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연구논문

동학교 ‘도로 선천(先天)’사상의 내용과 의의

김탁1,*
Tak Kim1,*
1한국학대학원 박사
1Ph.D.,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 Copyright 2024,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Jan 24, 2024 ; Revised: Mar 13, 2024 ; Accepted: Mar 25, 2024

Published Online: Mar 31, 2024

국문요약

동학교는 김주희가 세운 동학계 신종교단이다. 동학교가사에 나타난 사상의 요체는 용어의 빈도수와 읊어진 구절의 내용을 고려하여 ‘도로 선천(先天)’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동학의 시운관(時運觀)이 ‘다시 개벽(開闢)’사상이라면, 동학교의 시운관은 ‘도로 선천(先天)’사상이다. 동학교에서는 선천이라는 용어를 특히 강조했고, 역학(易學)을 활용하여 노래했으며, ‘음양의 마주 봄’으로 개벽의 상황을 읊었다. 동학교에서는 후천의 운수마저 다한 다음에야 비로소 ‘도로 선천’이 이루어지리라고 강조한다. 이 ‘도로 선천’의 운수가 회복되면 목덕(木德)으로 상징되는 ‘봄<춘(春)>’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노래한다. 동학교에서는 새로운 운수(運數)의 전개를 ‘역(易)의 회복’으로 설명한다. 새로운 질서와 규범이 전개될 새 세상을 ‘도로 선천’으로 부르는데, 이때가 되면 ‘도덕세계’가 이루어져 도덕 문명이 전개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도로 선천’을 회복하는 운수가 바로 천도(天道)가 회복되는 일과 같다고도 노래한다. ‘도로 선천’사상의 특성은 첫째, 복고적 체계를 지향한다. 둘째, 과거지향적 사상이다. 셋째, ‘도로’는 ‘근원으로 돌아가자.’, ‘근본을 회복하자.’라는 실제의 행동을 유발하고 권유하는 생각이다. 동학교의 ‘도로 선천’사상은 당대의 여러 신종교와는 다르게 선천(先天)에 대해 독창적인 관념과 인식을 부여했으며, 새로운 해석의 틀을 제시했다. 선천을 폐기해야만 할 낡은 시대로 규정했던 일에서 벗어나 지향해야 할 새 시대로 이해했다. 따라서 동학교의 ‘도로 선천’사상은 동양 전통의 과거로의 회귀와 복귀를 추구하던 일을 계승한 사상의 하나로 재평가되어야 하겠다. 하지만 ‘도로 선천’사상에 구체적 방법론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은 단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그리고 동학교의 ‘도로 선천’사상에는 윤리의식이나 도덕적 덕목이 부족하며, 정작 선천(先天)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따라서 동학교의 ‘도로 선천’사상은 선언적 구호에 그친 감이 있다.

Abstract

Donghak-gyo, the Teaching of Eastern Learning, is a new religious order founded by Kim Ju-hee, centered around the Donghak (Eastern Learning) lineage. The core thought conveyed in the lyrics of Donghak-gyo songs (gasa) can be identified as the concept of ‘Return to the Former World (先天),’ considering the frequency of the term and the content of the recited verses. The view of time and destiny (時運觀) held by Eastern Learning emphasizes the concept of ‘Another Great Opening.’ Donghak-gyo’s perspective on time and destiny is further rooted in the concept of ‘Return to the Former World.’ Donghak-gyo particularly emphasizes the term ‘Former World,’ and incorporates the Study of Changes (易學) into their songs. They recite verses that depict the situation of the Great Opening as an interaction between yin and yang.

In Donghak-gyo, it is emphatically asserted that the completion of the Later World’s destiny leads to the achievement of the ‘Return to the Former World.’ It is sung that with the restoration of destiny associated with the ‘Return to the Former World,’ the symbolic ‘Spring (春)’ represented by the virtue of Wood (木德) will return. Donghak-gyo describes the unfolding of a new cycle of destiny (運數) as the ‘restoration of Changes (易).’ When this occurs, they refer to the emerging new world, characterized by a new order and norms, as the ‘Return to the Former World,’ asserting that a ‘moral world’ will be established, leading to the development of a moral civilization.

It is also sung that the restoration of the destiny associated with the Return to the Former World is akin to the restoration of the Heavenly Dao (天道). The characteristics of the concept of the Return to the Former World are threefold: firstly, it advocates a nostalgic system; secondly, it is a backward-looking thought; and thirdly, the idea of ‘cyclical repetition’ encourages tangible actions such as ‘returning to the origin’ or ‘restoring fundamentals.’ The concept of Return to the Former World in Donghak-gyo, unlike many new religions of those days, provided a unique conceptualization and understanding of the Former World and presented a new framework for interpretation. It moved away from the notion of discarding the Former World as a relic of an outdated era, and instead interpreted it as a new era to be embraced. Therefore, the concept of ‘Return to the Former World’ in Donghak-gyo should be re-assessed as one of the ideologies that inherits the pursuit of returning to and restoring the past in Eastern traditions. However, it can be criticized for lacking a concrete methodology with regards to the ‘Return to the Former World.’ Additionally, it is noted for deficiencies in ethical consciousness and moral virtues. Furthermore, its explanation about the Former World come across as insufficient. Thus, the concept of the ‘Return to the Former World’ in Donghak-gyo seems to be characterized more by declarative slogans than substantive content.

Keywords: 동학교; ‘도로 선천(先天)’; ‘봄<춘(春)>’이 다시 돌아올 것; 복고적 체계; 실천을 권유; 과거로의 회귀와 복귀
Keywords: The Teaching of Eastern Learning; the Return to the Former World; the return of ‘Spring (春)’; nostalgic systems; encouragement of tangible actions; returning to and restoring the past

Ⅰ. 머리말

동학교(東學敎)는 북접도주(北接道主)였던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 1827~1898)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남접(南接) 동학(東學)을 자처하며1) 삼풍(三豊) 김주희(金周熙, 1860~1944)가2) 1910년에 김낙세(金洛世, 1869~1944)를 만나 동학교의 설립에 합의하였고,3) 마침내 1915년 6월에 경북 상주군 은척면에 동학교당의 터를 닦았다. 이후 1919년에 전체 교당이 완성되었으며, 1922년 5월에 조선총독부로부터 인가받아 개교식을 거행하였다. 동학교는 1932년까지 경전 간행에 집중하며 포교에 힘썼는데, 후기 동학 교단으로4) 수많은 가사(歌辭) 자료를5) 남겨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6) 동학교의 경전으로는 『용담유사(龍潭遺辭)』 이 외에도 『궁을경(弓乙經)』, 『통운역대(通運歷代)』, 『도원경(道源經)』, 『도화경(道和經)』, 『교정경(敎正經)』, 『도정경(道正經)』, 『도수경(道修經)』, 『도성경(道誠經)』, 『축식(祝式)』 등이 전한다. 흔히 동학교 사상의 요체를 체천(體天), 선천회복(先天回復), 정교분리(政敎分離) 등이라고 일컫는다.7)

필자는 동학교가사에 나타난 사상의 요체를 용어의 빈도수와 읊어진 구절의 내용을 고려하여 ‘도로 선천(先天)’사상에 주목하여 그 내용과 특성, 그리고 의의에 대해 구명하고자 한다. ‘도로 선천’사상은 지금까지는 선천회복(先天回復)사상이라고 불려져왔다. 그러나 동학교가사에 나오는 원래 표현 그대로 ‘도로 선천’이라는 용어로 다시 이름해야 할 것이다. ‘도로’와 ‘회복’이 중복된 표현이지만 이 글에서는 동학의 ‘다시 개벽’사상과 대비되는 점을 강조하여 동학교의 특징을 ‘도로 선천’사상이라고 표현하고자 한다.

동학교의 선천회복(先天回復)사상에 대해 체계적인 접근을 처음으로 시도한 사람은 최원식이다.8) 그는 선천회복을 천도교(天道敎)의 후천개벽과 대비시킨다.

표 1. 천도교와 동학교의 사상 비교
구분 천도교 동학교
선천 인식 최제우 이전. 타락한 세상. 조화로운 세계
후천 인식 최제우 이후. 선천의 극복. 타락한 세계
역사관 진보사관 순환사관
다가올 세계에 대한 태도 인간 의지의 적극적 개입 중시 소극적 기다림 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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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표는 박병훈이 작성한 것이다.9) 최원식의 논지를 간명하게 정리하여 천도교와 동학교의 선후천에 대한 관념의 차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동학에서는 후천개벽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으며, 동학교에서도 선천회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도로 선천 회복’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동학에서는 ‘다시 개벽(開闢)’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동학교에서는 ‘도로 선천(先天)’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따름이다.

김상일은 동학교의 전기 동학가사의 후천개벽사상이 후기 동학가사에서 선천회복사상으로 변모되었으며, ‘운수’가 가장 강조되었다고 주장했다.10) 최종성은 선천회복사상에 대해 「지시명찰가(知時明察歌)」를 인용하여 복희씨, 석가여래, 야소(耶蘇)씨, 수운(水雲), 청림(靑林) 등의 성인(聖人)들이 선천과 후천의 교차를 이끌어가는 주체로 묘사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11)

한편 김기현은 상주 동학교의 하늘을 “인간 밖에 군림하는 절대자”, “경천(敬天)하지 않으면 징벌하는 무서운 존재”, “경심수도(敬心修道)하여 하늘 공경을 실천해야만 복락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존재”로 규정하고 수직적이고도 이원적인 절대적인 세계관을 보여줌으로써 조직과 정착을 마무리해 가는 기독교단의 세계관과 유사하다고 지적하였다.12)

그리고 최원식은 동학교에서 선천은 조화로운 세계이고, 후천은 타락한 세계이며, 순환사관에 따라 다가올 세계를 소극적으로 기다리는 일을 중시한다고 설명했다.13)

박병훈은 “동학교에서는 첫째, 잘 드러나지 않았던 역(易)의 논리가 전면에 내세워지며, 둘째, 이 역(易)의 논리로 설명된 시운관(時運觀)이 성인(聖人)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셋째, 성인의 문하에 들어오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 대한 경고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가운데 정감록(鄭鑑錄)류의 비기도참(秘記圖讖)의 논리를 끌어들여 입도(入道)에 대한 설득력을 높인다. 선천으로 회복하는 일을 강조한 점이 이채롭다.”라고14) 정리하였다.

