개개의 사물들을 이루는 기를 통합하여 그 사물을 유지시키며 나아가 그 안에서 리를 발현하게 한다.117) 이는 사람의 신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만물에 깃든 신이 각각의 리를 구현하듯이, 사람의 신명도 마음의 주체로서 마음의 본체인 허령(太極之理)을 발현시키는 것이다.
조선의 주자학자인 퇴계(退溪 李滉, 1501~1570)는 심학도(心學圖)의 허령ㆍ지각ㆍ신명에서의 신명은 모든 이치를 갖추고 있는 마음의 본체와 모든 사물에 대응하는 마음의 작용을 통합한 전체를 가르친다고 보았다. “신은 리가 기를 타고 출입하는 것”이라는 주자의 정의에 따라, 신명도 리와 기의 통합이요 기로 만 볼 수 없음을 말하였다. 또한 그는 “하늘에 있는 신과 인간에 있는 신과 제사의 신, 세 가지는 비록 다르지만 그 신이 되는 까닭은 같다.”고 하여 신의 다양한 양상에 차이가 있지만 그 근거는 동일한 것이라 파악함으로써, 마음과 하늘이 같은 신명을 지니는 것으로 확인하고 있다.118) 퇴계는 하늘에 있는 외재신과 내안의 내재신은 양상의 차이가 있지만, 그 근원에서 같다고 한 것이며 신화의 기능과 작용에 대한 속성이 같음을 말한 것이다.
마음의 신명은 형이상의 본체와 형이하의 사물에 각각 대응하여 그것을 총합하고 인지하고 반응하는 사람의 주체인 것이다. 신명의 역할은 천지에서 부여한 마음의 허령을 지각하고, 근원이 같은 하늘의 신명과 땅의 신명과 더불어 소통한다. 태극지리에 비롯한 천지지심이 개체에 분할되고 이를 각자의 마음으로 삼은 것을 심령이므로, 자신의 신명이 마음의 허령을 구하여 통할 때 자신의 이성에 머무르지 않고 자타분별 이전의 천지지심에 관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순사상의 신명과 심령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심신이 맑아지면 통한다. 통한다는 것은 자연의 진리에 통한다는 것이고, 곡진이해(曲盡理解)에 무소불능(無所不能)한 것이다. 영이 바로 신이니까 밝아지면 통한다. 개안(開眼) 공부는 눈을 연다는 것이다, 정신이 통일되면 영이 맑아진다. 정신통일이란 다른 게 아니다.…정신이 신명인데 이게 통일된다.119)
도가 곧 나요, 내가 곧 도라는 경지에서 심령을 통일하여 만화도제에 이바지할지니120)
도즉아 아즉도의 경지를 정각하고 일단 활연관통하면 삼계를 투명하고 삼라만상의 곡진이해에 무소불능하나니 이것이 영통이며 도통인 것이다.121)
위의 인용문에는 영, 신, 정신, 신명 등에 대해 언급되고 있다. 먼저 통한다는 것을 살펴보면 그 목적어를 자연의 진리라고 하여 영이 통하는 것은 진리에 통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에 “정신이 신명이다.”함은 정기신의 가장 정상한 기가 마음의 신명임을 말함이고, 이를 통해 “영이 맑아진다.”함은 정신혼백을 통일하여 마음의 허령을 지각하면 인욕의 삿됨이 물러나 본연의 허령이 맑게 드러남을 말한다.
“영이 바로 신이니까 밝아지면 통한다.”는 구절에서 영은 천지지심을 품부 받은 하늘과 인간의 교집합이므로 두 가지 방향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영을 순수 결정체로서의 자기 자신을 뜻하는 원신(元神)으로 여기는 것이다.122) 원신은 태극지리와 천지지심이 분화되어 개별화된 자신의 본바탕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원신은 내 안에 있어 자연의 진리와 가장 가까운 속성을 지닌다. 이는 내재신이 진리에 지극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내재신이 진리를 온전히 드러낸 것을 영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내재신 중심의 해석이다. 두 번째는 내재신이 아니라 진리를 주관하는 외재신을 말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이때의 신은 천지지심을 구현하는 신을 말한다. 영을 허령인 진리로 보고, 진리에 통하는 것이 곧 그 진리를 주재하는 외재신과 통하는 것이라 여길 수 있다. 이는 내재적 정신(신명)이 통일되고 밝아지면, 영(진리)에 통하고, 이는 곧 외재신과 통함을 언급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진리의 구현에 대한 외재신과의 소통을 강조한 해석이다.
