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는 말
공동체의 정의와 구분, 나아가 공동체의 경향이나 바람은 다양하다.1) 너무 다양해서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거론되기도 한다.2) 하지만 공동체는 서로 다른 개인이나 집단으로 구성되기에, 공동체에서의 다양한 목소리와 성향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공동체는 이러한 다양함 속에 조화나 혼란 혹은 통일된 모습으로 존재하고, 개중에 다양한 문화가 조화롭게 존재하는 공동체가 선망의 대상이 된다.
유네스코(UNESCO)는 문화를 “한 사회와 집단의 성격을 나타내는 정신적, 물질적, 지적, 감성적 특성의 총체이며, 또 예술이나 문자의 형식뿐만 아니라 함께 사는 방법으로서의 생활양식, 인간의 기본권, 가치, 전통과 신앙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이라고 정의했다.3) 이를 공동체에 적용하면 문화는 공동체의 성격을 나타내고, 함께 사는 방법을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이라 말할 수 있겠다.
공동체에서 상대적으로 약소한 문화는 존재에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때로는 의도적으로 이를 지키고자 노력한다. 유네스코는 문화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2005년 문화 다양성 협약을 채택했다. 그러면서 문화 다양성이 인류의 공동 유산으로서 개인적, 집단적 풍요를 위한 자원인 동시에, 현재와 미래 세대를 위한 혜택으로 인식하여, 여러 구성원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상호 작용하기 위해 증진되어야 함을 강조했다.4) 문화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이러한 노력은 문화 획일주의나 공동체의 혼란을 지양한다.
공동체에서 약소 문화의 존재 위협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런데, 조금 자세히 공동체에서의 문화 다양성에 대한 위협을 들여다보면, 그 구조가 간단하지 않다. 그 가운데에는 문화 다양성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과 그 상황의 의도적 유도라는 문제도 있다. 겉으로는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속으로는 그럴싸한 미명아래 다양성의 가치가 뒤로 밀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 특정 문화에 대한 ‘억압’이 노골적으로 전개된다.
억압은 “자기의 뜻대로 자유로이 행동하지 못하도록 억지로 억누름.”이다. 억압이 좀 더 강해지면 ‘강압’이나 ‘탄압’으로, 약해지면 ‘압박’이나 ‘억제’로 표현된다. 일반적으로 억압은 부정적 의미를 갖는다. 물론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하는 공동체에서는 억압이 갖고 있는 통제와 조절의 기능이 필요하다. 자기 맘대로 행동하도록 방치할 수 없는 경우가 공동체에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공동체와 억압의 문제를 천편일률적인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고에서는 하나의 관점에서 시도하는 일방적 비판이나, 우리에게 익숙한 이분법적 접근 혹은 현실과 괴리되어 진행하는 이상에 근거한 비판을 지양한다. 본고에서는 먼저, 공동체에서의 문화 다양성 억압에 대한 논의를 중국 소수민족의 관찰을 중심으로 전개한다. 그동안 수행한 연구와 최근의 변화를 토대로 중국 정부와 소수민족 사이에 존재하는 억압을 고찰하며, 공동체를 위한 보다 나은 방향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 속에서 일방적 비판이나 바깥의 시선에서 행하는 단정적 결론만이 최선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유럽의 식민지로서 고유의 문화에 커다란 변화를 겪은 라틴아메리카의 경우를 참고하고자 한다. 특히 유럽인과 유럽문화에 맞선 선주민과 이들의 억압과 저항에 주목하고자 한다. 문화 다양성의 억압을 경험하고 이를 이론으로 성숙시킨 라틴아메리카 지식인들의 고민과 경험은 참고할 점이 많다. 특히 중국 소수민족의 경우 자신들 고유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억압에서, 라틴아메리카 지식인의 논의는 중국 소수민족의 미래와 자신을 변호할 이론으로 가공될 가능성이 크다.
분명, 중국 소수민족 공동체의 문제에는 특수성이 있다. 그러나 커다란 관점에서 보면 라틴아메리카에서의 경험과 비판적 연구와 이론은 중국 소수민족 공동체의 특수성을 확장할 계기가 될 수 있다. 나아가 이를 통해 문화 다양성에 대한 억압의 전개, 예를 들어 저항, 내부갈등, 수용, 일체화 같은 패턴을 적용해 볼 수 있고, 동시에 중국 소수민족 공동체의 미래도 가늠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고찰의 과정 속에 우리 공동체는 어떠한지, 그래서 바람직한 공동체는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중국 소수민족 공동체, 라틴아메리카의 선주민,5) 미국의 아시아인, 한국에서의 외국인 문제로 확장하며 바람직한 공동체가 추구할 문화 다양성에 대하여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Ⅱ. 중국 소수민족의 억압과 실태
중국 소수민족 공동체의 문화 다양성에 대한 억압을 고찰하는 본 장에서는 억압을 ‘보이는 억압’과 ‘보이지 않는 억압’으로 구분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우리가 주로 지적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강압에 의한 보이는 억압이지만, 정말 두려운 것은 보이지 않는 억압이다. 이에 대하여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알아보겠다.
