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연구논문

대순사상의 미(美) 개념과 미학적 특징

이지영*, 이경원**
Jee-young Lee*, Gyung-won Lee**
*제1저자. 한국철학문화연구소 연구원ㆍ대진대학교 박사수료 E-mail: jasmine-50@naver.com
**교신저자. 대진대학교 교수, E-mail: leegw@daejin.ac.kr
*Researcher, The Institute for the Study of Korean Philosophy and Culture
**Professor, Department of Daesoon Theology, Daejin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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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Oct 12, 2020 ; Revised: Feb 25, 2021 ; Accepted: Apr 05, 2021

Published Online: Apr 30, 2021

국문요약

본 연구는 진과 선의 가치가 미의 형태로 드러난다면 대순사상에서 진리는 어떻게 ‘미적인 것’으로 표출되고 나타나는지를 미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하였다. 이에 대순진리회의 신앙을 감각과 감정, 아름다움으로 성찰하는 전통 미학 혹은 신학적 미학의 방법으로 접근해보고자 한다.

『전경』을 중심으로 살펴본 대순사상의 미 개념은 신성(神性)과 도리(道理), 일심(一心), 관계(關係)에 숭고와 균제, 절제, 조화미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 개념으로 고찰한 대순사상의 미학은 천지공사의 미학과 상생의 미학, 치유의 미학이다. 천지공사에는 하느님이 화신(化身)하여 이 땅에 다녀가셨다는 역사가 담겨있다. 인간 ‘강증산’이 상제라는 깨달음은 충격적인 미적 모티브이자 대순진리회의 신학적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상생은 상호관계의 사회성을 심미적으로 나타내는 용어라고 볼 수 있으며 관계의 조화와 통일에 상생의 미학적 구조가 있다고 본다. 치유에는 인류를 무병의 선경세상으로 이끄는 상제의 신성한 숭고미와 인간을 안심ㆍ안신으로 나아가게 하는 절제미가 담겨있다 할 수 있다. 치유의 궁극적 가치인 의통은 인류의 이상을 실현해 주는 수도의 종착점이자, 아름다운 삶, 가치 있는 삶이라는 영적 쾌감을 주는 치유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미학의 시선으로 살펴본 대순사상의 미학적 특징은 진멸지경에 놓인 세상에서 창생을 구원하고자 우리 곁에 머물다간 상제의 ‘거룩한 수고’와 상생의 실천으로 치유를 이끌어 내는 미적 태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여신(女神) 같다’고 하거나 ‘선녀(仙女) 같다’는 말을 한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 ‘천상(天上)의 소리’라 찬사하고 즐거움이 가득할 때는 ‘신(명)이 난다’고 표현한다. 신(神)은 곧 아름다움의 상징이며 신의 세계는 아름다움의 원형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경험은 우리의 영혼을 신에게로 안내한다. 대순사상의 미적 체험은 감정적, 지적, 영적 환희의 절정을 이루는 종교체험으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심미적 체험이라 할 수 있다.

Abstract

In this study, values of truth and good are expressed in the form of beauty, and truth and good are analyzed from an aesthetic point of view. This enables an assessment of how truth is expressed and presented as an "aesthetic" in Daesoon Thought. Therefore, an approach to faith in Daesoon Jinrihoe (大巡眞理會) can be presented via traditional aesthetics or theological aesthetics that reflect on sense experience, feelings, and beauty.

The concept of beauty in Daesoon Thought which focuses on The Canonical Scripture appears in keywords used in Daesoon Thought such as divine nature (神性), the pattern of Dao (道理), the singularly-focused mind (一心), and relationships (關係). Therein, one can find sublimation, symmetry, moderation, and harmony. The aesthetic features of Daesoon Thought, when considered as an aesthetic system can formulate thinking regarding the aesthetics of ’Reordering Works of Heaven and Earth’ (天地公事), the aesthetics of Mutual Beneficence (相生), and the aesthetics of healing. The Reordering Works of Heaven and Earth contain a record of the Supreme God visiting the world as a human being. The realization that the human figure, Kang Jeungsan (1871-1909), is the Supreme God, Sangje (上帝), is the shocking aesthetic motif and theological starting point of the Reordering Works of Heaven and Earth. Mutual Beneficence can be seen aesthetically as indicating the sociality of mutual relations, and there is an aesthetic structure of Mutual Beneficence in the harmony and unification of those relations. Healing can be said to contain the sacred sublimation of Sangje, and moderation is a form of beauty that makes humans move toward Quieting the mind and Quieting the body (安心ㆍ安身), the Dharma of Presiding over Cures (醫統), and the ultimate value of healing, which is the end point of the Cultivation (修道) wherein one realizes that the ideals of humankind and the aesthetics of healing bestow the spiritual pleasures of a beautiful and valuable life. The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Daesoon Thought demonstrate an aesthetic attitude that leads to healing through Sangje’s Holy Works and the practice of Mutual Beneficence (相生) which were performed when He stayed with us to vastly save all beings throughout the Three Realms that teetered on the brink of extinction.

It is not uncommon to see a beautiful woman and remark she is like a goddess (女神) or female immortal (仙女). Likewise, beautiful music is often praised as "the sound of heaven." That which fills us with joy is spoken of as "divine beings (神明)" of God. God is a symbol of beauty, and the world of God can be said to be the archetype of beauty. Experience of beauty guides our souls to God. The aesthetic experience of Daesoon Thought is a religious experience that culminates in emotional, intellectual, and spiritual joy, and it is an aesthetic experience that recognizes transcendent beauty.

Keywords: 미학; 신성; 도리; 일심; 관계; 천지공사; 상생; 치유
Keywords: Aesthetics; divine nature; Dao; the singularly-focused mind; relationship; the Reordering Works of Heaven and Earth; Mutual Beneficence; healing

I. 머리말

미학(Aesthetica)은 근대 이후 감각이나 감성을 철학의 대상으로 삼는 ‘감성적 인식에 관한 학문’1)이다. 17세기 초부터 18세기에 걸쳐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여러 국가에 나타난 공통된 예술 사조는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이다. 이 시대는 화려하고 강렬하면서도 장식적이고 과장된 표현이 특징인 감각적인 예술유파였다. 반면 철학의 분야에서는 ‘감각은 선입견을 낳는 오류’2)라는 근대의 실용과 합리, 이성중심의 계몽주의 시대였다. 바움가르텐(1714~1762)은 감각이 미치는 영향을 배제하고서는 완전한 인식이 성립될 수 없다고 보아 감각을 이성의 아래에 배치하여 미학을 학문의 한 분과로 분리한다. 감성은 결코 이성보다 열등하지 않다. 현대에 미학이라는 용어가 삶의 소재와 체험 등 다방면에 걸쳐 차용되고 유행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기다림’에도 ‘느림’에도 심지어 ‘타이밍’과 ‘상차림’에서도 살면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에 미적 즐거움을 느끼고 경험한다. 미학은 우리 삶의 본질로서의 미(美)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한 미의 추구를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생의 참된 행복을 추구하는 데에 그 최대의 목표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3)

플라톤은 미의 이데아를 초월적 존재인 신에 적용했었고, 이 신적 존재(선의 이데아)를 ‘절대적인 미’라고 불렀다.4) 토마스 아퀴나스는 피조물인 ‘인간과 자연’을 아름답게 하는 아름다움 그 자체, 아름다움의 궁극적인 본질을 ‘신’이라 말한다. ‘발타사르’5)는 “아름다움이 없는 세계에서는 선이 왜 행해져야 하는지 자기 자명성을 잃게 될 수 있으며 아름다움이 없는 세계에서는 진리의 증거들도 자기 인증성을 잃게 되어 아무도 설득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하느님의 진리, 선, 아름다움 중 어느 하나라도 놓친다면 다른 둘도 심각하게 손상될 것이기 때문이다.”6)라고 하였다. 진리와 선함은 아름다운 것으로 인지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대순사상 연구에서 ‘지성의 대상’인 진과, ‘의지의 대상’인 선 이외에 ‘감성의 대상’인 미의 관점으로 접근한 선행연구는 미미하다. 미학적 소재를 다룬 기존의 대순사상 연구논문을 살펴보면, 황의필의 「조선 미술에 내재한 음양합덕과 태극 - 대순사상을 중심으로」(2020)에서는 조선 미술을 예술 철학 차원에서 분석해 대순사상의 음양합덕과 태극사상에 접목하였다. 노승복의 「풍경에 대한 대순사상적 접근」(2019)은 평범한 풍경을 담은 작품들에서 미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개인의 경험이나 사유의 변화를 통해 새롭게 인식되고 발견되는 것에 대해 대순사상과 관련지어 해석하고자 했다. 이상의 논문들은 대순사상을 해석하는 하나의 시도로 예술적 소재를 위주로 한 연구라고 볼 수 있지만 대순사상을 전통 미학의 관점으로 다룬 연구로 보기는 어렵다.