그렇지만 동학교의 선천회복사상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미비하고 부족한 듯하다. 동학교가사에 대한 전면적 분석을 시도하지 않은 채 단편적인 주장만 하거나 특정한 일부 가사의 일부 대목을 인용하여 서술하는데 그치고 말았다는 한계가 있다. 특히 동학교에서 독창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도로 선천(先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굳이 한자로 바꾼 ‘선천회복(先天回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 비판받아야 할 점이다. 특정 교단에서 고유하게 사용하고 있는 용어 자체에 주목해서 그 내용과 의의를 정당하게 평가할 목적으로 이 글은 준비되었다.

동학과 천도교에서 핵심 경전으로 사용하고 있는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1864)가 지은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용담유사』에는 ‘선천(先天)’, ‘후천(後天)’ 등의 용어가 나오지 않는다.15) 그리고 개벽(開闢)이라는 용어도 『동경대전』에는 나오지 않으며, 『용담유사』에만 ‘다시 개벽’이라는 용어가 나올 뿐이다.16) 이러한 사실은 초기 동학의 선천회복과 후천개벽에 대한 인식을 단언하기 어려우며, 최소한 이들 경전이 후천개벽 사상을 담고 있다고 선언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필자는 동학의 시운관(時運觀)을 ‘다시 개벽(開闢)’사상으로, 동학교의 시운관을 ‘도로 선천(先天)’사상으로 애초에 사용했던 독창적이고 고유한 용어를 사용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도로’는 “행하던 쪽에서 거꾸로 향하여”, “또다시”, “본디와 같이 다시”, “먼저와 다름없이” 등의 뜻을 지닌 부사다.17) 이 글에서 필자는 지금까지 피상적인 접근만 허락되었던 동학교의 ‘도로 선천’사상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본 다음, 그 특성과 의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Ⅱ. ‘도로 선천’사상의 내용

1. ‘도로 선천(先天)’의 용례

… 태호복희(太皞伏羲) 선천수(先天數)와,

문왕팔괘(文王八卦) 후천수(後天數)가,

운(運)이 역시(亦是) 다햇던가? 도로 선천(先天) 회복(回復)되여,

천지정위(天地定位) 갱정시(更定時)예,

동서남북(東西南北) 변복(變復)되고,

이십사방(二十四方) 운동(運動)되야, 음양(陰陽) 좃차 마조 셔니,

그 아니 개벽(開闢)인가? (「신심시경가(信心時景歌)」)

복희씨(伏羲)는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첫머리에 꼽는 중국 고대의 전설상의 제왕 또는 신으로, 그물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고기잡이를 가르치고 팔괘(八卦)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복희는 포희(包犧)라고도 하는데, 정식 이름은 태호(太皞)다.

문왕(文王, ? ~ ?)은 기원전 12세기 무렵 중국 주(周, BC 1111~256/255)나라의 창건자로 알려진 인물로 무왕(武王)의 아버지다. 서백(西伯)이라고도 하며, 유교(儒敎)의 역사가들이 칭송하는 대표적인 성군(聖君) 가운데 한 사람이다. 문왕은 중국 서부 국경에 위치한 주(周)의 통치자였는데, 이 나라는 오랫동안 문명화된 중국과 유목침략자들 사이의 전쟁터가 되어왔다. BC 1144년에 그는 서백(西伯)이라는 칭호를 갖게 되었으며, 은(殷: BC 18~12세기)나라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주역(周易)』의 괘사(卦辭)를 지었다고 전하는데, 점(占)의 기반이 되는 팔괘(八卦)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역(易)의 작자에 대해서는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몇 군데 암시가 있다. 그 가운데 뚜렷한 것은 “옛날 포희씨(包犧氏)가 천하를 다스릴 때에 위로 상(象)을 하늘에서 우러르고 아래로 법을 땅에서 살폈으며, 새와 짐승의 모양과 초목의 상태를 관찰해 가까이는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사물에서 취해, 이로써 비로소 팔괘(八卦)를 만들어 신명(神明)의 덕(德)에 통하고 만물의 정(情)에 비기었다”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복희씨가 팔괘를 만들고 신농씨<神農氏, 혹은 복희씨(伏羲氏), 하우씨(夏禹氏), 문왕(文王)>가 64괘(卦)로 나누었으며, 문왕이 괘에 사(辭)를 붙여 『주역(周易)』이 이루어진 뒤에 그의 아들 주공(周公)이 효사(爻辭)를 지어 완성되었고, 이에 공자(孔子)가 십익(十翼)을 붙였다고 전하는 것이 대개의 통설이다.

팔괘(八卦)는 역(易)에서 자연계와 인간계의 본질을 인식하고 설명하는 유교 기호다. 팔괘는 자연계 구성의 기본이 되는 하늘, 땅, 못, 불, 지진, 바람, 물, 산 등을 상징한다.

역(易)이 발생한 신비적 해석으로 “하늘이 신물(神物)을 낳았으니 성인이 그것을 본받았으며 하늘과 땅의 변화를 성인이 본받았다. 하늘이 상(象)을 드리우고 길흉을 나타내었으니 성인이 이것을 본뜨고,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나오니 성인이 이것을 본받았다.”가 있다. 특히, 황하(黃河)에서 용마(龍馬)가 지고 나온 이른바 하도는 복희팔괘(伏羲八卦)의 직접적 근거라는 전설이 통설로 되어 있다.

복희팔괘도(伏羲八卦圖)와 문왕팔괘도(文王八卦圖)는 『주역』 본문에는 실려 있지 않다. 한대(漢代)의 상수역학(象數易學)에서 주로 논의된 것인데, 주희(朱熹)가 『역학계몽 易學啓蒙』에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확정지었다.

복희팔괘도는 음양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그 순서가 순리대로 되어 있으나 문왕팔괘도는 상극(相克)·괘도(卦道)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주역』은 문왕팔괘도에 의해 구성되었다고 한다.

선천도(先天圖)는 북송의 유학자 소옹이 생각한 역괘의 생성에 관한 학설에 의거하는 순서나 방위에 의해서 팔괘 및 육십사괘를 배치한 그림이다. 소옹은 이 그림의 원작자를 천지자연에 본떠 팔괘를 만들어 낸 복희로 해, 그것을 복원했다고 생각했다. 한편, 현행 『주역』에서의 점괘의 배열, 즉 종래의 역전에 의해서 나타난 순서나 방위에 의해서 점괘를 배열한 그림은 후천도(後天圖)로 불려 그 작자는 주의 서주 문왕으로 여겨진다.

역(易)의 계사하전에 복희가 천지자연에 본떠 괘를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어, 소옹은 복희가 「천지에 앞서는」 우주 만물의 생성에 의거해 만든 역괘의 생성 원리를 분명히 하려고 했다.

하도(河圖)와 낙서(洛書 또는 雒書)는 태극과 팔괘의 효시가 되는 그림이다.

하도낙서가 처음에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불확실하며 신화적인 기원만이 전한다.

상서(尙書)에 따르면, 복희씨가 다스리고 있을 때 하수(河)에 용마가 나타났으니 그 무늬를 따라 하도(河圖)를 만들었다고 한다.

河圖,八卦. 是伏羲氏王天下,龍馬出河,遂則其文以畫八卦,謂之河圖.18)

낙서는 하나라 우왕이 낙수에 있는 신성한 거북이의 등에 새겨진 모습을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天與禹洛出書,神龜負文而出,列於背,有數至於九. 禹遂因而第之,以成九類,常道所以次敘.19)

복희의 선천도와 문왕의 후천도를 구별하여 대비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복희와 문왕의 운수가 다해 끝나고, 이제 ‘도로’ 선천(先天)이 되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노래한다. 천지가 위치를 다시 정하는 시기에 동서남북의 사방(四方)이 변하고, 24방(方)이 움직여 제각기 음과 양을 좇아 마주 서니<대대(對待)> 이것이 바로 ‘개벽(開闢)’이라고 읊는다. 우주의 질서와 원리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시대를 맞이했다는 주장이다. 시운(時運)의 근원적 변화와 근본적 뒤바뀜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다시 선천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서남북은 물론 24방위 모두에서 변혁이 시작할 것이며, 둘러싼 각각의 방위에서 각자 음과 양으로 마주 서서 새로운 질서와 원리를 생성하리라고 예상한다. 이러한 근원적 전환을 ‘개벽(開闢)’이라고 이름한다.

이처럼 동학교에서 선천을 강조한 점을 제외한다면, 기본적으로 ‘도로 선천’은 동학의 ‘다시 개벽’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두 구절이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동학교에서는 선천이라는 용어를 특히 강조했고, 역학(易學)을 활용하여 노래했고, 사방 혹은 24방에서 ‘음양의 마주 봄’으로 개벽의 상황을 읊었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거듭 강조하지만 동학에서 교조인 수운은 ‘선천’이나 ‘후천’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따라서 동학교에서 선천을 강조하여 읊은 사실은 특기할만하다. 동학교에서 개벽의 실상에 대해 세밀하게 노래하려고 노력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으로 보인다.

