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음식, 거처, 의료, 교육 등을 지원하는 활동은 부유한 나라에서부터 개발도상국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나라에서 ‘복지’라는 이름으로 실행되고 있다. 그것은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중요 요소 중 하나가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과 자원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 복지는 정부와 같은 공적 기관을 비롯하여 민간 차원의 개인들이나 시민단체, 종교기관, 심지어 기업에 의해서도 수행되고 있는데, 이들의 활동이 주로 조직 밖의 사람들로 향함으로써 ‘사회복지’ 또는 ‘사회사업’으로 불리고 있다. 복지는 정부의 관점에서는 ‘의무’지만 기타 민간기관에게는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자발적인 자선행위로서 그 수혜자에게 답례를 거의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 때문에 수혜자들과 제삼의 관찰자들은 복지사업 또는 사회사업에 참여하는 개인이나 집단을 향해 신뢰라는 긍정적 감정을 잉태시켜 그들의 메시지의 자발적 수용 가능성을 제고시킨다. 따라서 종교기관의 복지활동 참여가 늘어나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2)
그러나 복지는 조직 외부로 향하는 대외적 관점으로 그 의미를 한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복지활동에 참여하는 기관 내에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며 더욱이 더 나은 근무환경의 조성은 조직의 생산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조직의 대외적 복지활동이 궁극적으로 조직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것처럼, 내부의 복지 환경 또한 조직에 대한 신뢰를 증가시키는 긍정적 효과를 발휘한다. 본 논문이 주목하는 부분이 바로 조직 내부의 복지이며 그중에서도 민간조직으로서 복지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종교집단 내의 성직자 노후복지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어 한국 신종교의 대표적 종단으로서 대순진리회의 성직자 노후복지 조성을 제언코자 한다.
미국에서 성직자는 직업만족도와 일반행복도 조사에서 각각 1위(2007년 기준)를 차지하였고3) 우리나라의 경우도 조사대상 30개 직업 중 목사가 직업만족도 6위(2016년 기준)를 차지4)할 만큼 성직자들이 느끼는 직무 만족도는 타 직업에 비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코넬리오(Jayeel Serrano Cornelio)의 주장처럼 아마도 공동체에 자신의 시간과 자원을 헌신할 수 있다는 데 있을 것이다.5) 그러나 수많은 학자와 종교지도자들은 성직의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특히 경제적 이유때문에 성직에 전념하지 못한 채 다른 직업을 갖는 겸업 성직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한다.6) 경제적 문제가 야기하는 성직의 불안정성은 결국 노후생활의 불안과도 직결될 수밖에 없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생활수준의 향상과 생활환경의 개선, 의료 및 보건위생의 발달로 우리나라 국민의 사망률은 낮아지고 기대수명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2018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14.8%로 이른바 ‘고령사회’에 진입하였고 출생률의 급격한 저하와 맞물려 해를 거듭할수록 그 수치는 높아지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국민의 중위연령 또한 높아져 43.1세를 기록하고 있다.7) 이와 같은 고령화 추세는 일반 국민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성직자들에게도 비슷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는데, 불교 조계종 승려의 경우 60세 이상이 2004년(1,882명)과 2008년(2,720명) 사이 45% 증가하였고,8) 2019년 천주교 교구신부 중 65세 이상 비율이 14.0%(632명)로 2012년 9.4%보다 크게 늘었으며 4,537명의 교구신부 중 원로사목(은퇴신부)이 차지하는 비율은 15%나 되었다.9) 이와 같은 통계적 수치를 고려한다면, 비록 정확한 자료가 없어 단언할 수는 없지만 대순진리회 역시 고령화 현상을 겪고 있음이 분명하다.
거의 모든 성직자들이 성직을 택하는 이유는 “소명”(vocational calling)이지 많은 수입을 거둬들이는 데 있지 않다.10) 그들은 “청빈”과 “봉사”의 삶을 평생토록 살아가며11) 노후를 준비하는 행위조차 종교적 신념의 부재로 간주되기까지 한다.12) 그런 의미에서 이들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노후에 대한 염려가 현재의 종교 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들13)을 종합하면 성직자의 노후복지는 종교계가 당면한 간과할 수 없는 중요 현안이다. 이 때문에 서구의 종교단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성직자 복지를 명문화하고 있으며,14) 비교적 국가차원의 사회보장제도가 덜 발달한 나라, 예를 들어,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중국, 필리핀 등에서도 종교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성직자 노후보장을 위한 장치 마련 또는 확충을 촉구하고 있다.15)
Ⅱ. 성직자 노후복지
질(Anthony J. Gill)은 종교 공동체가 사회의 ‘평안하고 만족스러운 상태’ 그 자체를 추구하기보다는 자신들 핵심 사명(core mission)의 진실성을 알리기 위해 사회에 자선재(charitable goods)를 제공해왔다고 주장한다.16) 비록 종교단체의 사회복지활동이 도구적 목적성을 띨지라도 그것은 영적 행위로서 신의 뜻을 배우고 따르는 종교행위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사회복지사업의 실천이 선교, 포교, 교화, 포덕 등의 직접적 지향성을 나타낸다고 해도 종교적 교리와 신념에 기초를 두고 있기때문에17), 즉 인류애의 보편적 관점에서 자비 또는 자선 행위의 실천을 교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종교행위라 할 수 있다. 예들 들어, 불교는 중생구제(衆生救濟)와 요익중생(饒益衆生)의 실천을 부처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18) 기독교는 하느님을 믿는 자들의 베푸는 삶이 하느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길이라고 믿고 있고,19) 원불교는 인간과 세계의 평등을 강조하는 사은(四恩)사상과 사요(四要)사상에 기반을 두고 병든 사회의 치료를 주문하고 있으며,20) 대순진리회는 교리로서 종지(宗旨)에 명시된 해원상생(解寃相生)을 기본 이념으로 삼아 1972년부터 종단의 3대 중요사업으로서 구호자선사업, 교육사업, 사회복지사업을 실천해오고 있다.21) 이처럼 각 종교의 이념과 복지의 이념은 상호 맞닿아 있다.
