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본 논문에서는 송대 역학(易學)에서 중요한 개념인 ‘선천(先天)’과 ‘후천(後天)’ 개념1)과 대순사상의 선천2)과 후천 개념3)을 비교·연구하고자 한다. 『전경』에 핵심 개념으로 등장하는 선천과 후천 개념은 『태극도통감(太極道通鑑)』4)에서는 역학의 도상으로 나타난다. 본 연구는 『전경』의 선후천 개념이 『태극도통감』에서 역학의 도상으로 나타났다는 전제 위에서 『태극도통감』의 도상과 역학의 도상을 비교하여, 대순사상의 선천과 후천 개념의 의미를 해석하고자 한다.
역학의 발전사에서 송대에 이르면 도서역(圖書易)5)이라는 분야가 탄생한다. 이 도서역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선천과 후천이다. 송대 도서역에서 선천은 『주역』의 원리를 해명하거나 『주역』의 이론적 근거를 추구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라고 말해진다.6) 송대 도서역에서 말하는 선천과 후천은 소옹에 의해 개념화하고, 역의 원리를 해명하기 위한 주제로 등장한다. 소옹의 이러한 선천과 후천 개념은 주희에 의해 수용된다. 주희는 『주역본의』의 첫머리에 9개의 도상으로 나열하였는데, 학자들은 이 도상들이 선천역에서 후천역으로의 전개 혹은 발전사라고 평가하기도 한다.7)
『전경』에서 선천과 후천 개념은 상극의 세상과 상생의 세상을 구획하는 핵심 용어이다. 『전경』에 따르면, 상제께서 삼계공사와 천지공사를 통해 상극의 선천 세상을 상생의 후천 세상으로 개벽한다. 상제께서 행한 공사의 주요한 내용은 천지의 도수(度數)를 바로잡는 것이었다.8) 천지의 도수는 일월과 오성, 28수가 주천(周天)하는 주기를 의미한다. 이 주천 도수를 파악해 실생활에서 적용한 것이 역법(曆法)이다. 중국의 역법은 한대에 이르러 역학(易學)과 결합한다. 한대로부터 역학과 역법이 결합하고 나서, 역법은 역의 괘상(卦象)과 효상(爻象)으로 주천 도수를 표현한다.9) 이러한 저간의 역사적 상황에서 보자면, 『전경』에서 상제께서 선천을 후천으로 전환하는 공사에서 중요한 요소는 천지의 도수를 바로잡는 것이다. 이를 역학의 관점에서 보면, 선천 세계에서 천지 도수는 상극의 원리에 의해 운행되는데, 이를 바로잡아 상생의 원리에 의해 운행되도록 천지 도수를 바로 잡아 상생의 후천 세계를 구현한 것이다. 천지 도수를 바로 잡아 후천 세계를 구현하는 내용은 『태극도통감』에서 「정역시대 팔괘도」로 나타난다.
『태극도통감』에 실린 세 종류의 「팔괘도」는 역학과 역법의 결합을 표현하고 있다. 「정역시대 팔괘도」의 핵심 내용은 주천 도수를 상생의 역법으로 재정립한 것이다. 이렇게 재정립된 주천 도수는 「정역시대 팔괘도」가 후천 개벽의 세상이자, 인존(人尊)의 시대임을 밝힌 것이다. 또한 『태극도통감』의 「취지서」와 「기원」에서는 무극과 태극, 태극으로부터 팔괘에 이르는 생성론을 서술하고 있다.10)
이렇게 보면, 대순사상의 후천개벽은 역학의 사유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태극도통감』에서는 무극에서 팔괘에 이르는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데11), 이는 『주역』 「계사」 11장의 “是故,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라는 내용과 연관이 있다. 『태극도통감』 말미에 수록된 「복희시대 팔괘도」, 「문왕시대 팔괘도」, 「정역시대 팔괘도」에서, 앞의 두 도상은 송대 도서역의 「복희 팔괘도」와 「문왕 팔괘도」이다. 따라서 대순사상에서 말하는 선·후천 개념은 역학 사상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역학의 선·후천 개념과 대순사상에서 말하는 선·후천 개념은 그 의도와 목적, 해석에서 차이를 보인다. 역학에서 선·후천 개념은 『주역』의 원리를 해명하기 위한 것이거나 역학의 발전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반면에 대순사상에서 선·후천 개념은 상제님의 공사에 의해 상극이 해소된 후천세계의 미래상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지를 신학적 관점에서 보여준다. 또한 상제께서 복희시대로부터 정역시대에 이르는 역사의 흐름에서 해당 시대의 신들을 봉하는 종교적 역사를 도상으로 표현한 것이 『태극도통감』의 내용이다. 따라서 대순사상에서 선·후천 개념은 상제님의 공사에 의해 구현된 선천과 후천 세계를 역학의 도상을 빌려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대순사상을 다룬 연구 논문들에서는 후천 선경의 원리들을 다룬 논문들은 그 수가 상당하다.12) 대순사상에서 선천과 후천의 의미를 원시반본(原始反本)의 개념틀에서 다룬 논문도 그 양이 상당하다.13) 그러나 대순사상의 선천과 후천 개념을 역학의 개념으로 직접적인 비교를 진행한 것은 없다.14) 따라서 이 논문은 역학에서 사용된 선천과 후천 개념이 대순진리회에서는 어떤 지평에서 논의되며, 그 의의가 무엇인지를 해명하기에 학술적인 의미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 목적을 위해, 동양 전통 사상에서 선천과 후천이라는 개념이 형성되는 역사를 서술한 뒤, 역학에서 선천과 후천이 도입되며 정착하는 과정과 그 개념적 의미를 서술하고자 한다. 아울러 역학에서 선·후천 개념을 정리할 때, 이봉호의 연구 논문 중에서 일부를 가져와 논의를 진행한다.15) 이러한 전제들로부터 『전경』과 『태극도통감』에 나타난 선천과 후천의 의미를 해명하면서, 역학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를 해명하고자 한다.
대순사상의 선·후천 개념을 해명하기 위해, 송대 역학에서 선·후천 개념과 그에 따른 도상, 『태극도통감』에서 사용되는 선·후천과 역학 도상으로 한정한다.
Ⅱ. 선·후천 개념의 형성과 도교의 선·후천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라는 용어는 동양 사상사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어왔다. 이를 크게 분류하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도교(道敎)에서의 선천과 후천이다. 도교에서 기론(氣論) 체계가 정립되면서, 선천의 원기(元氣)로부터 이 세계가 발생한다는 발생론이 성립한다. 이러한 발생론에서 자연스럽게 선·후천의 논리가 성립한다. 도교의 기론은 당대(唐代)에 이르러 내단(內丹) 수련이론으로 정립되고, 내단 수련에서 후천의 몸을 수련해 선천의 원기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 수련의 목표가 된다. 둘째는 역학(易學)에서 선천과 후천이다. 북송시기에 소옹(邵雍)은 진단(陳摶)이 『정역심법(正易心法)』에서 말한 ‘선천’이라는 용어를 가져와 도상을 통해, 선천역의 원리를 추구한다. 소옹의 이러한 이론을 주희(朱熹)가 수용하면서 선천역과 후천역이 역학에서 하나의 범주가 되며, 이는 송대 역학의 특징으로 자리한다. 송대 역학에서는 복희의 역은 선천의 역이며, 문왕과 주공, 공자의 역은 후천의 역이 된다. 셋째는 철학적 의미에서 시간 구분론에서 선천과 후천이다. 북송시기에 역학에 사용된 선천과 후천 개념이 역사적 시간에 적용된다. 역학에서 선·후천을 기준으로 삼아 소옹은 복희로부터 요순시대를 선천으로, 요순 이후를 후천의 세계로 규정한다. 반면에 주희는 문왕을 기준으로 복희로부터 문왕에 이르기까지를 선천으로, 문왕 이후를 후천으로 규정한다. 이렇게 역사적 시간에서 선·후천이 다른 것은 두 학자가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를 이해하는 관점의 차이, 역학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기인한다.