본 연구는 대순진리회의 신앙을 감각과 감정, 아름다움으로 성찰하는 전통 미학 혹은 ‘신학적 미학’7)의 방법으로 접근해보고자 한다. Ⅱ장에서는 『전경』을 근거로 대순사상에 드러나는 미 개념을 살펴볼 것이다. 이어서 Ⅲ장에서는 미 개념에 대한 가치를 분석하고 종합하여 ‘천지공사, 상생, 치유’를 위주로 대순사상의 미학적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 연구는 대순사상과 미학을 연관시켜 분석하는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감성의 대상’을 밝힘으로써 진ㆍ선ㆍ미의 이상이 합치된 통합적 가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Ⅱ. 대순사상의 미 개념

‘미(美)의 사전적 의미는 아름다움이다. 철학에서는 감성과 이성이 조화와 통일에 의하여 순수한 감동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8) 또한 ‘아름답다’라는 것은 빛깔이나 소리, 목소리, 모양 따위가 마음에 좋은 느낌을 자아낼 만큼 ‘곱다, 예쁘다’란 의미이다.9) 한자에서 미의 자해(字解)는 미려함, 옮음, 착함, 훌륭함, 좋음, 아름다움, 잘하다 등 폭넓은 뜻을 나타낸다.10) 미의 범위는 이렇게 진과 선의 구분 없이 인간의 행위에 연관되어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로부터 정립된 미 개념은 규칙과 질서를 의미하는 노모스(nomos: law, order), 균제와 비례, 조화를 의미하는 시메트리아(symmetria: symmetry)와 하모니아(harmonia: harmony), 완전성(perfectio)등의 다양한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러한 ‘미’만이 관조나 감상의 유일한 대상이라는 전통적 관점이 쇠퇴하고 근대 이후 숭고, 우아, 비극, 희극, 심지어 추(醜)까지 감상의 대상으로서 미의 범주가 확대되었을 때 그 모든 가치를 통칭하는 용어가 ‘미적인 것(aesthetic)’이다.11) 즉 미적 가치를 나타내는 미의 유형들이 미적 범주이다. 이를 『전경』을 중심으로 신성(神性)과 도리(道理), 일심(一心), 관계(關係)에 나타난 대순사상의 미적 시선을 각각 숭고미와 균제미, 절제미, 조화미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1. 신성(神性)과 숭고미

‘신성’은 신의 성품 또는 신의 속성을 일컫는 말이다. 종교에서 신성은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이자 완전한 존재로서 인격적 혹은 비인격적인 신의 성품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다. ‘오토’12)는 신성을 ‘성스러운 것(Numinose)’으로 표현하였다. 성스러운 신성이 『전경』에는 어떤 아름다움으로 표현되는지 살펴보자.

상제께서 구천에 계시자 신성ㆍ불ㆍ보살 등이 상제가 아니면 혼란에 빠진 천지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호소하므로 서양(西洋) 대법국 천계탑에 내려오셔서 삼계를 둘러보고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동토에 그쳐 모악산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三十년을 지내시면서 최수운에게 천명과 신교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셨다가 갑자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년에 스스로 세상에 내리기로 정하셨도다.13)

위 글에서 구천은 천상계의 가장 높은 위(位)를 의미하는 가장 성스러운 공간을 상징한다. 그러한 구천에 계신 상제에게 신성(神聖), 불(佛), 보살(菩薩) 등이 상제가 아니면 천지를 바로 잡을 수 없다고 호소하고 있는 모습에서 상제가 인간뿐만 아니라 원시의 모든 신성, 불, 보살의 능력을 초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혼란에 빠진 천지를 바로잡는 것은 곧 아름다움의 회복이며 ‘미 그 자체’14)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상제 스스로 인세에 강세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제께서 탄강하실 때에 유달리 밝아지는 산실(産室)에 하늘로부터 두 선녀가 내려와서 아기 상제를 모시니 방 안은 이상한 향기로 가득 차고 밝은 기운이 온 집을 둘러싸고 하늘에 뻗쳐 있었도다.15)

상제의 광구천하는 미리 ‘예시’16)되었으며, ‘열석 달 만에 탄강’17)하여 성신(聖身)임을 보여준다. 신은 빛 자체이며 최고의 광채이다.18) 위의 『전경』 묘사에서 보면, 천상계에서 내려온 선녀가 상제를 모시는 방 안은 묘한 향기와 빛으로 가득 차고 그 빛은 하늘까지 닿아 천상의 신성한 존재가 지상에 내려왔음을 나타내고 있다. 상제의 인세강세는 인간이 신을 인식할 수 있도록 신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거룩한 행위이다. 그 거룩함은 천지의 구원을 위해 고난과 고통을 스스로 짊어지고 ‘대속’19)하는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상제가 “이제 온 누리가 멸망하게 되었는데 모두 구출하기 어려우니 어찌 원통하지 않으리오.”20)라고 하여 크게 슬퍼하는 모습에서 상제의 구원 의지와 사랑의 충만함을 알 수 있다. “나는 동역객 서역객 천지 무가객(東亦客西亦客天地無家客)”21)이란 말에서는 상제의 존재와 ‘섭리’22)가 천지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無所不在]을 보여준다. 다음 내용을 살펴보자.

… 공우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번개를 부르시며 또 때로는 꾸짖어 물리치기도 하시니 천지조화를 마음대로 하시는 상제시라, 어떤 일이 있어도 이분을 좇을 것이라고 마음에 굳게 다짐하였더니 어느 날 공우에게 말씀하시기를 「만날 사람 만났으니라는 가사를 아느냐」 하시고 「이제부터 네가 때마다 하는 그 식고(食告)를 나에게 돌리라」 하시니 공우가 감탄하여 여쭈기를 「평생의 소원이라 깨달았나이다.」 원래 공우는 동학신도들의 식고와는 달리 「하느님 뵈어지소서」라는 발원의 식고를 하였는데 이제 하시는 말씀이 남의 심경을 통찰하심이며 조화를 임의로 행하심을 볼 때 하느님의 강림이시라고 상제를 지성으로 받들기를 결심하였도다.23)

상제는 때로는 태양을 멈추기도 하고 신명에게 치도령(治道令)을 내리고 구름과 번개, 우레 등 풍운조화를 자유자재로 하며, 하늘로부터 내려온 수십의 천상벽악사자(天上霹惡使者)에게 배례를 받는 모습, 경학에게는 천상에 올라 상제를 뵙게 하는 등, 당신이 절대적 권능을 지녔음을 종도들에게 보여준다.24) 또한 상제는 천지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25) 개벽공사에 늘 종도들을 참관케 하여 천지에 확증하고 뇌성과 지진으로 표명하는 것을 직접 보고 듣게 하여 마음에 새겨두게 하였다.26) 이는 단지 최고신의 위엄만을 보여주고자 함이 아닌 ‘강증산’이 강세한 최고신의 화현(化現)임을 알리고, 지상에서 행한 대역사가 천지의 대순임을 선포하는 뜻이 담겨있다고 본다. 여기서 인간의 몸을 지닌 상제가 보여주는 이적(異蹟) 앞에 종도들이 ‘감복하고, 때로는 두려워하고, 크게 놀라 정신을 겨우 차리는 모습’27)은 신적 존재 앞에 선 인간의 두려움과 설렘의 경외감, 감정적 고양, 무아경 등의 강렬한 쾌감을 동반하는 미적 체험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미적 체험에서 오는 종교적 쾌감을 ‘숭고미’28)라 할 수 있다. 당시의 종도들은 신성 체험이라는 극치의 심미적 체험 이후 강세하신 강증산이 상제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29)