교리에 기반을 둔 종교단체의 사회복지 참여는 너그러움(generosity)을 사회의 규범으로 자리 잡게 하는 데 기여한다.22) 따라서 재워드(Rana Jawad)가 종교가 현대 복지국가 발전에 “시녀”(handmaid) 역할을 해왔다고 주장한 것처럼,23) 많은 나라에서 종교는 복지국가 구축과 복지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24) 하지만 제하비(Amos Zehavi)는 종교와 복지국가의 관계에 대한 학계의 연구 흐름을 분석하면서 종교가 복지국가 발전에 영향을 미친 것만큼이나 복지국가가 종교의 다양한 표현, 즉 개인의 신앙과 실천, 종교기관의 역할, 종교의 정치적 영향력 등에도 변화를 가져왔다고 지적한다.25) 그러므로 복지는 대외적 관점과 대내적 관점을 동시에 담지해야 하고, 그래서 신앙적 목표의 실현을 위한 집단적 사회단위로서 종교조직은 내부로도 복지의 개념을 적용해야 한다. 종교조직 내부의 사람들, 특히 종교조직의 원활한 운영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는 성직자들이 자신들의 복지 상태가 지속적으로 낮거나 귀 기울여지지 않는다고 느낄 때에는, 종교 행위로서 사회복지활동은 발전 동력을 상실할 위험성을 내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늙어가는 것이 근심거리라면, 그 중심에는 경제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현실적으로 성직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노후를 설계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 차원의 사회보장이 유일한 대안이라면, 그런데 사회보장마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을 것 같다면, 그들 스스로 저축하고 투자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그러나 종교적 교리에 의한 청빈의 삶을 살아가는 성직자에게는 이것이 여의치 않다. 미국의 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퇴직연금과 같은 상당 수준의 노후보장이 마련된 정교회(Greek Orthodox) 소속 신부들 중 70%가 은퇴 후 수입이 근심거리로 작용하고 있고, 하느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 목사 91%가 은퇴 대비 저축이 삶에서 상당한 스트레스 요인이 되고 있으며, 복음언약교회(Evangelical Covenant Church) 목사 84%가 은퇴 시 저축 정도가 가장 큰 심리적 부담이라고 한다.26)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불교, 가톨릭, 개신교, 원불교 등의 종교단체들은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성직자 노후복지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종단[교단] 차원에서 노후복지 정책을 도입ㆍ시행하고 있으며, 학계에서도 관련 연구가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다.27)
그렇다면, 도전 박한경(1917~1996)이 1969년 창설한 이래 반세기가 지난 대순진리회는 어떠한가? 종단 차원의 성직자28) 노후복지정책은 명확한 규정이 사실상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만큼 대체로 성직자 개인에게 맡겨져 있다. 또한 복지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연구 논문들도 몇 편의 제한적인 연구밖에 없으며 이마저도 사회복지 또는 사회사업에 집중하여 조직 내 복지를 일부 개진한 이경원과 백경언의 연구를 제외하면 성직자 노후복지에 관한 연구는 거의 부재하다.29) 앞서 설명한 것처럼, 대순진리회 성직자들 또한 분명 노령화 현상을 겪고 있다. 적게는 십수 년을, 길게는 50여 년 동안 해원상생을 기저로 수도에 전념해 온 이들의 노후문제를 ‘방면’과 ‘스스로의 선택’으로도 해결할 수 있겠지만 복지혜택이 안과 밖 모든 이에게 돌아갈 수 있게 적극적이며 실질적 지원의 확대도 고려할 시점이다.
종교집단의 조직 형태가 자율적인가, 아니면 위계적인가에 따라 성직자의 복지 체계는 다른 양상을 나타낸다.30) 중앙집중적 계층질서를 갖춘 교단들이 성직자의 복지 및 보상에 관한 내부 규정이나 지침을 마련하고 시행하고 있는 반면에, 자율적인 종단들의 경우 규정이 없는 곳이 많으며 비록 있다고 해도 적용 강도가 미약하거나 강제성을 띠지 않음으로써 성직자에게 제공하는 복지 차원의 보상은 현저히 떨어진다. 다시 말해, 위계적인 종교조직일수록 성직자에게 합리적인 보상을 제공하도록 보상의 최저 수준을 설정하고 건강과 노후복지를 제도적 장치를 통해 보장하려고 노력한다. “아버지이자 친구”로서 주교가 총대리(Vicar General)와 지구장(Dean)의 보좌를 받아 소속 교구 전체 사제들의 복지에 주요 책임을 지는 가톨릭이 전형적인 중앙집중형 구조를 이루고 있다.31) 개별 본당(parish)이 신부에게 임금이나 복지를 교구 규정대로 제공할 수 없을 정도로 재정 상황이 열악하다면 교구가 재정을 지원함으로써 사제 전체에게 동일한 임금이나 복지가 적용된다. 따라서 신부들은 경제적 강제요건으로부터 자유로워 성직 활동에 보다 충실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32)
이에 반해, 비교적 많은 교단을 유지하고 있는 개신교는 정치체제(polity)에 따라 노후복지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는데, 미국의 경우 연결제(connectional polity)를 채택하고 있는 감리교단, 장로교단, 성공회교단(Episcopalians) 등은 최저임금이나 연금 및 의료 급여 등을 중앙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이에 비해 회중제(congregational polity) 형태의 침례교단과 펜테코스탈교단(Pentecostal)은 개별 교회가 자율성을 가져 성직자 보상에 대해 자유시장적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중앙집중형보다 임금 등의 복지 혜택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33) 따라서 자율형 교단들이 개별 교회에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소속 성직자들의 보상이나 복지가 불공정하게 분배되고 있음을 감지해도 이를 저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현실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34)
