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연구논문

대순사상에서 무자기의 상생적 의미: 칸트, 밀, 베르그송 윤리학 논의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김태수1,*
Tae-soo Kim1,*
1대진대학교 연구교수
1Research Professor, Daejin University

© Copyright 2024,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Jul 25, 2024 ; Revised: Sep 10, 2024 ; Accepted: Sep 25, 2024

Published Online: Sep 30, 2024

국문요약

본 연구는 대순사상에서 ‘스스로 마음을 속이지 않음’이라는 무자기(無自欺) 개념을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학과 밀의 공리주의 및 베르그송 윤리학과 비교하여 그 상생적 의미를 탐구한다. 칸트 윤리학은 정언명령을 통해 도덕적 행위를 규정하며, 이는 보편적 법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한다. 반면, 밀의 공리주의는 행복과 쾌락을 목표로 하여 좋은 결과를 산출하는 행위를 선으로 본다. 대순사상의 무자기는 ‘사심을 버리고 양심을 되찾는 것’으로 정의되며, 거짓을 행하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자기기만과 관련하여 칸트와 밀의 윤리사상은 상이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칸트는 정언명령에 따라 자기기만을 보편 법칙으로 삼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밀은 전체의 공리를 증진하는 경우 거짓말 등의 자기기만을 허용할 수 있다고 본다. 무자기는 그 원리상 칸트 윤리학에 가깝지만, 정언명령과 같은 윤리적 형식뿐만 아니라 인륜이나 상생 등의 윤리적 내용을 중시한다. 또한 특정 상황에서는 방편이나 침묵이 상생심이 체화된 도덕적 정서의 표현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자기는 지성주의나 형식주의에 치우칠 수 있는 칸트 윤리학의 단점을 보완한다. 나아가 이와 같은 상생윤리의 열린 특성은 본능과 지성을 인류애와 같은 사랑의 정서로 승화시키는 베르그송의 ‘열린 도덕’ 개념과 맥을 같이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무자기의 실천적 윤리성은 음양합덕, 해원상생이라는 포용적 이념이 체화된 새로운 도덕원리의 기초로 이해할 수 있다.

Abstract

This study explores the meaning of mutual life-giving within the concept of Non-self-deception (無自欺) in Daesoon Thought by comparing it with Kant’s deontological ethics, Mill’s utilitarianism, and Bergson’s ethics. Kantian ethics defines moral actions through the categorical imperative, emphasizing the principle of acting according to universal laws. In contrast, Mill’s utilitarianism views actions that produce good results as morally good, aiming for happiness and pleasure.

Non-self-deception in Daesoon Thought is defined as “abandoning selfish desires and regaining one’s conscience,” fundamentally based on not engaging in falsehoods. Regarding self-deception, Kant and Mill’s systems of ethical thought offer different solutions. Kant argues that self-deception cannot be made a universal law according to the categorical imperative, while Mill allows for self-deception, such as lying, if it promotes overall utility. While Non-self-deception is closer to Kantian ethics in principle, it emphasizes not only ethical forms like the categorical imperative but also ethical content such as human relations and mutual beneficence.

Furthermore, non-self-deception complements the potential weaknesses of Kantian ethics, which may lean towards intellectualism or formalism, by considering that in certain situations, expedient measures or silence can be regarded as moral emotional actions embodying mutual beneficence. Moreover, this open characteristic of mutual life-giving ethics aligns with Bergson’s concept of “open morality,” which sublimates instinct and intellect into emotions of love like philanthropy.

In this context, the practical ethics of non-self-deception can be understood as the foundation of a new moral principle embodying inclusive ideals such as the ‘harmonious virtue of yin and yang’ and the ‘resolution of grievances for mutual life-giving.’

Keywords: 무자기; 해원상생; 인륜; 칸트; 베르그송; 밀; 자기기만
Keywords: Non-self-deception; Resolution of grievances for mutual life-giving; Human Ethics; Kant; Mill; Bergson; Self-deception

Ⅰ. 서론

본 연구는 대순사상에서 ‘마음을 속이지 않음’이라는 무자기(無自欺) 개념을 근대 서구 윤리학의 주요 흐름인 칸트(I. Kant, 1724~1804)의 의무론적 윤리학과 밀(J. S. Mill, 1806~1873)의 공리주의에서 다루는 ‘자기기만(self-deception)’ 문제, 그리고 베르그송(H. L. Bergson, 1859~1941)의 ‘열린 도덕’ 관점과 연계하여 그 상생적 함의를 드러내려는 시도이다. 의무론적 윤리는 결과와 무관하게 따라야 할 도덕법칙을 강조하는 반면, 공리주의를 포함한 목적론적 윤리는 특정 목적이나 결과를 기준으로 윤리를 판단한다.1) 칸트와 밀은 각각 동기와 결과를 중심으로 자기기만 문제를 다루었는데, 이는 이성적 존재가 어떻게 비도덕적 행위를 하는지 설명하려는 시도였다.2)

밀과 칸트에게 자기기만은 특정 결과나 동기로 인해 자신을 속이거나 믿음 또는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내적 허위, 거짓말, 합리화(정당화), 은폐, 평가절하 등을 포함하며, 비도덕적 인식에서 비롯된 내적 허위나 위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거짓말, 사기, 살인 등의 범죄와도 연관된다.3) 이 가운데 본고는 밀과 칸트 윤리학에서 가장 많이 논의된 선의의 거짓말, 약속 위반, 살인 등의 문제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베르그송은 이와 달리, 비도덕적 행위를 인류 진화 과정에서 발전한 본능과 지성의 자기보존적 대응으로 형성된 닫힌 사회의 특성으로 파악한다. 그는 보편적 사랑과 인류애가 닫힌 사회의 사회적 본능과 지성적 의무를 대체하는 열린 사회로의 도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베르그송은 칸트의 의무론이나 공리주의 윤리학이 이성적 권리나 행복 추구 본능에 기반하여 진리의 본질적 요소를 결여하고 있다고 비판하며,4) 생명에 대한 사랑과 보편적 인류애를 열린 도덕의 핵심으로 본다.

이러한 윤리 이론과 비교할 때 상생윤리의 무자기(無自欺)는 어떤 입장에 더 가까울까? 대순사상에서 무자기는 ‘스스로 마음을 속이지 말라’는 뜻으로, ‘사심을 버리고 양심을 되찾는 것’5)을 의미한다. 또한 무자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6)이라는 훈시도 있다. 이러한 설명을 종합해 볼 때, 무자기의 올바른 실천이란 ‘거짓을 행하지 않음’을 기초로 ‘사심을 없애고 양심을 회복해 나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상생윤리는 ‘남을 잘되게 하는 것’을 근간으로 하는 만큼 상생의 실천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그런데 특별한 경우, ‘선의의 거짓말’이나 침묵 등이 오히려 양심을 속이지 않고 남을 잘되게 하는 행위라고 여겨질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칸트와 밀의 윤리사상은 의무론과 목적론에 근거한 상이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특히 ‘살인자가 친구의 소재를 물을 경우,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라는 ‘(선의의) 거짓말의 도덕적 정당화’ 문제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밀의 공리주의는 개인과 사회 전체의 공리를 위해 특별한 경우 거짓말을 허용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비해 도덕법칙의 실재성을 중시하는 칸트는 일부 초기 문헌을 제외하면, “어떤 불명예를 초래하는 경우라도 보편적 자기 입법의 법칙인 정언명령에 따라, 거짓말을 보편적 의지의 준칙으로 삼을 수 없다.”7)고 주장한다. 정언명령이라는 순수 개념은 법칙의 보편성과 이에 따른 준칙의 필연성만을 지닌다. 이에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8)는 보편화 정식은 거짓말을 포함한 모든 행위에 대한 도덕적 규준을 의무로 규정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조민환9), 김태수10), 주소연11) 등은 대순사상의 무자기와 상생윤리를 칸트, 밀 등의 서구 윤리학과 비교 고찰한 바 있다. 그러나 서구 윤리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딜레마 상황 속 자기기만 문제를 대순사상의 관점에서 논의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베르그송의 열린 도덕 관점을 상생윤리에 적용한 연구도 부재했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본고에서는 밀과 칸트의 ‘자기기만의 도덕적 정당화’ 문제, 그리고 베르그송의 열린 도덕관을 비교 검토함으로써 대순사상의 ‘무자기’에 나타난 상생윤리적 특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러한 비교 연구는 새로운 도덕원리로서 대순사상의 실천적 윤리성의 특성과 함의에 대해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Ⅱ. ‘자기기만의 도덕적 정당화’에 대한 밀과 칸트의 입장

