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도수(度數)라는 용어는 회수(回數), 크기를 나타내는 수, 제도, 법도 등을 뜻한다. 중국을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 도수는 오래전부터 사용되어왔으며, 우리나라에도 신라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각종 문집에서 가끔씩 사용되었고 실록(實錄) 자료에도 간혹 보인다.
그런데 이 도수라는 용어가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1909)에 의해 종교적으로 재해석되어 ‘세상을 다스리는 법칙’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특히 도수는 새롭게 열릴 후천(後天)을 지배할 새로운 법도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이른바 그의 천지공사(天地公事)에서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그리고 증산의 계시를 받아 무극도(無極道)와 태극도(太極道)라는 새로운 종교운동을 일으킨 정산(鼎山) 조철제(趙哲濟, 1895~1958)는 증산이 사용했던 도수에 ‘이상향을 이루기 위한 모든 종교적 행위’라는 보다 확대된 의미를 부여하였다.
한국종교사에서 도수라는 용어는 조선 말기에 출현한 종교적 천재였던 증산 강일순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었고, 도수사상의 맥(脈)은 정산 조철제가 창교한 무극도와 태극도에 면면히 이어졌으며, 훗날 박한경(朴漢慶, 1917~1996)이 1969년에 세운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로 발전적으로 계승되었다.
이 글은 도수라는 용어가 종교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독창적인 사상체계를 이루는 과정을 살피고 증산과 정산에게 있어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고찰하여, 향후 증산교단에서 도수사상을 정립하고 완성하는데 약간의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도수가 가진 본래적 의미와 용례를 살펴보고 종교적으로 재해석되어 도수사상으로 새롭게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본 다음, 도수사상의 역사적 전개에 대해 증산과 정산의 도수사상으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또 정산이 사용한 도수의 다양한 종류를 살펴보고 그 내용을 분석하도록 한다.
연구방법은 대순진리회의 『전경(典經)』(1974) 등에 나오는 도수라는 용어와 사용례를 분석하여 그 종교적 의의를 알아보는 것이다.
이 연구는 도수라는 용어에 주목하여 이후 도수사상으로 체계화되는 과정을 밝히는데 학술적 의의가 있다. 그리고 향후 태극도와 대순진리회에서 창교주 정산의 사상을 조명하는 일에 일익을 담당하고자 한다.
Ⅱ. 도수의 정의와 도수사상의 의미
도수(度數)는 도(度)와 수(數)가 합쳐진 용어다. 도(度)는 법도(法度), 법제(法制), 법(法), 제도(制度), 정해진 규정, 기량, 자[尺], 정도, 모양, 횟수, 각도, 천체의 속도, 때, 기회 등의 명사로 사용되거나 기준으로 삼아 따르다, 넘다, 나르다, 떠나다, 깨닫다, 헤아리다, 미루어 짐작하다, 수량을 따지어 셈하다, 비교하다, 생각하다, 바로잡다 등의 동사로 사용되는 글자다.1)
그리고 수(數)는 계산하다, 셈에 넣다, 세어서 말하다, 헤아리다, 살피다, 책망하다, 여러 번 되풀이하다 등의 동사로 사용되거나 양(量)을 헤아릴 때의 칭호, 일정의 수량이나 수효, 산법(算法), 규칙, 등급, 이치, 운명, 운수, 정세, 기술, 꾀, 수단, 역법(曆法), 점치는 법 등의 명사로 사용되는 글자다.2)
따라서 도수는 첫째, 거듭하는 회수, 둘째, 각도, 온도, 광도 등의 크기를 나타내는 수를 가리키고, 셋째, 정해진 제도, 법도, 술수를 뜻하는 용어다.3) 도수라는 개념은 수(數)를 우주의 생성과 변화의 원리로 이해하는 동양 전통의 상수역학(象數易學)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4)
이제 도수의 용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주례(周禮)』 「천관(天官)」의 소재지직(小宰之職)에 대한 주(注)에 “육관(六官)에 속하는 것은 360인데, 천지사시일월성진(天地四時日月星辰)의 도수(度數)를 본떠서 천도(天道)를 갖춘다.”라 했다. 그리고 『귀곡자(鬼谷子)』 「패합(捭闔)」에 “그 권형(權衡)과 경중(輕重)을 보고 도수로 삼는다.”라 했다. 또 『회남자(淮南子)』 「범론훈(氾論訓)」에 “이것을 도수로 해석한다.”라 했다. 한편 『후한서(後漢書)』 「경엄전(耿弇傳)」에 “시간의 도수는 서로 포용함이 족하지 않은가?”라 했다. 이들 용례에서 도수는 거듭되는 횟수, 각도와 온도 등의 크기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나아가 도수는 정해진 제도나 법도와 술수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주례(周禮)』 「춘관(春官)」 묘대부(墓大夫)에 “그 지위를 바르게 하고, 그 도수를 관장한다.”라 했다. 이 구절의 주(注)에 “도수는 벼슬 등의 크고 작음이다.”라 했다.
또 『장자(莊子)』 「천도(天道)」에 “예법(禮法), 도수(度數), 형명(刑名)을 상세히 따르는 것은 다스림의 말(末)이다.”라 했다. 그리고 『소(疏)』에 “수(數)라는 것은 계산(計算)하고, 헤아리고, 장척(丈尺)이다.”라 했다.
그리고 『상자(商子)』 「착법(錯法)」에 “법(法)에는 도수가 없고, 날마다 번거로움을 일삼는다.”라 했다. 또 『한비자(韓非子)』 「난(難)」 일(一)에는 “관중(管仲)은 이 도수를 환공(桓公)에게 밝게 하지 않았다.”라 했다. 그리고 『한서(漢書)』 「예악지(禮樂志)」에 “도수를 쌓고, 예의(禮義)를 정한다.”라 했다.5)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도수에 대한 다음과 같은 용례가 확인된다. 우선 최치원(崔致遠, 857~?)의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 제15권 「재사(齋詞)」에 “지금 달은 도수가 꽉 차고”라는 구절이 보인다. 그리고 이곡(李穀, 1298~1351)의 『가정집(稼亭集)』 제1권 잡저(雜著) 「석문(石問)」에 “월성신이 제자리를 잡고 도수에 맞게 운행하게 되었으니”라는 구절이 있다.
권근(權近, 1352~1409)의 『동문선(東文選)』 제91권 「불씨잡변설서(佛氏雜辨說序)」에 “해와 달의 둥글고 이지러지는 것이 모두 도수가 있어서, 천만세(千萬世)를 두고 사용하여도 틀림이 없는 것이니, 하늘이 하늘된 이치가 정해져 있는 것이다.”라 했다.
한편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고산유고(孤山遺稿)』 제4권 서(書)ㆍ단(單) 「정 진사 길보의 문목에 답하다」에 “만사(萬事)에는 모두 도수가 있어서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마는”이라는 구절이 보인다. 또 『고산유고』 제 6권 「비가 오고 볕 나는 것에 대한 대책문<對雨暘策>」에 “하늘의 정해진 도수가 있어서”라는 내용이 있다. 천체 운행의 법칙이라는 의미를 벗어나 도수가 “만사를 결정짓는 정해진 법칙”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어 해석되었다.