종교조직의 형태에 따른 성직자 복지 양상은 성직자들이 느끼지는 성직에 대한 만족도에서도 온도차를 가져온다. 최근, 가톨릭은 성직자 부족 사태에 직면해 있는데, 예들 들어, 스페인의 경우 1966년 26,000명, 1987년 21,000명, 2000년 17,000명으로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며 바르셀로나 교구만 놓고 보더라도 1968년과 2001년 사이 적어도 123명이 교회를 이탈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35) 성직자 감소 현상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성직의 세속화와 이중성, 과중한 업무, 성직자의 역할과 책임 변화, 교회 미래의 불확실성, 결혼과 가족 문제, 소진, 성적 비행, 자살 등이 다양한 이유로 지목되고 있지만36) 노후복지에 대한 염려가 주요 원인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크린타취와 호지(Krindatch & Hoge, 181)의 연구에 의하면 미국에서 동방정교회 신부 91%와 가톨릭 신부 85%가 본당 신부로 선택한 자신의 삶에 ‘매우 만족’ 또는 ‘다소 만족’을 표명한 것처럼,37) 중앙집중형 종교조직의 성직자들은 성직 자체에 대하여 만족스러워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는 적어도 신부 감소 현상의 원인을 교구 복지정책에서 찾을 수 없음을 의미하며 역으로 위계적 종교조직일수록 노후를 포함한 복지 제도의 도입과 운영이 성직의 만족도를 증가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영국의 이스트 앵글리아 교구는 사제의 감소와 고령화, 그리고 변화하는 성직 환경을 인식하고 주임신부 및 보좌신부, 공식 직위를 사임한 신부, 질병이나 기타 사유로 성직 수행이 어려운 신부, 심지어 퇴직한 원로신부에게도 과거보다 더 나은 최상의 복지 환경 마련을 천명하고 있다.38)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들이 성직자의 임금을 포함한 복지를 세속 세계처럼 자유시장(free market)에 의존함으로써39) 성직자의 복지는 소속 개별 교회의 재정 여건에 따라 자율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극소수의 목사만이 전문직 수준의 임금을 지급받을 정도로 대부분의 목사들은 비슷한 교육 수준의 다른 직장인에 비해 수입은 적고 복지 혜택 또한 상대적으로 떨어진다.40) 보상의 불평등은 교회의 효율성에 장애요소로 작동하는데, 분노, 냉소주의, 경쟁을 부추기고 그 결과 목사들이 농촌이나 빈곤 지역을 기피하는 현상41)으로 이어진다. 모든 성직자에게 재직 시와 은퇴 시에 동등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스티언스(Hugh M. Stearns)의 주장42)이 타당할지라도 현실적으로 확고한 규정에 기초하지 않은 자율적 조직체계 내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세계의 많은 개신교 교단들이 성직자 은퇴 연금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연금수급액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로 인해 은퇴자들은 개인 저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43)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개신교단들의 개별 교회 자율성에 의존하는 복지 불평등이 겸업 목사의 증가와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이다. 1976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인구조사를 바탕으로 성직자 임금 변화 추이를 분석한 어떤 연구에 의하면, 성직자 신분을 유지한 채 교회가 아닌 다른 곳(병원, 교도소, 학교 등)에서 근무하는 목사들의 수입이 교회 소속 목사보다 19% 정도 많았다.44) 게다가, 세속 직업과 성직을 겸하는 목사의 수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미국 연합감리교단(United Methodist Church) 소속 목사 중 교회로부터 임금을 받지 않는 사람이 1990년과 2000년 사이 48% 증가했고, 남침례교단(Southern Baptist Church) 목사 중 겸업자가 1976년 30%에서 1999년 39%로 증가하였다.45) 이제 미국 성직자에게 겸업은 “진짜 성직으로 가는 길에 들르는 휴게소”라기보다는 흔한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46) 이런 흐름은 종교 인구의 감소와 대형 교회의 성장에 따른 임금과 복지 불평등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47)
종교조직의 유형에 따라 성직자의 복지는 커다란 차이를 드러낸다. 복지 제공의 주체가 교단 또는 종단인 중앙집중형 조직일수록 성직자 복지는 비교적 안정적이고 이는 다시 성직 수행의 안정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고리를 형성하며, 복지 제공의 주체가 개별 교회인 자유시장에 의존하는 자율형 교단일수록 성직에 대한 불안정은 증가해 성직자의 고유 역할과 기능은 저하한다. 따라서 자율형 종교조직일수록 성직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성직자 복지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당면 과제이다. 그렇다면 대순진리회는 구조적으로 중앙집중형인가, 자율형인가? 대순진리회의 성직자 복지가 논의의 주제로 부상하지 못하는 것이 조직 구조와 어떤 연관성을 맺고 있는가? 본 논문의 중심 주제로서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4장에서 본격 다루도록 하겠다.
