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연구논문

『참동계』와 태극(태일)-음양-오행 체계

이봉호*
Bong-ho Lee*
*경기대학교 교수, E-mail: jirisanin@hanmail.net
*Professor, College of Liberal Arts, Kyonggi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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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Jan 31, 2021 ; Revised: Feb 26, 2021 ; Accepted: Apr 05, 2021

Published Online: Apr 30, 2021

국문요약

지금까지는 주돈이의 <태극도>가 『주역참동계』에서 연원한다는 학설이 정설처럼 인식되었다. 그러나 최근 몇몇 학자들은 기존의 학설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새로운 논쟁이 일었다. 이들은 <태극도>의 『주역참동계』 연원설에서 청대 학자들이 근거로 사용한 책들과 도상이 주돈이 이후의 것이거나, <태극도>에 기초해서 후대에 그려진 것임을 주장한다. 반면에 최근 학자들의 주장에서 <태극도>의 『주역참동계』 연원설을 최초로 제기한 남송 시대의 주진(朱震)과 양갑(楊甲)의 학설은 해명하지 못하였다. 이들 남송 시대 학자들은 주돈이와 주희 사이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이다.

이러한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보았다. 주돈이의 <태극도>는 태극-음양-오행의 체계를 골자로 한다. 따라서 이 체계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주역참동계』가 직접 연관이 있음을 해명하고자 하였다.

태극-음양-오행의 체계 형성 과정은 한대의 종교적 사상적 영향에 의한 것이다. 한무제의 태일신(太一神) 신학체계에서 태일-음양-오행의 체계가 신학적으로 정립된다. 동중서에 의해 유학의 육예(六藝) 해석에 음양오행이 도입되며, 이는 한대 역학자들이 『주역』 해석에 오행을 개입하게 하는 사상적 흐름을 형성한다. 그러나 한대 역학자들은 음양재이설을 중심으로 하였기에 태일-음양-오행의 체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동한시기에 쓰여진 『주역참동계』는 한 대 역학자들이 『주역』을 해석한 다양한 『역위(易緯)』 이론과 연단 이론을 결합하면서, 태일-음양-오행의 체계를 사상적으로 형성한다. 이때 『주역참동계』는 ‘감리위역설(坎離爲易說)’을 중심으로 한 역학 이론을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주역참동계』와 그 주석들에는 <태극도>와 같은 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감리위역설’을 중심으로 한 태일-음양-오행의 체계가 나타날 뿐만 아니라, <태극도>를 구성하는 도상의 부분들을 그려낼 수 있는 내용은 존재한다. 이 체계에서 ‘태극’이 아니라 ‘태일’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태일’을 ‘태극’으로 해석할 사상적 이론은 등장하고 있었다. 한대 역학자들은 역에 원기(元氣) 개념을 적용하였고, 공영달에 의해 태극이 ‘원기’이자 ‘태일(太一)’이라고 정의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주역참동계』가 <태극도>와 같은 도상을 담고 있지 않아도 태일(태극)-음양-오행의 체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태극도> 도상의 부분들을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음을 해명하였다.

Abstract

Until recently, academic consensus held that Zhou Dunyi’s Taijitu (Taiji Diagram) originated from Cantongqi. However, a new debate has arisen wherein some scholars question that theory and related theories. They criticize these previous theories because the books and charts used as evidence in those theories were published after the lifetime of Zhou Dunyi, and this disqualifies their influence on his thought. However, identifying certain authors as being of a slightly later period than Zhou Dunyi does not definitively answer whether or not Zhou Dunyi’s diagram was based on Cantongqi.

I approached this problem from a different perspective. Zhou Dunyi’s Taijitu is based on the system of taiji (Taiyi), yin-yang, and the five movements. Consequently, the formation of this system should be traced back historically. In the process of tracing it back, I intended to explain that the main character of Cantongqi is closely related to the formation of the system of taiji (Taiyi), yin-yang, and the five movements.

The system of taiji (Taiyi), yin-yang, and the five movements was first established as a religious theological system in the Han Dynasty. In this process, yin-yang and the five movements were combined by Dong Zhongshu, and the five movements were introduced by Han Dynasty scholars as a method of interpreting the I-ching. However, Han Dynasty scholars did not form this system. In the late Han Dynasty, Cantongqi adopted the theological system of yin-yang and the five movements to theoretically form the system of taiji (Taiyi), yin-yang, and the five movements. Cantongqi was able to form this system because of the logic that yin-yang is the essence of the I-ching.

Cantongqi does not have the same schematic as Taijitu. However, the system of taiji (Taiyi), yin-yang, and the five movements appears and extracts the components that make up Taijitu. Therefore, I do not think we should hastily agree with the recent claims made by scholars.

Keywords: 태극도; 『주역참동계』; 조신운동; 태일신; 태극-음양-오행; 감리위역설
Keywords: Taijitu; Cantongqi; God-making exercise; the deity Taeil; ‘the system of taiji (Taiyi), yin-yang, and the five movements’; yin(坎卦)-yang(離卦) is the essence of the I-ching

Ⅰ. 머리말

태극-음양-오행의 체계는 동양인들에게는 익숙한 사유틀(paradigm)이다. 이 체계가 익숙하게 된 이유는 『성리대전(性理大全)』에 실려 있는 북송시기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의 <태극도(太極圖)> 때문이다. 주돈이의 <태극도>에서는 태극-음양-오행의 체계를 무극이태극권(無極而太極圈)-음양권(陰陽圈)-오행권(五行圈)-건곤성남성녀권(乾坤成男成女圈)-화생만물권(化生萬物圈)으로 확대하면서, 태극과 음양, 음양과 오행의 관계를 일관된 의미 체계로 규정한다. 주돈이는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무극이면서 태극이다. 태극이 움직여 양을 낳고, ㆍㆍㆍ 고요해져서 음을 낳으며, ㆍㆍㆍ 양이 변화하고 음이 합하여 수ㆍ화ㆍ목ㆍ금ㆍ토를 낳는다. 오기가 고르게 펴져 사시가 운행된다.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다. 태극은 무극에 근본한다. ㆍㆍㆍ 두 기가 교감하여 만물을 화생한다.”1)라고 한다. 주돈이의 이 말은 <태극도>를 설명하는 말이지만, 이 말에는 태극과 음양, 음양과 오행의 관계가 하나의 체계로 일관됨을 천명하고 있다. 태극으로부터 음양으로, 음양으로부터 오행으로 이어지는 체계이다. 물론 음양과 오행은 기이다. “오기가 고르게 펴진다.”거나 “두 기가 교감한다.”라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돈이의 <태극도>와 <태극도설>은 송대 이학의 형이상학을 확립하는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2)

그런데 주돈이의 <태극도>가 태극을 ‘무극이태극’으로 재해석하고, 오행권 이하에 ‘건곤성남성녀권’과 ‘화생만물권’을 덧붙였다 하더라도, <태극도>의 기본 골격은 태극-음양-오행의 체계이다. 이는 주돈이의 <태극도> 이전에 태극-음양-오행의 체계가 존재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태극-음양-오행의 체계가 있었기에 주돈이는 이를 재해석하여 <태극도>를 그렸다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이러한 추측은 주돈이의 <태극도>의 연원을 해명하는 일련의 글들이 남송대의 학자들로부터 제기되면서 하나의 흐름을 이루게 하였다. 주돈이의 <태극도>가 진단(陳摶, 871~989)의 <무극도(無極圖)>에 연원하고, 진단의 <무극도>는 『주역참동계』(이하 『참동계』)에 연원한다는 주장은 주돈이(1017~1073)와 주희(朱熹, 1130~1200)의 생몰 연대 중간에 생존하였던 주진(朱震, 1072~1138)과 양갑(楊甲, 1110~1184?)으로부터 청대학자인 황종염(黃宗炎, 1616~1656)ㆍ모기령(毛奇齡, 1623~1716)ㆍ호위(胡渭, 1633~1714)등에 의해 주장되었다.3)

반면에 황종염, 모기령 등이 근거 자료로 삼아 주장한, 책들과 도상들이 송대 이후의 책이거나 후대 사람들이 주돈이의 <태극도>를 바탕으로 그린 것이라는 주장들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논쟁이 일었다. 이들의 입장을 잘 정리하고 있는 이대승의 논문에 따르면, 모기령의 경우 <태극도> 도가ㆍ도교 원류설의 주된 근거는 『참동계』의 「수화광곽도(水火匡廓圖)」ㆍ「삼오지정도(三五至精圖)」, 그리고 당나라 현종의 서문이 있는 『상방대동진원묘경품(上方大洞真元妙經品)』과 「천지자연지도(天地自然之圖)」가 실린 『상방대동진원묘경도』이다. 그런데 『상방대동진원묘경도』는 송대 이후의 문헌이며, 『상방대동진원묘경품』의 당 현종 서문은 당 현종을 가탁한 위작으로 밝혀졌다. 또한 모기령의 「수화광곽도」ㆍ「삼오지정도」는 팽효의 『주역참동계분장통진의(周易參同契分章通真義)』에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후대의 작품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또한 황종염의 『도학변혹(圖學辯惑)』의 「무극도」는 후대 도교인들이 <태극도>를 바탕으로 그린 것으로 말해진다는 것이다.4)

