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한국인의 해외 이주는 근세의 역사적 계기로 19세기 후반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개인적 계기로 인한 이주까지 약 150여년을 이어져왔다. 현재 재외동포는 국내 인구 대비 비교적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재외 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2022 개정)”1)에 따르면 “출생에 의하여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했던 사람(대한민국정부 수립 전에 국외로 이주한 동포를 포함한다)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사람, 제1호에 해당하는 사람의 직계비속(直系卑屬)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사람”을 모두 재외 동포로 본다. 후자의 경우, 한국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거의 없는 제외 동포 3, 4세 역시 외국국적이지만 동포로 보는 것이다. 현지에서의 혼인 및 출산을 통한 세대교체가 일어나면서 한인으로서의 동질감이나 정체성은 많이 약해졌다고 할 수 있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고국과 이주국 사이에서 혼종화된 새로운 집단적 정체성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민 1세대의 경우 국권 피탈과 해방의 시기에 정치적 상황으로 인한 강제 이주의 비율이 높았기에 본국 지향적 성향을 가지고 민족 정체성을 비교적 유지하였다. 국내에서도 근대화과정에서 나라를 잃었던 과거로 민족사에 대한 강조가 강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급격한 글로벌화가 진행되고 민족, 국가, 영토의 제한을 넘어서는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이나 민족, 인종, 국가에 관계없이 전 인류를 하나로 여기는 ‘코스모폴리타니즘(Cosmopolitanism)’ 과 같은 개방적 개념들을 화두로 한 논의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시대다. 민족 문화의 원형이나 민족적 정체성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인식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막연히 혈통을 강조하거나 근거 없는 자긍심을 주입하는 것보다는 재외동포들이 갖는 혼종적 정체성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한국의 언어, 문화, 역사를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2)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 교육이 중요한 연구의 대상이 되면서 재외동포 학습자를 대상으로 한 문화 교육 방안에 대한 연구3)들이 이루어졌다. 다만 한국어 교육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연구들이 대부분이므로 문화를 한국어 학습 동기를 유발하기 위한 언어교육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어 한계가 있다. 재외동포 학습자를 대상으로 한 문화 교육은 “이중적인 정체성으로 인한 정서적인 혼란을 경험하면서 많은 경우 온전한 자기 이해와 확립에 도달하지 못하”4)는 학습 상황을 고려하여 외국인 학습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 보다 정체성 확립을 위한 문화 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교수 방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에 재외동포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문화 교육 방안에 대하여 주목한 연구5)들도 있었다. 이 연구들은 “우리 문화의 특징이 역사에서 어떤 기능을 했으며 이것이 민족애의 근간이 됨을 알게 하고”6) “우수한 한국의 문학 작품을 학습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친밀함을 갖는 것”7), “자신과 부모가 기원한 모국의 문화적 배경과 올바른 인식을 통해 자아 개념 및 집단 정체감을 가져야 하고”8) “한국 문화의 이해를 통한 자긍심을 기를 수 있도록 하여 다양한 문화적 배경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9)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즉,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우선시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정체성 혼란을 해소할 수 있다는 관점으로 논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고는 문화 교육이 재외동포 학습자의 정체성 형성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우선시해야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학습자가 처한 사회적 상황과 상동성 있는 서사를 선정하고, 작품서사에 개인서사를 연계하여 정체성 탐구를 유도할 것이다. 이를 우선시 하고 추후 작품에 대한 이해를 통해 유대감을 갖게 하고자 한다. 문화 교육 자료가 되는 서사로는 고전 서사 <바리공주>와 <심청전>을 텍스트로 선정하였다. 서사의 주체인 바리와 심청이 세계에서의 위치가 재외동포 후속세대가 처한 사회적 상황과 상동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본론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Ⅱ. 재외동포의 정체성과 문화 교육