인간이 가늠할 수 없는 신의 이러한 능력을 오토는 ‘성스러움’으로 표현하였다. 그는 성스러움이란 ‘피조물적 감정’30)으로 두려운 신비이자 한편으로는 끌어당기며 매혹하는 어떤 것이라 말한다. 인간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어떤 것을 목도할 때 신성을 느낀다. 지상선경 건설의 여정에서 드러난 상제의 거룩한 신성에서 발현되는 숭고함은 신비롭지만 두렵고 압도적이면서 매혹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고양시키며 행복한 마음을 자아낸다. 인간의 신성체험은 “자아의 실존적 지평을 초월하여 세계전체와 만나는 미적 체험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31)

2. 도리(道理)와 균제미

도(道)는 동아시아 종교사상에서 비인격적인 궁극적 실재를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인간이나 사물 등 모든 만물에 적용되는 도리(道理)나 법칙, 규범으로 폭 넓은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비인격적 질서를 화이트헤드는 동아시아적 신(神)개념이라 말한다.32) 유가미학에서 도란 미의 규율, 미의 근원, 미의 본체. 미의 표현 등을 포함한다.33) 도가에서 도는 ‘황홀’34)하지만 황홀한 가운데 형상이 있고 실체가 존재한다.35) 왕필은 노자의 도를 ‘형(形)’도 없고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도’가, 궁극적으로 형, 냄새가 있는 실체를 통하여 표현된다.’고 해석하며 유한을 통한 무한의 인식이라 말한다.36) 플로티노스는 미의 원천이 정신에 있으나 물질이 아름다운 것은 물질 안에 깃든 정신이 드러나기 때문이라 말한다. 즉 우리가 감각을 통해 접하는 현상세계는, 감각세계를 통해 현상세계 이면에 감춰진 본체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감각을 통해 도리에 접근할 수 있으며 인도(人道)를 통해 천도(天道)를 알 수 있다. 다음 『전경』 구절을 살펴보자.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는 동안에 무엇이 즐거운가. 옷을 입고, 음식을 먹는 것 등이다. 옷을 입고 음식을 먹고 나면 그 다음에 ‘색(色)’이 있다. 그러므로 의ㆍ식ㆍ색의 도리(道)에 이르러보면 각기 천지의 기운을 받은 것이다. 세상을 현혹하고 사람을 속이는 자, 사람을 속여 물건을 취하는 자 또한 천지의 기운을 받은 것이다.37)

위 글에서 우선 ‘색(色)’은 빛, 광택, 용모, 여색, 채색 등의 뜻을 갖는다.38) 먼저 한자적 의미로 보면 색은 빛이다. 빛은 수많은 문명권에서 신(神)과 동일시된다.39) 또, 불교에서는 인간의 몸처럼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물질적 존재를 색(色)이라 한다.40) 위 『전경』 구절에서의 색은 인간의 감각에 기반한 자연스런 욕구를 표현한 것으로 의ㆍ식과 함께 물질적인 욕망과 연관된 폭 넓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즉 의식색지도(衣食色之道)는 인간의 감각과 감정의 세계에 대한 전반적인 욕구이자 즐거움을 나타내고 있다고 본다. 그러기에 천지의 기(氣)를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즐거움[滋味]에 대한 욕구는 행복을 지향하는 인간의 본성이다. 순자는 인간의 욕망을 천부적인 것이라 하여 피할 수 없는 본성으로 긍정한다.41) 따라서 순자는 감정과 의식주까지도 예(禮), 즉 도에 맞아야 한다고 말한다.42) 여기서 도에 맞아야 한다는 것은 감정의 조절을 의미한다. 따라서 의ㆍ식ㆍ색으로 표현된 감각과 감정에서 발현되는 욕망은 ‘조절’을 통해 본체의 세계인 도리(道)에 접근할 수 있다.

『주역』에 “한번 음하고 한번 양하는 것을 도”43)라고 하는 것이나 『도덕경』의 “천도는 남은 것을 덜어내어 부족한 것에 보탠다.”44)라는 것은 도의 본질인 균형, 균제, 비례, 조화 등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45) 조민환은 이와 같은 동양미학의 특징이 ‘도의 생명정신을 인간의 감정 표출에 적용한 것’이라 하였다.46) 도리의 상실은 천지만물의 상도를 어겨지게 하므로 도리로써 욕망을 조절하면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도 없이’47) ‘균제’48)를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균제는 주자(朱子)가 ‘상황을 저울질하여 중도(中道)를 얻는다면 이것이 바로 예(禮)이다.’49)라 하여 예를 권도(權道)라고 한 말에도 잘 나타난다. 균제미는 상황에 알맞음[時中]이라는 중용(moderation)의 미를 의미한다.50) 『전경』에서 상제는 ‘예로 움직여 예에 머무는 것을 일러 도리라 하고, 무례에 머무는 것을 일러 도리가 아니라 하였다.’51) 또한 ‘어겨진 건곤의 질서를 예법으로 다시 세워’52) 바로잡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신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으로 미가 아니다. 우주자연의 아름다운 질서 원리인 균제가 인간에게 작용하면 예로 드러나므로 균제는 인간이 예에 머물 수 있게 하는 심미규범으로 도리에 내재된 미적 가치로 볼 수 있다.53)

3. 일심(一心)과 절제미

사람의 행동기능을 주관하는 것은 마음이라고 하였다.54) 순자는 마음이 인지능력을 가지고 육체를 주재하며 오궁(五宮, 天宮)을 다스리기 때문에 천군(天君)이라 표현한다.55) 마음은 사유기관이므로 감각재료에 대하여 분석과 변별을 진행하고 개념과 판단을 형성하는 이성 인식을 형성하려면 마음이 감성작용에 의지해야만 한다.56) 이것이 마음의 심미적 주재성이다. 순자는 마음이 인식과 판단의 주체이나 감성작용[氣]에 영향을 받아 “마음이 두 갈래로 갈라지면 의혹이 생긴다. 천하에는 두 가지 도가 없으며 성인은 두 가지 마음이 없다.”57)라 하여 마음이 두 갈래로 갈라지면 감각기관도 잃고 병이 발생하여 만물의 아름다움을 대하여도 심미적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전경』에 나타나는 마음의 심미적 특성은 일심이라 할 수 있다. 일심은 한마음, 같은 마음[同心], 한결같은 마음, 전일(專一)한 마음, 일념(一念)을 뜻한다.58) 불교적인 의미에서의 일심은 오직 한 가지 생각에만 전념하는 것으로 둘로 분열됨이 없는[無二] 중도와 인간 마음의 본성[性]이라는 양 차원으로 구성되기도 한다.59) 한편 대순사상에서의 일심은 이러한 불교적인 깨달음의 의미라기보다는 신앙적 전일성(全一性)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 내용을 살펴보자.