Ⅲ. 한국 주요 종교의 성직자 노후복지 실태
한국에서 양호한 성직자 노후복지 체계를 갖춘 종단들은 대체로 중앙집중적 관리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운영 또한 비교적 합리적이고 안정적이다. 반면에 개교회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개신교 교단들과 개인 사찰이나 암자를 허용하는 불교 종단들은 내부에 최고기구가 있을지라도 연합회 성격을 띠고 있어 통일된 노후복지 제도를 마련하고 운영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48) 대표적으로 천주교와 원불교가 전자에 속하며 불교와 개신교가 후자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종단 내에 성직자의 정년 규정이 있는가에 따라 노후복지는 그 필요성이 명확해지는데, 그것은 정년을 통해 노령 성직자의 대우 문제가 자연스레 대두되기 때문이다. 중앙집중형 종단들은 자체 내부 규정을 통해 성직자의 정년을 명시하고 운영하고 있어서, 천주교는 2001년 주교회의에서 은퇴 가능 연령을 65세 이상으로 결정하였고,49) 원불교는 인력수급의 문제로 정년퇴임 연령을 71세로 규정하고 있다.50) 자율형 종단 중 불교는 평생의 수행을 중시하여 별도의 정년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노후복지가 직접적인 관심 대상 밖으로 밀려나 있고 개신교는 각 교단 또는 교회에 정년 규정을 마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51) 몇몇의 대형교회를 제외하면 대다수 중소형 교회들은 재정 등의 제반 여건이 좋지 않아 성직자의 노후복지에 관심을 표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천주교의 <교구 사제의 정규 직책 은퇴와 요양에 대한 규정> 제2장 제4조는 은퇴 사제에 대한 복지 책임의 주체를 교구로 정하고 있다. 사제평의회의 의견을 수렴하여 교구장은 은퇴 사제에게 주거 공간과 생활비를 지급해야 하며 해당 사제가 교구가 제공하는 시설 외에 주거를 원할 경우에도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 예들 들어, 아파트에 거주할 경우 30평 이하, 보증금 2억 이하로 규모는 제한하고 있으나 생활필수품 구입비를 비롯하여 이사비와 수리비, 심지어 청소와 식사를 도와주는 ‘식복사’ 보조금 지급과 질병 발생에 따른 의료비 본인분담금 전액을 지급할 만큼 모범적인 노후복지를 제공하고 있다.52) 교구에 따른 차이로 은퇴사제의 정확한 노후 소득을 추산할 수는 없어도 비교적 안정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은퇴신부는 대략 월 300만 원의 생활비를 수령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53) 은퇴 이후에도 수행하는 미사와 성사(聖事)에 대한 수고비 개념의 ‘미사 예물’, 교구의 ‘사제평의회 공제회’가 조성한 일종의 퇴직연금 개념의 원로사제 기금, 공적 연금으로서 국민연금이 포함되어 있다.
천주교의 노후소득보장은 교구 차원의 지원과 함께 국가의 사회보장제도를 결합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신부는 은퇴 이후 공식적인 직함이나 행정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사제로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미사 등의 예식을 수행하게 되며, 이때 제공되는 미사 예물이 노후소득의 한 축을 구성한다. 또한 교구 내에 설치된 사제평의회 공제회를 통해 일정 금액을 보조받고 있는데, 최근에는 고령화에 따른 원로사제 증가로 본당신부의 경우 본당에서 일정액을 부담하고 기관 신부의 경우 기관에서 수령하는 급료 일부를 부담하는 방식으로 기금을 마련하여 이를 금융기관에 수탁한 후 일정액을 연금형태로 지급하는 연기금제도를 도입하는 교구가 늘고 있다.54) 마지막으로, 주교회의 결정에 따라 1994년 3월부터 신부는 급여에 대하여 원천칭수를 실시하여 소득세, 건강보험료, 그리고 국민연금을 원천징수 형식으로 납부함으로써 65세 이후에는 공적 연금으로 국민연금 수급 자격을 획득한다.55) 이와 같은 천주교의 성직자 노후복지 정책은 공적 섹터와 사적 섹터의 효율적인 협업의 모범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원불교의 노후복지 또한 천주교와 마찬가지로 교단이 주체가 되어 노후를 책임짐으로써 비교적 안정적이다. 먼저 주거를 살펴보면, 퇴직자가 성직자에 해당하는 전무출신으로 20년 이상 근무했을 때에는 교단에서 지정한 전국 5곳에 위치한 수도원 또는 수양원 등에 입양하게 되며 비록 집단주거형태일지라도 샤워실과 화장실이 설치된 1인실을 제공함으로써 독립생활을 보장하고 있다.56) 노후소득의 경우, 원불교 퇴임 전무출신은 수도원 정양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서 숙식에 따른 별도의 생활비가 필요치 않지만 개인적 사용을 위한 일정 금액의 정양비를 지급받고 있으며, 이에 덧붙여 일종의 퇴직연금 성격으로 재직 시 매년 교당 규모에 따라 수십만 원을 공익부에 납부하고 퇴임 후 사망할 때까지 매월 일정 금액을 후생(복지)비로 수령하고 있다.57) 또한 노후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2017년부터 국민연금 가입을 의무화함으로써 천주교처럼 공적 사회보장제도를 활용하기 시작하였다.58)59) 이밖에도 질병 발생 시에는 의료비 일체를 제공받고 있다.
불교는 2018년 기준 종단 및 단체 수가 482개에 달하며,60) 많은 사찰이 명목상으로는 특정 종단에 소속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조계종이나 진각종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종단이나 단체에는 승려 노후복지에 관한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거나 있다고 해도 명목상일 뿐 제대로 실행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승려의 노후복지는 승려 개인이 책임지거나 사찰의 자율적 의지에 달려 있고 사찰 대부분의 재정 상태가 넉넉하지 않아 노후복지의 주체가 교구[교단]로 명확히 제시된 천주교와 원불교에 비해 좋지는 않다. 이에 덧붙여, 수행을 강조하는 교리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별도의 정년제를 시행하지 않고 있어서 노후복지가 시급한 현안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현재 약 13,000여 명의 승려가 등록된 조계종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불교 종단으로 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 중이다. 이에 조계종은 안정적 수행과 포교를 위해 노후 생활과 복리 증진을 목적으로 2011년 <승려복지법>을 제정ㆍ공포하였다. 주요 골자는 입원진료비와 요양비, 건강보험료, 국민연금보험료 지원에 관한 것으로 주거 등에 관한 규정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입원진료비와 4대 중증질환(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희귀난치성질환)의 외래진료비 본인부담금은 전액 지원을 원칙하고 있으며 노인장기요양급여비는 본인 부담금 중 15%를 지원하고 있고 국민건강보험료는 교구와 사찰 또는 개인으로 책임 소재를 다원화하고 있다.61) 2017년부터 국민연금보험료를 지원하고 있으나 월 36,000원이 상한액으로 그 수준이 매우 낮아 공식적인 생활비 지원이 없는 것을 고려하면 노후소득을 보장하기에는 대단히 취약한 실정이다.