보이는 억압은 대개 노골적이다. 억압 주체가 강한 힘을 쥐고 있을 때 시행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소수민족 언어를 한어로 대체시키려는 일도 문화 다양성에 대한 보이는 억압이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중국어(中國語)와 한어(漢語)는 다르다. 중국어는 중국이란 국가의 언어이고, 한어는 한족이 사용하는 언어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어가 중국어가 되었다. 동시에 다른 민족 언어의 사용은 제한되었다. 과거 민족 언어의 사용 제한은 보이는 억압보다 보이지 않는 억압 속에 진행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보이는 억압으로 노골적으로 진행된다. 2020년에는 중국어 교육 강화 방침에 따라 몽골어 사용에 제한이 걸렸다. 물론 이에 대하여 몽골족은 강하게 반발하고, 이를 두고 내몽골에 대한 문화말살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앞서 네이멍구 교육당국은 개학을 앞둔 지난달 새 학기부터 초등학교 1학년과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그간 몽골어로 가르치던 ‘중국어’ 과목을 중국어로 가르치는 ‘어문’(국어) 과목으로 대체한다고 밝혔다. 또 내년과 후년부터는 각각 도덕·법치(정치)와 역사 과목도 기존 몽골어에서 중국어로 수업언어를 바꾸기로 했다. 교과서는 중국 당국이 펴낸 통합 국정교과서를 사용한다.6)
중국 당국의 민족 언어 제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신강(新疆)위구르와 티베트자치구에선 2017년과 2018년부터 이런 제도가 도입됐다. 나아가 이쪽 지역의 탄압과 착취를 기록한 글에서는 이들을 강제연행하고, 재교육 시키는 것을 폭로하고 있다. 그 가운데 민족 언어 사용의 금지와 억압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조금의 자비도 없이 중국어를 사용하는 재교육 시스템의 가면을 쓸 것인가7)
위구르족 인구가 다수인 일부 지역에서 5세 이하 아동의 70퍼센트가 보통화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우정 유아원/유치원’에 수용되어 있으며8)
수감자들은 온종일 중국어를 공부했다. 카자흐어와 위구르어는 허용되지 않았다.9)
이들의 현실은 다른 어느 지역 소수민족보다 참혹하다. 『신장 위구르 디스토피아』에서는 첨단기술을 이용한 강제연행과 감금, 그리고 이들의 민족성을 제거하는 재교육 등을 폭로하고 있다. 그래서 “소수민족으로서는 국가권력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10) 출산율 제한부터 민족 언어의 사용 제한과 중국어의 사용 강요가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11)
요녕(遼寧)성 등 중국 동북지방 일부 조선족 초중학교에서는 2020년 가을 학기부터 어문 교과목에서 전국 공통 교과서를 도입했으며, 이 조치를 단계적으로 확대했다. 반면에 내몽고자치구 교육청은 3개 과목의 국가 공통 교재가 애국심과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을 고취한다고 설명했다.12) 물론 중국 중앙도 민족 언어 사용 제재 비판을 반박하고 있다. 조용(趙勇) 중국 국가민족사무위원회 부주임은 다음처럼 말했다.
사용을 지지하는 것 자체가 최선의 보호입니다. … 우리는 이들의 사용을 관심하고 지지하는 외에 ‘중국어 자원 데이터베이스’를 별도로 설계하여 이런 언어와 문자를 수집·정리·개발·활용하고 있습니다. 총적으로 소수민족 민중들이 자체 민족의 언어를 배우고, 자체 언어로 일하고 생활하는 데는 아무런 장애가 없고, 서방 언론이 의도적으로 먹칠하는 이른바 문화멸종 문제는 전혀 없습니다.13)
표면적으로는 맞는 말 같다. 그러나 구체적 사안에 들어가면 수긍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것은 서방 언론의 탓으로 돌릴 수 없는, 문화 다양성을 억압하는 중요한 사례이다.
2020년 말에는 중국 내 소수민족 문제를 관할하는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수장에 소수민족을 앉히던 관례를 깨고 한족을 임명했다.14) 또한 과거 시행하던 소수민족 대학입시 가산점 정책을 축소했다.15) 이에 대하여 장모(張謀)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정책법규연구국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편으로는 중국의 기초교육 균형화 수준이 현저하게 향상되어 소수민족 학생들이 누리는 교육자원이 끊임없이 최적화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발전에 따라 일부 성과 자치구에서는 자체 성과 자치구 내에서 소수민족 수험생들에게 보편적 특혜성 가산점 정책을 시행해 왔는데 지금 이미 정확도가 떨어진 상황입니다. 따라서 가산점 부여 지역·대상·여건을 보다 정확하게 정립해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개혁을 실시하고 있습니다.16)
위의 말에서 소수민족의 교육수준이 높아졌다는 점은 소수민족 교육이 중앙 정부의 교육 체계 안에 통제되고 있음을 말한다. 물론 이러한 교육 내용에는 억압의 정당성과 중앙정부의 이념과 가치가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소수민족에게 혜택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하나의 중국에 대한 중국 중앙의 자신감에서 비롯한다.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과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예전의 장치들이 불필요해졌다. 그만큼 중국이 강해졌다. 물론 이러한 것은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에 대한 중국의 강경한 태도에서도 발견된다.
앞서 보이는 억압을 언급했지만, 보이는 억압도 때론 보이지 않는 억압과 연계되어 작동한다. 억압이란 행위는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결과로만 놓고 봤을 때 어떤 억압은 양면성을 갖는다. 그곳의 발전과 삶의 개선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억압을 당하는 사람도 편이 나눠지고, 억압을 주동하는 무리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전통의 것은 현대의 것보다 불편하다. 대개 과거의 낡은 환경은 전통과 연결되거나 소수민족 정체성과 관련이 깊다. 그리고 이를 대체하는 것은 소수민족 정체성이나 전통과 무관한 현대적 편리함, 실용성, 특수성이 배제된 가치와 미적 특징이다.
도시개발, 도시화, 현대화, 정보화 등의 명분 속에 낡은 전통을 제거하는 작업은 내부적으로도 환영을 받는다. 굳이 소수민족의 상황에서 찾지 않아도, 한국의 70년대를 수놓았던 새마을 운동에서도 이러한 형태를 엿볼 수 있다.17) 물론 이러한 개발과 발전은 소수의 것만 표적으로 삼지 않겠지만, 애석하게도 결과적으로 소수의 것은 살아남기 어렵다.
거주 공간에는 국가 주도하에 새로운 도로와 건축물이 들어선다. 낙후한 상태로 둘 수 없다. 하지만 환경이 변하면 그 환경에서 얻는 경험도 변한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이름 속에, 전통과 다양성은 현대적 모습으로 변신한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수밖에 없지만, 문화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탐탁지 못한 면이 있다.
장소가 소수민족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 것이 있다.18) 그 속에서 장소의 변화, 즉 장소를 변화시키면 그 장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와 습속이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소의 변화에서 장소에 거주하는 이들로부터 거부되는 것도 있지만, 환영받는 것도 있다.