이제 범사에 성공이 없음은 한마음을 가진 자가 없는 까닭이라. 한마음만을 가지면 안 되는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무슨 일을 대하든지 한마음을 갖지 못한 것을 한할 것이로다. 안 되리라는 생각을 품지 말라.60)

위 글에서 표현된 한마음은 『대순진리회요람』에서 믿음[信]이라 말하고 있다.61) 한마음을 가지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한다. 마음은 만물을 주재한다는 점에서는 심체(心體)라고 할 수 있다. ‘선한 것은 스승으로 삼고 악한 것은 고쳐 쓴다.’62)라는 『전경』 내용은 선과 악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마음의 주재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한 몸으로 두 마음을 품은 자는 그 몸이 찢어지리니 주의하라.’63)라는 말과 ‘나를 믿고 마음을 정직히 하는 자는 하늘도 두려워하느니라.’64)라는 내용에서, 무절제한 마음의 욕망으로 두 마음을 품은 자는 몸이 찢어지는 고통을 받고, 감정을 절제하여 마음을 정직히 하는 자는 범사에 성공하며 하늘도 두려워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절제는 두 마음을 한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악은 제어하고 선은 증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즉 ‘절제’는 무분별한 마음과 이성적 마음의 갈등관계를 분별하여 일심을 갖게 하는 심미기능이라 할 수 있다.

‘일심’65)은 곧 상제의 계시를 따르는 마음, 상제를 믿는 한결같은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상제를 믿는다는 것은[一心] 상제의 뜻에 따라 천지 공정(天地公庭)에 참여하여 상제의 대순진리의 목적에 도달하고자 하는 일념이라고 본다. 발타사르는 신의 아름다움을 믿고 그 아름다움에 참여하는 인간의 모든 수고를 하나님의 본질에 참여하는 것으로 여겼다.66) 상제의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는 ‘마음의 감각’67)인 일심은 섀프츠베리의 무관심적인(disinterested) 심적 상태와 일맥상통한다. 그는 ‘무관심성’68)을 이기적인 욕망이나 사적인 관심을 지양하고 인간의 진정한 본성과 자연의 가장 깊고 생동하는 진실의 차원으로 나아가는 필수적인 조건으로 ‘신적인 아름다움’은 오직 무관심적인 심적 상태에서만 온전히 드러날 수 있다고 말한다.69)

이상에서 ‘절제미’는 일심의 심미적 기능이며 일심은 신을 인식할 수 있는 무관심적인 미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신을 감각할 수 있는 일심은 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믿음이자 신의 마음을 회복하여 ‘하느님의 아름다움에로 나아가는 것’70)이라고 할 수 있다.

4. 관계(關係)와 조화미

관계는 둘 이상의 사람이나 사물, 현상 등이 서로 ‘관련이 있다’71)라는 말로 대립이 아닌 상호 다른 것을 가지고 있는 상대성의 관계를 의미한다. 대순사상에서 우주는 천(天)ㆍ지(地)ㆍ인(人)으로 이루어진 ‘삼계’로 표현된다. 천ㆍ지ㆍ인은 유기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관계성을 가진 실체이다. 이러한 천ㆍ지ㆍ인은 또한 상호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피타고라스학파의 필로라우스는 “조화는 뒤섞인 많은 요소들의 통일이며 서로 맞지 않는 요소들을 일치시키는 것이다”72)라 하였다. 다음 내용을 살펴보겠다.

삼계가 개벽되지 아니함은 선천에서 상극이 인간지사를 지배하였으므로 원한이 세상에 쌓이고 따라서 천ㆍ지ㆍ인(天地人) 삼계가 서로 통하지 못하여 이 세상에 참혹한 재화가 생겼나니라.73)

위 인용문에서 인간과 사물은 상극에 지배를 받고 그로 인해 쌓인 원한은 다시 삼계[天地人]에 영향을 미치는 순환적 관계를 나타낸다. 이러한 순환적 관계는 ‘인류의 교만은 신도의 권위를 떨어뜨리고’74), 다시 ‘신도로부터 원을 풀면 인사가 저절로 이룩된다.’는 인ㆍ신(人神)관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다음 내용을 살펴보자.

그리고 이어 말씀하시기를 「문왕은 유리(羑里)에서 三百八十四효를 지었고 태공(太公)은 위수(渭水)에서 三千六百개의 낚시를 버렸는데 문왕의 도술은 먼저 나타나고 태공의 도술은 이때에 나오나니라」 하시고 「천지 무일월 공각(天地無日月空殼) 일월 무지인 허영(日月無知人虛影)」이라 하셨도다.75)

위 글에서 보면 천지는 일월을 필요로 하고, 일월은 또한 인간을 필요로 한다. 이처럼 천지와 일월 그리고 인간과 만물은 상호 연관되어 있으며 관계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한 사람의 품은 원한으로 능히 천지의 기운이 막힐 수 있느니라.”76)라는 말에서 한 사람의 마음 상태가 천지에 영향을 끼치므로 천지의 모든 존재는 하나로 연결된 관계로 일체(一體)의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 구절은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를 나타낸다.

원하는 바는 사람의 도리이니, 임금이 되고자 하나 임금이 되지 못하고 부모가 되고자 하나 부모가 되지 못하고, 스승이 되고자 하나 스승이 될 수 없다. 임금이 있으나 신하가 없으면 그 임금이 어디에 설수 있겠으며 부모가 있으나 자식이 없으면 그 부모가 어디에 서며 스승이 있으나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스승이 어디에 서리요. 아주 큰 곳에서부터 아주 작은 데에 이르기까지 천지의 귀신이 드리워 살핀다.77)

위 글은 군신(君臣)과 부자(父子), 사제(師弟)지간의 관계를 통해 인사(人事)관계의 도리를 나타내고 있다. 그 도리는 상대가 존재함으로 자기의 존재가 빛을 발하므로 서로의 존재의 고마움을 알고 보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대순사상에서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천지와 인간, 신과 인간 등 모든 우주만물의 관계가 서로의 은혜에 보답해야 하는 보은(報恩)의 관계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정이(程頤)는 ‘도에는 대립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음이 있으면 양이 있고, 선이 있으면 악이 있고, 옳은 것이 있으면 틀린 것이 있다. 홀로 있는 것도 없고 셋으로 있는 것도 없다.’78)라 하여 만물은 홀로도 셋도 아닌 짝으로 대립하면서 생성하고 변화하는 보편적인 이치가 우주의 법칙이라 말한다. 음양으로 관계하는 천지만물의 이치를 알면 도를 얻어 자신도 모르게 손이 춤추고 발이 춤추는 즐거움을 얻는다 한다.79) 우주만물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개방적 특성과 타자와의 개방적 상호관계성을 유지하며 복합적 관계망을 통해 생성하고 변화한다.80) 헤라클레이토스는 우주는 ‘대립하는 것들의 조화’로 이루어지며 이것이 ‘미’라고 생각했다. 변증법의 창시자인 그는 모순과 대립의 문제를 미의 범부에 적용시켜 조화가 미를 성립시키는 근거라고 보았다.81)

어떤 존재든 다른 존재와 연관되지 않고서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서로 그 관계의 영역에서 서로의 존재에 대한 상호작용의 가치를 알고 타자와 상호주체적 관계를 맺을 때 관계의 회복은 이루어진다. 아름다움은 타자와 조화로운 관계의 회복으로부터 가능하다. 여기에 관계의 미학적 가치가 담겨 있다 하겠다.82)

지금까지 대순사상의 미 개념을 신성과 도리, 일심 그리고 관계에 담긴 미 개념의 의미로 살펴보았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미적 요소들이 대순사상의 미학적 특징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고찰해 보겠다.

Ⅲ. 대순사상의 미학적 특징

미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인간 내면의 감성과 감각, 영혼과 정신적인 부분을 모두 포괄한다. 앞장에서 신성과 도리, 일심, 그리고 관계에 담겨있는 미 개념을 숭고미, 균제미, 절제미, 조화미로 살펴보았다. 이를 대순사상의 핵심 키워드인 천지공사와 상생, 치유에 접목하여 각각 그 미학적 특징을 고찰해보겠다.

