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우리나라는 역사상 최초의 국가로 정의되는 고조선(2333 BC~108 BC) 이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종교’를 떠올리지 않고서는 종교사를 논의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종교가 공존해왔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신앙의 종류와 형태가 변화하고, 새로운 종교가 유입되거나 만들어지고, 또 일부는 사멸하였다. 그러나 국내의 종교 전통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종교백화점’ 또는 ‘종교시장’으로 불릴 정도로 여전히 다종교 사회라는 큰 틀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1) 게다가 우리나라의 종교는 서양과는 달리 종교 간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즉 개별 종교 속에 다른 종교의 요소들이 중첩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무종교 인구 가운데에서도 이런 종교적 중층성이 상당하게 나타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다양한 종교가 큰 갈등 없이 공존하고 있는 독특한 형태를 띠어 왔다.3)
그렇지만 최근에 이르러 종교 간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했고, 이 갈등은 사회적 측면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2021년 6월 영국 킹스컬리지가 여론조사기관인 입소스에 의뢰해 발간한 ‘갈등’에 관한 보고서를 분석 보도한 한 언론기사에 따르면, 불명예스럽게도 우리나라의 갈등지수는 세계 1위로 나타났다.4) 특히, 이 보고서에서 종교 갈등은 빈부 격차, 지지 정당, 정치 이념 등 상존하는 갈등을 뛰어넘는 압도적 1위인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가장 큰 요인중 하나가 종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5) 2023년 2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사원 건축을 반대하는 한 지역의 주민 수십 명이 건축 현장 앞에서 돼지고기 바비큐 파티를 열며 극렬 저항하는 것만 보더라도 종교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갈등은 더 이상 관망만 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민낯이 되어가고 있다.6)
우리 사회의 갈등은 이미 2000년대 들어서 거대담론이 된 ‘다문화’로 인해 추동력을 얻어가고 있다. 산업연수생 제도의 도입을 필두로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자, 유학생, 난민 등의 유입이 급증하면서 2023년 4월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이 235만여 명으로 팬더믹 이전 수준(2019년 252만여 명)보다는 줄었으나 증가 추세를 회복하고 있는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7) 이처럼 우리 사회구성원들의 문화적 배경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다양해지고 있고, 이에 따라 과거의 다종교 현상은 종교 간 공존에서 갈등으로의 전환이 우려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일한 혈연과 문화에 기초한 ‘단일 민족’이라는 국가 개념이 허물어지고 있는 다문화사회에서 종교는 그 역할이 증대하고 있다.
다문화 환경을 인식하고 대처하는 데 있어서 종교의 이해는 핵심 요소로 기능한다. 왜냐하면, 종교는 인류 역사를 관통하며 문화와 사회 전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 제도의 하나로서 사람들에게 삶을 꾸려가는 틀을 제공하는 가장 복합적인 총체적 문화 현상이기 때문이다.8) 그러므로 교육의 주요 기능 중 하나가 사회통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실적 측면에서의 ‘종교 교육’이 다문화사회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요구된다.9)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종교 교육은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제한적인 수준에서 실시되고 있는데, 비록 종교 교육을 공식화하고 있지는 않으나 상당히 많은 종교 단체의 다문화 교육조차 개종이나 선·포교에 목적성을 두고 있으며,10) 더 나아가 종교 교육을 신앙 교육으로 인식하는 교육부의 태도로 인해 일부 종립(사립)학교를 제외하면 공립학교에서는 종교 교육이 정식 교과목으로 편성되지 못하고 있다.11) 2022년 교육과정 개정안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 종교 교육의 ‘성격’은 삶과 종교의 연관성에 따른 교양 차원의 성찰적 안목과 태도를 기를 수 있는 교양 교과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종교에 대한 교육, 또는 종교를 교육하기 보다는 종교와 관련된 성찰, 의사소통, 다문화 감수성, 윤리적·사회적 실천 등의 태도를 배양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종교는 우리나라의 다문화 사회화 과정에서 공동체의 통합과 안전에 기여하나 다른 한편에서는 공동체 내부에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양가성을 띰으로써12) 교육적 차원에서의 논의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연구는 종교 교육을 기반으로 하되 교양 또는 소양 교육으로서의 종교 교육이 다문화사회의 지향점에서 박리현상이 벌어져 개별 종교 교육과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고 역설할 것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우리나라의 종교 정책과 종교 교육을 선행연구를 통해 개괄한 후 종교 교육의 방향성으로서 교양 종교 교육과 개별 종교 교육의 통합을 통한 종교 교육콘텐츠 개발을 제언할 것이다.