보이는 억압은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지만, 보이지 않는 억압은 그렇지 않다. 대게 내부에서 동조가 일어나고, 대립의 구도가 내부와 외부가 아닌, 차츰 내부의 갈등과 대립으로 전개된다. 더구나 외부의 억압을 지지할 세력과 상황이 내부에 만들어지면 문제는 더 복잡하게 꼬인다.
운남성 이족(彝族) 자치현에서 대학 학력인구의 변화를 보면서, 이러한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 2010년 기준으로, 전체 현(縣)의 상주인구 가운데 대졸(전문대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은 10,177명, 고졸(전문학교 포함)의 학력을 가진 사람은 22,868명이다. 2000년과 비교하면, 10만 명당 대졸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1,564명에서 4,133명, 고졸의 학력을 가진 사람은 5,817명에서 9,288명으로 증가했다. 또한 만 15세 이상의 문맹인구는 10,080명이다. 10년 전과 비교하여 7,506명 정도 감소했고, 문맹률은 7.85%에서 4.09%로 3.76포인트 하강했다.19) 학력 수준의 증가와 문맹인구 수의 감소가 뚜렷하다. 물론 여기서 기준으로 삼은 언어는 한어지, 소수민족 언어가 아니다.20)
중앙정부의 지침을 따르는 교육을 대학에서는 한족 언어로 받는다. 과거 초중고에 소수민족 언어를 사용하는 소수의 민족학교가 존재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중국 사회에서의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문화 다양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억압이 자연스레 작동하고 있다. 이미 구조적으로 갖춰졌다.
이렇게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은 자신의 직장에서 과연 어떤 생각으로 행동할까? 나아가 이들이 소수민족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소수민족 지역의 공무원이 된다면 어떨까? 과연 이들에게 민족의 미래 결정권을 맡길 수 있을까? 소수민족과 중앙정부의 대립적 관계에서 이들은 어디에 위치할까? 외모는 소수민족이지만 생각은 중앙정부의 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문화 계승의 선택권을 맡기는 것이 옳을까? 의문은 다양하게 계속 이어진다. 문화 다양성 억압으로 촉발된 파생적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중국 중앙은 소수민족지역의 공무원에 소수민족 출신을 우대하여 나름의 자치를 보장한다. 위의 언어사용과 비슷하다. 대외적으로는 자율을 존중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른 것처럼, 자치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이러한 사실은 운남 이족 자치현(自治縣)의 공무원 비율에서도 가늠할 수 있다. 15개의 자치현을 중심으로 소수민족 공무원 비율과, 과급(科級)이나 처급(處級) 이상의 고위직 공무원 비율을 보면, 중국 전체에 비해 이곳의 소수민족 공무원 점유율이 비교적 높음을 알 수 있다. 전체 인구에서 소수민족이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공무원도 어느 정도 비율을 맞추고 있다. 이는 중앙정부에서도 발견된다. 전국인민대표대회(全國人民代表大會)의 대표 선출은 규정된 인구수에 따라 선발하지만, 소수민족에게는 기준에 미달하더라도 대표를 선출하게 하여, 모든 소수민족이 자신의 대표를 갖도록 한다.21)
소수민족 자치 지역은 소수민족이 주도적으로 다스리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가시적인 숫자와 통계, 몇몇 정책만으로 소수민족을 배려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들이 갖고 있는 생각, 정체성이 더 큰 문제다. 소수민족 언어 사용이 제한되고, 소수민족 정체성이나 전통과 무관하거나 때론 이에 반하는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의 사고는 이미 소수민족을 대변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어쩌면 이들은 중앙의 의견과 생각을 전하는 전달자로서 소수를 대변하기보다 소수의 위치에서 중앙의 생각을 전달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문화 다양성에 대한 보이는 억압이나 보이지 않는 억압이나, 결국 소수의 문화에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소수민족 공동체에서 억압은 강압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또한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침략과 지배의 관계로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오랜 관계 속에 보이지 않는 관계가 설정되고, 보이지 않는 억압이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중국 소수민족의 상황은 다양하다. 티베트자치구나 신강위구르자치구의 경우처럼 강한 억압이 진행되는 곳도 있다. 이곳에서는 정부와 소수민족의 대립, 한족과 소수민족의 대립, 소수민족 내부의 대립 등, 다양한 형태의 대립이 존재하며 변화하고 있다. 정부는 강한 억압의 흔적을 지우며 대내외적으로 소수민족 지역의 발전을 선전하고 있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은 현혹되어 넘어가기 쉽다.
정부가 승인한 절도의 한 유형인 이 징발시스템은 중국어 지식이라는 문화적 자본의 선물로 ‘신장을 원조’하는 ‘빈곤 경감’이라는 미사여구로 정당화된다. 또는 구금자들이 훈육된 산업 인턴의 ‘인생 기술’을 획득하도록 돕는 한족 공장 소유주로 포장된다. 굴지의 한 관료는 자신이 쓴 글에서 구금 공장단지에 대해 찬양하면서, ‘투르크계 무슬림 농민과 양치기들이 공장에 도착하자, 짚신 대신 가죽 신발을 신은 산업 노동자가 되었다’고 썼다.22)
문제는 확장된다. 이들의 삶에 대한 국가 주도의 한족 독점 기업 권력의 도입은 민족과 계습의 차이를 넘어 공장 노동의 소외를 가속화한다.23) 소수민족 문제는 다양한 파생문제를 양산하지만, 결국 지금 중국의 추세와 소수민족이 처한 상황을 보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하나의 중국으로 융합될 것이다.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 민족 융합을 강압적으로 추진하면 빠른 결과를 볼 수 있지만, 많은 저항과 반작용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에 상대가 동의하여 협조하는 방법은 다소 느리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중국의 ‘만만디’라는 말처럼, 중앙은 다소 느긋한 전술을 펼치겠지만,24) 당근과 채찍, 보이는 억압과 보이지 않는 억압의 조율 속에 변화를 유도하며 문화 다양성을 하나의 중국에 맞추고자 하는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 마치 중국 정치 체계가 공산당 주도하의 다당제인 것처럼, 중국 중앙 주도하의 (여기서 중국어가 한어가 된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민족문화 체계를 이룰 것이다. 결국 소수민족의 문화 다양성은 하나의 문화로 통일되고, 그 과정 속에 소수민족 언어도, 소수민족 교육도, 소수민족 자치도 하나의 표준에 점차 맞춰질 것이다.