이와 달리 필자는 주돈이와 주희의 생몰 연대 중간에서 활동했던 주진의 『한상역전(漢上易傳)』과 양갑의 『육경도(六經圖)』에 그려진 <태극도>는 거의 『성리대전(性理大全)』에 수록된 주돈이의 <태극도>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5) 그리고 주진에 의해 제기된 주돈이의 <태극도> 연원이 진단의 <무극도>라는 것6)은 주돈이와 시기적으로 멀지 않은 학자에 의해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방증할 수 있다. 주돈이의 <태극도>의 원형을 알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주돈이의 <태극도>는 주희에 의해 지금의 형태를 갖춘 것이다. 다시 말해, 주돈이의 <태극도>의 원형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주희보다 시간적으로 더 주돈이에 가까운 주진의 말은 생각거리를 준다는 점이다. 따라서 주돈이의 <태극도> 연원이 『참동계』로부터 진단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은 여전히 부정될 수 없다.7)

이상으로 정리한 논쟁은 <태극도>의 도상의 연원을 두고 벌인 것이다. 이 논쟁에서 김병환은 주돈이의 <태극도>가 도가ㆍ도교 원류인가에 대한 의심의 질문을 하지만, 확증적인 증거를 제시하진 않았다. 중국측의 학자들과 일본 학자들의 논의는 <태극도>를 중심에 두고 도교 책들의 시대적인 선후를 중심으로 논의하면서, <태극도> 도교 원류설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이 논문에서는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태극-음양-오행의 체계가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검토할 것이다. 만약 태극-음양-오행의 체계가 형성되는 과정이 『참동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면, <태극도>를 두고 벌이는 논쟁에 새로운 시각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다시 말해 태극-음양-오행의 체계를 재해석하여 도상으로 그리면 <태극도>와 같은 도상이 도출될 수 있으며, 이 도상이 『참동계』에 수록되어 있지 않더라도, 그 원형을 담고 있는 책으로 『참동계』는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한무제의 조신운동에서 신학적인 판테온(Pantheon)으로 태일(太一)-음양-오행의 신학체계가 형성되었으며, 동한시기의 『참동계』에서 이 체계를 수용해 사상적으로 완성이 됨을 해명하고자 한다. 물론 주돈이의 <태극도>의 도상이 『참동계』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그 도상들의 원형은 충분히 도출될 수 있음을 해명하고자 한다.

Ⅱ. 한무제의 태일-음양-오행의 신학 체계

중국철학사에서 한나라 초기에 조신운동(造神運動)8)이 활발하게 일어났다9)라는 서술을 볼 수 있다. 이는 한무제 시기의 새로운 신들을 창조하고, 신들의 위계를 규정한 내용을 말한다.10)

한무제의 조신운동은 종교적으로는 크게 세 가지 관점으로 말할 수 있다. 첫째는 전국말에서 진나라를 거쳐 한나라의 통일에 이르는 과정에서 혼란스러운 종교를 통일하는 과정이었으며, 둘째는 사상적으로는 추연의 오덕종시설과 유가의 육예(六藝)를 결합하는 과정이었다. 마지막으로는 한무제의 조신운동은 결과적으로 한무제를 절대 권력화하는 대일통사상의 정점이었다.

진나라가 전국시대를 종식하면서 통일하고, 10여 년을 존속한 뒤 한나라가 명실상부한 통일제국을 이룬다. 전국시대에서부터 한무제시기에 이르는 기간에서 통일제국을 운영할 새로운 이념이 필요했다. 그 이념은 한무제의 대일통(大一統) 사상으로 구체화된다. 한무제의 대일통 사상은 사상적으로는 유교를 국교화하고, 정치 행정체제로는 한고조 이후 분봉제와 중앙집권제로 나뉘었던 행정체제를 강력한 중앙집권제로 일원화하며, 새로운 조신운동(造神運動)으로 나타난다.

한무제의 조신운동은 시대적 요구이자 필요에 의한 것이다. 진나라의 통일과 한나라의 지배는 종교적으로 큰 혼란을 야기했다. 한나라가 전국을 지배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전쟁을 통해 제후국들이 병탄되거나 멸망하면서, 각 제후국이 달리 신앙했던 산천의 신, 조상신 신앙이 폐기되어야 했다.11) 제후국의 신앙은 제국에 병탄되면서 제국의 신앙과 충돌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러 신을 통괄하면서도 절대적인 신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한무제가 태일신(太一神)을 정점으로 한 조신운동을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추연의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이었다. 전국말기에 유행했던 추연의 오덕종시설은 여러 사상에 수용되어 전국말기에는 주류사상이 되었다. 추연(鄒衍)의 오덕종시설은 이전의 종교를 대체하는 강력한 신학이론이 되기도 했다. 오덕종시설의 오행은 五帝神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추연의 오덕종시설을 가장 잘 수록하고 있는 『여씨춘추(呂氏春秋)』의 「응동(應同)」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황제 때 하늘이 먼저 큰 지렁이와 큰 땅강아지를 나타내 보였다. 황제가 말하기를 ‘토기가 왕성하다’고 하였다. 토기가 왕성하기에 땅의 색인 누런색을 숭상하고 나라의 일들을 토기를 위주로 하였다. 우왕 때에 이르러 하늘이 먼저 초목이 가을과 겨울이 되어도 살기를 입지 않는 것을 보였다. 우가 말하기를 ‘목기가 왕성하다’고 하였다. 목기가 왕성하므로 목의 색인 푸른색을 숭상하고 나라의 일들을 목기를 위주로 하였다. 탕왕 때에 이르러 하늘이 먼저 쇠와 칼날이 물에서 생성되는 것을 보였다. 탕이 말하기를 ‘금기가 왕성하다’고 하였다. 금기가 왕성하므로 쇠의 색인 흰색을 숭상하고 나라의 일들을 금기를 위주로 하였다. 문왕 때에 하늘이 먼저 불을 보였다. 문왕이 말하기를 ‘화기가 왕성하다’고 하였다. 화기가 왕성하므로 화의 색인 붉은 색을 숭상하고, 나라의 일들을 화기를 위주로 하였다. 화기를 대신하는 것은 반드시 수기이니 하늘이 또한 수기가 왕성한 것을 보였다. 수기가 왕성하므로 물의 색인 검은 색을 숭상하고 나라의 일들을 수기를 위주로 한다.”12)

황제로부터 주나라의 문왕에 이르기까지 오행의 기운이 왕성한 것을 하늘이 나타내 보이고, 오행 중의 어떤 기운이 왕성한 것을 ‘덕(德)’이라고 표현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하늘의 운행 법칙은 오행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그 운행은 왕조의 변천과 상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황제는 토덕을 얻었고, 우임금은 목덕을 얻었으며, 탕임금은 금덕을 얻었고, 문왕은 화덕을 얻어 새로운 왕조를 건립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행은 끊임없이 운행하고 그 운행의 결과로 새로운 왕조가 세워진다는 논리가 오덕종시설이다.

오덕종시설이 만연하면서, 진시황은 자신이 수덕(水德)을 받은 황제로 생각해 오행의 덕을 신으로 만들고 이들 신을 사당에 모시면서 수덕을 상징하는 흑제(黑帝)는 모시지 않았다. 자신이 흑제이기에 자신을 신으로 모실 수 없었다. 진시황제는 정삭[正朔, 율령]을 개정하면서 수덕에 맞는 해월(亥月, 음력 10월)을 한 해의 첫 달로 삼고, 의복과 깃발 등에서 흑색을 사용하게 하였으며, 수덕에 맞는 숫자 6을 기준13)으로 삼아, 수레의 폭을 여섯 척尺으로 하고, 여섯 척을 한 걸음으로 삼으며, 황하(黃河)의 이름을 덕수(德水)로 고치기도 하였다.14)

그런데 한나라 고조 유방이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진나라의 수도에 들어가 사당에서 흑제가 없음을 보고 흑제를 신으로 모신다.15) 흑제가 신으로 모셔지면서 오행의 신들이 모두 갖추어지게 되었다.

한 고조로부터 100년이 흐른 뒤 문제(文帝) 때에는 오덕종시설의 논리에 따라 한나라가 수덕을 받은 왕조인지 토덕을 받은 왕조인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진다.16) 이 논쟁에서 마지막 내용을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에서 가져와 보자.