허목(許穆, 1595~1682)의 『기언(記言)』 제51권 속집 「집정(執政)을 논한 차자」에 “인군이 도를 닦지 않으면 해가 그 도수를 잃어 어둡고 빛이 없으니”라는 내용이 전한다.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의 『갈암집(葛庵集)』 제7권 「경연강의(經筵講義)」 10월 13일(계미)에 “제향(祭享)하는 도수를 참작하여”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는 도수가 “정해진 절차나 규칙”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현일의 아들인 이재(李栽)가 쓴 『갈암집(葛庵集)』 부록 제4권 「선부군(先府君) 가전(家傳)」에 “율려(律呂)의 청탁(淸濁)과 성력(星曆)의 도수”라는 내용이 있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경세유표(經世遺表)』 제1권 「천관이조(天官吏曹)」 제 1에 “천지(天地), 사시(四時), 일월(日月), 성신(星辰)의 도수를 본떠서 천도(天道)가 구비되었다.”는 구절이 보인다.
한편 『조선왕조실록』 정종 2년 경진(1400) 12월 1일(신묘)에 “거리의 부녀자를 겁탈하여 방자하고 음란한 짓이 도수가 없고”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는 도수가 “반드시 지켜야 할 도덕의 준거”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정종 2년 경진(1400) 12월 19일(기유)에 “목성(木星)이 저성(氐星)에 들어가고, 화성(火星)이 도수를 잃었다.”는 구절이 있다.
나아가 선조 30년 정유(1597) 8월 25일(계미)에 “천도가 차고 기우는 것이 본시 정해진 도수가 있으니”라 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천문(天文)과 천체(天體) 운행(運行) 원리와 그 운행과 관련된 수량이나 수치라는 의미로 도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해, 달, 별이 운행하는 일정한 법칙을 뜻하는 용어로 도수가 사용되었다. 결국 도수는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정해진 법도 또는 그 횟수나 크기를 가리키는 용어로만 사용되었던 것이다. 간혹 도수는 “정해진 법칙”, “정해진 절차나 규칙”, “도덕의 준거나 기준” 등으로 그 의미가 확대되어 해석되기도 했다. 도수는 “하늘이 ‘정해놓은’ 법칙이나 절차”라고 이해되어, 그 고정불변성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도수는 일반적으로 거듭되는 횟수 또는 온도와 각도 등의 크기를 나타내는 수를 가리킨다. 그러나 종교에서는 ‘운도(運度)의 법수(法數)’를 의미한다. 즉 천지가 한 번 크게 바뀌는 것, 성주괴공(成住壞空)이 한 번 바뀌는 것, 선천과 후천이 바뀌는 것을 뜻한다. 이 도수의 변화는 자연의 진강급(進降級)의 원리에 따라 자연적으로 변화된다고 본다.
그런데 증산 강일순은 상제(上帝)의 능력과 힘으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쳐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의 도수를 조정하여 낡은 선천을 마감하고 후천선경이 돌아오게 했다고 주장하고 믿어진다.6)
기존에 도수가 천체가 운행하는 각도나 크기를 뜻하던 것에서 벗어나 증산은 이를 상제의 권능으로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증산은 자연이나 초월적 존재에 의해 단순히 주어지던 정해진 도수를 답습한 것이 아니라 이제 도수는 충분히 변화가 가능하고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증산은 천지의 운행하는 도수가 정해진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천지가 바뀌는 도수를 스스로의 힘으로 개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도수라는 용어와 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종교적 재해석을 가했던 인물이 바로 증산 강일순이다. 도수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종교적으로 다시 해석하는 일이 증산에 의해 비로소 가능해진 것이다. 이후 증산교단에서는 새로운 천지를 완성시킬 수 있는 새로운 도수가 신앙대상인 증산에 의해 결정되고 집행되었다고 믿는다.
증산은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면서 특정한 공사의 내용을 ‘○○도수’라고 표현하였다. 대표적인 예로는 ‘해원도수’, ‘해왕의 도수’, ‘무당도수’, ‘선기옥형 도수’, ‘일월대어명 도수’, ‘천지대신문 도수’, ‘헛도수’, ‘고부 도수’, ‘독조사 도수’, ‘정음정양의 도수’, ‘문왕과 이윤의 도수’ 등이 있다.
증산과 정산의 언행록인 『전경』에는 도수에 대해 첫째, 천지, 우주 자연의 법칙 또는 원리의 의미를 지니고, 둘째, 증산이 행한 천지공사의 구체적 목록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고, 셋째, 천지 법칙의 변화과정, 기간 및 절차를 의미한다.7)
이제 도수사상의 형성과 전개과정을 경전기록을 중심으로 하나씩 살펴보면서 도수에 대한 종교적 재해석이 어떻게 이루어져왔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먼저 『증산천사공사기』(1926)에 나오는 도수와 관련된 기록들을 살펴보자. 따라서 도수사상으로 불릴 수 있는 사상체계는 지금으로부터 약 1백여 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고유하게 형성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삼계대권(三界大權)을 주재(主宰)하야 선천(先天)의 도수(度數)를 뜯어고치고, 후천(後天)의 무궁(無窮)한 운명(運命)을 열어 선경(仙境)을 세우려 함이라.…그러므로 내가 천지도수(天地度數)를 정리(正理)하고 신명(神明)을 조화(調和)하야…먼저 신도(神道)를 조화(調和)하야 굳게 도수(度數)를 정하면 저절로 기틀이 열려 인사(人事)의 성공을 나타내나니 이것이 천지공사(天地公事)니라.8)
증산은 삼계대권을 주재하는 지고(至高)의 존재인 자신이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칠 능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선천에서 후천으로 새롭게 바뀌는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인간계와 신명계의 운명을 새로 정하는 일이 바로 도수를 새로 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선천의 도수를 후천의 도수로 뜯어고치는 일의 목적은 바로 신선세계를 지상에 건설하고자 함이다.
그리고 증산은 선천에는 상극(相克)이 인간과 사물을 지배하였기 때문에 대대로 원한이 쌓이고 맺혀 하늘, 땅, 인간계의 삼계(三界)에 가득 찼다고 주장한다. 하늘과 땅이 상도(常度)를 잃었기 때문에 인간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이 생긴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을 둘러싼 재앙을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천지도수를 바르게 정리하여야 한다. 그 주체는 ‘나’로 표현되는 증산 자신이다.
이제 다가올 후천은 상생(相生)의 도가 지배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증산에 의해 도수가 새롭게 정해졌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강조된다. 그리고 도수를 새로 정하는 일은 신도(神道)로 표현되는 신비한 세계에서 먼저 풀어야 된다. “신도(神道)를 조화하여 굳게 도수를 정하면” 저절로 새로운 기틀이 열려 인사(人事)가 모두 성공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천지공사의 핵심이라고 증산은 주장했다.
내가 삼계대권(三界大權)을 맡았으니, 선천(先天)의 모든 도수(度數)를 뜯어고치고 후천(後天)의 새 운명(運命)을 열어서 선경(仙境)을 만들리라 하심으로…9)
증산은 자신이 천, 지, 인 삼계를 다스리는 큰 권한을 맡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주장에 힘입어 비로소 그가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쳐 앞으로 전개될 새 세상인 후천의 새로운 운명을 정할 것이며, 그 결과 신선세계가 곧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유발되었다.