그러나 선천과 후천 개념이 형성된 발원지는 도교이다. 도교에서는 선천과 후천 개념이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면서, 기론적 체계를 형성하거나 수련의 체계를 형성한다. 게다가 도교에서는 그 경전의 제목에서 선천과 후천을 사용하기도 하고, 도교 교단에서도 선천이라는 용어를 자신 교파의 명칭으로 삼기도 한다.16)
초기 도교 경전인 『태평경(太平經)』에도 선천 원기17)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노자』에서 기원한 것이다. 『노자』 25장의 경문에는 천지보다 앞선 존재로 ‘무엇인가 섞여 이루어진 것’이 제시된다.18) ‘무엇인가 섞여 이루어진 것’에 대한 주석들은 형체 없이 혼돈하면서도 만물을 이루어 내는 어떤 것19)이거나, 그것으로부터 만물이 이루어지는 것20)이거나 무명의 대도21)라고 주석한다.
이러한 주석에서 ‘형체 없이 만물을 이루어 내는 어떤 것’은 시간적으로도 천지보다 앞서며, 개념적으로도 천지보다 앞서고, 존재론적으로도 천지에 우선하는 존재이다. 이로부터 선천은 현실 존재자들보다 우선하는 어떤 존재, 현실 존재자들의 근거로서 어떤 존재를 형용하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한다. 여기에다 『노자』 42장의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의 내용에 따라 우주 발생론이 성립하면서, 도교에서는 기론적 의미에서 선천과 후천 개념이 탄생한다.
이처럼 선천 원기 개념과 우주 발생론이 결합하면서 도교의 내단 수련에서 선천은 회복해야 할 대상이거나 도달해야 할 목표가 된다. 필자가 파악하기로는 최초로 선천이라는 용어가 도교의 이론과 관련해서 등장한 것은 최희범(崔希範)의 『입약경(入藥鏡)』이다. 최희범은 당대 인물로 정(精)·기(氣)·신(神)을 연단의 대상으로 삼은 인물이다. 그는 『입약경』의 서두에서 선천기와 후천기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선천과 후천을 구분한다.22) 이를 두고 『오류선종(伍柳仙宗)』에서는 ‘先天炁’를 천지에 앞서 있는 무형한 기로, 유형한 천지를 생성하고, 유형한 나를 생성하는 원기(元炁)로 파악한다.23) 이처럼 무형의 기로서 유형의 천지와 나를 생성하는 원기를 선천기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후천기(後天炁)는 하늘이 생긴 뒤에 있는 것으로, 천형이 있고 난 이후의 사물임을 말한 것으로, 나에게 몸이라는 형체가 있는 상태이다.24) 이러한 분류에 의하면, 선천은 후천의 천지를 생성하며 나의 몸을 생성하는 원기이고, 후천은 천지가 생성된 이후의 나의 몸이 된다.
이를 정·기·신의 관점에서 보면, 태극이 음양으로 변하면 신(神)과 기(炁, 선천기)로 나뉘는데, 이 신과 기가 음양이다. 음과 양에 모두 동정(動靜)이 있어서 서로 작용한다. 이는 둘이 넷으로 나뉘는 과정이다.25) 음양이 동정과 상호작용을 하는 상태는 후천의 상태에 속하고 이 과정은 호흡에 의해 일어난다. 이 때문에 선천의 기가 후천의 기로 전환된 것이다.26) 이 때문에 후천기를 호흡의 기로 규정한다. 결국 기의 관점에서는 선천은 원기이고 후천의 기는 호흡의 기이다.
선천의 기는 정으로도 변화하는데, 음양이 교감을 하는 상태에서 선천의 기가 동해서 후천의 무형한 기가 되고, 이때 색욕을 느끼게 되면 후천의 유형한 기로 전환하게 된다고 본다. 이 선천의 기는 선천의 원정(元精)의 상태로 있다가 음양의 동정과 교감이 일어나는 후천의 상태에 이르면, 선천의 기가 동해서 후천의 정으로 변화한다는 논리이다.27)
세상 사람들은 지극히 맑고 지극히 고요한 호칭인 선천이, 바뀌어 후천의 유형한 호흡이 되는 것을 모르는데 이것이 선천이고, 그것이 움직여 선천의 무형한 정이 되는 것을 모르는데 이것도 선천이며, 그것이 변화하여 후천의 유형한 정이 되는 것도 모르는데, 이것도 선천이다. 이것들이 순행의 이치이다.28)
선천의 상태가 후천의 호흡기로 형체가 있는 정으로 전환되지만, 이 후천 기와 정은 선천이 변화하여 전환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은 자연스러운 순행(順行)의 흐름이다. 그렇다면 이 선천은 변화하기 이전과 이후에도 우리의 몸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후천의 상태에서 선천을 회복하는 도교적 수련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선천의 기를 회복하여 신과 기를 합일해내는 것이 도교의 내단수련이다. 이 과정은 후천에서 선천으로의 역행(逆行)의 과정이다.
Ⅲ. 송대 역학에서 선·후천 개념
이제 역학에서 선·후천 개념을 확인해 보자. 역학에서 선천과 후천에 대한 구분의 출발점은 소옹(邵雍)으로 본다. 이봉규는 소옹의 선천 개념은 『이천격양집(伊川擊壤集)』에서 처음 제시되었지만, 소옹 문인들의 기록으로 보이는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의 「관물외편(觀物外篇)」을 거치면서 선천과 후천이라는 역학의 체계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변환되며, 「관물외편」에서 ‘선천을 심(心)으로 후천을 적(迹)’으로 이해하는 소옹의 사유 역시 문인들에 의해서 재구성된 것으로 본다.29)
이봉규의 주장은 역학사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논리, 즉 소옹이 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의 “先天而天不違, 後天而奉天時, 天且弗違.” 구절에서 선천과 후천을 개념화하였고, 주희가 이를 수용하면서 역학에는 선천역과 후천역이라는 범주가 탄생하였다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역학사에서 선천과 후천의 개념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는 위와 같지만, 필자는 소옹이 선천과 후천을 역학에 도입한 것은 진단(陳摶)의 영향 때문이라고 본다. 오대(五代)시기 말의 도사 진단은 『정역심법(正易心法)』에서 이미 ‘선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선천이라는 의미를 복희가 괘를 그리기 이전의 마음 상태, 마음자리로 상정하였다. 진단은 역학의 진리를 추구하려면, 문왕이나 주공, 공자의 말이 아니라 복희씨의 마음자리로 나아가야만 그 진리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30) 또 진단은 선천이라는 용어를 직접 도출하면서, 하나의 음과 하나의 양이 섞이고, 이러한 섞임이 32개의 음과 32개의 양이 섞이는데 이르러 64괘를 형성하는 과정이 선천이라고 보았다.