Ⅱ. 한국의 다문화 정책과 종교 교육
2000년대 초 정부는 ‘다문화’가 시대의 조류임을 실감하고 ‘다종교-다문화-다인종’을 하나의 범주로 하여 사회적 현상에 대처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다문화는 2005년 참여정부를 기점으로 의제로 채택되며 재정 지원과 법적 지원 체계가 조성되었고, 그런 노력의 결실로 2007년 5월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이, 2008년 3월에는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제정되었으며 중앙정부의 지원 속에서 지방자치단체 또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내놓았다.13) 그렇지만 “다문화가족 구성원이 안정적인 가족생활을 영위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이들의 삶의 질 향상과 사회통합에 이바지함을 목적”(제1조)으로는 하는 <다문화가족지원법>조차 ‘삶의 질 향상과 사회통합’이라는 입법 취지를 무색하게 정부 정책은 국가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소수자의 차별적 배제를 묵인하고 생산성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14) 최근의 단적인 사례로 2023년 2월 16일 법무부와 경상북도의 외국인 정책 간담회의 주요 내용이 지역 기반의 이민정책, 농촌의 인력난 해소를 위한 (외국인) 계절근로 프로그램 확대 실시, 실업계교 유학생 유치 등이라는 데서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15)
다문화사회에서 어떤 문화, 특히 중심 문화에 의한 소수 문화의 주변화가 허용되면 문화 간 문제의 해결은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다문화주의가 다양성의 가치를 촉진하는 사회 지성적 운동이라면 모든 문화 집단들이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가설이 실체성을 갖게 된다.16) 절대적 신념체계로서 문화의 핵심 문화소를 구축하고 있는 종교는 다문화 이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열쇠라 할 수 있지만,17) 민주주의와 자유가 국가 에토스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면 종교에 대한 국가 통제는 물론이거니와 지원시스템까지 권위를 잃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정부의 다문화 기반 종교정책은 만족스럽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다문화사회의 정책 유형은 차별적 배제의 원리, 동화주의적 접근, 다원주의적 이해로 대별할 수 있는데, 정부의 종교에 대한 태도는 배제 혹은 동화주의적 입장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18)
배제를 통한 동화주의의 기조는 정부로부터 위탁·운영되고 있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19)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다문화가족의 안정적인 정착과 가족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종합 서비스를 제공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는데, 종교 조직이나 기관이 위탁·운영하고 있는 곳이 70%를 넘어서고 있어서20) 비록 선·포교 등의 종교 행위가 공식적으로는 금지되고 있으나 홈페이지에 온누리복지재단의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이웃을 위해 존재한다는 미션”에 따라 위탁운영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 서초구다문화지원센터21)처럼 호교적인 목적성을 띠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2017년 기준, 이민자 128만여 명 중 기독교는 13.5%, 무종교는 65.3%, 외국인 126만여 명 중 기독교는 13.4%, 무종교(無宗敎)는 65%, 귀화허가자 53만여 명 중 기독교는 15.4%, 무종교는 69%22)인 데 반해,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위탁운영 주체 중 개신교를 배경으로 한 센터가 가장 많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이주민의 종교를 고려하지 않는 정부의 다문화 정책은 미흡한 종교정책을 의미할뿐더러 이주민의 고유 정체성에 한 축을 두고 있는 다문화주의에서 이탈해 지배집단으로서 한국 사회에 안정적인 정착만을 기대하는 동화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23)
종교정책의 총괄기구라 할 수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종무실과 종무행정에서도 동화주의적인 태도는 쉽게 목도된다. 예컨대, 2023년 종무실 예산 현황은 크게 ‘종교문화활동 지원’, ‘전통종교문화유산 보존’, ‘종교문화시설 건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전체 예산 중 42.5%가 전통사찰 보수정비 등과 같이 불교, 천주교, 개신교 시설 보존에 집중되어 있으며, 30.4%가 할당된 종교문화시설 건립 항목도 한국 기성 종교에 집중되어 있다. 이에 비해, 최근의 다종교 또는 다문화 상황을 고려한 ‘이웃종교이해 및 종교연합 활동 지원’ 예산은 1.6%(13.5여억 원)에 불과하였고 대순진리회 등 한국의 신종교와 최근 유입되기 시작한 이슬람교나 힌두교 등 외래 종교에 대한 지원 사업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24) 비록 종무실이 다문화 정책의 주요 행정 주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감안해도 다문화사회의 특수성이 거의 고려되지 않은 한국의 기성 종교 위주의 종교 지원 정책을 통해 자신들 업무로 밝힌 ‘종교 간 화합에 기여’25)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다문화 정책의 일환으로 사회 곳곳에서 시행되고 있는 다문화 교육은 문화적 다원주의를 기초로 한국인과 이주민 간의 상호 이해와 존중을 통해 사회통합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사회구성원들의 진정성 있는 파트너십에 의거해야 하기 때문에 다문화 교육은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육, 한국 문화체험, 한국 음식과 예절, 상담 등의 적응 교육과는 별도로 한국인의 이주민 또는 이주민 문화에 대한 차별적인 의식과 태도 개선을 요구한다.26) 따라서 결혼이주여성들 대부분이 모국에서 믿었던 종교를 결혼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김철수의 실증연구결과처럼,27) 종교는 바뀌기 어려운 신념과도 같아 다문화 교육의 한 축이 되어야 한다.28) 그렇지만 실상은 이와 거리가 멀어 학교 현장에서 초중고 학생의 다문화에 대한 의식 지도를 담당하는 교원 대상의 다문화 교육조차 종교에 대한 논의는 미흡한 실정이다.