내가 삼계대권으로 천지(天地)를 개조(改造)하야 선경(仙境)을 열고…세계 창생을 건지려 할 새…10)
위의 인용문에서 증산은 자신이 삼계대권을 가지고 하늘과 땅을 ‘개조(改造)’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개조’는 ‘새롭게 뜯어고친다.’는 의미이며, 원래 정해진 선천의 도수를 후천의 도수로 새롭게 바꾼다는 말이다.
천사(天師) 가라사대 매양 사사(私事)라도 천지공사의 도수(度數)에 부쳐두면 그 도수에 이르러 공사(公私)가 다 끌린다 하시더라.11)
증산은 제자 김병욱에게 백남신이 부친의 유골을 도둑맞았다가 정확히 처서일(處暑日)에 되찾은 일을 설명하면서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말을 했다. 아무리 사적이고 개인적인 일이라 할지라도 천지공사의 도수에 따라 정해놓으면 그 때가 이르러 공과 사 모든 일이 다 풀린다는 말이다.
천사 가라사대 천지를 개벽하야 선경을 세우려면 먼저 천지도수를 조정(調正)하며 해원(解冤)으로써 만고신명(萬古神明)을 조화하고, 또 대지 강산의 정기를 통일하리로다.12)
증산은 천지를 새롭게 열어 신선세상을 이 땅에 건설하려면 먼저 천지도수를 바르게 정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낡은 세상과 하늘을 지배하고 다스리던 도수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새 세상을 세운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여기서 천지도수는 “세상을 지배하는 원칙이나 원리”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천지도수는 삼계대권을 지닌 존재인 증산에 의해 새롭게 바뀔 수 있다고 강조된다.
상제께서 삼계가 착란하는 까닭은 명부의 착란에 있으므로 명부에서의 상극도수를 뜯어고치셨도다. 이로서 비겁에 쌓인 신명과 창생이 서로 상생하게 되었으니 대세가 돌려 잡히리라.13)
증산은 온 세상이 어지러운 이유는 명부(冥府)가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에 증산은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우선 명부의 상극도수(相克度數)를 뜯어고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증산은 먼저 명부의 그릇된 도수가 바로잡혀지자 이에 따라 자연스레 현세에 상생(相生)의 도수와 질서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명부(冥府)의 질서가 새롭게 정해져야 된다는 설명이다.
결국 도수사상은 증산이 자신이 바로 상제(上帝)라는 종교적 자각에서 비롯되었고, “이제 선천상극(先天相克)의 도수를 후천상생(後天相生)의 도수로 바꾼다.”는 그의 종교적 선언에서 형성되었다.
Ⅲ. 도수사상의 역사적 전개와 도수의 종류
이 글에서는 『전경』(1974)을 중심으로 인용한다.14)
증산은 후천의 도수를 새롭게 정한 존재로 믿어진다. 이렇게 정해진 도수에 따라 무위이화(無爲而化)로 새로운 세상인 후천이 열릴 것이라는 주장되었고, 그에 대한 다양한 믿음이 유발되었다.
…인사는 기회가 있으며 천시는 때가 있으니 그 기회와 때를 기다릴 것이니…15)
“하늘의 이치 또는 하늘의 때”에는 일정하고 정해진 법도와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새롭게 열리는 세상에는 새로운 도수가 반드시 필요한데, 도수를 새로 만드는 것이 천지공사의 규범이라는 주장이다.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선천에서는 상극지리가 인간과 사물을 지배하였으므로 도수가 그릇되어 제자가 선생을 해하는 하극상(下克上)의 일이 있었으나 이후로는 강륜(綱倫)이 나타나게 되므로 그런 불의를 감행하지 못할 것이니라.」16)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의 무궁한 선경의 운로를 열어서 선천에서의 상극에 따른 모든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道)로써 세계의 창생을 건지려는 상제의 뜻은 이미 세상에 홍포된 바이니라.17)
도수는 곧 천지도수이다. 하늘과 땅으로 표현되는 온 세상의 질서를 가리킨다. 바로 이 도수를 ‘뜯어고치는 일’이 천지공사의 핵심이다. 상극의 질서를 상생의 질서로 근원적이고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일이 증산이 행한 천지공사의 요체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삼계에 쌓였던 온갖 원한이 풀려 참혹하게 전개되었던 모든 재앙이 없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천지도수를 새롭게 고치는 일은 상생의 도수를 이 세상에 펼치는 일이다. 이에 따라 이 세상은 신선이 사는 세상으로 변할 것이며, 억지로 행하지 않고 굳이 말도 필요가 없이 다스려지고 교화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쳐 물샐틈없이 도수를 짜 놓았으니 제 한도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18)
증산은 “하늘과 땅을 뜯어고치는” 일을 행했던 존재로 믿어진다. 증산은 물 한 방울조차 새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도수를 새로 짠’ 존재로 신격화된다. 증산이 짜 놓은 도수가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레 모든 일이 완벽하고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이상향이 전개될 것이라고 강조되는 것이다.
그리고 위의 인용문과 거의 비슷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전한다.
…신도를 바로잡아 모든 일을 도의에 맞추어서 한량없는 선경의 운수를 정하리니 제 도수가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19)
이 인용문의 “기틀”은 패러다임(paradigm)과 유사하다. 패러다임은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기존에 있어왔던 인식체계와 세계관을 벗어난 초월적이고 전혀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1908년 4월에 증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하는 일은 농담 한 마디라도 도수에 박혀 천지에 울려 퍼지니 이후부터 범사에 실없이 말하지 말라」고 꾸짖으셨도다.… 20)
증산이 던지는 모든 말은 “도수에 박혀 천지에 울려나간다.”고 표현된다. 비록 농담이라도 도수로 정해지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증산은 자신이 한 말은 한 치의 어김도 없이 도수로 굳게 정해진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그만큼 증산의 권위와 능력은 지고(至高)하다고 믿어진다. 여기에서 증산의 언행 하나하나가 새롭게 도수로 정해진다는 믿음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증산의 주장은 그의 말에 의해 한번 결정된 도수는 앞으로 전개될 세상일이 증산이 프로그램한 그대로 전개된다는 믿음을 유발시켰다.
한편 증산은 도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했다.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선천에서는 상극지리가 인간과 사물을 지배하였으므로 도수가 그릇되어 제자가 선생을 해하는 하극상(下克上)의 일이 있었으나 이후로는 강륜(綱倫)이 나타나게 되므로 그런 불의를 감행하지 못할 것이니라. 그런 짓을 감행하는 자에게 배사율(背師律)의 벌이 있으리라」 하셨도다.21)
증산은 선천(先天)이라는 낡은 세상에서는 ‘정해진 법도나 규칙’인 도수가 잘못되어서 선생을 음해하는 제자가 생기기 마련이었다고 설명한다. 앞으로 오는 세상에는 그러한 불의한 행동은 제대로 된 응징을 받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뒤”는 다가올 후천(後天)이다.
그리고 1903년 여름에 증산은 다음과 같은 공사를 본다.