정체성(identity)은 정신분석학적 개념으로 사용되다가 근대 인간 개인을 중시하는 학문 사조 아래 철학이나 논리학, 교육학, 사회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두드러진 개념이다. 처음 이 용어를 사용했던 에릭 에릭슨(Erik H. Erikson)은 정체성이 사회적, 환경적 요인에 의해 형성되며, 전 생애에 걸쳐 지속적인 성장과 발달이 나타나며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10)
정체성에 관련된 이론은 에릭슨 이후 발전하는데 대부분 정체성이 고정되거나 미리 결정된 것이 아니며 관계 맺기를 통해 유동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며 인종, 문화, 국적 등의 요소와도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국경을 넘어 국적, 문화, 인종 등에서 새로운 외부적 상황에 처한 이민자들은 조국과 이주민 수용국의 경계에서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재외동포 후속세대의 경우에도 역시 자신과 부모가 기원한 고국과 현지 사이의 경계에서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된다. 제임스 마르시아(James E. Marcia)는 정체성의 위기 상황에서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 혹은 전념하는 과정을 통해 오래된 가치를 재검토하고 새로운 대안적 정체성을 성취 혹은 유예할 수 있다고 논의11)하는데 재외동포 역시 중심문화와 대립하는 위치에서 혼종적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고전 서사를 활용한 문화 교육이 재외동포가 정체성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겪는 위기 상황에 있어 효용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본다. 이는 문학치료학 서사이론과 맥을 같이 하는 관점이다. 문학치료학의 관점에서 작품 서사란 문학이 정체성과 의의를 가지게 하는 것인데 한 인간의 삶 또한 그 심층에서 작동하는 자기서사가 존재하고, 자기 서사는 정체성 정립의 방향과 의미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습자가 외부의 문학(작품서사)에서 인간 내면의 문학(자기서사)과 일치점을 발견할 때, 일체감을 갖게 되고, 그 작품서사가 건강한 서사일 경우 미숙한 자기서사를 성장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입장이다.12) 물론 지역과 세대, 개인별 등 다층적 요인들이 실제 현상에 관계하는 만큼 정체성을 형성하는 변인이 복잡하기 때문에 일반화하여 살펴보는 것이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다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방향성을 제언한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재외동포의 자기서사에서 그들은 한 국가 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거주국의 “중심 문화와 대립하는 위치에서 고국과 문화적 친밀성, 그리고 정체성을 세워가려고 하는 주체”13) 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 경계는 선으로 나뉜 것이 아니라 사이에서 접경공간(중간지대)을 형성하며 혼종적 성격을 띠게 된다. 그들의 혼종성을 문화혼종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문화혼종은 라틴아메리카 학자인 네스토르 가르시아 칸클리니(Néstor García Canclini)가 제시한 개념이다. 라틴아메리카는 본래 토착민인 인디오문화에 식민자의 이베리아문화 그리고 그들이 함께 온 노예의 아프리카문화가 만나 인종, 근대와 전근대가 결합되어 만들어졌다. 단순히 서구문화의 영향을 받아 변화했다는 문화제국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외부의 문화가 들어오면서 억압받았던 토착문화가 서로 교차되고 착종하면서 유동적으로 변화해서 새로운 혼종(Hybrid)문화가 발생했다는 관점이다. 이는 서로 다른 두 문화가 접촉하면서 다른 문화의 문화요소가 전파되고 그에 따라 두 문화가 서로 유사해진다는 문화접변(acculturation)과도 차이가 있다. 중심 문화를 바탕으로 동화되면서 획일화되는 것이 아니라 양쪽의 접점 아래 새로운 체계를 구성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문화혼종의 관점에서 정체성은 개방적이고 유동적인 개념으로 문화적, 사회적 맥락에 따라 형성된다. 재외동포는 고국과 거주국이라는 양 문화의 중간 지대를 교차, 횡단하면서 형성되며 문화를 식별할 수 있게 되는데 이를 통해 새로운 문화적 주도권을 선택하는 것을 그들의 문화 정체성으로 볼 수 있다. 칸클리니는 문화혼종을 혼종된 것 자체로 보기보다는 문화적 경계에서 탈영토화하고 재영토하는 과정에 주목한다.14) 다만 그 접경공간(중간지대)에서 무엇으로 ‘-되기’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혼종적 ‘주체’의 긍정성을 온전히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지 해체적 모방으로서의 저항이 아니라 ‘의도적 혼종성’의 견지에서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좋다.15) 본 논문에서는 이를 위한 문화 정체성 교육방안을 제언해 보고자 한다. 이는 고정적으로 명시된 개념으로서의 주입 교육이 아니라 실천적 개념으로의 향유를 돕기 위함이다.