현재 초중고 교원은 <다문화가족지원법> 제5조(다문화가족에 대한 이해증진)와 다문화가족지원법 시행령 제10조의2(다문화 이해교육 관련 연수)에 의거해 법정의무교육으로 3년마다 15시간 이상 다문화 교육을 연수받게 되어있으며, 이에 따라 예컨대 서울특별시교육청만 하더라도 9개의 다문화 교육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29) 이주민의 관점에서 종교를 연수교육에 포함한 프로그램은 발견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총 30차시로 구성된 <공감과 소통을 위한 교실 속 다문화 교육>은 다문화주의 이해, 한국의 다문화 현황, 다문화 교육의 의미·필요성·교사의 역할, 다문화 관련 법령 및 정책, 다문화 학생 생활지도와 사례·상담·진로진학지도·언어교육 등 다문화 일반에 대한 이해로 프로그램을 채우고 있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소수자의 적응을 넘어서는 소수자의 주체화, 다수자들의 변화, 그리고 이를 통한 공동체의 형성’이라는 다문화 교육의 취지30)가 달성될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거의 모든 나라의 인권법은 인간의 기본권과 자유를 보호한다. 이는 교육, 더 좁게는 종교 교육도 이러한 법리에 입각해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받을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흔히 종교적 차이가 사회의 긴장과 갈등의 주요 원천이라는 확신이 사회 일반의 지배적인 인식이라면 더더욱 종교 교육은 타자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가치를 제공하고 효과적인 동기를 배양하는 긍정적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종교 교육은 특정 종교의 ‘신앙 교육’, 더 나아가 선·포교의 도구로 활용됨으로써 공립학교에서는 금기시되고 있으며 사립학교에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31)
우리보다 일찍이 다문화사회를 형성한 호주를 살펴보자. 2016년 호주 인구의 30.1%가 무종교였으며 52.1%가 기독교를 신앙으로 하는 가운데 이슬람교(2.6%), 불교(2.4%), 힌두교(1.9%), 시크교(0.5%) 등을 믿는 것으로 조사되었다.32) 그런데 2021년에는 무종교 인구가 38.9%로 크게 증가한 반면에 2016년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던 기독교 인구는 43.9%로 크게 감소하였고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은 아니나 이슬람교(3.2%)와 힌두교(2.7%) 등의 소수 종교 인구는 소폭 증가하였다.33) 이런 종교 지형 속에서 퍼쓰(W. B. Firth)는 2022년 공립학교에서의 종교 교육, 그것도 성공회에 기초한 개별 종교 교육이 필요한지 30명의 학부모에게 물었는데, 83.3%인 25명이 필요하다고 답하였다.34) 이런 결과에 대해 퍼쓰는 기독교 인구가 비록 과반 이하를 차지할지라도 성경의 이야기가 인간의 기본윤리나 삶에 대한 태도 등의 주제를 탐색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종교 교육은 호주의 사례처럼 다문화사회를 이해하는 열쇠임이 분명하다. 실제로, 배재현은 우리나라 초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종교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적용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이것이 다문화 수용성, 특히 이문화에 대한 고정관념과 차별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35) 이와 같은 실증적 연구 결과와는 별개로 종교가 학습 주제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분위기는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1997년 교육부 고시로 확정된 <7차 교육과정>(고등학교)에서 종교는 철학, 논리학 등과 함께 교양과의 독립 교과목이 되었고, 이후 교육과정이 개정을 거듭하는 가운데에서도 유지되었다. 다만, <2015 개정 교육과정>부터는 “종교와 연관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생활 등을 토대로 종교와 인간에 관해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안목과 태도”를 배양할 목표로 교과목 명칭이 ‘종교’에서 ‘종교학’으로 바뀌며 신앙 교육이 아닌 교양 교육임을 분명히 하였다.36) 또한, <2007 개정 교육과정>부터는 다문화 교육이 범교과 학습 주제로 포함되어 종교가 일부이기는 해도 언급되고 있으며,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삶과 종교’ 요목을 두고 있으나 종교의 교리나 종파보다는 사람들의 삶에 미친 영향과 국제 교류의 관점에서 탐구할 것을 성취기준의 목표로 삼고 있다. 비신앙적인 교양 교육이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다종교·다문화 시대에 필요한 다양한 가치와 상호 존중의 시민 의식이 인류 공동의 선(善)임을 이해하게 하고, 유사 종교를 구별할 수 있는 통찰력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종교로부터 배운 지혜를 실생활에서 실천하여 다종교사회에 걸맞은 종교적 경험과 삶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출 수 있도록 한다.37)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병철이 지적하듯이, 2022년 개정안의 ‘교육과정 설계의 개요’에는 “종교와 유사 종교를 비교하여 구별하는 능력을 기르게” 하는 등의 표현처럼 다문화사회에 반(反)하는 이분법을 적용하려는 의도를 내비치기도 한다.38) 이처럼 다문화사회에서 종교 교육의 필요성이 증대하고 이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더해지고는 있으나 여전히 제한적이며 상징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종교 교육을 일부 특정 종파의 경우 공격적으로 선·포교의 도구로 활용함으로써 헌법에서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와 마찰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종교단체들은 국·공립학교와 사립학교를 동일선상에 둠으로써 종립학교들이 건학이념에 따라 교육의 다양성을 구현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제한되며 학교의 자율적 종교 교육 편성이 사실상 보장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결국, 자유와 권리의 측면에서, 교과과정 개편과 같은 국가주도의 방향성에 동의하기보다는 종교 교육 폐지의 목소리가 더 크게 대두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따라 종교 교육은 일부 종립 (사립) 초중고 학교와 대학교를 제외하면 신앙의 측면이 고려되지 않은 교육적 중립성에 반하지 않는 방향, 즉 문화유산으로서의 종교, 다양한 삶의 존재 양식으로서의 종교, 형이상학적인 윤리로서의 종교라는 지식 또는 교양의 형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39)
