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동양사상에는 초월적 대상과 인간의 관계를 오랫동안 사유해 왔다. 그리고 단지 사유하고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서 초월적 존재로부터 삶의 근거를 찾고, 그 존재를 지향하고자 하는 일체적 태도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한 마디로 천인합일(天人合一)사상이라고 요약될 수 있는 이러한 내용은 동양사상 전반에 걸쳐서 포진되어 있는 주제이고, 특히 유학사상에서 보다 선명하게 이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1)
‘천인합일’의 관점에서 ‘인사’의 의미는 인간 삶을 통해서만 규정되지 않는다. ‘인사’의 의미가 드러나는 과정에서 하늘[天]은 중요한 근거가 된다. 그래서 ‘인사’의 개념에 접근해 갈 때 중요하게 언급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천도(天道)’와 ‘인도(人道)’의 문제이다.2) ‘천도’와 ‘인도’의 개념은 ‘천인합일’의 태도 아래서 나름의 합리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인간 삶의 방향을 찾는 과정에서 하늘이라는 매개를 설정하게 되고, 그러한 매개의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들이 ‘천도’와 ‘인도’의 의미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이처럼 ‘천인합일’의 구조 속에서 드러나는 ‘천도’와 ‘인도’, 그리고 ‘인사’의 맥락은 대순사상의 ‘인사’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접근방법으로서 유용하다. 대순사상에서 ‘인사’의 의미 또한 기본적으로 ‘인도’의 근거인 ‘천도’라는 구조 속에서 도출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천도’와 ‘인사’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고, 그 ‘인사’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관한 부분에서는 대순사상만이 지닌 차별성이 존재한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인간과 존재의 원리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차별성과도 다르지 않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천도’와의 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인사’의 의미가 대순사상에서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동양 사상의 맥락 안에서 대순사상이 지닌 보편성과 그러한 토대 위에 형성된 특수성을 조망해 보고자 한다.
대순사상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하나의 개념어에 관한 고찰은 대순사상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철학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어 일지라도, 그 개념어가 사용되고 있는 특수한 사상체계에 따라 의미는 변용된다. 개념이 달라진다는 측면에서 기존의 연구는 궁극적인 대상인 태극(太極)이나 신(神)에 관한 개념적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다. 대순사상에서 태극과 무극(無極)에 관한 내용이나 이러한 본체적 개념이 대순(大巡)의 개념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살피고, 나아가 구천상제라는 최고신격과의 관계성에 대해 밝히려는 논문들이 있었다.3) 그에 따라 대순사상의 신의 개념이나, 상제에 관한 철학적 접근도 이루어 졌고,4) 확장되어 대순사상의 우주론에 관해 연구되기도 했다.5) 한편으로 대순사상에서 ‘인사’의 개념은 ‘천도’와 관계성 속에서 다뤄져야 미묘한 차별성을 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본 논문과 관련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 연구로는 대순사상의 신인조화(神人調化) 사상에 관한 연구들이 있다. 『대순사상논총』 3집을 중심으로 연구된 논문들은 신과 인간의 관계, 신인조화의 이상, 신계와 인계로 대별되는 삼계의 원리로서 신도(神道)를 논하면서 중요한 연구 성과로 의미를 지닌다.6) 초월성과 내재성이라는 측면에서 하늘관으로 대별할 수 있는 대순사상의 상제관의 미묘한 특징에 대해서 다룬 연구도 있다.7) 직접적으로 『전경』에 언급된 ‘중찰인사(中察人事)’의 개념에 대해서 다루면서 도통(道通)과의 연관성을 밝힌 연구도 있다.8) 이러한 연구 성과를 토대로 본 논문에서는 ‘인사’의 개념으로부터 시작하여 ‘인사’의 원리와 완성의 차원을 포괄적으로 살펴본다는 점에서 대순사상에서 바라보는 인간 이상의 구조적인 측면을 조망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Ⅱ. ‘인사’와 ‘천도’ 개념의 배경
철학적으로 쓰이고 있는 ‘인사’의 개념은 단순히 인간지사(人間之事)로서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과 삶의 방향에 관한 의미가 투영되어 있는 단어이다.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삶을 돌아보기 시작한 것은 철학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다. 인간 사고의 대상은 객관적 실체에서 점차 인간 자신에게로 옮겨 갔으며, 그 결과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객관화하고 반성하는 태도가 인간에 관한 철학적 사유의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9) ‘인사’의 개념에는 그러한 인간 스스로에 대한 고민과 다른 대상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고민이 함축되어 있다.
그런데 특히 ‘인사’의 개념이 사상적으로 체계적인 성격을 지닐 수 있었던 이유는 ‘인사’의 의미를 인간의 모습 속에서만 찾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인사’가 성립할 수 있는 배경으로서 객관화된 자연법칙이나 형이상학적 토대들을 끌어들이게 된 것이다. 동아시아 철학에서 하늘[天]이라는 개념은 다양한 층위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인간과 연결된 실체로서 이해됐다.10) 역사적으로 천인관계에서 인간과 하늘이 철저히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라는 관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동양사상에서 천인관계의 핵심은 인간과 하늘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그에 따라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로서의 ‘인도(人道)’는 하늘의 이법으로서 ‘천도(天道)’를 본받아서 성립하게 되고, 그러한 맥락 아래 인간 삶을 다루는 ‘인사’의 의미가 도출된다.11) ‘천도’로부터 인간의 당위적 가치인 ‘인도’가 성립되고 ‘인사’가 그것을 추구해 가는 일련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천도’는 ‘인도’의 근거로서 천이 규범화 되는 과정에서 천관념에 인격적인 주재성이 탈각되고 자연법칙적인 이법성이 강조된 개념으로 볼 수 있다.12) ‘천도’자체가 인간의 윤리적 의미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인도’라는 인간의 당위적 문제에 대한 최종적 근거가 ‘천도’로부터 확보된다는 것은 천이 인간의 윤리적 의미로 규범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천도’로부터 ‘인도’의 근거를 확립하려는 논리를 확인할 수 있는 문헌으로 『주역(周易)』이 있다.13) 『주역』의 괘사에는 천지자연의 존재적인 원리를 법칙화하고 그것을 ‘인사’에 적용해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의미를 도출해 내는 과정이 함축되어 있다. 『주역』은 괘상(卦象)을 통해서 ‘천도’를 이해하고 ‘인사’의 길흉을 점치게 된다. 여기서 괘사에 덧붙인 「단전(彖傳)」의 해석은 길흉의 선택적 가치를 당위적으로 확장해 나간다.14)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이라는 대비를 통해서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인도’의 이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의 원리를 어떻게 인간사의 원리로 규범화하고 있는가에 관한 내용을 잘 보여주고 있다.15) 그리고 자연을 범주화한 괘상이라는 구체적인 상징을 통해서 인간의 당위적 요구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합리성을 추구하고 있다.
