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동양의 철학자들은 자신을 수양하고 도덕을 실천해서 이상적 국가를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즉 동양의 철학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도덕의 실천을 중요시하는 학문이다. 유학 사상에서는 하늘과 인간을 두 가지 축으로 삼으며 종교적 방식과 이성적 방식으로 도덕 실천의 방법을 제시한다. 그래서 유학의 전개 과정에는 천(天), 천명(天命), 상제(上帝) 등으로 표현되는 인격신적 초월자가 강조되는 종교적 방식과 태극(太極), 도(道), 리(理) 등으로 원리·법칙이 강조되는 이성적 방식이 병존하였다.1) 이는 천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종교적 성격과 이성적 성격을 함께 가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격신적 초월자를 강조하던 성호학파의 신서파(信西派)에 속해 있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하늘을 두려워하고 섬기는 경외의 자세를 통하여 도덕 실천을 강화하는 수양법을 강조한다. 다산은 조선 성리학 이론 체계의 정점에 놓여 있는 리(理) 개념 대신 상제를 중심으로 한 학문체계를 구축하면서 종교적 방식을 강화한다. 다산은 인간이 도덕을 실천하기 위한 근거로 공경하고 두려워할 수 있는 대상인 상제를 찾았다. 다산이 말한 상제는 천지(天地)와 신인(神人)의 밖에서 천지와 신인과 만물의 온갖 종류를 조화(造化)하고 재제(宰制)하며 안양(安養)하는 존재이다.2) 다산의 학문체계는 유학의 범주 안에서 상제를 내세워 종교적 방식을 극대화한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3)
그런데 조선 후기에는 종교적 방식의 도덕 실천이 유학을 공부한 학자들에게서만 제시된 것이 아니라 민중 종교의 사상에서도 나타난다. 이 시기 한국의 민중 종교는 1860년에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1864)가 제창한 동학에 영향을 받았거나 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만들어진 자생종교들이다. 동학 이후에는 증산교, 대종교, 남학, 원불교 등의 종교적 심성을 바탕으로 한 민중 종교 교단이 나타난다. 이 중에서도 증산계 교단에서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 1909)은 동학의 이념과 사상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강한 종교적 방식을 통한 도덕 실천이 필요함을 주장한다.4) 증산계 문헌에 따르면 증산은 스스로가 최고신 상제의 현신(現身)임을 밝히며 낡은 세상을 새롭게 뜯어고치는 천지공사(天地公事, 1901~1909)라는 종교적 행위를 한다.5) 증산은 이를 통해 도덕의 삶이 실현되는 이상적 사회를 건설하고자 한 것이다.
인격신적 초월자가 강조된 다산과 증산의 천관과 관련해서는 유의미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최동희는 실학자들이 서양의 천주 개념을 수용하여 형성한 상제 개념이 동학과 증산계 교단에 영향을 주었다고 분석한다.6) 이와 관련하여 조선 후기 천관에 초점을 맞춘 연구로는 이경원, 고남식, 안유경의 논문이 있다.7) 이 시각으로 보면, 성호학파의 신서파 중심으로 형성된 상제 개념은 수운에 와서 궁극적 실재인 상제 개념과 이어지게 된다.8) 또한 동학의 구성원들 상당수가 증산의 종도가 된 상황에서 증산의 사상에는 이미 동학의 여러 이념이 새롭게 재창조되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9) 따라서 상제 개념을 중심으로 형성된 다산과 증산의 사상 체계를 파악하는 일은 실학과 민중 종교 사상으로 연결되는 종교적 방식의 사유체계를 파악하는 데 유용한 연구라고 볼 수 있다.
다산과 증산의 천관에 관한 선행 연구가 중요한 점은 그들의 천관이 인간 존중의 정신에 입각하고 있음을 밝히고 이들의 이론이 다른 사상과 융합을 이루며 이상적인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산과 증산의 사유를 인간과 상제의 감응이라는 종교적 방식으로 이해하고, 그들 사유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는 데에서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 이에 논자가 주목한 것은 다산과 증산의 사상에 인간의 마음을 통해 상제와 감응한다는 논리가 공통으로 보이는 지점이다. 다산은 “하늘의 영명(靈明)은 사람의 마음에 바로 통한다. 숨기더라도 살피지 못하는 것이 없고 작더라도 환히 비추지 않음이 없다.”10)라고 하고, 증산은 “마음이란 것은 귀신의 추기(樞機), 문호(門戶), 도로(道路)이다.”11)라고 언명한다. 그들에게 감응론(感應論)은 인간 주체와 상제가 마음을 통해 반응한다는 이론으로, 상제에 반응하는 인간의 경건한 마음 자세와 관련된다. 이는 초월적 존재를 생각하며 양심을 일깨우는 실천적 수양의 문제와 직결된다.