옛사람들은 어떻게 역을 보았는가! 선천(先天)의 뭇 괘들은 처음에는 1음과 1양이 서로 섞이고, 다음에는 2음과 2양이 서로 섞이며, 수를 거듭하여 32음과 32양이 서로 섞이는 데 이르렀다.31)
『정역심범』의 이 내용은 그대로 소옹에 의해 수용된다. 소옹은 『황극경세』에서 “선천학을 높이고, 획전역을 회통함(尊先天之學, 通畫前之易)”을 자신의 역학 연구의 목적으로 제시한다.32) 이 문장에서 선천학이란 진단이 말하는 선천역이고, 획전역이란 진단이 말한 복희가 괘상을 획으로 그리기 이전의 마음자리를 의미한다. 소옹은 이러한 역학 연구의 목적을 통해, 『주역』 이전의 역, 즉 복희역의 원래적 구조인 선천역을 해명하려 한다.
소옹이 파악하고자 한 ‘복희역’은 『주역』이라는 책에 앞서 존재하는 것이다. 소옹이 파악한 선천역이란 복희가 괘획을 그림으로 그리기 이전의 마음 상태[畫前易]와 선천의 여러 괘들이 1음과 1양이 서로 섞여 32음과 32양이 서로 섞이는 데 이르는 것임을 파악해, 괘획으로 그리는 상태[畫卦]까지의 과정에 해당한다.33)
이 과정에서 복희가 획으로 괘를 그리기 이전의 마음 상태를 두고 소옹은 “선천의 학은 심법”이라고 규정한다.34) 당연히 소옹이 “선천의 학은 심법”이라고 주장한 것은 진단의 선천역에 대한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해 이원국은 진단이 불교 선종(禪宗)의 “唯心이 法”이라는 관점을 수용하고, 전통 역학(易學)의 음양 관념과 도가와 도교의 다양한 이론을 수용하여 선천학(先天學)을 수립하는데, 이때 선천학을 심법(心法)으로 규정한다.35)라고 밝히고 있다. 이원국의 분석은 타당하다. 진단의 『정역심법』에서는 선불교의 개념과 용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영향으로 복희의 마음자리라는 용어가 도출되기 때문이다.36)
소옹의 이러한 선·후천에 대한 구분은 주희에 의해 수용된다. 주희는 선천역을 우주생성의 본원이자, 천지간에 존재하는 만물이 따라야만 하는 객관적인 법칙으로 파악하고, 자연의 도로 파악했다. 이에 반해 문왕·주공과 공자의 역은 자연의 도에 대해서 일종의 주관적 인식과 이해를 거쳐낸 것으로 인간의 실용적인 목적에 의해 조직되고 편성된 인위적 기호체계로 파악한다. 그러므로 문왕·주공과 공자의 역은 후천역이라는 것이다.
주희는 복희가 괘를 획으로 그리기 이전[畫前]의 상태에서 괘를 그리는[畫卦] 단계까지를 선천역이라고 규정하고 모든 존재자가 따라야 하는 자연의 도라고 본다. 반면에 문왕과 주공의 역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기호화되고 조직되며, 괘사나 효사처럼 말을 붙여 생활에 쓰일 수 있게 변화해낸 것이라고 본다. 즉, 문왕이 ‘乾, 元亨利貞’이라거나, ‘坤, 元亨利牝馬之貞’이라고 하는 괘사를 짓거나, 주공이 ‘初九, 潛龍 勿用’이라고 하거나, ‘初六, 履霜 堅氷 至’라고 하는 효사를 지은 것은 당시 발전된 생활에 필요에 따라 말을 덧붙인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문왕과 주공의 역이 占을 치는 데 중점이 있었으므로, 도덕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제기되자, 공자는 문왕과 주공의 말들에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이를 주희는 “문왕의 마음은 이미 저절로 복희의 너그럽고 막힘없는 마음과 같지 않게 되어 급하고 긴요한 것을 말하였고, 공자의 마음은 문왕의 관대한 마음과 같지 않아 또 급하고 긴요하게 도리를 말한 것”37)이라고 한다. 주희는 문왕과 공자의 후천역은 당시의 시대적 요구에 부합한 것으로 새롭게 역을 해석해내는 과정으로 파악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선·후천에 대한 개념적 구분은 자연의 도를 따라 획괘를 한 선천역과 인간의 일용적 목적과 시대적 상황에 따라 기호화되고 해석된 후천역으로 구분된다.
역학에서 선·후천 개념의 구분이 확정되고 나서, 선·후천 개념은 역사적 시간 개념으로 그 의미를 확대한다. 앞서 선·후천의 구분에 대해 논의하면서 시대적 구분이 드러났지만, 주희는 문왕과 주공을 기준으로 선천과 후천을 구분한다. 복희로부터 문왕에 이르는 시기는 선천의 세상이고, 문왕 이후는 후천의 세상이라는 것이다. 주희의 이러한 구분은 역학적으로는 두 가지 기준에 따른 것이다. 복희가 「하도」에 기초해 획괘한 자연역이 시대와 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개변되어야 하고, 그 개변은 문왕과 주공에 의해 진행되었기에, 문왕과 주공을 기준으로 인위역이라고 본다. 다른 하나는 「낙서」 때문이다. 주희는 「낙서」 역시 자연역의 일종으로 본다. 복희의 때에 하수에서 용마가 나왔고, 복희가 용마의 등에 그려진 그림을 기준으로 「하도」를 그려냈고, 「하도」가 팔괘를 그리게 한 기준이라는 점38)에서 용마의 등에 그려진 「하도」가 자연역이듯이, 우왕의 때 낙수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그려진 「낙서」의 그림도 자연역에 속한다는 것이다.39)
이상으로 살펴본 선천과 후천 개념의 탄생과 발전은 도교에 의해 선·후천 개념이 탄생되고, 이를 소옹이 역학으로 가져와 선천역과 후천역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선천과 후천 개념의 성립과 발전에서 지적할 것은 도교에서는 후천에서 선천을 추구하는 수련이론을 확립했다는 점이며, 역학에서는 후천 역의 원리나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선천역이 탐구되고 추구되었다는 점이다.
Ⅳ. 『태극도통감(太極道通鑑)』의 도상에서 선·후천
북송 초기의 이학자(理學者)들은 이러한 선·후천역에 대한 개념적 구분을 도상(圖象)에 적용한다. 소옹, 주돈이, 주희로 이어지는 북송 이학자들은 모두 도상을 사용해 후천에서 선천의 역학 원리를 해명한다. 이러한 역학의 연구 경향을 학계에서는 도서역(圖書易)이라고 지칭한다. 역학에서 선천과 후천, 선천과 후천을 도상을 통해 연구하는 것을 ‘선천학’이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선천학이란 「하도」와 「낙서」를 중심으로 한 도서역과 그것에 대한 해석들[象數]을 의미하고, 문왕의 후천역과 대비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도서역에 한정하여 선천학을 말할 때는 복희의 문자가 없는 네 가지 도상[無文字 四圖]을 중심으로, 첫째 복희가 ‘괘획을 하기 이전의 상태[畫前易]’와 둘째 ‘괘획은 하였으나 그것에 대한 언설이 없는 상태의 역[無文字易]’으로 구분한다. 전자는 「하도」를 파악하는 복희의 마음자리에 해당하고, 후자는 복희가 「하도」를 근거로 획괘하였지만 문자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문왕의 후천역은 「문왕팔괘차서도」와 「문왕팔괘방위도」로, 복희가 그린 괘와 도를 개혁(改革)하여 이미 이루어진 64괘와 이 괘들을 차서도와 방위도로 재구성하고, 괘와 효에 말을 덧붙이여 설명하면서 인간사의 일들에 적용한 역을 의미한다.