대순사상에서 ‘인사’의 개념 또한 이러한 ‘천도’로부터 근거하는 ‘인도’와 그것을 지향해 나가는 구조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천도’를 ‘인도’의 원리로 내재화하는 규범화의 작업을 통해 ‘인사’의 의미는 존재론적 당위성을 확보한다. 이것은 ‘천도’가 인간사에 적용되는 ‘인도’와 합치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천도’와 ‘인사’의 합일에 대한 요구로 나아가게 된다.
천리(天理)와 인사(人事)의 합일성을 밝혀 만상만유가 도(道) 안에서 생성 존재하고 있는 진리를 확신케 하여야 한다.16)
인용된 구절 속에서 천리는 ‘천도’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천리나 리(理) 등의 개념을 포괄해서 천인합일관의 ‘천도’를 규정하기 때문이다.17) ‘천리와 인사의 합일성’이라는 것은 ‘천도’와의 관계 안에서 모든 존재는 생성되고, ‘천도’로부터 성립된 ‘인도’의 경지에서 ‘인사’의 본래적인 의미가 도출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사’의 의미는 ‘인사’가 도달해야 할 바람직한 지향점으로서의 윤리적 당위성을 포함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대순지침』의 다른 구절에는 “도(道)는 우주 만상의 시원(始原)이며 생성(生成)변화의 법칙이고, 덕은 곧 인성(人性)의 신맥(新脈)이며, 신맥은 정신의 원동력이므로 이 원동력은 윤리도덕만이 새로운 맥이 될 것이다.”18)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천도’가 규범적으로 표출되며 ‘인도’의 윤리적인 당위성을 확보해 나가는 과정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대순사상에서 ‘인사’가 담고 있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천도’의 개념을 조금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순사상에서 ‘천도’의 개념이 지닌 미묘한 의미의 차이가 전반에 걸쳐서 그 내용을 다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기존에 ‘천도’로부터 근거지워지는 ‘인도’는 대개 인간의 삶이 하늘로부터 정해진 ‘천도’의 윤리적 규범 하에서 이해되고 있다. 우주의 법칙과 윤리도덕의 가치가 분리되지 않는 맥락에서 대순사상에서도 ‘천리’와 ‘인사’의 합일성이 윤리적 규범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다른 내용들을 보면 ‘천도’와 ‘인사’의 상호 관계성과 능동성이 강조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한 이유를 대순사상에서 말하고 있는 ‘천도’의 의미에서 찾을 수 있다.
상제께서 어느 날 김 형렬에게 가라사대 … “그 문명은 물질에 치우쳐서 도리어 인류의 교만을 조장하고 마침내 천리를 흔들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데서 모든 죄악을 끊임없이 저질러 신도의 권위를 떨어뜨렸으므로 천도와 인사의 상도가 어겨지고 삼계가 혼란하여 도의 근원이 끊어지게 되니 … 갑자(甲子)년에 드디어 천명과 신교(神敎)를 거두고 신미(辛未)년에 강세하였노라”고 말씀하셨도다.19)
위 인용 구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천도’와 ‘인사’는 함께 언급되어 상도(常道)에 관한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나아가 ‘신도(神道)’의 개념과 관련되어 ‘천도’와 ‘인사’가 설명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인 면을 볼 수 있다.
‘신도’는 대순사상에서 궁극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용어이다. “신도(神道)로써 크고 작은 일을 다스리면 현묘 불측한 공이 이룩되나니 이것이 곧 무위화니라. 신도를 바로잡아 모든 일을 도의에 맞추어서 한량없는 선경의 운수를 정하리니 제 도수가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20)와 같은 내용에는 현상을 일으키는 본체적 의미와 함께 권위를 세우거나 떨어뜨릴 수 있는 대상으로서 능동적 성격까지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대순사상에서 ‘신도’의 개념이 본체가 지닌 근원적 성격뿐만 아니라 작용으로 드러나는 능동적 성격까지 지닌 특수한 개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21)
‘천도’와 ‘인사’로 대비될 때의 ‘천도’는 분명 ‘신도’가 지닌 능동적인 외연까지도 고려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에 따라 ‘천도’는 적극적으로 ‘인사’와 관계 맺고 상호 작용하는 속성을 지니게 된다. 이것은 대순사상의 성립에 대전제가 되는 천지공사(天地公事)의 맥락 안에서 이해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천지공사는 상제(上帝)에 의해서 새롭게 변화된 세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천도’로부터 ‘인사’의 원리까지 변화된 체계 안으로 포섭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이상과 같이 대순사상에서 ‘인사’개념이 학문적으로 탐구될 수 있는 토대로서 ‘천도’와의 관계성은 기본적으로 ‘천도’로부터 성립하는 ‘인도’와 그것을 지향하는 ‘인사’의 구조로부터 찾아갈 수 있다. 여기에는 ‘천도’와 ‘인사’의 합일이라는 천인합일적 메커니즘이 배경이 된다. 하지만 ‘천도’와 ‘인사’의 합일성이라는 구조가 적용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앞서 살펴본 바대로 ‘천도’가 지닌 개념적 차이에 의해 대순사상에서 ‘인사’가 드러나는 방식 또한 차이가 생긴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대순사상에서 이상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천도’와 ‘인사’의 관계 원리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원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서 이루어지는 ‘인사’가 ‘천도’와 합일되는 양상에 관한 것이다.
