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면서
이 글에서는 해원(解冤)의 용례를 검토하고, 그 개념적 변화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이를 위해 사용하는 방법론은 용례의 변화를 통해 해원의 개념적 내포와 외연을 검토하는 일종의 개념사 연구이다.
해원은 통상적으로 어떤 종류의 용어인가? 우선, 해원은 종교와 관련된 용어이다. 이와 관련해, 해원이라는 용어는 증산(甑山, 姜一淳, 1871~1909)의 해원사상뿐만 아니라, 무속의 씻김굿ㆍ진오귀굿, 불교의 천도재ㆍ수륙재(水陸齋), 유교의 여제(厲祭)ㆍ엄격매자(掩骼埋胔) 등에서 볼 수 있고, 도교의 초기 경전인 『태평경(太平經)』에는 ‘인간 사이에 원한을 해소해 태평한 세상을 이룬다’는 해원결(解冤結) 사상이 담겨 있다.1) 실제로, 불교의 수륙재에서는 ‘원혼의 해원’을 위해 관음시식 부분에서 해원결(解寃結)진언 또는 해원결다라니가 독송된다. 무속에서는 혼령의 위무와 극락 천도를 위한 사령제(死靈祭) 또는 원통한 혼령으로 인한 질병과 재액(災厄)의 치유를 위한 치병제(治病祭)에서 원혼의 한을 풀기 위해 『해원경(解寃經)』의 독경이 이루어진다.2)
다음으로, 해원은 언론 기사에서도 볼 수 있지만3) 사전류에 등재된 일상용어이기도 하다. 사전류에서 해원은 대체로 ‘원통함을 푸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와 관련해, 『표준국어대사전』과 『우리말샘』에서는 해원을 “원통한 마음을 풂”으로 규정하면서 “지하에 잠든 원혼들의 해원이 될 그날까지(박경리의 『토지』)”라는 표현을 사례로 들고 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해원을 “가슴속에 맺혔던 원통함을 풂”으로 규정하면서 “잡신들의 해원을 위한 굿”이라는 표현을 사례로 들고 있다. 그에 비해 『네이버 일본어사전』은 해원을 ‘우라미(恨みㆍ怨み)를 푸는 것(うらみをはらすこと) 또는 우라미 해체하기(うらみばらし)’ 또는 원한(恨み)이나 앙심(怨み)이나 유감ㆍ흠ㆍ아쉬움ㆍ불만(憾み)을 푸는 것으로 신원(伸冤)의 의미와 유사하게 규정하고 있다.4) 그 외에 해원이라는 용어는 노래 제목이나 영화 제목 등에서도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해원이라는 용어가 종교 영역과 비종교 영역에서 사용되는 상황에 대해 우리는 ‘과연 두 영역에서 사용되는 해원의 개념이 일치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만약 두 영역에서 사용되는 해원의 개념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다시 ‘해원의 개념이 어떻게 다르고 언제 달라졌는지’라는 물음도 던질 수 있다.
두 가지 물음에 대해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이 가정한다. 첫 번째 물음에 대해서는 해원 개념이 종교 영역과 비종교 영역에서 사용될 때 일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 연구에서 종교 영역은 대체로 증산 신앙5)과 관련된다. 두 번째 물음에 대해서는 해원의 개념이 증산의 등장 이후에 다소 달라졌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렇게 가정하는 이유는 필자가 ‘종교 언어는 종교적 세계관에서 부여된 위치를 갖는다는 관점’6)을 가지고 있고, 용례들의 의미를 개념의 내포와 외연 차원에서 접근하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용어가 특정한 종교적 세계관에 위치하면 해당 세계관에서 그 용어의 내적 의미와 적용 범위를 용인해 그 이전과 다른 내포나 외연을 갖게 된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해원에 관한 연구들은 1970년대 중반부터 국문학계, 1980년대 후반부터 종교학계에서 시작되어, 1990년대 이후 대순진리회의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추세를 보였다. 이 연구들은 대체로 해원을 종교 언어의 차원에서 접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구체적으로, 김열규(1932~2013)는 1976년에 무속과 증산교의 해원 관념을 묶어 ‘해원사상’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7) 노길명은 1989년에 ‘한국 신흥종교운동의 사상적 특성’으로, ‘한국인의 의식 세계에 해원사상(Haewon Thoughts)이 잠재되어 있고, 무속, 민족종교나 그리스도계 신종교들의 토대가 해원사상이며, 무속의 해원이 개인ㆍ가족ㆍ부락을 대상으로 원한을 풀고 신바람을 얻는 데에 국한되지만, 신종교의 해원이 민족ㆍ국가ㆍ인류로 범위를 확대해 원한 풀기를 넘어 해원상생사상 또는 평화공존사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8)