그러나 다문화사회에서 교양 교육으로서의 종교 교육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더 필요해 보인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교육 방식은 다수로서 한국인이 소수로서 이주자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할 수는 있으나 다문화주의가 다수와 소수 구분 없이 각 문화 또는 종교 집단의 개별성을 동등하게 인정하는 것이라면 다수 문화에 편입한 소수자가 자신의 종교 정체성과 유산을 탐색할 ‘안전한 장소(safe place)’를 부정함으로써 결국은 정부와 사회의 다문화 목표로부터 이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40) 그런 의미에서 다문화사회에서 종교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면41) 특정 종교에 기초한 개별 종교 교육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Ⅲ. 교양 종교 교육, 개별 종교 교육, 협력 종교 교육
오늘날 세계화와 종교 갈등, 그리고 국간 간 이동의 결과로 유럽의 기독교 경우처럼 특정 종교의 국가 지배는 인종적, 종교적 다양성 앞에 무너지게 되었고, 게다가 종교의 권위가 더 이상 가족, 통치, 교육과 같은 사회 제도들을 정당화하지 못하는 소위 종교의 ‘세속화’로 인해 문화와 일상 전반에서 종교 자체의 역할이 축소되는 경향까지 발생하고 있다.42) 이런 사회 변화는 교육에서 종교 다양성에 대응하기 위한, 그리고 현재의 사회를 이해하고 세계 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한 새로운 관점의 종교 교육에 대한 논의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43) 이런 맥락 속에서 ‘종교 이해(religious literacy)’를 제고하기 위해 다양한 종교적, 비종교적 세계관을 교육하는 ‘교양 종교 교육’44)이 부상하였다.
교양 교육의 목표가 폭넓은 기초가 되는 일반 교육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지식을 얻을뿐만 아니라, 창의적이며 대안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가치를 탐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45) 교양 종교 교육은 교육을 하나의 특정 종교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종교 일반에 대한 교육을 의미한다. 영국 종교교육위원회(Commission on Religious Education)에 따르면, 종교적, 비종교적 세계관의 연구는 포괄적 학문의 핵심이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세계관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증가한 세상에서 성장하고 있으며, 삶의 태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을 내릴 지식을 받을 권리가 있다.46) 다시 말해, 사회구성원 개개인이 자신의 종교적 배경과는 상관없이 사회를 전체로서 이해하고 독자적으로 가치를 판단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다원적, 다문화적 민주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종교의 본질과 개개의 다양한 종교의 특징을 이해하게 하는 교육 방식이다. 이 방법론은 미국, 스웨덴, 영국, 덴마크, 노르웨이, 스위스 등지에서 이미 일반화되었고 종교 교육을 주장하는 우리나라 학자들 대부분이 선호하는 방식이기도 하다.47)
교양 종교 교육의 주장은 일차적으로 종교에 대한 광범위한 문맹이 사회에 존재함으로써 편견과 오해가 발생하고 평화로운 공존을 저해하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48) 다문화사회로의 이행은 소수자의 종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선행되어야 하나 종교적 문맹이라는 문제가 가로막고 있어서 이를 선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초중등학교에서부터 학문적, 비신앙적 관점의 ‘종교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내 이민자 중 무종교 인구가 65%에 달하고 이에 더해 한국인 중 무종교 인구의 비율도 절반 이상(2015년 기준 56.1%)49)을 넘어서고 있는데도 일부 특정 종단이 종교 교육을 교세 확장의 도구로 이용하는 데서 그 원인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이는 개별 종교 교육을 기피하게 하고 그 대신 종교 일반의 이해 교육으로 이어지게 하는 발판을 제공하고 있다.
다문화사회의 종교 다양성에 대처하기 위한 교양 종교 교육은 특정 종교에 치우치지 않고 종교를 중립적 또는 공정한 방식으로 가르칠 수 있을 때 존립 의의를 확보한다. 그러나 중립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대단히 어렵다.50) 종교 교육이 교양이나 학문으로서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교육하는 사람은 종교가 있을 수도, 그 반대로 없을 수도 있다. 교육자가 종교인이라면 그 사람의 종교 또는 종교적 성향에 따른 의식적, 무의식적 편향성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으며, 교육자가 무종교인일 때에는 무종교성(a-religiosity)에서 불가지론(agnosticism)이나 반종교성(anti-religiosity)으로 변질될 수 있다. 따라서 비록 다양한 종교가 비판적으로 논의될 수는 있을지라도 편향성이나 반종교성이 드러나게 되면, 즉 중립성 내지 공정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교양 종교 교육은 본래의 취지를 상실하게 된다.