…「이제 서양 사람의 세력을 물리치고 동양을 붙잡음이 옳으니 대신문(大神門)을 열어 四十九일을 한 도수로 하여 동남풍을 불어 일으켜 서양 세력을 꺾으리라」고 말씀하시고…22)
위의 인용문에서 “도수”는 ‘특정한 기간’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49일이라는 일정한 기간을 도수로 삼아 동남풍을 불러오는 공사(公事)를 행했다는 주장이다. 이 공사는 서양 사람의 세력을 물리치고 동양을 붙잡으려고 행한 공사로 설명된다.
이 외에도 도수가 ‘일정한 기간’을 뜻하는 의미로 사용된 다음과 같은 일도 전한다.
상제께서 원일과 덕겸에게 「너희 두 사람이 덕겸의 작은 방에서 이레를 한 도수로 삼고 문밖에 나오지 말고 중국 일을 가장 공평하게 재판하라. 너희의 처결로써 중국 일을 결정하리라」 이르시니…23)
증산은 ‘7일이라는 기간’을 한 도수로 정하여 제자들로 하여금 “방 안에서 중국에 대한 일을 공평하게 재판”하게 했다. 도수가 정해진 특별한 기간‘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나아가 증산은 다음과 같이 선천과 후천을 설명하기도 했다.
지난 선천 영웅시대는 죄로써 먹고 살았으나 후천 성인시대는 선으로써 먹고 살리니 죄로써 먹고 사는 것이 장구하랴, 선으로써 먹고 사는 것이 장구하랴. 이제 후천 중생으로 하여금 선으로써 먹고 살 도수를 짜 놓았도다.24)
선천은 영웅의 시대요, 후천은 성인의 시대라는 것이다. 죄로써 먹고 사는 세상이었던 선천과 선으로 먹고 살 세상인 후천이 대비된다. 증산은 장차 “선으로써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인 후천이 올 수 있도록 새롭게 도수를 뜯어고친 존재로 주장되고 믿어진다. 영웅시대를 성인시대로 바꾸는 도수를 새로 짠 인물이 바로 증산이라는 입장이다. 전혀 새로운 세상이 전개되도록 우주 운행의 법도와 질서를 고친 존재가 상제로서의 증산이다.
상제께서 모든 도통신과 문명신을 거느리고 각 민족들 사이에 나타난 여러 갈래 문화(文化)의 정수(精髓)를 뽑아 통일하시고 물샐틈없이 도수를 짜 놓으시니라.25)
위의 인용문을 통해 증산이 도수를 짜 놓은 방법이 “모든 도통신과 문명신을 거느려 여러 민족들 사이에 나타난 다양한 문화의 정수를 뽑아 통일하는 일”임이 밝혀졌다. 도수를 짜는 방법이 설명된 것이다. 수많은 민족들 사이에 각기 전개된 문화들의 핵심 진액을 모아 통일시키는 것이 도수를 새롭게 짜는 방법으로 설명되었다.
그런데 『전경』에는 다음과 같은 도수의 용례가 확인된다.
또 상제께서 가라사대 「지기가 통일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인류는 제각기 사상이 엇갈려 제각기 생각하여 반목 쟁투하느니라. 이를 없애려면 해원으로써 만고의 신명을 조화하고 천지의 도수를 조정하여야 하고 이것이 이룩되면 천지는 개벽되고 선경이 세워지리라」 하셨도다.26)
증산은 선천에는 지기(地氣)가 통일되지 못하여 인류의 사상이 제각기 엇갈려 반목하고 투쟁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그는 장차 이러한 분열과 반목을 없애기 위해서는 먼저 해원(解冤)으로 온갖 신명들을 조화하고, 천지의 도수를 새로 정하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일은 ‘천지를 개벽하고 선경을 세우는 일’로 규정된다. 이상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천지의 정해진 도수를 새로 뜯어고치는 일이 반드시 요청된다는 입장이다.
요컨대 증산이 강조한 것은 도수의 가변성(可變性)이다. 인간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굴레처럼 정해지고 강요된 우주의 질서와 법칙은 없다는 것이 증산의 생각이다. 선천으로 규정된 낡고 지나간 세상에서 도수는 ‘정해진 법칙과 규범’으로 인정되었다면, 이제 다가오는 후천을 맞아 증산은 스스로 상제의 권위와 능력으로 선천의 도수를 후천의 도수로 뜯어고쳐 새로 결정했다고 믿어진다.
이제 인간의 힘, 구체적으로 상제로 믿어지는 증산에 의해 도수가 새로 정해지는 일이 가능해졌다. 그리하여 인간은 신선세계로 표현되는 선경(仙境)에 살 수 있게 될 것으로 믿어진다. 기존의 정의와 해석에서 도수는 결코 바꿀 수 없는 고정불변한 체계였다면 이제 증산에 의해 도수는 새롭게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 하는 체계로 거듭난 것이다.
증산의 종통(宗統)과 계시(啓示)를 받았다고 믿어지는 정산은 증산과 마찬가지로 ‘도수를 집행할 수 있는 존재’로 믿어진다. 도수공부(度數工夫)는 “도수를 본다.”, “도수를 공부한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요컨대 도수는 공부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다음은 1919년 정월에 있었던 일이다.
선돌부인이 하루는 「구릿골 약방에 비치하셨던 둔궤가 천지도수의 조화둔궤라, 하루바삐 그것을 찾도록 함이 어떠하겠나이까」라고 도주께 아뢰니라. 이때 도주께서는 도수에 따라 이 준세(李俊世)의 재실에서 도수를 보고 계셨도다.…27)
정산은 증산이 정해놓은 도수에 맞추어 스스로 독자적인 입장에서 자신의 도수를 보았던 것으로 주장되고 믿어졌다. 이제 증산만이 유일하게 도수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정신과 사상을 계승한 인물인 정산도 도수를 보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1920년 2월에 둔궤가 도둑맞자 정산은 “그 시기의 도수에 쓰였으면 족하니라.”라고 말했다.28) 특정한 물건은 ‘정해진 일에 따른 효용’을 마쳤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입장이다. 모든 사건과 물건에는 저마다의 도수가 있다는 주장이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고 정해진 임무를 마치면 그 사건과 물체는 쓰임새가 완성되었다는 설명이다.
이윽고 정산은 증산이 도를 이룬 모악산(母岳山) 대원사(大院寺)에 들어가서 ‘백일도수’를 마쳤다고 전한다.29) 여기서 도수는 ‘정해진 일정한 기간에 행하는 수련공부나 방법’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백일 동안 정산은 증산의 종통을 잇기 위한 수도를 했다고 전한다.
도주께서 기축년(1949) 겨울에 동래 마하사(摩訶寺)의 방 한간에서 정화수 스물네 그릇을 받들고 四十九일을 한 도수로 정하시고 공부를 하셨도다.…30)
위의 인용문에서도 “사십구일”이라는 기간을 도수로 정해놓고 정산이 공부했다고 전한다. 특정한 기간을 정하는 일을 “도수”로 본 것이다.