본 글에서는 인간과 상제의 감응을 통한 도덕 실현이라는 문제의식이 중심이 된 다산과 증산의 철학 사상적 사유를 살펴봄으로써 이성적 방식의 이론과 차별성을 갖는 그들의 종교적 방식의 논의가 궁극적으로는 도덕 실천 강화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변혁을 이루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음을 보이고자 한다. 왜 다산과 증산은 상제를 내세워 인간의 마음을 통해 감응한다는 논의를 하였는가? 그리고 그들 감응론에 나타난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논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순서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먼저 다산과 증산이 영명한 상제와 강세한 상제의 능력에 주목한다는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2장). 다음으로 그들이 제시한 감응의 방법에 대해 논할 것이다(3장). 마지막으로 상제를 대하는 인간의 자세에 대하여 검토할 것이다(4장). 이를 통해 논자는 다산과 증산이 인간의 마음을 통해 상제와 감응한다는 논리로써 인륜을 구현할 수 있는 견고한 수양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주장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다산과 증산 감응론의 성격을 규명하고 도덕의 실천을 위한 그들의 문제의식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Ⅱ. 다산과 증산의 상제 개념
다산이 상제를 찾게 된 배경은 조선 후기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다산은 조선 후기 사회가 바른 정치가 시행되지 못해 국가적 위기상태를 바로잡을 수 없을 만큼 병들어 있었다고 보았다.12) 이러한 병폐 가운데 다산이 문제 삼은 것은 지배층의 부패와 수탈이었다. 특히 지방에서 자행되는 사대부들의 착취는 개인의 사욕을 채우는 풍토로 인해 백성에게 악영향을 미쳤다. 일례로 다산은 관직을 맡은 사대부들이 사곡(邪曲)을 행해도 그다음 날 의관을 바로 하고 순수한 군자처럼 행동한다고 지적한다. 다산은 이들이 간음하고 도적질해도 관장(官長)과 군왕(君王)이 살피지 못해서 명망을 잃지 않고 후대까지 숭상받는다고 비판한다.13) 이 비판에는 물질적 조건에 도덕성이 좌우되는 지방 관리들에게 어진 사람이 논리정연한 이치로 잘못된 점을 설득한다고 해서 이후 그가 바로 청렴한 생활을 하기란 어렵다는 의미와 부패한 지방 관리들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지 않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에 다산은 관리들이 선을 지향할 수 있게 하는 방편이 필요했고, 상제의 영명한 능력을 강조한다.
다산은 천을 ‘푸르러 형체 있는 하늘’과 ‘영명(靈名)하여 주재(主宰)하는 하늘’로 정의한다.14) 다산에게 푸르러 형체 있는 하늘은 자연적 존재로 도(道)와 성(性)의 근본이 되지 못한다. 반면 영명하여 주재하는 하늘은 다산의 사상 체계에서 중심에 있는 인격신적 초월자인 상제를 말한다. 상제의 영명성과 주재성은 무엇을 의미할까? 영명은 상제가 뛰어난 앎의 능력을 갖추었다는 의미와 인간의 마음과 교류할 수 있는 통로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다산은 이 영명한 능력과 작용을 주로 인간과의 감응에 대한 것으로 설명하며, “하늘은 영명하여 인간의 마음속에 곧바로 통하니 숨겨도 살피지 못함이 없고 희미하여도 밝히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이 방에 내려와 비추고 날마다 여기서 감시하고 있다. 사람이 진정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비록 대담한 사람이라도 계신(戒愼)·공구(恐懼)하지 않을 수 없다.”15)라고 언명한다. 상제의 권능은 마음속의 은미한 움직임까지도 아는 영명으로 드러나며 이에 따라 상제는 인간이 속일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이러한 이해에 근거하여, 다산은 상제가 인간에게 영명을 부여해 주었기 때문에 상제와 인간이 같은 영명을 지녀 서로 감응할 수 있다고 보았다.16)
다음으로 주재성은 상제가 인간을 비롯한 만물을 다스린다는 의미를 지닌다. 다산은 상제가 천지, 귀신, 인간의 밖에서 천지 만물을 조화(造化), 재제(宰制), 안양(安養)하는 초월적 존재라고 설명한다.17) 여기서 ‘조화’는 상제가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주재한다는 뜻이고 ‘재제’는 모든 운행의 측면을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이며 ‘안양’은 만물을 이치대로 편안하게 기르는 것이다.18) 다산은 상제의 역할이 모든 일을 포함하는 광대한 것이라 주장하며 상제의 조화작용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모든 현상을 포괄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19) 다산은 “황천(皇天)에 있는 상제는 지극한 한 분으로 둘일 수 없고, 지극히 존귀하여 짝이 있을 수 없다.”20)라고 하여 상제가 최고신이라고 표명한다.
다산은 이러한 상제 개념을 토대로 중앙집권화된 국가를 건설하고자 한다. 다산은 『주례』를 기반으로 해서 천명사상을 매개로 이를 군주와 연결하고 있다. 다산은 “천하의 군목(君牧)은 모두 상제의 신하인데, 내가 감히 어진 이를 은폐해 두지 못하니, 그 간선(簡選)하여 천자(天子)로 세우는 것은 오직 상제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21)라고 말하며 군목의 위상을 상제의 신하로 설정한다. 이렇게 다산은 『주례』 「대종백」의 논리에 따라 군주와 신하, 상제와 천신의 관계를 같은 논리로 이해한다.22) 이는 만물을 주재한다는 측면에서 상제와 군주를 직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다산은 정부의 제어 영역에 충분히 포섭되지 않고 있던 지방사회를 관리하는 목민관들에게도 하늘과 백성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다산은 『주례』 속에서 ‘상제 → 왕자 → 목민관 → 인민’으로의 통일된 질서 체계를 찾고 그것을 경세학 저술인 일표이서(一表二書)에 구체적으로 반영하여 현실 개혁의 지표로 삼은 것이다.
증산의 문헌에서 신성, 불, 보살은 인류와 신명계가 진멸할 지경에 이르자 상제에게 세계를 구원해달라고 하소연하게 된다. 이 내용은 신적인 체계 속에서 상제가 가장 높은 지위에 있고 신명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따라 권능과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범위가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23) 최고신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삼계를 개벽하는 천지공사를 하여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는 것이 증산사상에서 상제론의 핵심이 된다.