주희는 “소옹의 설에 의하면 선천이란 복희가 그린 역이고, 후천이란 문왕이 연역한 역이다. 복희의 역은 애초에 문자가 없이, 하나의 도상(圖象)에 상(象)과 수(數)가 깃들어 있을 뿐이지만 천지만물의 이치와 음양 시종의 변화가 갖추어져 있다. 문왕의 역은 바로 지금의 『주역』으로 공자가 이를 풀어 『역전』을 지은 것이 이것이다. 공자는 문왕의 역에 말미암아 역전을 지었기 때문에 공자가 논한 것은 당연히 문왕의 역을 위주로 하였다.”40) 라고 한다. 주희의 구분에 의하면 복희의 역은 선천역이 되고, 문왕과 공자의 역에 대한 연역은 후천역이 된다.
특히 주희는 『주역본의』의 첫머리에 아홉 개의 도상을 싣고 있다. 이 도상들은 이는 주희가 파악한 선천역에서 후천역으로 이어지는 易學史이다. 이 도상들은 「河圖」, 「洛書」, 「伏犧8卦次序圖」, 「伏犧8卦方位圖」, 「伏犧64卦次序圖」, 「伏犧64卦方位圖」, 「文王8卦次序圖」, 「文王8卦方位圖」, 「卦變圖」로 이루어져 있다.
이 도상들에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선천과 후천의 구분이다. 주희는 「하도」와 「낙서」는 ‘자연의 역’, 즉 선천역으로 이해한다. 「하도」와 「낙서」는 복희나 우임금이 그려낸 것이 아니라, 용마나 신령스러운 거북의 등에 그려진 무늬 배열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이 무늬 배열은 복희가 그 상과 수를 기초로 ‘畫八卦’를 하거나(「하도」) 우임금이 ‘成九類’를 하는 근거이다(「낙서」). 즉 상과 수의 근거이자 역을 짓게 되는 근거라는 점이다. 이를 ‘畫前易’이라고 부른다.
다음의 단계는 복희가 「하도」의 오묘한 자연의 도상을 보고 획을 그린 역으로 「복희8괘차서도」, 「복희8괘방위도」, 「복희64괘차서도」, 「복희64괘방위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를 ‘문자가 없는 네 그림[無文字四圖]’이라고 부른다. 다음으로는 문왕이 복희가 그린 괘도를 연역하여 인간 일상에 적용한 것으로, 「문왕8괘차서도」와 「문왕8괘방위도」가 이에 해당한다. 이것이 지금의 『주역』으로 후천역에 속한다. 그리고 공자가 문왕의 역을 기초로 『역전』을 짓고 괘 자체의 변화로 새로운 괘가 이루어진 것을 설명하는 「괘변도(卦變圖)」를 말하였는데, 이 역시 후천역에 속한다.
송대 도서역에서 도상들의 선·후천을 정리하였으므로, 이제 도상들을 가지고 말해보자. 『태극도통감(太極道通鑑)』의 도상 중에 「복희시대팔괘도」와 「문왕시대팔괘도」는 송대 도서역의 도상들과 비슷하다. 이 중에서 먼저 「문왕시대팔괘도」와 역학에서 「문왕팔괘도」를 비교해 보자. 역학에서 「문왕팔괘도」는 「설괘전」 제5장 “帝出乎震, 齊乎巽, 相見乎離, 致役乎坤, 說言乎兌, 戰乎乾, 勞乎坎, 成言乎艮.”의 내용을 도상으로 그린 것이다. 이 내용을 도상으로 그린 것에 대해 주희는 『주역본의』에서 소강절이 한 말을 끌어와 “이 괘(卦)의 자리는 바로 문왕(文王)이 정한 것이니, 이른바 후천(後天)의 학(學)이란 것이다.”라고 한다.41) 주희의 이 말은 8개의 괘를 왜 이렇게 배치하였는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여42) 이에 대한 이유로 괘의 자리를 문왕이 정한 것이라는 소옹의 말을 끌어와 해명한 것이다.
송대 도서역이 『주역』의 근거를 찾기 위해 탄생하였고, 이를 역학 발전사의 흐름으로 재정리되면서, 선천역과 후천역의 구분을 탄생시켰다면, 『태극도통감』은 『전경』의 선후천 개념을 역학의 도상으로 해명하면서 종교적 의미에서 후천개벽을 설명하기 위해 역학의 도상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도서역에서 말하는 선후천 개념과 다르다. 『태극도통감』이 선천과 후천을 설명하기 위해 역의 도상을 차용하지만, 그 의미는 역학의 의미를 넘어서 종교적 지평에서 새롭게 해석된 도상이다. 『태극도통감』의 선후천 개념과 도상은 천지의 도수를 조정하여 후천개벽을 열어 낸 공사들의 결과물로 이해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송대 도서역의 도상은 천지의 도수와 관련된 설명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태극도통감』의 도상과 차이를 보인다. 『태극도통감』의 도상은 상제에 의해 천지의 도수가 조정되고 그에 따른 신들을 봉(封)하여 준 신학적 성격의 도상이다. 이 때문에 『태극도통감』의 매 도상과 그에 대한 설명에서는 역법(曆法)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이는 『태극도통감』이 상제의 공사와 관련된 도상임으로 나타내는 종교적 의미의 도상임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태극도통감』의 도상은 역학의 도상과 의미하는 바가 전혀 다르다는 점을 전제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우선 이러한 전제로부터 도상들을 설명하는 논의를 진행하고, 이 의미에 대해서는 맺음말에서 정리하고자 한다.
『태극도통감』의 「문왕시대팔괘도」의 도상과 그 설명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도상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상의 왼쪽은 그 명칭을 의미하는 “문왕시대는 신을 땅에 봉하였다[文王時代 神封於地]”라는 문장을 표제어로 삼고 있다. 이 표제어의 문장에서 “奉”은 “封”의 오기이다. 이하 도상의 표제어에 있는 “奉”도 모두 “封”의 오기이다. 왜냐하면 상제님은 절대 신격이기에 우주의 운수를 바꾸면서, 해당 시대에 맞는 신을 천과 지, 인에게 봉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43)
도상의 가운데에는 태극 문양을 중심으로 사정(四正)인 북남동서에는 감괘, 리괘, 진괘, 태괘를 배당하고, 사유(四維)인 동남방위에는 손괘, 동북방위에는 간괘, 서남방위에는 곤괘, 서북방위에는 건괘를 배당하고 있다. 역학에서 사정괘(四正卦)는 한나라 시기 역학과 역법(曆法)이 결합되고 나서, 주천도수를 상정하거나 24절기의 운행을 설명할 때, 중심축이 되기에 그 매우 중요한 방위이자 자리로 이해된다.44) 그러나 송대 이학자들은 한나라 시기 역학을 상수학으로 규정하며, 한나라 학자들이 역법과 결합된 것을 비판적으로 본다. 송대 이학자들은 역학을 의리적으로 해석하면서, 역학과 역법을 분리한 상태에서 역학의 원리를 추구하기 위해 도서역이라는 분야를 발전시킨다. 이는 이학자들이 역학을 통해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해명하려고 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후천역인 『주역(周易)』의 원리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선천역을 추구한 것이다.