… 태호복희(太昊伏羲) 선천운수(先天運數) 지나가고,

문왕후천(文王後天) 그린 팔괘(八卦), 운(運)이 역시 다 해뜬가?

도로 선천(先天) 회복(回復)되야, 목덕이왕(木德以旺) 하는 고로,

동서남북 사색중(四色中)에, 목청청(木靑靑)이 읏뜸이라.

때 운수(運數) 그러키로, 청림도사(靑林道士) 출세(出世)하사,

수명우천(受命于天) 다시 하야, 선생교훈(先生敎訓) 봉명(奉命)하고,

유도불도(儒道佛道) 거울하사, 궁을기리(弓乙其理) 살피시고,

선도창건(仙道昌建) 하실 차(次)로, 하날님 전(前) 분부받아,

선천팔괘(先天八卦) 용마하도(龍馬河圖), 다시 뫼셔 사람 사람,

닐깨우니, 복희시절(伏羲時節) 다시 온가? (「신화가(信和歌)」)

‘도로 선천’이 ‘회복(回復)’된다고 읊는다. ‘도로’라는 부사(副詞)를 ‘회복’이라는 한자로 거듭 풀이한 셈이다. 어쨌든 동학교에서는 선천(先天)을 “목덕(木德)이 왕성한 시기나 때”로 해석한다. 동양의 음양오행설에서 목(木)은 동쪽<동(東)>, 푸름<청(靑)>, 봄<춘(春)>, 오전<평단(平旦)>, 간(肝), 쓸개<담(膽)>, 노여움<노(怒)>, 눈<목(目)>, 시각<색(色)>, 신맛<산(酸)>, 청룡(靑龍), 인(仁), 팔(八)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동서남북을 사색(四色)에 배당하면 목(木)은 청(靑)에 해당한다. 오행 가운데 목(木)이 가장 먼저 나오고 으뜸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시절 인연과 운수에 맞춰 청(靑)을 상징하는 인물인 청림도사(靑林道士)가 세상에 출현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청림도사는 하늘의 명령을 받고, 선생의 교훈을 받든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선생’은 수운 최제우를 가리킨다고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청림도사는 동학교를 세운 삼풍(三豊) 김주희(金周熙)를 지칭하는 용어로 보인다. 삼풍이 유교와 불교의 진리를 거울삼고 전래되는 비결인 궁을(弓乙)의 이치도 살펴서 선도(仙道)를 새롭게 세우기 위해 하늘님의 분부를 받아 복희의 선천(팔괘)도 즉 용마(龍馬)가 황하(黃河)에서 지고 나왔다고 전하는 신비한 하도(河圖)를 ‘다시’ 모셔 사람들을 일깨우니 복희가 다스렸던 이상사회가 이 세상에 다시 출현하는 일이 아닌가 하고 노래한다.

… 도로 선천(先天) 회복(回復)되야, 용마부도(龍馬負圖) 다시 나니,

순수팔괘(順數八卦) 그 안인가? (「신화가」)

‘도로’와 ‘회(回)’는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동학의 ‘다시 개벽’과 대비된다. 용마가 하도를 등에 지고 다시 나온다는 말은 복희의 선천팔괘도에 대한 새로운 해석 또는 재해석이 시도되리라는 주장이다. ‘순수팔괘’는 선천도의 괘(卦)의 배열이 역수(逆數)가 아니라 순수(順數)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주목한 표현이다.

… 개벽후(開闢後) 오만년(五萬年)에,

선천후천(先天後天) 시행(施行)터니,

도로 선천(先天) 회복(回復)되야,

용마하도(龍馬河圖) 그린 태극(太極),

순수팔괘(順數八卦) 그 가온대, 다시 순환(循環) 이치(理致) 따라,

시중지도(時中之道) 살펴보니, 아부동(亞不同)이 또 잇구나.

(「수시경세가(隨時警世歌)」)

위의 노래에서 동학교에서 주장하는 선천과 후천에 대한 좀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 태초의 천지가 처음으로 열린 이후 5만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다음 선천과 후천이 교체된다는 설명과 주장이다. 즉 선천은 그 지속기간이 5만 년이라는 말이다. 이는 송대(宋代)의 유학자인 강절(康節) 소옹(邵雍, 1011~1077)이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서 주장한 원회운세론(元會運世論)에서 기원하는 생각이다. ‘도로 선천’이 되어 복희가 그린 하도의 태극이 선천도의 팔괘 가운데 다시 순환하는 이치를 따라 나온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환경과 조건은 변화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그러한 주변의 여건과 그 시기의 정황 등을 고려해 실천하는 것이 시중(時中)이다. 시중은 시간<시(時)>에 따라 변화하는 상황에 중절(中節)하는 방법으로 상황과 시대에 맞춰 행동하는 일이다. 시중의 기준은 중(中)을 이루고 있는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아부동’은 궁궁(弓弓)이 불화배궁(不和背弓)한 모양을 가리킨다. ‘아(亞)’자는 궁(弓)자가 서로 등을 마주하고 맞서 있는 모양이다. 상황에 맞게 행동하려다 보니 궁궁(弓弓) 또는 궁을(弓乙)의 이치가 또 있구나 하고 읊는다.

… 도각선생(道覺先生) 어진 스승, 하날님 전(前) 명(命)을 받아,

선천후천(先天後天) 삭질(數質)하야, 괘효단상(卦爻彖象) 그 가온대,

왕생휴수(旺生休囚) 다 안 후(後)에,

도로 선천(先天) 회복(回復)된 줄,

정녕이 아옵시고,

하날님 전(前) 명(命)을 밧아, 용마하도(龍馬河圖) 다시 그려,

사람 사람 전(傳)해여셔, 오는 운수(運數) 일깨시고, …

(「수덕활인경세가(修德活人警世歌)」)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도각선생은 “도(道)를 깨친 선생”이라는 뜻으로, 아마도 청림교를 창교한 삼풍을 가리키는 말인 듯하다. 이 도각선생이 하늘님의 명령을 받들어 선천과 후천을 여러 번 세심하게 살펴서 괘(卦), 효(爻), 단(彖), 상(象) 가운데 왕(旺), 생(生), 휴(休), 수(囚)의 원리와 이치를 모두 알고 난 후에 비로소 선천이 다시 온다는 진리를 철두철미하게 깨닫게 되었다고 노래한다. 이에 도각선생은 하늘님의 명을 받들어 복희씨의 선천도에 맞먹을 정도로 지극한 경지에 있는 용마하도를 다시 그려 사람들에게 전해 다가올 새 운수를 일깨우고 계신다고 읊는다.

… 선천후천(先天後天) 운(運)이 역시(亦是), 다 진(盡)하고

도로 선천(先天) 회복(回復)되야, 목덕이왕(木德以旺) 때 왓시니,

때를 알고 수도(修道)하여, 사람 사람 만은 사람,

사람마도 계천입극(繼天立極) 하여 내여,

도덕군자(道德君子) 되어 보세. (「개명공산가(開明共産歌)」)

선천과 후천의 운이 모두 다하고, ‘도로 선천’으로 회복될 운수를 맞게 되었다고 노래한다. “후천(後天)의 운수도 진(盡)했다.”라는 표현이 특기할만하다. 대부분의 신종교에서는 선천이 지나가고 후천이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동학교에서는 후천의 운수마저 다한 다음에야 비로소 ‘도로 선천’이 이루어지리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이 ‘도로 선천’의 운수가 회복되면 목덕(木德)으로 상징되는 ‘봄<춘(春)>’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노래한다. 시절의 운수가 급변하는 ‘때’를 잘 알고 수도에 힘쓰면 많은 사람이 저마다 하늘의 가르침을 계승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갈 것인데, 이때가 되면 모두 도덕군자가 되어보자고 읊는다.

‘계천입극(繼天立極)’은 원래 주희(朱熹, 1130~1200)의 『중용장구서(中庸章句序)』와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에 “<성인(聖人)이> 하늘을 이어 기준을 세운다.”라는 뜻으로 사용된 용어다. 계천입극의 주어는 성인(聖人)으로 제시되었다. 성인만이 하늘이 준 성(性)을 다할 수 있기에, 하늘은 성인에게 다른 백성들을 다스리고 가르치게 하여 본래의 성(性)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늘을 이어 기준을 세운다.<계천입극(繼天立極)>”이다. 유교적 세계관에서 천(天)은 도덕의 근본이며, 하늘로부터 그 이치를 깨달은 요순(堯舜)과 같은 성인(聖人)이 아직 천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일반 백성들에게 그 이치를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 천도회복(天道回復) 차세상(此世上)의,

목덕이왕(木德以旺) 도라오니,

왕생지리(旺生之理) 기운(氣運)따라, 후회(後悔)업게 하여셔라.

(「신심권학가(信心勸學歌)」)

‘도로 선천’이 ‘천도회복(天道回復)’이라고 표현되었다. 하늘의 도를 회복하는 일이 바로 ‘도로 선천’의 내용이다. 목덕(木德)의 ‘봄<춘(春)>’이 돌아와 천하에 왕성하게 되는 시기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노래했다. 이어지는 구절은 봄의 기운이 왕성해지는 이치와 기운에 따라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도를 닦는 일에 힘쓰라고 권유한 대목이다.

… 선천후천 운이 역시 다 해뜬가?

도로 선천 회복되야, 이서위북(以西爲北) 다시 정(定)코, …

(「송구영신가(送舊迎新歌)」)

역시 선천과 후천의 운수가 다했다고 읊는다. 이어서 ‘도로 선천’이 회복되면, 서(西)가 북쪽으로 다시 정해진다고 노래한다. 선천팔괘(先天八卦)에서 감괘(坎卦)는 서쪽에 위치하지만, 후천팔괘(後天八卦)에서는 감괘가 북쪽에 위치한다. 따라서 서(西)를 북(北)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선천에서 후천으로 개벽했다는 말이다. 괘(卦)를 배열한 그림의 변화를 읊어서 ‘도로 선천’을 노래한 점이 특기할만하다.