1. 밀의 공리주의 입장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원리를 도덕의 기초로 삼는 윤리관이다. 행복은 고통이 없는 쾌락을 의미하며,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와 쾌락이 행위의 유일한 목적이다. 이에 따라 행복을 증진시킬수록 옳은 행위가 된다.12) ‘자기기만’에 관한 밀의 입장은 공동체의 합의와 신뢰에 기초한 도덕적 권리나 정의의 시각에서 설명된다. 밀에 따르면, 어느 누구의 신뢰라도 이를 저버린다면 정의롭지 않다.13) 신뢰는 모든 사회적 복리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반면 신뢰가 불충분할 경우, 문명, 덕, 행복 등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특히, 눈앞의 이익을 위한 규칙 위반은 편의를 주지 못하며, 신뢰를 깨뜨림으로써 인류의 이익을 해치고, 자신에게도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14) 따라서 거짓말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체 효용의 측면에서 볼 때, ‘공동체 구성원의 믿음을 깨뜨려 전체의 행복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밀은 ‘일시적으로 당혹스런 느낌을 이겨내거나 자신과 타인들에게 이로운 것을 얻기 위해 거짓말이 간혹 편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때 거짓말의 허용 근거 또한 유용성에 있다. 단, 행동을 다스릴 때, 진실함에 대한 예민한 정서를 약화시킨다면 해롭다는 점도 강조한다. 의도와는 다를지라도 진리를 배신한다면 주장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단, 자기기만과 관련하여, 모든 도덕주의자들이 허용하는 예외가 있는데, 악한에게 특정한 정보를 숨기거나 불치병자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숨기는 경우처럼 특정 개인을 큰 해악에서 구해주는 경우이다. 밀은 이러한 예외가 필요 이상 확대되지 않아야 하며, 성실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키지 않는 선에서 허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효용이론으로서 공리원칙을 적용하기 위해, 상충하는 효용들을 비교 측정하여 특정 행위가 일반 행복에 미치는 영향과 효과를 계산해야 한다15)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밀의 공리주의에서 자기기만을 경계하는 근본 이유는 사회 구성원들의 믿음을 약화시켜 공리를 저해하지 않기 위함이다. 예외적으로 기만이나 거짓말이 허용되는 경우도, 대다수 또는 특정 구성원의 생명이나 권익 보호를 위해 성실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지 않는 한에서이다. 즉, 도덕적 정당성이나 인격의 존엄성과 같은 이념 때문이 아니라, 전체 다수의 행복에 유리한지 여부에 따라 기기만적 행위의 허용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2. 칸트의 원칙주의 입장
1) 자유와 복종의 모순 문제

칸트는 『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도덕 법칙에 대한 복종과 행위자의 자유를 동시에 확보하는 보편타당한 도덕원리를 수립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감성세계와 지성세계를 구별하여 인간의 자유와 도덕법칙에 대한 복종의 필요성을 논증한다.16) 인간은 자유라는 무한한 가능성의 이념 안에 있지만, 동시에 감성세계에 속해 있어 자유롭더라도 도덕법칙에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칸트는 도덕법칙을 정언명령의 형식으로 정리하고, 자유의 이념과 결합된 자율성을 윤리성의 보편 원리로 삼는다.17) 이에 따라 예지(지성)계의 구성원이 선의지를 의식하면, 감성계의 경향성을 극복하고 선의지의 권위를 인식하는 법칙을 세우게 된다. 이로 인해 도덕적 의무는 예지계에서 느끼는 필연적인 욕구가 된다. 결국 칸트에게 자유와 복종 간의 딜레마는 자유 이념을 이상으로 삼으면서 자율성과 윤리성의 보편 원리가 이성적 존재의 행위를 근거 짓는18) 구도로 해결된다. 이러한 구조는 자유, 자율, 윤리성 원리의 순환적 연계를 통해 도덕적 의무를 포함하여 정당화된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칸트는 정언명령의 세 가지 정식을 제시한다.

(가) 보편화 정식 : “네 의지의 준칙이 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19)

(나) 인간성 정식 : “너 자신의 인격이나 다른 모든 이들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단지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고 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라.”20)

(다) 자율성 정식 : “네 의지가 자신의 준칙에 의해 자신을 동시에 보편적으로 법칙 수립하는 자로 볼 수 있는 그러한 준칙 이외의 것에 따라 행위 하지 말라.”21)

칸트에 따르면, 개인은 어떤 경우에도 정언명령에서 도출(Abteilung)된 의무의 보편 명령을 스스로 따르도록 자신을 강제해야 한다. 이는 도덕적 주체의 선의지에서 비롯된 자율적 입법이며,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수동적 의무가 아니다. 따라서 윤리적 명령의 형식적 보편성뿐만 아니라, 그 목적과 내용 모두를 충족해야 한다. 정식은 그 본성상 목적 그 자체로서, 모든 준칙에 대해 상대적, 자의적 목적들을 제한한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22) 이처럼 정언명법이라는 윤리 형식이 완결되기 위해 인간성 또는 인격이라는 내용이 충족되어야 하는 것은, 무자기라는 윤리 수칙의 내용에 인륜이나 상생이 전제되는 것과 유사하다.

2) 선의의 거짓말 등의 자기기만 문제

칸트는 정언명법에서 도출한 의무를 완전의무와 우연적이고 불완전한 의무로 구분한다.23) 이와 관련하여, ‘거짓 약속’과 ‘자살’을 완전의무로 분류하며, 어떤 예외도 허용되지 않는다.24) ‘선의의 거짓말’ 문제에 대해 칸트는 ‘문간의 살인자’ 예를 들어, 거짓말은 보편화될 수 없고 인류 전반에 해를 끼친다고 주장한다.25) 진실에 대한 의무는 예외 없는 보편 원칙이지만, 거짓말을 통해 친구를 보호하는 경우, 그 결과가 우연적이므로 보편 원칙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외 없는 원칙주의는 선의의 거짓말 없이는 친구의 생명을 구할 수 없는 위급한 상황에서 인륜이라는 윤리 내용을 위반하게 되는 딜레마를 야기한다. 즉, 친구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인(仁)과 의(義)의 발로로서의 양심의 행사와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 칸트의 초기 저작에서는 거짓말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면서 황금률26)의 원리에 따라 실천이성의 인식 내부에서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27) 그러나 ‘악행이 처벌을 초래한다’거나 ‘자신이 행한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대해야 한다’는 범죄자에 대한 칸트의 입장은 인과응보에 기반한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피해자에 대한 인(仁)이나 상생의 관점에서 논의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존 이념과 구별된다. 정언명법과 관련해서도 원칙의 보편성뿐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내용이 원칙의 취지와 일관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인격과 자유의 문제에 직면한다.

칸트의 ‘선의의 거짓말’에 대한 관점은 동양 사상의 접근 방식과도 대비된다. 동양 사상은 형식보다 내용의 의미와 뜻을 강조하며 깊이와 진정성을 추구한다. 공자(孔子, BC 551~479)의 ‘일이관지(一以貫之)’나 ‘서(恕)’, 묵자(墨子, ca. BC 480~ca. BC 390)의 ‘겸애(兼愛)’ 원리는 구체적 내용을 갖는 규칙이 아닌 도덕 판단의 기준과 방법을 제시한다.28) 대순사상에서도 해원상생과 무자기는 최상의 윤리적 원리로, 도덕적 기준이자 실천적 형식의 행위 규범이다. 이 원리가 지시하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되어야 하며 인륜도덕에 부합해야 한다.29) 그러나 상대가 원하는 행위가 도덕적이지 않을 경우, ‘서’나 ‘해원상생’ 원칙은 효력을 잃는다. 원칙 내용이 인륜도덕과 어긋날지라도 무조건적으로 따르면 도리에 어긋난 바람(欲)이나 원도 풀어주어야 하는 모순에 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의 원리에서 상대의 ‘바람’과 ‘해원상생’ 원리에서 ‘원(冤)’의 내용에는 ‘도덕의지가 의욕하는 것’ 또는 ‘도덕판단에 기반한 욕구’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는 정언명법에서 형식과 내용이 일치해야 완전한 윤리 준칙이 되는 것과 유사하다. 반면, 보편적 법칙 수립이라는 형식을 모든 경우에 경직되게 적용하면, 그 형식이 담고자 하는 본래의 의미나 취지를 잃을 수 있다.

이러한 밀과 칸트의 자기기만에 관한 논의를 바탕으로, 이제 베르그송의 열린 도덕 관점을 살펴보겠다.

3. 베르그송의 열린 도덕관

베르그송은 기존의 윤리학적 접근과는 다른 독특한 시각을 제시하며, 도덕의 본질과 실천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한다. 그는 도덕을 ‘닫힌 도덕’과 ‘열린 도덕’으로 구분한다. 닫힌 도덕은 사회의 유지와 질서를 위한 책무의 도덕으로, 과거의 창조성과 기성 가치를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열린 도덕은 창조적 정서를 통해 인류 전체를 포괄하는 보편적 사랑과 연대를 지향한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인간은 지성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도덕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창조적 정서’의 개념을 제시한다. 이 창조적 정서는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도약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열린 도덕은 단순히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향한 사랑과 연대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다. 이는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나 밀의 공리주의와는 다른 접근방식으로, 도덕의 실천을 더욱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과정으로 이해한다. 베르그송의 이러한 관점은 도덕을 단순한 규칙의 준수나 결과의 계산을 넘어, 진화의 최종 산물로서의 인간의 창조적 능력과 정서적 측면을 강조하는 새로운 윤리적 지평을 열어준다.

그에 따르면 생명적 힘과 물질적 힘의 타협으로 생겨난 생명체는 본능과 지성이라는 생명의 고유한 두 대립적, 상보적 기능을 발달시키면서 진화해왔다.30) 자연 안에서 진화의 목적으로서 특권적 위치를 가지게 된 인류 또한 본래 지니고 있던 자유와 창조성을 잘 실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이러한 진화의 동력은 생명의 약동(l’élan vital)이라는 생명의 근원적 힘이다. 특히, 인류 중에서도 완전한 도덕을 구현한 특별한 위대한 영혼(성인, 선지자, 아라한 등)31)은 내면의 깊은 정신세계에 집중함으로써 생명과의 공감에 장애물이 되는 본능과 지성을 단숨에 뛰어넘는 질적 비약을 이룬다.