Ⅲ. ‘인사’의 원리
‘인사’의 원리는 ‘인사’가 완성되는 방식으로서, 그 원리가 ‘천도’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는 점에서 ‘천도’와 ‘인사’의 관계 원리라고 볼 수 있다. 대순사상에서 ‘인사’의 원리는 기본적으로 ‘천도’로부터 근거하는 ‘인도’가 ‘천도’를 지향하는 구조를 보이고는 있지만,22) 그 안에서 설정된 역할과 방식에는 대순사상만의 고유한 세계관이 투영되고 있다. 대순사상의 1차 문헌 속에서 중요하게 표현되고 있는 ‘인사’의 성립 원리를 두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자.
『전경』의 교법 3장 35절에 기록되어 있는 ‘모사재천 성사재인’은 대순사상에서 ‘천도’와 관계 맺는 ‘인사’의 원리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명제이다. 모사재천에서 모사(謀事)와 성사재인에서 성사(成事)는 사(事)의 시작과 완성에 대한 구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 즉 일이란 사물이 변화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사태나 사건을 포괄한다. 사물은 어떤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고 다른 대상과 연계하여 사건을 일으킨다. 존재 일반을 지칭하는 물(物)이라는 개념에 사(事)의 의미가 분리될 수 없다고 보는 성리학적 시각은 삼라만상(森羅萬像)의 존재를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23) 존재자의 변화 속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사의 개념이 다뤄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모사재천 성사재인’의 구절은 존재자의 존재 방식에 의미를 부여하는 명제로 이해된다. 일은 시작과 완성이 구비 될 때 비로소 하나의 온전한 일로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시작이 없으면 완성이 있을 수 없고, 완성이 없으면 시작 또한 의미가 없다. ‘모사재천 성사재인’의 원리는 일을 시작하는 모사(謀事)와 일을 완성하는 성사(成事)의 역할을 하늘과 인간에 대입하여 ‘천도’와 ‘인사’의 관계를 풀어내고 있다. 여기에는 기존의 천도관과는 조금 다른 차별성이 존재한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앞장에서 설명된 것처럼 대순사상에서 ‘천도’가 천지공사라는 작업을 통해서 새롭게 정립되었다는 점에서 연유한다.
동양사상에서 하늘은 물질과 자연을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의미는 자연 현상을 넘어서는 형이상학적 대상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사람의 행위와 가치의 기준으로서 이해되어 왔다. 이것은 ‘인사’의 원리가 성립될 수 있는 근거를 초월적 차원이나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원리로부터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대순사상에서도 ‘인사’의 근거로서 ‘천도’라는 형이상학적 근거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대순사상에서 ‘천도’는 상제의 천지공사에 의해서 새롭게 정립된 ‘천도’로서 선천(先天)을 지배했던 원리에 대한 극복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차이를 보인다.
상제께서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먼저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니라. 이것이 곧 삼계공사(三界公事)이니라” … .24)
과거의 세상으로서 선천과 앞으로 변화될 세상으로서의 후천(後天)에 대한 구분은 개벽(開闢)이라고 지칭되는 변화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인데, 대순사상에서는 특징적으로 다루어진다. 일반적으로 개벽은 우주생성의 천문학적 현상이나, 시간적 흐름에 의해 주어지는 것으로 언급되는 반면,25) 대순사상에서 선·후천을 구분 짓는 개벽은 상제의 권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변화로 이해된다. 상제는 선천의 세상을 상극(相克)에 지배된 세상으로 진단하고 그에 따라 기존 세상을 지배하는 상극의 도수를 뜯어고쳐서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 세상을 건립하는 천지공사의 작업을 단행하게 된다.
이러한 내용은 왜 대순사상에서 ‘천도’의 의미가 새롭게 규정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인용구절에서 천지가 상도를 잃었다는 내용은 달리 말해서 “천도와 인사의 상도가 어겨”26)졌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천도’와 ‘인사’의 관계 속에서 상도가 진단되고, 그에 따라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게 되는 문제 해결의 방향은 ‘인사’뿐만 아니라 ‘천도’에 까지도 적용되는 새로운 원리를 표방하고 있다. 이것은 한 가지 측면에서의 문제 해결이 아니기 때문에 천·지·인 삼계(三界)를 대상으로 하는 공사가 된다. 그리고 ‘신도’라고 하는 능동성을 지닌 본체적 개념으로부터 근본적인 문제를 풀어 가야 하는 것으로서 ‘인사’와 상호작용하는 ‘천도’로서의 의미를 취하게 된다. 그래서 새롭게 규정된 ‘천도’의 역할은 ‘모사재천’으로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선천에는 “모사(謀事)가 재인(在人)하고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라” 하였으되 이제는 모사는 재천하고 성사는 재인이니라. 또 너희가 아무리 죽고자 하여도 죽지 못할 것이요 내가 놓아주어야 죽느니라.27)
‘모사재천 성사재인’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전문을 보면 선천과 후천을 대비해서 모사와 성사에 있어서의 천인관계를 설명함으로써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천지공사의 결과로 새롭게 규정된 ‘천도’가 있기에 선천의 ‘모사재인 성사재천’28)의 관계는 재정립될 수밖에 없다. ‘모사재인 성사재천’은 인간의 의지와 그에 부합하는 하늘의 결정에 대한 상호관계를 보여주지만, 그 의미에는 인간의 노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하늘에서 결정되는 일의 성패를 내포하고 있다. 반면에 대순사상에서 제시하고 있는 ‘모사재천 성사재인’의 원리는 일을 이루는 ‘성사’의 주체로서 인간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 이것은 인간 위상의 질적인 변화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대순사상에서는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라. 