그리고 팔괘에는 각각의 숫자가 병기되어 있다. 도상의 오른쪽에는 “熱陰 夏, 萬物自生, 夏運火神司命, 水火旣濟, 東北爲上, 地尊時代, 西南爲下”라는 문장45)으로, 이 도상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넷째는 아랫부분에 이 도상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이 붙어 있다.
도상의 오른쪽 문장들의 의미를 풀이하자면, 문왕시대를 상징하는 팔괘도는 뜨거운 여름의 세상에 해당한다.[여름:熱陰] 여름은 만물이 자생하는 시기다[夏, 萬物自生]. 이 세상의 주천 도수의 운행은 화신이 명을 맡고 있다.[夏運火神司命] 수(水)를 상징하는 감괘와 화(火)를 상징하는 리괘가 위아래에 위치하여, 수화기제의 괘상[ ]을 이룬다.[水火旣濟] 동북방위에 위치한 괘상은 간괘이고, 서남방위에 위치한 괘는 곤괘인데, 동북방위가 위가 되고, 서남방위가 아래가 된다.[東北爲上, 西南爲下] 이 도상은 지존시대이다.[地尊時代]
‘지존시대’라는 규정은 표제어에 해당하는 “문왕시대에는 신을 땅에 봉하였다[文王時代 神封於地]”46)라는 문장과 결합하면, 그 의미가 분명하다. 그리고 도상의 아래에는 도상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도상은 문왕의 시대를 말하는 것이고, 문왕의 시대는 24절기 중에서 춘분의 괘위(卦位)를 기준으로 괘의 자리를 나누었기에 건곤괘는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리감괘가 정위에 위치하고, 진태괘가 용사(用事)가 된 도상의 구조를 설명한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바르게 합한 짝은 리괘와 감괘 뿐이다. 리괘와 감괘는 화와 수를 상징하므로 이 도상에서는 이들이 상극관계이지만 화의 위에 수가 자리하므로, 수는 조화롭고 화는 타올라 리화가 왕(旺)의 자리에 거하기에 화신(火神)이 사명을 맡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세상의 구조에서 문제는 천지가 자리를 잃고 음양이 어지럽게 섞이게 되며, 이 결과로 선과 악이 혼동되어 군자의 도는 소멸하고 소인의 도는 자라게 된다. 소인의 도가 횡횡하면, 대도가 숨게 되니, 노자와 석가와 같은 성인이 덕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아 황극(皇極)이 텅 비게 되었다고 말한다.47)
이 도상과 설명에서 그 의미가 불분명한 문장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水火旣濟”와 “地尊時代”라는 문장이다. 「문왕시대 팔괘도」의 도상에서 정위(定位)에 해당하는 북과 남의 방위에서 바르게 합하여 짝을 이룬 괘상은 감괘와 리괘뿐이다. 감괘와 리괘를 중첩하면 수화기제괘[ ]가 된다.
수화기제괘가 정위의 자리에 거처하는 것이 왜 “地尊時代”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역학의 의미에서 수화기제괘가 의미하는 바는 감괘와 리괘가 합하고 사귀어 만물을 생성하는 때로 음양의 공을 이룬 것에 해당한다.48) 만물이 생하였으므로, 만물을 길러야 하는 일들이 필요하다. 만물을 기르는 역할을 하는 것은 곤괘에 해당한다. 이를 「설괘전」 5장 경문에서는 “致役乎坤”이라고 말한다. “致役乎坤”은 “곤에서 일을 맡긴다”라는 의미이고, 『주역본의』에서 주희는 “곤(坤)은 땅이니, 만물(萬物)이 모두 곤에서 길러짐을 이루므로 곤(坤)에 일을 맡긴다”49)라고 풀이한다.
만약 이와 같은 의미로, 수화기제와 지존시대를 말한 것이라면, 「문왕시대팔괘도」는 괘상의 배열이 북남으로 수화기제의 괘가 배당되어 만물이 생성하며, 만물을 길러 완성하는 역할을 곤(坤)이 담당하기에 지존시대로 해석할 수 있다. 즉 곤을 중심으로 한 시대라는 의미이다.
둘째는 “東北爲上, 西南爲下”의 의미이다. 동북 방위에 해당하는 괘는 간괘이고, 서남 방위에 해당하는 괘는 곤괘이다. 동북 방위의 간괘가 위가 된다는 말의 의미는 지축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23도 기울어져 자전하기에 동북 방위가 위쪽이 된다는 의미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지축의 기울기로 이루어진 땅의 형태가 “東北爲上, 西南爲下”의 구조가 된다. 또한 간괘와 곤괘를 중첩하면, 산지박괘[䷖]가 된다. 박괘는 효의 구성이 초효에서 오효까지 음효이고, 상효만 양효이다. 이는 조만간 음에 의해 양이 소멸되는 상황을 나타낸다. 이를 기의 흐름으로 보면 변화를 맞딱드린 상태이다. 만약 이러한 해석이 가능하다면, 후천의 개벽을 예시하는 도상이 된다.
그리고 이 도상에서 지적할 것은 ‘坎一’, ‘艮八’처럼 사정과 사유에 배당된 괘들에 숫자가 각기 배당되어 있다는 점이다. 「문왕시대 팔괘도」와 역학에서의 「문왕팔괘도」는 사정(四正)과 사유(四維)에 팔괘를 방위에 따라 배치한 것에서 차이가 없다. 「문왕팔괘도」에는 「문왕시대팔괘도」처럼 팔괘에 숫자의 조합은 없다.
그렇다면 팔괘에 숫자 조합이 있는 것은 「문왕시대 팔괘도」만의 특징인가? 그렇지는 않다. 「문왕팔괘방위도」는 한나라에서부터 도상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한나라 중기 이후에는 다양하게 변주된다. 한나라 시기 『역위건착도(易緯乾鑿度)』에서는 『대대례기(大戴禮記)』의 「명당편(明堂篇)」의 명당도(明堂圖)의 숫자를 가져와 사정과 사유의 팔괘방위와 결합한다. 그러면서 이 책에서는 “四正四維皆合於十五”라고 말하면서, 이는 구궁(九宮)의 수와 합치된다고 말한다. 이를 도상의 변화로 말하면 아래와 같다.
『역위건착도(易緯乾鑿度)』의 「역수구궁도」와 「문왕시대 팔괘도」의 차이점은 도상의 가운데를 음양의 결합상태를 의미하는 태극으로 그렸다는 점이다.(이 문제는 차후의 연구과제로 남겨 둔다.)