이로써 사회는 닫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국가에서 인류로 이행 가능하며, 열린 사회는 특별한 영혼들에 의한 창조와 변형을 통해 난관을 극복하고 인류 전체를 포용할 수 있다.32) 여기서 ‘열린 도덕’과 ‘열린 종교’란 생존조건을 넘어 인류애를 향해 끊임없이 약동하는 생명적 노력, ‘순수지속’을 의미한다. 한편, 열린 도덕에 따라 민주주의의 두 대립적 이상인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는 것 또한 박애, 즉 보편적 인류애이다. 이에 따라 민주주의는 본능과 지성에 가까운 자연적 사회와 달리, 그 의도와 지향에서 닫힌 사회의 조건을 넘어선다.33) 이 점에서 베르그송은 루소와 칸트의 공로를 인정하며, 민주주의의 본질이 복음주의적이고 그 원동력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는 루소의 영혼에서 민주주의의 정서적 기원을, 칸트의 저작에서 그 철학적 원리를, 그리고 두 사상가에게서 종교적 배경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34)

그러나 베르그송은 현재의 민주주의가 본래의 종교적 성격과 박애를 상실함으로써 닫힌 사회의 특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민주주의를 단지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만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민주주의 공식의 모호성에서 비롯된 반대는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종교적 성격이 무시되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미래는 모든 형태의 진보, 특히 오늘날 달성할 수 없거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형태의 자유와 평등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조건의 창출에 열려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자유와 평등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요구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틀을 짜는 것뿐이며. 그 틀은 박애가 적합하다고 판단하면 더 잘 채워질 것이다. 비민주주의 사회의 공식은 “자동성, 위계, 고정성”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민주주의를 단순히 이상이나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35)

이처럼 베르그송은 민주주의의 이상은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절대적 도덕이 아닌 상대적인 도덕의 관점에서만 적용 가능하다고 본다. 민주주의가 루소나 칸트가 제시한 일반의지가 아닌 특정 이익(특수의지)의 방향으로 전환될 위험성36)을 경계하는 것이다. 특히, 칸트의 의무 개념이 지성(이성)에 따른 압박과 동경의 힘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정의 등의 이념은 우리를 이상적 사회로 이끌지만 동시에 현실 사회의 압력에 굴복하게 한다37)고 지적한다. 정언명법에 대해서도, 베르그송은 이것이 닫힌 사회의 속성과는 다르지만 여전히 본능과 지성이라는 두 진화 계열을 따라 규칙성을 보장하는 도덕적 습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38) 또한 칸트의 접근이 직관에 기반한 감성계를 간과함으로써 열린 사회의 조건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한다. 그는 지성 계열에 머문 형식주의와 이성주의에 기초한 의무의 관점이, 직관과 감화에 기초한 열린 사회의 지평과는 구별된다고 평가한다.

또한 베르그송의 관점에서 볼 때, 밀의 공리주의 윤리학은 행복 추구라는 본능에 기반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가족이 자연성을 바탕으로 본능이 작용하는 집단인 것처럼, 사회 역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자연적 공리를 추구하는 본능이 작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베르그송은 공리주의적 접근이 집단 이기주의 본능과 연관될 수 있어 인류 진화의 고차원적 윤리로 보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극단적인 경우,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 전쟁이나 살육, 심지어 인구감소 계획까지도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이러한 지향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인류를 추구하기보다는 전쟁으로 인한 살인, 약탈, 사기, 거짓말이 공로로 인정되는 사회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본능과 지성에 의거한 도덕적 의무의 바탕이 되는 사회적 요구가 반드시 열린 사회를 지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39)

이상에서 논의한 밀과 칸트의 관점, 그리고 이에 대한 베르그송의 비판 및 그의 열린 도덕관을 고려하면서, 이제 대순사상의 무자기에 나타난 윤리적 특성과 함의를 살펴보겠다.

Ⅲ. 대순사상에서 무자기의 상생적 함의

1. 대순사상에서 무자기의 상생적 함의

무자기는 대순사상에서 ‘거짓을 행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기반한 핵심 개념이다. 이는 자연권 등에 기초한 단순한 윤리적 규범을 넘어 인격완성을 위한 수행론적 기초이자 당위로 제시된다.

사회에서도 인격을 갖추기 위해 교육을 받듯이, 우리도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하여 올바른 사람, 즉 완전한 도인이 되어 원래의 천성(天性)과 본성(本性)으로 돌아가 양심을 찾게 된다.40)

즉, ‘양심이란 본래의 천성이므로 이를 회복해야 올바른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무자기의 실천이 인간의 본질과 존엄성(인존) 실현을 위한 수행의 기반이자 방법으로 제시된다.

내 마음을 거울과 같이 닦아서 진실하고 정직한 인간의 본질을 회복했을 때 도통에 이른다.41)

즉, 대순사상에서는 개인의 권익이나 행복의 증진, 또는 사회적 합의나 일반의지의 명령으로서 자기기만을 금하는 서구 윤리학과 달리, 인격완성이라는 이념을 전제로 수도의 목적인 도통을 위해 사심을 버리고 양심을 회복할 것을 요구한다.

무자기가 수도인의 자세이다. 무자기가 되어야 인간개조가 되는데, 이것을 도통이라 한다. 안 되어 있으면 운수가 없다. 무자기가 근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믿는 것이 아니라 가면(假面)으로 믿는 것이다. 도인의 탈만 썼지 도인이 아니다.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그 주위에는 올바른 일이 생기지 않는다.42)

이처럼 대순사상에서는 진실성을 수도의 핵심으로 제시한다. 또한 자기기만과 관련하여, “거짓을 행하게 되면 잘못된 일이 생기고 이것이 척이 되어 나타나게 되면 자신의 앞길을 막게 되어 가면과 자존의 나를 버리고 해원상생으로 나아가기가 더 어렵게 된다.”43)고도 설명된다.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속이게 되면 스스로 원을 풀고 남을 잘되게 하는 보편적 사랑의 실천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무자기는 정신개벽과 인간개조의 근본으로서 타인뿐만 아니라 신계(神界)에 대한 진실성의 토대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한층 포괄적 함의를 지닌다. 특히, 무자기의 실천이 지향하는 해원상생에는 자신과 관련된 신계에 대한 진실성이 전제가 된다. 즉, 수도의 목적인 도통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 상호 간에 인륜도덕을 실천해야 하므로 무자기의 실천 또한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상생적으로 이루어지는데, 타자 속에는 신과 천지 삼라만상이 포함되는 구도로 볼 수 있다.

선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천(天)·지(地)·인(人)·신(神)이 각기 자신의 도리를 다할 때 그것이 바로 선경이 되는 것이며 화평의 세계가 되는 것이므로, 모든 도인들은 도리를 다하며 무자기를 바탕으로 수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44)

이처럼 수도의 바탕인 무자기는 자신과 관련된 상대에게 도리를 행하는 인륜과 해원상생을 전제로 한다. 무자기라는 도덕 준칙(형식)의 내용이 감성과 직관에 기초한 도덕판단에 따라 실천 의욕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로써 무자기에 기반한 도덕의지는 자발적 의욕에 따라 “남을 잘되게 하라”는 행위 준칙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의욕은 도덕과 관계없이 나와 가까운 사람이나 집단이기에 잘되게 하려는 의욕과 구별된다. ‘무자기에 근거하여 타인을 잘되게 하라’는 준칙의 보편화는 개별적 특수의지가 아닌 보편적 일반의지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무자기에 기반한 상생원칙이 공리원칙과 차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45)

한편, 신과 하나가 될 것을 추구하는 수도 측면에서의 무자기 또한 상생을 전제한다. 이 관점에서는 “신이 용사하는 기관”인 마음이 신, 곧 하늘과 통한다는 믿음에 따라 개인 도덕성의 근원인 신도(神道)에 따라 양심을 속이지 않는 언행을 중시한다.

“크고 작은 일을 천지의 귀와 신이 살피시니라(大大細細 天地鬼神垂察).” 하셨으니, 도인들은 명심하여 암실기심(暗室欺心)하지 말아야 한다.46)

이처럼 대순사상에서 자기를 속이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을 속이는 것에 해당한다. 따라서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하늘(신)과 가장 가까운 속성을 지닌 마음을 갈고 닦아 신과 같은 경지에 이르기 위해 감성적 직관과 통찰을 계발해 해원상생에 합당한 언행과 덕을 실천할 것을 강조한다. 무자기를 근본으로 허세를 버릴 때 서로 신뢰하고 화목할 것이고, 남을 잘 되게 하는47) 성경신을 행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나의 마음을 참답게 함으로써 남의 마음을 참되게 하고, 먼저 내 몸을 공경함으로써 남도 몸을 공경하게 되며, 먼저 나의 일을 신의로써 하면 남들이 신의를 본받게 된다.48)

이와 같이 대순사상의 윤리관은 남을 위하고 배려·존중하는 감성과 의지를 포괄하는 상생심의 기초로서 무자기를 강조한다. 이는 개인 권리와 공동체의 합의 또는 지성주의에 방점을 둔 밀이나 칸트의 접근과 구별된다. 상생윤리의 기초가 되는 무자기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사심을 버리고 인예의지(仁禮義智)의 도덕적 정서를 회복·견수하려는 인륜 관계의 행위로 나타난다. 다만, 이러한 사유에서 해원상생 원리가 지시하는 행위는 도덕적 판단과 감성 측면에서 그 보편성이 정당화되어야 한다. 해원상생이 모자지정으로 표상되는 인륜 관계에 기초한다고 해서 ‘타인보다 가까운 사람을 우선시하라’는 준칙을 보편화한다면 사심에 치우친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상생윤리는 인륜 공동체 속에서 인륜의 대상을 확대하여 모든 이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보편적 인간애에 기초한 실천 윤리를 지향한다. 더 나아가 대순사상에서는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이 곧 신명을 속이지 않는 것’으로 여겨, ‘인간 존중이 곧 신명 공경’으로 이어지는 확장된 상생윤리의 특성을 보인다.