증산이 지닌 권능은 삼계(三界) 대권(大權)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된다. 증산이 삼계 대권을 주재한 것은 선천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함이다. 선천의 가장 큰 문제는 상극으로 발생한 원(冤)이었는데, 증산은 이러한 문제를 고쳐 후천의 새 세상을 열어 선경을 이루고자 한다. 증산이 말한 “내가 삼계 대권을 주재(主宰)하여 선천의 모든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의 새 운수를 열어 선경을 만들리라”24)라는 행위는 천지공사를 말한다. 천지공사는 ‘천지의 도수(道數)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萬古)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道)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민생을 건지는 일’을 통해 드러난다.25) 다시 말해서, 천지공사는 상극세상의 참상을 바로잡기 위하여 상도(常道)를 잃은 천지도수를 정리하고 후천선경의 길을 열어 놓은 삼계를 개벽하는 공사로 정의된다.26)
이처럼 천지공사는 삼계 개벽공사(開闢公事)로 표현된다. 증산사상의 개벽은 증산이 주재한 천지공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천지의 운행 질서를 뜯어고쳐 상극의 선천을 상생의 후천으로 바꾸는 대변혁을 말한다. 이는 천·지·인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혁한다는 점에서 삼계 개벽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공사’의 의미는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사사로운 일이 아닌 천·지·인 삼계의 모든 면을 새롭게 만드는 공적인 일을 뜻한다.27) 증산은 선천 세계를 과거에 쓰던 낡은 집에 비유하고 기존에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을 따라 행할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표명한다. 증산은 “우리는 개벽하여야 하나니 대개 나의 공사는 옛날에도 지금도 없으며 남의 것을 계승함도 아니오.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니오. 오직 내가 지어 만드는 것이니라.”28)라고 하고, 하늘과 땅을 뜯어고쳐 물샐틈없이 도수를 짜놓았다고 언명한다.29) 이는 곧 증산이 선천의 낡은 질서를 없애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함으로써 과거에는 보지 못한 새 세상을 만든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점에서 개벽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니라 증산이 주재하는 천지공사를 통해 새로운 이상세계가 도래한다는 점에 그 특질이 있다.
이상의 내용을 보면, 초월적 인격천을 통해서 세상을 변혁하고자 했던 다산과 증산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다산과 증산은 사회·정치적으로 변화된 시대 상황 속에서 기존의 사회 이념을 비판하고 인격천 중심의 감응론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자 한다. 다산은 영명한 인격천을 제시하며 자신의 마음이 진실과 거짓, 선과 악 중에 어느 지점에 있는지 끊임없이 경계하려고 한다. 반면 증산은 강세한 인격천을 제시하며 상제가 천지공사를 통해 세상을 개벽하여 인류가 후천으로의 전환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제시한 상제 개념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첫째, 다산은 유학의 범주 안에서 상제 개념을 체계화하고 있고, 증산은 한국의 전통 신관을 비롯하여 유·불·선과 서학의 상제관을 새롭게 창조하여 자신의 사상 체계를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산의 상제는 선진유학, 퇴계 학통, 천주교의 신관에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부분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보유론적 해석의 영향권 내에 있다고 볼 수 있다.30) 이에 반해 증산계 문헌에는 증산의 상제 개념이 기존의 천·상제 개념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언명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를 철학적 관점으로 보면, 증산계 문헌 속에 기록된 증산의 언명 속에는 당시의 여러 가지 사상적 요소들이 포함된 점이 있기에 증산의 상제론도 유·불·선 사상과 서학 사상을 흡수하며 형성된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31) 둘째, 다산은 조선 후기 지배층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선을 향하게 하려고 상제 개념을 요청한 지점이 부각되고 증산은 조선을 비롯한 선천 세계의 현실을 개벽하기 위해 상제 개념을 언명한 지점이 부각된다는 것이다. 셋째, 다산의 인격천은 본원 유학에서의 천관을 기본으로 하늘에서 만물을 감시할 수 있는 영명성과 주재성을 가진 존재로 설명되고 증산의 인격천은 구천에 있던 상제가 인간의 몸으로 강세하여 세상을 새롭게 고치는 존재로 설명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수양 주체의 도덕적 각성과 긴장성을 부여하는 차원에서 상제의 영명성과 주재성을 강조했던 다산의 입장에 비해, 증산은 민중들에게 호응을 얻어 왔던 초월적인 하느님 신앙을 더욱 새롭게 부각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증산은 직접적으로 인간을 대면하며, 세상을 개벽하여 구제할 상제의 권능을 강조한 것이다.