다음으로 「복희시대 팔괘도」와 「복희팔괘도」를 비교해 보자. 「복희팔괘도」는 소옹이 그린 것이다. 소옹은 「계사상」 11장에서 말한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이 生八卦.”를 태극에서부터 팔괘의 생성 과정으로 파악해 이를 도상으로 그리고 이를 「선천팔괘차서도」라고 불렀다. 이 도상을 다시 둥글게 표현하여 「복희팔괘방위도」를 완성한다. 소옹이 그린 「복희팔괘차서도」와 「복희팔괘방위도」는 선천도라고 불리게 되었고, 「문왕팔괘방위도」는 후천도로 불리게 된다. 소옹은 「계사상」 11장의 문장을 태극에서 일음일양으로, 일음일양에서 태음, 소양, 소음, 태양의 사상으로, 사상에서 건태리진손감곤의 팔괘로 전개해 간다. 소옹이 「복희팔괘차서도」를 그리는 순서는 「계사상」 11장의 “태극생양의”의 문장을 일음일양으로 그려낸다. 일음일양이 다시 각각 일음일양을 생성하면 태음, 소양, 소음, 태양의 사상이 된다. 사상에서 다시 일음일양을 생성하면, 팔괘가 된다는 것이다.50)
소옹은 「복희팔괘차서도」를 둥글게 배치하여 「복희팔괘방위도」를 그리는데, 건괘를 남방 정위에 배치하고 곤괘를 북방 정위에 배치한다. 그리고 건괘를 포함해 건괘 계열의 네 개 괘를 왼쪽에 배치하면서 이는 천체가 좌선(左旋)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곤괘를 포함해 곤괘 계열을 네 개 괘를 오른쪽에 배치하면서, 이는 땅이 우선(右旋)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이렇게 팔괘를 배치하고 이를 「복희팔괘방위도(伏羲八卦方位圖)」라고 불렀다.
위의 도상 아래의 문장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소옹이 「복희팔괘도」를 그린 근거는 「설괘전」 3장의 경문 “天地定位, 山澤通氣, 雷風相薄, 水火不相射.”라고 밝히고 있지만, 왜 건이 남방 정위에, 곤이 북방 정위에 위치하며, 감괘가 서방 정위에, 리괘가 동방 정위에 위치해야 하는지는 밝히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주희는 태극에서 양의로, 양의에서 사상으로, 사상에서 팔괘로 생성되어 갈 때, 건과 곤을 정방위에 위치하게 하고 나머지 각 괘들을 순차적으로 배치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 말은 위의 도상 오른쪽의 차서도에서 건1, 태2, 리3, 진4, 손5, 감6, 간7, 곤8의 순서가 「복희팔괘방위도」의 배치 순서라는 것이다.51)
그리고 주희는 이러한 괘 배열은 자연이연(自然而然)한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자 가장 정확한 원칙이라고 강조한다. 이 원칙은 복희에 의해 발현되었으며, 이 도상 역시 복희로부터 전수된 것이라고 말한다. 주희의 이러한 학설에 따라 복희가 전한 이들 도상은 선천도 혹은 선천역이라 불리고, 문왕의 도상들은 후천도 혹은 후천역이라고 불리게 된다.
이제 『태극도통감』의 「복희시대 팔괘방위도」의 도상과 그 설명 내용을 가져와 보자. 이 도상도 그 구조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도상의 왼쪽은 그 명칭을 의미하는 “복희시대는 신을 하늘에 봉하였다[伏羲時代 神封於天]”라는 문장을 표제어가 있고, 도상의 가운데에는 태극 문양을 중심으로 사정(四正)인 북남동서에는 곤괘, 건괘, 리괘, 감괘를 배당하고, 사유(四維)인 동남방위에는 태괘, 동북방위에는 진괘, 서남방위에는 손괘, 서북방위에는 간괘를 배당하고 있다. 그리고 팔괘에는 각각의 숫자가 병기되어 있다. 도상의 오른쪽에는 “本 春, 萬物自生, 春運木神司命, 天地否卦, 西南爲上, 天尊時代, 東北爲下”라는 문장으로, 이 도상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넷째는 아랫부분에 이 도상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이 붙어 있다.
도상의 오른쪽 문장들의 의미를 풀이하자면, 복희시대를 상징하는 팔괘도는 봄의 세상에 해당한다.[본:春] 봄은 만물이 자생하는 시기다[春, 萬物自生]. 이 세상의 주천 도수의 운행은 목신이 명을 맡고 있다.[春運木神司命] 천(天)를 상징하는 건괘와 땅(地)을 상징하는 곤괘가 위아래에 위치하여, 천지비괘의 괘상을 이룬다.[天地否 ] 이 세상은 서남방위가 위가 되고, 동북 방위가 아래가 된다.[西南爲上, 東北爲下] 이 도상은 천존시대이다.[天尊時代]
그리고 도상의 아래에는 이를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이 도상은 복희시대를 말하는 것이고, 24절기 중에서 동지의 괘 자리이기에 건곤괘가 정방위에 위치하며, 감리괘가 일을 맡는다. 감괘와 리괘는 수와 화를 상징하고, 감리괘가 동서로 정방위에 위치하여 수화상극의 형상을 이룬다. 이러한 수화상극이 오래갈 수 없어, 진괘가 동궁에 자리하니 진목이 왕의 자리에 거처하고, 이는 목신이 사명을 맡게 된다. 이 도상의 구조는 천지가 정위(定位)하고 음양이 상배(相配)하여 선악이 분명하게 경계 지워진 시대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자라나고 소인의 도는 사그라들어 풍속이 순후하여 전 세계가 성인의 범위에 들게 된다. 이 세상은 천지에 무극대도가 행해지고 황극이 가운데 들어있게 된다.52)
이 도상과 그 의미를 설명하는 내용은 분명하여 별달리 설명할 것이 없다. 이 도상에서 천지는 제 자리에 위치하였고, 음양이 서로 짝을 이루었기에, 이러한 천지의 구조를 따르면 군자의 도가 자라며, 무극대도가 세상에 행해지는 조화로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주희가 자연이연(自然而然)하는 도상의 모습이라는 표현과 다르지 않다. 주희가 복희의 역을 자연역이라고 지적하듯이, 이 도상의 구조는 인위적인 형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왜 「정역시대 팔괘도」가 필요하며, 「복희팔괘도」는 선천에 해당하는가? 이것이 대순사상의 핵심 내용이 될 것이며, 이 문제를 해명하여야 후천개벽의 당위가 설명될 것이다.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정역시대 팔괘도」를 가져와 보자. 『태극도통감』의 「정역시대 팔괘도」의 도상과 그 설명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도상의 왼쪽은 그 명칭을 의미하는 “정역시대는 신을 인간에 봉하였다[正易時代 神封於人]”라는 문장의 표제어가 있고, 도상의 가운데에는 태극 문양을 중심으로 사정(四正)인 북남동서에는 건괘, 곤괘, 간괘, 태괘를 배당하고, 사유(四維)인 동남방위에는 손괘, 동북방위에는 감괘, 서남방위에는 리괘, 서북방위에는 진괘를 배당하고 있다. 그리고 팔괘에는 각각의 숫자가 병기되어 있다. 도상의 오른쪽에는 “哥乙 秋, 萬物成熟, 秋運金神司命, 地天泰卦, 西南爲上, 人尊時代, 東北爲下”라는 문장으로, 이 도상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넷째는 아랫부분에 이 도상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이 붙어 있다.