… 사시불안(四時不安) 지나드니, 도로 선천(先天) 회복(回復)되야,

성인지세(聖人之世) 때 왓시니, 상생지덕(相生之德) 도(道)를 닥거,

순수천리(順隨天理) 시행(施行)해셔, 중생제도(衆生濟度) 하여 보세.

(「송구영신가」)

불안한 시대가 지나서 ‘도로 선천’이 회복되어 이제 성인(聖人)이 다스리는 세상과 시기가 왔으니, 상생(相生)의 덕(德)과 도(道)를 닦아보자고 노래한다. ‘도로 선천’의 시대는 ‘상생(相生)’의 원리와 질서가 지배하는 이상적인 때라고 읊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변화하는 하늘의 이치를 잘 따르고 시행하여 고해(苦海)에 빠진 중생을 구원하자고 노래한다. 시운(時運)의 변화에 맞춰 인간들이 중생구원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대목이다.

… 개벽후 누천년에, 선천 후천 운이 역시 다 했든가?

도로 선천(先天) 회복(回復)되야,

임자위시(壬子爲始) 행(行)하드니, …

(「운산시호가(運算時呼歌)」)

“개벽 후 몇 천년이 지나갔다.”라는 구절은 태초의 개벽이 있은 후 지금까지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뜻이다. 이어서 선천과 후천의 운도 이 시기에 이미 지나갔다고 노래한다. 선천과 함께 후천의 운수도 이미 지나갔다고 노래한 점이 특기할만하다. 그리고 이제 ‘도로 선천’으로 회복되는 때를 맞아 천간(天干)으로 볼 때 임(壬), 지지(地支)로 볼 때 자(子)에 해당하는 방위와 시기로부터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읊는다.

… 금구낙서(金龜洛書) 후천태극(後天太極),

역수지행(逆數之行) 공교지술(功巧之術),

영웅시중(英雄時中) 다 지나고, 도로 선천(先天) 회복(回復)되야,

하도용마(河圖龍馬) 순수지행(順數之行),

상생지덕(相生之德) 운수(運數) 따라,

성인군자(聖人君子) 시중(時中)이니, 자내(子乃) 사람 뜻 잇거든,

어셔 배워 순천(順天)하쇼. (「운산시호가」)

금빛 거북이 등에 지고 나왔다는 전설이 전하는 낙서(洛書)에 나오는 후천도(後天圖)의 태극(太極)이 역수(逆數)로 행하는 정밀한 술법에 따라 영웅이 때를 맞춰 나오던 시대가 지나가고 이제 ‘도로 선천’이 회복되는 시기를 맞았다. 용마가 등에 지고 나왔다는 전설이 전하는 하도(河圖)는 순수(順數)로 행하는데 상생의 덕과 운수에 따라 성인군자가 때를 맞춰 등장할 것이니, 뜻이 있는 사람들은 어서 배워서 하늘의 가르침을 따르라고 노래한다.

… 인묘(寅卯)는 동방목(東方木)이 그 안인가?

도로 선천(先天) 회복(回復)되야, 목덕왕운(木德旺運) 행(行)하는 바,

일을 올케 다 알어야, 인묘사(寅卯事) 가지(可知) 뜻 아는 게니 … (「신실시행가(信實施行歌)」)

오방(五方)의 동방(東方)이 목(木)에 배치된다. 그런데 지지(地支)의 인(寅)과 묘(卯)가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동방목(東方木)의 ‘봄<춘(春)>’이 ‘도로’ 회복되는 선천을 맞이하여 목덕(木德)이 왕성하게 되는 때가 되는 이치를 옳게 다 알아야 “인묘사가지(寅卯事可知)”라는 비결의 참된 뜻을 알 수 있으리라고 노래한다. “인묘사가지”는 일반적으로 “인년(寅年)과 묘년(卯年)이 되면 시사(時事)를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해석되는 구절이다.

… 선천 후천 운이 역시 다햇든가?

도로 선천(先天) 회복(回復)되야, 사정사유(四正四維) 다시 정(定)코,

이십사방(二十四方) 변복(變復)식혀,

사시순환(四時循環) 시행차(施行次)로,

일일지위(一一知委) 하는 중(中)에, 목청청(木靑靑)이 읏뜸이라.

(「지시수덕가(知時修德歌)」)

역시 선천과 후천의 운수가 모두 다했다고 노래한 다음, ‘도로 선천’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읊는다. 이어서 ‘도로 선천’으로 회복되면 사정사유(四正四維)가 다시 정해지게 될 것이라고 노래한다. 사정(四正)은 자(子), 오(午), 묘(卯), 유(酉)의 네 방위를 가리키는 말로 동, 서, 남, 북의 사방(四方)이다. 사유(四維)는 건<乾, 서북(西北)>, 곤<坤, 서남(西南)>, 간<艮, 동북(東北)>, 손<巽, 동남(東南)>의 네 방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주의 질서가 근본적으로 다시 정해질 것을 노래한 대목이다. 24방위가 변하고 바뀌면 사계절이 순환하는 이치와 질서도 전면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읊는다. 이러한 전환과 변화의 과정에서 ‘봄’을 상징하는 목(木)과 청(靑)이 첫머리와 으뜸자리를 차지하게 됨을 노래한다. ‘일일지위(一一知委)’는 “하나하나 알려줌”을 뜻하는 말이다. 여기서 지위(知委)는 통지(通知)나 고시(告示) 따위의 형식으로 명령을 내려 알려주는 것을 말한다.

… 후천지수(後天之數) 낙서지리(洛書之理) 다 햇든가?

도로 선천(先天) 회복(回復)되야, 천황시절(天皇時節) 다시 와셔,

이십일년(二十一年) 갑신춘(甲申春)에,

주성회두(主星回頭) 태양(太陽)되야,

갑신을유(甲申乙酉) 정중수(井中水)에,

수운선생(水雲先生) 몬저 내사,20)

… 음양평균(陰陽平均) 석류목(石榴木)을,

다시 가려 경신목(庚申木)에,

청림선생(靑林先生) 또 내시고 … (「지시수덕가(知時修德歌)」)

후천의 운수가 다했다는 독특한 주장을 낙서(洛書)의 이치가 다했다고 설명하고 노래한 대목이다. 복희의 하도인 선천도와 문왕의 낙서인 후천도가 모두 주어진 역할을 나름대로 다하고, 이제 새로운 ‘도로 선천’이 전개될 것이라고 노래한다. 그렇게 되면 천황(天皇)이 다스리던 시절이 다시 와서 수운 최제우(1824~1864)가 죽은 후 21년만인 갑신년(甲申年, 1884)의 봄에 별자리의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노래한다.

육십갑자납음오행가(六十甲子納音五行歌)에 갑신(甲申)과 을유(乙酉)의 납음이 정중수(井中水)이다. 천중수(泉中水)라고도 한다. 수운 최제우가 태어난 해가 갑신년(1824)이다. 그리고 경신년(庚申年)은 목(木)의 운수를 뜻하는데, 경신년(1860)은 동학교의 창시자 김주희(金周熙)가 태어난 해이다. 따라서 인용문에 나오는 ‘청림선생’은 동학교를 세원 삼풍 김주희를 가리키는 말이다.

… 노음노양(老陰老陽) 불도운(佛道運) 때 지나고,

도로 선천(先天) 회복(回復)되야, 임자위시(壬子爲始) 씨가 되야,

동지후(冬至後) 한식전(寒食前),

소남운수(少男運數) 야소교(耶蘇敎) 때 지나고,

한식후(寒食後) 목덕이왕(木德以旺) 장남운수(長男運數) 때 왓시니,

사람마도 송구영신(送舊迎新) 다시 배워,

오는 운수(運數) 흥(興)해 보세.

(「지시명찰가(知時明察歌)」)

늙은 음양으로 표현되는 불교의 운수가 지나가고 ‘도로 선천’이 회복되어 임(壬)과 자(子)로 시작하는 일이 비롯할 것이라고 읊는다. 그리고 동지(冬至)와 한식(寒食) 사이의 시점에 젊은이의 운수를 지닌 기독교의 운수도 지나갈 것이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한식(寒食)이 지난 후에 비로소 목덕(木德)이 왕성해지는 장남(長男)의 운수가 올 것이니, 사람들이 지난 낡은 것은 보내고 새로운 때를 맞이하는 일을 다시 배워 다가오는 운수를 흥하게 만들어보자고 노래한다.

… 지금 시기 말하자면, 선천 후천 그 가온대,

도로 선천(先天) 회복(回復)되야, 천황시절(天皇時節) 다시 와셔,

목덕이왕(木德以旺) 하실 차(次)로, …

천명(天命) 밧어 개명시기(開明時期) 주인(主人)되네.

(「지시개명가(知時開明歌)」)

위의 인용문에서는 이전의 인식과는 다르게 당대를 선천과 후천의 사이라고 규정짓는다. 이전에는 선천과 후천이 지나간 후에 ‘도로 선천’이 회복된다고 노래하여 선천과 후천이 지나간 시점으로 인식했는데 반해, 위의 인용문에서는 선천과 후천의 가운데에 있다고 읊는 것이다. 어쨌든 ‘도로 선천’이 회복되는 천황(天皇)이 다스리던 시절이 다시 와서 목덕(木德)이 흥왕할 것이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하늘의 명을 받아 만물이 밝아지는 시대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읊는다.

… 개벽후 루쳔년에, 션텬후텬 다해뜬가?