1. 천지공사(天地公事)의 미학

대순사상에서 천지공사는 우주를 다시 세우는 개벽공사로서 후천선경을 이끄는 상제의 역사이며 광구천하를 위한 상제의 설계이다. 천계와 지계, 인계를 주재하며 시행하는 천지공사는 세계의 질서[禮] 회복과 선경(仙境)건설을 위한 최고신 상제의 미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 시작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그 문명은 물질에 치우쳐서 도리어 인류의 교만을 조장하고 마침내 천리를 흔들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데서 모든 죄악을 끊임없이 저질러 신도의 권위를 떨어뜨렸으므로 천도와 인사의 상도가 어겨지고 삼계가 혼란하여 도의 근원이 끊어지게 되니 원시의 모든 신성과 불과 보살이 회집하여 인류와 신명계의 이 겁액을 구천에 하소연하므로 내가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모악산금산사(母岳山金山寺) 삼층전(三層殿) 미륵금불(彌勒金佛)에 이르러 三十년을 지내다가 최 제우(崔濟愚)에게 제세대도(濟世大道)를 계시하였으되 제우가 능히 유교의 전헌을 넘어 대도의 참뜻을 밝히지 못하므로 갑자(甲子)년에 드디어 천명과 신교(神敎)를 거두고 신미(辛未)년에 강세하였노라」고 말씀하셨도다.83)

윗글에서 보면 하늘과 땅, 인간, 신의 모든 관계에 적용되는 도리(道理)의 상실로 인한 신도의 추락은 천지신명들의 하소연으로 이어지고 이윽고 상제는 천계탑에 내려와 ‘삼계’84)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한다. 그러다 이 동토에 그쳐 금산사 미륵금상에 30년을 머물며 대순을 지속한다. 상제는 당시에 구도(求道)하고 있는 최제우에게 먼저 그 뜻을 전하였으나 그가 상제의 진리를 제대로 펼치지 못하자 결국 최고신의 신성(神性)으로 천지를 바로잡기 위해 스스로 인세강세를 결정한다.85)

상제께서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먼저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니라. 이것이 곧 삼계공사(三界公事)이니라」고 김형렬에게 말씀하시고 그 중의 명부공사(冥府公事)의 일부를 착수하셨도다.86)

상제는 인세 강세 이후에도 천하를 ‘주유’87)하며 인간의 몸으로 경험되는 세상과 인간의 마음으로 감각되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살펴 인류가 진멸에 처한 원인을 파악한다. 그 원인이 선천의 지배 원리인 상극으로 진단한 상제는 인간을 둘러싼 천지 개조작업인 천계의 ‘명부 공사’88)를 시작으로 ‘하늘도 뜯어 고치고 땅도 뜯어고쳐 물샐틈없는 도수’89)를 짠다. 여기서 말하는 물샐틈없는 도수는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한 이후에 인사(人事)로 완성이 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천지공사는 9년간에 걸쳐 다음과 같이 완성된다.

다시 말씀을 계속하시기를 「九년간 행하여 온 개벽공사를 천지에 확증하리라. 그러므로 너희들이 참관하고 확증을 마음에 굳게 새겨 두라. 천지는 말이 없으니 뇌성과 지진으로 표명하리라.」 상제께서 모든 종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별안간 천둥 치고 땅이 크게 흔들렸도다.90)

위 글에서 상제는 9년 동안 행한 개벽공사가 최고신 상제가 지상에 강림하여 세운 아름다운 대 역사라는 것을 종도들이 보는 앞에서 천지에 확증하여 인식시킨다. 천지공사를 통해 상제의 숭고한 신성이 비로소 드러나며 상제 본래의 사명을 다하였다는 점에서 상제의 본성이 실현된 것이다. 신이 인간의 몸으로 화신(化身)하여 자기를 드러냄으로써 인간은 신을 알아볼 수 있었고 그 존재를 ‘인식’하고 느끼는 인간의 체험은 충격과 황홀의 ‘거룩한 체험(Numinose)’91)으로 미적체험의 동인이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름다움이란 온전함 (integritas), 완전함(perfectio), 완성(complexio)의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92) 『전경』에 천지공사 이후에 펼쳐지는 후천에는 조화와 지혜로 상서가 무르녹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완전한 세상이 되어 인간의 영원한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구천이란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먼 곳을 상징한 표상(表象)으로 성별(聖別)된 곳이다. 그 거룩한 곳에서 인간들이 역사(歷史)를 꾸며가는 곳에로 상제가 임재(臨齋)하려고 강세”93)한 것이다.

이렇듯 ‘천지공사’에는 우주의 주재자가 인간의 몸으로 인세에 강세하여 이 땅에 머물렀다는, 살아있는 하느님의 역사가 담겨있다. 즉 천지공사는 상제가 지상에서 역사적으로 활동한 근거이자 대순진리회의 신학적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신이 인류를 구원하고자 인간 세상에서 활동한 ‘수고’가 담긴 천지공사에서 신성의 아름다운 가치와 완전한 세상을 지향하는 도리의 가치가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천지공사는 후천개벽의 이상을 담고 있는 신성의 숭고미와 질서의 회복이라는 균제미의 미학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2. 상생(相生)의 미학

상생은 천하창생을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 평화의 원리이자 증산이 상제로서 계시하고자 하는 아름다운 진리이다. 상생(相生)은 오행설(五行說)에 근거하면 수(水)가 목(木)을, 목이 화(火)를, 화가 토(土)를, 토가 금(金)을, 금이 수(水)를 낳고(生) 돕는 관계이다. 노자 『도덕경』에도 ‘유무상생(有無相生)94)’이라 하여 모든 관계는 상호 관계이지만 서로 상성(相成)하는 관계를 말하고 있다. “상생은 모든 자연사물의 상호 관계를 전제한 상대적 양면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 관계의 논리는 대대성에 입각하여 서로 반대되지만 적극적으로 서로를 필요로 하고, 나아가 근원적 일원성에 의해 합치되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95) 대순사상에서는 이러한 ‘상생’이 하나의 중요한 이념이 되고 있으며, 상생은 사회성의 심미적인 표현으로 미학적으로도 의미 있는 용어라 본다. 『전경』에서 설명하는 상생의 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상제께서 오셔서 천지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에 쌓인 원한을 풀고 상생의 도를 세워 후천선경을 열어 놓으시고 신도를 풀어 조화하여 도수를 굳건히 정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신 후에 인사를 조화하니 만민이 상제를 하느님으로 추앙하는 바가 되었도다.96)

윗글에서 상생의 도는 신도(神道)를 조화하고 인사(人事)를 조화하는 도이다. 상극의 지배로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 세상이 참혹하게 되고, 천하가 웅패가 끼친 괴로움을 받았을 때, 만고에 원한이 쌓이고, 신명과 창생이 비겁에 쌓일 때’97), 상생은 그 ‘모든 원한을 풀고, 화민 정세하여, 세계의 민생을 건지고, 억조창생을 살리는, 대도(大道)의 진리’98)이며 후천 선경을 여는 도이다. 원한으로 점철된 상극적 세상에서 살고 있는 인간에게 낙원이라는 황홀한 선경 세상으로 인도하는 상생은 우리에게 강렬한 매혹으로 다가온다. 상생의 매혹성은 우리의 미적 욕망을 자극한다. 여기서의 욕망은 개인을 위한 이기적 욕망이 아니다. 우리를 자극하는 욕망은 선(善)의 실천이다. 다음 인용문을 살펴보자.