교양 종교 교육의 공정성 문제는 교육 대상 종교를 어디까지 포함해야 하는가에서도 발생한다. 현실적으로 세계의 모든 종교를 다루는 것이 불가능해 ‘주요’ 종교만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지만,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이주민과 체류 외국인의 종교에 대한 국가 통계가 없어 주요 종교의 분류는 ‘추정’ 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다. 그런데 예를 들어 교양 종교 교육을 주장하는 상당수 연구자들조차 아랍국가 출신자들을 무슬림으로 간주하는 것처럼51) 그 추정은 출신국에 근거함으로써 다문화주의의 원리와 역행한다. 왜냐하면, 다문화가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출신국에 근거해 그들의 종교를 한두 종교로 획일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최근 사회 문제로 부상하는 난민의 경우 신청자 중 21.5%가 종교를 이유로 난민 신청을 하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52) 게다가, 이주 전 종교로 일본 이주여성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이 86.8%, 필리핀 이주여성은 가톨릭(37.3%) 다음으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29.9%)이라고 응답한 한 연구보고서처럼53) 우리나라에서 파생된 신종교들도 적지 않으며, 흔히 국내에서 세계의 주요 종교로 분류하는 이슬람교가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이 만만치 않은 것처럼 특정 종교의 종파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공정의 관점에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교양 종교 교육은 종교와 교육의 자유와 배치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종교 교육을 받지 않을 권리와 신앙 교육을 받을 권리도 있기 때문이다. 흔히 받지 않을 권리의 측면은 서구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처럼 필수 과목으로 지정할 때에도 면제권을 두어 해소할 수 있다.54) 그렇지만 개인이 스스로 신앙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 누구도 그런 선택을 침해할 수 없듯이 교육이 개인의 신앙, 영성, 유산을 탐구할 기회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 역시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이 때문에 오스트리아는 다문화와 다종교 상황을 고려하기 위해 국가가 인정한 16개 종교 단체, 예컨대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이슬람교, 유대교, 불교계 교단들이 참여하는 개별적이고 신앙적인 방식의 종교 교육을 택하고 있고, 벨기에도 유사한 방식을 도입하고 있으며, 핀란드는 비신앙적 방식이기는 하나 개별적으로 종교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55)
세계화,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 다국적 미디어 기업의 증가, 심지어 군사 조약 등을 통해 국가 간 경계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되었고, 더욱이 오늘날의 미디어 기술은 새로운 소통 공간, 형식, 전략을 만들어냄으로써 대면과 국가 간 소통 장벽을 허물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한편에서는 다른 나라에 있으면서도 모국의 문화와 종교를 이어가게 하는 통로로 작용해 문화적, 인종적, 종교적 차이를 불식시키는 데 제한 요인이 되고 있다.56) 소수자로서 이민자들이 민족이나 국가 정체성만큼이나 종교 정체성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어서 종교적으로 동기화된 행동을 타인이 비판하거나 간섭하려들 경우 오히려 자신의 신앙을 굳건히 하려는 심리를 강화시킬 수 있는데,57) 정보 통신 매체는 모국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종교 정체성에 자양분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종교를 유지하고 종교 정체성에 대한 탐색 욕구를 자극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한다.
또한, 개인이 참여하는 종교 집단과 개인의 종교성 정도가 개인적, 사회적 정체성에 깊이 관여한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종교성과 가치가 인간 삶의 모든 양태와 본질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네이로 외(Carneiro et al.)의 연구에 의하면, 종교에 따라 개인의 가치 기준은 사뭇 다른 것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기독교인, 유대인, 무슬림은 쾌락, 자극, 자주적 방향 결정과는 낮은 관계를 맺고 복종과 전통과는 높은 관계를 맺으며, 정교회 집단은 보편주의, 선행, 복종, 전통에 가치를 높게 두고 있으며, 불교 집단은 정치와 자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58) 그러므로 종교 형태가 가치의 우선순위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에서 소수자의 믿음과 영성을 인정하고 이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종교를 통해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개별 종교 교육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
다문화사회에서 교양 종교 교육은 학생들이 통합 환경 속에서 다른 종교들을 배우기 때문에 편견과 차별을 줄이는 데 유용하다. 개별 종교 교육은 자신의 종교 정체성과 유산을 탐색할 기회를 제공하는 데 유용하다. 그런 의미에서 개별 종교 교육과 교양 종교 교육을 결합한 슈바이처(Friedrich Schweitzer)가 제시한 “협력적 종교 교육”(Cooperative Religious Education)은 검토해볼 만하다.59) 그에 의하면, 이 방식은 다음 두 가지 방식을 결합한다. 첫째, 학생들은 자신의 종교 정체성을 탐색하고 같은 종교를 믿는 교사로부터 학습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제공받는다.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60)이 아니라, 즉 독단적인 접근을 피한 채 다문화사회에서 평화와 관용을 진작하고 비판적 질문 속에서 자기성찰적이 되도록 모든 주요 종교 전통들에 내재하는 공감과 보편주의를 교육하는 것이다. 둘째, 학생들은 다른 종교 배경의 학생들과 상호작용할 기회를 갖게 된다. 이는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진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 간에 공개적인 대화를 가능케 함으로써 편견과 갈등을 최소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슈바이처의 모델과 가장 근접하게 종교 교육을 실시하는 나라가 핀란드이다. 핀란드 공립학교의 종교 수업은 종교에 따라 개별적으로 조직되나 비신앙의 형태를 띠고 있다. 핀란드의 주요 종교 중 루터파(Lutheran)와 이슬람 공동체가 종교 교육의 중심에 있다.61) 이외에도 국가 교육과정에서는 13개 종교를 규정하고 있고 어떤 종교공동체에도 속하지 않는 학생들을 위해 ‘삶의 문제와 윤리(Life Questions and Ethics)’라는 과목도 별도로 지정하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종교 교육에서 면제 신청을 할 수 있으며, 대신 학교 외부에서 자신들의 종교 공동체에서 제공하는 교육에 참여할 수 있다. 이런 기회를 가장 많이 활용하는 학생들은 예수교 예수성도교회와 몰몬교인들이다. 각 종교반의 경우 그 종교를 믿지 않는 학생들도 참여가 가능하며 내용은 비신앙적 형태로 구성된다. 하지만 현실적인 측면에서 여전히 문제점을 노출한다고 지적교육 목적은 학생들을 개종시키거나 그들 자신의 종교만을 믿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정체성과 세계관 구축을 위해 종교를 통한 지식, 능력, 경험 등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 교사 또한 종교인일 필요는 없다.62) 특정 종교 기반의 개별 종교 교육이 비신앙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지 우려도 있기에 ‘모순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63) 원칙론은 종교 다양성 속에서 개인의 종교 정체성을 보호함과 동시에 보편주의를 지향한다.