Ⅲ. 라틴아메리카의 억압과 저항
중국에서 중앙정부와 소수민족 사이의 관계는 근대이후 극심해진 식민지와 피식민지의 관계와 닮았다. 이를 라틴아메리카의 경우와 비교하며, 그들의 생각에 귀 기울여 보면, 소수민족에게 가해지는 문화 다양성 억압의 전개와 대응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는 유럽의 식민 지배를 받아 지금까지 어려움 속에 지내고 있다. 식민 지배 속에서 이들의 문화는 유럽의 문화에 잠식되었고, 심지어 자신들의 문화를 읽고 생산하는 이론조차 유럽의 이론에 오염되었다.
엔리케 두셀(Enrique Dussel, 1934~)은 자신이 활동하던 시기인 1950년대에 아르헨티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르헨티나가 서구문화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행여 이를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사람으로 취급되었다며, 다음과 같이 당시의 상황을 언급한다.
우리가 공부한 철학은 그리스에서 출발했고, 그리스는 까마득히 먼 우리의 기원이라고 생각되었다. 아메리카 선주민 세계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고, 우리를 가르친 어떤 선생님도 철학의 기원과 아메리카 선주민을 연관시키지 않았다.25)
하지만 그는 아르헨티나를 떠나 낯선 유럽, 자신들 문화의 기원이라고 여기는 유럽에 가서 자신과 유럽인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확장되어 빈곤의 본질이 ‘억압’이라는 깨달음 속에 그는 해방철학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는 필자가 만난 중국 소수민족 친구들의 깨달음과 닮았다. 그 가운데 몽고족 친구는 자신의 고향에서는 자신이 특별한 소수민족이 아닌 그저 평범한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며 지냈다고 한다. 한족과 북방 유목민족의 대척점에 있었던 만리장성을 보고도, 우리의 만리장성이라며 서슴지 않고 자랑했다. 그의 머릿속에 몽골 제국의 역사와 정체성은 없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북경이라는 대도시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며 소수로서의 특별함을 절감했다. 급기야 졸업 후에 이 친구는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를 찾기 위해, 출판사에서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에 투신했고, 몽고족 배우자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아이의 민족 정체성 교육을 위한 환경(몽고족 교육기관)을 찾아, 직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도 마다않고 이사했다.
약소 문화는 억압을 받는다. 그 억압이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종국에 이들의 문화는 사라진다. 식민주의는 라틴아메리카 식민지에 체계적인 억압을 자행했다. 식민지가 갖고 있던 문화의 다양성을 억압하고 제거했다.
그래서 “억압에 뒤이어, 지배자의 표현 양식 및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신앙과 이미지가 강요되었다. 이들은 피지배자의 문화 생산을 방해”하였다.26) 즉, 선주민의 문화를 억압하고, 지배자의 문화를 이식했다. 그리고 “고도의 정치군사력과 기술력을 통해 자신들의 이미지 패러다임과 주요 인식적 요소들을 모든 문화 발전 방향의 규범, 특히 지적·예술적 규범으로 강요하였다.”27) 이러한 과정은 잔모하메드가 지적한 “제국주의가 식민적 단계에서 신식민적 단계로 진행할수록 물리적 폭력보다는 인식론적 폭력이 더 효과적으로 작용하며, 지배자의 생산양식과 가치체계가 피지배자의 ‘동의’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헤게모니적’ 방식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된다.”는 주장과 통한다.28)
유럽화의 과정은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중국 소수민족의 자원적(自願的) 한화(漢化)에서도, 일제의 문화통치에서도 발견된다. 점차 보이는 억압에서 보이지 않는 억압으로 전환되며, 문화를 보는 자신들의 관점이나 근거 자체가 지배자가 이식한 것으로 변한다. 자신의 문화를 표현하고, 이를 이해하는 틀이 바뀌면, 자신들의 문화가 좋게 보일 리 없다. 그리고 마침내 “문화적 억압과 집단학살(genocidio)로, 아메리카의 수준 높은 문화들은 고작 구술성에 입각한 비문자 하위 농촌문화로 격하되었다.”는29) 스스로 자신의 문화를 비하하고 무시하는 과정이 전개된다.
스스로의 부정이 시작되며, 문화는 동화된다. 이 역시 중국 소수민족 사회의 변화에서 지적한 자원적 한화와 닮았다.30) 이러한 변화는 결국 라틴아메리카에 비유럽적 문화의 상상계가 존재하는 것을 어렵게 했고, 독립적인 비유럽 문화의 재생산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억압을 통한 변화에는 피억압자를 유인하는 매력적 요인이 있다. 이는 앞서 소수민족 지역의 교육, 고위직 공무원 배치, 도시화와 현대화를 통한 소수민족지 개발과 비슷하다.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먼저 피지배자 일부를 선택적으로 가르치며 이들을 권력 중심으로 포섭한다. 포섭된 이들이 혜택을 누리면서, 부지불식중에 유럽 문화가 권력에 접근할 매혹적인 것으로 변화된다. 그리고 이러한 매혹은 확장된다.