그간 재외동포의 문화 정체성 교육 및 관련 정책은 주로 한국의 민족성이나 우수한 문화를 통해 “한국인이라는 자각과 한민족으로의 자긍심 고취를 목표”16)로 하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정부의 한국어 및 한국 문화에 대한 교육정책에 대하여 다양성과 공존의 관점에서 개발될 필요성이 제기되며 변화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문화 정체성에 관한 고민은 한 사회의 중심부보다는 주로 한 사회나 국가의 주변부, 제도권 밖의 사람들에게 제기되는 문제다.17) 그러다보니 정체성 확립을 위한 문화 교육의 경우 여전히 ‘뿌리 찾기’와 ‘전통’에 주목하고 있으며, 그 필요성에 비해 교육 내용 및 방안에 대한 연구는 초기 단계에 있다. 한국의 문화 교육은 문화 어휘 혹은 단편적 지식의 전달보다 한국의 관습, 역사, 문물 등이 어떤 가치의식의 발현인가라는 심층적인 이해로 이어지는 방식18)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문화 교육의 방안으로 고전 서사를 활용할 것을 제언한다. 한국 문화교육에서 고전 서사의 가치는 “전통적 가치관, 삶의 방식, 정신, 민속 등이 한국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한국적 삶의 이해와 표본”19)으로 “한국문화의 원류가 되는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텍스트”20)로, “한국 문화의 정체성 내지 전통을 잘 살필 수 있다”21)는 맥락에서 강조되어 연구되어 온 것이 대부분이다. 고전 서사가 가지는 원론적인 가치에 동의하지만 ‘전통’이나 ‘고전적 역사’에 매몰되어 ‘민족 정체감’을 우선시 하는 관점에 대하여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재외동포를 위한 한국 문화교육에서 고전 텍스트를 활용하는 경우는 한국 고전의 개별적 작품 소개와 작품 배경에 대한 역사적 배경 설명, 작품에 나타나는 언어적 표현 익히기가 주 교육 내용이다. 본 연구에서는 작품 서사에 개인 서사를 연계하여 정체성 탐구를 유도하는 것으로 주부를 새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관점으로 접근하고자 하였다. 이에 서사 구조를 우선하고자 했으며 <바리공주>와 <심청전>을 주 텍스트로 삼았다. 두 여성 주체는 부모에 대한 순응적 종속과 심리적 지체라는 문제를 해결하고 독립적 자기 존재로 자기발견과 확장을 이루는 인물이다. <바리공주>의 경우 연행 과정에서 작시를 하며 약수를 구하는 과정을 심청을 매개로 하여 풀어내기도 하는 만큼 두 작품이 서사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22). 특히 아버지와의 갈등이 주 서사가 되며 추후 부친과의 관계를 주체적으로 전복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두 텍스트를 선정한 것은 서사가부장적 세계에서 부유하던 여성 주체가 부모와의 관계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벗어나는 탈영토화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관계를 통해 스스로를 재정립하는 재영토화 과정이 주 서사로 나타나는 고전 서사이기 때문이다. 주체적 결단으로 공간을 횡단하면서 통합적 정체성을 획득하는 <바리공주>와 <심청전>의 작품 서사는 재외동포에게 정체성 모색에 대한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내부사회에서 분리 후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새로운 전(全)인격적 실현을 이루는 것은 ‘분리-전이-통합’의 통과의례적 구조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각 작품에 나타나는 통과의례적 구조와 그 의미를 다음 장에서 구체적으로 보고자 한다.