이어, 1990년대 이후에는 논문 제목에 ‘해원, 해원상생사상, 해원사상’ 등을 포함시킨 사례들이 증가하면서9) 종교 언어로서 해원이 중시된다. 1990년대 이후 해원과 해원사상에 관심을 집중한 경우로는 박용철(1995), 이경원(1998), 차선근(2021) 등의 연구를 들 수 있다.10)
이러한 선행연구들은 해원을 종교 언어로서 조명해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특징을 보인다. 그에 비해 아직까지 해원 개념의 역사적 변화에 주목한 경우는 미약한 편이다. 그렇지만 해원 개념의 역사성에 주목하는 일은 해원이라는 용어가 여러 맥락에서 사용되다가 현재의 종교 언어가 되었다는 점과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사유의 전환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상의 문제의식과 가정, 그리고 선행연구의 추세를 고려해, 이 연구는 해원의 용례를 통해 해원 개념이 증산의 등장 이전에 어떤 내용이었고, 증산의 등장 이후에 어떠한 변화를 보였는지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해원과 관련된 조선시대의 용례들(제2장)과 일제강점기의 용례들(제3장)을 살펴보고, 『전경』과 주요 선행연구의 내용(제4장)을 검토한 후, 그 개념적 변화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 연구에서 사용하는 주요 분석 자료는 『조선왕조실록』과 『전경』이다. 그 외에 조선 건국 직후 왕명으로 편찬을 시작해 1454년(단종 2) 10월에 반포된 『고려사(高麗史)』, 정종(재위 1398~1400) 이후 일종의 국왕 비서실인 승정원에서 나온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1555년(명종10) 이후 비변사의 국정 관련 회의 기록을 담은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임진왜란(1592~1598) 이후 1910년 대한제국 시기까지 지방 관아와 중앙 관청이 주고받은 공문서를 모은 『각사등록(各司謄錄)』, 1781년(정조5) 형조좌랑 박일원이 형정ㆍ재판에 관해 참고할 목적으로 각종 법례ㆍ판례ㆍ관례를 모은 『추관지(秋官志)』, 신문자료와 선행연구 등도 활용한다.11)
Ⅱ. 조선시대의 해원 용례와 개념
먼저, 『조선왕조실록』에는 해원(解冤)과 관련된 61건의 용례가 확인된다. 이 용례들을 보면, 56건이 ‘관부(官府)에 판결을 요청하는 송사(訟事)나 형옥(刑獄, 형벌과 감옥)의 부당함’에 관한 내용, 3건이 ‘가뭄이나 전염병 등의 자연재해’의 해소에 관한 내용, 2건이 ‘잘못된 제도의 개선’과 관련된 내용이다. 이 가운데 59건에는 형법(刑法) 적용의 부당함과 관련된 용례에는 사망한 경우뿐만 아니라 사망하지 않은 경우도 포함된다.
이 가운데, 첫 번째로, 송사나 형옥과 관련된 일부 용례들은 다음과 같다. 『세종실록』에는 해원(解冤)이라는 표현이 2건이다. 1432년(세종14) 7월 기사에는 ‘도관(都官)이 잘못 판결하면 형조와 한성부가, 형조와 한성부에서 잘못 판결하면 사헌부가 분변해 바르게 하여 원을 풀게 해야 한다(解冤)’는 상소, 1434년(세종16) 9월 기사에는 관리가 날마다 술에 취해 부친에게 그릇된 형벌을 가해 부친이 옥중에서 죽었으니 임금이 특명으로 조사해 해원해달라(願推鞫解冤)는 상소가 있다.12)
『문종실록』에는 해원(解冤)이라는 표현이 1건이다. 이와 관련해, 1452년(문종2) 황희의 졸기(卒記) 기사에는 태종이 민제(閔霽)의 딸인 여흥 민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장남 이제(李禔, 양녕대군)의 무례함을 말하면서 세자를 변동시키려고 할 때 황희가 어린 탓으로 큰 과실이 아니라고 옹호하자, 태종이 황희가 과거에 공격했던 민무구(閔無咎)ㆍ민무질(閔無疾) 등 민씨의 원한을 풀어주고(解冤閔氏) 세자에게 붙어 후일의 터전을 삼으려 한다는 이유로 화를 냈다는 내용이 있다.13)
『성종실록』에는 해원(解冤)이라는 표현이 3건인데,14) 그 외에 해원억(解冤抑) 5건, 해원민(解冤悶) 2건 등 ‘원억이나 원민’과 결합된 사례가 있다.15) 『연산군일기』에서도 해원(解冤) 2건 외에 해원민(解冤閔) 1건이 보인다. 이 가운데 1497년(연산3) 7월 기사는 외지부(外知部, 법률 지식을 이용해 남의 소송을 처리하고 돈을 받는 사람) 사람들이 모두 간사하고 법을 어지럽히는 백성(奸詐亂法之民)들로 변방으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대전(大典)』과 『대명률(大明律)』과 맞지 않으니 실상을 파악해 송환해도 해롭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해원에 있고 하늘의 뜻에 순응하는 데에 있다는 내용이다.16)
『중종실록』에는 해원(解冤) 8건 외에,17) 해원억(解冤抑) 1건, 해원민(解冤悶) 3건, 해원사(解冤事) 1건, 해원억사(解冤抑事) 1건 등이 보인다.18) 이는 원억이나 원민 외에 ‘원사나 원억사’와 결합된 사례이다. 그 외에 해원폐(解冤廢)가 1건이 있는데, 원폐, 즉 억울하게 폐서인(廢庶人)이 된 것을 풀어달라는 내용이므로19) 살아 있는 자에게 적용된 사례이다.