노나라 사람 공손신이 “애초에 진나라는 수덕을 얻었습니다. 지금 한나라가 이를 이어받았으니, 오덕의 순환으로 미루어 보면 한나라는 마땅히 토덕을 받았으며, 토덕의 응함으로 황룡이 나타날 것입니다. 정삭을 고치고 복색을 바꾸어 황색을 숭상함이 마땅합니다.”라고 글을 올렸다. 이때 승상 장창은 율력에 조예가 깊었는데, “한나라가 바로 수덕의 시작이니, 황하가 금제를 터뜨린 것이 그 징조입니다. 한 해의 시작은 10월로 삼고 복색은 바깥은 흑색 안쪽은 적색으로 하면 수덕과 상응할 것입니다. 공손신의 말은 틀렸으니 그를 내치소서.”라고 하였다. 3년 뒤, 성기에서 황룡이 나타났다. 문제는 공손신을 불러 박사에 임명하고 제생들과 함께 역법과 복색을 바꾸는 일의 초안을 잡으라고 명하였다.17)

한나라가 수덕을 받은 것인지 토덕을 받은 것인지의 논쟁은 진나라가 너무나 짧은 기간에 존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시황처럼, 한나라의 개창에 맞게 정삭을 개정할지의 문제와 여러 정치 행정적인 문제에서 기준을 바꿀지 말지의 문제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오행의 신들을 국가 제사를 지내는 사당에 모셨는데, 오행의 배후인 천을 어떻게 이해할지가 논란이 되기도 한다.18) 만약 오행이 상극의 운행 원리(추연의 오덕종시설은 오행상생의 논리가 없는 오행상극의 논리만 있다)에 따라 왕조가 바뀐다면, 오행 운행을 주관하는 천의 속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오행의 배후인 천이 신성을 가지고 있는지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한무제가 황제에 즉위할 때도 이러한 논란은 여전했다. 그러자 연제 지역의 방사(方士)들이 태일(太一)이라는 신격19)을 제시한다. 방사들은 태일의 신격은 천신 중에서 가장 존귀한 신이며, 태일을 보좌하는 것이 오제(五帝, 오행신)라는 논리를 제시한다.

박 땅 사람 박유기가 태일신에게 제사 지내는 방식에 대해 상주하기를, “천신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은 태일신이며, 태일신을 보좌하는 것이 오제입니다. 옛날 천자는 봄가을에 동남쪽 교외에서 태일신에게 제사 지냈습니다. 태뢰의 제물을 사용했으며 칠일에 걸쳐 지냈는데 제단에 만들어 팔방으로 통하는 귀도를 열어두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천자가 태축에게 명하여 장안 동남쪽 교외에 사당을 세우게 하고 박유기의 방식대로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후에 어떤 사람이 글을 올리길, “옛날에 천자는 삼년에 한 번씩 태뢰의 제물을 써서 삼일신, 즉 천일 지일 태일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라고 하였다. 천자가 이를 허락하여 태축에게 명하여 박유기의 건의로 만든 태일신의 제단에서 이 방식대로 제사 지내게 하였다.20)

무제는 방사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태일신을 최고의 신격으로 인정한다. 아울러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양]를 천일신(天一神), 땅을 상징하는 곤괘[음]를 지일신(地一神)의 신격 체계를 만들고, 오행을 상징하는 오제(五帝)의 신을 태일신을 보좌하는 신격(太一佐曰五帝)으로 규정한다.

새로운 신격의 창조(조신운동)에서 태일신이 최고신격으로 설정되면서, 하위의 신격들이 체계화하는 데에는 『노자(老子)』와 『여씨춘추』의 논리가 사용되었다. 태일의 신격을 확인하기 위해서 『여씨춘추』의 「대악(大樂)」편을 살펴보자. 『여씨춘추』의 「대악(大樂)」편에는 태일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음악의 유래는 심원하다. 도량형에서 생겨났는데 이는 태일(太一)에 근본한다. 태일이 양의를 산출하고, 양의는 음양을 산출한다. 음양이 변화하여 한번은 위로 한번은 아래로 움직이고 이것이 합하여 악곡의 마디를 이룬다.”21)

“드러난 바의 만물은 태일에서 만들어지고 음양에서 변화한다.”22)

“도란 지극히 정밀하지만 형상화할 수도 없고 이름 지어 부를 수도 없다. 억지로 그것을 태일이라고 한다.”23)

『여씨춘추』의 이 내용은 『노자』 42장의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이라는 문장을 재해석한 것이다. 『노자』의 “道生一”의 ‘一’을 ‘태일’로, “一生二”의 ‘二’를 ‘음양’으로 해석한 것이다. 태일과 음양에 신격을 부여하고, 앞에서 언급한 오행의 신들을 결합해 낸다. 그러면 태일에서 음양으로, 음양에서 오행으로 이어지는 신학적 이론이 만들어지고, 이를 다시 신들의 계보에 적용하면 태일신에서 천지의 신으로, 천지의 신에서 오행의 신(오제)으로의 계보가 탄생하게 된다.

{ 태일 음양 오행 태일신 천일신(건괘; 양인 신), 지일신(곤괘; 음인 신) 오제신(오행신)

이 도식은 한무제가 자신을 중심으로 한 대일통 사상을 체계화하면서 신학적 체계를 완성해 낸 도식이다. 이 과정에서 한무제 스스로도 최고의 신격을 갖춘 태일신(太一神)이 된다. 한자에서 ‘大’와 ‘太’, ‘泰’는 의미가 같다. 한무제의 ‘대일(大一)통’ 사상은 ‘태일(太一)신’을 정점으로 한 신앙체계 수립으로 이어진다. 태일신의 하위에는 천지(天地)의 신들이, 천지의 신들 아래로 오행의 신들이 수직적으로 위계를 갖춘다. 이는 ‘태일신’을 정점에 둔 신학 체계와 모두[大] 한무제 그 한 사람[一]에게 수렴되는[統] 통치 논리인 ‘대일통’ 사상은 같은 논리에 기초한 것이다.

Ⅲ. 태극, 음양, 오행의 결합

한나라의 경학(經學) 연구와 방향은 한무제를 기준으로 구분된다. 한무제가 “罷黜百家, 獨尊儒術”의 기치를 내걸기 이전의 한나라의 사상계는 황로학을 특별히 존숭했지만 제자백가의 학설이 여전히 논의된 다원주의의 상태였다. 사마담의 말에 따르면, 당시 유가는 육예(六藝)의 뜻을 찾기 위해 넓게 연구하지만 핵심은 적고, 힘은 들이지만 공은 적어서 도대체 그 뜻을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였다.24) 다른 한편으로는 전국말기에 추연의 학설이 주류 사상으로 유행했다. 추연은 제후국에서 국빈 대우를 받았으며,25) 그의 이론은 정치체제와 율력을 제정하는 이론의 근거가 되었다.26) 이러한 사상적 흐름에서 한무제시기에 동중서와 같은 기민한 유학자는 육예에 추연의 음양오행설을 도입하여 해석하면서 한무제의 절대 권력을 정당화한다.27)

한무제의 태일신의 신학 체계는 역의 태극ㆍ음양론의 도움을 받았다. 그것은 변화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음양의 배후로서 불변하는 근거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태극을 음양의 배후로 설정하는 것이었다.28) 한무제의 조신 운동에서 ‘태일’과 역에서 태극이 만나는 계기가 된다. 이제 태일과 역의 태극-음양의 관계를 해명해 보자.

‘태극’이라는 용어는 「계사전」상 10장에 등장한다. 「계사전」상 10장의 내용은 태극에서부터 시작되어 양의와 사상을 거쳐 8괘가 형성되는 과정을 말하는 내용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역(易)에 태극(太極)이 있으니, 태극(太極)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兩儀)가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四象)이 팔괘(八卦)를 낳으니, 팔괘(八卦)가 길흉(吉凶)을 정하고 길흉(吉凶)이 큰 사업(事業)을 낳는다. 그러므로 법(法)과 상(象)은 천지(天地)보다 더 큼이 없고, 변(變)과 통(通)은 사시(四時)보다 더 큼이 없고, 상(象)을 달아 드러남은 일월(日月)보다 더 큼이 없고, 숭고(崇高)함은 부귀(富貴)보다 더 큼이 없고, 물건을 구비하며 씀을 지극히 하며, 기물을 이루어 천하(天下)의 이로움을 삼음은 성인(聖人)보다 더 큼이 없고, 잡란(雜亂)한 것을 상고하고 숨은 것을 찾으며 깊은 것을 찾아내고 먼 것을 이루어 천하(天下)의 길(吉)흉(凶)을 정하며 천하(天下)의 힘써야 할 일을 이룸은 시(蓍)ㆍ구(龜)보다 더 큼이 없다.29)