Ⅲ. 고전 서사에 나타나는 통과의례적 구조와 의미
<바리공주>와 <심청전>을 함께 분석한 다수의 논의23)들이 있다. 서사의 주체가 두 작품 모두 여성이므로 주로 ‘여성’ 인물의 성장담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되었다. 당시 가부장적 질서 아래 ‘여성’은 내부사회의 중심에 존재하지 못했다. 즉, 주변부의 소외된 인물이 공간 이동을 거쳐 내적(존재론적) 성장을 담고 있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를 당시 사회적 요구에 종속되어 강요당한 ‘희생’으로 보는 논의들이 있어왔다. 그러나 이는 여성 주체의 행동을 희생과 박해의 담론에 가두어 비자발적, 수동적인 것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본 연구는 주체적 결단으로 통과의례를 거쳐 신으로 거듭난 서사 구조로 이를 바라보고자 한다. 먼저, <바리공주>는 무조신의 내력이므로 서사무가의 대표적 서사다. <심청전>의 경우 선후관계에 대하여는 그 논의가 다양하지만 ‘심청굿’에서 구송되는 서사무가가 효녀 심청을 주인공으로 하며 그 내용이 심청전과 거의 유사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다. 다만, 동해안 별신굿에서 연행되는 심청굿은 처음 채록된 것이 1960년대 후반이므로 본 논의에서는 <심청전>을 보다 선행되는 것으로 텍스트로 판단하여 ‘심청’ 서사를 살펴볼 텍스트로 선정하였다. 심청전의 서사가 굿판에서도 유효했던 것은 현실 세계의 약자인 여성이 입사식을 거쳐 초월자로 거듭난다는 설정이 기존 서사무가의 여성 주인공과 유사하여 굿의 향유주체에게 매우 매력적이었으며, 이를 통한 감정이입을 일으키는 것이 용이하였기 때문이다.24) 이에 두 작품에서 여성 주체가 겪는 통과의례의 과정을 중심으로 두 텍스트를 분석해 볼 것이다.
‘바리’와 ‘심청’ 두 인물은 ‘분리-전이-통합’의 세 단계의 통과 의례를 거치는데 이는 기존에 있던 곳에서 새로운 사회에 통합되기 위한 과정이다. 어려운 시련을 동반한 시험을 통해 사회의 구성원이 되거나 성인이 되는 등의 사회적 신분 변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캠벨이 언급한 원질신화의 보편적 구조로 ‘출발(Departure)-입문(Initiation)-회귀(Reture)’의 의미적 맥락과 동일한 것인데 인간의 성장과 발달에 대응하는 의식(儀式)이 ‘정체성의 변화’를 함의한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집단에 따라 형태는 상이하다.25) 한국의 서사무가에 나타나는 통과의례적 구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통과의례를 거친 주인공이 통합적 신성을 획득하는 것에 있어 외부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라 본래 갖고 있던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리스 로마신화나 중국신화, 인도신화, 이집트 신화 등 신과 인간 사이의 층차적 경계가 있는 세계 다른 신화와는 다른 부분이다. 한국 서사무가에서의 주인공은 여행을 계기로 부정적 현실에 가려진 자기의 이상적 존재성을 발견하고, 이상적 공간인 신성계(神聖界)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하고 본인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얻은 주인공들이 다시 현실의 공간으로 복귀하여 삶을 문제없이 살아낸 이후 신직에 좌정(완전한 존재성 발현)하는 공통의 순차구조26)를 보인다. 본 연구에서 텍스트로 삼은 <바리공주>와 <심청전>의 인물 역시 동일한 통과의례적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바리공주는 무조신의 내력을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한국의 서사무가로 전국에서 각 지역적 특색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전승되어왔다. 이 글에서는 비교적 인과적 전개가 잘 지켜지는 서울지역 전승본27)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우선, 장면의 차이는 있지만 각 이본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서사단락을 정리하고자 한다. 홍태한(1998)이 각 이본별 변이 양상에 따라 공통단락을 제시한 바가 있어 이를 참조하여 정리하였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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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바리공주의 부모가 혼인 후 연이어 딸만 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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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일곱 번째도 공주가 태어나자 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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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바리공주의 부모가 병에 걸려 약수가 필요함을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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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여섯 딸들에게 부탁하지만 딸들이 모두 핑계를 대고 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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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바리공주가 약수를 가지러 길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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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바리공주가 약수를 얻기 위해 약수 지키는 이에게 일정한 대가를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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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바리공주가 부모를 살려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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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바리공주가 부모 살린 공을 인정받아 무조신으로 좌정하다.