마음을 부지런히 하라.”29)고 하여 인간이 존귀해지는 인존(人尊)시대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인존이라는 가치가 천존(天尊)·지존(地尊)에 대비되는 시대적인 규정으로 제시될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성사재인’은 인존이라는 시대적 전환과 더불어 새로운 인간의 위상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것의 본의에는 ‘인사’와 ‘천도’의 합일에 대한 이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이제 수도하여 성도(成道)하는 성사재인(成事在人)의 인존시대”30)를 맞이하게 됐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천도’를 지향하는 ‘인사’의 합일 구조 속에서 피동적으로 규정되는 ‘인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규정되는 달라진 인간의 위상이 인존시대라는 시대적 규명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추구해 온 ‘천도’와 합일에 대한 바람은 인간의 인식이 궁극적인 대상을 향하기 시작한 이래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음에도 이루기 힘든 이상이었다. 더욱이 ‘성사재인’의 인존시대라는 것은 인간이 지닌 구조적 한계를 넘어서는 일일 수 있다. 그것이 진정으로 성립될 수 있으려면 인간이 지닌 현실이 구조적으로 극복되어야 한다. 다음 구절에서는 그러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또 상제께서 말씀을 계속하시기를 “공자(孔子)는 七十二명만 통예시켰고 석가는 五百명을 통케 하였으나 도통을 얻지 못한 자는 다 원을 품었도다. 나는 마음을 닦은 바에 따라 누구에게나 마음을 밝혀 주리니 상재는 七일이요, 중재는 十四일이요, 하재는 二十一일이면 각기 성도하리니 상등은 만사를 임의로 행하게 되고 중등은 용사에 제한이 있고 하등은 알기만 하고 용사를 뜻대로 못하므로 모든 일을 행하지 못하느니라” 하셨도다.31)
인용문의 내용은 도통(道通)의 구조적인 상황에 관한 내용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도통에서 도라는 것은 다분히 범주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개념이다. 동양사상에서 다양한 범주로서 이해되어온 도의 개념이 특히 본체적이며 형이상학적인 범주에서 통용될 때 ‘천도’의 근본개념과 상통할 수 있다.32) 인용 구절에서 도통은 불도(佛道)와 유도(儒道)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이면서도 하나의 사상적인 맥락 안에서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대순사상에서 도통은 유(儒)·불(佛)·선(仙)을 아우르는 궁극적인 차원에서 포괄적으로 언급되고 있다.33) 이것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인사’의 완성이며 ‘천도’와의 합일의 경지이다. ‘성사’로서의 도통인 것이다.
그런데 위 인용 구절에서 도통을 원해도 얻지 못했던 한계에 대한 지적과 앞으로 닦은 바에 따라 누구에게나 마음을 밝혀 준다는 언명은 천지공사로부터 시작된 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하게 변화된 내용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누구에게나 밝혀준다고 하는 것이다. “도통은 이후 각기 닦은 바에 따라 열리리라”34)고한 것처럼 인간의 수도를 통해 달성되는 도통의 과정과 결과가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인사’의 원리가 인존의 가치 속에서 ‘모사재천 성사재인’으로 제시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구조적인 변화 때문이다. 천지공사는 과거에 이어져 왔던 ‘성사재천’의 원리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옛적부터 상통천문(上通天文)과 하달지리(下達地理)는 있었으나 중찰인의(中察人義)는 없었나니 이제 나오리라.”35)는 것도 새롭게 규정된 ‘인사’의 원리가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인간의 주체성이 극치를 이루는 ‘성사재인’의 인존시대라고 천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늘과 인간에게 주어진 모사와 성사의 관계 전환이 시사하는 바는 대순사상의 ‘인사’가 어떠한 원리로서 작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인사’가 단지 인간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의 길흉화복에 대한 소극적 대응이 아니라 공정한 참여를 통해 ‘천도’와 관계 맺는 거국적인 역사이며, 인간 스스로 완성할 수 있는 능동적인 역사라는 것이다. 이처럼 대순사상에서 새롭게 규정된 ‘인사’의 원리는 또 다른 측면에서 신과 인간의 관계로도 설명되고 있다.
‘천도’와 관계 맺는 ‘인사’의 이상적인 원리를 잘 보여주는 또 다른 명제로 ‘신인의도’를 들 수 있다. 대순사상에서 ‘천도’는 법칙이나 규범의 속성만을 지닌 것은 아니다. 만물에 작용을 일으키며 변화를 주재하는 신의 속성을 지닌 것이다. 이와 같은 신의 속성을 지닌 본체적인 개념으로서 ‘신도’라는 표현이 나타나고 있음을 2장의 내용에서 살펴보았다. 대순사상에서 언급되고 있는 ‘천도’는 ‘신도’적 특성을 지닌 개념으로 확대해야만 정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천도’와 관계 속에서 ‘인사’를 고찰할 때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신인의도’는 바로 그러한 신과 인간의 관계 원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신인의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에게 신이 어떤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는지를 대순사상의 관점에서 접근해 보아야 한다. 대순사상에서 신은 존재론적으로 인간의 근거가 되는 본질적 힘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신이 정신적 근거로서 이해되는 것은 정(精)·기(氣)·신(神)이라는 메커니즘 안에서 신의 개념이 육체적인 것과는 다른 정신적인 것으로서 여겨지는 이론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36) 이러한 내용은 기본적으로 궁극적 대상으로서 신과 인간의 합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관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37)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하게 바라보아야 할 점은 대순사상에서 신의 개념이 인간의 존재론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실재적 대상으로서 인간과의 관계 측면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점이다. ‘신인의도’로 규정되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큰 틀에서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바로 음양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다.