Ⅲ. 인간과 상제·신명의 감응
다산은 인간과 상제가 어떻게 감응한다고 이해하였는가? 다산은 감응의 방법으로서 천명(天命)과 도심(道心)에 주목한다. 다산은 인간이 영명한 상제로부터 천명을 부여받고 있음을 강조한다. 다산에 의하면 상제가 인간에게 부여하는 천명은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하늘이 인간에게 처음으로 부여하는 명령은 성(性)이고 하늘의 목소리가 삶을 사는 동안 계속하여 부여하는 명령은 도심(道心)에 있다.32) 다시 말해서 천성(天性)은 하늘이 태어나면서 부여하는 명령이고 도심의 경고는 하늘이 삶을 사는 동안 지속해서 부여하는 명령이다.33) 이에 따라 인간은 참된 마음과 마주 대할 때 상제의 깨우침을 알게 된다. 다산은 하늘의 목소리로서 인격적으로 만나는 상제 개념을 제시한 것이다.34)
다산은 천명과 도심이 같은 유(類)로서 감응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다산은 “천명은 단지 태어나는 처음에 이 성(性)을 내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원래 형체가 없는 본체와 오묘하게 작용하는 신(神)이니 같은 유로서 서로 받아들이고 더불어서 감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경고함은 형체가 있는 귀와 눈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늘 형제가 없고 오묘하게 작용하는 도심을 따라서 끌어주고 가르쳐주니 이것이 이른바 ‘하늘이 그 참마음을 이끌어 준다’라는 것이다.”35)라고 언명한다. 다산은 상제의 깨우침이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형체가 없는 도심에 감응되는 것이기에 이 감응의 소리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산은 어떠한 일이나 행위가 선한 것이 아니면 도심이 부끄럽게 여기거나 후회하게 되는데, 이를 천명이 인간에게 친절하게 타일러 주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는 상제를 마주 대하는 길이 ‘단지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다산의 주장에 따르면 상제의 명을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이며, 천명을 본래의 참마음에서 찾는 것이 하늘을 밝게 섬기는 학문이 된다.36)
주목할 점은 다산이 도심과 천명을 하나로 보아야 한다고 언명한다는 것이다. 다산은 “도심과 천명은 나누어 둘로 만들어 볼 수는 없다. 하늘이 나에게 경고하는 것은 우레로 하지 않고 바람으로 하지 않으며, 빈틈없이 자기 마음을 따라 간절하게 경계를 고한다. … 간절하게 주의하여 자세히 들으면 흐릿한 것이 없다. 모름지기 이 말을 알면 곧 이것이 빛나는 천명이다. 그것을 좇아 따르면 선하게 되고 상서롭게 되며, 그것을 업신여겨 어기면 악하게 되고 재앙이 있게 된다. 군자의 계신(戒愼)·공구(恐懼)는 단지 여기에 있다.”37)라고 하여 인간이 마음속까지 내려다보는 상제를 마주할 때 자신에게 진솔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인간이 악을 행하기 전에 두려운 마음 자세를 가지고 더욱 상제의 명령과 경고를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처럼 다산은 인간이 삼가고 두려워하는 계신·공구의 자세로 밝은 천명을 듣고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38) 이러한 점으로 볼 때, 다산에게 천명은 항상 인간들과 함께 있으며 인간들의 마음을 상제의 뜻으로 이끄는 상제의 마음이다.
증산사상에서 감응은 증산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증산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면서 이루어지게 된다. 그런데 증산은 자신이 주재하는 신명과의 감응을 강조한다.39) 증산사상에서는 최고의 신격을 가진 상제를 중심으로 여러 높은 신들이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다. 상제를 중심으로 한 신명은 신명계라는 영역을 구성하고 항상 인간과 함께 존재하여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신명계에는 일정한 법칙과 질서가 존재하는데, 증산은 천지공사를 통해 이를 바로 잡아 인사(人事)를 주재하면 인간이 불의를 저지를 수 없게 되면서 도덕이 실천되어 나간다고 주장한다.40) 주목할 점은 상제가 주재하는 신명들은 공평무사하게 자신의 직분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증산은 “귀신은 진리에 지극하니 귀신과 함께 천지공사를 판단하노라”41)라고 하고, “신명은 탐내어 부당한 자리에 앉거나 일들을 편벽되게 처사하는 자들의 덜미를 쳐서 물리치나니라.”42)라고 언명한다. 이는 신명이 공명정대하게 천지공사의 일을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상제의 주재를 받는 신명과의 감응은 곧 상제와의 감응하는 방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증산사상에서 인간과 신명은 조화(調化)의 관계에 있다.43) 신인조화는 신명과 인간이 음양의 관계로 서로 감응하고 조화하여 인간의 변혁을 이루며 모든 일을 이루어 낸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신명이 인간을 교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증산은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의 뱃속에 출입케 하여 그 체질과 성격을 고쳐 쓰리니”44)라고 언명한다. 『전경』에 따르면 상제는 신명을 주재할 수 있는 권능이 있고 신명은 상제가 정해놓은 도수에 따라 인간을 교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신인조화는 인간이 도덕적 실천을 통해 신명과 조화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 강조된다.
증산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은 신명이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증산은 “마음이란 것은 귀신의 추기(樞機), 문호(門戶), 도로(道路)이다. 추기를 여닫고 문호를 드나들며 도로를 오가는 신에는 혹 선한 것도 있고 혹 악한 것도 있으니, 선한 것은 스승으로 본받고 악한 것은 고친다. 내 마음의 추기, 문호, 도로는 천지보다도 더 크다.”45)라고 언명한다. 여기서 귀신이란 신명을 의미하는데, 신명은 상제의 주재하에 신명계의 법칙을 따르는 존재이며 세상에 널리 퍼져 인간과 함께하는 신적 능력을 갖춘 존재이다.46) 증산은 신명과 인간이 상호 음양의 관계라고 설파한다.47)