『명종실록』에는 해원(解冤) 4건 외에20) 해원민(解冤悶) 1건21)이 보인다. 여기서 해원민(解冤悶)의 용례가 담긴 1558년(명종13) 12월 기사는 명종이 승정원에 내린 전교로, 두 인물에 대한 과거 급제를 복구해 원민(冤悶)을 풀어주어야 하는데 갑자기 고치기 어렵다고 해도 이들의 원민(冤憫)을 알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선조실록』에는 해원(解冤) 2건이 보인다.22) 『광해군일기』에는 해원(解冤) 3건 외에23) 해원억(解冤抑) 1건, 해원사자(解冤死者) 1건이 보인다.24) 여기서 해원사자(解冤死者)의 용례가 담긴 1614년(광해6) 4월 최유원(崔有源)의 졸기 기사는 ‘최유원이 임자년 이후로 자못 ‘원통하게 죽은 사람’을 신원(伸冤)해 주었다’는 내용이다.
그 외, 인조 이후의 용례를 보면, 『인조실록』에 해원기(解冤氣, 1건)와 해원왕(解冤枉, 1건),25) 『현종개수실록』에 해원(解冤, 1건),26) 『숙종실록』에 해원울(解冤鬱, 1건),27) 『정조실록』에 해원(解冤, 1건),28) 『헌종실록』에 해원결(解冤結, 1건),29) 『고종실록』에 해원(解冤, 1건)과 해원심(解冤心, 1건)과 해원설분탕(解冤雪忿湯, 1건) 등이 있다.30) 이상의 용례들은 해(解)의 대상이 ‘원기(冤氣), 원왕(冤枉; 寃屈, 억울한 죄), 원울(冤鬱), 원결(冤結), 원심(冤心)’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어 법적 차원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로, 자연재해와 관련된 용례는 3건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종실록』의 1474년(성종5) 윤6월 기사에는 한발(旱魃)이 혹독하고 여러 달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재앙을 그치게 하는 방책(弭災)’에 관한 상소에 해원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재앙을 그치게 하는 방법으로, 군액(軍額)과 관청노비(公賤)의 공물을 줄일 것 등과 함께, 과거에 세종이 수륙재를 설해 ‘원기를 풀었더니(解冤氣)’ 악질이 점차 멈춘 사례 등을 들어 수륙도량을 설치해 경을 설하면 괴기(乖氣, 사리에 어긋난 기운)가 스스로 멈추고 병의 근원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라는 내용이다.31)
『효종실록』의 1652년(효종3) 4월 기사에는 한재(旱災)가 심해 사직단 기우제를 지냈지만(親禱) 가랑비만 오다가 다시 날이 개이자 효종이 대신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묻는 과정에서 영의정 정태화가 ‘경중을 따지지 말고 감옥(囹圄)을 열어 죄수들을 석방해야 원왕(冤枉)을 풀고 여기(戾氣, 어그러진 기운)를 해소할 수 있다’고 말한 부분, 좌의정 김욱이 ‘심리(審理, 사실과 법률관계의 조사)가 원왕을 풀어주기 위한 것인데 죄가 있는 자까지 모두 사면한다면 심리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 부분에서 해원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 기사에는 사형수가 계복(啓覆, 재심리)을 받지 못해 원을 품고(抱冤) 여러 해 동안 옥에 갇혀 억울한 기운(鬱抑之氣)이 있었을 것이고, 그 기운이 화기를 상하게 하고 재해를 불러온다(傷和召災)는 인식이 담겨 있다.32)
또한 1656년(효종7) 3월 기사에는 하늘의 재앙으로 영남의 흉년이 극심한 가운데 나라 곡식(公穀)을 배로 운반하는 자의 패선(敗船, 배를 부숨)에 대해 사무담당자(有司)가 허실을 명확히 조사하지 않고 그 처자식과 일가(妻孥隣族)를 모두 감옥에 가두고 수년 동안 갚도록 독촉하여 고아ㆍ과부(孫兒寡妻)가 원통해 울며 하늘을 부르니(冤泣號天) 해당 관청에서 참작해 처리하는 것이 해원의 한 가지 길(解冤之一道)이라는 재변에 관한 상차(上箚, 상소)가 있다. 이 기사에는 하늘이 재앙을 내리는 것(天之降災)을 풀기 위해 해원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담겨 있다.33)
세 번째로, 제도 개선과 관련된 용례는 2건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종실록』의 1485년(성종16) 6월 기사에는 가뭄이 심해지자 성종이 자책하는 과정에서 ‘폐단을 고쳐 원을 푼다(革弊解冤)’는 표현이 등장한다. 가뭄으로 곡식이 타서 추수(秋收)하기 어려운 상황에 대해 성종이 폐단 개혁을 비롯해 원을 풀기 위한 노력들을 했지만 오히려 정사가 잘못되고 정성이 미치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내용이다.34)