바리공주는 업비대왕이 지배하는 조선국에서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난다. 조선국은 “대왕마마 전교하옵신 말삼이야”29)로 모든 질서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일곱 번째 딸인 바리공주는 종묘사직을 전하고 조정백관을 의지하게 하고 시녀 상궁을 의탁하게 할 세자대군을 원했던 업비대왕의 질서의 밖에 존재하므로 버려진다. 버려진 바리공주는 비리공덕 내외에게 의탁해 천문, 지리, 육도 삼악에 능통하게 자란다. 이는 오히려 당시 여성에게는 허락되지 않던 학문으로 업비대왕의 공간에 사는 여성들과 비교했을 때 나타나는 변별적 자질이기도 하다30). 바리공주는 커가면서 자신의 기원을 궁금해하고 친부모의 존재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며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15세가 되던 어느 날 부모와의 상봉을 통해 사실을 알게 되면서 본인의 부정적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근본에 대한 질문을 가지게 되는 부분이다. 이처럼 바리공주의 삶은 “끊임없이 내쫓기고 내몰리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정립시키고 스스로 그 자신의 존재의미를 확인해나가는 여정”31) 이다. 가족도 국가도 그녀의 존재를 인정해 주지 않는 채로 남들과 동일시를 할 수 없는 여건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거주국과도 모국과도 동일하지 않은 경계에서 살아가는 재외동포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특히 바리공주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확인하는 과정이 가정과 국가의 경계 안에서 안정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밖에서 거부됨을 깨닫게 됨으로써 시작된다는 점에서 재외동포 학습자의 동일시를 돕는 기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부모의 병환을 고치기 위한 약수를 얻고자 서천서역국으로 떠나는 장면에서 보다 적극적인 이해에 달한다.
바리공주가 본인을 버린 부모를 구하기 위해 이러한 여정을 시작하기로 결심하였을 때, 이에 대하여 당대 가부장제 질서에서 ‘효’의 이데올로기를 실현 ‘당하는’ 존재라는 해석도 있다.32) 남성지배질서에 배제되어 억눌린 여성이 순응적으로 병폐를 구하기 위한 희생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대목은 그보다는 바리공주의 선택에 대한 주체성과 선택에 대한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리공주가 저승을 떠나기로 한 것은 ‘버려진’ 딸의 상태를 회복하기 위함이 아니다. 바리공주의 선택은 가부장제적 제도적 관습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한 실존적 선택에 가까운 것이다. 서천 서역국이라는 공간은 경계를 넘어가는 곳으로 조선국 내부의 사람들은 모두 가는 것을 주저하였다. 신하들의 태도나33) 언니들의 태도34)와는 이율적인 것으로 스스로를 구분짓는 것이다. 바리공주의 통합된 정체성이 전형적인 ‘모성’ 혹은 ‘풍요’를 상징하는 여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확실히 할 수 있다. 이는 경계를 넘어 서천서역국(저승)에서의 경험에서도 드러난다. 바리 이야기에서 저승은 “세상에서 버려졌지만 ‘다시 삶’(재생)을 꿈꿀 수 있는 공간으로 바리는 원래 버려진 자로서의 자신의 몸을 지우고 새로운 육신으로 탄생”하는 헤테로토피아적 공간이다.35) 그곳에서 바리는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각종 육체노동을 수행하고 무장승과 혼인하여 아들을 출산함으로써 ‘딸’에서 ‘아내’이자 ‘어머니’라는 새로운 존재가 된다. 출산은 생명수를 얻는 것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데 이는 초반부에 부정적 자질로 여겨졌던 ‘여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처음 공간에서 부정시 되던 자질을 긍정적 자질로 변환함으로써 새로운 지위를 획득한 것이다. 업비대왕의 공간에서 가부장적 관점에서 여성은 혼인 이후 ‘출가외인’이 되어 혼인으로 맺어진 관계를 더 중시해야한다. 그러나 바리공주는 ‘가족’을 유교라는 가부장적 지배이데올로기 속에 가두지 않고 모성적 관계보다 친정 부모와의 관계를 우선시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36) 이는 표면적으로 ‘친정 부모’와의 관계를 우선시한 것이나 또 달리 말하면 업비대왕의 ‘생명’에 가치를 둔 것이다. 즉 바리공주는 단순히 ‘죽음’을 주관하는 신이 아니다. 그저 죽은 자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천도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하는 신인 것이다. 바리공주는 이처럼 공간을 넘나들면서 주체적인 선택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생명의 주체로 자기완성을 이루어낸 것이다. 이는 오구대왕의 세계로 돌아가 편입되거나 저승의 무장승에 종속되는 것과 다른 새로운 정체성을 성취한 것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에서 부정적 자질을 긍정적 자질로 변모시켜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바리의 서사는 재외동포 학습자에게 있어 건강한 반영적 텍스트로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심청전>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희생효’를 당하는 딸의 서사로 바리공주와 함께 다루어져 왔다. 