여기서 고려할 점은 증산사상에서 신명은 인간과 조화를 이루는 관계이면서도 거짓된 자를 벌하고 참된 자를 도와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증산의 주장에 의하면 앞으로 개벽의 과정에서 거짓된 자는 신명이 불의를 숙청하고, 참된 자는 신명이 인애(仁愛)를 베풀어 도움을 주게 된다. 그래서 복을 구하는 사람은 도덕을 실천해야 함이 중요시된다.48) 이와 관련해 증산은 아주 큰 일로부터 아주 작은 일에 이르기까지 신명이 개입하지 않은 데가 없으며 또한 이를 감독하고 수찰하고 있다고 언명한다.49) 이러한 신명의 특징은 공평무사한 자리에서 선과 악의 여부를 가려내어 복과 화를 주는 것이다.50)
또한 증산은 후천에서 인간이 신명과 감응하여 신적 가치를 실현하는 주체가 된다고 말한다. 증산은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라. 마음을 부지런히 하라.”51)라고 하여 앞으로 오는 세상을 인존시대라고 규정한다. 여기서 인존(人尊)이란 인간의 마음에 신명이 감응하여 높아진 인간의 가치를 나타낸다. 증산의 견해에 따르면 지난 시대에는 하늘이 권한을 맡아서 행한 천존(天尊)시대와 땅이 권한을 맡아서 행한 지존(地尊)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인간이 권한을 맡아서 행하는 인존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이 말은 ‘높다’라는 의미의 존(尊)자를 하늘과 땅이 아닌 인간에게 붙여 인간이 가장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 구절을 더 풀이하자면, 천존은 신명이 하늘에 있으면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말하며, 지존은 신명이 땅에 머물면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인간과 신명이 감응하여 수많은 권한을 행사하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52) 즉, 온전하게 인존이 실현되는 시점은 개벽 후의 후천이 된다. 이렇게 볼 때, 증산이 의도한 후천의 질서는 인간과 신명이 합일되어 신계의 질서가 인계에 구현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인간이 닦은 바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신명의 호위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증산은 “사람마다 그 닦은 바와 기국에 따라 그 사람의 임무를 감당할 신명의 호위를 받느니라.”53)라고 말한다. 이 언명은 수양 정도와 기국(器局)에 따라 그에 맞는 신명이 사람에게 감응한다는 점과 사람에게 감응한 신명의 역할이 그 사람이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곁에서 보호하고 지키는 것이라는 점을 알려준다.54)
증산은 앞으로 오는 후천의 시대를 ‘인존시대’,55) ‘해원시대’,56) ‘신명시대’,57) ‘성인시대’58) 등으로 표명한다. 이 말은 선천 시대의 문화와 사상이 점차 없어지고 기존 질서와는 다른 새로운 질서가 삼계에 걸쳐 열리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증산의 견해에 따르면 하늘과 땅을 높이던 선천시대가 저물고 이제는 인간을 높이는 인존시대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개벽 시기에 참되고 의로운 사람은 신명의 도움과 복을 받게 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다산과 증산은 인간이 상제와 감응하여 도덕 실천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주장한다. 다산은 인간이 영명한 상제로부터 천명을 부여받고 있고 상제의 영명함이 언제나 인간의 도심에 통하고 있다고 보았다. 증산은 인간과 신명이 서로 의탁하고 이끌어 주는 관계로 보면서도 신명의 수찰을 강조한다.
여기서 다산과 증산의 감응론이 차별되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다산사상은 인간들이 도심을 통해 상제의 명을 받아 도덕 실천을 하는 면이 부각되지만, 증산사상은 개인의 수행 정도에 따라 상제와의 감응과 더불어 상제의 주재를 받는 신명과 감응한다는 점이 부각된다. 증산은 신명과의 관계에서도 선신과 악신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인간이 선한 마음을 먹었을 때는 선한 신명이 감응하고 악한 마음을 먹었을 때는 악한 신명이 감응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증산사상은 다산사상에 비해 보이지 않는 신명과 인간의 합일을 통해 인간이 신명의 권위를 가지게 된다는 점이 부각된다. 증산은 미래에 천지공사와 관련된 신명들이 인간에게 봉해져 신명과 인간이 동등한 위상으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인존을 강조한다. 이렇게 볼 때, 상제와의 감응과 관련해서는 상제의 명에 귀를 기울여 자신을 성찰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증산사상은 다산사상에 비해 상제의 주재하에 있는 다양한 층위의 신명과 감응도 이루어진다는 차이점이 있다.
Ⅳ. 상제를 향한 인간의 자세
다산은 상제와의 온전한 만남을 위해서는 인간이 상제의 존재를 인식한 후 신독 공부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산은 “하늘을 아는 것이 수신(修身)의 근본이 된다.”59)라고 하고, 하늘을 아는 것이 하늘에 대한 지식을 갖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하늘을 섬기는 행동과 결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60) 이는 신독 공부가 상제를 섬기고 신명을 두려워함으로써 마음을 바르게 지켜나갈 방법임을 제시한 것이다.61) 다산이 말한 신독은 도심(道心)의 형태로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상제의 명령을 두려운 마음으로 받드는 의식 태도를 가리킨다. 즉, 신독은 하늘의 상제가 인간의 마음을 살피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참된 마음으로 자신의 넘치거나 모자란 점을 고치는 자세를 뜻한다. 이러한 신독은 『대학』과 『중용』에 쓰였던 말을 다산이 심(心)·성(性) 이론과 상제 개념을 적용하여 새롭게 의미를 부여한 도덕 개념이다.