한편 정산은 도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상제께서 짜 놓으신 도수를 내가 풀어 나가노라」고 말씀하셨도다.31)
정산은 증산이 “짜 놓은 도수”를 “풀어나간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도수를 풀어나가는 일에는 “시대에 맞춰 다시 새로 도수를 짠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이미 짜 놓은 도수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시대의 변화에 맞게 다시 도수를 정하는 일도 행했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정산은 그의 생애를 통해 수많은 도수를 행하고 보았으며, 도수와 비슷한 의미인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도주께서 정유년(1957) 十一월 二十一일 자시부터 무술년(1958) 三월 三일까지 도장에서 불면 불휴하고 백일 도수를 마치시니라.…32)
정산은 1958년 음력 3월 6일에 세상을 떠났다. 즉 그는 죽기 직전까지 온힘을 다해 “백일도수”를 행했다고 믿어진다.
증산이 사용했거나 본 도수의 종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증산천사공사기』(1926)와 『전경』(1974)의 기록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1907년 가을에 증산은 중국 고대의 전설적인 제왕이었던 요(堯)임금의 아들인 단주(丹朱)에 대한 공사를 보았다.
또 상제께서 장근으로 하여금 식혜 한 동이를 빚게 하고 이날 밤 초경에 식혜를 큰 그릇에 담아서 인경 밑에 놓으신 후에 「바둑의 시조 단주(丹朱)의 해원도수를 회문산(回文山)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에 붙여 조선 국운을 돌리려 함이라. 다섯 신선 중 한 신선은 주인으로 수수방관할 뿐이오. 네 신선은 판을 놓고 서로 패를 지어 따먹으려 하므로 날짜가 늦어서 승부가 결정되지 못하여 지금 최 수운을 청하여서 증인으로 세우고 승부를 결정코자 함이니…」33)
증산은 모든 원한의 뿌리가 바로 요임금의 아들 단주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단주를 해원시키기 위해서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는 형국”으로 세계의 정세가 흘러가도록 결정했다는 믿음이다.
1907년 10월에 증산은 차경석에게 “너는 이후로 출입을 금하고 집에 있으라. 이것은 자옥도수(自獄度數)니라.”34)라고 말했다.
한편 1907년 12월에 증산은 다음과 같은 공사를 본다.
상제께서 여러 종도들의 집에서 선기 옥형(璿璣玉衡) 도수를 정하시니 신 경수의 집에 저울 갈고리 도수를, 황 응종의 집에 추 도수를, 문 공신의 집에 끈 도수를, 그리고 신 경수 집에 일월 대어명(日月大御命) 도수를, 문 공신 집에 천지 대팔문(天地大八門) 도수를 정하고 이 세 종도의 집에 밤낮으로 번갈아 다니시며 공사를 행하셨도다.35)
증산은 천문을 살펴볼 수 있는 천문시계로 혼천의(渾天儀)의 하나인 선기옥형을 인용하여 많은 도수를 보았다고 전한다. 『서경(書經)』 「요전(堯傳)」에 “역(曆)은 책[書]이며, 상(象)은 기계이다. 역이 없으면 해, 달, 별의 삼신(三神)의 소재를 알 길이 없으며, 기형이 없으면 삼신의 소재를 볼 수 없다.”는 표현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선기옥형이 천문을 관측하는 기계임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증산은 제자들의 집에 각기 여러 도수를 정했다고 주장했는데, 천체관측과 관련되었다는 사실 이외에는 더 이상 도수의 내용은 알기 어렵다.
또 1907년 12월에 증산은 북 도수를 보았다.
…가라사대 「비인복종(庇仁覆鍾)이 크다 하므로 북도수를 보노라.…」36)
충청북도 비인 땅에는 “엎어진 북”과 같은 형국의 혈 자리가 있는데, 이곳의 지세를 이용하여 증산은 모종의 공사를 보았다고 믿어진다.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이 역시 그의 천지공사에서 중요하게 사용되었던 것이다.
1907년 12월에 증산은 음양도수를 보았다.
…「후천 음양 도수를 보려 하노라. 각자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점을 찍어 표시하라」고 이르시니 종도들이 마음에 있는 대로 점을 찍어 올리니라.…37)
여기서 음양도수는 후천에 남성 한 명이 몇 명의 여성과 함께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증산은 제자들에게 각기 마음대로 점을 표시하여 의사를 밝히라고 명했다.
…상제께서 이 음양 도수를 끝내시고 공신에게 「너는 정음 정양의 도수니 그 기운을 잘 견디어 받고 정심으로 수련하라」고 분부하시고 「문왕(文王)의 도수와 이윤(伊尹)의 도수가 있으니 그 도수를 맡으려면 극히 어려우니라」고 일러 주셨도다.38)
한 개의 점을 표시한 문공신이라는 제자에게 증산은 “정음정양도수”라고 말해주었고, 또 “문왕의 도수”와 “이윤의 도수”가 있으니 이를 맡으려면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계했다.
문왕은 BC 12세기 중국 주(周: BC 1111~BC 256/255)의 창건자인 무왕(武王)의 아버지이다. 『주역(周易)』의 「괘사(卦辭)」를 지었다고 전하는 성군(聖君)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은(殷)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에게 포로로 잡혀 3년간 감옥에 갇혀있었다.
이윤은 가노(家奴) 출신으로 은(殷)나라의 탕왕(湯王)에게 불려가서 재상이 되어 하(夏)의 걸왕(桀王)을 토벌함으로써 은이 천하를 평정하는 데 공헌했다. 탕왕을 뒤이은 외병과 중임 두 왕에게서도 벼슬을 했으며, 그 뒤 태갑(太甲)의 재상이 되었다. 그러나 태갑이 포학하여 탕왕의 법을 어기면서 동궁으로 추방하고 직접 정치를 했다. 3년 뒤 태갑이 과오를 뉘우치자 정권을 태갑에게 돌려주고 그를 보좌했다.
증산은 중국 고대의 제왕과 재상을 인용하여 도수(度數)라고 이름 붙였다.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겪은 인물들의 대표로 이러한 이름을 붙인 것으로 짐작된다.
증산은 1907년 12월에 “백의군왕백의장상(白衣君王白衣將相)의 도수를 본다.”고 주장했다. 증산은 20여 명의 제자들과 함께 의병(義兵)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1달 반 만에 석방되었다.39) 『전경』에는 “백의군왕 백의장군의 도수”라고 표현되어 있다.
천지공사 가운데 한 부문으로 “흰옷을 입은 군왕과 흰옷을 입은 장상의 도수”가 행해졌다. 천지공사를 행하는 일이 ‘특정한 명칭이 붙은 도수를 보는 일’이라고 주장되었다. 이후 증산의 공사는 “도수를 새롭게 정한다.”는 의미에서 “도수를 본다.”고 설명되었다.
한편 1908년 증산은 문공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부 도수에 감당할 사람이 마땅치 않아 네게 주인을 정하여 독조사 도수를 붙였노라. 진주 노름에 독조사라는 것이 있으니 남의 돈을 따 보지도 못하고 제 돈만 잃고 바닥이 난 후에야 개평을 뜯어가지고 새벽녘에 본전을 회복하는 수가 있음을 말함이니라.…40)
인용문의 고부도수는 1907년 12월에 증산이 제자 20여 명과 함께 의병혐의로 고부경찰서에 체포되었던 사건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서 고부도수는 고부 땅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을 ○○도수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증산은 진주노름에 나온다는 독조사를 인용하여 독조사도수라는 용어도 사용했다. 노름판에서 계속 돈을 잃다가 겨우 개평을 조금씩 얻어 모았다가 이를 밑천삼아 결국은 본전을 회복한다는 독조사에 도수를 붙였다는 내용이다. 남의 돈을 개평삼아 끝내 본전을 되찾는 일을 도수로 정해놓았다는 주장이다.