궁극적으로는 유럽인과 동일한 물질적인 혜택과 권력을 누리기 위한 방법이었다. 요컨대 문화적 유럽화란 자연을 정복하는 방법, 즉 ‘발전’하기 위한 방법이었다.31)
라틴아메리카의 선주민과 이들의 상류계층은 유럽화를 통한 발전을 따르게 된다. 그러므로 권력의 주된 도구는 ‘억압’보다 오히려 이러한 ‘매혹’이란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결국 소수의 혹은 힘이 없는 민중문화는 국가 체제 안에서 억압당하고, 지배자에 의해 사라져 버리기 쉽다.32)
페루 출신의 아니발 키하노는 라틴아메리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식론적 탈식민화’가 필요하고, 식민성의 감옥에서 상호문화적 관계들을 해방시키고, 이를 위해 ‘자유’가 요청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문화와 사회를 생산, 비판, 변화, 교환할 수 있는 자유와 불평등, 차별, 착취, 지배로 점철된 모든 권력에서의 ‘해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33)
1970년대와 80년대의 종속이론이 정치와 경제의 문제에 집중했다면, 현재의 탈식민주의는 인식의 전환에 초점이 맞춰진다. 인식적 결별, 즉 인식적 불복종이 필요하다. 인식적 불복종은 경제를 식민화시키는 전지구적 설계, 군주·국가·교회 등의 권위, 경찰과 군의 강화, 언어·사유·신앙 등의 지식과 존재(주체성)의 식민화 등을 경험한 이들이 공유하는 일련의 기획인 탈식민적 선택으로 이끈다. 즉, “인식적 불복종은 우리를 다른 장소, 다른 시작, 다른 공간으로 이끈다. 가령 그리스를 출발점으로 삼지 않고, 아메리카 정복과 식민화 그리고 대규모 아프리카 노예무역으로 이끈다.”34) 이를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지식인은 근대성의 이면에 식민성이 있음을 지적하고,35) 유럽중심주의에서 벗어나 근대성과 세계화를 재해석하고자 한다.36)
그렇다면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에서 억압의 문제를 확장시켜 생각할 수 있겠다. 나아가 전지구적 관점에서나 혹은 유럽의 영향을 크게 받는 라틴아메리카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도 가능하겠다.
갈수록 미국적 규범이 되어 가는 옥시덴탈리즘의 세계화가 수천 년 동안 발전해 온 보편 문화들을 지구상에서 다 소멸시켜 버릴까? 영어는 인류가 사용하는 유일한 언어가 되고, 영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다른 전통들은 다 잊히는 게 아닐까?37)
이러한 맥락에서 ‘언어 제국주의(linguistic imperialism)’나 ‘언어차별주의 (linguicism)’도 식민화와 관련되고, 무력과 다른 또 다른 형태의 식민화이다. 현재 영향력이 가장 큰 것은 ‘영어 제국주의 (English imperialism)’이다.
중국 소수민족지역, 유럽화한 라틴아메리카지역 외에도 문화 다양성의 억압은 또 다른 형태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미국 사회가 가진 소수민족과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에서 문화 다양성에 대한 억압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여기서 발견되는 인종주의는 문화 다양성에 강력한 억압으로 작동한다.
인종주의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생물학적 특징을 본질적인 요소로 간주해 인종 사이에 우열이 있다고 믿게 하며, 그에 따른 차별과 예속을 정당화하는 신념 체계다.38) 그래서 아시아인은 백인보다 열등하고, 혐오와 편견의 대상이 되어도 된다는 근거가 된다. 미국의 발전은 노예제도, 아시아인의 노동력, 아메리카 원주민의 땅이 있어서 가능했다. 그런데 여기서 흑인을 노예화하고, 아시아인에게 값싼 노동력을 제공받고, 원주민의 땅과 생명을 빼앗는 것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인종주의가 이용됐다.39)
미국의 발전에는 백인 우월주의 및 소수 인종 착취가 있다. 『파멸의 시대 저항의 시대』에서는 이보다 더 노골적이고 체계적으로 미국의 어두운 면을 비판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결국 우리 자신에게까지 미칠 것이라 경고한다. “보호구역에 갇힌 인디언, 도심 슬럼가의 흑인, 일자리를 잃은 탄광 노동자, 히스패닉계 농장 노동자 등 타자의 고통은 이제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이 먼저 희생당했다. 우리가 다음 차례다.”40)
이러한 진행은 매우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해외 진출을 통한 식민지 확대에 주력한 유럽의 강대국과는 달리 미국은 해외 진출에 앞서 내부를 먼저 식민화했다. 이때 동화된 많은 인디언은 이후 미국의 해외 식민화 과정, 특히 베트남에서 미국을 위해 싸우면서 식민화 주체로서의 자신의 지위를 인식하게 되었다.”41) 여기서 ‘동화된 많은 인디언’과 ‘미국을 위해 싸우면서 식민화 주체로서의 자신의 지위’는 지금도 대상이 바뀌어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갈등과 문화적 억압의 구조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교묘해진다.42) 그래서 “백인 노동자에게 백인 우월주의를 불어넣어 백인 자본가와 백인 노동자 간 계층 문제를 해결했듯이, 아시아인에게 백인성의 공간을 조금 내주고 이를 통해 흑백 갈등을 흑인 대 아시아인 갈등으로 치환한” 상황이 펼쳐진다.43)
문제의 당사자는 빠지고, 엄한 사람들이 갈등을 일으키며 대립한다. 이러한 방법은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중국 소수민족 사회에서도 소수민족지에 대규모 한족을 이주시키면서 한족과 소수민족의 갈등이 조장되고, 소수민족지의 개발과 전통의 보존 등으로 소수민족과 소수민족의 갈등이 일어난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그리고 한국 사회 안에서도 정도는 다르지만 누구 하나만을 지목하여 단죄할 수 없는 상황처럼 복잡하게 일을 섞으며 본질을 왜곡하는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민족 정체성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미 외국인 거주자가 222만 명으로 총인구 대비 4.3%(2019년)에 육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 공동체 안에서의 문화 다양성에 대한 연구는 남의 문제가 아닌, 여기 우리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도 발견된다.
외국인의 정주화를 막기 위해 고용허가제는 한 번에 최장 4년 10개월만 머물도록 허용한다. 외국인이 합법적으로 5년 이상 거주하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아시아인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으려고 자의적인 기준을 내세운 것과 다를 바 없다.44)
다양한 공동체에서 비슷한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 물론 똑같을 수 없다. 그래서 중국 소수민족, 라틴아메리카, 미국의 소수민족, 한국의 외국인 등을 같은 선상에서 논할 수 없다고 반박할 수 있다. 나아가 중국 소수민족의 경우도 북방과 남방이 다르다. 더 들어가면 북방도 위구르족과 회족이 또 다르다. 본고에서는 그 다름에 천착하기보다 인류 공동체의 보편적 특징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정도의 차이를 가지고 갑론을박하기 전에, 인류가 가진 부끄러운 민낯은 서둘러 반성하고 시정해야함에 연구의 중심을 두었다.