우리의 일은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이니라. 남이 잘 되고 남은 것만 차지하여도 되나니 전 명숙이 거사할 때에 상놈을 양반으로 만들고 천인(賤人)을 귀하게 만들어 주려는 마음을 두었으므로 죽어서 잘 되어 조선 명부가 되었느니라.99)

상생의 도는 남을 잘 되게 하는 도이다. 위 내용에서 전명숙은 타인을 잘 되게 하기 위한 마음 하나로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으므로 죽어서 명부를 담당하는 중책을 맡게 되어 잘 되었다고 한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고결한 행동에 우리는 경탄하며 깊은 감동을 받고, 그것을 선한 아름다움으로 여긴다. 다음 『전경』 내용은 타인을 위한 선한 행동을 호생(好生)의 덕으로 표현하고 있다. 호생의 덕은 ‘살아 있는 것을 사랑하는 덕, 곧 인의(仁義)의 마음으로써 모든 생명(生命)을 아끼는 미덕(美德)’100)이다.

제생 의세(濟生醫世)는 성인의 도요 재민 혁세(災民革世)는 웅패의 술이라. 벌써 천하가 웅패가 끼친 괴로움을 받은 지 오래되었도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상생(相生)의 도로써 화민 정세하리라. 너는 이제부터 마음을 바로 잡으라. 대인을 공부하는 자는 항상 호생의 덕을 쌓아야 하느니라. 어찌 억조 창생을 죽이고 살기를 바라는 것이 합당하리오.101)

우리는 타인의 모범적인 좋은 일은 본받고자 한다. 상생은 이렇듯 타인을 잘 되게 하고자 하는 심미적 활동으로 선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남을 잘 말하면 덕이 되어 잘 되고 그 남은 덕이 밀려서 점점 큰 복이 되어 내 몸에 이르나 남을 헐뜯는 말은 그에게 해가 되고 남은 해가 밀려서 점점 큰 화가 되어 내 몸에 이르나니라.”102)고 한 말에는 타인을 위하면 내가 잘되고 타인을 가해하면 남은 물론 나에게도 화가 미친다는 인간 상호간의 의존적인 사회성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 없으며 좋은 관계를 맺고 소통될 때 진정한 행복감을 느낀다. 상생은 타자와 좋은 관계를 맺는 사회성을 심미적으로 나타내는 용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상생은 언덕(言德)을 쌓는 것에서 나아가 ‘악을 선으로 갚으며’103) ‘가해자를 은인과 같이 생각’104)하는 보은(報恩)의 마음을 갖는 것을 실천방법으로 제시한다.

한편 18세기 철학자 울스턴크래프트는 관조적, 무관심적 미에 저항하고 현실 참여적이고 실제적으로 우리 삶에 깊이 연동되어 있는 실천적인 미를 주장했다.105) 미가 삶의 문제와 인간의 행위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미 개념이 사회적 윤리문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을 잘 되게 하는 행위야말로 진정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인간을 인격적 아름다움으로 나아가게 하는 요인이며 아름다운 사회를 만든다. 이처럼 “개체 인격의 발전과 완성이 진정한 사회의 화해와 발전에 있어 극히 중요한 조건”106)이라 볼 수 있다.

상생으로 신도를 조화하여 원을 풀고 인사를 조화하여 보은하게 되면 ‘신명과 창생이 서로 상생하게 되어’107) 신인합일(神人合一)로 나아가게 한다. 일자(一者)와의 합일은 영적 환희라는 가장 고양된 심미적 쾌감으로,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궁극적 삶의 지향점이라 할 수 있다. 해원(解冤)상생과 보은(報恩)상생으로 신인이 합일하면 조화(調化)가 이루어진다. 조(調)는 화합(和合)을 말하며 화(化)는 하나로 되는 것[妙合]을 말한다. 화합의 화(和)는 상하좌우가 아름답게 조화(調和)를 이루는 것이고 합(合)은 모든 것을 한데 모아 어울리게 하는 것이다.108) 따라서 상생은 서로가 아름답게 조화(調和)를 이루는 관계가 한데 어울려 하나로 되는 것[化]이라 할 수 있다. 화(和)에서 화(化)로 나아가는 상생의 미학적 구조는 관계의 조화와 통일에 있다고 하겠다.

3. 치유(治癒)의 미학

치유란 본질로 되돌아가 인간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대순사상에서 치유란 인간뿐만이 아니라 천ㆍ지ㆍ인(天地人)의 전우주적 치유를 말한다. 인간을 둘러싼 모든 환경요소가 훼손되어 본래의 아름다운 가치를 잃는다면 인간도 결코 완전한 치유가 되지 못하고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천하개병(天下皆病)은 ‘천하의 형세가 모두 종기를 앓음’109)과 같이 상제의 세계에 대한 진단이자 인세강세 이유이다. 상제는 도의 근원이 끊어진 무도(無道)로 인해 크고 작은 모든 병이 발생하여 천하가 모두 병들게 되었다고 한다.110) 천하개병의 원인인 무도병은 관계의 불통에서 기인한 감정에 맺힌 원한이라고 할 수 있다. 천지만물간의 지켜야할 상도의 어긋남, 군신과 부자와 사제지간의 관계에서 도리의 상실, 타인과의 관계에서 감정에 쌓인 원과 한으로 급기야 자던 사람은 누운 자리에서, 앉은 자는 그 자리에서, 길을 가던 자는 노상에서, 각기 일어나지도 못하고 옮기지도 못하고 혹은 엎어져 죽는 급살병과 괴병의 병겁이 몸 돌이킬 여가 없이 홍수가 밀려오듯 온 세상을 뒤덮어 참상을 겪게 된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재리에만 눈이 어두워 파멸의 길을 가고 있는 인류를 증산상제는 개탄하며 치유의 방안을 ‘의통’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음 내용을 살펴보자.

선천개벽 이후부터 수한(水旱)과 난리의 겁재가 번갈아 끊임없이 이 세상을 진탕하여 왔으나 아직 병겁은 크게 없었나니 앞으로는 병겁이 온 세상을 뒤덮어 누리에게 참상을 입히되 거기에서 구해낼 방책이 없으리니 모든 기이한 법과 진귀한 약품을 중히 여기지 말고 의통(醫統)을 잘 알아두라.111)

위의 글에서 상제는 천하개병으로 진멸지경에 처한 인류에게 의통이라는 큰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인간 사물의 자발적 원에 의해 발생한 병겁은 상제의 권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특히 “모든 기이한 법과 진귀한 약품을 중히 여기지 말고 의통을 잘 알아 두라.”는 말에서 병겁은 반드시 인간이 스스로 극복해내야 하는 인간의 몫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의통의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대병(大病)의 약(藥)은 안심(安心)ㆍ안신(安身)이다.112) 대병의 약으로 안심ㆍ안신이 제시되었다는 것은 무도병이 마음에서 기인하는 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경』에 ‘병은 자기에게서 일어난다.(病自己而發)’113)고 하였다. 이는 마음이 몸의 주(主)로서 제병제악(諸病諸惡)을 낚아 들이므로 마음의 상태에서 나오는 모든 언어 행동은 육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장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순자는 마음이 감성작용[氣]에 영향을 받아 두 갈래로 갈라질 때 감각기관도 잃고 병이 발생하여 심미적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였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욕구는 인간의 본성으로 외부의 자극에 감응하여 욕망을 드러낸다. 『전경』에도 ‘인간은 욕망을 채우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 큰 병에 걸린다’114)라고 하였듯이 욕망이 실현되면 좋아하고 좌절되면 분통이 터질 정도로 아픔을 느낀다. 인식과 판단의 주체인 마음이 절제되지 못하여 욕망이 실현되지 못하면 감정의 상처를 받게 되고 이로 인해 마음의 병은 비롯된다. 치유는 마음이 감성작용에 의지해 무분별하게 얽힌 감정을 푸는데서 시작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맺힌 감정을 풀면 인륜이 바로 서게 되는 유도(有道)로 이어져 대병이 저절로 낫게 되는 물약자효(勿藥自效)가 된다. 또한 『전경』에 의하면 ‘말은 마음의 외침이고 행동은 마음의 자취’115)라 하여 치유를 위해서는 마음의 변별력을 회복하고 언덕을 잘 가져 남에게 척을 짓지 않는 행동이 요구된다. 감정에 얽힌 원의 마디와 고가 풀리면[解冤] 타인의 고마움을 알게 되고, 그 은혜에 보답하면[報恩] 충ㆍ효ㆍ열의 인륜이 바로 서는 대인대의(大仁大義)가 실현되어 무병의 상태가 된다. 대인대의는 ‘마음의 덕(德)이요 사랑의 원리인 인(仁)과 마음의 법도(制)요 일의 마땅함인 의(義)’116)를 행하는 것으로 대순사상에서는 해원상생과 보은 상생으로 발현된다고 할 수 있다. 곧 증산이 말한 ‘잘 알아두라’는 의통이라 볼 수 있다. 다음 전경 내용은 의통이 실현된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후천에는 또 천하가 한 집안이 되어 위무와 형벌을 쓰지 않고도 조화로써 창생을 법리에 맞도록 다스리리라. 벼슬하는 자는 화권이 열려 분에 넘치는 법이 없고 백성은 원울과 탐음의 모든 번뇌가 없을 것이며 병들어 괴롭고 죽어 장사하는 것을 면하여 불로불사하며 빈부의 차별이 없고 마음대로 왕래하고 하늘이 낮아서 오르고 내리는 것이 뜻대로 되며 지혜가 밝아져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시방 세계에 통달하고 세상에 수ㆍ화ㆍ풍(水火風)의 삼재가 없어져서 상서가 무르녹는 지상선경으로 화하리라.117)