다산에 따르면 신독은 혼자 있는 곳에서 삼가길 다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홀로 아는 일에서 삼가길 다하는 것이다. 신독에서 ‘독(獨)’이란 상제의 천명을 알 수 있는 마음을 뜻한다. 신독은 상제가 마음을 굽어보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생각이 일어날 때 선을 지향하는 자세인 것이다.62) 특히, 다산은 인간의 악이 사람과 교제하는 장소에서 일어나기 쉽기에 사람과의 만남이 일어나는 곳에서 신독을 강조한다.63)
이와 관련해 다산은 만약 신독을 실천하여 천을 섬기고,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보아 타인에게도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인을 실천하며,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다면 이것이 성인이 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64) 또한 다산은 『중용』의 덕이 신독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다산은 “『중용』의 덕은 신독이 아니면 성취될 수 없다. 신독 공부는 귀신이 아니면 두려운 마음을 지닐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귀신의 덕은 우리 도가 근본으로 생각하는 것이다.”65)라고 말한다. 이러한 신독은 『대학』과 『중용』에 쓰였던 말을 다산이 심(心)·성(性) 이론과 상제 개념을 적용하여 새롭게 의미를 부여한 도덕 개념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다산은 신독 공부를 성(誠)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성은 조심스럽게 상제를 섬기는 계신공구(戒愼恐懼)의 마음 자세를 기반으로 삼아66) 개인의 수신을 비롯해 가족과 국가 등의 공동체의 삶까지 꿰는 원리라는 성격을 지닌다. 즉, 마음속에 숨겨진 생각부터 마음과 몸을 거쳐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완성해 남을 이루게 해주는 개념이다. 상제 앞에서 갖추는 진실한 자세인 성은 인륜과 사천(事天)이라는 하나의 궤도 위에서 상호 긴밀한 연관성을 가진다. 여기서 연유하는 성의 종교성이란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에 지속해서 요청되는 내면적 순수성, 자율성, 자발성의 심층적 근원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67) 다산은 상제가 감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신독 공부를 할 수 있고 신독함으로써 정성스러운 성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68)
또한 다산은 경(敬)을 향하는 대상에 대해 삼가는 것이라고 정의하고,69) 경천경신(敬天敬神)을 주장한다.70) 다산에게 있어서 경은 하늘과 귀신과 같은 대상에 대해 공경하는 수양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고, 경천경신의 자세는 천도(天道)를 생각하여 하늘과 귀신을 공경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경의 자세는 상제를 생각하여 양심을 일깨우려는 경건한 수양의 성격을 갖는다. 이 공부는 상제를 대하는 방법이자 자기 수양의 방법이기에 다산의 상제관과 인간관을 연결하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71)
이러한 감응론을 실천해야 할 주요 주체가 누구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산의 견해에 따르면 그들은 주로 나라를 다스리는 계층이었던 사대부들이다. 군주정 체제에서 위정자의 사욕은 국가의 화란을 초래하는 가장 큰 요소로 간주한다. 그래서 다산은 덕치를 통해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위정자의 도덕 실천이 중요하다고 설파하며, “같은 부류끼리 당을 만들어서 다른 파는 배제하면서 사(私)를 위해 공(公)을 멸하면 그 나라는 반드시 혼란해진다. 어찌 건극(建極)할 수 있겠는가. 대저 임금이 임금인 까닭은 오복(五福)의 권병(權柄)을 임금이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권병이 아래로 옮겨가면 황극(皇極)은 곧 무너지게 된다.”72)라고 언명한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다산의 사유체계는 사대부들의 사욕을 제거하고 공정성을 확립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73) 다시 말해서, 사대부들의 사욕으로 인해 국가 기관의 공정성이 손상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왕권 강화 정책과 더불어 상제의 존재를 통해 조정 관료와 지방 목민관의 도덕적 실천성을 보완하는 일은 필수적인 것이다.
증산은 마음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마음가짐에 상응하는 신명이 인간에게 감응한다고 주장한다. 마음 수양과 관련하여 증산은 여러 가지 언명하였는데, 그중 핵심이 되는 마음 자세가 일심(一心)이다. 일심의 의미를 보면, ① 일심을 가지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74) ② 모든 일에 성공하려는 자는 한 마음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75) ③ 증산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가 증산의 덕화를 입게 된다는 의미,76) ④ 충성스러운 마음의 의미77) 등이 있다. 증산은 여러 의미로 일심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중심이 되는 의미는 한결같은 마음을 가진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증산은 일심이 모든 일을 이룰 수 있는 추동력이 된다고 표명한 것이다.
특히 증산은 혈식천추도덕군자(血食千秋道德君子)가 만인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이유를 일심에 바탕을 둔 것으로 설명한다. 증산은 “이것이 남조선 뱃길이니라. 혈식 천추 도덕 군자가 배를 몰고 전 명숙(全明淑)이 도사공이 되니라. 그 군자신(君子神)이 천추 혈식하여 만인의 추앙을 받음은 모두 일심에 있나니라. 그러므로 일심을 가진 자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78)라고 말한다. ‘혈식천추도덕군자’란 도덕을 실천해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으며 아주 긴 세월 제사를 받는 군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구절에는 후천선경에 참여하기 위해서 일심을 가지고 수양해야 한다는 증산의 의지가 담겨있다. 즉 증산에 의하면 후천선경으로 가는 남조선이란 배를 타야 하는데, 이 배는 모든 사람이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수행을 통해 일심을 가진 사람만이 탈 수 있게 되는 것이다.79)
또한 증산사상에서 상제와의 감응을 이루기 위해 성(誠)·경(敬)·신(信)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증산사상에서 성은 진실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을 의미하며, 경은 공경스러운 행동을 뜻하며, 신은 믿는 마음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진실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은 공경스러운 행동으로 표현되고 성과 경은 믿음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성⋅경⋅신은 복록(福祿), 수명(壽命)과 깊은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증산은 복록과 수명이 성·경·신에 달려 있다고 하고,80) 천지가 모두 성⋅경·신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언명한다.81) 증산의 견해에 따르면 세계를 구현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 성⋅경⋅신이고 인간의 복록과 수명은 성·경·신의 실천 여부에 달려 있다. 이와 관련해 『현무경(玄武經)』에는 ‘천지성경신(天地誠敬信)’이라는 말이 있다. 이러한 성⋅경⋅신은 『전경』의 구절을 통해 그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82)
첫째, 성은 진실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이다. 증산은 “이제 먼저 난법을 세우고 그 후에 진법을 내리나니 모든 일을 풀어 각자의 자유의사에 맡기노니 범사에 마음을 바로 하라. 사곡한 것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 되니라.”83)라고 말한다. 이 구절에서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라는 언명에서 진실은 마음에 거짓이 없이 순수하고 바르다는 측면에서 참되고 정성스러운 성의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경은 공경스러운 마음을 뜻한다. 경과 관련하여 증산사상에서 강조되는 점은 인간이 상제에 대한 경외심(敬畏心)을 가지는 것이다. 증산계 문헌에서는 증산이 신명계와 인간계의 주재자이며 구원자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전경』에 따르면 증산은 ‘미륵’, ‘개벽장’, ‘하느님’, ‘대선생’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84) 이는 여러 종교에서 상정하고 있는 초월적 존재가 증산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85) 초월적 존재 앞에 인간은 경외의 감정을 품게 된다.86) 경외심은 자기와 절대적 존재와의 거리 단절의 느낌에서 오는 감정인 것이다.87) 그래서 증산은 사람들이 항상 상제를 마주 대하듯이 공경과 두려움의 자세를 갖고 도덕적 삶을 구현해 가길 바란 것이다.