2009년에 조계종은 ‘무소유’의 실천 강령으로 <승려 사유 재산의 종단 귀속 시행령> 제정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사실상 이 시행령은 승려노후복지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로 노후복지 재원을 마련하는 데 있었다.62) 조계종 승려들은 사후 사유재산의 교구 귀속을 명문화하는 천주교 사제들의 유언장 작성 관행과는 달리 천주교와 같은 노후복지 시스템이 거의 없는, 다시 말해 노후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이 시행령에 동의할 수 없었고 결국 무력화되었다. 노후 주거의 경우, 종단 내에 ‘(자비로) 일정 금액을 지불해야 입주’할 수 있는 요양시설이 있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해인사와 법계사를 제외하면 전무한 실정이며 70세가 넘어 모든 소임에서 물러난 ‘한주’로 불리는 원로 승려 대부분은 사찰 내 시설에 기거하거나 신도에게 의탁하거나 특정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고달픈 노후를 보내기도 한다.63)
조계종 외에 비교적 규모가 큰 태고종과 천태종은 종단 차원의 승려 노후복지 제도가 부재한 상태로 개별 사찰이 노령 승려의 기본적인 의식주를 책임지고 있다. 불교 종단 중 유일하게 진각종만이 주거와 노후소득을 일정 수준 보장하고 있는데, 종헌에 따라 승속 20년 이상의 은퇴 승려에게 주거(기로원)와 월 100만 원 상당의 급여를 제공하고 있다.64) 이처럼 자율형 조직체계를 유지하는 불교 종단 거의 모두가 종헌이나 종법에 승려 노후복지 규정을 마련하고 있지 않아 복지 상태는 열악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단을 포함하여 단체수가 374개에 달하는 개신교65)는 개교회주의를 채택함으로써 자율적 조직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성직자 노후복지의 주체는 대체로 개별 교회에 있다. 그렇지만 교인 수가 정체 또는 감소하는 최근의 추세를 감안하면 목회자가 지나치게 많고66) 대부분의 교회가 중소형이라는 점에서 재정 여건이 성직자의 노후복지를 뒷받침하는 데에는 역부족이다. 목사는 교단 또는 교회의 규정에 퇴임 연령이 적시되어 있어서 원로목사67)로 임용되지 않는 한 70세를 전후로 교회를 떠나야 하지만 10명 중 7명이 은퇴 이후 거주할 집이 없을 정도로 현직에 머무르는 동안 노후생활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소원하기만 실정이다.68) 게다가, 연평균 근로소득이 일반 가구 전체와 비교해 낮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어서69)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목사의 노후소득은 크게 은퇴 수혜금, 국민연금, 은급의 세 가지 경로에 의존하고 있다. 은퇴 수혜금은 퇴임과 동시에 수령하는 일종의 퇴직금 개념으로 교회의 규정과 재정 여건에 따라 차이가 크게 벌어지지만 문병용의 현직 목사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의하면 노후생활보장 충족도 측면에서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70) 그렇지만 은퇴 수혜금은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으로서 주택 마련이나 자녀 결혼자금 지원 등을 고려하면 지속적인 노후소득보장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다음은 공적 연금 수급을 들 수 있는데, 국민연금의 경우 목사의 가입률이 상당히 낮아71) 상당수 은퇴 목사는 혜택을 받을 수 없으며 65세 이상 노년층 중 소득하위 70%에게 소득인정액72)에 따라 월 최대 30만 원을 지원하는 기초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목회자연금(일종의 퇴직연금), 즉 은급을 통해 일정 부분 노후소득을 보장받고 있다. 은급제도는 은퇴목회자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개별 교회가 소속한 교단에 의해 운영되며 2021년을 기준으로 감리교단, 예장통합, 예장합동 등 개신교 8개 교단에서 시행 중이다. 은급 기금은 현직 목사와 교회의 부담금, 교인들의 헌금, 예금이자, 부동산 임대수입 등을 통해 마련되고 있고 한 교단의 경우 90%에 달하는 은퇴목사가 은급에 생활비를 의존하고 있다는 조사결과73)처럼 노후소득의 중요 통로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모든 개신교 교단이 은급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아니며 운영하는 교단이라고 해도 가입률은 개별 교회의 재정 여건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의 개신교 목사들의 은퇴 이후 상황은 불교만큼이나 암울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중앙, 즉 교단 차원의 노후복지제도가 미미한 상황에서 개별 교회가 그 책임을 모두 떠안고 있는 데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목사 개인과 개별 교회에 책임을 전가하기보다는 교단 차원의 적극적인 노후대책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중앙집중형 | 자율형 | ||||
---|---|---|---|---|---|
천주교 | 원불교 | 불교 | 개신교 | ||
주거보장 | ○ | ○ | × | × | |
소득보장 | 국민연금 | ○ | ○ | △ | △ |
최저생활비 | ○ | ○ | × | × | |
퇴직연금 | ○ | △ | × | △ | |
의료보장 | ○ | ○ | △ | × |
Ⅳ. 대순진리회 성직자 노후복지를 위한 제언
대순진리회는 창설과 함께 우당을 연원(淵源)으로 연운(緣運)에 따른 체계 및 방면(方面) 체계를 형성하였는데,74) 우당의 강력한 지도력 하에서는 각 예하 방면이 종단을 대표하는 본부도장을 정점으로 조밀하게 연결된 중앙집중형 조직구조를 이루었다. 재정의 흐름만 놓고 보더라도, 각 방면에 모인 월성(성금)이 본부도장에 일괄 전달된 후 종단의 운영과 교육, 의료, 복지 등에 소요되는 60%를 제한 40%가 방면으로 되돌아가 포덕의 재원으로 쓰이고 있다.75) 하지만 1996년 우당의 화천과 그에 따른 1999년 종단의 분열 사태로 현재로는 외형상 중앙집중형 구조를 이루고 있을지라도 그 구조에 균열이 가기 시작해 정지윤이 중앙집권적 체제로 운영되는 3대 중요사업을 각 지역 회관(방면)에 이양하는 지방분권적 체제를 주장한 것76)과 같이 방면의 자율성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대순진리회의 방면은 포덕77)한 사람을 중심으로 한 속인제를 택하고 있어서 속지제를 원칙으로 하는 가톨릭과 불교의 교구와는 개념이 다소 차이가 있지만78) 도인들의 수도 또는 수행의 대부분이 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재정 또한 방면의 상황에 맞추어 비교적 자유롭게 집행되고 있으며 수임선감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타 종교의 교구와 비견될 수 있다. 