증산은 1908년 2월에 고판례(高判禮, 1880~1935)에게 무당도수를 정해놓았다고 믿어진다.
상제께서 하루는 무당 도수라 하시며 고부인(高夫人)에게 춤을 추게 하시고 친히 장고를 치시며 「이것이 천지(天地) 굿이니라」 하시고 「너는 천하 일등 무당이요 나는 천하 일등 재인이라.…」고 하셨도다.41)
증산은 고판례를 천하일등무당이라고 부르며, 그녀에게 무당도수를 붙였다고 전한다. 이 때 증산은 “이 당(黨) 저 당(黨) 다 버리고 무당(巫黨)의 집에 가서 빌어야 살리라.”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여기서 일반적으로 무속(巫俗)에서 굿을 집전하는 여사제(女司祭)를 무당(巫堂)이라고 표기하는데 반해 증산은 무당(巫黨)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점이 특기할 만하다. 어쨌든 증산은 특정인에게 특정한 도수를 붙이기도 했던 것이다.
증산은 1908년 6월 처서날에 백남신이 잃어버렸던 부친의 유골을 찾게 된 일을 가리켜 “모든 사사로운 일이라도 천지공사의 도수에 붙여두면 도수에 따라서 공사가 다 풀리니라.”라고 말했다.42) 여기서 천지공사는 ‘도수를 새로 짜는 일’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즉 천지공사는 도수를 새롭게 정하는 일인 것이다. 천지공사에 의해 도수가 결정되고, 그 결정된 도수에 따라 세상일이 전개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천지공사와 도수가 밀접한 관계에 있음이 증산의 말에 의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1908년 7월에 증산은 다음과 같이 대학도수를 보았다고 전한다.
(1908년) 7월에 천사께서 신경원의 집에 복록궁(福祿宮)을 배치하시고, 신경수의 집에 수명궁(壽命宮)을 배치하시고, 김경학의 집에 학교도수(學校度數)를 배치하시고…43)
학교도수의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학교(學校)가 아니라 후천이라는 새 세상에 맞는 새로운 인재를 양성할 장소라는 의미로 학교가 사용되었다고 짐작된다.
또 증산은 부안군 변산에 스물 네 개의 혈(穴)이 있는데 이는 해왕(海王)의 도수라고 말했다.
부안군 변산(邊山)에 이십사혈(二十四穴)이 있으니, 이는 회문산(回文山) 혈수(穴數)의 상대로 해변에 있어 해왕(海王)의 도수(度數)에 응(應)하다 하사, 회문산은 산군(山君), 변산은 해왕(海王)으로 각각 그 정기(精氣)를 뽑으신 일도 계시다.44)
바닷가에 있는 산에는 “바다의 임금”에 맞는 도수가 있다는 주장이다. 산과 바다에 각기 고유한 도수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대목이다.
그리고 증산은 1909년 6월에 천지공사를 마쳤다고 선언하면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제께서 六월 어느 날 천지공사를 마치신 후 「포교 오십년 공부종필(布敎五十年工夫終畢)」이라 쓰신 종이를 불사르시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이윤(伊尹)이 오십이 지사십구년지비(五十而知四十九年之非)를 깨닫고 성탕(成湯)을 도와 대업을 이루었나니 이제 그 도수를 써서 물샐틈없이 굳게 짜 놓았으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하셨도다.45)
위의 인용문에서 “이윤(伊尹)이 오십 세가 되던 해에 49년의 잘못을 깨닫고 성탕(成湯)을 도와 대업을 이루었다.”고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49년 동안의 잘못을 깨달았다.”는 고사와 관련된 인물은 거백옥(蘧伯玉)이다. 거백옥은 위(衛)나라의 어진 대부이니, 이름이 원(瑗)이고 자가 백옥(伯玉)이다. 『논어(論語)』 「헌문」편에 대한 주자(朱子)의 주(註)에 “거백옥은 50세에 49세 때의 잘못을 알았고, 60세가 되어서는 60번 변화하였으니, 덕을 닦는 것을 쉬지 않아 늙어서도 게으르지 않은 것이다.”라 했다.
어쨌든 증산은 ‘옛 사람의 도수’를 사용했다고 주장되며, “앞으로 제 도수에 맞추어 새로운 기틀이 열리리라.”고 예언했다. 증산에 의해 정해진 도수에 따라 새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주장과 믿음이다.
한편 기존의 증산 관련기록에는 나오지 않는 증산의 도수가 『전경』에 기록된 것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또 상제께서 한 권의 책명을 「의약복서 종수지문(醫藥卜筮 種樹之文)」이라 쓰시고 「진시황(秦始皇)의 해원 도수이니라」 하시고…46)
증산은 선천의 모든 원한의 뿌리가 요임금의 아들인 단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전경』에는 단주의 원한 이외에 진시황의 원한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나라를 건설한 진시황은 불로불사(不老不死)를 꿈꿨던 인물이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를 원했던 그가 그 꿈을 결국은 이루지 못하자 원한을 맺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진시황이 원한을 가질 일이 무엇인가? 거대한 제국을 이루고 인간이 꿈꿔왔던 거의 모든 통치행위를 했으며, 온갖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렸던 인물이 원한을 가졌던 일은 불로불사의 헛된 꿈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전경』에서는 기존의 기록에는 나오지 않는 진시황의 원한을 이야기하며 “진시황의 해원도수”를 주장한다.
또 『전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도 전한다.
모친에게 장삼을 입혀 자리에 앉힌 다음에 쌀 서 말로 밥을 지어서 사방에 흩으시고 문수보살의 도수를 보시니라.47)
문수보살(文殊菩薩)은 불교의 대승보살(大乘菩薩) 가운데 하나다. 문수는 문수사리(文殊師利) 또는 문수시리(文殊尸利)의 준말로, 범어 원어는 만주슈리(Manjushri)이다. ‘만주’는 달다[甘], 묘하다, 훌륭하다는 뜻이고, ‘슈리’는 복덕(福德)이 많다, 길상(吉祥)하다는 뜻으로, 합하여 훌륭한 복덕을 지녔다는 뜻이 된다.
문수보살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인도에서 태어나 반야(般若)의 도리를 선양한 이로서, 항상 반야지혜의 상징으로 표현되어 왔다. 그는 『반야경』을 결집, 편찬한 이로 알려져 있고, 또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요 부모라고 표현되어 왔다. 이는 『반야경』이 지혜를 중심으로 취급한 경전이고, 지혜가 부처를 이루는 근본이 되는 데서 유래된 표현이다. 『화엄경(華嚴經)』 속에서 문수보살은 보현보살과 함께 비로자나불의 양쪽 협시보살(夾侍菩薩: 좌우에서 모시는 보살)이 되어 삼존불의 일원을 이루고 있다. 보현보살이 세상 속에서 실천적 구도자의 모습을 띠고 행동할 때 문수보살은 사람들의 지혜의 좌표가 되었다. 이 두 보살은 항상 서로의 지혜와 실천행을 주시하고 사랑하면서 스스로의 소임을 다한다.