도로 션텬 회복되야, 임자위시 슈왕지졀,

현무지긔 긔세때라. (「시경가(時警歌)」)

태초의 개벽이 있은 지 누천년이 흐르자 이제 선천과 후천의 운수도 다하고 말았다고 노래한다. 급기야 ‘도로 선천’이 회복되어 임자(壬子)를 시작으로 하는 수(水)의 기운이 왕성해지는 시절이21) 돌아올 것이라고 읊는다. 천간(天干)의 임(壬)과 지지(地支)의 자(子)는 오행(五行)으로는 수(水)에 해당하고, 사계절로는 겨울에 속하며, 방위로는 북방(北方)을 상징한다. 현무(玄武)는 북방(北方)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동물이기 때문에 현무의 기운이 세력을 얻게 될 것이라는 위의 인용문과 같은 표현이 가능했다고 보인다.

… 선천지수(先天之數) 목덕이왕(木德以旺),

흥왕지세(興旺之世) 지나가고,

또 후천지수(後天之數) 화덕이왕(火德以旺), 흥왕지세 지나가고,

도로 선천(先天) 회복(回復)되야,

수덕이왕(水德以王)22) 행(行)하드니,

그 운수(運數)도 거의 가고, 수생목운(水生木運) 때가 와셔,

목덕이왕(木德以王) 흥왕시(興旺時)라. (「자고비금가(自古比今歌)」)

위의 인용문에서는 선천(先天)을 상징하는 수(數)와 목덕(木德)이 왕성했던 세상이 지나가고, 후천(後天)을 상징하는 수와 화덕(火德)이 왕성했던 시대가 지나간 다음에 ‘도로 선천’이 회복될 것이라고 노래한다. 이전에는 ‘도로 선천’이 회복되는 때를 목덕(木德)이 왕성해지는 시기라고 노래했는데, 약간의 착오가 있는 듯하다. 어쨌든 이 노래에서는 ‘도로 선천’이 회복되면 수덕(水德)이 왕성해질 것이라고 읊고 있다. 「자고비금가」에서는 ‘도로 선천’이 회복된 직후에는 수덕(水德)이 왕성해지지만, 그 운수가 지나간 후에는 수생목(水生木)이라는 역학(易學)의 상생(相生) 원리에 의거해서 목운(木運)의 때가 와서 목덕(木德)이 흥왕해질 것이라고 노래한다.

한편 1970년대 후반에 박태선(朴泰善, 1917~1990)의 전도관(傳道館)에서 위서(緯書)로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23) 『격암유록(格菴遺錄)』의 「가사총론(歌辭總論)」에 “중천궁부선천회복(中天弓符先天回復), 사시장춘신세계(四時長春新世界)라.”라는 구절이 있다.

2. 용마하도(龍馬河圖)와 ‘도로 선천’

동학교에서는 새로운 운수(運數)의 전개를 ‘역(易)의 회복’으로 설명한다.

… 용담고사(龍潭古舍) 말을 하니, 용마하도(龍馬河圖) 회복(回復)이오. (「신심권학가(信心勸學歌)」)

용담고사는 “용담의 옛집”이라는 뜻으로, 수운 최제우가 깨달음을 얻은 장소를 가리킨다. 용담의 옛집을 거론하는 일에 응하여 그 옛날 황하(黃河)에서 용마(龍馬)가 등에 지고 온 그림을 보고 복희씨(伏羲氏)가 하도(河圖)를 처음으로 그렸다는 전설이 다시 이 세상에 등장할 조짐이 있다고 노래한다. 그런데 정작 수운은 역학(易學)에 대해서는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에서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위의 구절은 수운의 도를 계승한 동학교에서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역(易)이 출현하리라는 점을 암시한 대목으로 볼 수 있다.

… 순수팔괘(順數八卦) 회복(回復)되니,

용마하도(龍馬河圖) 안일넌가?

용마하도 다시 와셔, 천일생수(天一生水) 순수(順數) 따라,

무왕불복(無往不復) 자연(自然)되여, 무위이화(無爲而化) 된다 해도,

천리(天理) 따라 될거시니, … (「신심권학가」)

순수(順數)로 그려진 팔괘(八卦)가 중심인 복희(伏羲)의 선천도(先天圖)가 회복될 것이고, 이 하도(河圖)가 다시 와서 일(一)이 수(水)를 생하는 이치에 따라 한번 간 것은 돌아오지 않는 일이 없다는 원리가 자연의 섭리에 응해 무위이화(無爲而化)가 되는 천리(天理)에 순응할 것이라고 노래한다.

… 복희씨(伏羲氏) 선천팔괘(先天八卦),

용마하도(龍馬河圖) 시중후(時中後)에,

구미낙서(龜尾洛書) 후천팔괘(後天八卦) 다시 나서,

문장재사(文章才士) 시행(施行)터니,

고금왕래(古今往來) 다시 와셔, 용마하도 회복(回復)되야

(「수시경세가(隋時警世歌)」)

복희씨의 선천도(先天圖)의 팔괘(八卦)의 모습이 바로 하도(河圖)인데, 선천도가 세상에 나온 후에 거북이 등에 지고 나왔다는 전설이 있는 낙서(洛書)가 다시 나와서 뛰어난 문장을 자랑하는 재주 있는 선비들이 이를 따랐다고 노래한다. 이어서 “옛것과 새것이 왕래하는 이치”가 다시 와서 복희씨의 하도(河圖)가 또다시 세상에 출현하게 될 것이라고 읊는다.

… 개벽후(開闢後) 오만년(五萬年)에,

선천후천(先天後天) 시행(施行)터니,

도로 선천(先天) 회복(回復)되야,24)

용마하도(龍馬河圖) 그린 태극(太極),

순수팔괘(順數八卦) 그 가온데, 다시 순환(循環) 이치(理致) 따라,

시중지도(時中之道) 살펴보니, 아부동(亞不同)이 또 있구나.

(「수시경세가」)

태초의 개벽이 있은 지 5만 년이 지난 후에 선천과 후천이 있었고, 이제 ‘도로 선천’이 되는 운수를 회복하여 용마(龍馬)가 가지고 나왔다는 전설이 있는 하도(河圖)에 그려진 태극(太極)을 뜻하는 순수(順數)의 팔괘(八卦) 가운데 ‘다시’ 순환하는 이치에 따라 시의적절한 도(道)가 있어서 살펴보니 바로 궁궁(弓弓)이라고 노래한다.

… 개벽후(開闢後) 오만년(五萬年)에,

태호복희(太昊伏羲) 선천팔괘(先天八卦),

사시순환(四時循環) 맛춘 후에, 문왕후천(文王後天) 그린 팔괘(八卦),

일일시행(一日施行) 베푸더니, 다시 반복(反覆) 선천(先天) 되야,

천일생수(天一生水) 먼져 하야, 임자위시(壬子爲始) 행하더니 …

(「지본수련가」)

태초의 개벽 후 복희씨의 선천팔괘(先天八卦) 즉 하도(河圖)와 문왕의 후천팔괘(後天八卦) 즉 낙서(洛書)가 세상의 원리로 시행된 이래 이제 다시 반복(反覆)되어 선천(先天)이 되어 천일(天一)이 수(水)를 낳는 일을 먼저 하여 임(壬)과 자(子)를 첫머리로 삼았다고 노래한다.

… 태호복희(太昊伏羲) 선천운수(先天運數) 지나가고,

문왕후천(文王後天) 그린 팔괘(八卦), 운(運)이 역시 다 해뜬가?

도로 선천(先天) 회복(回復)되야, 목덕이왕(木德以旺) 하는 고로,

동서남북 사색중(四色中)에, 목청청(木靑靑)이 읏뜸이라.

때 운수(運數) 그러키로, 청림도사(靑林道士) 출세(出世)하사,

수명우천(受命于天) 다시 하야, 선생교훈(先生敎訓) 봉명(奉命)하고,

… 하날님 전(前) 분부 밧아, 선천팔괘 용마하도(龍馬河圖),

다시 뫼셔 사람사람 닐깨우니, 복희시절(伏羲時節) 다시 온가?

(「신화가(信和歌)」)

태호 복희씨의 선천도(先天圖)인 하도(河圖)가 맡았던 운수의 시대가 지나가고, 문왕이 그렸던 후천팔괘도(後天八卦圖) 즉 낙서(洛書)가 맡았던 운수도 역시 그 역할과 기능을 다했다고 노래한다. 이제 ‘도로 선천’이 회복되어 목덕(木德)이 왕성해지기 때문에 동서남북의 색(色) 가운데 동(東)을 상징하는 목(木)과 청(靑)이 으뜸이 되는 시대가 열리리라고 읊는다. 시절 운수가 그렇기 때문에 이에 응하여 청림도사(靑林道士)가 세상에 출현하여 하늘로부터 명을 다시 받아 선생(先生)의 교훈을 받든다고 노래한다. 여기서 선생은 수운 최제우를 가리킨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어서 선천팔괘(先天八卦)로 그려진 하도(河圖)를 다시 모셔서 사람들을 일깨우니 이는 복희씨가 세상을 다스리던 시절이 다시 오는 일에 비유할 수 있다고 읊는다.

… 용마하도(龍馬河圖) 출송(出送)하사, 복희씨(伏羲氏)를 닐깨시니,

태호복희(太皞伏羲) 어진 성군(聖君), 용마하도 보압시고,

천도지상(天道之常) 베푸라셔,

시획팔괘(始劃八卦) 그려내여, 이교후생(以敎後生) 하셧시니, …

(「자고비금(自古比今)」)

하늘이 용마(龍馬)의 등에 하도(河圖)를 지고 나오게 하여 복희씨를 일깨우셨으니, 태호 복희씨는 어지신 성군(聖君)이어서 하도(河圖)를 보고 천도(天道)의 떳떳함을 베풀어 처음으로 팔괘(八卦)를 그려 세상 사람들을 가르쳤다고 노래한다. 이는 전설상의 복희씨가 하도(河圖)를 그린 일을 노래한 대목이다.