셋째, 신은 믿는 마음을 말한다. 신이란 어떠한 대상이나 일의 가치를 인정하여 믿음을 갖는 것이다. 수행하는 인간은 믿음의 대상이나 일을 바르게 인식해야 하는데, 특히 믿음의 대상이 신의 가치일 수 있고 일반적인 것일 수 있다.88) 이중 신의 가치를 인정하여 자각하게 되는 것은 종교적 신앙의 자세라 할 수 있다. 증산의 가르침을 믿고 수행하는 인간은 상제의 존재와 더불어 상제를 중심으로 삼계에 널리 실재하는 존재인 신명의 존재를 믿게 된다. 증산은 “나를 잘 믿으면 해인(海印)을 가져다주리라.”89)하고, “나를 믿고 마음을 정직히 하는 자는 하늘도 두려워하느니라.”90)라고 하며, “내가 가서 일을 행하고 돌아오리니 그때까지 믿고 기다리라.”91)라는 언명을 한다. 증산사상에서 상제와 감응하고자 하는 인간이 가져야 할 자세는 상제에 대한 믿음이 바탕이 된다.
증산에게 이러한 감응론을 실천해야 할 주요 주체는 누구일까? 증산에 따르면 그들은 주로 차별받고 억압받는 민중들이었다. 증산은 소외당하는 민중들을 ‘나의 사람’이라고 표명하며, “부귀한 자는 빈천을 즐기지 않으며 강한 자는 약한 것을 즐기지 않으며 지혜로운 자는 어리석음을 즐기지 않으니 그러므로 빈천하고 병들고 어리석은 자가 곧 나의 사람이니라”92)라고 하고, “부귀한 자는 자만 자족하여 그 명리를 돋우기에 마음을 쏟아 딴 생각을 머금지 아니하나니 어느 겨를에 나에게 생각이 미치리오. 오직 빈궁한 자라야 제 신세를 제가 생각하여 도성 덕립을 하루 속히 기다리며 운수가 조아들 때마다 나를 생각하리니 그들이 내 사람이니라.”93)라고 언명한다. 이는 민중으로 상징되는 빈천하고 어리석은 자를 자기 사람이라고 여기며 이들에게 도덕 실천을 통해 후천선경에 참여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증산은 계급 질서 속에서 억눌려 온 민중들의 한에 주목하면서 그들을 해원(解冤) 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상으로 볼 때, 다산과 증산은 인간의 선한 마음 안에서 상제와 신명이 감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다산은 도심에 감응을 주로 말하였고, 증산은 양심에 감응을 주로 말하였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제시한 감응론의 의미는 중요한 상황이나 사건이 있을 때만 선을 지향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인륜 도덕이 구현될 수 있게 한다는 데 있다.
여기서도 그들 사유의 차별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성·경·신 논의에 관한 문제다. 다산의 성·경과 증산의 성·경·신은 공통으로 상제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증산의 성·경·신은 상제와 신명의 존재에 대한 강한 믿음이 더 강조된다. 신은 신앙적 자세로서 수행자가 견지해야 하는 덕목이고 진실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인 성과 공경스러운 마음인 경의 바탕이 된다. 또한 증산은 세계를 구현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 성⋅경⋅신이고 인간의 복록과 수명은 성·경·신의 실천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러한 점에서 증산의 성·경·신은 다산의 성·경보다 상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도덕 실천을 끌어내는 면이 강화되어 있고, 성·경·신 논의를 복록과 수명까지 확장하는 면이 있다.94) 둘째, 상제를 향한 마음 자세가 미래에도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다산은 도덕의 실천으로 현세에 상서로움을 짓게 된다고 여겼고 증산은 도덕의 실천으로 현세에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후천의 참여 여부까지도 결정된다고 보았다. 셋째, 감응론을 실천할 주체에 관한 문제이다. 다산은 사대부들이 국가의 크고 작은 직책을 맡아 수행할 때 개인적인 사욕으로 인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 않기를 바라며 다산의 감응론을 펼치며 사회변혁을 도모했지만, 증산은 노비, 빈민, 무당 등 사회의 하층민들에게 감응론을 통해 후천선경 참여를 강조한다. 이렇게 볼 때, 다산은 중앙정부와 지방사회에서 공무를 맡은 관리의 강력한 지위, 그리고 관리들의 덕이 민중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숙고하여 지배층의 개인 도덕이 국가 변혁의 관건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증산은 조선을 비롯한 삼계를 개벽하고자 하였기에 종도들에게 상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후천선경을 이끌어 갈 더 완성된 도덕성을 갖춘 존재가 되라고 훈유한다.
Ⅴ. 맺음말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토대로 그들의 상제 중심의 감응을 통한 도덕 실천의 강화에 관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었다. 다산은 인간과 상제의 만남이 천명과 도심, 신독과 성·경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표명한다. 천명은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상제가 인간에게 처음으로 부여하는 명령은 성에 있고, 상제의 목소리가 살아 있는 동안 계속하여 부여하는 명령은 도심에 있다. 다산은 천명과 도심이 감응한다고 보았고,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간악한 생각을 멀리하는 신독 공부를 하며 진실성과 경건성의 의미가 담긴 성⋅경의 자세를 갖추어야 상제와 감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증산사상에서 인간과 상제의 감응은 신인조화와 인존, 일심과 성⋅경·신으로 확인하였다. 증산은 인간과 신명이 유기적 관계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보완해 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인존시대에는 인간이 신명과 감응하여 신적 가치를 실현하는 주체가 되어 하늘과 땅보다 더 존귀해진다고 표명한다. 증산은 인존시대를 맞이하는 인간에게 일심은 모든 일을 이룰 수 있는 추동력이 된다고 보았고, 복록과 수명이 성·경·신에 달려 있다고 밝힌다.