『전경』에는 증산의 어머니에 대한 도수가 “문수보살의 도수”로 전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진경』(1989) 「태극진경」 1장 39절에 증산이 1909년 4월에 치천하도수(治天下度數)를 보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천하를 올바르게 다스리는 도수’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는데, 『전경』에는 “치천하 공부”라고 나온다. 도수가 공부라는 용어와 거의 같은 의미로 이해된 사례이므로 언급한다.
우선 정산이 본 도수의 종류에 대해 『전경』의 기록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도주께서 말씀하시길 「임술년(1922) 섣달에 이르면 납월 도수에 북현무 도수(北玄武度數)가 닥쳐서 금전이 아니면 일이 풀리지 않을 것이라」 하시고…48)
정산이 가지고 온 증산의 유골을 증산의 종도였던 문공신 등이 다시 도둑질해 간 사건을 가리킨 말이다. 납월(臘月)은 음력 섣달을 가리키는 말이고, 현무(玄武)는 하늘의 다섯 개 구문인 오관(五官) 가운데 북관을 다스리는 신이다. 섣달에 북쪽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리고 정산은 둔도수(遁度數)도 행했다고 다음과 같이 전한다.
도주께서 계해년(1923) 정월에…밤낮을 가리지 않고 많은 종이에 글을 쓰셔서 둔 도수라 하시고 석 달 동안 행하셨는데 그 종이가 심한 바람에도 날리지 않았도다.49)
수많은 종이에 글을 쓰는 행위를 정산은 둔도수라고 불렀다. 둔도수의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다.
(1923년) 도주께서…단 도수를 행하시니 이것이 곧 진인 보두법(眞人步斗法)이니라.…50)
정산은 단도수(壇度數)도 행했는데, 흙으로 쌓아 올려 단을 만들고 그 위에서 “진인이 걷는 걸음걸이 법”을 걸었다고 전한다.
계해년(1923)…十월부터 다음 해 二월 중순까지 청도의 적천사(磧川寺) 도솔암에 있는 칠성각 뒤에 돌단을 높이 쌓고 二十四방위를 정하고 천지신명을 응기케 하고 공부시간은 저녁 일곱 시부터 다음날 아침 여섯 시로 정하여 일분일초도 어김없이 넉 달 동안 계속하셨는데 낮에는 공부 행하실 때 쓰실 글을 많이 쓰셨도다. 이때에 공부는 단 도수라 하셨으며…51)
위의 인용문에서 정산은 돌로 단을 쌓고 24방위에 천지신명을 응기(應氣)시켜 시간을 엄격히 지키며 글을 많이 쓰면서 공부했다고 전한다. 단(壇)을 쌓았기 때문에 단도수라고 불렀던 것 같다.
정산은 갑자년(1924) 여름에는 밀양에서 폐백도수(幣帛度數)를 밤 열시부터 다음날 여섯시까지 다섯 달 계속하였다.52) 폐백은 혼인 때 신랑이 신부 집에 보내는 예물이나 윗사람에게 주는 예물이다. 관련된 더 이상의 언급이 없으므로 자세한 도수의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오랜 기간에 걸쳐 밤에 도수를 보았음이 특기할 만하다.
정산은 담뱃대도수를 보기도 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도주께서 병인년(1926) 봄 어느 날 공부를 마치고 담뱃대 도수라고 하시면서 담뱃대의 담배통과 물부리에 크고 작은 태극을 그려 여러 개를 만들어 여러 종도들에게 등급별로 나눠 주시고 일반 신도들에게는 제각기 설대에 태극을 그려 넣게 하셨도다.53)
담뱃대에 태극문양을 여러 개 그린 것을 담뱃대도수라고 부른 것이다. 왜 하필이면 태극을 그렸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도주께서 기유년(1909)부터 신사년(1941)에 이르기까지 도수에 의한 공부와 포교에 힘을 다하시니 신도의 무리가 이곳저곳에서 일어나니라. 그러나 일본이 이차대전을 일으키고 종교단체 해산령을 내리니 도주께서는 전국 각지의 종도들을 모으시고 인덕 도수와 잠복 도수를 말씀하시며…54)
정해진 질서와 법도에 따라 도수를 보았던 정산은 무극도를 해산시키면서 인덕도수와 잠복도수라고 설명했다. 장차 일정한 기간 동안 단체를 해산한다는 설명이다.
그 후에도 정산은 “도수에 의한 공부를 계속하셨다.”고 믿어진다.55)
그리고 을유년(1945) 음력 7월 6일에 정산은 “오늘 무슨 큰일이 일어나고, 도수가 바꿔지리라.”고 말했다.56) 여기서 정산이 말한 “큰일”은 바로 조국의 광복이었다. 정치적 사건의 급격한 변화를 도수가 바뀌는 일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그리고 정산은 기축년(1949) 겨울에 동래 마하사에서 “정화수 스물 네 그릇을 받들고, 사십구일을 한 도수로 정하시고 공부를 하셨다.”고 전한다.57) 정화수를 모시고 하는 공부라는 점이 도수의 내용이며, 일정한 기간을 정해 특별한 종교적 행위를 한 일을 도수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다.
또 정산은 “상제께서 짜 놓으신 도수를 내가 풀어나가노라.”라고 말했다.58) 요컨대 증산이 정해놓는 도수를 정산이 그대로 세상에 펼친다는 주장이다.
정산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인 정유년(1957) 11월 21일 자시부터 무술년(1958) 3월 3일까지 부산도장에서 자지도 않고 쉬지도 않으며 ‘백일도수’를 마쳤다고 전한다.59) 백일이라는 일정한 기간을 정해놓고 도수를 행했던 것이다.
정산은 일생에 걸쳐 매우 많은 도수를 보았다. 증산이 행했던 도수는 비교적 그 수가 적은데 비해, 증산의 사상을 이어받은 정산은 거의 모든 그의 종교적 행위에 도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증산의 도수가 정산에 의해 더욱 확대되고 외연이 넓혀졌다.
Ⅳ. 도수사상의 특성과 종교적 의의
주로 자연계 등에서 행해지는 천체(天體)의 운행법칙을 의미하던 도수라는 용어에는 정해진 일정한 규칙과 규범이 있어 절대로 불변하는 법도가 있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증산은 이 도수라는 용어를 신계(神界)와 인간계(人間界)를 관통하는 세계의 진행질서와 법도라고 종교적으로 재해석하였다. 즉 선천(先天)은 상극(相克)의 질서가 지배하고, 후천(後天)은 상생(相生)이 지배이념으로 정해져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도수가 신과 인간이 사는 이 세계의 진행 법도와 규칙이라고 새롭게 규정한 것이며, 도수에 독창적인 종교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증산은 선천의 상극 법도를 새로 뜯어고쳐 후천의 상생 법도를 정한다는 종교적 선언을 했다.