2. 무자기의 관점에서 본 상생윤리와 밀·칸트 윤리관과의 대비

밀의 공리주의는 개인의 행복과 사회 전체의 공리 증진을 기준으로 자기기만의 효용을 평가하는 반면, 칸트는 정언명령에 따라 기만을 허용하지 않는다. 대순사상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양심에 따른 도덕규범을 체화하고 인격을 목적으로서 존중할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칸트 윤리학과 유사한 점이 있다. 올바른 행위 원칙과 관련하여 칸트는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의무에 해당하는 (1) ‘자기사랑의 요구에 따른 거짓 약속’과 불완전한 의무인 (2) ‘개인주의적 무관심’ 모두 보편적 준칙으로 삼을 수 없다고 명시한다.49) 상생윤리 시각에서도 ‘자기사랑의 요구에 입각한 거짓 약속’은 자신의 이익이나 편의를 위해 마음을 속이는 일에 해당한다. ‘서’나 ‘해원상생’의 원리를 형식으로 삼아 ‘자기사랑의 요구에 따른 거짓 약속’을 보편 준칙으로 삼는다 하더라도 자신과 상대 모두를 잘되게 하라는 상생윤리의 형식과 내용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무자기에 기초한 약속을 보편적 준칙으로 삼을 경우, 상생윤리 실현이 가능하다.

(2) 사례의 경우, 칸트가 말하듯 개인주의적 무관심이 보편적 자연법칙이 된다고 해도 인류는 존속할 수 있다. 타인을 속이거나, 인권을 해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준칙에 따른 행위가 가능하더라도, 이 원리가 보편적으로 타당하기를 의욕할 수는 없다. 그 경우, 타인의 사랑이나 동정,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희망을 스스로 빼앗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용서하고 상생하는 행위 준칙이 보편 법칙이 될 것을 의욕해야 한다.”고 입법할 경우, 타당한 정언명법이 될 수 있다.50) 이 점에서 ‘해원상생 원리가 모든 행위 일반에 대한 도덕적 판정 규준(Kanon)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입법한다면, 그 형식과 내용 모두 정언명법의 요건을 충족하게 된다.

정언명령의 내용과 관련하여,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이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행위 하라.”는 명령의 실행 가능성 측면에서, 위의 두 사례를 살펴보자. 사례 (1)의 경우, 타인 안에 내재한 목적을 무시하고 수단으로 이용하려 한 것이므로 정언명령에 위배된다. 상대는 행위자의 처사에 동의할 수 없을 것이고, 행위 목적인 인격으로 대우받았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거짓 약속의 사례’는 인간성 원리와 상충하여 그 행위 준칙이 보편적 자연법칙이 될 것을 의욕할 수 없다. 그러나 무자기가 자연법칙이 되어야 한다고 의욕 할 경우, 타인의 인격을 수단으로 대하지 않기에 신뢰를 얻을 것이고 상생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사례 (2)의 경우, 타인의 행복을 의도적으로 해치지 않는다면, 인간성은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각자가 타인의 목적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는다면, 목적 그 자체인 인간성에 소극적으로만 부합할 뿐이다. 무관심한 공존으로는 행복과 같은 목적 그 자체로서의 원리를 자신의 목적으로 공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상생윤리의 준칙은 (i) 보편성에 기반하고(형식), 인간성을 목적으로 하며(내용), ‘인(仁)’이나 해원상생의 마음을 보편 법칙을 수립하는 의지로 삼을 수 있다(자율)는 점에서 살아 있는 도덕법칙이 될 수 있다. 무자기에 입각한 해원상생 이념은 인륜과 상생을 내용으로 하기에, 모순 없이 자신과 타인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 논의를 요약하면, 자연법 전통에서 도덕법칙과 이성을 따르려는 칸트의 윤리적 이상은 인간의 자율과 존엄을 최상의 가치로 설정한다는 점에서 대순사상의 자유의사에 기초한 주체성51), 인존 이념과 연계점이 있다. 그러나 자기기만에 대한 칸트의 예외 없는 원칙주의 해석은 양심과 인륜 등의 윤리 내용과 상충된다. 보편화 정식과 인간성 정식을 나누어 예외를 허용하는 절충적 해석도 응보적 상극원리라는 한계가 있다.52) 칸트의 윤리학은 형식(원칙)에는 충실하지만, 다양한 상황과 도리를 포용하는 유연성이 부족하다. 밀의 공리주의 또한 개인의 권리, 인격적 가치(온전성), 및 공정성에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53)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서양 윤리학에서는 양자를 보완하는 대안을 모색해 왔다. 다음 절에서는 베르그송의 ‘열린 도덕’ 관점을 참고하여 대순사상의 종지(宗旨)와 연계된 무자기의 의미를 조명함으로써, 근대 서구윤리학을 보완할 수 있는 상생윤리의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한다. 대순사상에서 무자기는 음양합덕·신인조화·해원상생·도통진경이라는 종지를 실현하기 위한 수행의 기반이자 목적, 그리고 방법54)으로 제시된다. 무자기의 성격이 상생적이라면 이는 열린 도덕관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며, 다음 절에서는 대순사상의 종지와 관련하여 무자기의 상생적 함의를 살펴보겠다.

Ⅳ. 대순사상의 종지와 관련해 본 무자기의 함의

1. 베르그송의 ‘열린 도덕’과 음양합덕으로 본 무자기의 함의
1) 베르그송의 ‘열린 도덕’관으로 본 무자기와 종지

대순사상에서는 천명으로 부여받은 양심에 따라 ‘남을 잘되게 하는 것이 곧 내가 잘되는 길’이라는 도덕 준칙을 내면화하는 실천도덕을 중시한다. 무자기에 기초한 인륜 관계의 확대된 실천 속에서 상생 정신의 체화를 지향하는 것이다.55) 이처럼 인륜공동체 속의 조화와 협동 실천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무자기 논의는 칸트나 밀의 지성이나 합의 규약에 위배되는 ‘자기기만’, 또는 ‘거짓 약속’ 금지 등의 개인주의 윤리와 차별화된다.

반면 베르그송의 ‘열린 도덕’ 관점은 대순사상의 종지와 관련하여 밀과 칸트 윤리학의 자기기만 논의를 보완할 수 있다. 개인과 공동체의 행복과 의무에 대한 밀과 칸트의 강조점과 달리, 베르그송의 도덕론에서 본능과 지성을 초월한 생명의 비약 그 자체인 사랑은 특별한 사람들에 의해 전파되어 새로운 도덕 상태로 도약하는 방법이 된다.

(사랑은) 그 방향이 생의 비약 그 자체이다. 이 비약 자체가 특별한 사람들에게 온전히 전달되어 인류 전체에 각인된다.56)

즉, 베르그송에 따르면, 끊임없이 변화되고 창조하는 생명 에너지의 비약은 열린 도덕에서 사랑의 비약으로 승화되어 대상과 합일된 직관적 인식과 공감을 가능하게 한다. 이로써 개인과 사회 안에 폐쇄된 영혼들의 한계를 넘어 내면적이고 직접적 소통을 지향한다.57) 이 점에서 베르그송이 말하는 특별한 사람들에 의해 전파되는 사랑의 비약은 상생윤리에서 무자기에 따라 해원상생을 실천하는 수도자의 이상과 연계된다. 무자기를 ‘열린 도덕’의 시각에서 보면, 정해진 법칙을 따르는 의무에만 머물지 않고 자율적 인격의 양심에 따라 상황에 맞는 언행을 창조해 나가는 생명의 활동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기만 문제도 상대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창조적 의식의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베르그송의 표현에 따르면, 심연의 자아로부터 온 생명을 산출한 약동하는 생명의 인격적 표현, 즉 사랑의 도약이 생겨나면 상황에 맞는 적절한 언행이 솟아나게 된다. 사회 구성원의 요구나 언행은 각 개인의 마음 심층에서 발견한 인간성에 따르며, 전체적으로 사회의 활력을 표출한다.58)

이러한 맥락에서 베르그송이 말하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내재한 윤리적 요구에 따른 언행은 해원상생 이념의 실천과 상응한다. 상생윤리에서 사회의 윤리적 요구를 내면화한 실천은 심령의 빛에 근거한 도덕의 관점에서 동일성과 차이, 일과 다, 진실과 거짓의 양극단을 생명이라는 하나의 인륜성으로 조화시킨 합덕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이분법의 법칙은 본능과 지성, 동물과 식물, 그리고 상반되고 보완적 경향을 가진 각 종(種)과 인간 사유의 심리적, 생물학적 본성이다. 이 법칙은 양극단에 치우친 행위를 초래하며, 두 경향 각각에 내재된 요구를 끝까지 따를 때 ‘이중적 광란’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베르그송은 이러한 양극단을 경험하고 본래의 균형 상태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완성과 진보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59)

한편, 베르그송의 생명존재론 체계에서 사회는 생명체의 핵심을 이룬다. 개별 유기체인 이 사회에서 각 요소는 전체를 위해 희생하는 본능에 따라 자연의 조직화 작업을 수행한다. 자연 속에서 개체는 사회를 위해 희생될 수 있지만, 베르그송은 인류의 경우 다르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지성을 통해 공동체 속에서 전체와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방법을 찾아낸다.60) 베르그송에서 이러한 지성적 수단은 직관이다. 직관은 영혼과 육체를 연계시키며 모든 도덕과 종교의 진정한 근원을 ‘생명의 약동에서 찾는다.61) 상생윤리에서도 사회의 윤리적 요구는 수행자의 심령의 빛을 통해 내면화된다. 이 과정에서 정신(의식)과 육체(감정)는 생명이라는 하나의 유기체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결과적으로, 이는 실천윤리의 측면에서 인격완성을 목표로 하는 끊임없이 생동하는 인륜성으로 표현된다.