먼저 심청의 여정담인 <심청전>의 서사를 살펴 볼 것이다. <심청전>은 ‘심청가’, ‘심청굿’과 유사하여 서사무가의 구조가 나타나는데 그 서사 단락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37) 심청전은 수많은 이본이 있으나 그 중 선본을 참조하여 공통으로 나타나는 서사 단락을 정리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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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심봉사의 청에 따라 곽씨부인이 임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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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곽씨부인이 딸 심청을 낳고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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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심청이 자라 아비 심봉사를 봉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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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심봉사가 우연히 승려를 만나 눈을 뜨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기로 약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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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공양미 삼백 석을 구하기 위해 심청이 뱃사람에게 몸을 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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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심청이 인당수에 빠져 용궁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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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옥황상제의 도움으로 재생하여 궁궐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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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심청이 황제를 만나 혼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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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아버지를 그리워한 심청이 맹인잔치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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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심청이 맹인잔치에 참가한 심봉사와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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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 심봉사가 개안하다.
<심청전>의 서사에서 심청의 성장 계기가 된 것은 공양미 삼백석을 위한 희생이며 ‘인당수’를 통해 경계를 넘는다. 심청 역시 바리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희생을 선택하였다. 이는 장승상 부인의 수양딸이 되는 것을 거절한 것에서 ‘밀려서 한 결정’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이었음이 강조된다. 즉, 본고에서는 극한의 상태에서 본인을 내던진 ‘우회된 자살’38)보다 ‘주체적 결단’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심청은 다른 방도가 있음에도 인당수에 뛰어드는데 이는 서사의 핵심 전환점이 되는 부분이다. 도화동과 이별하고 용궁을 거쳐 왕비가 되는 심청의 서사에서 중요한 전이 공간이 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심청은 용궁에서 곽씨 부인과 재회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그녀의 상황을 상기하게 된다. 인당수에 빠지기 전 심청은 15세를 전후하여 자아와 타자가 구별되는 과도기적 시기에 놓인 존재였다. 심청은 자아 이상을 ‘아버지의 봉양’으로 아버지와 분리되지 못한 상태였다. 도화동은 심봉사의 질서 아래에 있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심청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심봉사가 하던 ‘젖동냥’을 ‘구걸’로 이어받는 것이었다. 심봉사의 방식으로 심청은 그 누구도 구원(개안 혹은 계몽)할 수 없다. 심청은 인당수에 빠진 후에야 본인이 진정 원하는 바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주체적 존재로서 자기의 판단하에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였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본인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심청의 입수는 질서 밖으로의 탈주로 스스로를 정립하기 위해 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심청은 수정궁에서 귀히 대접받고 그리워하던 모친을 만났으나 그 기쁨보다 도화동에서의 삶을 돌아보며 본인이 진정 불안하던 바가 무엇인지 깨닫는 계기가 된다. 불합리한 효의 강요에서 자기 자신을 분리시켜 대항했던 심청이 잃어버렸던 자아를 정립하는 과정인 것이다.
심청은 용궁에서 자신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인식함으로써 내면의 갈등과 긴장을 해소하려고 노력하며 자아의 안정을 되찾고자 한다. 다시 귀환했을 때 심청은 맹인 잔치를 열어 심봉사의 개안을 이끌어낼 수 있게 된다. 딸과 아버지의 관계를 재편하여 발전적인 공생이 극적으로 실현된 상황이 된 것인데 이는 심청이 ‘자기 존재’로 움직이는 결단을 내리는 순간 덕분으로, 이는 결국 모든 관계란 결국 ‘주체적 존재성’이 매개가 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다.39) 물론 과정에서 옥황상제와 황제, 심봉사라는 남성적 시선에 의해 행보가 결정되었다는 점에40) 한계가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의 상황에서 내린 주체적 결단을 통해 내부의 자아를 깨닫고 긍정적 정체성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문화 정체성 교육의 텍스트가 되기에 적절하다고 보았다. 이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활용할지에 대한 교육방안을 다음 장에서 살펴 볼 것이다.