이 인용문은 태극에서 양의로, 양의에서 사상으로, 사상에서 8괘로 이어지는 내용을 말하고 있다. 이를 이해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시초점을 치는 과정에서 효를 얻고, 효를 쌓아서 괘를 얻는 과정으로 본다. 태극에서 양의로, 양의에서 사상으로, 사상에서 8괘로 이어지는 과정은 시초점을 치는 과정에서 어떤 단계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는 학자는 왕필이다. “대연수 50에서 그 씀은 49이다[大衍之數五十, 其用 四十有九]”라는 문장에서 쓰이지 않는 1개의 시초를 ‘태극’이라고 본다. 그리고 “나누어 둘로 만들어 양의(兩儀)를 상징하고[分而爲二. 以象兩]”는 바로 “태극이 양의를 생성하고[是生兩儀]”라고 이해한다. 또 “넷으로 세어 사시(四時)를 상징하고[揲之以四, 以象四時]”는 “양의(兩儀)가 사상(四象)을 낳고[兩儀生四象]”로 이해한다. “네 번 경영하여 역(易)을 이루고 18번 변하여 괘(卦)를 이루니[四營而成易, 十有八變而成卦]”를 “사상(四象)이 팔괘(八卦)를 낳으니[四象生八卦]”로 보았다.30)

이러한 이해는 「계사전」상 9장에서 보이는 시초점 치는 과정에서 대한 언급과 연관지어 이해한 것이다. 시초점을 치는 행위에서 50개의 시초에서 하나를 사용하지 않는 것(1), 49개의 시초묶음을 양 손으로 나누는 것(2), 한 손의 시초를 네 개씩 들어내는 것(4), 이 과정을 통해 효를 얻고 효를 쌓아서 괘를 이루는 내용이 위의 인용문과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달리 이 인용문의 ‘태극’에서 ‘팔괘’로 이어지는 과정을 세계의 형성과정이라고 보는 입장이 있다. 이 입장이 성립하려면 ‘태극’을 이 세계의 궁극적인 실체라는 생각을 전제해야 한다. 하지만 한대 이전의 책들에서 ‘태극’이라는 용어의 용례를 조사해보면, 태극이라는 용어가 실체나 만물의 근원으로 사용된 적이 없다. 한대 이전에 ‘태극’이라는 용어는 『장자』 「대종사」편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곳에서 태극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대종사」편에서 태극은 도를 형용하는 술어로 쓰였다. “도가 ‘한 없이 높지만[太極]’, 도는 높은 척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에서 태극이라는 술어가 사용된 것이다.31) 이 문장에서 태극은 ‘한없이 높다’라는 형용술어이다. 『장자』에 등장하는 태극은 개념이나 특별한 용어가 아니라 술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실체나 근원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대에 이르러서는 ‘태극’을 음양의 근거로 이해하고, 궁극적인 존재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멸망한 주나라의 천명신학(天命神學)을 대신하면서도, 추연의 오덕종시설의 배후인 모호한 天을 대신할 궁극적 존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천지[음양]의 배후에 불변하는 궁극적 실체를 세우려는 논리는 제나라 출신의 방사들이 제시한 『여씨춘추』의 “태일”이 된다. 『여씨춘추』의 “태일”과 『노자』 42장의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의 논리와 「계사전」의 “태극-음양”의 논리를 상호참조하면서, 「계사전」의 “태극-음양”의 논리를 세계 발생론으로 해석하게 만들었다. 한대 역학에서 태극을 원기(元氣)로 해석하는 논리32) 역시 이러한 사유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역학적으로는 당대에 이르러 공영달(孔潁達)의 『주역정의(周易正義)』에 수용된다.33) 공영달은 「계사전」상 10장의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에 대해, “태극은 천지가 나뉘기 전의 원기가 섞여 하나로 된 상태이니 바로 태초이고 태일이다.”34)라고 주석한다. 공영달의 주석은 한대 역학에서 도입한 원기에 기인한다.

이제 음양과 오행의 결합을 살펴보자. 음양과 오행이 하나의 체계로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은 동중서(董仲舒)에 의해서이다. 추연의 음양오행설에서도 음양과 오행의 관계는 명확하지 않았다. 추연의 음양은 서로 자라고 소멸하는 소식(消息)을 통한 변화를, 오행은 오덕종시설에 기초한 왕조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어서 음양과 오행의 관계가 명확하게 결합되지 않았다. 때문에 서복관(徐復觀)은 음양과 오행이 밀접하게 결합하는 것은 동중서의 『춘추번로(春秋繁露)』라고 지적한다.35) 서복관의 지적은 대체로 정당하다. 왜냐하면 동중서에 의해 “천지의 기는 합해지면 하나가 되고, 나뉘면 음양이 되고, 쪼개져서는 사시가 되고, 나열되어서는 오행이 된다”36)라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중서는 『춘추번로』를 통해 유가의 강상윤리를 음양오행으로 재해석하면서 군신간의 위계와 부자간의 위계를 확립하고, 이를 확대하여 한무제의 절대 권력을 옹호한다. 동중서가 유가 해석에 음양오행을 끌어 들이자. 한대 역학자들은 역학 해석에 오행을 적용한다. 『주역』의 경문 어디에도 오행이 없지만, 동중서에 의해 음양과 오행이 밀접하게 결합하면서 역학 해석에도 오행이 도입된 것이다.

한대 역학에 음양재이설을 끌어들인 인물로 거론되는 사람은 서한 시기의 맹희(孟喜)와 초연수(焦延壽) 그리고 경방(京房)이다. 한대 역학은 경방과 맹희의 역으로 대표된다. 하지만 이들이 역학은 음양재이설을 위주로 하기에 음양과 오행의 논리적, 사상적 결합은 나타나지 않는다. 맹희와 경방의 역학적 특징을 주백곤(朱伯崑)은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는 기수와 우수 및 8괘가 상징하는 물상(物象)으로 『주역』을 해석한다. 둘째는 괘기설(卦氣說)로 『주역』의 원리를 설명한다. 셋째는 『주역』을 이용해 음양재변을 설명한다.37)

주백곤의 말에서 ‘기수와 우수’라는 말은 효위설에서 초효와 사효, 이효와 오효, 삼효와 상효의 호응을 말한 것이다. ‘8괘가 상징하는 물상(오행)’은 건괘는 금을 상징하고, 곤괘는 토를 상징하며, 진괘는 목을 상징하고 손괘는 목을 상징하고, 감괘는 수를, 리괘는 화를 간괘는 토를, 태괘는 금을 상징한다38)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괘를 오행으로 결합하고 있지만, 음양과 오행의 결합은 나타나지 않는다.

『주역』을 해석하는 이론에 오행을 도입했지만, 한대 역학자들에게서는 태극-음양-오행의 체계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들의 역학은 천인감응설에 기초한 음양재이를 설명하기 위한 논리였기 때문이다. 사상적으로 태일(태극)-음양-오행의 체계는 『참동계』에 와서야 나타난다.

Ⅳ. 『참동계』, 태일-음양-오행의 체계 완성

『참동계』를 둘러싼 케케묵은 논쟁들이 있다. 그 논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이 책의 성립 시기를 두고 벌이는 논쟁이다.39) 둘째는 ‘저자가 누구냐’라는 것이다.40) 이 논쟁에서 앞의 두 문제에 대해서는 연구자들에 의해 합의에 도달했다. 『참동계』의 성립 시기를 두고 벌인 논쟁들은 맹내창(孟乃昌), 왕명(王明), 소한명(蕭漢明) 등에 의해 전통적 관점인 후한시기 성립설이 증명되었다.41) 저자의 문제를 두고서도 『참동계』의 사언구(四言句) 문체, 오언구(五言句) 문체와 관련해, 그 문체들이 어느 책에서 기원했는지가 거의 해명되었다.42) 저자 중의 한 인물로 알려진 서종사(徐從事)에서 ‘從事’가 한나라 시기의 관직임이 해명되면서 저자 문제도 해결되었다.43)

이들 연구를 종합하면, 『참동계』는 한대 후기 『역위(易緯)』44)의 여러 책 중에서 일부의 책과 『단경(丹經)』의 주요 내용을 결합하여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서종사라는 인물이 『역위』의 내용과 『구도단경(九都丹經)』45)의 내용을 결합하여 1차로 책을 완성하여 순우숙통(淳于叔通)에게 전수하였는데, 구정단경파에 속하는 순우숙통은 여기에다 『구정단경(九鼎丹經)』46)의 내용을 덧붙여 2차로 책을 완성하고, 이를 동한 말기 위백양(魏伯陽)에게 전해졌고, 위백양이 <오상류(五相類)>와 <정기가(鼎器歌)>를 덧붙여 현재 모습의 『참동계』가 완성되었다47)는 것이다. 결국 『참동계』는 한대 역학 해석의 경향들과 도교의 연단 이론을 결합해 동한 시기에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와 더불어 역학의 전문가인 주백곤은 『참동계』는 한대 역학과 연단술을 결합한 것이며, 이는 한대 역학의 관점으로 도교 역학을 연 선구이자, 도교에서 역을 해석하는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한다.48) 그는 『참동계』는 음양오행학설로서 『주역』을 체계화하고 다시 『주역』을 연단 이론으로 전환했다49)고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와 함께 주백곤은 『참동계』의 역학적 특징을 “감리위역설(坎離爲易說)”과 “월체납갑설(月體納甲說)”로 정리한다. 우리의 주제인 태극-음양-오행의 체계와 관련된 것이 “감리위역설”이므로 이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감리위역설”의 근거가 되는 『참동계』 경문은 다음과 같다.