다산과 증산은 왜 상제와의 감응에 주목하였을까? 다산은 당시 유학체계를 보완할 효과적인 방법으로 인격천의 현실적 기능에 주목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산은 인간 본성에 대한 교육과 수양을 통해 자발적인 도덕적 실천을 유도하는 기존 유학의 방식은 조선 후기와 같은 혼란한 격동기에 그 실효성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다산은 그 대안으로 하늘에서 천지 만물을 지켜보고 있는 상제를 향한 경외심을 유발하여 도덕적 실천을 강화하는 방식을 고안한다. 하지만 다산은 유학 경전의 재해석을 통해 인격천을 유학체계 안에 도입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를 위해 다산이 취한 방법은 유학사에서 고증학의 방법으로 천의 존재에 대한 문제의식을 계승하는 것이다. 다산은 고증학의 방법을 이용해 유가의 주요 경전들을 재해석하며 다양한 자료들 속에서 상제를 유학체계 내에서 도입할 길을 찾을 수 있었다.95) 다산은 이렇게 선진유학과 퇴계 학맥 속에서 사용되던 상제의 개념을 계승하여 자신의 사상 체계 중심에 올려놓고 영명한 상제와의 감응을 제시한다.
증산은 자신을 상제로 자임하고 천지공사를 통해 선천 세상을 개벽하여 후천 세상을 열고자 한다. 증산은 상제의 천지공사가 당시의 유학, 불교, 동학, 서학이 제시했던 해답 체계에 비해 조선 말기 민중들에게 더 강력한 대답이 되기를 희망하였다.96) 증산은 기존의 사상 체계가 민중들에게 도덕의 실천과 더불어 사회의 변혁을 가져오기에는 실천력이 부족하다고 이해하였다. 논자가 보기에 증산은 영명성과 주재성을 말했던 다산의 사상 체계로도 민중의 마음과 삶을 위로하고 어루만질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당시 민중들은 유학을 공부한 사대부들의 변혁 사상보다 자신들의 신분적 한계를 벗어난 삶의 안정과 새로운 이상사회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증산은 민중의 열망을 헤아리고 천지공사를 통해 현실의 재앙과 고통을 없애주고 조선을 비롯한 인류가 새롭게 변혁될 수 있다고 설파한다. 이처럼 다산과 증산은 사회·정치적으로 변화된 시대 상황 속에서 기존의 사회 이념을 비판하고 자신만의 대안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자 하였다. 다산이 지녔던 철학적 문제의식은 ‘어떻게 하면 생명력을 점차 상실해 가는 국가의 유가적 이념을 재건하고, 그에 기초하여 강력한 국가를 이루어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곧 ‘종교적 방식의 도덕 실천을 통한 유학적 이념의 재건과 제도개혁’이라는 과제로 집약된다. 이에 반해 증산이 지녔던 철학적 문제의식은 ‘어떻게 하면 선천의 현실을 개벽하여 많은 사람이 조화롭게 살아가게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 곧 ‘종교적 방식의 천지공사와 더불어 도덕 실천을 통한 후천선경의 건설’이라는 과제로 집약된다.
그렇다면 다산과 증산이 마음을 통한 상제와의 감응을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논자는 다산과 증산이 도덕 실천의 생활화를 이루기 위한 견고한 수행 방안으로 상제와의 감응을 제시한 것으로 생각한다. 다산이 생각했던 참된 선비의 학문은 정밀한 이론 체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이 도덕 실천을 통해 세상에 밝은 영향을 주는 학문이다. 다산은 그의 감응론이 조정의 관료들과 지방의 목민관에게 받아들여진다면 나라를 변혁하여 부강한 국가를 건설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사유했을 것이다. 증산의 감응론도 다산과 같이 도덕 실천의 생활화를 이루기 위한 견고한 수행 방안으로 제시된 것으로 생각한다. 증산 감응론의 특징은 증산이 지배계층에서 소외된 민중들에게 도덕 실천을 강조는 점이다. 증산은 민중들에게 기존의 신념 체계를 벗어나 새로운 종교적 신념 체계를 가지게 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도덕규범을 제시한다. 지금까지 사회 구조적 모순으로 민중들이 원한을 가지게 하였던 선천의 질서가 없어지고 후천의 질서가 삼계에 걸쳐 열리게 된다는 것이다. 증산은 이러한 시기에 민중들이 마음 수양을 통해 신명과 조화하면 복을 받을 수 있고 앞으로 펼쳐질 후천선경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는 믿음을 주었다.
다산과 증산은 인간과 상제를 독립적으로 두지 않고 마음을 통해 서로 유기적으로 감응하게 해 사람이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선택의 매 순간 숙고와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 것이다. 즉 상제와의 감응은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통해 매 순간 일어나기에 도덕 실천의 생활화를 가져오게 한다. 도덕적 문제를 고민할 때, 마음에서 하늘의 상제를 마주하는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속이기 어렵다. 인간은 진실한 마음으로 삶에서 발생하는 사태를 대하니 인심을 더 통제하고 인륜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다산과 증산의 감응론에는 일상의 삶에서 도덕의 실천을 생활화하게 만드는 실천적 함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산과 증산의 사유체계에는 국내외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상제를 향한 경건한 마음을 바탕으로 인간이 걸어야 할 도덕 실천의 길을 후세에 전하고자 했던 두 인물의 고뇌와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