상생윤리에서 무자기에 기반한 언행은 논리적 측면에서 볼 때, 분별적 집착이나 무분별적 의무 준수라는 양극단을 지양한다. 대신, 양심의 빛을 따라 지성과 본능을 아우르는 직관적 통찰과 체화된 덕의 실천을 추구한다.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발전을 이룬다. 이처럼 상생윤리는 생명의 인륜성을 통해 논리적, 존재론적, 윤리적 차원의 조화를 실현한다. 이는 베르그송이 강조하는 공동체 구성원에 내재한 윤리적 요구와 연결되며, 대순사상의 음양합덕 원리와도 맥을 같이 한다. 음양합덕의 관점에서 윤리란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역지사지의 맥락에서 상대적으로 이해하고 행동하는 관계적 사유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베르그송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혜라면 한 쪽은 상황에 따라 개입하고 다른 쪽은 도를 넘으려 할 때 두 성향을 서로 조화하여 제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렇듯 상반된 성향 속에서 발생하는 ‘자기기만’ 문제는 본능과 지성의 이분법적 접근이 아닌, 음양합덕의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음과 양이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조화를 이루어 덕을 형성한다는 관점에서, 생명의 원천을 지키고 살려내어 진실을 돋보이게 하거나 보완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는 칸트가 직면한 자연적, 사회적 명령(복종)과 자유 간의 모순을 해결하는 핵심 고리로 작용할 수 있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유기체의 세포들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복잡한 위계질서 속에서 상호 종속된다. 이 질서 안에서 생명체들은 전체의 최대 이익을 위해 부분의 희생을 감수하는 규율을 자연스레 따른다.62)

공리주의 원칙도 자연세계의 본능적 질서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베르그송의 체계에서 이러한 본능적 질서는 닫힌 도덕에 해당한다. 반면, 인간 사회는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사회적 삶의 요구 속에서 지성과 영혼의 자유의지, 균형감각에 따라 타인과 창조적 상호의존관계를 창출할 수 있다. 양심은 이러한 창조적 관계의 근간이 된다.63) 동일한 말이라도 양심이냐, 사심이냐에 따라 매우 상이한 정서들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도덕적 명령이라는 미명 하에 순수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신뢰를 저버리는 것은 양심의 관점에서 가장 나쁜 행위에 속한다. 이 점 또한 개인의 본질인 양심을 회복하고 영을 맑게 해야 심령을 통일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대순사상의 관점과 맞닿아 있다.

개인과 사회를 음양관계로 이해할 때, 베르그송은 양심이 사회 속에서 표출되고 평가된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도덕적 의무는 단순한 명령 형태의 도덕으로 가려지지 않는다. 대신, 이는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공감과 같은 섬세한 사회적 정서를 동반한 요구를 통해 나타난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덕적 양심은 사회적 자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이 사회적 자아를 아담 스미스의 “공정한 관망자”, 도덕적 양심과 동일시해야 하며, 그 감동의 좋고 나쁨에 따라 스스로 만족 또는 불만족을 느낀다고까지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도덕적 감정의 더 깊은 근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살인자의 양심의 가책과 자신의 감정을 상하게 했거나 아이에게 부당하게 행동했을 때 느끼는 자책감과 고통스러운 양심의 가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삶을 열어가는 순수한 영혼의 신뢰를 배반하는 행위는, 사회로부터 척도, 도구, 측정 방법을 빌리지 않기 때문에 비례감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특정한 양심의 눈으로 볼 때, 가장 큰 악행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양심은 가장 빈번히 작용하는 것은 아니며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양심의 판단은 사회적 자아에 의해 주어지는 평결이다.64)

이러한 맥락에서 베르그송은 심지어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도 열린 도덕적 양심에 따라 자신의 죄를 자백함으로써 사회로 돌아와 협력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범죄자는 스스로 처벌의 주체가 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65) 그에 따르면 영혼에 기반한 사회적 덕이라는 기준을 적용할 때,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와 이상적인 인류 공동체 사이에는 닫힘과 열림의 본질적 차이가 존재한다. 이는 단순한 정도의 차이가 아닌 본성의 차이다. 그러나 닫힌 사회는 인류애를 통해 열린 사회로 진보할 수 있다. 특히, 사회 속의 종교는 신을 통해 인류에 대한 사랑을 권유하며, 인간은 그 속에서 단번에 인류애로 도약할 수 있다.66)

이러한 베르그송의 열린 종교관은 사회 속에 있는 자신도 타인도 모두 “구천상제님 주재하의 인간”67)이기에 “도의 무한대한 진리로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여 인보상조의 미덕으로 인류의 평화를 도모해야 한다.”68)는 해원상생 윤리와 상통한다.

인류가 무편무사(無偏無私)하고 정직과 진실로서 상호 이해하고 사랑하며 상부상조의 도덕심이 생활화된다면 이것이 화평이며 해원상생(解冤相生)이다.69)

이 윤리는 또한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과 신명, 그리고 ‘마음이 곧 하늘(신)’이라는 관점에서 ‘천지의 중심으로서의 자신의 마음(天地中央之心)’, 즉 하늘(신)을 속이지 않아야 한다는 신인조화 윤리와 연계된다. 『전경』에는 “나를 믿고 마음을 정직히 하는 자는 하늘도 두려워하느니라.”70)는 증산의 교법이 있다. 이는 상제를 진실로 믿을 때 무자기를 실천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하늘과 통하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순진리회요람』에서는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여 인간 본래의 청정한 본질로 환원하고, 대순진리를 체득하여 “도가 곧 나요, 내가 곧 도”라는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한다.71) 이는 상제에 대한 신앙과 무자기를 바탕으로 개인의 욕구와 원을 풀고 남을 잘되게 하는 수도를 통해 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구도로, 베르그송의 신을 통한 인류애로의 도약과 유사하다. 이처럼 무자기는 열린 도덕관에 기반한 창조적 이념의 실천 속에서 인격 완성을 위한 자기 반성과 개선의 근간이 된다. 더 나아가 이는 확장된 인륜의 실천을 통해 무욕청정의 도통진경에 이르는 토대가 된다.72) 나아가 인류와 생명 전체에 대한 동화와 상생을 추구하는 인륜공동체의 윤리적 기초를 이룬다.

생명론에 기반한 ‘열린 도덕관’의 관점에서, 무자기는 상제의 생명 원천에서 비롯된 창조적 덕의 약동, 즉 덕화를 공유하는 인륜 관계 속에서 실현된다. 이는 창조적 감성을 통해 언행과 처사를 실천하는 열린 공동체의 윤리 준칙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상생윤리는 단순한 공생의 차원을 넘어서 상생의 관점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개인주의적 이기심, 닫힌 사회의 위계 구조, 그리고 이로 인한 소외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 열린 공동체 안에서 자신과 타인을 동등하게 고려하는 ‘우리’ 의식 또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상생 이념이 체화된다면, 지성과 본능에 기반한 정언명법(보편화·인간성 및 자율성 정식)과 공리 원칙도 창조적 직관과 정서로 승화되어 더욱 효과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2) 음양합덕으로 본 ‘선의의 거짓말’ 문제

대순사상에서 무자기는 인예의지와 같은 도덕적 정서를 바탕으로 이타적 행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열린 도덕관의 특성을 지닌다. 양심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특정 상황에서는 침묵이나 소극적 대응이 오히려 도덕적 정서가 체화된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대순진리회요람』의 믿음(信)에 대한 설명에서 ‘셋을 셋이라고 하지 않고’73)라는 표현은 단순한 수의 개념을 넘어 깊은 의미를 내포한다. 이는 개별적 ‘셋’과 전체를 포괄하는 보편적 ‘셋’의 중층적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74) 『전경』의 “천지 안에 있는 말은 하나도 거짓말이 없느니라.”75)라는 역설적 표현 또한 표면적 의미를 넘어 깊은 진리를 전달한다. 동양 사상에서도 역설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는 방식을 자주 활용한다.76)