『인조실록』의 1626년(인조4) 11월 기사에는 호패청(號牌廳)이 평소 노제군사(老除軍士, 군역ㆍ부역 면제)에게 납포(納布)하게 하는 군적(軍籍) 규정을 개선한 것(更張革弊)이 원을 푸는 정사(解冤之政)라는 부분이 있다. 그 뒤에는 규정 개정에도 불구하고 종전처럼 노제군사의 납포를 받는 고을을 검속해 일체 금지시키고 사사로이 받는 자를 적발해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重治)는 내용이 보인다.35)
다음으로, 『승정원일기』의 경우, 해원과 관련된 표현은 1636년(인조14) 8월부터 1894년(고종31) 7월까지 24건이 보인다. 해원(解冤) 10건 외에, 해원울(解冤鬱, 7건), 해원억(解冤抑, 2건), 해원사(解冤事), 해원분(解冤氛), 해원결(解冤結), 해원심(解冤心, 2건) 등이 있다. 일부 용례를 보면, 해원은 고아ㆍ과부의 원(冤)을 푼다는 내용,36) 해원울은 속환(贖還)을 위한 사신행에 삭선(朔膳)을 가지고 가는 사람을 허락해 원울의 마음(冤鬱之情)을 풀어야 한다는 내용,37) 해원억은 군액(軍額)을 보충하려고 4~5세 아이에게도 포(布)를 요구해 부모가 통곡하며 죽지 못한 것을 원망하다가 결국 떠돌다 죽은 신세가 되어 천지에 하소연해 재해를 부르니 조정에서 대책을 도모해 원억(冤抑)을 풀어 재앙을 막아야 한다(弭災)는 내용,38) 해원사는 진도(珍島) 사람에게 원사(冤死)를 풀어주어야 한다는 내용,39) 해원분은 가뭄 피해의 책임과 억울한 죄수(罪人)를 소결(疏決, 너그럽게 처결)해 원분(冤氛)을 풀고 화기(和氣)를 인도해 비가 오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40) 해원결은 원결(冤結)을 풀지 못하는 것을 폐막(弊瘼, 고치기 어렵게 된 폐단)이라고 한다는 내용,41) 그리고 해원심은 지석영의 상소 내용으로, 원심(冤心)을 풀어야 분심(忿心)이 소멸되고 분심이 소멸되어야 배심(背心)이 생기지 않는다는 내용42)에서 등장한다.
다음으로, 『비변사등록』의 경우, 해원과 관련된 표현은 3건이다. 해원(解冤) 1건 외에 해원민(解冤悶, 1건), 해원울(解冤鬱, 1건) 등이다. 여기서 해원은 양전(量田, 논밭 측량)을 위해 파견된 균전사(均田使)가 여러 고을을 다니며 살펴서 원을 풀어주었다는 내용, 해원민은 관청이 양질의 인삼을 올리라고 하지만 채취 시기를 기다려야 하니 관련 내용을 입계(入啓, 왕에게 문서를 올림)해 원민(冤悶)을 풀어달라는 내용, 해원울은 속환(贖還)을 위한 사신행에 삭선(朔膳)을 가지고 가는 사람을 허락해 원울의 마음(冤鬱之情)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내용에서 등장한다.43)
다음으로, 『각사등록』의 경우, 해원이라는 표현은 9건이 보인다. 『각사등록』 7건44)과 『각사등록 근대편』 2건이다. 『각사등록』이 다른 자료와 다른 부분은 ‘해원’이라는 표현만 보인다는 점이다. 주요 내용은 청원(請願), 소장(訴狀), 지방의 민정 등을 살핀 결과를 임금에게 보고하는 장계(狀啓) 등에서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1896년(건양 원년) 5월 기사에는 관리와 마름[대리소작권자]의 농간으로 역토(驛土, 역에 딸린 논밭)를 탈취 당했다는 맥락에서, 1902년(광무 6) 9월 기사에는 매장하지 못한 시신 2구의 처리가 필요하다는 내용에서 해원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45)
다음으로, 『고려사』와 『추관지』 등에도 해원과 관련된 표현이 보인다. 『고려사』의 경우, 형법지(刑法志) 부분에 해원람(解寃濫)이라는 표현이 1건 있다. 공양왕 3년(1391) 10월 당시 상소에 ‘3년 내 잘못된 판결들을 조사해 원람(寃濫)을 풀어주고 풍속을 바르게 해달라’는 내용이다.46) 그리고 『추관지』의 경우, 해원이라는 표현은 1건이 확인되는데, ‘살인자를 죽이는 형벌은 죽은 자의 해원(解冤) 및 산 자의 만족이 있어야 적절하다’는 내용이다.47)
이상의 용례들을 보면, 해원 개념을 관통하는 부분은 ‘원통함을 풀어줌’이라는 내포이다. 그렇지만 해원 개념의 외연은 원통함의 발생 영역에 따라 달라진다. 앞에서 확인했듯이, 『조선왕조실록』에서 해원 개념의 외연은 ‘원통함’이 발생한 ‘잘못된 법적 처리, 자연재해, 잘못된 제도’ 등으로 달라지고 있다. 그리고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각사등록』, 『고려사』, 『추관지』에 있는 용례들의 외연도 『조선왕조실록』의 경우와 유사하다. 다만, 『비변사등록』과 『각사등록』에서는 잘못된 제도 개선과 별도로, ‘관료들의 횡포 처리’ 부분이 외연에 추가될 수 있다. 이처럼 해원 개념의 내포가 유사해도 그 적용 범위에 따라 외연이 다르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해원 개념이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의미한다.