Ⅳ. 바람직한 공동체의 추구
아니발 키하노가 주장한 ‘인식론적 탈식민화’와 이를 위한 ‘자유’와 ‘해방’의 제안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결국 지향점은 같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적 대응, 이를 통한 실제적 변화라는 결과의 창출인데, 이점이 어렵다. 필자는 고대 중국철학에서의 인식문제와 중국 소수민족 사회의 변화 관찰에서 이러한 논의를 진전시켜 왔지만,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앞서 언급한 언어 사용의 문제를 중국 정부와 소수민족의 대결 구도로만 축소하여 생각할 수 없다. 이는 영어 사용에 대한 아프리카 작가의 두 가지 입장과 같다. 아체베(Chinua Ache be)는 아프리카 상황에 맞는 영어의 사용을 말하지만, 응구기(Ngugi wuThiong’o)는 영어 사용의 폐기를 주장한다. 응구기는 “총알은 물질적 정복의 수단이었지만 언어는 정신적 정복의 수단이었다.”면서 제국주의와의 단절 없이는 식민지인의 ‘정신의 탈식민화’가 어렵다고 보았다.45) 무엇이 옳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이나 남미 혹은 미국이나 심지어 한국이라는 지역을 떠나, 바람직한 공동체를 추구하는 고민에서 다시 몇 가지 본질적인 질문을 생각해 본다.
첫째, 문화 다양성은 우리가 지향해야할 과제이지만, 다양성 자체에만 방점을 찍어서는 곤란하다는 반성이다. 만약 다양성에 방점을 찍고 문화 다양성 보존에만 몰입한다면, 인류와 지구에 새로운 것이 들어설 여지 또한 줄어들 것이다.
문화는 진화 발전하며 변해간다. 지금 서울의 문화가 300년 전 조선시대의 문화와 다르다고 비판할 수 없는 것처럼, 도포자락 휘날리며 버선신고 다니는 것을 지금의 아이들에게 강요할 수 없다. 게다가 시간적으로 오래되었다고 모두가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신구(新舊)가 빠르게 교차하는 도시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도시이론가들도 이에 적극 공감한다. 그래서 린치는 다음처럼 비판했다.
우리는 한 사물이 역사적이기 위해서는 오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수백 년의 시간을 거치며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은 구조물이나 당대의 상류층을 위해 만들어진 비싼 기념물이 종종 보존의 대상이 된다.46)
오래된 사물과 역사적인 사물을 구별해서 보았다. 이는 역사적 구조물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유산에도 적용된다.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장소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들의 문화와 이를 담은 구조물이 개발과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사라지고 있다. 오래된 것의 무조건적인 보존에는 한계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다음과 같은 반문도 가능하다. 인류는 다양한 모든 것을 지켜왔나? 인류가 걸어온 과거의 발자취에서나 현대인들의 욕구에 의한다면 다양성은 파괴 속에 새로운 다양성을 창조했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 간직하고 싶은 친밀한 시간의 감각은 기념비적 건축이나 희귀한 유적과는 거리가 멀다.47) 이런저런 이유로 문화 다양성을 담은 소수민족의 공간도 스스로에 의해 파괴되고 변화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의문은 계속 떠오르지만 이것 하나는 명확하다. 다양성, 많은 사람의 바람을 지키는 중요한 요인임에 틀림없지만,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둘째, 억압의 대척점에 있는 자유, 자유 그 자체보다 자유에 대한 성찰과 실천에 있어서의 합의를 생각해야한다. 자유 그 자체만으로는 부족하다. 절대적으로 약자의 상황에 있는 경우에는 보호가 필요하다. 때론 자유와 다양성으로 인하여 보호되어야할 것이 괴멸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각 공동체의 자유에 대한 한계를 정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공동체가 머무는 도시에 있어서 “특별한 시대나 특정 인물에 도시의 시간성이 맞추어져 있는 도시는 좋은 도시가 아니라고” 비판해도,48) 이는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소수민족 도시에 이러한 논리를 적용하면, 소수민족 도시의 특징을 제거할 근거가 된다. 상황에 따라서는 자유에 맡기지 말고, 강압적 방법으로라도 지키고 보존해야 할 것이 있다. 왜냐하면 이들이 거주하는 공동체의 도시는 소수의 특징이 사라진 다수의 특징으로 점령되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러한 성찰에 더하여 고려할 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다. 억압이란 상대를 눌러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억압은 장려할 것이 못된다. 이는 중국 소수민족 지역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되고, 라틴아메리카에서 유럽인들의 힘에 의해 자행된 식민화에서도 확인했다. 상대를 존중한다면 침략과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지금도 계속된다. 무력을 넘어, 경제적 문화적 정신적으로 지배하는 일이 많아졌다.
문화 다양성이 무조건 추구해야할 지상목표가 아니듯, 자유 그 자체도 무조건 용납할 수 있는 절대 가치가 아니다. 이유는 자명하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공동체는 서로 다른 개인과 집단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억압도 무조건 반대해야할 대상은 아니다.
결국 다양성과 자유를 조절할 역할로서의 억압에는 상대에 대한 존중이 요청된다. 물론 이러한 바람이 동물의 세계가 되어버린 인류에게 너무 과한 것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아직 인간으로서 품위가 있다면,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과 자세는 포기할 수 없다. 나 이외의 다른 것에 대한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른 것도 옳을 수 있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때 열린 마음과 문화적 포용력이 결국은 서로를 승리하는 방향으로 이끌 것이다. 그래서 문화의 진정한 힘은 확장력에 있다기보다 수용력에 있다는 말이 가능해진다.49)
다양성에 대한 억압은 인류가 생활하는 곳곳에서 진행된다. 이는 힘을 가진 다수가 힘없는 소수에게 부리는 횡포다. 문화 다양성에 대한 억압은 결국 상대방에 대한 존재의 부정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상황을 방치한다면 소수는 고립되고 사라질 것이다. 이들에 대한 “혐오가 지속된다면 고립은 고립으로 끝나지 않고 민주주의에 대한 반감과 극단주의에 대한 선호로 나아갈 수 있다.”50)는 지적으로 미루어, 문제는 소수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예상할 수 있다. 공동체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공존을 위한 바람직한 방향을 찾아야 한다.