이러한 맥락에서 칸트와 밀의 ‘문간의 살인자’ 사례를 재해석할 수 있다. 즉, 표면적 사실을 그대로 말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양심의 진정한 의미와 선한 의도를 더 잘 지켜내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순지침』의 “나의 말은 문지방을 넘어가기 전에 잊어버리라”77)는 훈시와 ‘성인의 경전은 문장의 색채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실질을 구하는 것’이라는 「각도문」 의 교법78)은 언어적 표현을 넘어 양심과 심령의 법을 따라 체화된 도의 내용, 즉 덕의 실천을 강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화자의 진의(내용)를 전달하기 위해 역설적 함의를 포섭하는 변증법적 표현(형식)이 사용되곤 한다. 증산의 천지공사 시 침묵 후에 공사의 의미를 설명하는 방식79)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진리의 독점이나 권위의 표현이 아닌,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보호하고 더불어 잘되게 하려는 상생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율배반적 상황에 대해 밀과 칸트는 서로 다른 접근을 취한다. 밀은 공리의 증진을 우선시하여 이를 선택한다. 반면 칸트는 실천이성을 통해 신의 존재를 요청하면서도, 인간의 이성적 본성에 따라 정언명령의 준수를 도덕적 의무로 제시한다. 그러나 칸트는 이러한 역설적 상황에 일정한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이율배반을 극복하고자 시도한다. 이에 비해, 베르그송은 존재의 근원에서 비롯된 생명의 약동에 기반하여 사랑의 윤리를 통해 지성과 본능 간의 이율배반을 극복하고자 한다. 대순사상 역시 신도, 태극, 연원과 같은 존재의 원천에서 유래한 생명력을 토대로, 음양합덕과 해원상생 등의 종지를 통해 역설적 상황을 포용한다. 이는 음(자신)의 관점과 양(상대)의 관점을 아우르는 창조적 사유를 통해 실재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80)

플라톤의 『파르메니데스』이래로, 일(一)과 다(多), 동일성과 차이성, 큼(大)과 작음(小)이라는 제3의 역설 문제는 서양철학에서 해결되지 않는 난제였다. 그러나 이 모순적 양자를 통합해 이해할 수 있는 제3의 이데아로서 단일 형상이나 사태 그 자체에 주목할 경우, 다양한 개별자의 속성과 현상이 이를 묶어 주는 하나의 의미로 변증법적으로 포섭되거나 현현하게 된다. 대순사상에서는 일과 다의 관련, 전체와 그 요소로서의 전체와의 관계를, 천명으로 부여받은 ‘본성’에 기반한 ‘중(中)’의 개념, 즉 ‘양극단이 합하여 덕(德)을 이루는’ 관계적 사유를 통해 조화롭게 포섭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무자기는 음양의 경계를 초월하는 양심의 자리에서 무한한 덕을 창조해 나가는 근원적 생명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등의 특수한 상황에서도 해원상생의 도덕적 정서를 바탕으로 역설적 언행이나 방편적 행위까지도 포용하는 광범위한 해석이 가능해진다.81) 따라서 음양합덕에 근거한 무자기는 도덕 원칙의 형식뿐만 아니라 인륜이나 상생과 같은 윤리 내용과 정서 또한 충족함으로써 정언명법과 공리원칙을 생명 중심 윤리로 보완하는 윤리적 지침이 될 수 있다.

보편과 특수를 아우르는 무자기에 대한 이러한 광범위한 해석은 진실의 이면에 내재하는 역설적 측면까지 음양합덕과 해원상생의 관점에서 포용한다. 이는 유용성에 기반한 밀의 입장과는 차별화된다. 오히려 상생윤리는 그 형식과 지향에서 칸트의 윤리학에 더 가까운 면이 있다. 칸트는 일자와 다자 사이의 동일성과 차이성, 지성과 감성 간의 이율배반 구도 안에서 신의 존재를 요청하면서도 이성과 양심의 준칙을 따라 양극단을 매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생윤리는 칸트의 윤리학을 넘어서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인륜과 상생, 합덕과 조화라는 내용이 준거점이 되어 무자기라는 보편적 형식을 완성한다. 둘째, 상생윤리는 베르그송의 철학과 유사하게, “각 인격의 고유한 정서를 통해 인간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 사랑을 바탕으로 타인을 향한 인류애로 확장되는 영혼의 개방”82)을 강조한다. 이는 대순사상에서 해원상생의 원리로 구체화된다. 대순사상에서 도덕법칙은 단순한 규칙 준수의 의무를 넘어선다. 이는 인륜에 기반한 인류애, 즉 해원상생이라는 의지적이고 정서적인 내용을 포함함으로써 그 생명력을 얻는다. 이러한 특성은 대순사상이 열린 도덕과 종교의 특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2. 신인조화 및 기타 종지와 관련해 본 무자기의 상생적 특성

무자기는 양심의 원칙과 인륜적 내용에 입각한 개념이다. 따라서 상생윤리는 원칙 적용에 있어 역설적 상황까지도 포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개인이 사태의 주체로서 입법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며, 이분법적 참과 거짓에 기반한 표면적 사실을 넘어 특수한 상황에 내재된 진실의 의미를 파악하는 음양합덕의 사유를 반영한다. 더 나아가 무자기 개념은 양심의 적용에 있어 타인뿐만 아니라 신명까지 고려하는 관계적 사유, 특히 상생적 관계 지향성을 강조한다. 대순사상에서 마음은 신이 용사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마음을 속이는 행위는 자신뿐만 아니라 관련된 타인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상대방에게 부정적 인상이나 습관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어, 해당 개인뿐만 아니라 그와 연관된 신명에게도 직접적 혹은 간접적인 해를 끼칠 수 있다.

신인조화와 해원상생의 관점에서 무자기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타인과 신명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확장된 개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명의 위협에 처한 무고한 사람을 보호하는 특수 상황에서의 양심적 행위는 인륜과 해원상생(사랑)이라는 생명적 의식에 근거해야 한다. 베르그송의 열린 종교와 도덕 개념을 적용하면, 사회적 명령법에 국한된 닫힌 종교는 강제나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반면, 열린 종교는 생명력과 자유 의지에 기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무자기는 활발한 양심을 기준으로 삼고, 상생 의식을 수반한 인륜성에 대한 정서를 자율적 의무로 발현시키는 윤리 원칙으로 이해될 수 있다. “나는 오직 마음만 볼 뿐이다.”83)라는 증산의 교법처럼, 행위자가 스스로의 양심에 비추어 자신의 언행과 처사가 욕심이나 사심이 아닌 도리와 상생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판단한다면, 이는 열린 도덕의 특성을 나타낸다.

상생윤리는 타인과 신명, 나아가 모든 생명체의 번영을 추구하는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상생윤리는 단순한 선악의 이분법이나 이해관계에 기반한 행위 원칙, 또는 결과론적 판단에 국한되지 않고, 각 상황의 맥락을 창조적으로 고려하는 유연성을 지닌다.84) 특히 신인조화와 해원상생의 관점에서 무자기는 신도라는 법의 근원에 따라 타인과 신명에 대한 인류애로 약동하는 생명력을 내포한다. 이는 강제, 억압, 명령의 특징을 갖는 정태적 자연적 종교와 구별되는 창조성을 지닌다. 무자기에 기초한 상생윤리 역시 일상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반성하며 인간성의 가치와 정의를 상생적으로 구현해 나가는 열린 도덕85)의 특성을 갖는다.

무자기의 실천을 통한 심령의 통일은 해원상생의 실천으로 이어지며, 이는 훈회와 수칙을 통해 구체화된다. “마음을 속이지 말라”, “언덕을 잘 가지라” 등의 훈회와 “일상 자신을 반성하여 과부족이 없는가를 살펴 고쳐 나갈 것” 등의 수칙은 일상의 마음가짐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사랑과 관심의 의지를 표현한다. 이는 강제적 의무 규정이 아니라 자발적 실천을 권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생윤리관은 매 상황에 적합한 상생의 마음가짐과 언행을 지향하며, 개인의 권익에 기초한 근대 서구윤리학과 달리 생명의 약동을 추구하는 인륜공동체의 자율적 특성을 드러낸다.

한편, 매순간 도리에 부합하는 언행을 추구하는 열린 도덕관은 단순한 의무 이행을 넘어서, 자신의 인격을 도야하여 도통진경에 이르고자 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상생윤리가 마음에 배고 몸에 배어 인격완성을 이룬 도통군자의 특성은 심층 자아에서 우러나오는 생명적 사랑의 약동으로, 도덕과 종교를 열린 방향으로 이끄는 특별한 인격에 비유될 수 있다.86) 이러한 맥락에서 무자기는 양심 회복과 영혼의 정화를 통해 감성과 지성이 조화롭게 고양된 윤리관을 체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특정 집단에 국한된 사랑을 넘어 생명 전체를 아우르는 인류애, 즉 해원상생을 지향한다. 이 점에서 무자기는 밀과 칸트로 대표되는 서구의 개인주의적 규범윤리학과 차별화되는 상생적 특성을 지닌다.

Ⅴ. 결론

사회계약론과 인권사상에 기반을 둔 서구 윤리학의 양대 주류인 밀과 칸트의 윤리학은 각각 “모든 존재가 행복을 누릴 동일한 자격이 있다.”87)와 “인격을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상생윤리와 일부 연관성을 가진다. 그러나 자기기만과 ‘선의의 거짓말’ 문제에 있어, 거짓을 반대하는 칸트의 기본 취지가 ‘상호 신뢰와 약속의 유지’에 있다는 점에서 밀의 공리 원칙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특히, 칸트의 원칙주의적 입장은 보편법칙의 엄격한 적용을 강조함으로써 인륜에 배치되는 딜레마를 야기한다. 더욱이, 이러한 해석은 피해자의 죽음과 같은 ‘우연적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는 주장에서 원칙(형식) 적용의 일관성 문제를 드러낸다.