도상의 오른쪽 문장들의 의미를 풀이해 보자. 정역시대를 상징하는 팔괘도는 가을의 세상에 해당한다.[가을:哥乙] 가을은 만물이 성숙하는 시기다[秋, 萬物成熟]. 이 세상의 주천 도수의 운행은 금신이 명을 맡고 있다.[秋運金神司命] 땅(地)을 상징하는 곤괘와 천(天)를 상징하는 건괘가 위아래에 위치하여, 지천태괘의 괘상을 이룬다.[地天泰 ] 이 세상은 서남방위가 위가 되고, 동북 방위가 아래가 된다.[西南爲上, 東北爲下] 이 도상은 인존시대이다.[人尊時代]
그리고 도상의 아래에 있는 설명을 보면, 이 도상은 24절기 중에서 하지(夏至)의 괘 자리이므로, 곤건괘가 정방위에 위치하며, 간태괘가 동서 방위에 위치하면서 상생의 관계에 놓인다. 그래서 서방에 해당하는 태금이 왕의 자리에 거하니 금신이 사명을 맡게 된다. 또 리괘가 곤괘의 위에 위치하고, 감괘는 간괘의 위에 위치하기에 수화가 서로 해치지 않아 상극이 이치가 전혀 없는 상태이다. 이 구조는 「설괘전」 3장의 경문 “天地定位, 山澤通氣, 雷風相薄, 水火不相射. 八卦相錯”의 내용과 같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것은 복희역과 같아서 극하는 것이 없는 이치가 없어 더욱 태평한 운수이다. 음양이 짝을 얻고 오행이 상생하며, 상하가 서로 고요하고 안팎이 편안하여 권력을 쟁탈하는 일도 없는 평화로운 세계이다.53)
상제께서 행한 천지공사로부터 전개될 세상은 인존시대이다. 인존시대의 후천은 상극이 전혀 없는 상생의 시대이다. 따라서 「정역시대 팔괘도」는 후천의 세계에 해당한다. 그런데 『태극도통감』의 「정역시대팔괘도」를 설명하는 내용에서 “天地定位, 山澤通氣, 雷風相薄, 水火不相射. 然後八卦相錯, 旣本同羲易而無克之理, 則尤其泰運也.”라는 문장은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소옹은 「설괘전」 3장의 경문인 “天地定位, 山澤通氣, 雷風相薄, 水火不相射.”을 근거로 「복희팔괘방위도」를 그렸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주희는 「복희팔괘방위도」의 괘배열은 자연이연(自然而然)한 원칙에 부합한다고 해석하였다. 다시 말해, 역학의 「복희팔괘도」를 그리는 근거가 되는 문장과 「정역시대 팔괘방위도」를 설명하는 문장은 동일하게 「설괘전」 3장이다. 이는 「정역시대 팔괘도」와 「복희팔괘도」가 도상에서 다름에도 동일한 문장을 근거로 삼는 점이다.
이는 앞에서 제기한 질문 「복희팔괘도」의 도상이 의미하는 바는 천지가 정위(定位)하고 음양이 상배(相配)하여, 군자의 도가 자라서 세계가 성인의 범위에 들어 무극대도가 행해지는 세상인데, 왜 「정역시대 팔괘도」의 도상이 구현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연관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도상적으로 「정역시대 팔괘도」와 「복희팔괘도」를 비교하면, 아래의 그림에서 보듯이 방위에서 괘 배열이 다름에도 「설괘전」 3장의 내용을 가져와 말하면서, 도상의 근본은 복희역과 같다고 말한다.
8괘의 괘 배열과 방위가 「복희팔괘방위도」와 「정역팔괘도」가 다르긴 하지만. 두 도상은 “天地定位, 山澤通氣, 雷風相薄, 水火不相射. 然後八卦相錯”의 문장 내용과 일치한다. 다시 말해, 두 도상에서 천지를 상징하는 건괘와 곤괘는 남과 북, 북과 남의 정방위에 위치한다. 이것이 “天地定位”에 해당한다. 두 도상에서 산과 연못을 상징하는 간괘와 태괘는 서로 짝이 되어 마주 선 방위에 위치한다. 이것이 “山澤通氣”이다. 두 도상에서 우레와 바람을 상징하는 진괘와 손괘는 서로 짝이 되어 마주 선 방위에 위치한다. 이것이 “雷風相薄”이다. 두 도상에서 수와 화를 상징하는 감괘와 리괘는 서로 짝이 되어 마주 선 방위에 위치한다. 이것이 “水火不相射”이다.
이렇게 보면, 「복희시대 팔괘방위도」와 「복희팔괘방위도」는 괘배열이 다르고, 괘들이 위치한 방위가 다르다. 「복희팔괘방위도」에서 사정방에서 남북 정방위에 해당하는 괘배열은 건과 곤괘이며, 동서 정방위에 해당하는 괘들은 리와 태괘이다. 또 사유방위에서 동북방위와 서남방위에 해당하는 괘배열은 진과 손괘이며, 동남방위와 서북방위에 해당하는 괘배열은 태와 간괘이다.
「정역팔괘도」의 남북 정방위의 괘배열은 곤과 건괘이며, 동서 정방위의 괘배열은 간과 태괘이다. 또 사유방위에서 동북방위와 서남방위에 해당하는 괘배열은 감과 리괘이며, 동남방위와 서북방위에 해당하는 괘배열은 손과 진괘이다.
이렇게 사정과 사유의 방위에서 괘배열이 다름에도, 「설괘전」 3장의 경문을 공유한다. 심지어 「정역시대팔괘도」를 설명하는 내용에서 “天地定位, 山澤通氣, 雷風相薄, 水火不相射. 然後八卦相錯, 旣本同羲易而無克之理”라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의 의미를 해석하면, 도상학적으로 다름에도 「설괘전」 3장의 경문을 공유한 이유를 해명할 수 있다.
「복희시대 팔괘방위도」와 「정역팔괘방위도」는 도상학적으로 다르다. 첫째는 남북정위의 괘상에서 「복희팔괘도」는 건괘와 곤괘를 중첩하여 대성괘를 만들면 천지비괘[ ]가 된다. 천지비괘는 음양의 두 기가 교류하지 못하는 막힌 것을 상징한다.54) 반면에 「정역시대팔괘도」는 곤괘와 건괘를 중첩하여 대성괘를 만들면 지천태괘[ ]를 이룬다. 태괘는 음양이 교류하여 편안한 상태를 상징한다.55) 이러한 변화를 김일부의 정역에서는 오호라, 금화정역엔 비가 가고 태가 오도다56)라고 말한다. 둘째는 「정역팔괘도」와 「복희팔괘도」에서 8괘 중에서 짝을 이루는 괘상(괘형)이 서로 반대의 형태를 갖는다. 건☰과 곤☷, 리☲와 감☵, 진☳과 손☴, 태☱와 간☶은 음양이 서로 반대가 되는 괘형이다. 역학에서 괘를 이루는 각효의 음양이 반대인 괘들끼리 짝을 맺는 것을 전도괘(顚倒卦), 도전괘(倒顚卦), 혹은 반대괘(反對卦)라는 명칭으로 부른다.57) 「정역팔괘도」와 「복희팔괘도」는 모두 반대괘로 짝이 지워져 있다. 이 반대괘들의 짝도 같다.