대개 이에 대한 처방은 보여주기 수준에 머물렀다. 중국 소수민족의 문화를 존중한다며, 한편으로는 국제적 행사에 동원하여 대외선전용으로 보여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고유의 문화를 억압하는 행위는 이중적이다.
라틴아메리카 학자의 지적처럼 “타코 벨(Taco Bell)같은 초국가적 레스토랑 체인은 메뉴에 특정한 음식 문화를 포함시키고, 이것이 다른 문화들에 대한 존경인 것처럼” 내세우지만51) 이는 기만이다. 동시에 이러한 행동은 미국의 문학 이론가 스탠리 피시(Stanley Eugene Fish)가 지적한 ‘부티크 다문화주의(Boutique Multiculturalism)’와도 통한다. 다양한 나라의 음식과 문화를 즐기지만, 속으로는 소수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는 다수의 본성에서, 어쩌면 다양성은 엄청난 억압을 받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또한 조금씩 발전하는 과정에 있음을 나타낸다. 아예 전무한 것보다는 이런 식으로라도 차츰차츰 있는 것이 낫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에서 한국과 중국에서 쇠는 음력설이 명절로 인정되어,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캘리포니아주에는 아시아계 인구가 전체 인구의 15%, 미국에서 가장 많은 600만 명이 거주한다. 늦었지만 그래도 희망적이다. 뉴섬(Gavin Christopher Newsom) 주지사의 말처럼 ‘문화적 중요성을 인정’한 일로 함께 공존의 길을 찾게 될 것이다.52)
인류의 역사를 보면, 인간의 이상적 바람과 달리 문화는 힘과 양에 의해 변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평화롭고 선한 의지에 기대기보다, 정치적 힘과 경제적 양에 따라 움직였다. 그리하여 이상적 구호는 또 하나의 혹세무민이었고, 이 또한 힘을 가진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다.
중국 소수민족 공동체에서 발견되는 문화 다양성과 억압은 중앙정부와 소수민족 자치, 하나의 중국과 56개 민족, 한족 중심의 문화와 소수민족의 전통문화 사이에서 벌어진다. 소수민족 문화의 억압은 결국 하나의 중국으로 모아질 것이다. 소수의 문화는 올림픽 개막식이나 폐막식에서 박제된 모습으로 비춰지고, 이를 통해 ‘우린 하나’라는 일체감을 대내외적으로 홍보하면서 그 사명을 다할 것이다.
이제 이러한 논의를 중국 소수민족의 상황에서 조금 더 진전시켜 생각해 보자. 소수민족 관리와 통치에 있어 원칙은 하나의 중국이다. 소수의 문화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한족의 문화에 스며들 것이다. 바로 자주 언급되는 용광로 같은 중국의 모습이다. 이러한 방향에서 중국이라는 공동체가 나아갈 조금 더 바람직한 방향을 중국의 만세사표 공자(孔子)에 기대어 생각해 본다.
공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과 동이불화(同而不和)를 말했지만, 이를 네 가지의 경우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첫째, 화이부동이다. 조화로우면서 서로 다른 형태이다. 둘째, 동이불화이다. 하나의 문화로 같지만 서로 조화롭지 못하다. 문화 다양성을 억압하며 하나의 문화가 강제된다. 셋째, 조화롭지도 않고 같지도 않은 불화이부동(不和而不同)은 공동체가 궤멸하여 사라지기 직전의 모습일 것이다. 넷째, 반대로 조화로우면서 같은 화이동(和而同)이다. 이 경우를 이상향이라 말할 수 없다. 같다는 것에는 조화가 없을뿐더러,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결국 공자가 손꼽은 화이부동의 상태는 현대 중국에서도 자신들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하여 이상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다. 과거의 역사를 보아도 다양성 속에 문화가 발전했다. 아무리 우수한 것이라도 우수한 것으로 획일화된 공동체는 위험하다. 이는 “어떤 공동체가 가시적 ‘무엇’(재산·국적·인종·종교·이데올로기)의 공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을 때, 그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왜곡될 수밖에”53) 없기 때문이다. 최고의 가치가 좋은 것이어도, 혹은 좋지 않은 것이어도 결과는 같다.
엔리케 두셀은 식민주의에 벗어난 민족들이 근대성의 좋은 점을 받아들이면서 문화적 타자성을 긍정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공허한 단일성을 지향하는 문화적 스타일이 아니라 “트렌스모던적이고, 다문화적이며, 비판적이고 상호문화적인 대화를 통한 여러 개의 세계가 포함되는 세계(pluriverso)를 지향하는 것”을 주장했다.54) 그래서 다음과 같은 지적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적인 이념들은 애국심을 불러 일으켰지만 국제적인 우애도 강조했으며, 계급특권과 정치적인 배타성을 비난했지만 계급조화를 촉구하기도 했고, 종교적인 관용과 가톨릭의 반동을 질타했지만 덕, 공동체, 형제애, 자기희생이라는 기독교의 이념들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한편, 경제적 자유와 사적인 소유를 장려했지만 금주, 절약, 협동, 저리 대출을 설교하기도 했다. … 이미 신뢰를 잃은 구체제 엘리트들과 정치 제도들의 이기주의만이 그것을 실행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55)
또한 라틴아메리카학자들이 비판한 근대성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근대성이 촉발한 “교육팽창을 통해 문학과 예술 시장이 나타났고, 이것은 몇몇 작가와 예술가들의 전문화를 가능하게 했다.”56) 그리고 이는 내부의 갈등과 충돌 속에 변화를 일으켰다.
물론 근대성과 관련한 식민주의는 “현대의 삶에 대한 사회학 이론이 간과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시적 에피소드가 아니라, 오늘날 세계의 권력 관계를 형성하며 과거의 식민지들을 계속해서 망치는 주된 요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57) 그리고 “사회학자들이 이 점을 인식하지 못하면, 전 지구적 불평등과 지구화 과정에 대한 그들의 설명은 타당성을 갖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럼 현재의 식민지의 입장에서 본다면, 처음에는 부적적할 의도로 자행된 근대성과 식민주의지만, 이것이 반드시 그리고 온전히 나쁜 결과로만 남긴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식민지에 이식된 것에서 필요한 것은 수용하고 이용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확장력이 아닌 수용력에서 문화의 진정한 힘을 찾는 것과 같다.