여러 해원 개념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해원 개념이 개인적 차원만이 아니라 집단적 차원의 사회적ㆍ문화적인 열망까지 담고 있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개별적으로 잘못된 송사나 형옥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사례들은 개인적 차원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 사례들을 취합해 조사 대상으로 삼는 순간 사회적ㆍ문화적 차원이 된다. 또한 자연재해 처리나 잘못된 제도 개선 사례는 집단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차원에서 원통함을 풀기 위한 열망과 직결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해원은 개별성뿐만 아니라 사회성과 문화성까지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Ⅲ. 일제강점기 증산 신앙 단체의 해원 용례와 개념
증산 이후의 자료들을 보면, 해원이라는 용어는 일상적으로 계속 사용되지만 종교 언어로도 사용된다. 한 가지 특징은, 이전처럼, 해원억(解冤抑), 해원민(解冤悶), 해원사(解冤事), 해원억사(解冤抑事), 해원기(解冤氣), 해원왕(解冤枉), 해원울(解冤鬱), 해원결(解冤結), 해원심(解冤心) 등의 표현들이 사라지고 해원이라는 용어만 사용된다는 점이다.
우선, 해원이 일상 언어로 사용된 사례들은 사전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조선총독부가 1920년에 간행한 『조선어사전』을 보면, 해원은 ‘원한을 씻는 것[解冤(ᄒᆡ원): 冤恨を雪ぐこと]’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표현과 의미는 1928년에 간행된 『조선어사전』에서도 동일하다.48) 그리고 1938년 문세영(文世榮)의 『조선어사전』에서 해원(解冤)은 ‘원한을 푸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49)
이러한 일상 언어로서의 해원 개념은 원한을 푸는 것이라는 내포를 갖는다. 그리고 당시의 언론기사를 보면, 그 외연은 조선시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죽은 자뿐만 아니라 산 자에게도 적용된다. 이와 관련해, 1928년 12월 기사에는 경찰이 진범이 아닌데도 고문으로 범죄자를 만들어 누군가가 원죄(冤罪, 억울하게 뒤집어 쓴 죄)를 져도 해원(解冤)할 보장이 없는 가련한 경우가 있다는 내용이 있다.50)
다음으로, 해원이라는 용어는 종교 언어로 사용된다. 이와 관련해, 당시의 언론 기사에는 태을교(太乙敎)와 보천교(普天敎)가 해원을 중시한다는 인식이 담겨 있다. 구체적으로, 1922년 2월 태을교 관련 기사를 보면, 강증산이 유교와 불교와 선교(仙敎)를 합해 종교를 창설하고 “거병해원(去病解寃, 병을 버리고 원통한 것을 푼다)이라는 주의를 창도”했다는 표현이 있다.51)
또한 1924년 9월 보천교 관련 기사에는 ‘일심(一心), 상생(相生), 거병(去病), 해원(觧寃)’을 ‘천사(天師)의 금훈(金訓)’이라고 소개한 내용이 있다.52) 그리고 1925년 1월 시국대동단(時局大同團) 관련 기사에는 보천교에 대한 오해를 일소하기 위해 ‘해원상생’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했다는 내용53)과 보천교의 교의(敎義)인 ‘해원상생’이 ‘인간이 신과 일체(人間は神と一體)’라는 신앙 아래 ‘약육강식의 쟁탈로부터 각성해서 신성(神聖)에 철저해서 먼저 이웃(隣人)을 사랑하고 공존 공영하여 전 인류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54) 시국대동단의 결성을 비판한 1925년 2월의 『개벽』 제56호 기사에도 “林敬鎬는 소위 普天敎의 교의라는 解怨相生(害怨傷生이라면 가할 듯)의 說을 橫竪 설명”했다는 표현이 있다.55)
당시 종교 언어로서의 해원 개념을 보기 위해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의 『조선의 유사종교(朝鮮の類似宗敎, 1935)』를 참조할 수 있다. 이 자료에는 증산이 1901년에 대원사(大願寺)에서 구도를 마치고 자택에 기도소를 설치해 4강령(神化一心ㆍ仁義相生ㆍ去病解怨ㆍ後天仙境)을 수립하고 이에 달하는 요법으로 일종의 주문을 외는 종교를 창설했다는 내용이 있다. 다만, 거병해원에서 해원은 원통할 원(冤)이 아니라 원망할 원(怨)으로 표기되고 있고, 인의상생에 의해 자애호조(慈愛互助)의 적극적인 생활을 영위하면서 동시에 일체의 재화죄악(災禍罪惡: 病)과 불평불만(不平不滿: 怨)을 풀어야 일심신화(一心神化)을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56)
또한 이 자료에서는 당시 증산 신앙을 표방한 11개의 단체들 가운데 증산 직제자였던 안내성(安乃成)의 증산대도교(甑山大道敎)가 해원을 핵심 교리로 삼았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그에 따르면, 증산대도교는 3대 종지(侍奉 天地人 三神, 統率 仙佛儒 三道, 一心 誠敬信 三字)와 8조목(修道布德, 神人合德, 袪病解寃, 安心安身, 綱紀勿亂, 救靈送死, 政治不犯, 産業勤務)을 표방했는데, 8조목에 ‘거병해원’이 포함되어 있다.57) 다만, 여기서 거병해원의 표기에는 증산의 4강령에 있는 것과 달리 소매 거(袪)와 원통할 원(寃)이 사용되고 있다.