Ⅳ. 고전 서사를 활용한 문화 교육 방안
본 연구에서는 고전 서사 특히 <바리공주>와 <심청전>을 텍스트로 하여 부유하는 정체성의 확립을 위한 자기 서사의 표현 능력 향상을 목표로 교육 방안을 설계하고자 했다. 작품의 선정 이유는 전술한 바와 같이, <바리공주>와 <심청전>에 나타나는 통과 의례적 서사 구조가 모국과 거주국의 경계에서 통합된 정체성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재외동포 학습자의 서사와 상동성을 가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작품 서사를 통해 자기서사를 변화시킨다는 논의는 문학치료와 관련하여 문학과 심리를 연결시키는 구도아래 이어져왔다. 각자의 삶을 구조화하여 운영하는 서사를 ‘자기서사’라 하고, 이 자기서사에 영향을 미치는 문학작품의 서사를 ‘작품서사’로 규정하면서 문학작품의 작품 서사를 통해 자기서사를 보충하거나 강화하는 방식으로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41) 즉 문학 작품은 서사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매개 역할을 할 수 있어 스스로를 돌아보고 정체성을 재구하는 것에 교육적 효과를 줄 수 있다. 두 텍스트를 활용하여 문화교육에 활용할 단계별 학습활동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내용의 일차적 이해를 통해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지식 획득이 가능하다. 나아가 ‘주체적 결단’을 통해 주인공이 속한 세계에서 경계를 넘어 성숙된 통합적 정체성을 획득하는 서사구조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통해 학습자가 거주국에서의 삶의 방향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습자가 자기 서사를 형성하는 표현을 교육하는 것이 학습자들의 정체성 함양에도 궁극적으로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이에 대한 단계별 교육 내용에 대한 교수-학습방안을 설계하여 표로 제시하였다.
서사에 대한 몰입과 이해를 위해 텍스트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하므로 국외 거주하는 재외동포 중 한국어 5급 이상의 고급 한국어 학습자를 대상으로 <바리공주>와 <심청전>을 활용한 문화 교육방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언어적 숙련도는 있을지라도 학습 대상자의 경우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으며 고전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할 수 있기 때문에 작품 설명과 이해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2시간 씩 3회차로 총 6시간의 수업을 제안했다. 특히 작품의 장르나 배경과 같은 일반적 지식과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학습 대상자가 작품 서사에 일체감을 느낄 정도로 몰입하기 위해서는 작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표로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학습 목표 중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서사 구조를 활용한 자기 표현과 그를 통한 정체성의 정립이다. 작품에 대한 바른 이해와 감상을 본인의 삶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활동이다. 먼저 작품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인지적으로 받아들이는 단계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텍스트를 제시하는 단계에서 장르와 줄거리에 대한 정보를 통해 내면화 전 주의 집중을 돕도록 할 것이다. 이 단계에서 ‘분리-전이-통합’의 통과제의적 구조를 보편적 구조인 원질신화의 구조와 비교하여 설명함으로써 이해를 도울 수 있다. 또한 문법과 어휘 중심의 단순 이해에서 나아가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내용 중심의 이해 활동을 함께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바리공주의 여정을 단순히 부모를 위한 희생으로만 이해하지 않도록 서사 읽기를 지도할 것이다. 보통 작품서사에 대한 강한 이끌림과 일체감을 갖게 되는 것은 특정 장면에서 자신의 경험이나 상황과의 일치점을 발견할 때인데 작품의 서사와 자기서사가 정교하게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으므로 그 ‘특별한 지점’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42) 본 연구에서는 이를 경계를 넘어 긍정적 주체를 확립한 지점에서 찾고자 했다. <바리공주>에서는 서천서역국에서의 여정이, <심청전>에서는 인당수를 넘어 용궁에서의 여정이 그것에 해당된다. 