슈바이처의 모델이 이상적일지라도 우리나라의 교육 현장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종교계 간의 갈등과 무종교인이 많아 종교 교육 자체가 거의 모든 학교에서 실시되고 있지 않으며 대학 입시에도 필요성을 담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종교 교육을 교과목 형태로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필수 과목 지정이 거의 불가능하여 선택 과목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이 경우에도 운영상 여러 문제점이 뒤따른다. 예를 들어, 교양이나 학술적 측면은 교사의 역량을 통해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으나 개별 종교에 대한 교육은 해당 종교의 전문가나 성직자가 담당해야 하는데 하나의 교과목에 여러 명의 교사가 번갈아 수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사실상 슈바이처 모델에 근접한 종교 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핀란드도 최근 몇십 년 동안 핀란드에 등록된 종교 공동체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함에 따라 교사 양성이나 강좌 개설 비용이 급증하고 있다.64)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핀란드처럼 비신앙적, 학술적 양태의 개별 종교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선택 과목인 하나의 교과목을 기독교반, 불교반, 이슬람반처럼 여러 개로 쪼개야 한다는 점에서 무리가 있으며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학생들의 종교가 노출돼 자칫 구분이나 차별의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다음 장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하겠으나 다문화와 학교 현장이라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종교 교육은 협력적 형태가 적합하되 ‘실용적 타협책’65)으로서 사회나 역사 과목처럼 통합교과목에서 다루거나 동아리 활동, 방과후 수업, 자유학년제 또는 자유학기제 등을 활용한 비교과활동이 적절하다.
Ⅳ. 다문화사회에서의 종교 교육 방향과 제언
현재 교육계는 학생들의 인성 발달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나 종교가 인성에 미치는 영향에도 불구하고 종교 활동 또는 종교 교육은 대학과 극히 일부 사립(종립) 초중고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학교 현장에서 일종의 ‘금기’ 사항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규 교과목으로서의 종교 교과는 물론이거니와 비교과활동으로 예술체육활동, 동아리활동, 진로활동, 주제선택활동, 방과후학교, 다문화 교육 등 어디에서도 종교 교육은 진행되고 있지 않으며 심지어 종교 동아리조차 구성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 교육을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공염불에 지나지 않으며 교양 또는 종교학으로서의 종교 교육이 종교 중립성과 학문적 가치에 기초하므로 실행 가능하다는 주장도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기 어렵고 종교 자체에 비우호적인 부모들도 적지 않아 설득력을 잃는다.
다문화사회에서 종교 교육은 개별 종교 교육의 구성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여 일종의 타협책으로 통합교과목을 통해 진행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상일 것이다. 종교 교육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으나 이미 역사 등의 교과목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에 비해 상당히 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관이 아직 형성되기전 초등생 이나 입시라는 당면한 목표를 벗어나기 어려운 고등학생의 경우 교과목내 종교 교육을 강화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다면 실질적인 방안은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비교적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보자. 천재교육의 <중학교 역사 1>에서는 ‘로마제국과 크리스트교’, ‘불교문화의 형성과 인도 통일 제국’, ‘굽타 왕조의 발전과 힌두교의 등장’, ‘이슬람교의 성립과 이슬람 제국’을 소항목으로 설정하고 종교를 국가[왕조/제국] 형성과 연결할 만큼 종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다.66)
통합교과목에서의 종교의 소개는 지식의 전달, 즉 교양 종교 교육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다종교·다문화 상황을 고려한다면, 즉 소수 종교 출신의 학생을 위해서는 개별 종교에 관한 기술이 보다 강화될 필요가 있다. 위 천재교육에서는 기독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4개 종교만 다루고 있는데, 이것이 중학교 학습량을 고려한 불가피한 측면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적어도 개별 종교의 이해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교리에 대한 설명이라도 보다 강화될 필요가 있다.67) 예를 들어, 기독교의 성립 배경으로 작용한 교리에 대해서는 유일신 사상과 우상 숭배 금지, 이슬람교의 교리에 대해서는 우상 숭배 배격, 알라에 대한 절대적 복종, 평등으로 설명한다. 예수와 알라라는 이름을 제거하면 이 교과서의 교리에 대한 설명으로는 각 종교를 구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힌두교의 변화무쌍하고 불연속적이며 다양한 체계와 구조에 대한 설명없이 단순히 ‘체계적인 교리가 없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사실상, 종교와 관련된 부차적인 지식에 집중하고 있어서 협력적 종교 교육은 물론이고 교양 종교 교육으로서의 기능마저 상실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종교에 대한 보다 심화된 교육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교육 당국과 개별 종교의 종단이나 교단의 협력이 무엇보다도 요구된다. 먼저, 개별 종교 집단들은 연대하여 교육 당국과의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교육과정 개정과 교과서 등의 집필과 검인정 과정에 참여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 개별 교단이 선·포교의 수단에서 벗어나 종교 간 갈등 해소와 다문화사회의 목적성에 부합하면서도 종교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엄격한 통제 장치를 마련한다면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충분히 가능하다. 이는 적어도 교육 현장에서 완전히 배제된 종교 교육이 통합교과목 형태 속에서라도 의미를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된다.