다만 위의 표에서 보이듯이, 사정위(四定位)와 사유위(四維位)의 8개 방위에서 짝이 되는 괘들의 괘배열이 다르다. 특히 「복희팔괘방위도」의 사정위의 괘들 중에 북남 방위는 곤건괘가 배당되고, 서동 방위는 감리괘가 배당되어 “천지정위, 음양상배”한 구조이다. 그러나 건곤괘를 중첩하면 비괘가 되고 감리괘는 수화가 상극하는 기제괘나 미제괘가 된다. 비괘는 건괘와 곤괘의 형태를 이루어 음양이 교류하지 못하는 것에 해당하고, 기제나 미제괘는 오행에서 수화가 상극하는 것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복희팔괘방위도」는 음양과 오행에서 조화롭지 못하거나 상극의 관계에 해당한다.
반면에 「정역시대팔괘도」는 사정위의 괘들 중에 북남 방위는 건곤괘가 배당되고, 서동 방위는 태간괘가 배당된다. 감리괘는 동북방과 서납방의 방위에 배당되어 사정방위에서 물러나 있다. 「정역시대팔괘도」에서 중심이 되는 사정의 괘상들은 지천태괘를 이루어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졌으며, 감리는 동서방의 자리에 물러나 있으므로 수화의 상극이 지배하지 않는다.
이를 「정역시대 팔괘도」에서는 “陰陽得配, 五行相生, 上下相靜, 內外寧逸”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도상의 구조는 “어떠한 상극의 이치도 없는(全無相克之理)” 세상을 표현하게 된다. 셋째는 「복희시대 팔괘방위도」는 ‘황극’이 이 도상의 가운데로 들어가 있지만, 「정역시대팔괘방위도」에는 ‘황극’이 없다. ‘황극’이라는 용어는 『서경(書經)』 「홍범(洪範)」의 “建用皇極”에서 나타난다. 황극에 대한 이해는 『주례(周禮)』 「천관총재(天官冢宰)」의 “設官分職 以爲民極”의 ‘民極’과 대비적으로 이해되어왔다. 황극은 천도를 계승해 기준[繼天立極]을 세운 성인이나 왕의 자리를 의미한다. 「복희시대 팔괘방위도」는 성인인 왕에 의해 기준이 세워진 세상이다. 반면에 「정역시대팔괘방위도」에는 황극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는 성인인 왕에 의해 제도와 기준이 세워지는 세상이 아닌 모든 사람이 동등한 세상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58)
Ⅴ. 맺음말
대순진리회의 경전인 『전경』에는 ‘선천’과 ‘후천’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상제께서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 」.59)
『전경』의 내용에 따르면, 상제께서 선천의 상극을 바로 잡는 삼계공사를 행하시고, 이 삼계공사의 결과로 후천 세계의 상생 도가 구현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상제의 삼계공사는 신명계에서 행한 일이지만, 이는 후천 세계에서는 상생의 도가 구현되는 선경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내용에 따르면 선천과 후천이 명확하게 대비되는데, 선천은 상극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천지가 상도를 잃어 재화와 참혹이 발생하는 시대이다. 이는 원한이 삼계를 채우는 결과로 이어진다. 반면에 상제께서 행하신 삼계공사를 통해 구현될 후천세계는 신명을 조화하여 원한을 풀어 상생의 도가 구현되어 실현되는 선경의 세계이다.
상제께서 상극의 선천 세계를 상생의 후천 세계를 삼계공사를 통해 구현한다. 삼계공사는 “선천 세계에는 모든 사물이 도의(道義)에 어그러지고 원한이 맺히고 쌓여 그것이 마침내 삼계의 재앙으로 가득 차 진멸의 위기에 처한 세계”60)를 구제하는 법리로서 제시된 것이다. 그 공사의 구체적으로 천지의 도수(度數)를 바로 잡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천지의 도수를 바로잡는다’라는 말의 의미는 천지의 상도를 바로잡는 일과 맥이 닿아 있다. ‘천지가 상도를 잃었기’에 상극이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천지의 상도를 바로 잡는 일은 천지의 도수를 바로 잡는 일이 된다.
천지의 도수를 바로 잡아 구현한 후천세계는 「정역시대 팔괘방위도」의 도상으로 구현되었다. 『전경』의 선·후천 개념을 도상으로 구현한 『태극도통감』의 「정역시대 팔괘방위도」는 그 내용이 지천태괘의 음양이 조화롭게 교류하는 세계이자, 천지사방을 상징하는 괘상들이 대대의 관계를 이루며, 음양이 서로 쏘지 않는 세상이자 오행이 상생하는 세상이다.
반면에 『태극도통감』의 「복희시대 팔괘방위도」는 남과 북의 정방위에 건곤괘가 배치되었으나 천지비괘의 형상을 이루어 음양이 반목하는 형상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세상이 된다. 「문왕시대 팔괘방위도」는 8괘 중에 사정의 정방위에 위치한 괘도 없거니와 수화기제의 형상을 나타내 만물을 생성하지만, 다른 괘들은 배제된 체 곤괘만이 만물을 기르는 치우친 세계상으로 나타내, 음양이 조화롭지 못하고 오행이 상극하는 세상이 된다. 따라서 「복희시대 팔괘방위도」와 「문왕시대 팔괘방위도」는 음양과 오행에서 상극의 원리에 따라 작동되는 세계에 해당하며, 「정역시대팔 괘방위도」만이 음양의 조화와 상생의 원리가 구현된 세계에 해당한다. 따라서 후천개벽 세상은 「정역시대 팔괘방위도」의 원리에 의해 작동되는 세계에 해당한다.
이렇게 보면, 역학의 선천과 후천은 송대 도서역학이 발전하면서, 역학의 원리나 『주역』의 내용을 재해석하면서 그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면에 『태극도통감』의 선천과 후천은 상제가 행한 공사의 권능에 따라 구현된 세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역학의 선천과 후천을 차용한 것을 넘어, 상제께서 우주의 운수를 조정하면서 해당 시기 우주의 상황에 맞게 신을 봉(封)하는 신학적 도상이다. 대순진리회의 도상학적 선천과 후천의 구분은 단순히 역학의 관점이 아니라, 상제의 공사에 따라 구현된 세상의 원리들과 그 역사를 표현한 신학적 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우당의 <훈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복희 선천에는 하늘에다 봉신(封神)을 하였고, 문왕 때에는 모든 운수가 땅에 있어서 땅에 봉신을 하였다. … 앞으로는 정역시대다. 정역시대에는 모든 운수가 사람에게 있어서 사람에게 봉신을 한다. 앞으로는 신봉어인(神封於人)한다. ‘상통천문하고 하달지리하고 중찰인사’라고 도통주(道通呪)에 있듯이, 앞으로는 사람이 할 것이다. 쉽게 말해서 년·월·일·시·분·초·각까지 전부 사람이 맡는다. 천지를 다 운용해 나가는 것을 사람이 한다.61)
위의 <훈시>의 말씀에 따르면, 상제께서 공사를 행하고 봉신(封神)한 역사가 바로 『태극도통감』의 도상들이기 때문에, 『태극도통감』의 도상들은 상제의 공사와 그에 따라 일어난 우주와 그에 해당하는 신들을 봉하는 내용의 도상으로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