신은 뒤에 인간이 없으면 의탁하여 의지할 바가 없고, 인간은 신이 앞에 없으면 이끌어주고 의지할 바가 없다. 신과 인간이 조화하여 만 가지 일을 이루고, 신과 인간이 합하여 백 가지 공이 이루어진다. 신명은 인간을 기다리고, 인간은 신명을 기다린다. 음과 양이 서로 합하고, 신과 인간이 서로 통한 연후에 천도가 이루어지고 지도가 이루어진다. 신의 일이 이루어지면 인간의 일이 이루어지고 인간의 일이 이루어지면 신의 일이 이루어진다.38)
교운 2장 42절 <음양경> 구절에는 신과 인간을 각각 음과 양에 대입하여 양자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음과 양은 서로 상반된 속성을 지닌다. 빛과 그림자라는 문자적 의미를 넘어서 철학적으로 음양은 세상의 모든 변화와 존재를 가장 단순한 상반된 두 가지 기적 속성으로 나눌 때 사용되는 범주적 개념으로 이해된다.39) 이러한 음과 양은 상반된 속성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각각의 존재적 가치를 서로에게서 찾는다는 특징을 지닌다. 음이 없으면 양이 없고, 양이 없으면 음이 없는 관계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위 인용구절에서 신은 뒤에 인간이 없으면 의탁할 곳이 없다는 것은 인간을 통해서 용사(用事)하며 뜻을 이루는 신의 의미가 담겨 있다. 신은 음의 속성처럼 드러나지 않는 곳에 감추어져 있다. 신은 현상을 주재하는 역할을 하지만 물리적 대상이 없이는 드러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인간이 없으면 신은 자신의 뜻을 용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인간은 양의 속성처럼 밖으로 드러나 주어진 일을 행하는 역할을 한다. 이에 신은 인간을 이끌어줄 수 있는 존재로서 의미를 지닌다. 인간은 신이 앞에 없으면 이끌어주고 의지할 바가 없다는 것은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신을 통해서 이룰 수 있으며, 근본적인 삶의 가치 기준이 신을 통해서 정립될 수 있음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신과 인간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신과 인간이 어떤 관계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을 통해 용사하는 신과 신을 통해 삶의 방향성을 찾아가는 인간은 서로에게 충실한 자신의 역할을 다해가면서 이상적인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신과 인간이 의지하고 이끈다는 의미의 ‘신인의도’는 이처럼 음양의 관계로 비유될 수 있는 신과 인간의 이상적인 관계에 대한 함축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신과 인간의 이상적 원리는 ‘인사’의 완성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음양경>의 내용을 보면 신인의 관계는 결국 ‘인사’를 이루고 성공하는 데에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과 인간이 조화하여 만 가지 일을 이루고, 신과 인간이 합하여 백 가지 공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신과 인간이 ‘신인의도’의 관계 속에서 조화를 이루면 수많은 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과 인간이 서로 통한 후에야 천도(天道)가 이루어지고 지도(地道)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바로 신과 인간이 자신의 역할을 행해나가면서 조화하는 것 자체가 ‘인사’와 ‘천도’의 합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한편으로 ‘신인의도’는 상제의 천지공사에 의해 변화된 이상적 법칙의 의미로서 드러난다는 측면에서 특징적인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강증산(姜甑山) 성사(聖師)께옵서는 구천대원조화주신(九天大元造化主神)으로서 … 지상천국(地上天國)을 건설(建設)하고 비겁(否劫)에 쌓인 신명(神明)과 재겁(災劫)에 빠진 세계창생(世界蒼生)을 널리 건지시려고 순회(巡回) 주유(周遊)하시며 대공사(大公事)를 행(行)하시니 음양합덕(陰陽合德) 신인조화(神人調化) 해원상생(解冤相生) 대도(大道)의 진리(眞理)로써 신인의도(神人依導)의 이법(理法)으로 해원(解冤)을 위주(爲主)로 하여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보은(報恩)으로 종결(終結)하시니 해원(解冤) 보은(報恩) 양원리(兩原理)인 도리(道理)로 만고(萬古)에 쌓였던 모든 원울(寃鬱)이 풀리고 세계(世界)가 상극(相克)이 없는 도화낙원(道化樂園)으로 이루어지리니 이것이 바로 대순(大巡)하신 진리(眞理)인 것이다.40)
인용구절에는 상제에 의한 천지공사의 배경과 원리 등이 설명되고 있다. 상제는 어려움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구하기 위해 세상의 문제를 진단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천지공사를 시행하였다. 그 진단에 따라 천지공사에는 문제 해결의 원리가 제시된다. 대순진리에 입각한 해원과 보은의 양원리가 그것이다. 여기서 ‘신인의도’는 이법(理法), 즉 신과 인간이 지켜나가야 할 법칙으로 표현된다.
대순사상에서 인간과 신은 존재론적으로 분리된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혼과 백으로 구분하고, 신을 혼의 변화 양태로서 이해하는 것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실체적인 대상으로서 신은 단순한 인간의 존재 속성이 아니라, 인간과 소통하는 구체적인 대상이다. 신과 인간의 관계를 ‘신인의도’로 규정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신과 인간에게 각자에게 맞는 역할이 원칙적으로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천지공사를 통한 변화에는 비겁(否劫)에 쌓인 신명과 재겁(災劫)에 빠진 인류를 구제한다는 설명이 있다. 비겁과 재겁에서 겁은 매우 긴 시간의 단위로 쓰이는 불교적 용어가 아니라 재난 및 액운이라는 부정적의미로 대순사상에서 사용하는 겁액(劫厄)이란 용어와 관련된다.41) 따라서 신명의 비겁은 인간과 서로 통하지 못해서 생기는 비색한 액운이며, 재겁은 자연재앙을 통해 인간에게 미치는 재난이라고 볼 수 있다. 양자가 모두 고통받던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서 천지공사는 해원과 보은이라는 해결 원리 속에서 ‘신인의도’라는 신과 인간의 이상적인 원칙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신인관계에 대한 방향성은 대순사상에서 ‘천도’가 원리적 성격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 신이라는 실재적 대상으로도 드러난다는 점에서 ‘천도’에 참여하는 인간의 적극적인 모습으로 귀결된다.