위 내용은 치유의 궁극적 가치인 의통이 실현된 이후에 펼쳐지는 지상선경을 보여주고 있다. 후천은 원울과 탐음, 번뇌, 병듦, 죽음, 차별과 수ㆍ화ㆍ풍의 재난 등이 모두 사라지고 인류의 불로장생을 이루는 지상낙원의 이상세계이다. 인간은 즐겁고 아름다운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죽음보다 깊은 고통과 헤어 나올 수 없는 절박한 정서적 실존 위기의 한계상황에 처한 인간은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갈망한다. 특히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불로장생은 인간의 가장 강렬하고 궁극적인 욕구일 것이다. 그러기에 상제는 인간의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고 살핀 희로애락의 감정으로 천하개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안심ㆍ안신을 대병의 약으로 제시하여 무병의 세상으로 인류를 인도하고자 하였다. 앞장에서 ‘절제’는 무분별한 마음을 분별하여 일심을 갖게 하는 심미기능이라 하였다. 따라서 인식과 판단의 주체로서 마음의 절제기능이 바로서면 올바른 분별과 판단으로 마음이 정직하게 된다. 『전경』에 ‘마음을 정직히 하는 자는 범사에 성공한다.’라 하였으니 마음의 절제로 악[無道]은 제거되고 절대 선[有道]은 회복되어 안심ㆍ안신을 이루게 된다.

대순사상의 치유에는 천하를 치유하기 위해 인세에 강세하여 인류를 무병의 선경세상으로 이끄는 상제의 신성한 숭고미와 인간의 욕망을 절제하여 안심ㆍ안신으로 나아가게 하는 마음의 절제미가 담겨있다 할 수 있다. 또한 의통을 얻는다는 것은 영화(榮華)와 복록(福祿)을 영원히 누리는 삶을 의미한다. 치유의 궁극적 가치인 의통은 이 모든 것을 실현해 주는 수도의 종착점이자 우리에게 아름다운 삶, 가치 있는 삶이라는 영적 쾌감을 주는 치유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Ⅳ. 결론

진리의 핵심가치에는 진(眞)도 있고 선(善)도 있지만 미(美)도 있다. 고대이래로 철학자들은 미의 범위를 진과 선의 구분 없이 인간의 행위에 연관되어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정신적인 것은 감각적인 것을 통해 드러나므로 미와 선을 하나로 보았다. 진리와 선함은 아름다운 것으로 인지될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본 연구는 진과 선의 가치가 미의 형태로 드러난다면 대순사상에서 진리는 어떻게 ‘미적인 것’으로 표출되는지를 미학적 관점에서 고찰해 보았다. 『전경』에서 살펴본 대순사상의 미 개념은 ‘신성과 도리, 일심, 관계’에 숭고와 균제, 절제, 조화미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 개념이 대순사상의 신학적 특징인 ‘천지공사와 상생, 치유’에 담겨져 대순사상의 미학적 특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미학의 시선으로 살펴본 대순사상의 미학적 특징은 진멸지경에 놓인 세상에서 창생을 구원하고자 우리 곁에 머물다간 상제의 ‘거룩한 수고’와 상생의 실천으로 치유를 이끌어 내는 미적 태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순사상의 미적 체험은 감정적, 지적, 영적 환희의 절정을 이루는 종교체험으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심미적 체험이라 할 수 있다.

Notes

“미학(자유인의 기술들에 관한 낮은 단계의 인식에 관한 학문, 아름답게 사유하는 기술, 유비적이성의 기술)은 감성적 인식에 관한 학문이다.” 바움가르텐, 『미학』(Aesthetica), 김동훈 옮김 (서울, 도서출판 마티, 2019), p.27.

르네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 원석영 옮김, (서울: 아카넷, 2014), pp.60-69.

심현섭, 『유가미학』 (파주: 한국학술정보, 2011), p.21.

J. 헤센, 『종교 철학의 체계적 이해』, 허재윤 옮김 (서울: 서광사, 1994), p.89.

폰 발타사르 (Hans Urs von Balthasar, 1905~1988) 스위스 카톨릭 신학자.

손호현, 『아름다움과 악 1』, (서울: 한들 출판사, 2009), p.60. 재인용.

“신학적 미학이론은 ‘하나님, 종교, 신학’이라는 대상을 ‘감각적 지식(감각, 상상력, 감정), 아름다움, 예술’과 관련하여 성찰한다.” 리차드 빌라데서, 손호현 옮김, 『신학적 미학』, (서울, 한국 신학연구소, 2007), p.42.

성낙양, 『동아새국어사전』 (서울: 두산동아, 2013), p. 891.

같은 책, p.1529.

민중서림편집국, 『한한대자전』 (파주: 민중서림, 2013), p.1796.

오종환, 「미적인 것(aesthetic)을 부정하는 입장」, 『미학의 문제와 방법』, 미학대계 제2권 (2019), p. 65.

루돌프 오토(Rudolf Otto, 1869~1937), 독일의 신학자이자 종교학자. 그는 그의 저서 『Das Heilige』(성스러움의 의미) 에서 신의 도덕적, 윤리적 속성과 다른 ‘거룩함’(the holy)을 신의 속성이라 말하며 이를 성스러운 것으로 설명한다. 그는 신을 경험하는 ‘거룩의 체험’을 ‘누미노제(Numinose)’라 명명하였다.

『전경』, 예시 1절.

토마스 아퀴나스의 관점은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의 미의 원천이며, 모든 사물의 존재는 하느님의 미로부터 도출된다고 하였다. 김율,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사상」, 『미학의 역사』, 미학대계 제1권 (2019), p.159. 토마스 아퀴나스는 모든 피조물의 미는 사물 안에 분유된 신적 미의 유사성일 뿐이며 모든 사물의 실재는 신적 미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보는 점에서 신학적 미학의 관점을 고수했다. 이주영, 『미학특강』 (서울: 미술문화, 2011), p.245.

『전경』, 행록 1장 10절.

같은 책, 예시 2절, 3절.

같은 책, 행록 1장 9절.

강윤희, 「토마스 아퀴나스의 예술론에 따른 미(美)의 개념」, 『누리와 말씀』 42 (2017), p.55.