『조선의 유사종교』는 당시 증산 신앙 단체들이 해원을 중시했다는 점을 암시하지만, 무극도나 보천교 등에서 해원이 핵심적인 종교 언어였다는 부분을 누락했다는 한계를 보인다. 구체적으로, 무라야마 지준은 무극대도교의 교리에서 3강(綱: 敬天修道, 誠信養性, 安心安身)을 설명하면서도,58) 해원과 관련된 내용을 서술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전경』에는 조철제가 을축년(1925)에 무극도(无極道)를 창도하고 상제를 구천 응원 뇌성 보화 천존 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上帝)로 봉안하고 종지(宗旨: 陰陽合德ㆍ神人調化ㆍ解冤相生ㆍ道通眞境) 및 4강령(綱領: 安心ㆍ安身ㆍ敬天ㆍ修道) 3요체(要諦: 誠ㆍ敬ㆍ信)의 신조(信條)와 목적(目的: 無自欺; 精神開闢, 地上神仙實現; 人間改造, 地上天國建設; 世界開闢)을 정했다는 내용이 있다.59)
또한, 무라야마 지준은 보천교의 ‘1리(理: 仁義) 4강(綱: 敎天ㆍ明德ㆍ正倫ㆍ愛人) 12잠(箴: 尊上帝ㆍ崇道德 등 12가지)’라는 교리ㆍ교강ㆍ교잠(敎箴)을 설명하면서도 해원에 관한 내용을 서술하지 않는다.60) 그렇지만 보천교는, 1925년 1월에 시국대동단 발회식을 통해 교리로 ‘해원상생’을 강조했듯이,61) 해원을 종교 언어로 중시한 사례에 해당한다. 이와 관련해, 비록 해방 이후의 자료지만, 『보천교지』에도 증산이 선천의 이미 다한 수를 닫고 후천의 무궁한 운을 열면서 신명공사(神明公事)를 해서 만고의 원(寃)을 풀어 상생의 도로 선경을 열었다거나, 증산이 해원상생을 선언했다거나, 단주(丹朱)의 해원을 시작으로 만고역신(萬古逆神)을 해원했다거나, ‘이 때는 해원시대’라는 등의 내용과 표현이 보인다.62)
그렇다면 종교 언어로서의 해원 개념은 어떤 내포와 외연을 가지고 있었을까? 우선, ‘원통함을 푸는 것’이라는 해원 개념의 내포는 지속된다. 그렇지만 그 외연은 교리적 차원에서 개인과 사회를 넘어 세계로 확대된다. 이와 관련해, 증산대도교에서 강조했던 거병해원은 신인합덕이나 안심안신 등의 다른 조목과 함께 후천시대를 지향하던, 그리고 무극도에서 강조했던 해원은 종지나 신조나 목적과 연결되어 도통진경을 지향하던 용어였다. 이러한 신앙을 관통하는 부분은 증산의 해원으로 선천시대가 닫히고 후천시대가 열린다는 개벽(開闢)에 대한 믿음이다. 증산 사후에 선도교[吽哆敎ㆍ太乙敎], 미륵불교(彌勒佛敎), 순천교(順天敎), 제화교(濟化敎), 보천교(普天敎), 동화교(東華敎) 등 여러 종교 단체들이 활동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해원이라는 용어도 종교 언어로 계속 확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63)
이 지점에서 주목할 부분은 해원이라는 용어가 증산 신앙의 등장 이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교리적 차원의 종교 언어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종래 일상 언어로서의 해원 개념과 종교 언어로서의 해원 개념의 외연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종교 언어로서의 해원 개념에 대한 사회적ㆍ문화적 열망이 있었고, 그 열망이 종교적 차원으로 표출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Ⅳ. 대순진리회의 해원 용례와 개념
종교 언어로서의 해원 개념은 대순진리회의 『전경』과 선행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전경』에는 해원이라는 용어가 31개 구절에서 모두 36회 등장한다. 그 내용을 <표 1>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64)
위의 표를 보면, 해원이라는 용어는 단독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후천, 시대, 도수, 공사, 상생’ 등과 결합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해원이 『전경』에서 핵심적인 종교 언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종교 언어로서의 해원 개념은 일상 언어로서의 해원 개념과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첫째, 해원은 ‘원(冤)의 기원 설정’에 근거해 여러 종류의 원까지 포괄해 해소하는 것으로 제시된다. 이에 따르면, 원(冤)의 기원[뿌리]은 요(堯)의 아들 단주(丹朱)의 원이고, 원의 종자가 점차 퍼져 천지에 가득 차면서 인간은 파멸하게 된다. 인간을 파멸에서 건지려면 수천 년 쌓인 원의 마디와 고를 풀어야 하며, 이를 위해 단주의 원을 풀어야 한다. 이를 해원공사라고 한다.65) 이처럼 다양한 개별적인 원의 일원화와 기능에 대한 설명 속에서는 초인간적 존재에 의한 원의 소멸이 가능하다는 사유가 설정된다.