… 용마하도(龍馬河圖) 선천지도(先天之道),

도선생(都先生)25) 복희씨(伏羲氏)가 아니시며,

금구낙서(金龜洛書) 후천지도(後天之道),

도선생(都先生) 주문왕(周文王)이 아니시며, …

(「자고비금」)

용마(龍馬)가 지고 나온 하도(河圖)의 선천도(先天道)에 있어서 가장 높은 선생은 복희씨이며, 금빛 거북이 등에 새기고 나온 낙서(洛書)의 후천도(後天道)에 있어서 가장 높은 선생은 주(周)나라의 문왕(文王)이라고 노래한다.

… 천지반복(天地反復) 다시 되어,

용마하도(龍馬河圖) 구궁팔괘(九宮八卦),

육구지(六九之)26) 조화(造化)로셔,

오행상생(五行相生) 상조(相助)되야,

수시성형(隋時成形) 난언(難言)일세.

(「안심치덕가(安心致德歌)」)

천지의 질서와 원리가 다시 회복되는 운수를 맞아 용마(龍馬)가 지고 온 하도(河圖)의 구궁팔괘가 양효(陽爻)와 음효(陰爻)의 조화로써 오행(五行)이 상생(相生)하여 서로 도와 때에 맞춰 새로운 사태를 이루는 일은 짐작해 말하기가 어렵다고 노래한다.

… 도각선생(道覺先生) 어진 스승, 하날님 전(前) 명(命)을 받아,

선천후천 수질(數質)하야, 괘효단상(卦爻彖象) 그 가온대,

왕생휴수(旺生休囚) 다 안 후에, 도로 선천(先天) 회복(回復)된 쥴,

정녕(丁寧)이 아옵시고,

하날님 전(前) 명을 밧아, 용마하도(龍馬河圖) 다시 그려,

사람사람 전해여셔, 오는 운수(運數) 일깨시고 …

(「수덕활인경세가(修德活人警世歌)」)

하늘의 도(道)를 깨우친 어진 스승께서 하늘님의 명령을 받아 선천과 후천을 여러 번 살피고 괘(卦), 효(爻), 단(彖)의 형태 가운데 왕(旺), 생(生), 휴(休), 수(囚)하는 이치를 모두 안 후에 ‘도로 선천’이 회복되는 원리를 정확히 아시고, 하늘님의 명령을 받아 하도(河圖)를 다시 그려서 사람들에게 전해 다가오는 세상의 운수를 일깨운다고 노래한다.

… 선천지수(先天之數) 용마하도(龍馬河圖) 시중시(時中時)는,

오행상생(五行相生) 이치 따라,

상구지도(相救之道) 공산주의(共産主意),

성인군자(聖人君子) 시중(時中)키로,

사람 사람 도덕인의(道德仁義),

심써 배워 태평만세(泰平萬世) 지나더니,

후천지수(後天之數) 금구낙서(金龜洛書),

오행상극(五行相克) 이치 따라,

상극지리(相克之理) 흥왕차(興旺次)로, …

(「시세가(時勢歌)」)

선천수(先天數)인 하도(河圖)가 세상에 작용할 때는 오행(五行)이 상생(相生)하는 이치에 따라 서로 돕는 도(道)를 추구하여 함께 살아가자는 이념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성인군자가 나서 세상을 다스리니 사람들이 도덕과 인의(仁義)를 힘써 배워 태평만세를 이루었다고 노래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가 지나가자 후천수(後天數)인 낙서(洛書)가 세상에 작용하여 오행(五行)의 상극(相克)의 이치에 따라 서로 반(反)하고 극(克)하는 이치가 왕성하게 되었다고 읊는다.

… 금구낙서(金龜洛書) 후천태극(後天太極),

역수지행(逆數之行) 공교지술(功巧之術),

영웅시중(英雄時中) 다 지나고, 도로 선천(先天) 회복되야,

하도용마(河圖龍馬) 순수지행(順數之行),

상생지덕(相生之德) 운수(運數) 따라,

성인군자(聖人君子) 시중(時中)이니

(「운산시호가(運算時呼歌)」)

금빛 거북의 등에 새겨져 있었다는 낙서(洛書)는 후천도(後天圖)로 불리는데, 하도(河圖)가 무극(无極)에 해당한다면 태극(太極)을 상징한다고 노래한다. 이어서 낙서는 역수(逆數)로 행하는 치밀한 술법으로 행해졌다고 읊는다. 그런데 영웅들이 세상에 나와서 다스리던 시절이 지나가고 ‘도로 선천’이 회복되는 시대를 맞이하여 용마가 지고 나왔다는 전설이 전하는 하도(河圖)의 순수(順數)가 행하는 상생(相生)의 덕(德)이 있는 운수를 따라 이제 새로운 성인군자들이 세상을 맡아 다스릴 것이라고 읊는다.

… 때 운수(運數) 둘너보니, 선천후천(先天後天) 다 해뜬가?

도로 선천(先天) 회복(回復)되야,

동지한식(冬至寒食) 백오중(百五中)에 …

(「수덕활인경세가(修德活人警世歌)」)

시대가 변화하는 운수를 둘러보니 선천과 후천이 다하고 ‘도로 선천’이 회복되어 동지(冬至)부터 시작하여 105일째가 되는 한식(寒食)이 되는 때에 무엇인가 큰 변화의 조짐이 있을 것이라고 노래한다.

새로운 질서와 규범이 전개될 새 세상을 ‘도로 선천’으로 부른다. 이때가 되면 ‘도덕세계’가 이루어져 도덕 문명이 전개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도로 선천’의 때가 되면 도덕군자들이 출현하여 세상을 다스릴 것이라고 전망된다.

… 시방시절(是方時節) 말한진대, 선천 후천 운(運)이 역시(亦是)

다 진(盡)하고, 도로 선천(先天), 회복(回復)되야,

목덕이왕(木德以旺) 때 왓시니, 때를 알고 수도(修道)하여,

사람 사람 만은 사람, 사람마도 계천입극(繼天立極) 해여 내여,

도덕군자(道德君子) 되어보세.

(「개명공산가(開明共産歌)」)

지금 이 세상을 말하자면 선천과 후천의 운수가 다 함께 끝나고 ‘도로 선천’이 회복되는 때이다. ‘도로 선천’이 되면 목덕(木德)이 왕성해지는 시기가 될 것이니, 그 때를 잘 알고 수도에 힘써 많은 사람이 하늘을 계승하고 새로운 규범을 마련하여 도덕군자가 되어보자고 노래한다. 계천입극(繼天立極)은 하늘의 뜻을 잇고, 법칙을 세운다는 뜻이다. 『대학장구(大學章句)』 서문에 “복희, 신농, 황제, 요, 순이 하늘의 뜻을 잇고 법칙을 세운 것이며, 사도(司徒)의 직책과 전악(典樂)의 벼슬은 이 때문에 설치한 것이다.”라 했다.

… 계왕성(繼往聖) 개래학(開來學)을, 이와 갓치 하와 내니,

성현군자(聖賢君子) 이 아니며, 남의 스승 아니될까?

만세명현(萬世明賢) 다시 업네.

(「지본일신가」)

지난 시절의 성인(聖人)들은 이어받고 그들의 학문을 본받으면 성현군자가 될 것이며, 남을 가르치는 스승이 될 수 있으리라고 노래한다. 이어서 이렇게 되면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현인(賢人)이 될 수 있으리라고 읊는다.

이 외에도 「인선수덕가(仁善修德歌)」에서 “천조지응(天助地應) 조화(造化)밧아, 도통군자(道統君子) 되거되면”이라고 노래했다. 하늘의 도움을 받고 땅의 기운에 응하여 조화(造化)하면 도(道)를 통하는 군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읊은 대목이다.

‘도로 선천’을 회복하는 운수가 바로 천도(天道)가 회복되는 일과 같다고도 노래한다.

… 천도회복(天道回復) 다시 와셔,

목덕이왕(木德以旺) 하는 고(故)로,

아동방(我東方)에 우리 선생(先生),

수명우천(受命于天) 몬저 나사,

수심정기(修心正氣) 하신 후(後)의 …

(「춘강어부사(春江漁父辭)」)

하늘의 도(道)가 회복되는 시대가 다시 와서 목덕(木德)이 왕성해지기 때문에 동방(東方)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우리의 선생이 하늘의 명을 받들어 먼저 태어나셔서 수심정기(修心正氣)하셨다고 노래한다.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가 수심정기(修心正氣)를 수련의 방법으로 제시했음을 밝히고 있는 대목이다.

동학의 ‘다시 개벽’도 동학교에서 노래한 일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 다시 개벽(開闢) 차세상(此世上)에,

심성수련(心性修煉) 공부(工夫) 업셔,

본심이자(本心二字) 못 직히면, 역천순천(逆天順天) 분간(分間)업고,

사시성쇠(四時盛衰) 때를 몰라, 두서(頭緖)업시 난동(亂動)타가,

부지하경(不知何境) 다 되나니, 자세(仔細) 보고 생각(生覺)해셔,

본심이자(本心二字) 차저셔라.