또한 복지 문제를 포함하여 재정 및 운영 등의 방면 내 사안은 방면 정관에 따라 중간임원이 포함된 운영위원회를 통해 결정되고 있어서 대순진리회 성직자의 노후는 독립성을 보장받는 가톨릭의 교구처럼 방면의 자율성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대순진리회에서 성직자에 상응하는 임원은 방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이 명시적인 급여나 수당과 같은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79) 결혼하여 부부 중 한 사람이 세속 직업을 통해 경제활동을 영위하지 않은 채 수도에 전념하며 독신의 삶을 이어가는 임원에게 노후 준비는 자신과 방면의 결정에 맡겨져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많은 방면이 재정 여건이나 조직운영 능력 등에서 편차를 드러내고 있고 특히 재정 여력이 좋지 않은 방면의 경우에는 방면 자율로 취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대순진리회 성직자 노후복지에 대한 관심의 미비 원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은퇴 개념의 부재이다. 미국 텍사스의 한 개신교 교단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은퇴 관련 설문조사에 의하면, 완전한 은퇴를 원한 성직자는 24.9%에 불과했을 뿐 대부분이 부분 은퇴나 은퇴 의사가 전혀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다.80) 비록 은퇴 불원(不願)의 가장 큰 요인이 은퇴 이후 경제적 문제였지만 일부는 자신들이 선택한 직업(vocation)이 소명(calling)이기 때문이라고 응답하였다. 또한 남아공의 5년 내 은퇴하는 목사 147명(59세~64세) 중 87.4%가 30년 이상 교회에서 성직을 수행했는데, 이와 같이 평생 성직만을 수행한 것은 소명 의식의 발로이다.81) 성직은 소명이고, 그래서 은퇴 의사가 없으며, 이는 다시 은퇴 준비를 하지 않는 순환고리를 형성한다. 은퇴 개념이 없는 수행 중심의 불교 승려들 중 절반이 노후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는 조사결과처럼,82) “도문과 수도의 개념이 보다 중심적인 종교적 위상”83)을 지니고 그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인식하는 대순진리회도 유사한 상황을 나타내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사제제도가 별도로 없는 대순진리회에서 은퇴의 개념이 없다고 노후복지의 필요성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역으로 노후복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상제님을 따라 수도에만 정진하기 위해 은퇴를 무작정 결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성직자들은 종교적 가르침에 따라 청빈과 무소유 또는 빈곤의 삶을 살아간다. 이는 대순진리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순진리회의 경전 『전경(典經)』 속에서 부의 축적을 경계하고 청빈의 중요성을 가리키는 많은 문구들을 발견할 수 있다. “상제께서 이것[부자를 종도로 삼는 것]을 제일 괴로워하시니라”라든가, “부귀한 자는 자만 자족하여 그 명리를 돋우기에” 깨달음을 얻는 데 한계가 있으며 반대로 “오직 빈궁한 자라야 제 신세를 제가 생각하여” 도성 덕립에 다가갈 수 있다는 가르침이나 뽕나무 80그루와 좋지도 않은 작은 밭을 보상으로 원한 탓에 천하평정에 실패하였다는 제갈량(諸葛亮)의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84) 이러한 가르침은 교리로, 신앙으로 스며들어 수도의 삶을 우선시하는 가운데 성직자 개인이나 종단 또는 방면이 노후를 설계하고 준비하는 것을 어렵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직자에게 노후복지는 풍요로운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의 종교적 성찰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드는 기본 요건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법적 지위의 불명확성이 노후복지 준비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성직자는 법적으로는 소득이 발생하면 본인 스스로 세금을 신고해야 하는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게다가, 2016년에서야 종교인 과세를 법으로 규정함으로써 그 이전에는 국민연금 의무 가입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고,85) 그 결과, 공적 사회보장제도와의 연계도 성직자 개인에게 맡겨져 있었다. 대순진리회의 임원들이 실질 임금이 명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후보장을 위해 개인적으로 공적 연금에 임의 가입하는 것은 많지 않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순진리회 성직자들의 노후복지 개념이 불명확한 원인은 조직의 내적 요건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종단은 복지사업을 대외적 복지, 즉 사회복지나 사회사업에 치중하여 대내적 복지로서 성직자 노후복지에는 더 큰 관심을 드러내지 못하였다. 중앙집중식으로 시설 규모를 크게 함으로써 다양성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낸다는 박용철의 주장86)이나 종단의 복지활동 자체가 교세 확장과 개인의 영혼구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정지윤의 주장87)처럼, 종단의 복지사업 속에는 대내적 복지의 자리가 비워져 있다. 예들 들어, 2014년을 기준으로 종단의 연간 예산 중 70%가 할애된 교육사업, 사회복지사업, 구호자선사업에 각각 74.7억, 66.3억, 5.6억이 투입되었지만88) 복지의 주체가 방면이므로 성직자 복지에 활용된 종단 차원의 예산 항목은 없었다. 또한 종단의 역사가 짧은 것도 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원을 1871년 증산의 강세년도에 두고 있을지라도 창설된 1969년 이후에야 비로소 교단의 조직과 체계가 갖추어져 실질적인 역사는 50년 남짓이다.89) 설립 이후에도 교세 확장과정에서 타종교의 견제나 사회적 인식 부재를 극복하기 위한 종단의 어려움과 우당 화천 후 발생한 분규 사태로 말미암아 종단 차원에서 내부 복지 체제를 지속적으로 정비하고 실행할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체 도인들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여건을 노후복지 개념의 미비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다. 김항제에 따르면, 기독교 교인의 사회적 지위가 중ㆍ상층이 많은 것과 비교해 도인은 하층 65%, 중산층 20%를 차지할 정도로 전반적으로 하향적이다.90) 이런 상황에서 종단의 주요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임원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들을 위한 정책이라 할 수 있는 노후복지정책안을 마련하고 시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노후복지 불안정이 가져오는 결과는 성직자의 이탈과 직간접적인 연관성을 드러내며91) 이는 궁극적으로 포덕의 정체 또는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포덕은 해원상생과 보은상생의 양 원리인 대도의 이치를 바르게 알려주는 핵심 교리92)이며 포덕에 전념하는 것은 임원 소임의 중핵이다. 