둘째, 해원은 상극의 선천(先天)과 상생의 후천(後天)이라는 시ㆍ공간의 구분 속에서 설명된다. 이에 따르면, 선천은 원이 가득한 상극 상태의 속경(俗境, 속인의 세계), 후천은 해원이 이루어지는 상생 상태의 선경(仙境, 선인의 세계)이 되고, 선천의 특징은 원은 해소 대상이 된다. 구체적으로, 선천의 시ㆍ공간은 상극으로 인해 원이 삼계(三界: 天界ㆍ地界ㆍ人界)를 채우면서 상도(常道)를 상실하고 각종 재화가 일어나 참혹하게 되고, 후천의 시ㆍ공간은 ‘천지도수’의 정리로 원이 풀려 상생(相生)의 도로 신명의 조화가 이루어진 선경이 된다.66)
셋째, 해원은 논리적으로 선천의 시ㆍ공간을 후천의 시ㆍ공간으로 이행하는 초인간적 존재[증산]를 개입시킨다.67) 가뭄이나 전염병 등의 상황에서 그때마다 국가적 의례를 진행해 죽은 자들의 맺힌 기를 풀고자 시도했던 기존의 사례와 달리, 선천과 후천의 대비되는 시ㆍ공간이 설정되면서 선천의 특징인 원을 구조적으로 해소하고 후천으로 이행시킬 존재가 상정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전경』에서 증산은 대선생(代先生)으로 ‘삼계를 개벽해 선경을 열고 사멸에 빠진 세계 창생들을 건지고자 참화 중에 묻힌 무명의 약소 민족을 먼저 도와 만고에 쌓인 원을 풀어 주는 존재’, ‘불로불사와 영원한 선경의 낙’을 약속하는 존재이다.68)
넷째, 해원은 후천의 시ㆍ공간을 지향하는 차원에서 수련과 윤리적 실천에 대한 강조로 이어진다. 『전경』에서 수련은 주문 수련으로 표현된다.69) 윤리적 실천은 ‘모든 일에 조심하여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죄를 멀리하여 순결한 마음으로 천지공정(天地公庭)에 참여’70)하라는 메시지로 표현된다.
다섯째, 해원은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뿐만 아니라, 새와 짐승이나 토지까지 원을 가진 존재로 보고 그 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원이 동일한 기원을 갖고, 그 원이 선천의 특징이 되면서 선천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원과 연결된다는 논리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원의 적용 범위 확대는 해원 개념의 외연 확대를 시사한다.
다음으로, 해원에 관한 주요 선행연구를 보면, 해원은 대체로 상생이라는 용어와 결합되어 사용된다. 우선, 박용철(1995a)의 경우, 해원상생을 4대 종지의 근간으로 보면서 교리체계 수립 차원에서 원(冤; 冤)의 정의, 발생 원인과 시작, 구조와 대상을 정리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원(冤)은 척(慼)ㆍ원(怨)ㆍ한(恨)을 포괄하고, 그 일차적 발생 원인은 천지 기운의 상극이며, 그 시작은 단주의 원이다. 그리고 원은 긍정적ㆍ부정적 또는 대타적ㆍ대자적 측면이 있어 양면적ㆍ혼합적이고, 몇 가지 원을 품을 수 있어 복합적이고, 삼생의 연처럼 시간적으로 이어진다는 면에서 연속적이며, 천ㆍ지ㆍ인 상호 간에 작용한다.71) 또한 박용철(1995b)은 해원의 전제조건과 방법에 대해 검토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해원을 위해서는 신명계의 변화에 입각한 후천선경세상의 건설과 인존시대가 필요하며, 정신문명에 대한 물질문명, 조선에 대한 일본, 문신에 대한 무신, 남성에 대한 여성, 귀한 자에 대한 천한 자의 해원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72)
이경원(1998)의 경우, 천지공사와 관련해 종지 가운데 해원상생이 실천적인 대강령임을 강조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원(冤)은 “인간의 욕구나 목적, 소원이 외부에 의하여 이루지 못한 상황이나 죄가 없어도 화를 당한 경우 등에서 나타나는 억울하고 원통한 감정”으로, 원(怨, 자기 외부에 대한 가학적 감정)과 한(恨, 자신에 대한 자학적인 감정)을 포괄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보다 강한 상태’이며, 인간에 국한된 원(怨)과 한(恨)과 달리 동물이나 다른 존재의 맺히고 쌓인 감정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해원을 이루기 위해 먼저 사회의 구조적인 제도 관습을 포함해 ‘척(나에 대한 남의 怨恨)’을 푸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무속신앙의 굿과 불교계의 천도재가 주로 개인적 차원에서 원을 풀기위해 기복적 성격의 의례인 데에 비해, 대순사상의 해원은 ‘인간계와 신명계를 포함한 전 우주의 모든 존재들의 원한을 푸는 대공사(大公事)’이다.73)
차선근(2011)의 경우, 해원상생에서 원(冤)은 ‘미움과 증오의 감정’으로, 그 감정이 남을 향하는 원(怨)과 스스로 자신에게 두는 한(恨)과 타인이 자신에게 두는 척(慼)을 포괄하며, 증산이 원(冤)을 우주의 파멸 원인으로 지목하고 해원을 통한 상생을 핵심 사상으로 삼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증산의 해원은 그 범위, 원의 원인, 윤리적 측면, 이상세계와의 연결 등에서 무속의 해원과 다르다고 지적한 바 있다.74) 또한 차선근(2015)은 중국의 초기 민간도교에 담긴 해원을 위한 승부(承負, 과오의 계승과 부담)와 대순진리회의 척(㥻)의 윤리를 비교하면서 기복ㆍ보상ㆍ수행ㆍ공익 실현이라는 동기가 유사하지만, 원한을 만든 책임, 윤회 관념, 원한을 갖는 범주, 성격ㆍ목적, 성립 배경, 작동 기제, 사상 배경, 정당화 등에서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75)