만사를 대성(大成)하는 일은 인사(人事)에서 신사(神事)에 이르기까지 차착(差錯)이 없도록 조화(調和)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니, 이때 수도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42)
위 인용구절에서는 ‘인사’와 관련된 ‘신사’가 언급된다. 인간의 일로서 ‘인사’는 ‘신사’와 어긋남이 없는 상태로 조화를 이뤄나갈 때 모든 일을 크게 완성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신사’는 신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말한다. 대순사상에서 신의 세계는 인간의 세계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으로 간주한다. 『전경』에는 “사람들끼리의 싸움은 천상에서 선령신들 사이의 싸움을 일으키나니 천상 싸움이 끝난 뒤에 인간 싸움이 결정되나니라”43)고 묘사되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현상적 작용들은 신에게 영향을 미치며, 그것이 결과적으로 드러날 때는 신의 결정에 의해서 규정되는 예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인사’에서 ‘신사’에 이르는 일의 순리가 어긋남이 없을 때 비로소 만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사’와 ‘신사’의 조화가 결과적으로 수도의 목적과도 연결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인간과 신의 이상적 관계인 ‘신인의도’의 원리가 전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인의도’가 천지공사의 이법으로 제시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천지공사에 참여하는 행위인 대순진리회의 수도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들을 토대로 다음 장에서는 ‘인사’의 완성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대순사상의 ‘인사’ 개념이 지향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이해해 보자.
Ⅳ. ‘인사’의 완성
대순사상에서 표현되고 있는 ‘인사’ 완성의 구조는 인간 심성(心性)으로부터 발현되는 ‘천도’와의 합일에 대한 방법과 실재적인 대상으로서 신과의 합일을 통해서 ‘천도’와 합일에 이르는 방법으로 나뉘게 된다. 이것은 앞서 살펴본 ‘인사’의 두 가지 원리가 제시하고 있는 접근 방식과도 관련된다. 이 장에서는 대순사상에서 포착할 수 있는 ‘인사’와 ‘천도’의 두 가지 합일의 원리가 ‘인사’의 완성으로 귀결될 때 대순사상에서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는지를 통해 기존 천인합일의 문법에서 달라지는 특수한 지점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대순사상에서 ‘천도’와의 합일을 지향하는 ‘인사’의 완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 다뤄지고 있다. 하나는 내면적 심성(心性)으로부터 ‘천도’의 경지를 깨달아서 합일을 이루는 차원이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 천명(天命)을 품부받아 형성되었고, 그러한 내재된 ‘천도’를 발현하는 도덕적 접근으로 천인합일의 맥락을 보여주는 관점과 맞닿아 있다. 즉, 형이상학적 ‘천도’가 인간과 합일을 이루는 방식이 인간심성의 도덕적 발현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천인합일의 구조를 대순사상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대순사상에서 설명하고 있는 심성은 천성(天性)으로부터 부여된 것으로 이해되며, 특히 천성 그대로의 본심을 양심(良心)으로 특정 짓게 된다.44) 그래서 마음의 위상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인간 마음의 완성이 곧 ‘천도’와 합일을 이루는 경지라는 것은 ‘성사재인’이 가능한 이유이다. 그 ‘성사재인’이 완성된 경지에 관한 표현으로 마음의 영(靈), 즉 심령(心靈)을 통일한다는 ‘영통’의 개념이 나온다. 대순사상에서는 심령을 통일한다는 표현을 통해서 ‘인사’ 완성의 내재적 차원을 엿볼 수 있다.
도(道)가 곧 나요, 내가 곧 도(道)라는 경지(境地)에서 심령(心靈)을 통일(統一)하여 만화도제(萬化度濟)에 이바지할지니 마음은 일신(一身)을 주관(主管)하며 전체(全體)를 통솔(統率) 이용(理用)하나니, 그러므로 일신(一身)을 생각하고 염려(念慮)하고 움직이고 가만히 있게 하는 것은 오직 마음에 있는 바라 모든 것이 마음에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것이니 정성(精誠)이란 늘 끊임이 없이 조밀(調密)하고 틈과 쉼이 없이 오직 부족(不足)함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름이다.45)
도즉아(道卽我) 아즉도(我卽道)의 경지(境地)를 정각(正覺)하고 일단(一旦) 활연관통(豁然貫通)하면 삼계(三界)를 투명(透明)하고 삼라만상(森羅萬象)의 곡진이해(曲盡理解)에 무소불능(無所不能)하나니 이것이 영통(靈通)이며 도통(道通)인 것이다.46)
‘영통’은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시작해서 도(道)라는 궁극적 진리와 합일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여기서 도는 결국 순수하고 형이상학적인 가치가 표현된 ‘천도’와 다르지 않다. 도와 내가 하나라는 경지는 천인합일의 경지를 의미한다. 마음의 영을 통일한다는 것은 ‘천도’가 인간의 마음에 내재화 된 심령과 내가 하나가 되는 천인합일의 구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심령을 통일한다는 표현과 함께, 심령을 구한다, 심령과 통한다는 표현도 나타난다. 『전경』에는 “우리가 구하여야 할 바는 무량하고 지극한 보물이니 지극한 보물은 나의 심령이다. 심령이 통하면 귀신과 더불어 수작할 수 있고 만물과 더불어 질서를 같이할 수 있다.”47)는 구절이 있다. 마음의 영을 통한다, 구한다는 표현 모두 천도를 품부 받아 내재된 인간의 영과 내가 하나를 이루는 차원을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천인합일의 과정에서 인간의 노력은 성(誠)으로 귀결된다. 성은 마음으로부터 시작해서 몸으로 드러나고, 결국 도라는 궁극적 진리에 도달하려는 노력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자고로 “마음이 참되지 못 하면 뜻이 참답지 못 하고, 뜻이 참되지 못 하면 행동이 참 답지 못 하고, 행동이 참 되지 못 하면 도통 진경에 이르지 못 할 것이라 (心不誠 意不誠 意不誠 身不誠 身不誠 道不誠).” 하심을 깊이 깨달으라.48)