그 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산에 의해 도수라는 개념의 외연과 범위가 더욱 확장되었으며, 도수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게 제기되었다. 이상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많은 종교적 행위가 도수로 규정되고 이해되었다. 정산은 이 세상에 이상향을 이룩하기 위한 거의 모든 종교적 행위와 결정에 도수라는 이름으로 붙였다.
특히 증산은 영원불변하다고 믿어졌던 도수가 근본적인 변화와 변경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물론 지고(至高)한 신격(神格)의 상제(上帝)로 믿어지는 증산의 권위와 능력에 의해 도수가 새로 정해지는 일이 가능하다. 후대에 증산의 도수사상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정산 역시 옥황상제(玉皇上帝)로 믿어지는 신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의 모든 종교적 행위가 도수를 새롭게 정하고 보는 일로 믿어졌다.
증산과 정산의 도수사상이 가지는 종교적 의의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 항목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도수라는 기존 용어에 대해 증산은 이를 종교교리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새로운 하늘과 땅을 이 땅에 여는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보는 일은 곧 새롭게 도수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인간계와 이를 둘러싼 신계의 진행법칙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새로 결정할 수 있다는 믿음과 생각이 반영되었다.
둘째, 도수사상은 증산에 의해 형성되기 시작했고, 점차 체계화되었다. 그리고 증산의 도수사상은 정산에 의해 계승되어 더욱 그 종류와 범위가 넓어지고 발전되어 독창적인 사상의 하나로 체계화되었다. 나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도수사상에 대한 새 해석이 가능해졌고, 도수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열리게 되었다.
셋째, 기존의 선천은 인간이 일을 꾸미지만 그 완성은 전적으로 하늘에 달려 있고 결정된다는 이른바 “모사재인(謀事在人), 성사재천(成事在天)”의 세상이었다. 그러나 다가올 후천은 이러한 상황이 역전되어 하늘이 일을 도모하지만 그 완성과 결정은 인간에게 달려 있는 “모사재천(謀事在天), 성사재인(成事在人)”의 세상이다. 도수사상은 성사재인의 실례(實例)로서 제시된다. 앞으로는 하늘을 대신하여 인간이 모든 일을 결정짓는다는 생각이다. 신권(神權)의 위력 앞에 무기력하게만 여겨졌던 인권(人權)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어 지엄한 존재로 거듭 태어날 수 있는 사상적 근거를 제시한 것이다.
넷째, 도수사상에 의해 인간이 일상에서 행하는 모든 일이 성화(聖化)될 가능성이 비로소 제시되었다. 인간이 의도하는 모든 행위의 완성과 결정이 신에 의해 억압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인간의 손에 전적으로 달려있다는 도수사상은 인간이 세속에서 영위하는 모든 행위에 나름의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여 가치 있는 일로 받아들이게 한다. 따라서 도수사상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을 초월적이고 성스러운 존재로 변화시키는 사상체계로 평가할 수 있다.
다섯째, 천지의 운행법칙과 질서인 도수를 고치는 일은 오직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절대적 권능을 지닌 존재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절대적 권위와 능력을 지닌 상제로 믿어지는 증산에 의해서만이 도수를 변경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고 믿는다. 결국 그 무엇과도 대체가 불가한 무조건적 신앙과 믿음이 신도들에게 요청된다. 이러한 신행(信行)은 신앙의 대상에게 무한한 지위와 지고(至高)의 능력을 부여했으며, 그에 대한 보다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믿음을 요구했다. 물론 이러한 경향은 도수를 보고 뜯어고치는 존재에 대한 나름의 해석과 이해에 따라 다양한 많은 교파가 세워지는 현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여섯째, 증산의 인격(人格)에 있어서 그가 절대적 존재인 상제로 믿어지는 신격(神格)과 어떻게 공존하여 이해되고 믿어지는지에 대한 해석의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증산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죽은 후에 신(神)이 된다고 설명된다. 결국 증산은 도수를 새롭게 정한 상제로 믿어지는 ‘최초의 인간’이다. 그리고 증산이 새롭게 정해놓은 도수에 따라 새 세상을 이 땅에 이루어나가야 할 인간들은 그의 가르침을 따르고 믿는 ‘자각(自覺)되고 각성(覺醒)된 신적(神的) 존재’이다. 인간과 신이 철저하게 분리되었던 시대를 벗어나 이제 인간의 본질이 곧 신이라는 새로운 이해와 믿음에서 출발하여 도수의 실제적 이행(履行)은 ‘깨어난 인간들’의 몫으로 남겨진 것이다.
Ⅴ. 맺음말
도수는 정해진 법칙이나 도(道)를 의미하며, 세상을 지배하는 굳건한 원칙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증산은 도수가 지난 시간과 다가올 시간을 다스리는 규범과 질서라고 재해석하였다.
나아가 증산은 스스로 가장 높은 하늘의 지고하고 신비한 존재인 상제(上帝)로서 기존의 잘못된 도수를 뜯어고쳐 새 세상을 연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증산의 도수사상을 이어받은 정산은 옥황상제의 권위와 능력으로 새로운 도수를 본다고 주장했다.
낡은 세상이 지나가고 이제 성사재인(成事在人)의 인존시대(人尊時代)가 열릴 것이라는 증산의 주장은 도수사상의 핵심이다. 인간계를 둘러싼 모든 일의 마지막 결정과 완성이 인간 스스로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상이다. 신이 가장 존경받던 지난 세상이 지나 이제는 인간이 가장 존귀한 존재로 받들어지는 세상이 전개되었다.
한편 도수사상은 인간의 일상생활에도 지고한 존재인 상제가 미리 결정해 놓은 도수와 섭리가 주관한다는 믿음을 유발시켰다. 증산교인들은 현재는 과거 증산과 정산이 정해놓은 도수의 결과라고 믿는다. 따라서 인간이 오늘 겪는 소소한 일상마저도 종교적으로 성화(聖化)시킨다.
처음에 도수는 단순하고 소박하게 출발하여 이후 점차 복잡하고 다양한 도수가 거론되었다. 증산은 십여 개의 도수를 정했지만, 정산은 보다 많은 다수의 도수를 본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도수에 대한 종교적 재해석을 거쳐 도수사상으로 정립되어 후대에 전승되고 계승되었고, 결국은 도수사상의 체계화가 이루어졌다.
한편 도수로 제정된 일의 결과가 바로 인간이 사는 현실세상이라는 믿음이 제기되었다. 이는 일상을 성화(聖化)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증산교인들은 이상향이 이룩되기 이전의 과도기적인 현상으로서 현실생활이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들은 인간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정치, 사회, 문화적인 변화상에 큰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도수는 한 번 정해지면 결코 변경될 수 없는 지고불변(至高不變)하는 개념이 아니라 이제는 인간이 도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도 제기된다. 하늘과 땅이 높임을 받았던 세상이 지나가고, 이제는 사람이 가장 높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전개되었다는 증산교인들의 믿음은 인존시대(人尊時代)로 표현된다.
결국 도수사상은 후천(後天)이라는 새로운 세상에는 이에 맞는 새 질서와 규범이 전개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표현되는 다가올 세상에는 새로운 도수가 지배할 것이라는 생각이 반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