또한 칸트나 밀의 ‘응당한 보수(desert)’, 즉 응보의 원리는 인륜이나 상생과 같은 윤리적 내용을 결여하고 있어, 정언명령이나 바람직한 공리 내용으로 충족되기 어렵다. 범죄자는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88)는 관점에서 거짓말을 허용하더라도, 이는 인(仁)이나 자비심이 아닌 조건적 정의를 윤리 준칙의 내용으로 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접근은 보편적 인류애와 같은 인륜공동체적 도리(내용)와는 달리, 최상의 보편원리로 정립되기 어렵다. 밀의 기준 역시 공동체 구성원인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내면화한 고려라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칸트와 밀의 관점은 동양 및 대순사상의 무자기에 대한 관점과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한편 서양 윤리학의 화두 중 하나인 자기기만 문제를 대순사상의 종지에 입각해서 고찰하면, 양심에 바탕을 두고 모든 생명을 잘되게 하려는 상생 이념의 본질적 의미를 살리는 도덕적 정서를 상황에 맞게 적용함으로써 표면적인 역설을 해소할 수 있다.89) 상생윤리는 동일성과 차이성, 일과 다, 진실과 거짓의 양 극단을 맥락에 따라 조화롭게 이해하는 관계론적 사유를 음양합덕으로 제시한다. 이처럼 음과 양을 함께 아우르며 덕을 이룬다는 관점에서, 무자기는 지성과 감성, 자신과 타인, 그리고 신명과의 조화를 이루는 토대가 된다. ‘마음이 곧 하늘(신)’이라는 믿음 아래 자신의 온 마음을 전체 생명을 위한 마음으로 고양하는 것이 무자기의 본질이다.

나아가 신인조화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양심에 따라 원과 척을 풀고 욕구를 상생적으로 승화시키는 해원상생의 실천으로 이어진다. 무자기는 해원상생 이념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며 개인의 천성인 양심을 인류애로 확장해 나간다는 점에서, 개인과 타인의 이익 중 유리한 것을 선택하는 공리적 지성의 활동과는 구별된다. 베르그송은 전자를 자족적이면서도 사랑으로 향하는 열린 영혼으로, 후자를 자연의 본능적 활동에 기반한 닫힌 영혼으로 표현한다.90) 이러한 맥락에서 해원상생은 무자기를 통해 자신을 반성하고 타인과 더불어 잘 살고자 하는 영혼의 능동적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는 심층 자아의 생명적 도약을 이루는 도통진경의 바탕이 된다. 결국, 무자기를 포함한 윤리적 지침인 훈회와 수칙은 모두 대순사상의 종지, 특히 해원상생의 원리로 수렴된다.91)

전체적으로 볼 때, 계몽과 이성이라는 장밋빛 꿈으로 근대성을 정립하려 했던 칸트나 밀의 윤리학을, 과학적 이성으로 현상을 분석하고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근대성이 표방한 이성의 한계를 인식한 베르그송의 도덕론과 동일선상에서 평가하기는 어렵다. 각 사상은 그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순사상에서 무자기의 윤리적 특성은 자율적 성찰과 모든 생명에 대한 상생의 마음을 체화하고 고양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베르그송의 열린 도덕관과 유사성을 보인다. 무자기는 생명의 근원(연원)에 기반을 두고 해원상생이라는 인간 사랑과 존중을 통해 창조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수행의 바탕이자 목적, 지향점으로서 열린 도덕과 종교관을 나타낸다. 다만, 인류애를 가정, 민족, 국가에 대한 사랑과 질적으로 구분하는 베르그송과 달리, 상생윤리에서는 가정, 국가, 인류애를 연속적으로 이해하는 인륜공동체적 윤리이념이 두드러진다.

결론적으로 대순사상의 무자기 개념은 서구의 규범윤리와 비교할 때 더욱 포괄적인 특성을 지닌다. 이는 단순히 보편적 도덕 원칙이라는 형식에 그치지 않고, 인격과 인존, 해원상생이라는 구체적 내용과 맥락을 포함한다. 더 나아가 무자기는 표면적 의미를 넘어 숨은 뜻과 역설까지 아우르며, 생명의식의 발로인 인류애로 승화되는 상생윤리의 근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Notes

의무론적 윤리는 “목적과 상관없이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는 규범적 윤리설이다. 목적론적 윤리는 개인이나 집단이 추구하는 특정 목적에 근거하여, “X를 하기 위해서는 Y를 해야 한다.”는 방식으로 바람직한 삶을 제시하는 윤리관이다. 전자가 규범적·이성주의적·동기주의적이라면, 후자는 경험적·직관적·결과 지향적 성향이 강하다. 일반적으로 목적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주의 윤리학을 지칭하지만, 본고에서는 결과주의 윤리학인 공리주의 또한 행복과 쾌락을 선이자 목적으로 본다는 광의의 맥락에서 목적론적 윤리학의 특성을 갖는 것으로 본다.

칸트의 자기기만과 관련하여, 우드는 자기기만이 자신을 실제보다 좋은 사람으로 표상하려는 동기에서 비롯되며 특정 유형의 악을 일으킨다고 본다. 반면, 포터는 가식적이되 의무에 맞다면 경향성을 총족하는 행위를 도덕적으로 여기는 자기기만을 “도덕적 악의 주요하고 유일한 원천”으로 본다. 앨리슨은 악으로의 성벽(Hang zum Bösen: 허약성, 불순성, 타락성)이라는 비도덕성의 범주에서 자기기만이 일어나기에 모든 도덕적 악의 원천이라고 본다. 강지영, 「칸트에서 자기기만의 문제 : 비도덕적 행위의 심리학적 설명에 대한 비판적 검토」, 『철학논집』 63 (2020), pp.10-11.

같은 글, pp.12-19 참조.

Henri Bergson (b), L' évolution créatrice (Pari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1959), p.48.

『대순진리회요람』 (여주: 대순진리회 교무부, 2010), p.19.

「우당 훈시」, 『대순회보』 12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1989), p.2.

Immanuel Kant (d), op. cit., Groundwork of the Metaphysics of Morals, trans. and ed. Mary Gregor with an intro. Christine M. Korsgaar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pp.15-16; ‘준칙’이란 의욕의 주관적 원리를 말한다. 임마누엘 칸트, 『윤리형이상학 정초』, 백종현 옮김 (파주: 아카넷, 2014), p.134.

Immanuel Kant (d), op. cit., p.xviii; 임마누엘 칸트, 앞의 책, pp.155-163.

조민환, 「강증산과 대순사상의 무자기에 관한 연구」, 『한국사상과 문화』 78 (2015), pp.281-308.

김태수, 「대순사상의 무자기(無自欺)에 나타난 상생윤리 : 칸트와 밀의 윤리관과의 대비를 중심으로」, 『대순사상논총』 27 (2016), pp.283-317; 김태수, 「대순사상의 무자기와 상생 윤리관의 특징 : 서구 규범 윤리학과의 대비를 중심으로」, 『대순종학』 1 (2021), pp.85-107.

주소연, 「대순사상의 덕윤리 연구」 (대진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24), pp.1-249.

J. S. Mill, Utilitarianism, ed. Roger Crisp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p.55; 밀은 질적 공리주의를 주창했다. 그는 행복을 영적·정신적 상위개념과 육체적·감각적 하위개념으로 구분하고, 전자를 후자보다 우선시했다는 점에서 벤담의 양적, 감각적 쾌락주의와 구별된다.

Ibid., p.90.

Ibid., pp.68-69; 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 서병훈 옮김 (서울: 책세상, 2014), p.50.

J. S. Mill, op. cit., p.69.

Immanuel Kant (d), op. cit., pp.56-58.

Immanuel Kant (d), op. cit., pp.58-59. 칸트는 물자체(Ding an sich)와 현상(Erscheinung), 예지계(intelligible Welt)와 감성계(Sinnenwelt)를 구별함으로써, 자유롭지만 도덕법칙에 따라야 하는 정언명령의 실천적 필연성을 증명한다.

Immanuel Kant (d), op. cit., p.57.

Immanuel Kant (d), op. cit., p.31.

Immanuel Kant (d), op. cit., p.38.

Immanuel Kant (d), op. cit., pp.41-42.

Immanuel Kant (d), op. cit., pp.43-44.

Immanuel Kant (a), Groundwork of the Metaphysic of Morals, trans. H. J. Paton (London: Hutchinson, 1948), pp.52-57, pp.421-423.

Immanuel Kant (a), op. cit., pp.xviii-xix, pp.53-54, p.422; Fred Feldman, Introductory Ethics(Englewood Cliffs: Prentice Hall, 1978), pp.108-109.

Immanuel Kant (b), “On a supposed right to lie because of philanthropic concerns,” in Lewis White Beck ed. and trans., Critique of Practical Reason and Other Writings in Moral Philosophy(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49), pp.346-350; 칸트는 콘스탕의 ‘진실에 대한 권리’ 주장을 반박하며, 진실성은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형식적 의무라고 주장한다. 그의 형벌 이론은 범죄에 대한 응보설로, 범죄로 인한 해악에 상응하는 처벌을 주장한다. Immanuel Kant (c), The Metaphysics of Morals, Mary Gregor ed. and Roger J Sullivan intro.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pp.105-109.

예수의 산상수훈(山上垂訓)은 홍익인간 정신을 개별화한 윤리 원칙적 특성을 갖는다. 『신약성서』, 「마태복음」 7장 12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누가복음」 6장 31절,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 The New Testament, trans.David Bentley Hart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16), p.12, p.118.

『윤리학 강의』가 그 예이다. Christine Korsgaard, “The Right to Lie: Kant on Dealing with Evil,” Philosophy and Public Affairs15:4(1986), pp.328-334.

즉, 관습적 도덕이나 전통의 요구 내용이 아닌 도덕적 정당성을 위한 형식적 조건으로, 유가나 묵가의 도덕이론 체계에서 최상의 가치를 지니는 형식적 도덕원리이다.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라는 “서”의 원리나 “척을 짓지 말고 남을 잘되게 하라”라는 원리가 지시하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되어야 한다.