위 인용구절은 천인합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인간의 마음이 지닌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정성 성(誠)의 의미는 대순사상에서 수도의 요체(要諦)로서 근본적인 자세를 표현하고 있는 함축적인 개념이다. 여기서 ‘심불성(心不誠)’을 ‘참되지 못하다’라고 번역한 것은 성자를 단순히 노력의 의미만으로 이해하지 않고, 옳고 그름의 가치가 있는 개념으로 본 것이다. 즉, 마음은 바르고 참된 가치를 지향하며 정성스러운 노력을 기울일 때 도통진경(道通眞境)이라는 천인합일의 지향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무자기(無自欺)’의 경지를 도통의 전제로 말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마음이 바르고 참된 가치를 지향해 가는 과정에서 내면의 등대 역할을 하는 심령의 존재여부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전경』 상에서 마음을 속이지 말라, 마음을 바로 잡으라, 마음을 깨끗이 하라, 마음을 올바르게 가지라, 마음을 정직히 하라, 마음을 부지런히 하라, 마음을 바로 하라, 마음을 게을리 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지 말라와 같은 마음에 관한 요구가 보이는 것도 마음에 내재된 심령이 전제된 상태에서 설명될 수 있다.49) 결과적으로 인간에게 일을 완성할 수 있는 ‘성사재인’의 중요한 역할이 주어졌다는 것은 바로 마음이 갖게 되는 위상 때문이다. 하늘로부터 이어받은 천성 그대로인 본심의 발현은 ‘성사재인’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심령을 내재한 인간의 마음은 구체적으로 인간의 본성 그대로인 본심, 즉 양심으로 실체화 되고, 그것은 도덕적인 마음의 발현으로 드러나게 된다. 외재적인 초월성으로부터 천인합일을 지향하지 않고 천명의 내재성을 통해 천인합일을 이루고자 하는 구조가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대목이다. 대순사상에서 도통의 경지에 이루기 위해서 인륜도덕이 강조됨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50) 인간완성의 동기를 내면적인 양심의 발현으로부터 찾고, 그것을 통해 인륜도덕을 실천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곧바로 천인합일의 경지, 대순사상에서 말하는 도통의 경지와 일맥상통하게 된다. 그런데 영통에서 영(靈)이라는 표현에 주목하면 대순사상에서 내재된 천명(天命)을 이해하는 관점을 포착할 수 있다. 영은 초월적 신 그 자체와 동일성을 갖는다. 영통이 곧 도통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사’완성의 또 다른 차원을 살펴볼 수 있는 내용이다.
‘천도’의 대상인 신과 합일을 이루는 차원으로 대순사상에서는 특별히 ‘신인조화’의 사상으로 이를 표현하고 있다. 대순사상에서 드러나고 있는 ‘천도’의 개념은 능동적인 신의 개념을 포괄해야 함을 앞서 살펴보았다. 대순사상에서 신은 신명이라는 가치 함축적 개념과도 함께 사용되면서 특히 맑고, 밝은 선의 가치를 지닌 신을 특정하기도 한다.51) 신인조화는 조화(調化)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단순한 신과 인간이 서로 잘 어울리는 조화(調和)가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변화(變化)까지 나아간다는데 의미가 있다.52) 그리고 그 변화는 결국 ‘인사’가 완성된 경지를 표현하게 된다.
신인조화는 신과 사람이 조화가 되는 것인데 이것을 도통이라고 한다. 이것이 되면 화합이 되고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있다. 지상낙원이든 무엇이든 다 여기에 있다.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일어난다. 신인조화 즉 도통이 되면 모든 것을 속일 수가 없다.53)
위 인용구절의 표현대로 신인조화는 곧 도통의 다른 이름이다. 이것은 대순사상에서 제시하고 있는 천인합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신인조화는 외적이며 초월적인 대상과 합일의 차원으로 이해된다. 결국 대순사상에서 ‘인사’의 완성이 보여주는 영통과 신인조화의 차원은 ‘천도’와의 내적 차원과 초월적 차원의 합일 경지를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영통이 곧 도통”이라는 내용으로 축약될 수 있는 이 같은 사상적 특징은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대순사상의 특수성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54)
그래서 내재성과 초월성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대순사상의 하늘관에 관한 연구는 위와 같은 내용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내재성과 초월성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는 대순사상의 하늘관의 특징을 심도 있게 다루기 위해 마찬가지로 내재성과 초월성이 동시에 보이는 동학의 사상과 비교한 연구는 대순사상의 특수성을 더 깊게 이해하는 초석이 되었다.55) 그런데 두 사상의 비교를 통해 서술된 대순사상의 하늘관의 중요한 특징인 ‘내재성을 포괄하면서 초월성이 강조’되었다는 내용은 중요한 요소이면서도, 그 안에는 분석해 볼 문제들이 함께 포진되어 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상제와 ‘천도’의 관계, 특히 대순사상에서 ‘천도’의 외재성이 표현되고 있는 신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신인조화 사상은 이러한 상제와 신과의 관계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인간과 신의 합일성을 보여주는 사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또 상제께서 말씀을 계속하시기를 “공자(孔子)는 七十二명만 통예시켰고 석가는 五百명을 통케 하였으나 도통을 얻지 못한 자는 다 원을 품었도다. 나는 마음을 닦은 바에 따라 누구에게나 마음을 밝혀 주리니 상재는 七일이요, 중재는 十四일이요, 하재는 二十一일이면 각기 성도하리니 상등은 만사를 임의로 행하게 되고 중등은 용사에 제한이 있고 하등은 알기만 하고 용사를 뜻대로 못하므로 모든 일을 행하지 못하느니라” 하셨도다.56)