천지가 자리를 펼치니 역이 그 속에서 행해진다. 천지란 건곤의 상이다. 자리를 펼친다는 것은 음양이 배합하는 자리를 벌린다는 것이다. 역은 감리를 말하다. 감리란 건곤의 두 작용이다. 두 작용은 정해진 자리가 없이 육허를 두루 유행한다. 오가는 것이 정해져 있지 않고, 오르내리는 것 역시 일정함이 없다. 그윽이 잠기어 숨어 있다가 가운데에서 변화하여 만물을 감싸니, 도의 벼리가 된다.50)

이 인용문은 연단의 논리로 말하면 단약을 만들기 위한 솥[鼎器]을 건곤괘로 상징하고, 화후를 운용함에 따라 솥 안에서 약물[坎離]이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천지라는 공간적 구조는 건괘와 곤괘의 상이고, 그 공간을 운행하면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감괘와 리괘라는 말이다. 이때 감괘와 리괘는 천지 즉 건곤의 작용으로서 천지라는 공간을 유행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역이라고 말한 것이다.

‘감리를 건곤의 작용’이라고 한 말에 주의를 기울이면, ‘감리위역(坎離爲易)’은 “일월위역(日月爲易)”이라는 정의에서 근원한 것을 알 수 있다. 『참동계』는 이를 직접 노출하고 있다. “감무(坎戊)는 달의 정(精)이며, 리기(離己)는 해의 광(光)이다. 일(日)과 월(月)로 역(易)이란 글자를 만들었으니, 강과 유가 서로 짝한다.”51)

“일월위역”이라는 정의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도 보인다.52) 『참동계』는 『설문해자』의 “일월위역”이라는 정의를 수용하면서도, 연단을 설명하기 위해 ‘감리위역’설을 제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백곤은 이에 대해 『참동계』는 「계사전」하 7장의 “천지가 자리를 베풀면, 역이 그 가운데에서 행해진다.”53)는 문장을 연단제련에 적용한 것으로 본다.54)

『참동계』가 ‘감리위역’설을 제시한 것은 수화(水火), 음양(陰陽), 강유(剛柔), 자웅(雌雄), 정기(精氣), 연홍(鉛汞), 청룡(靑龍)과 백호(白虎), 홍(紅)과 백(白) 등의 연단술 용어를 포괄하기에 적절했을 뿐만 아니라 약물들의 변화와 결합을 설명하기에도 적절했기 때문이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강한 건과 유한 곤이 배합하면서 서로 껴안고, 양은 주고 음은 받으면서 수컷과 암컷이 서로 따른다. 반드시 조화로써 하니 정과 기가 이에 펴지는데, 감괘와 리괘가 첫머리가 되어 광휘가 펼쳐진다. 가물하고 어둑하여 헤아리기 어려워 도모할 수 없지만, 성인이 법도를 헤아려 으뜸 되는 기틀을 헤아려 차례지었다. (건곤감리) 네 괘는 섞여 곧장 허무로 들어가고, 60괘는 두루 돌면서 펼쳐져 수레가 된다. 용마가 수레를 타고 밝은 임금이 때를 다스린다.55)

그런데 ‘감리위설’설은 연단에서 용호가 교구하거나 연홍이 결합하여 하나가 되는 논리로 확대된다. 이것이 바로 ‘감리광곽(坎離匡郭)’이다. 감리광곽에서 ‘광곽’은 주로 사물을 둘러싸는 윤곽, 가장자리, 테두리 등을 의미한다. 감리괘를 붙여 테두리를 두르게 하면[坎離匡郭], 감괘와 리괘의 괘상과 연결된다. 감괘☵는 양효가 두 음효에 둘러싸여 있고 리괘☲는 음효가 두 양효에 둘러싸여 있으며, 또 감은 곤괘 속에 간직되어 있고 리괘는 건괘 속에 간직되어 있다. 때문에 ‘坎離匡郭’이란, 감괘와 리괘가 건괘와 곤괘 속에 간직되어 있고 각각 음효와 양효를 둘러싸고 있어, 이것이 마치 사물이나 성을 둘러싸 간직하고 있는 광주리나 성곽과 같다는 뜻이다. 아래 <그림 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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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수화광곽도>, <삼오지정도>, <수화광곽삼오지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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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에서 흰색 부분은 양효를 뜻하고, 검은색 부분은 음효를 뜻하므로, 그림의 왼쪽 부분은 리괘가 되고, 오른쪽 부분은 감괘가 된다. 괘상으로 말하면 리괘는 화(火)이자 태양이고 양에 해당하며, 감괘는 수(水)이자 달이고 음에 해당한다. 이러한 괘상에서는 감괘와 리괘가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이자 수화가 서로 통하고 있는 형상이다. 다시 말해 음양이 서로 배합된 형상이다. 연단술로 말하면, 리괘는 청룡이고, 홍이며, 감괘는 백호이고 연이 된다. 청룡과 백호가 서로 합쳐지고, 연홍이 결합하였다. 그리고 그림 가운데의 흰 공간의 원은 단약을 의미한다. 이는 단약이 형성되는 것이 음양의 결합이자 수화의 작용이며, 연홍의 화합임을 의미한다. 이를 음양과 오행의 체계에서 보자면, 감무(坎戊)와 리기(離己)의 결합이므로, 음양이 결합한 상태이자 오행에서 토[무기]가 결합된 것을 의미한다.

이제 음양과 오행의 결합관계를 말한 내용을 찾아보자. 『참동계』에서는 음양과 오행의 관계를 말하는 곳이 적지 않다. “목정인 단사가 금을 얻어 아우른다. 금과 수가 합해지고 목과 화가 짝이 된다. 네 가지가 뒤섞인 것을 늘어놓으면 용호가 된다. 용은 양으로 기수에 해당하고, 호는 음으로 우수에 해당한다.”56)라거나 “해는 오행의 정기와 합하고 달은 육률의 벼리를 받는다.”57)등의 내용에서 음양과 오행의 관계가 밀접하게 묘사되고 있다. 음양을 상징하는 용호는 목과 금, 금과 수, 목과 화의 결합과 화합으로 설명되고, 단약의 완성은 감무(坎戊)와 리기(離己)의 결합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음양과 오행의 관계는 “삼오여일(三五與一)”의 그림으로 구체화된다. 이를 “삼오지정도(三五至精圖)”라고도 부른다. 아래 <그림 1>> 참조.

태양유주는 항상 사람에게서 떠나고자 하지만, 마침내 금화를 얻으면 전환하여 서로 감응하며, 변하여 흰 액이 되고 엉기어 지극히 단단하게 된다. 금화가 먼저 부르면 잠깐 사이에 풀어져서 물이 되고 엉기면 말 이빨 같고 옥돌 같다. 양은 이에 가서 화답하니, 정과 성이 자연스레 결합한다. 음의 때가 가깝게 닥치면 잡아 가두고 문을 잠가 놓는다. 자애로운 어머니가 길러 키우니 효자가 은혜를 갚고, 엄한 아버지가 명령을 내려 자손을 가르치고 다스린다. 오행이 뒤섞여 왕성하게 자라나고 서로 의거하여 생하니, 화의 성질은 금을 녹이고 금은 목을 쳐내어 영화로워진다. 삼과 오가 하나가 되니 천지의 지극한 정이다. 구결로 전할 수는 있으나 글로 전하기는 어렵다.58)

이 인용문은 수은과 납이 결합하는 내용을 묘사한 것이다. ‘태양유주’는 수은을 가리키고, ‘금화’는 납을 가리킨다. ‘양이 가서 화답한다’는 것은 수은과 납이 결합한 것이고, ‘음의 때가 가깝다’는 것은 수은이 납을 액화시켜 날아가지 못하게 잡아 두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애로운 어머니가 기른다’는 것은 납이 용해되어 액체가 되었다는 것이고, 이를 오행상생에서 보면 ‘金生水’를 의미한다. 또 ‘엄한 아버지가 명령을 내린다’는 것은 비승하는 수은을 제압한다는 것이고 이를 오행상극에서 보면 ‘金克木’이 된다. ‘오행이 뒤섞여 왕성하다’는 것은 이러한 연단 과정에서 오행이 두루 쓰인다는 의미이다. 삼과 오에서 ‘삼’은 오행의 ‘火ㆍ金ㆍ木’을 가리키고, ‘오’는 ‘土’를 가리킨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하지만 오행 가운데 세 짝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즉. 토ㆍ목화ㆍ금수로 보기도 한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금단 혹은 단약이 완성된 것을 의미한다.