이러한 맥락에서 근대성의 전면 거부가 아니라 장점은 수용하고, 근대성에 의해 부정되고 비하되었던 고유의 문화를 재발견하는 트랜스모더니티(trans-modernity)는 공자의 화이부동과 통한다. 동시에 앞에서 제시한 “공동체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다양성의 추구 이전에, 억압의 반대편에 있는 자유의 추구 이전에 상호 존중이 있어야 한다.”는 말로서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 방안으로 안착될 가능성을 열어 준다. 그 속에서 억압의 어두운 면도 긍정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렇다면 소수민족과 중앙정부의 입장에서 문화 다양성 문제, 그 대안은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소수민족 문화는 존립시켜야 할까? 이에 대한 대답은 질문에 대한 정정부터 시작해야할 것이다. 소수민족 문화의 존립과 폐기에 답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약자와 소수를 보호하며, 화이부동의 다르지만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실천에 대한 방안으로 성숙되어야 한다.
다양성은 서로의 생활과 결정을 존중해 주며 존재할 때 가치가 있다. 지금의 소수민족 문화도 자신들에 의해 생장소멸의 과정을 거치며 오늘에 이르렀듯이, 지금의 문화도 언제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상호존중이 배제된 채, 이를 억압하고 강압적으로 파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58) 이러할 때, 중국 소수민족지역이나 라틴아메리카 혹은 미국이나 한국의 어디에서든 인류가 가진 본성의 부족함을 채우고, 화이부동하며 공존할 수 있는 미래를 함께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Ⅴ. 나오는 말
본고의 목적은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문화 다양성에 대한 억압을 무조건 비판하는 데 있지 않다. 조금 면밀히 들어가 살펴보면 원인의 원인이 꼬리에 꼬리를 물거나, 누구만의 잘못으로 규정하기에 한계가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에 면죄부를 주자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신장 위구르 디스토피아』에서의 문제에서 상호 존중이 결여된 소수민족에 대한 정부의 물리적 행동이나 이를 변명하는 범죄 예방이라는 명분은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59) 하지만 원인의 원인을 생각하면 문제는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 경험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 세계적인 엔지니어, 투자자, 홍보 회사들이 인간 재교육을 설계하는 데 있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신장이 시애틀 뒤에 버티고 서있었던 방식과 같은 상호연결망은 사유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간과할 수 없다.60)
정황과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한 판단과 행동은 또 다른 문제를 혹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했다. 동시에 지금껏 정치적 수사와 경제적 계산으로 본질을 왜곡한 결론은 세상을 현혹시켰음도 잊어서도 안 된다.
소수민족 문화 다양성의 보이는 억압에서는 한어 교육의 확대, 소수민족 언어의 제재를 비롯하여 소수민족의 정체성이 배제된 고등교육의 확대를 언급했다. 이러한 것은 보이지 않은 억압에도 작용한다. 반면 보이지 않는 억압으로 도시화, 현대화를 앞세운 도시개발, 중앙정부의 교육을 받은 소수민족 출신 간부의 활용 등은 결국 소수민족의 정체성과 전통을 고사시킬 것이다. 결국 소수민족 문화 다양성의 억압은 존재에 위협을 가한다. 특히 앞서 언급한 소수민족 언어에 대한 억압은 “라틴아메리카는 여전히 식민지의 언어를 사용하니 무슨 수로 논쟁을 벌일 수 있겠는가?”라는 로베르토 페르난데스 레타마르(Roberto Fernandez Retamar)의 말처럼 일종의 예언이 될 수도 있겠다.61)
문화 다양성에 대한 통제는 작은 장에서 보면 자치와 자율을 보장하는 것 같지만, 작은 장을 아우른 상위의 장에서 보면 계산과 계획에 의해 의도된 변화를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세세한 것까지 구체적으로 다루는지 알 수 없지만, 커다란 방향에서는 자신들의 방향과 방법을 갖추고 행동한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소수민족 언어의 사용을 장려할 수만은 없다. 중국에서 한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 도태되기 십상이다. 동시에 고등교육 진학을 억제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더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 그럴 때 민족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나 깨달음도 일어날 수 있다. 공무원의 증가도 계속 되어야 하고, 도시의 개발도 막을 수 없다. 편리하고 깨끗한 공간에서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이는 라틴아메리카가 유럽에 의해 문화적으로 잠식되어, 스스로 창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상황과 닮았다. 그러므로 라틴아메리카 학자들의 주장처럼 인식의 전환은 필요하다. 본문에서는 다양성과 자유에 대한 성찰과 상호 존중의 마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중국의 상황에 기초하여 화이부동의 실현을 생각해 보았다. 공동체의 건전한 존립을 위해 다양성은 필요하다. 공동체의 다양성은 다르지만 서로 조화롭게 공존할 때 가치가 발휘된다. 자유도 억압도 상대에 대한 존중에 기대어 공동체의 다양성을 빛내는 데 일조할 것이다.
물론 이제 시작이다. 앞서 제기한 실천을 위해 각자의 상황에서 보다 정밀한 입체적 분석이 진행되어야 한다. 보다 많은 시간적 데이터를 이용하여 과거의 사실에서 살펴보며 인류의 민낯을 인정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그 동안 인류는 짧지 않은 시간 속에서도 전제정권을 찬미하던 논리, 제국주의의 침략을 옹호하던 이론, 거대 자본의 횡포를 두둔한 언설들을 (당시 그 장소에서는) 맹신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동시에 시간을 앞질러 바람직한 미래를 고민하며 지금 여기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나아가 다양한 입장의 중첩 속에 입장을 바꿔가며 여러 관계 속에서 조망하고, 다양성을 아우를 수 있는 시각까지 담아야할 것이다. 그 속에 지금보다 진보한 공동체의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