(「추본수덕가」)

‘다시 개벽’하는 이 세상에 심성(心性)을 수련하는 공부를 하지 않고, 인간의 본심(本心)을 못 지키면 역천(逆天)과 순천(順天)의 구분이 없을 것이고, 사시(四時)가 성(盛)하고 쇠(衰)하는 때를 몰라 두서가 없이 어지러이 행동하다가 어떤 지경에 처했는지도 알 수 없게 될 터이니, 자세히 보고 깊이 생각해서 본심(本心)이라는 두 글자를 잘 찾으라고 노래한다. 여기서 ‘다시 개벽’은 ‘도로 선천’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동학교가사에서 동학의 ‘다시 개벽’이라는 구절이 사용된 대목이 이 사례가 유일하다. 대부분의 동학교가사에서는 동학의 ‘다시 개벽’과 대비하여 ‘도로 선천’이라고 노래한다. 따라서 동학이 ‘다시 개벽’을 노래했다면, 동학교에서는 ‘도로 선천’을 노래했다고 볼 수 있다.

Ⅲ. ‘도로 선천’사상의 특성

첫째, ‘도로 선천’사상은 복고적 체계를 지향한다.

동학(東學)의 ‘다시 개벽’과 동학교(東學敎)의 ‘도로 선천(先天)’은 용어상 대비된다. 동학의 ‘다시 개벽’은 인류사의 태초에 있었던 개벽(開闢)에 맞먹을 정도의 ‘새로운 열림’인 개벽이 한 번 더 올 것이라는 사상이다. 정작 동학의 교조인 수운 최제우는 사용하지 않았던 표현이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태초의 개벽은 선천개벽(先天開闢)으로, 19세기 후반 이후에 다시 올 개벽은 후천개벽(後天開闢)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동학의 ‘다시 개벽’은 앞으로 이상적인 시대가 오고 있다는 진취적(進取的)이고 진보적(進步的) 사상체계다. 인류 역사의 진보를 믿는 경향이 뚜렷한 사상이다.

반면 동학교에서는 ‘도로 선천(先天)’이라고 노래하여 인류 역사의 초기 단계에 이미 황금시대인 ‘완전한 세상이나 시대’라는 황금시대가 있었다고 노래한다. 동학교에서는 이를 ‘선천(先天)’이라고 표현하여 완성, 완전, 완벽, 이상 등의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다. 요컨대 인류는 태초의 완전성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 셈이다. 따라서 동학교의 주장에 따르면 선천에 대비되는 후천(後天)은 단순히 다가오는 세상이나 미래일 따름으로, 미완성되고 분열되고 타락한 시대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동학교의 ‘도로 선천’사상은 과거의 제도, 사상, 정치, 체재, 풍습 따위로 돌아감을 의미하는 복고적(復古的) 사상체계다. 동학의 ‘다시’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상을 지향한다면, 동학교의 ‘도로’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사상을 지향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인류 역사의 초기에 이미 완전하고 완벽한 이상적 상태가 있었다는 생각이 결집된 사상이다.

둘째, ‘도로 선천’사상은 과거지향적 사상이다.

‘도로’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태초의 완전하고 완벽한 상태로의 회복이나 돌아감을 추구하는 과거지향적 사상이다. 과연 인류의 역사가 완성과 이상을 추구해 전행되어 왔던 진보(進步)의 역사였는가에 대한 심각한 반성을 촉구하는 사상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는 이른바 ‘발전(發展)’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시점에 서 있다. 낡고 유치한 상태에서 새롭고 정밀한 형태로의 진행이 이루어진 것을 과연 바람직한 일로 평가해야만 할 것인가? 소박하고 단순한 형태에서 화려하고 복잡한 모습을 지향한 일에 높은 가치를 매기기만 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미 지난 과거를 천하게 여기고 무시하는 성향이 있다. 과거는 이미 흘러간 사건이어서 소홀히 볼 수 있다는 말인가? 과거는 불완전한 것이고, 미래만 완전한 것이란 말인가? 인류사에 전개되었던 대부분 위대한 종교에서는 지난 과거를 높이 평가하고 바람직한 이상향으로 묘사한다. 유교의 공자(孔子)는 전설적인 임금으로 전하는 요순(堯舜)이 살던 시대를 이상적으로 그렸고, 주공(周公)이 다스리던 정치를 자신의 이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도교의 노자(老子)는 태초의 완전성을 무(無) 또는 박(樸)으로 표현했고 이에 복귀하는 사상을 일정하게 제시했다. 불교의 석가모니(釋迦牟尼)는 과거불(過去佛)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줌으로써 완벽했던 과거를 이상화했다. 그리고 기독교의 교리체계에서는 태초의 에덴동산이라는 낙원의 회복을 지향하며,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의 인류 역사를 타락의 역사로 규정한다. “태초에 낙원(樂園) 또는 이상향(理想鄕)이 있었다.”, “역사의 시작은 완전함에서 출발했다.” 등의 사상은 동서고금을 관통하고 있는 사유체계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학교는 복희씨(伏羲氏)가 살고 다스리던 ‘선천(先天)’시대가 완벽한 역(易)의 체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고방식을 강조하여 이를 ‘도로 선천’이라는 용어로 제시한다. 따라서 기술문명과 과학과 의학의 발전만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볼 필요가 있다. 인류는 세월이 지나갈수록 ‘타락’하며 결코 ‘발전’하고 ‘진보’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의 필요성이 요청되는 시점이다. 이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혼란과 분열이 가중된다는 사고방식이며, ‘태초’와 ‘처음’에는 완벽하고 완전한 이상적 상태였다는 인식이 집약된 관념체계다.

셋째, ‘도로 선천’사상은 후천이 아니라 선천을 이상시대로 상정하는 사상이다.

대부분의 한국 신종교에서는 다가올 후천을 이상시대로 규정한다. 이에 반해 동학교에서는 선천과 후천이 지나갔고, 이제 ‘도로 선천’이 회복될 때가 되었다고 강조한다. 이는 매우 독창적인 사상인데, 낡고 미완성된 선천이 아니라 새롭고 완전한 선천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선천 → 후천 → ‘도로 선천’으로 진행하는 것이 인류 역사의 과정이라고 본다. 선천의 가치와 의의를 새롭게 규정하고 강조했다는 특성이 있는 것이다. 선천을 이미 지나간 타락의 시대가 아닌 다가올 이상시대의 가치를 지닌 형태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동학교의 ‘도로 선천’사상은 인류사의 진행과 관련하여 독특하고 유의미한 사상으로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도로 선천’사상은 ‘나아감’이 아니라 ‘돌아감’을 추구하는 사상이다.

‘도로 선천’사상은 ‘진(進)’이 아니라 ‘복(復)’의 사유에 기반한 사상이다. 인류 역사의 태초에 있었다고 전하는 황금시대로의 돌아감을 염원한다. 이와 관련하여 도교의 ‘반(反)’ 또는 ‘반(返)’사상에 비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근원으로 돌아가고, 근본을 회복하는 일을 추구하는 일련의 사유체계가 집약되어 노래한 것이 바로 동학교의 가사라고 평가할 수 있는 지점이다.

다섯째, ‘도로 선천’사상은 막연한 기대나 상상이 아니라 인간이 지닌 구체적 그리움이나 향수(鄕愁)를 자극하는 사상이다.

향수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근원적 그리움이다. 따라서 동학교의 ‘도로 선천’사상은 인류가 겪었던 태초의 상태를 다시 회복하자는 사상이다. 인류가 아직 겪어보지 않은 미래에 대한 상상을 추구하려는 사상이 아니라 이미 겪었던 과거를 바탕으로 새 시대를 준비하고 건설하자는 사상이다. 상상은 자칫하면 헛된 환상이나 망상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현재적 시점에서 지나왔던 아름다웠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돌아가려는 순박한 마음에서 출발하여 인류가 그토록 간절하게 그리워했던 이상향을 이 땅에 건설하자는 사상이 바로 ‘도로 선천’으로 표현되었다.

Ⅳ. ‘도로 선천’사상의 의의

첫째, ‘도로 선천’사상은 ‘미래’가 아닌 ‘과거’에 중점을 둔 사상이다. 따라서 ‘도로 선천’은 ‘과거’로의 복원과 회복을 추구한 사상이다.

‘도로 선천’사상은 지향의 목표를 이미 지나온 시대에 두었다. 이상사회의 지향점을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가 아니라 이미 지나간 시절의 구체적 과거에 두었던 것이다.

둘째, ‘과거’에 대한 인식을 제고시켰다.

‘도로 선천’사상은 완전과 이상을 향한 인간의 인식 방향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거시적으로 본다면 이는 동양적 사고방식의 회복과 복원을 추구한 생각의 흐름을 집약시켰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셋째, ‘도로’는 ‘근원으로 돌아가자.’, ‘근본을 회복하자.’라는 실제의 행동을 유발하고 권유하는 생각이다.

동학교의 ‘도로 선천’사상은 원시(原始) 또는 태초(太初)의 이상적인 상태를 복원하자는 운동을 진작시킬 구체적인 실마리를 제공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학교는 당대의 사회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일정하게 촉구했다. ‘시간이 갈수록 진보 · 발전하고 있다.’라는 대부분 사람의 생각에 제동을 걸고, 이에 대해 다시 사유해보라는 종교적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도로 선천’사상은 돌아가고 회복하는 주체적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Ⅴ. 맺음말

인류가 누렸던 혹은 누릴 이상적 사회를 뜻하는 ‘황금시대’가 지난 시대에 ‘이미 있었다’라고 믿는 경우와 ‘앞으로 다가올 것이다’라고 믿는 경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동학(東學)의 ‘다시 개벽’사상이 다가올 ‘후천(後天)’을 강조했다면 동학교(東學敎)의 ‘도로 선천’사상은 돌아가서 회복해야 할 ‘선천(先天)’을 강조했다.