자와 오의 수를 합하면 3이고, 무와 기를 일컬어 5라 한다. 3과 5가 화합하고 나면 팔석이 벼리를 바로잡는다. 부르고 끌어당기면서 서로 탐하며, 우두커니 부부가 되길 생각한다. 황토는 금의 아비요, 유주는 수의 어미다. 수는 토를 귀(鬼)로 삼으니, 토는 수가 일어나 달아나지 않게 진압한다. 주작은 화의 정이니, 평정함을 지키면서 높고 낮음을 조절한다. 수가 성하면 화는 소멸하니, 함께 사라져 후토로 돌아간다. 세 성이 합하여 모이고 나면, 본성이 근원을 함께 한다.59)

이 인용문에서 ‘자와 오의 수’는 북방의 자와 그 방위에 해당하는 오행 중의 수를 상징하는 수자 1과 남방의 오와 그 방위에 해당하는 오행 중의 화를 상징하는 수 2를 합하면 3이 된다는 말이다. 이는 수와 화가 결합한 수 3을 의미한다. ‘무와 기’는 납갑설에서 무와 기는 오행중의 토에 해당하고, 토의 수는 5이다. 팔석은 수와 화, 토가 결합한 것, 다시 말해 수화가 토에서 합한 것을 의미하고 이것이 수자 8이 되어 약물로 쓰일 팔석의 기준이 된다는 말이다. 두 인용문에서 보이듯이, 음양과 오행의 결합을 설명하는 내용에서 『참동계』는 ‘삼오여일(三五與一)’이라는 원칙을 제시한다. 아래 <그림 1> 참조.

이 그림에서 화와 목은 홍이 되고, 수와 금은 연이 되며, 토는 황아가 된다. 토는 중앙에 위치하면서 “세 물(物)이 한 집안을 이루니, 모두 무기(戊己)로 돌아간다[三物一家, 都歸戊己]”라는 말을 의미한다. 이 그림에서 화와 목은 왼쪽에 있고, 수와 금은 오른쪽에 있다. 이러한 그림의 배치는 오행상생설에 따라 ‘木生火’와 ‘金生水’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수와 화가 토를 거치지 않고 바로 연결되는 빈 원은 단약을 의미한다. 수와 화는 단약의 재료를 상징하는 음양(陰陽), 강유(剛柔), 자웅(雌雄), 정기(精氣), 연홍(鉛汞), 청룡(靑龍)과 백호(白虎), 홍(紅)과 백(白)을 의미하고, 이 단약의 재료가 목금토의 작용에 의해 단약으로 완성됨을 상징한 것이다.

이제 <수화광곽도>와 <삼오지정도>를 연결해보자. 이 연결에 필요한 논리가 앞에서 언급한 ‘감리위역(坎離爲易)’설이다. 음양과 수화를 상징하는 감괘와 리괘는 그대로 <수화광곽도>가 된다. 이 음양과 수화는 <삼오지정도>에서 윗부분의 수(水)와 화(火)의 그림으로 그대로 연결된다.

문제는 『참동계』 경문에는 ‘태극’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태일(太一)’이라는 용어는 몇 차례 등장한다. 도교에서 태일은 태을(太乙)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연단을 주관하는 신이자, 신선계의 신으로 연단을 성취한 사람을 신선계로 불러올리는 신으로 묘사된다.

명철한 자는 그 뜻을 살펴 널리 탁 트여 말미암을 바를 안다. 부지런히 행하면서 밤낮으로 쉬지 않는다. 삼 년을 복식하면 거동이 경쾌해져 멀리 노닐 수 있다. 불길을 넘어가도 타지 않고 물어 들어가도 젖지 않는다. 있을 수도 있고 없어질 수도 있으며, 오래도록 즐거워하며 근심이 없다. 도와 덕이 성취되면 잠복하여 때를 기다린다. 태일(太一)이 부르면 중주(中洲)로 가서 거처한다. 공이 가득 차 상승하며 도록(圖籙)을 품부 받는다.60)

이 인용문에서 ‘중주(中洲)’는 신선의 세계를 의미하고, 도록(圖籙)은 천신(天神)이 주는 부적을 의미한다. 만약 『참동계』에서 도출된 두 도상들을 연결하고 그 도상의 가장 윗자리에 빈 원을 ‘태일’로 이해하거나 연단을 완성한 것, 도와 하나가 되어 합일된 ‘진일(眞一)’61)이라고 표현한다62)면, <무극도> 혹은 <태극도>의 모양이 된다.

Ⅴ. 맺음말

태일-음양-오행의 체계의 결합은 신학적으로 한무제의 조신운동의 과정에서 적용되기 시작한다. 동중서는 『춘추번로』에서 음양과 오행의 결합을 통해, 군신간의 위계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한다. 이러한 사상적 흐름은 한대 역학자들에게 수용되어 『주역』 해석에 오행이 도입된다. 하지만 한대 역학자들은 태극-음양-오행의 논리를 형성하지는 못했다. 동한 시기에 출현한 『참동계』는 역학과 연단술을 결합하면서 태일(태극)-음양-오행의 체계를 사상적으로 완성해 낸다. 문제는 태일-음양-오행의 체계에서 ‘태일’이다. ‘태일’은 성수신앙에서 북극성을 상징하고, 그 신명으로 ‘태일’ 혹은 ‘태을’로 부른 것이다.

한대 역학에서 원기 개념이 도입되고, 이 영향으로 공영달에 와서 태극을 원기로 정의한다. 이로서 태일-음양-오행의 체계는 태극-음양-오행의 체계로 자리 잡게 된다.

『참동계』의 현존 최고본들은 『주역참동계주(周易參同契註)』(無名氏)와 『주역참동계분장통진의(周易參同契分章通眞義)』(彭曉)이다. 이들 판본에는 <태극도>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태일(태극)-음양-오행의 체계는 『참동계』에서 완성된다. 또한 이 책에서 「수화광곽도(水火匡廓圖)」와 「삼오지정도(三五至精圖)」를 그려낼 수 있다. 또한 「수화광곽도」와 「삼오지정도」를 연결시킬 음양과 오행의 관계도 나타난다. 당연히 태일을 그려낼 수도 있다.63)

이 글의 도입에서 주돈이의 <태극도설>의 문장을 소개했다. “태극이 움직여 양을 낳고, ㆍㆍㆍ 고요해져서 음을 낳으며, ㆍㆍㆍ 양이 변화하고 음이 합하여 수ㆍ화ㆍ목ㆍ금ㆍ토를 낳는다. 오기가 고르게 펴져 사시가 운행된다.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다.” 글의 중간 부분에서 동중서의 문장을 소개했다. “천지의 기는 합해지면 하나가 되고, 나뉘면 음양이 되고, 쪼개져서는 사시가 되고, 나열되어서는 오행이 된다.” 동중서의 말에서 이미 태극-음양-오행의 체계는 그 조짐을 형성하고 있었다. 게다가 합해져 하나로 있는 천지의 기는 ‘태극’을 원기로 해석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었다.

한대 역학자들은 태일신 신앙체계와 동중서의 이론을 체계화하지 못했다. 반면에 『참동계』는 이를 체계화하고 있다. 『참동계』는 태일신 신앙체계와 동중서의 음양오행론, 오행을 역학에 끌어들인 한대 역학을 수용해 이 체계를 사상적으로 형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참동계』에서는 ‘태극’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고, ‘태일’이라는 연단을 주관하는 신이자 신선계의 천신이 등장한다. 태일은 당대에 이르러서는 ‘태극’으로도 표현된다. ‘태일’ 혹은 ‘태을’이 ‘태극’으로 표현되는 것은 태극이라는 용어가 개념화되면서부터 일 것이다. 한무제의 조신운동(造神運動)에서 신격의 체계는 태일신 → 천일신(건괘; 양인 신), 지일신(곤괘; 음인 신) → 오제신(오행신)이었다. 이러한 신학 체계가 『참동계』 연단술에서 태일-음양-오행으로 전이되면서 하나의 체계를 세운 것은 분명해 보인다.

후대로 오면서 ‘태일’의 자리에 ‘태극’을 대체하면서 태극-음양-오행의 체계가 형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사상적으로 태극-음양-오행의 체계의 연원을 『참동계』로 보는 것이 적절하겠다.

Appendices

부 록

jdaos-37-0-263-g2
주진의 『漢上易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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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aos-37-0-263-g3
양갑의 『六經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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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aos-37-0-263-g4
주희의 『性理大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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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太極圖說』, “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ㆍㆍㆍ 靜而生陰, ㆍㆍㆍ 陽變陰合, 而生水火木金土. 五氣順布, 四時行焉. 五行一陰陽也, 陰陽一太極也. 太極本無極也.”