대순사상에서 상제와 신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 인용구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순사상에서 ‘천도’는 인격적인 주재성, 곧 능동성이 함축된 신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에 앞서 중요하게 다루었던 것이 상제의 ‘천지공사’에 의해 새롭게 규정된 ‘천도’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러한 내용은 대순사상에서 ‘천도’가 궁극적 차원을 총괄해서 일반적으로 규정되고 있는 ‘천도’와는 다르게 상제의 주재성이 전제되고 있는 ‘천도’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위 인용구절은 바로 신인조화로서 도통이 상제를 통해 주어짐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천도’, 즉 제신과 상제의 차별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구절이다.57) 대순사상에서 상제가 ‘천지공사’를 통해 ‘천도’를 새롭게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 도통에 대한 상제의 권능으로 드러나는 것이고,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천도’를 주재한다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재한다는 것을 잘못 해석하면 자칫 상제의 개념을 서양의 기독교적 하나님 관념으로 규정해 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서양의 절대적인 하나님은 만물을 주재하고, 창조하는 개념으로 만물의 법칙과 존재를 벗어나 초월해 있는 하나님으로 상정하고 있다. 이러한 기독교적 하나님 관념은 절대적인 무(無)를 상정해서 새롭게 구성된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58) 이렇게 형성되어온 기독교 하나님의 관점은 현대에 많은 사상가들이 하나님의 존재에 관해 비판하는 중요한 전제가 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대순사상의 상제가 지닌 차별성을 절대무로부터 세상을 창조한 기독교적 하나님과 연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59) 그래서 대순사상에서 다루고 있는 신은 상제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표현보다는 상제에 의해 조화(造化)되고, 주재되고 있는 신으로서 표현하는 것이 오해의 소지를 덜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상제에 의해 주재 되는 신들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신들을 상제의 주재성이 투영된 존재로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60) 대순사상에서 신이 지닌 위상은 상제와 별개로 성립되어 있지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양사상적 관점을 빌려오자면 상제를 ‘창조성 그 자체(Creativity itself)’61)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상제의 위상이 기독교적 창조주의 하나님보다 격하된다는 논리는 단편적인 사고이다. 오히려 상제의 위상을 교부철학자의 논리로 만들어낸 기독교적 하나님의 수준으로 격하시켜서는 안 된다고 본다.
신들의 주재성은 삼라만상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독자적인 주재로서 드러난다는 점에서 상제의 주재성과는 다른 측면을 지닌다.62) 그렇지만, 신들의 주재성은 인간을 대상으로 할 때 신이 인간을 이끈다는 ‘신인의도’의 원리에서처럼 희석되지 않고 남아있게 된다. 이 때문에 대순사상에서 신과는 다른 상제의 독자적인 초월성과 주재성이 전제된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상제의 주재성과 초월성이 투영된 신이라는 대상과 합일을 이뤄 완성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신인조화가 지닌 인간완성의 경지를 내적인 차원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데, 이는 대순사상에서 신의 실재적 위상을 퇴색시키는 내용으로 전개될 수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철학적으로 미묘한 쟁점들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대순사상이 지닌 고유한 독창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Ⅴ. 결론 : ‘인사’의 사상적 의미
대순사상에서 ‘인사’는 ‘인사’의 근거를 하늘로부터 찾으면서 사상적 의미를 갖는다. ‘인사’의 전형(典型)으로서 형이상학적인 ‘천도’를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천도’가 있기에 ‘인도’는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그 ‘인도’를 통해 ‘인사’의 의미가 드러난다. 이러한 천인관계는 동양사상에서 보편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법천론적 구조를 보이고 있지만, 대순사상에서는 ‘천도’의 개념이 능동적인 의미로 확장되면서 고유한 ‘인사’의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천도’의 능동성은 대순사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신도’라는 독특한 형이상학적 개념으로부터 성립된다. 대순사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천도’의 개념이 일반적인 ‘천도’와는 달리 ‘신도’의 개념 속에서 설정되고 있는 것이다.
대순사상에서 ‘천도’가 지닌 특징은 상제의 천지공사로부터 기인하는 것이었다. 천지인(天地人) 삼계(三界)를 대상으로 한 변화작업으로서 천지공사는 ‘인사’가 ‘천도’를 지향하는 원리를 새롭게 정립시키는 원인이 된다. 구체적으로 ‘모사재인 성사재천’의 원리가 ‘모사재천 성사재인’으로 변화된다는 것은 인간과 하늘의 관계가 새롭게 규정되면서 드러나는 ‘인사’의 원리가 된다. 또한 새롭게 변화된 인간과 하늘의 관계는 ‘신인의도’라는 신인관계의 원리로 제시되면서 대순사상이 지닌 ‘인사’의 원리를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에 따라 드러나고 있는 대순사상의 ‘인사’ 완성은 영통과 신인조화라는 두 가지 경지로 표현된다. 마음의 영(靈)은 내재화된 ‘천도’로서 인간의 심성으로부터 ‘천도’를 지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심령의 통일은 마음과 영이 합일된 영통의 경지이다. 한편으로 신인조화는 인간이 지향하는 ‘천도’의 구체적인 실체로서 신을 설정한다. 신과 조화를 이룬 경지는 도와 내가 온전히 하나가 된 도통의 경지로서 ‘인사’ 완성인 셈이다.
이처럼 내·외적이라고 구분할 수 있는 ‘인사’ 완성의 두 가지 경지는 초월성과 내재성을 포괄하는 차원에서 나아가 심화한 논점들을 보여주게 된다. 그중의 하나인 ‘천도’와 상제와의 관계에 관한 내용은 대순사상의 ‘인사’의미가 지닌 차이를 조망할 수 있는 지점이다. 대순사상의 ‘천도’는 상제의 천지공사에 의해 규정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상제의 초월성으로부터 연유되었다. 그러면서도 외적인 차원에서 ‘천도’와 합일을 이루는 ‘인사’ 완성이 긍정된다는 점에서 ‘인사’와 대비되는 ‘천도’의 초월성 또한 인정될 수밖에 없다. 본 논문에서 이러한 두 가지 다른 층위의 초월성을 인정하는 관점은 절대적 유일신관과 대조되는 대순사상의 신관을 염두에 두고자 한 것이다. 두 가지 초월성을 어떻게 개념화 할 것인가에 관한 연구들이 추후 축적되고 심화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