동학교의 ‘도로 선천’사상은 당대의 여러 신종교와는 다르게 선천(先天)에 대해 독창적인 관념과 인식을 부여했으며, 새로운 해석의 틀을 제시했다. 선천을 폐기해야만 할 낡은 시대로 규정했던 일에서 벗어나 지향해야 할 새 시대로 이해했던 것이다. 따라서 동학교의 ‘도로 선천’사상은 동양 전통의 과거로의 회귀와 복귀를 추구하던 일을 계승한 사상의 하나로 재평가되어야 하겠다. 그리고 ‘도로 선천’사상은 앞으로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의 ‘원시반본(原始返本)’사상과의 관련성이 좀 더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동학교의 ‘도로 선천’사상은 역(易)의 변화에 따라 천지의 원리와 질서가 자연적으로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다소 나약한 생각이 기본이 된다. 가사라는 형태로 제시되었다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점이 먼저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도로 선천’사상에 구체적 방법론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은 단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천지에서 주어지는 운수(運數)에 순응해 이에 따르거나 인간은 운명(運命)이나 숙명(宿命)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관념체계가 주를 이룬다. 따라서 동학교에서 제시하는 인간상은 하늘의 운명을 묵묵히 따르며 살아가는 개인이며, 인간의 역할이나 능력을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한다.

그리고 동학교의 ‘도로 선천’사상에는 윤리의식이나 도덕적 덕목이 부족하다. 도덕군자, 현인, 성인 등의 이상적 인간상을 노래하고 있지만, 이를 추구하는 구체적 방법론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주문을 외울 것과 선하게 살라는 당위성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평범한 인간이 과연 어떻게 해서 이상형의 인간으로 승화할 수 있는지는 노래하지 않은 채, 하늘과 땅으로 표현되는 자연의 질서와 원리를 따르라는 구절만 반복하고 있는 듯하다. 단순히 노래와 열정과 구호에 그친 느낌이 있고, 단계적 수련이나 점진적 추구 방법을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동학교에서 지향하는 ‘도로 선천’사상에는 정작 선천(先天)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따라서 선언적 구호에 그친 감이 있다. 선천의 모습에 대해 노래하거나 선천에 대한 간략한 언급이라도 있었더라면 더욱 확고한 사유체계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편 동학교의 ‘도로 선천’사상은 체계적인 철학적 개념이나 사유방식을 거친 주장이나 이론이 아니라는 점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동학교의 가사를 통해 ‘도로 선천’을 노래한 창시자는 종교가 또는 사상가였다는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는 결단코 철학자나 이론가가 아니었다. 자신의 고유한 종교적 체험을 통해 일어난 심정을 가사로 표현했던 것이다.

Notes

본파는 영남 안동지방에 있는 김낙춘(金洛春), 김주희(金周熙) 등의 발기로 기시(其時) 북접도주(北接道主) 최시형(崔時亨)을 상대로 남접도주(南接道主)라는 명칭으로 각립(角立)한 것이다. 오지영, 『동학사』 (경성: 영창서관, 1940), p.240.

청림선생(靑林先生)으로 불리기도 했다. 아버지 김윤집(金允集, 1823~1881)은 동학에 입교하여 수운(水雲)으로부터 문벌과 헌성절차 등을 다수 전수받고 배웠다고 전한다. 삼풍은 계룡산 갑사 아래의 암자에서 수도하였고,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그에 가담하였으며 이후 논산군, 영동군, 속리산 등지로 피신하였다.

촌산지순(村山智順)은 『조선의 유사종교』 (경성: 조선총독부, 1935), 233면에서 김시종(金時宗)이 1908년경부터 경북 안동지방에 포교하기 시작했고, 그의 제자 김낙춘(金洛春)을 거쳐 손제자(孫弟子)인 김주희가 1915년 무렵에 경북 상주군 은척면에 본거를 두고 포교에 노력하였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후대의 증언에 따르면 김시종과 김낙춘은 허구의 인물이라고 한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동학가사』 (성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79), p.3.

촌산지순은 김주희가 경북 상주에 세운 동학교는 북접도주 해월(海月)의 동학에 대항한 남접도주 김시종(金時宗)의 동학을 이은 교단이라고 주장하였다. 최길성·장상언 공역, 『조선의 유사종교』 (대구: 계명대학교출판부, 1991), p.195. 시종 또는 시종(侍宗)이라는 가공의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었다. 김문기·김용만, 「상주 동학교와 동학가사 책판 및 판본 연구」, 『퇴계학과 한국문화』 39 (2006), p.166.

40권에 달하는 『용담유사』는 수운 최제우의 『용담유사』 8편 외에도 특별히 100편의 방대한 가사가 수록되어 있다. 이 글에서 인용한 동학교가사는 김문기 주해, 『동학가사』 1 (서울: 역락, 2009), 김문기 주해, 『동학가사』 2 (서울: 역락, 2009), 김문기 주해, 『동학가사』 3 (서울: 역락, 2012), 김문기 주해, 『동학가사』 4 (서울: 역락, 2012), 김문기 주해, 『동학가사』 5 (파주: 태학사, 2016), 김문기 주해, 『동학가사』 6 (파주: 태학사, 2016) 등에서 가려 뽑은 것이다.

1944년에 교주 김주희와 부교주 김낙세가 옥고(獄苦) 끝에 병사한 이후 김주희의 맏아들 김덕용(1928~1987)이 계승하였고, 2019년 현재 김주희의 손자인 김정선이 접장으로 있다.

관련 주요 논문으로는 최원식, 「동학가사 해제」, 『동학가사』 1 (성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79); 김기현, 「동학가사에 나타난 동학의 변모 : 『용담유사』와 『상주 동학가사』를 중심으로」, 『문학과 언어』 16 (1995); 김문기·김용만, 「상주 동학교와 동학가사 책판 및 판본 연구」, 『퇴계학과 한국문화』 39 (2006); 김상일, 「상주지역 동학교단의 활동과 동학가사」, 『동학학보』 10-2 (2006); 김상일, 「전, 후기 동학가사의 연구」, 『동학연구』 14·15 (2003); 최종성, 『동학의 테오프락시 : 초기 동학 및 후기 동학의 사상과 의례』 (서울: 민속원, 2009); 박병훈, 「상주 동학교 선천회복사상 일고(一考)」, 『종교학연구』 33 (2015) 등이 있다.

최원식은 동학교에서 선천(先天)은 조화로운 세계이고, 후천(後天)은 타락한 세계이며, 순환사관에 따라 다가올 세계를 소극적으로 기다리는 일을 중시한다고 설명했다. 최원식, 「동학가사 해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엮음, 『동학가사』 1 (성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79)을 참고하시오.

박병훈, 앞의 글.

김상일, 「상주지역 동학교단의 활동과 동학가사」, 『동학학보』 12 (2006), pp.190-192.

최종성, 앞의 책, pp.228-229.

김기현, 앞의 글, pp.216-217.

최원식, 「동학가사 해제」, 『동학가사』 1 (성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79)을 참고하시오.

박병훈, 앞의 글, p.91.

이러한 점은 다음의 책에도 잘 지적되어 있다. 김형기, 『후천개벽사상 연구』 (파주: 한울아카데미, 2004), p.74. 한편 한우근도 이미 동학(東學)에 운수(運數)와 시운관(時運觀)이 뿌리박혀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운수순환’의 측면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동학(사상)은 후천개벽(後天開闢), 지상천국(地上天國)을 예언한다.”라고 말하며 동학의 개벽관을 후천개벽으로 당연하게 여긴 점은 아쉽다. (한우근, 「동학사상의 본질」, 『동방학지』 10 (1969).

이는 ‘개벽’사상이 초기 동학에 있어 그 중요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시사한다. 순한글로 쓰여진 『용담유사』의 경우에 ‘개벽’이라는 용어는 다섯 차례 등장하는데, 이 가운데 두 차례는 ‘다시 개벽’이라는 용어로 쓰였다. 그리고 이 ‘다시 개벽’은 ‘괴질 운수’라는 용어와 함께 쓰였다. ‘개벽’만 단독으로 쓰인 세 차례는 모두 한울님과 관련되어 사용되었다.

민중서림편집국, 『엣센스 국어사전』 제6판 (서울: 민중서림, 2006), p.619.

『尙書正義』 18卷.

『尙書正義』 12卷.

“ … 용담수운(龍潭水雲) 대선생주(大先生主), 하날님 전(前) 밧은 교훈, 일일성출(一一成出) 기록하니, 대전가사(大全歌詞) 아니신가? … ” 「지시개명가(知時開明歌)」라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볼 때, 동학교에서도 수운 최제우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그의 저작인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한울님께서 수운에게 내리신 교훈”으로 믿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양시생(一陽始生)하는 동지(冬至)에 만물의 시작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수왕지절(水旺之節)은 수덕(水德)이 왕성해지는 때를 뜻한다.

왕(王)은 왕(旺)의 오자(誤字)로 보인다.

김탁, 『정감록과 격암유록』 (서울: 민속원, 2021)을 참고하시오.

선천과 후천이 서로 바뀌거나 변하는 이치와 선천이 다시 처음으로 회복되어 수(水)가 목(木)을 생(生)하여 목덕(木德)이 왕성한 운수를 깨닫는 일을 뜻한다. 김문기 주해, 「성경(聖經)」 권1, 『국역 상주동학경전』 (서울: 역락, 2008), p.157. 후천이 이미 쇠하여 선천이 다시 회복되어서 목덕이 왕성한 때를 맞이한다고도 주장한다. 김문기 주해, 「성경(聖經)」 권2, 『국역 상주동학경전』 (서울: 역락, 2008), pp.161-162.

도선생(都先生)은 가장 높은 선생이라는 뜻이다.

『주역(周易)』에 있어서 괘(卦)의 양효(陽爻)를 구(九)라 하고, 음효(陰爻)를 육(六)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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