특히 <심청전>의 경우 이를 활용한 재외동포 3세인 줄리아 류(Julia Riew)의 사례를 보조자료로 함께 제시할 예정이다. 심청전의 교수 방안을 표로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심청전에서 역시 서사 구조를 활용한 자기 표현과 그를 통한 정체성의 정립을 가장 우선적인 학습 목표로 설정하였다. 또한 텍스트를 제시하는 단계에서 장르와 줄거리에 대한 정보를 제시할 때 오페라나 뮤지컬과 비교하여 설명함으로써 이해를 도울 것이다. 심청전을 활용한 교육 방안에서는 특히 학습 대상자와 비슷한 사례 중 인기를 얻은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흥미를 유도하고 유대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줄리아 류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하버드대 졸업 작품으로 <심청전>이야기를 각색하여 노래를 만들었다.43) 심청이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에 본인의 모습을 투영하여 작곡한 심청<Dive>44)가 그것이다. 그녀는 숏폼 플랫폼에 ‘한국판 디즈니 공주’를 컨셉으로 영상을 올렸는데 화제가 되어 LG 그램의 지원을 받아 합작을 통한 짧은 뮤직비디오가 만들어졌다.45) 줄리아 류는 “자신의 뿌리와 ‘고향’을 찾고 또 찾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심청이의 여정과 이야기’가 가장 감동적이었다”46)고 말한다. 즉, 경계를 넘어가는 장면에 가장 영감을 받아 <Dive>를 작곡한 것이다. 고향에 대한 문화적 연결과 기억을 잃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 자라 결국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다(용궁)을 향한 ‘Dive’는 자신의 상황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나는 과연 어디에 속해 있을까’라는 생각을 본인의 콘텐츠에 녹였다고 말하는데 그녀가 작곡한 <Dive>의 가사는 아래와 같다.
Now all of the fish in the sea can’t stop me
바닷속 어떤 것도 날 못 막지
All of the waves in the world can’t rock me
파도가 날 덮쳐도 끄떡없지
I’m on a mission and gee
여정은 시작됐어
Just watch me go
날 지켜봐
All that’s left is the dive
뛰어들기만 하면 돼
Don’t forget to close your eyes and hold your breath
잊지 마, 눈을 꼭 감고 숨을 들이켜
Now, ready set
자, 준비
Take the dive
뛰는 거야
I’ve waited all my life
평생을 기다려왔어
And now it’s finally time
그 순간이 드디어 왔어
-심청<Dive>47)-
위 가사에서 “Dive”는 바다에 뛰어든다는 사전적 의미 외에 두려움을 극복하고 필요한 순간에 도약한다는 의미를 결합한 이중적 의미를 드러낸다. 줄리아 류 역시 심청의 주체적 결단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안을 통해 학습 대상자가 서사 구조를 수용하면서 정체성 정립에 도움을 줄 수 있고 서사에 대한 이해와 유대감을 통해 한국 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동기와 관심도 유발할 수 있을 것이다.
Ⅴ. 결론
최근 재외동포가 늘어나고 세대가 교체되면서 재외동포의 혼종적 정체성에 대한 문제와 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민족주의적 관점에 치우친 교육보다는 ‘혼종성’을 인정하는 방향에서의 문화 교육이 필요한 것에 비하여 그에 대한 구체적 교육 방안에 대한 연구는 부족하다. 이에 본 연구는 문화 정체성 확립을 목표로 재외동포를 위한 교육 내용을 설계하기 위해 고전 서사를 활용하였다. 재외동포의 정체성 교육을 학습하기에 용이한 두 텍스트를 <바리공주>와 <심청전>으로 선정하였다. 고전 서사이지만 ‘고전’과 ‘전통’으로의 가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통합적 정체성 획득의 서사 구조를 중심으로 접근해보고자 하였다. 재외동포 학습자에게 고전 서사를 중심으로 정체성을 교육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면서 정체성을 증신시킬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학습자의 경험을 반영한 자기 서사 표현을 유도함으로써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 교육의 목적을 넘어서 한국 문화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바탕으로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에 있어 도움이 될 것이다. 재외동포 한국어 학습자의 거주국과 연령, 상황 등의 차이를 모두 고려하지 못하고 일반화했다는 점에 한계가 있지만, 혼종적 정체성을 인정한 문화 정체성의 교육 방향과 방안을 제언했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