성직자의 이탈 현상은 세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첫째로는 전통적인 신앙처인 사찰, 교회, 사원을 벗어나지만 성직자 신분을 유지한 상태로 학교, 병원, 요양원, 교단의 관리처 등에서 종교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고, 두 번째 양상은 성직과 세속 직업을 겸하는 것이며, 성직을 완전히 떠나 세속 직업에 전념하는 것이 마지막 양상이다. 실제로 대순진리회의 임원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방면의 포덕으로부터 (자의든, 타의든) 이탈했는지는 참고할만한 통계가 없어 알 수 없지만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성직자 이탈이 국내 종교 인구의 감소93)와 맞물려 포덕에 악영향을 미칠 것임은 누구나 예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순진리회 성직자의 안정적인 종교 활동 수행을 위한 노후복지에 무엇이 필요한가? 그것은 일차적으로 성직자 복지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활동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불교, 기독교 등 국내 종교의 성직자들 중 약 60%가 노후 보장의 주체로 교단(종단)을 꼽았으며, 개신교 목사 대부분이 교단에서 노후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94) 노령 성직자에게 안정적인 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개별 사찰이나 교회는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대순진리회의 각 방면 또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아 재정이나 전문 인력 등을 고려하면 각 방면이 노후복지를 전적으로 책임지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성직자 노후복지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과 더불어 노후복지에 관한 통계 등의 기초조사가 필요하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관으로 매년 실시하는 신자, 성직자ㆍ대신학생, 수도자 현황 등이 포함된 한국 천주교회 통계 조사를 참고해볼만 하다. 이와 함께 대순진리회 교역자들이 생각하는 노후복지에 관한 설문조사 등도 실시해야 할 것이다. 종단 전체 차원의 복지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그 근거로서 통계와 설문조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종단 차원의 통계 및 설문 조사가 실시된 바 없으며 개별 연구자에 의한 조사 또한 미미하다.
둘째로는 성직자 노후복지에 관한 명문화 작업이 필요하다. 서구의 종교단체 대부분은 공적 규정을 마련하고 있는데, 예들 들어, 영국의 이스트 앵글리아 교구는 사제의 보수, 연차휴가, 의료 등에 관한 복지 규정뿐만 아니라 은퇴사제의 주거, 보수, 연기금, 국가사회보장과의 연계 방법, 장례 등 노후복지에 관해서도 구체적인 규정을 문서화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비교적 양호한 노후복지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가톨릭과 원불교는 종단 법령에 의거해 노령 성직자를 지원하고 있으며, 비록 늦기는 했지만 불교 또한 2011년 <승려복지법>을 제정하고 이를 근거로 노후복지 확대를 꾀하고 있다. 다만, 개신교는 일부 교단에서만 내부 규정을 마련하고 있을 뿐 대부분이 헌법 등에 노후복지 관련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개신교 성직자의 노후복지는 개별 교회에 맡겨져 불안정한 상태이다. 대순진리회의 운영 규칙이라 할 수 있는 <대순지침>에는 상조회를 통해 상생하라는 규정이 있으나 내부 복지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구호자선사업’의 관점이 더 크게 반영되어 있으며 무료 예식장 운영에 관한 훈시가 있기는 하지만 노후복지에 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95) 현실적으로 새로운 규정을 신설하는 것이 어렵다면 상조회 규정을 보다 구체화해 복지의 관점에서 노령 임원의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셋째, 현재 대순진리회에서는 3대 중요사업에 상당한 재원을 투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경원과 백경언의 연구에 의하면, 도인들이 느끼는 사회사업 성과에 대한 만족도가 절반 이상에서 ‘보통 이하’로 나타나고 있고, 이와 비례하여 40% 정도의 도인들이 노령 교역자의 노후 안정에 관한 제도적 장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96) 현재의 사회사업은 우당 제세 시 마련된 것으로 그 당시에는 대순진리회가 창설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노령 임원의 수가 많지 않았고 국가적으로도 복지가 사회 일반의 화두로 자리 잡지 못하였다. <대순지침> 2장의 구호자선사업 규정에 ‘소외당하기 쉬운 사람들에게 자혜(慈惠)를 베풀고 구호자선에 힘써 재활의 기쁨을 심어 주는 데 노력하라’라는 훈시가 포함되어 있는데, ‘소외당하기 쉬운 사람들’을 법리적으로 보다 유연하게 해석한다면 노령 임원의 복지 지원에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3대 중요사업’ 중 사회복지사업이나 구호자선사업의 하위 항목에 임원 노후복지 신설을 검토해볼 만하다. 또한 박종수는 사회복지사업비에서 정부 보조금 비율이 타 종교와 비교해 현저히 낮다고 주장한다.97) 그것이 비록 운영의 자율성 측면에서 효과적일지라도 복지 분야에서 종교단체와 정부 또는 지자체의 협력은 세계적인 추세이다.98) 따라서 공공의 보조금 수혜율을 높여 그것에 상응하는 재원만큼이라도 노후복지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대순진리회 자체 연금으로서 퇴직연금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의 유희원과 한신실의 조사에 의하면, 성직자들이 생각하는 노후준비 수단으로 종교단체 자체의 연금제도가 필요성 측면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특히, 종단이나 교단 차원의 노후보장이 상대적으로 약한 개신교와 불교의 경우 종교단체가 제공하는 연금제도의 필요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99) 가톨릭은 이미 사제공제회를 매개로 시행한지 오래이며, 원불교는 중앙의 공익부를 통해 후생비를 조성하고 있고, 일부 개신교 교단들 또한 은급제도를 도입해 성직자의 노후소득을 일정 수준이라도 보장하고 있다.