둘째, 개별 종교 집단과 교육 당국의 협력하에 개별 종교에 대한 심화된 프로그램이나 콘텐츠 개발을 진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비교과활동의 하나로 현장학습이 활용되고 있는데, 진로활동나 예술체육활동의 일환으로 산업체, 박물관, 미술관 등을 견학하거나 체험하는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다. 그렇지만 학년이 거듭할수록 현장답사 장소가 줄어들어 놀이공원이나 유원지 등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고, 종교시설의 경우에는 역사문화시설로 지정된 사찰, 성당, 교회 등이 아니라면 답사 장소에서 제외되고 있다. 종교 간 갈등을 말하면서도 정작 종교시설의 방문이 금지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 간 중립성을 유지한 채 현장 방문을 통해 개별 종교를 이해할 수 있는 심화 프로그램의 도입은 검토해볼 만하다.
또한, 공교육의 목적을 유지하면서도 개별 종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교육자료의 개발도 검토할 수 있다. 교육 당국은 종교 교육자료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고 개별 종교 집단은 이에 기초하여 자료를 개발한 후 교육 전문가들의 공적 검증을 거쳐 교육청 등에 제공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2023년 2월 23일 교육부는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교육 혁신 방안을 발표하였다.68) 주요 골자는 2025년부터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AI 디지털교과서’를 보급하겠다는 것이다. 디지털 교육이 교육계의 추세라는 점을 상기하면 개별 종단은 자신들 종교, 특히 교리에 관한 내용을 강화한 동영상 등의 디지털 콘텐츠를 개발하고 교육 당국은 이를 수합하여 교육 현장에 보급할 수 있는 방안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셋째, 종교계와 교육 당국은 종교 교육이 초중고 비교과활동에 포함될 수 있도록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경기도 남양주시 심석중학교 교장 이ㅇㅇ에 의하면,69) 2010년경 한 교원이 비교과활동의 일환으로 종교 동아리를 조직·운영하였으나 1년 만에 학교 측에 의해 해산되었다고 한다. 이유는 그 교원이 다문화사회에서 요구되는 보편주의를 이탈하여 특정 종교의 우월성과 전파에 동아리활동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후 학교에서의 종교 교육은 현재까지 금지되고 있다고 한다. 종교 교육의 회피라는 소극적 방법이나 앞서 설명한 통합교과목의 종교의 발생과 전파 과정 등 피상적인 지식 전달만으로는 다문화사회의 종교 갈등에 대처할 수 없다. 대부분의 비교과활동이 학생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특정 종교 이념에 지나치게 경도되지 않는 한 종교의 자유와 권리 측면에서 종교 교육의 실시 여지는 존재한다.
넷째, 종교 교육을 담당하는 교원의 질적 개선과 양성도 고려해야 한다. 통합교과목의 교원만 해도 종교를 지식의 관점에서 가르치는 종교 비전문가여서 개별 종교의 본질을 교육하는 데에는 능력이 제한적이다. 교원 양성과 연수 과정에 종교학과 종교 교육학은 포함되지 않고 있으며 교원의 다문화 교육 연수조차 종교가 교육 항목에 빠져있어서 교원의 질적 개선을 위한 기회가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종교 교육과 관련해 군대의 군종 제도는 참고의 가치가 있다. 군종은 종교와 인성 교육을 결합해 군 정신전력 강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병과이다. 비록 군종은 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출신으로 제한되어 소수 종교가 제외되어 있기는 하나 종교의 자유와 권리 측면에서 해당 교단의 성직자, 즉 해당 종교의 전문가가 장교로서 장병에게 선택적으로 종교 생활을 지도하고 있다. 군종처럼 독일의 경우 종교 교육 교사는 자신들 종교기관이 발급한 인증서가 있어야 하고 국가와 종교기관은 교사의 훈련과 선발, 커리큘럼과 교육자료 개발에 공조하고 있다.70) 우리나라 공교육에서의 종교 교육도 해당 종교 교단의 전문가가 일정 수준의 공적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종교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종무실은 다문화사회를 고려한 역할과 참여를 늘려야 할 것이다. 2023년 종무실 3대 사업 중 예산 편성이 가장 많은 ‘전통종교문화유산 보존’ 사업(360여억 원)과 두 번째로 많은 ‘종교문화시설 건립’ 사업(260여억 원)이 불교계와 천주교에 편중되어 있는 점은 차치하고 전자의 사업은 문화재청 사업과 중복되고 있으며 개별 종교기관의 종교시설 건립에 국가가 지원하는 것 또한 종교 중립성에 저해 요소이기도 하다. 게다가, ‘종교문화활동 지원’ 사업(226여억 원) 중 예산이 가장 많이 배정된 ‘종교문화행사 지원’ 사업(155여억 원)도 기성 종교와 전통 종교 일부에 편중되어 있어서 다문화사회에서의 종교 지형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종무실은 소수 종교의 콘텐츠 개발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보다 전향적으로 강구해야 할 것이다.