베르그송은 본능과 지성을 “원초적인 상태에서는 서로 침투했지만 진화하면서 분리된 의식 형태”로 본다. Henri Bergson (a), Les deux sources de la morale et de la religion (Pari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1932), p.21.

Henri Bergson (a), op. cit., p.29.

베르그송은 한 가지 의무가 모든 다른 의무로부터 끌어내는 힘을 각 세포가 하나의 요소로 참여하는 유기체 심층에서 끌어올리는 불가결하고 완전한 생명의 숨결에 비유한다. Henri Bergson (c), The Two Sources of Morality and Religion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77), p.267.

Henri Bergson (a), op. cit., p.299; 베르그송은 “노예제에 기초한 (아테네 등의) 고대의 도시는 이 근본적 죄악으로 인해 거짓된 민주주의이고, 모든 정치 개념 가운데 자연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닫힌 사회의 조건을 초월하는 유일한 개념”을 “인간에게 불가침의 권리를 부여한 민주주의”로 본다.

“이렇게 정의된 시민은 칸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입법자이자 주체”이다. 시민 전체, 즉 국민은 주권을 행사한다. 이것이 이론적 민주주의이다. 그것은 자유를 선포하고 평등을 요구하며, 형제애를 무엇보다 우선시함으로써 서로가 자매임을 상기시킴으로써 이 두 적대적인 자매를 화해시킨다. 이런 식으로 … 모순이 제거되고 박애가 본질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가 본질적으로 복음주의적이며, 그 원동력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루소의 영혼에서 그 정서적 기원을 발견할 수 있고, 칸트의 저작에서 그 철학적 원리를, 칸트와 루소에게서 그 종교적 배경을 함께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칸트가 경건주의에, 루소가 개신교와 가톨릭에 빚진 것을 함께 간섭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1776년 인간 권리 선언의 모델이 된 미국 독립 선언문(1776)에도 청교도적 울림이 있다.” Henri Bergson (a), op. cit., p.300.

Henri Bergson (a), op. cit., pp.300-301.

Henri Bergson (a), op. cit., p.301.

Henri Bergson (a), op. cit., p.68.

Henri Bergson (a), op. cit., pp.20-21.

Henri Bergson (a), op. cit., pp.25-26.

「우당 훈시」, 『대순회보』 12 (서울: 대순진리회 출판부, 1989), p.2.

대순종교문화연구소, 「우당 훈시」(1992. 3. 18), 미발행 자료.

대순종교문화연구소, 「우당 훈시」(1988. 12. 28), 미발행 자료.

「우당 훈시」, 『대순회보』 2 (서울: 대순진리회 출판부, 1984), p.2.

「우당 훈시」, 『대순회보』 5 (서울: 대순진리회 출판부, 1986), p.2.

존 스튜어트 밀, 앞의 책, p.142, 밀은 “사람들이 늘 사회의 일반 이익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행동할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되며, … 의무를 특별히 위반하지만 않는다면, 모르는 사람보다 자기 가족이나 친구에게 더 좋은 자리를 주거나 편익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대순사상에서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대학의 원리가 중시되지만,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편익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지 않는다.

『대순지침』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12), p.28.

같은 책, p.43, p.71.

같은 책, p.70.

(1)은 ‘돈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갚겠다고 약속하고 빌리는’ 경우를, (2)는 ‘역경에 처한 타인을 도울 수 있으면서도 돕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Immanuel Kant (a), op. cit., pp.31-32.

Immanuel Kant (a), op. cit., p.33.

『전경』 (여주: 대순진리회 교무부, 2010), 교법 3장 24절.

칸트는 『영구평화론』에서 제시한 세계평화사상과 달리, 『윤리학 강의』에서 “외딴 섬에서 범죄자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들을 다 죽이고 떠나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 이러한 응보 원리, 및 칸트가 콘스탕을 비판하면서 제시한 논거인 ‘진실 계약’ 원리를 보편화하여 거짓말을 허용할 경우, 3가지 정식의 취지를 모두 위반할 뿐만 아니라, 인륜에 어긋나게 된다. 정언명법의 이상인 황금률을 “자신이 싫어하는 일은 누구에게도 행하지 말라” [Adolf Neubauer, The Book of Tobit: A Chaldee Text from a Unique Ms. in the Bodleian Library, with Other Rabbinical Texts, English Translations and the Itala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878), Ch. 4:15]라는 ‘서(恕)’와 같은 소극적 가르침으로 해석한다 하더라도, 칸트가 거짓말 허용의 근거로 내세운 “자신이 행한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대해야 한다.”는 준칙은 황금률 및 인간성 정식의 취지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흉악범의 예’ 등에서 선의의 거짓말을 허용하는 밀의 해석 또한 상대를 위하거나 도리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개인과 전체 사회의 공리를 위한 것이다.

유학에서 무자기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명시된다. 『大學·中庸集註』, 성백효 역주 (서울: 전통문화연구회, 1996), p.33, 『大學』 「誠意章」,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愼其獨也.”

이 점에서 동양의 덕 윤리 전통과 상통점이 있다.

Henri Bergson (a), op. cit., p.249.

이원석, 「H. Bergson의 I. Kant 비판에 대한 비판적 고찰」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8), p.41.

Henri Bergson (c), op. cit., p.11.

Henri Bergson (a), op. cit., pp.315-316.

Henri Bergson (a), op. cit., p.123.

Henri Bergson (a), op. cit., p.483, p.594.

Henri Bergson (c), op. cit., p.9.

Henri Bergson (a), op. cit., p.10.

Henri Bergson (a), op. cit., p.10.

Henri Bergson (a), op. cit., pp.10-11.

Henri Bergson (a), p.247.

『대순지침』, p.50.

같은 책, p.20.

대순진리회 교무부, 『포덕교화기본원리』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03), p.8.

『전경』, 교법 2장 7절.

『대순진리회요람』, p.9, p.16.

같은 책, p.39.

『대순진리회요람』, p.17.

예를 들어, 셋을 말하기 위해서는 하나도, 둘도 필요하므로, ‘셋은 하나이기도 하고, 둘이기도 하며, 전체를 포함하는 셋이기에 단순히 셋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는 의미일 수 있다. 이때 개별적 ‘셋’과 전체를 포괄하는 보편적 부류로서의 ‘셋’은 모순되지 않는다. 따라서 개별적 ‘셋’은 보편적 ‘셋’과 다르지만 일상적 차원에서는 ‘셋’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맥락에서 양자를 모두 포괄하는 중층적 개념으로 이해 가능하다. 하나를 둘이라 않고, 둘을 셋이라 하지 않는 것이 형식 논리적 명확성과 정직성을 의미한다면, 셋을 셋이라 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 개념이 내포하는 의미의 중층성과 맥락에 따른 역동성을 나타낸다. 베르그송적인 생명론 시각에서, 하나를 태극, 둘을 태극에서 분화된 음양, 셋을 삼라만상으로 볼 수 있다. 음양이 태극에서 분화되었으므로 하나(태극)는 음양(둘)이 아니지만, 삼라만상은 매 시각 창조적으로 변화하므로 셋 또한 셋이라고 할 수 없다. 즉 불변의 원리는 존재하되, 태극의 기동작용으로서 변화의 진리는 고정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전경』, 교법 1장 30절.

『莊子』에 나오는 혼돈 등의 비유나 불교의 『반야경』, 『유마경』과 같은 기술은 역설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는 구조를 잘 보여준다. 『莊子』, 안동림 역주 (서울: 현암사, 1996), p.235.

『대순지침』, p.4.

『전경』, 교운 2장 33절.

그 예로 독조사 도수가 있다. 『전경』, 행록 3장 65절.

‘대순진리’를 ‘크게 도는 무량한 진리’로 이해할 때, 한 개념은 반대적 측면에 상대하거나 의존해서 설명될 수 있다. 이렇듯 양극단은 서로 의존해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함으로써 하나의 덕을 이루게 된다.

공자 또한 죄를 지은 아버지를 보호하기 위해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것이 ‘곧음’ 이라고 말한다. 『論語集註』, 성백효 역주 (서울: 전통문화연구회, 1995), 「子路」 18, p.265, “葉公語孔子曰, ‘吾黨有直躬者, 其父攘羊, 而子證之.’ 孔子曰, ‘吾黨之直者異於是,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

Henri Bergson (c), op. cit., p.99.

『전경』, 교법 2장 10절.

이 점에서 상생윤리는 자연법에 입각한 소극적 권익 보존 입장보다 양심의 적용범위와 행사가 더 포괄적이다.

Henri Bergson (c), op. cit., pp.37-39; 앙리 베르그송,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박종원 옮김 (파주: 아카넷, 2016), pp.582-583.

이 인격적 깨달음의 상태는 지성을 초월하여 인류애를 향해 역동적으로 도약하는 심령의 창조적 통일 그 자체로 볼 수 있다. Henri Bergson (c), op. cit., p.39; 앙리 베르그송, 앞의 책, pp.586-587 참조.

J. S. Mill, op. cit., p.105.

Ibid., p.330; Christine Korsgaard, op. cit., pp.328-341; 제임스 레이첼스, 『도덕철학의 기초』, 노혜련·김기덕·박소영 옮김 (서울: 나눔의 집, 2013), pp.252-253.

인륜과 해원상생이라는 내용에 의거하여 양심에 따른 시중(時中)이나 침묵으로 역설적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Henri Bergson (c), op. cit., pp.37-39.

「우당 훈시」(1993.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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