두 가지 해석의 공통점은 신은 영(진리)과 불가분의 관계로 리가 있으면 곧 이를 구현하는 신의 주재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재적 정신이란 천지의 기에서 유래된 나의 정신혼백을 말하며, 외재신이란 내안에 품부된 태극지리와 천지지심과 연관된다. 이에 ‘도가 곧 나’임을 깨닫는다는 경지는 태극지리인 허령을 깨닫는다는 말이며, 심령을 통일함은 마음의 신명이 허령을 자각하여 구함을 말한다. 이는 곧 내 마음의 허령과 통한 ‘영통’이며, 나아가 상제를 모신다는 나의 정신이 마음의 영과 통한다는 것과 연관되고 있으므로, 천지지심인 허령을 통한다는 것은 나의 신명이 천지의 신명들과 나아가 태극을 주재하는 상제와 소통함을 의미하는데, 이를 태극지리에 완전히 통한 ‘도통’이라 볼 수 있다.
Ⅴ. 결론
퇴계는 『심경(心經)』을 신명처럼 믿었고, 엄한 아버지처럼 공경하였다고 하였다. 『심경』에 주석을 단 『심경부주』에는 특별한 그림하나가 있는데, 이것은 『심경』의 전체 구상을 한 장으로 요약한 심학도(心學圖)이다. 퇴계는 이 심학도를 자신의 『성학십도』를 지을 때 전부를 채택하였다. 이러한 계기로 『심경』은 중국과는 달리 한국의 주자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저서로 분류되었다.123)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심학도에 나오는 허령ㆍ지각ㆍ신명이다. 기존의 주자의 마음에 관한 수많은 언급 가운데서 마음의 핵심을 이 셋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리하여 심학도의 도식에서는 心이라는 원 안에 허령ㆍ지각ㆍ신명을 두어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에 대순사상의 『현무경』의 허령부ㆍ지각부ㆍ신명부의 허령ㆍ지각ㆍ신명에 대한 구분은 조선 주자학의 심학도와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적 유사성에 비하여, 대순사상에서 마음에 관한 기존의 연구는 유심론이나 양명학의 입장을 위주로 하여 인간의 마음을 본체로 그 자체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였다. 또한 마음에 드나드는 신을 외재신에 국한시켜 이해하였다. 하지만 대순사상의 본체가 태극이라는 점과 「각도문」의 리가 심법을 정한다는 측면, 그리고 마음을 기관으로 여김은 마음이 곧 본체라는 입장과 상반된다. 또한 나의 혼백과 정신 그리고 정기신이 언급됨에 있어 내재신을 언급하지 않음은 기존의 연구에 대한 한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마음에 체용에 관한 구분이 이루어지지 않음에 따라, 마음이 본체이자 수양의 주체이며, 또한 수양의 대상이 되는 개념적 혼란이 가중되어 왔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본 논문에서는 본체로서의 허령, 작용으로서의 지각, 주체로서의 신명으로 나누어 마음의 체용과 주재에 대해 언급하였다. 허령은 태극지리가 개인에게 품부된 것으로, 이는 하늘에 있어서는 명령이고, 사람에 있어 본성이며, 마음에 있어 본체로서 허령불매하다. 이 마음의 허령은 곧 심령이라고도 한다. 지각은 마음의 작용으로, 지각되는 것은 허령(리)과 사물(기)이다. 허령인 태극지리를 지각하는 마음은 양심으로 천성인 도심을 말하며, 사물과 접하여 생기는 마음은 사심인 인심을 말한다. 이렇게 지각하는 방향성에 의해 마음의 상태가 결정되는데, 경을 통해 천리를 지각하고 마음을 안심의 상태에 이를 것을 언급하고 있다. 신명은 형이상의 본체(허령)와 형이하의 사물에 각각 대응하여 그것을 총합하고 인지하고 반응하는 사람의 주체로 지각을 주재한다. 마음은 신이 드나드는 길이라고 할 때, 사람의 마음은 정신혼백이 외부사물과 접촉하여 반응하는 신체적인 감각과 내부의 정신적 사려와 지각활동이 총합되는 내재신의 용사기관을 말한다. 또한 마음에는 외재신이 감응하여 출입하기도 하며, 이로 인한 체질이나 성격의 변화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를 통해 대순사상의 마음에 관하여 강조하고자 한 것은 첫째, 기존의 유심론적 관점을 탈피하여 주자학의 허령ㆍ지각ㆍ신명으로 조망 할 것을 언급하였다. 둘째, 천지에서 품부 받은 허령을 체로하고 지각을 용으로 보아 마음의 체용을 밝히고자 하였다. 셋째, 정기신과 혼백에 대한 내재신의 개념을 언급하고, 주체로서 신명의 주재함을 언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