다섯째, 노후 주거 공간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해외 사례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가톨릭계 버펄로 교구(Diocese of Buffalo)에서는 교구 소유의 토지에 아파트 건물을 지어 은퇴 또는 준은퇴 사제의 주거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파트는 대략 20평 규모의 침실, 화장실, 거실, 개별 차고의 단독 공간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식당, 예배당, 방문객 접견실 등의 공용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늘어나는 은퇴 사제로 이미 세 동(각각 다른 지역)을 건립하였고 추가 건축을 계획하고 있다.100) 국내에서는 가톨릭이 은퇴사제에게 단독 주거 공간(아파트 등)을 제공하고 있으며, 원불교는 비록 집단주거형태지만 독립생활이 가능한 1인실을 제공하고 있다. 대순진리회에서 노령 교역자에 대한 양로원 개원이 내부 복지로 가장 선호101)되고 있는 상황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만일 안정적 주거 제공이 재정이나 방면 간의 이해상충 등의 당면한 다양한 현안 때문에 당장 실현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적어도 요양(병)원 입소자에 한해서라도 방면의 지원과 연계하는 제도라도 시행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국가 사회보장제도와의 연계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수도에 전념하는 별도의 명시적 급여를 지급받지 않는 임원들은 근로기준법과 소득세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보험료 납부를 전제로 급여를 지급하는 국민연금 의무가입대상이 아니다. 65세 이후 상당수의 임원들은 국민연금을 수급하지 못하고 소득이나 재산 등의 일정 요건을 충족할 때에만, 즉 특별한 소득이나 재산이 없을 때에만 지급되는 소액의 기초연금 수급 대상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임의가입제도를 활용해 국민연금 가입을 법제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 방면의 정책을 견인할 수 있도록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최소한 보험료의 일부라도 종단이나 방면이 납부하고 나머지를 임원 개인이 납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후복지로서 의료비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가톨릭과 원불교는 은퇴 성직자에게 발생하는 의료비 개인부담금 전액을 교구와 종단에서 지급하고 있다. 도인들이 제생병원 등 산하 재단의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에는 상급임원에게는 개인부담금 50%, 그 외 도인에게는 30%을 감면해주고 있다. 명시적인 임금 없이 평생 수도에 전념한 임원에게 개인부담금은 큰 부담요인일 수 있으며 규모가 작고 재정 여건이 넉넉지 않은 방면이 이를 복지차원에서 전적으로 책임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재정적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전액, 아니면 적어도 일부라도 종단이 방면과는 별개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Ⅴ. 맺음말
성직자는 평생을 종교 안에서 살아왔고 마지막 남은 생마저 종교 안에서 마치기를 희망한다. 그것은 어쩌면 성직을 소명으로 받아들인 순간 결정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누가 등을 떠민 것도 아닌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종교적 삶을 걸어왔다고 그들의 노후를 온전히 그들 각자의 책임으로 전가할 수 있겠는가? 성직자가 노후의 안정적인 삶을 직접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요구하지 않는다는 해서 그것의 필요성이 없어지거나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며 단지 그 소리가 “들려지지 않을”102) 뿐이다. 성직자가 “스스로 고용된”(self-employed)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종교단체 스스로 “자기기만”(self-deception)에 빠지지는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처럼,103)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복지정책을 시행하는데도 불구하고 이제 더 이상 주교가 노후복지에 대해서는 정부 규정이나 찾아보라 했다는 어떤 사제의 자조 섞인 푸념104)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성직자의 노후복지는 종교조직이 중앙집중적일수록 양호해지고 자율적일수록 불안정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조직체가 하나인 가톨릭과 원불교가 중앙을 중심으로 노령 성직자의 복지를 체계화하고 있는 반면에, 수많은 조직으로 분화된 불교와 개신교는 개별 사찰과 개별 교회에 성직자 노후 거의 대부분을 위임하고 있다. 그렇다고 불교 종단들과 개신교 교단들이 승려와 목사의 복지 요구에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은 아니며 비록 현재로는 상대적으로 미흡할지라도 명목상이라도 자체의 노후복지 시스템을 갖추고 이를 확대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대순진리회는 중앙집중적 조직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방면의 자율성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여 성직자 복지가 모호해지고 이에 따라 노후의 안정적 삶을 기약하는 복지 체계 개념은 다소 명확하지 않은 실정이다. 이제는 내부로도 복지의 범위를 확장할 때이다.
학자들의 반성적 사유 또한 뒤따라야 할 것이다. 대순진리회 복지에 관한 연구논문이 몇 편에 불과하고 사회사업을 향한 채 내부 복지를 본 주제로 삼은 연구는 발견되지 않으며, 극히 제한적인 연구에서 도인들의 내부 복지 관점을 소개하고 있다. 이에 더해, 내부 복지 연구에 지표로 삼을만한 성직자의 고령화 현상, 수입, 주거 등에 관한 통계 자료 등도 구할 수 없다. 따라서 본 연구 또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개관과 제언에 머무르고 있다. 그것이 수많은 후속연구가 이어져야 하는 이유이다. 성직자 복지에 대한 관심은 방면과 종단 모두에게 있는, 대순진리회 신앙공동체 전체가 대응할 필요가 있는 과제이다. 평생을 수도에 투신해 온 노령 교역자에게 안정적인 노후를 제공할 수 있도록 관심의 폭이 늘어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