류승국은 주돈이의 「태극도설」은 유학에서 천도와 인도를 연결하는 중요한 지점을, 태극론이 천도와 관련되면 우주론으로, 인도와 관련되면 심성론으로 해석되고, 도덕적 지향이자 회복할 대상으로 태극이 설정되어 수양론으로 해석되어 왔다고 한다. 류승국, 『동양철학연구』 (서울: 동방학술연구원, 1988), p.185.

이봉호, 『정조의 스승, 서명응의 철학』 (고양: 동과서출판사, 2013), pp.154-155 참조.

김병환, 「태극도연원연구」, 『동양철학』 7 (1996); 楊桂才, 『道學宗主 - 周敦頤哲學思想硏究』 (北京: 人民出版社, 2005); 吾妻重二, 『朱子學の新硏究』 (東京: 創文社, 2004); 李申, 『話說太極圖』 (北京: 知識出版社, 1992); 李申, 『易圖考』 (北京: 北京大學出版社, 2000); 鄭吉雄, 『易圖象與易詮釋』 (臺北: 喜瑪拉雅硏究發展基金會, 2002); 이대승, 「송대 도서학과 주자 역학」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 논문, 2019), pp.22-25 참조.

이들 그림들은 논문 말미에 부록으로 수록한다.

이와 관련해서 이봉호, 앞의 책, pp.154-155 참조.

송대 학자들 중에서 <태극도> 연원을 탐구한 주진과 양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자발, 조열지, 소백온 등도 주돈이의 <태극도>뿐만 아니라 모든 송대 역학이 진단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서 김병환의 앞의 글 p.228을 참고하라.

중국 역사에서 조신운동은 진시황 시기에도 일어났다. 다만 한무제 시기의 조신운동은 국가제천례의 관점에서 대규모로 진행되었기에 중국철학사에서 한무제의 조신운동을 특정해서 서술하고 있다.

侯外廬ㆍ趙紀彬ㆍ杜國庠ㆍ邱漢生, 『中國思想通史』 第2卷 (北京: 人民出版社 1992), p.86 참조.

한무제의 태일신학과 관련해서는 김일권, 『동양천문사상, 하늘의 역사』 (서울: 예문서원, 2007)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기도 하다.

천자와 제후가 신에게 제사하는 대상과 범위가 규정되어 있었다. 천자는 천신(天神)과 지기(地祗), 천하명산대천, 오악(五嶽), 사독(四瀆)에 제사하고, 제후는 자신의 땅에 있는 명산대천에 제사하는 것이 「춘관(春官)」의 규정이었다. 그러나 주나라가 동천(東遷)하고 나서 제후들이 방자하여 예를 따르지 않아, 임의대로 신을 모시고 제사하는 일이 발생했다. 예를 들면 진(秦)나라 양공(襄公)은 소호(少皥)를 주된 신으로 모시고, 백제(白帝)를 제사하며, 제사에 쓰일 희생도 예를 어겼다.(秦襄公自以居西戎,主少昊之神,作西畤,祠白帝) 제후들의 새로운 신을 모시는 일들은 『사기』 「봉선서」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呂氏春秋』 「應同」, “黃帝之時, 天先見大螾大螻, 黃帝曰‘土氣勝’, 土氣勝, 故其色尙黃, 其事則土. 及禹之時, 天先見草木秋冬不殺, 禹曰‘木氣勝’, 木氣勝, 故其色尙靑,其事則木. 及湯之時, 天先見金刃生於水, 湯曰‘金氣勝’, 金氣勝, 故其色尙白, 其事則金. 及文王之時, 天先見火, 赤烏銜丹書集於周社, 文王曰‘火氣勝’, 火氣勝, 故其色尙赤, 其事則火. 代火者必將水, 天且先見水氣勝, 水氣勝, 故其色尙黑, 其事則水.”

천의 수 10을 1에서 5까지는 생수(生數)로, 6에서 10까지는 성수(成數)로 오행에 적용한 것을 말한다. 오행에서 水를 1과 6으로 표현할 때, 생수인 1과 성수인 6이 되는데, 水의 성수인 6을 기준으로 했다는 말이다.

『史記』 「秦始皇本紀」, “始皇推終始五德之傳, 以爲周得火德, 秦代周德, 從所不勝. 方今水德之始, 改年始, 朝賀皆自十月朔. 衣服旄旌節旗皆上黑. 數以六爲紀, 符、法冠皆六寸, 而輿六尺, 六尺爲步, 乘六馬. 更名河曰德水, 以爲水德之始.”

이와 관련해 『사기』 「봉선서」에는 진나라가 백제, 청제, 황제, 적제의 사제를 사당에 모신다는 말을 듣고 유방이 말하기를 “내가 듣기로는 하늘에는 오제가 있다고 하는데, 사제만 모시니 무엇 때문인가? ㆍㆍㆍ 내가 이제 알겠다. 나를 기다려 다섯을 채우려는 것이구나.”라고 하였고, 이에 흑제를 사당에 모셨다는 내용이 나온다.(二年, 東擊項籍而還入關, 問‘故秦時上帝祠何帝也?’ 對曰‘四帝, 有白, 靑, 黃, 赤帝之祠.’ 高祖曰‘吾聞天有五帝, 而有四, 何也?’ 莫知其說. 於是高祖曰‘吾知之矣, 乃待我而具五也.’ 乃立黑帝祠, 命曰北畤. 有司進祠, 上不親往. 悉召故秦祝官, 復置太祝、太宰, 如其故儀禮. 因令縣爲公社. 下詔曰‘吾甚重祠而敬祭. 今上帝之祭及山川諸神當祠者, 各以其時禮祠之如故.’)

이 논쟁의 시발은 가의(賈誼)의 주장이었다. 가의는 한나라는 토덕을 받았으므로, 색은 황색을 수는 5를 기준으로 하며, 진나라의 법제를 모두 바꿀 것을 주장한다. 이에 대해 주발(周㪍)과 관영(灌嬰)이 반대하여 관철되지 않았다. 한나라의 덕에 대한 논쟁은 사송령, 「음양오행학설사」, 양계초ㆍ풍우란, 『음양오행설의 연구』, 김홍경 편역 (서울: 신지서원, 1993), pp.532-534 참조.

『史記』 「封禪書」, “魯人公孫臣上書曰 始秦得水德. 今漢受之, 推終始傳, 則漢當土德, 土德之應黃龍見. 宜改正朔, 易服色, 色上黃. 是時丞相張蒼好律曆, 以爲 漢乃水德之始, 故河決金隄, 其符也. 年始冬十月, 色外黑內赤, 與德相應. 如公孫臣言, 非也, 罷之. 後三歲, 黃龍見成紀. 文帝乃召公孫臣, 拜爲博士, 與諸生草改曆服色事.

侯外廬ㆍ趙紀彬ㆍ杜國庠ㆍ邱漢生, 앞의 책, p.88 참조.

태일(太一)은 태일(泰一)로 쓰기도 하는데, 태을(太乙)과 같은 말이다. 후대에는 태극(太極)이라고도 쓴다. 원래는 북극성을 신앙하는 성수신앙에서 북극성을 태을(太乙)신을 섬겼는데, 이를 한무제시기에 태일(太一)이라고 부르면서 최고의 신격을 부여했다. 이와 관련해서, 胡孚琛, 『中華道敎大辭典』 (北京: 中國社會科學出版社, 1995), p.784 태을(太乙) 항목 참조.

『史記』 卷12, “亳人薄誘忌奏祠太一方,曰 天神貴者太一,太一佐曰五帝. 古者天子以春秋祭太一東南郊,用太牢具,七日,爲壇開八通之鬼道. 於是天子令太祝立其祠長安東南郊,常奉祠如忌方. 其後人有上書,言 古者天子三年一用太牢具祠神三一. 天一,地一,太一. 天子許之,令太祝領祠之忌太一壇上,如其方.”

『呂氏春秋』 「大樂」, “音樂之所由來者遠矣. 生於度量, 本於太一. 太一出兩儀, 兩儀出陰陽, 陰陽變化, 一上下一, 合而成章.”

『呂氏春秋』 「大樂」, “萬物所出, 造於太一, 化於陰陽.”

『呂氏春秋』 「大樂」, “道也者, 至精也, 不可爲形, 不可爲名, 强爲之謂太一.”

司馬談, 「論六家要旨」, “夫儒者以六藝爲法, 六藝經傳以千萬數, 累世不能通其學, 當年不能究其禮. 故曰博而寡要, 勞而少功.”

연나라 소왕은 추연을 노사(老師)로 대접하면서 그를 위해 게석궁(碣石宮)을 지었다.

劉春雷, 「西漢易學卦氣說硏究-以孟喜, 焦赣, 京房和<易緯>爲中心」 (山東大學 博士學位 論文, 2016).

동중서(董仲舒)가 음양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군신관계와 귀천으로 설명한 사례와 오행의 관계를 군신관계와 부자 관계로 해석하면서 충과 효를 끌어들인 사례는 너무 많아 거론할 수 없을 정도이다. 동중서는 음양과 오행을 철저하게 존비와 군신, 부자 관계로 해석하는데, 이는 한무제의 절대 권력을 정당화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朱伯昆 主編, 『周易通釋』 (北京: 崑崙出版社, 2004), p.156 참조.