그 외에 차선근(2021)은 민간신앙ㆍ유교ㆍ불교ㆍ대순진리회의 해원사상을 ‘포원자(抱冤者, 피해자)의 자격과 범위, 포원자와 가해자의 관계, 원혼의 숭배ㆍ신앙ㆍ위무’ 항목으로 비교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대순진리회의 해원사상은 포원자의 자격에 죽은 자 외에 살아있는 자와 가해자와 동물이나 초월적 존재가 포함되고 원과 해원이 후천개벽 이전까지만 존재한다는 점, 해원에 ‘상생이라는 윤리적 요소를 추가’해 가해자에 대한 복수를 부정하고 오히려 가해자의 반성과 사죄를 강조하면서 구원론ㆍ수행론과 연결된다는 점, 증산의 천지공사로 원혼의 해원이 이루어진다고 믿기에 중양절 치성을 제외하면 원혼의 숭배ㆍ신앙ㆍ위무 의례를 별도로 실시하지 않는다고 한다.76)
이 연구들은, 접근 방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순진리회에서 해원이 종교 언어로서 가지는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비록 세부적인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77) 『설문해자』에서 원(冤)이 ‘갇힌 토끼가 달릴 수 없어 더욱 뒤틀리는 모습(兔在冂下 不得走 益屈折也)’으로 묘사된 것에 근거해, 원(冤)이 ‘억울함에 갇힌 원한의 응어리’이며, 해원이라는 용어가 죽은 자나 인간에 국한되지 않는다거나 상생이나 천지공사 등과 관련해 중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이상의 내용을 보면, 『전경』과 대순진리회에서 해원 개념은 원통함을 푼다는 내포를 가지면서도 그 외연이, 일상 언어로서의 해원 개념과 달리, 세계로 확대되어, 핵심적인 종교 언어로 작동한다. 구체적으로, ① 원(冤)의 기원이 설정되고, ② 선천과 후천이라는 시ㆍ공간 구분을 전제로 원이 선천의 특징이 되어 변혁을 위한 해원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③ 변혁의 이행 주체로 초인간적 존재가 등장하고, ④ 변혁된 세계를 위해 수련과 윤리적 실천이 강조되는 과정에서 ⑤ 해원의 외연이 죽은 자와 산 자를 넘어 세계[선천]에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 확대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관은, 일상 언어나 과거의 용례와 달리, 해원이 대순진리회에서 선천과 후천을 매개하는 위치를 배정받은 종교 언어로 기능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Ⅴ. 나오면서 : 해원 개념의 종교적 전환
지금까지 해원(解冤) 개념에 관심을 갖고, 해원의 용례들을 통해 그 역사적 의미와 변화를 고찰하였다. 조선시대부터 대순진리회에 이르기까지 해원의 용례와 개념적 변화를 고찰한 결과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해원은 역사성, 사회성, 문화성을 지닌 용어이다. 이는 해원이라는 용어가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도 사용되었고,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자연재해나 잘못된 제도 등의 집단적인 문제를 해소하는 차원에서도 사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를 집단적인 의식이나 물질적 산물과 연계한다면, 해원이라는 용어는 사회적ㆍ문화적인 열망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해원은 문제의 발생 영역에 따라 그 외연이 달라져 역사적으로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이는 조선시대에 해원의 용례들이 법적 영역, 자연재해 영역, 제도 영역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는 점, 일제강점기에 일상 언어로서의 해원 개념과 종교 언어로서의 해원 개념의 외연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점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외연의 차이는, ‘원통함을 푼다’는 내포에도 불구하고, 일상 언어로서의 해원 개념에, 그리고 일상 언어와 종교 언어로서의 해원 개념 간에 균열이 생기게 만든다.
셋째, 해원은 증산의 등장 이후에 교리적 차원에서 중요한 종교 언어로 전환된다. 조선시대에 해원이 주로 일상 언어로서 법적 차원에서 죽은 자와 산자의 원통함을 드러냈다면, 증산의 등장 이후에 해원은 초인간적 존재에 의한 선천의 혼란 해소와 후천이라는 변혁된 세계의 등장을 매개하는 교리적 차원의 종교 언어로 설정된 것이다. 이어, 『전경』과 대순진리회의 선행연구들은 해원 개념이 교리적 차원에서 보다 정교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과는 해원 개념에 담긴 사유의 전환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종교 언어로서의 해원 개념은 원통함을 푼다는 내포를 유지하면서도 개인과 사회를 넘어 세계라는 외연을 갖는다. 그리고 이러한 해원 개념은 교리적 차원에서 원(冤)이 만연한 선천세계에서 후천세계를 지향해야 하며, 이를 위해 수련과 윤리적 실천 등이 필요하다는 사유를 지속적으로 창출한다.
끝으로, 이 연구는 한국 내의 해원 개념에 관심을 두었지만, 향후에 해원 개념을 중국이나 일본의 해원 개념과 비교하는 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이미 차선근, 양즈루, 주잔옌 등의 일부 연구가 있지만,78) 이들의 연구를 토대로 중국의 『상청영보대법(上清灵宝大法)』, 『태평경(太平经)』, 『운급칠첨(云笈七签)』, 『도장(道藏)』 등과 일본의 『후지타 도코(藤田東湖) 언행록』(1909) 등 여러 문헌을 활용해 해원(解冤)의 용례를 비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