다문화사회의 인식과 그에 따른 종교 교육에 대한 학문적 논의는 15년정도의 짧은 시간 속에서 대체로 선언적이거나 원론적인 성격이 주를 이루었다. 예컨대 고병철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실현’에 종교 교육의 목적을 두어야 한다고 말하였으며, 김중수는 세계의 평화적 공존을 위해 종교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육콘텐츠 개발이 시급하다고 진단하였고, 나권수와 윤재근은 종교에 관한 균형 있는 지식을 습득하고 건전한 종교관을 정립하는 방향으로 종교 교육이 나아가야 한다고 피력하였으며, 류성민은 교육계가 종교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주문하였다.71) 이와 같은 토대 연구를 통해 종교 교육에 대한 기초가 상당 부분 확보되었으므로 이제는 총론에서 각론으로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특히, 교육 현장이 종교 교육을 금기시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더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각 종단에서 발간한 종교력(종교기념일)을 바탕으로 한국형 상호문화주의 달력을 개발해 활용하자는 석창훈의 연구처럼72) 경험론적이고 실증적인 연구와 제안이 더욱 필요해지고 있다.
Ⅴ. 맺음말
최근 급속도로 전개되고 있는 다문화 사회화는 ‘단일 민족 국가’ 개념을 뒤흔들며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정부, 학계, 민간 등 사회 전 분야가 이에 대처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현재까지 큰 실효성을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2011년 독일 총리 메르켈(Angela Merkel), 영국 총리 캐머런(David Cameron),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Nicolas Sarkozy)가 다문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인종적, 문화적, 종교적 갈등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증폭하고 있다며 몇 달 간격으로 국가 다문화주의 정책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낸 바 있다.73) 이런 실패의 목소리가 들려올지라도 다문화사회는 엄연한 현실이며 그래서 다문화주의에 대한 정책적 노력을 뒤돌아보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다문화주의 실패 선언은 종교적 극단주의에서 비롯된 테러가 주요 원인, 즉 종교적 차이가 유발한 사회적 긴장과 갈등이 기저에 자리한다.74) 종교가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촉발하고 있는 현실은 아이러니 그 자체이다. 다문화수용성에 관한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의하면, 2018년 종교가 다른 사람을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고 답한 우리나라 국민은 상관없다고 답한 83.3%에 비해 수치가 현저히 낮을지라도 2015년 13.5%보다 소폭 증가한 16.7%에 달했다.75) 이는 어쩌면 종교가 다른 이주민이 우리 사회에 ‘동화’되지 않으면 유럽의 상황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종교적 갈등이 극단화할 수 있음을 내포한다. 일부 종교 단체가 무슬림과의 결혼이 이슬람 포교 정책의 하나라며 일부다처제, 폭력의 정당화, 시한부 계약 결혼 제도 등을 문제 삼아 무슬림과의 결혼 반대 캠페인까지도 벌이고 있는 상황76)은 극단적 종교 갈등을 전조하는 듯하다.
종교 교육의 필요성은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중요도가 배가된다. 하지만 지식, 학문, 교양, 소양으로서의 종교 교육이 다문화사회에서 일정 수준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는 있으나 개별 종교의 교리 등 본질보다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 등을 통해서는 불완전하다. 종교의 자유와 권리 측면에서 개인은 종교를 선택하고 심화할 수 있어야 한다. 다문화주의의 가장 효과적인 접근법이 각 인간 집단의 고유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교 교육이 나아갈 길은 교양으로서의 종교 일반과 개별 종교가 결합된 협력적 모델이 적절하다. 다문화사회에서 종교계의 주요 지향점이 대체로 “신자 만들기”77)라는 이유로 종교 교육을 무작정 금지하는 것이나 교양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종교가 함의하는 본래 가치를 반감하기 때문이다.
협력 종교 교육이 종교 교육의 방향성이라면 공허한 주장이나 이론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종교 교육을 공교육의 정규 단독교과목으로 실시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종교 교육은 통합교과목과 비교과활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적인 타협의 접점으로 보이며 이를 위해서는 교육 및 정책 당국과의 협력이 무엇보다도 요구된다. 그런 협력 속에서 종교계는 교육과정 개정이나 교과서 집필 및 검인정 과정, 개별 종교에 대한 보다 강화된 프로그램이나 콘텐츠 개발에 참여하고 비교과활동으로서 종교 활동이 가능토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하며 종교 교육 교사의 질적 개선과 양성에도 관심을 표명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교육의 주무 부처는 아니나 종교정책 총괄기구로서 문화체육관광부 종무실은 종교 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전향적으로 이에 대한 역할과 참여를 늘려야 할 것이다. 더불어, 선언적이고 상징적인 종교 교육 연구에서 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학계의 후속연구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