「繫辭傳」 上1, “是故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八卦定吉凶, 吉凶生大業. 是故法象莫大乎天地, 變通莫大乎四時, 縣象著明莫大乎日月, 崇高莫大乎富貴, 備物致用, 立成器, 以爲天下利 莫大乎聖人, 探픂索隱, 鉤深致遠, 以定天下之吉凶, 成天下之亹亹者 莫大乎蓍龜.”

王弼 著ㆍ樓宇烈 校釋, 『王弼集校釋』 (北京: 中華書局, 1983), pp.548-549 참조.

『莊子』, 「大宗師」, “夫道, 有情有信, 無爲無形. 可傳而不可受, 可得而不可見. 自本自根, 未有天地, 自古以固存. 神鬼神帝, 生天生地. 在太極之先而不爲高, 在六極之下而不爲深, 先天地生而不爲久, 長於上古而不爲老.”

『易緯乾鑿度』, “故曰有太易, 有太初, 有太始, 有太素也. 太易者, 未見氣也, 太初者, 氣之始也.”

朱伯崑, 『周易哲學史』 上冊 (北京: 北京大學出版社, 1986), p.75 참조.

『周易正義』, “太極謂天地未分之前, 元氣混而爲一, 即是太初、太一也.”

서복관, 「음양오행설과 관련 문헌의 연구」, 양계초ㆍ풍우란, 『음양오행설의 연구』, 김홍경 편역 (서울: 신지서원, 1993), p.149.

『春秋繁露』, “五行相生第五十八, 天地之氣, 合而爲一, 分爲陰陽, 判爲四時, 列爲五行.”

朱伯崑, 『周易哲學史』 上冊, p.108 참조.

余敦康, 『漢宋易學解讀』 (北京: 華夏出版社, 2006), p.29 참조.

『참동계』의 성립시기를 두고 벌이는 논쟁은 후한시기 성립설과 10세기 이후 성립설로 나뉜다. 후한시기 성립설에 대해서는 이봉호, 이대승이 잘 정리하고 있다. 10세기 성립설에 대해서는 정우진이 정리하고 있다. 이봉호, 「갈홍은 『포박자』에서 왜 『참동계』의 연단법을 소개하지 않았나? - 『참동계』의 연단법과의 비교」, 『동양철학연구』 78 (2014); 이대승, 「팽효의 『분장통진의』 연구 (1)」, 『도교문화연구』 43 (2015); 정우진, 「전통의 관점에서 고찰한 포박자 갈홍의 연단술」, 『도교문화연구』39 (2013); 정우진, 「전통의 관점에서 고찰한 포박자 갈홍의 연단술」, 『도교문화연구』 39 (2013).

저자의 문제에 관한 논쟁은 이대승이 앞의 글에서 잘 정리하고 있다.

孟乃昌, 『周易參同契考辨』 (上海:上海古跡出版社, 1993)[『宗敎學硏究』 (2004)에 재수록]; 王明, 『周易參同契考證』 (北京: 中國社會科學出版社, 1984); 蕭漢明, 「『周易參同契』的易學特徵」, 『道家文化硏究』 第11期 (1997).

孟乃昌, 앞의 책, pp.44-47 참조.

朱越利, 「『周易參同契』的黃老養性術」, 『宗敎學硏究』 2004年 第4期 (2004), p.19.

『역위』는 『역경(易經)』을 해석하면서 도가(道家), 대역(大易), 수술(數術) 등을 결합해 易學의 사상을 발전시킨 책으로, 『乾坤鑿度』 二卷,『周易乾鑿度』 二卷,『易緯稽覽圖』 二卷,『易緯辨終備』 一卷,『易緯通卦驗』 二卷,『易緯乾元序制記』 一卷,『易緯是類謀』 一卷,『易緯坤靈圖』 一卷으로 총 8종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周易乾鑿度』 2卷만 남아 있다.

이 책은 『도장』에도 보이지 않는다.

『구정단경(九鼎丹經)』은 『포박자』 「금단편」에 실려 있고, 『도장』 18권 통신부에서 실려 있다. 『구정단경』과 『주역참동계』와의 관계에 대해서 이봉호, 「갈홍은 『포박자』에서 왜 『참동계』의 연단법을 소개하지 않았나? - 『참동계』의 연단법과의 비교」, 『동양철학연구』 78 (2014)는 『참동계』가 『구정신단경』의 제1정에 해당한다는 점을 해명하고 있다.

孟乃昌, 앞의 글 p.139 참조.

朱伯崑, 『周易哲學史』 上冊, p.215 참조.

같은 책, p.215 참조.

『周易參同契』 上卷, “天地設位章第七, 天地設位, 而易行乎其中矣. 天地者, 乾坤之象也. 設位者, 列陰陽配合之位也. 易謂坎離. 坎離者, 乾坤二用. 二用無爻位, 周流行六虛. 往來旣不定, 上下亦無常. 幽潛淪匿, 變化於中, 包囊萬物, 爲道紀綱.”

『周易參同契』 上卷, “言不苟造章第九, 坎戊月精, 離己日光. 日月爲易, 剛柔相當.”

『說文解字』, “日月爲易, 象陰陽也.”

「繫辭傳」下 7章, “天地設位, 而易行乎其中矣.”

朱伯崑, 『周易哲學史』 上冊, p.218 참조.

『周易參同契』 中卷, “乾坤剛柔章第四十一, 乾剛坤柔, 配合相包, 陽稟陰受, 雄雌相須. 須以造化, 精氣乃舒, 坎離冠首, 光耀垂敷. 玄冥難測, 不可畫圖, 聖人揆度, 參序元基. 四者混沌, 徑入虛無, 六十卦周, 張布爲輿. 龍馬就駕, 明君御時.”

『周易參同契』, “丹砂木精章第七十六, 丹砂木精, 得金乃并. 金水合處, 木火爲侶. 四者混沌, 列爲龍虎. 龍陽數奇, 虎陰數偶.”

『周易參同契』, “日合五行精章第十九, 日合五行精, 月受六律紀.”

『周易參同契』, “太陽流珠章第六十八, 太陽流珠, 常欲去人, 卒得金華, 轉而相因, 化爲白液, 凝而至堅. 金華先唱, 有頃之間, 解化爲水, 馬齒闌干. 陽乃往和, 情性自然. 迫促時陰, 拘畜禁門. 慈母育養, 孝子報恩, 嚴父施令, 教敕子孫. 五行錯王, 相據以生, 火性銷金, 金伐木榮. 三五與一, 天地至精. 可以口訣, 難以書傳.”

『周易參同契』, “子午數合三章第三十一, 子午數合三, 戊己號稱五. 三五旣和諧, 八石正綱紀. 呼吸相貪欲, 佇思爲夫婦. 黃土金之父, 流珠水之母. 水以土爲鬼, 土鎭水不起. 朱雀爲火精, 執平調勝負. 水盛火消滅, 俱死歸厚土. 三性旣合會, 本性共宗祖.”

『周易參同契』, “明者省厥旨章第二十八, 明者省厥旨, 曠然知所由. 勤而行之, 夙夜不休. 服食三載, 輕舉遠遊. 跨火不焦, 入水不濡. 能存能亡, 長樂無憂. 道成德就, 潛伏俟時. 太一乃召, 移居中洲. 功滿上升, 膺籙受圖.”

『周易參同契』, “陰陽爲度章第六十三, 城郭完全, 人物乃安, 爰斯之時, 情合乾坤. 乾動而直, 氣布精流, 坤靜而翕, 爲道舍廬. 剛施而退, 柔化以滋. 九還七返, 八歸六居. 男白女赤, 金火相拘. 則水定火, 五行之初. 上善若水, 淸而無瑕. 道之形象, 眞一難圖. 變而分布, 各自獨居.”

조선시대 서명응은 ‘수화광곽도’와 ‘삼오지정도’를 연결하고 그림의 윗부분 빈 원을 ‘진일’로 해석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 낸다. 이와 관련해 이봉호, 『정조의 스승, 서명응의 철학』, p.168 참조.

이 문제는 서대원에 의해 검토되고 해명되었다. 서대원은 <태극도>가 『참동계』에 나타나지 않지만, 『참동계』를 외단에서 내단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태극도>와 같은 도상이 그려졌을 것을 추론한다. 서대원 「『참동계』와 태극도」, 『동양철학연구』 47 (2006).

【참고문헌】

1.

『史記』.

2.

『呂氏春秋』.

3.

『周易』.

4.

『莊子』.

5.

『易緯乾鑿度』.

6.

『周易參同契』.

7.

『周易正義』.

8.

『道藏』 18卷.

9.

『說文解字』.

10.

『太極圖說』.

11.

『通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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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理大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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