『전경』, 제생 23절, “이 무렵에 괴질이 청주(淸州)와 나주(羅州)에 창궐하여 인심이 흉흉한지라. 상제께서 「남북으로 마주 터지니 장차 무수한 생명이 잔멸하리로다」고 말씀하시고 글을 써서 괴질신장에게 「호불범 제왕 장상지가 범차 무고 창생지가호(胡不犯帝王將相之家 犯此無辜蒼生之家乎)」라 칙령하시고 「내가 이것을 대속하리라」고 말씀하시니라. 상제께서 형렬에게 새 옷 다섯 벌을 급히 지어 오게 하시니라. 가져온 옷으로 상제께서 설사하시면서 다섯 번 갈아입고 「약한 자는 다 죽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도다. 이후부터 그 괴질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없어졌도다.”

같은 책, 행록 5장 24절.

같은 책, 행록 3장 37절.

하느님의 아름다운 ‘우주-만들기’(cosmosmaking)의 예술과정이 곧 섭리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본다. 손호현, 『아름다움과 악 3』 (서울: 한들 출판사, 2009), p.16.

『전경』, 교운 1장 25절.

같은 책, 권지 1장 27절, 권지 1장 9절, 12절. 예사 76절, 권지 2장 11절, 권지 1장 20절, 권지 2장 3절, 8절.

같은 책, 공사 1장 32절, “상제께서 「 … 이후에는 건곤의 위치를 바로잡아 예법을 다시 세우리라」고 박 공우에게 말씀하시니라.”

같은 책, 공사 3장 38절, “九년간 행하여 온 개벽공사를 천지에 확증하리라. 그러므로 너희들이 참관하고 확증을 마음에 굳게 새겨 두라. 천지는 말이 없으니 뇌성과 지진으로 표명하리라.”

같은 책, 권지 1장 6절, 2장 15절, 공사 2장 28절, 권지 1장 20절, 예시 9절, 권지 2장 16절, 1장 1절.

숭고(崇高)는 위대함에 대한 내면적 미의식과 연결된 미적 개념이다. 숭고의 어원은 높음이라는 의미에서 전이된 그리스어 ‘Hypsos’이다. 롱기누스는 숭고를 ‘탈아’의 개념으로 표현했다. 일상적 자아가 빠져나간 상태로 광기를 지칭하는 ‘탈아(ekstasis)’의 개념은 종교적 체험과 현상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종교에서의 ‘탈아’는 신관이 신탁을 받아내기 위한 전제조건을 의미했다. 안성찬, 「숭고의 미학-그 기원과 개념사 연구」 (서강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00), p.22. 단적으로 크고 압도하는 위력 앞에서 두려움이라는 감정의 좌절을 느낄 때 그것을 감당하고 있는 ‘초감성적 능력’이 발휘되면서 안도감을 주게 되는데 이때 느껴지는 불쾌의 감정은 쾌로, 공포는 안도로, 당혹은 매력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심적 태도가 숭고이다. 임마누엘 칸트, 김상현 옮김, 『판단력 비판』 (서울 :책 세상, 2019), pp.93-117, 참조. “숭고의 효과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은 경악으로 우리 영혼의 모든 움직임이 일시적으로 정지된 상태이며 우리 마음은 그 대상에 완전히 사로잡혀 그 대상에 대해 이성적으로 사고 할 수도 없다. 그보다 약한 효과는 경탄과 숭배, 존경이다.” 에드먼드 버크,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 미학원전시리즈 2, 김동훈 옮김 (서울: 도서출판 마티, 2019), p.99.

미의 고유한 성질은 우리가 그것을 인식했을 때, 특히 보았을 때, 욕구가 충족된다는 점에서 인식능력과 관계를 맺는다. 따라서 미는 욕구능력에 부합하는 대상을 넘어 인식능력에 대한 부합까지도 함께 개념지어진다. 레오 엘더스, 『토마스 아퀴나스의 형이상학』, 박승찬 옮김 (서울: 가톨릭출판사, 2003), p.227.

모든 피조물은 초월하는 자를 대할 때 자신의 ‘무(無)’속으로 함몰되고 사라져 버리는 피조물들이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 루돌프 오토, 『성스러움의 의미』, 길희성 옮김 (칠곡: 분도출판사, 1987), p.43.

모든 신명체험은 정서적 쾌감을 불러일으키며 자기의 실존적 지평을 잊을 만큼 정서적으로 강한 충격에 사로잡힌다. 하진숙, 「신명체험의 미적 특성에 관한 연구」, 『미학예술학연구』 40 (2014), pp.130-133.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종교란 무엇인가』, 문창옥 옮김 (경기: 사월의 책, 2009), p.81.

심현섭, 앞의 책, p.263.

노자ㆍ왕필, 『노자도덕경과 왕필의 주』, 김학목 옮김, (서울: 홍익출판사, 2014), p.113, “황홀하고 황홀하다는 말은 형체가 없고 매어있지 않은 것에 대한 찬탄이다.

『도덕경』, 21장, “道之爲物 惟恍惟惚 惚兮恍兮 其中有象 恍兮惚兮 其中有物.”

조민환, 「중국철학에 나타난 도론의 미학적 이해」, 『유교사상문화연구』 8 (1996), p.580.

『전경』, 교법 3장 47절, “人生世間何滋味 曰衣 曰食 衣食然後 曰色也 故至於衣食色之道 各受天地之氣也 惑世誣民者 欺人取物者 亦受天地之氣也.”

『한한대자전』 p.1894.

셈족의 바알, 이집트의 라, 페르시아의 아후라마즈다는 모두 태양이나 빛의 은혜로운 행위를 상징하는 신이다. 또한 플로티누스는 질료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빛은 그 빛을 발산하는 일자의 반영으로 이해되며 신은 우주를 관통하는 일종의 눈부신 흐름과 동일시된다. 위디오니시우스는 그의 작품 『신명론』에서 신을 빛, 불, 찬란한 빛을 발하는 샘물로 표현한다. 움베르토 에코, 『미의 역사』, 이현경 옮김 (서울: 열린책들, 2018), p.102.

인간의 몸과 마음은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오온(五蘊)으로 구성되어 있다. 몸은 물질적 존재로 색(色)이라하며 수ㆍ상ㆍ행ㆍ식은 정신적 존재로 명(名)이라한다. 색은 지ㆍ수ㆍ화ㆍ풍(地水火風)의 네 가지 요소로 형성된 물질적 색온(色蘊)으로 감각기관인 안ㆍ이ㆍ비ㆍ설ㆍ신(眼耳鼻舌身)의 오근(五根)과 감각기관 각각에 대응하는 감각대상으로 색ㆍ성ㆍ향ㆍ미ㆍ촉(色聲香味觸)의 오경(五境)으로 분류한다. 감각기관과 그 기관이 포착하는 감각대상을 모두 색온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한자경, 『불교철학의 전개』 (서울: 예문서원, 2010), pp.32-33.

인간의 감정은 천부적이고 자연적인 것으로 天精이라 하며 天精을 발현하는 감각기관을 天宮이라 한다. 심현섭, 같은 책, pp.267-268.

순자미학에서 도가 의미하는 심미범주는 예(禮)의 범주를 의미한다. 심현섭, 앞의 책, pp.262-263.

『주역계사』 상, “一陰一陽之謂道.”

『도덕경』 77장, “天之道 損有餘而補不足”

조민환, 앞의 글, p.578.

같은 글, p.578.

『중용』, 2장, “不偏不倚 無過不及 而平常之理.” 『논어』, 「팔일」, “子曰 關雎는 樂而不淫하고 哀而不傷.” 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슬프면서도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시메트리아’로 규정되는 균제(symmertry)와 비례(proportion)는 고대 그리스의 전통적인 미 개념이다. 피타고라스는 우주를 질서 있는 세계로 보아 조화와 균형, 통일성을 아름다움으로 보았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아름다운 것은 그것의 객관적인 측면에 확실한 비율과 정확한 균형이 속하는 것으로 서로 다른 여러 부분들이 전체 속에서 서로 간에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강윤희, 앞의 글, p,44.

『맹자』, 「이루」 상 17장, “權 稱錘也 稱物輕重而往來以取中者也 權而得中 是乃禮也.”

미는 중용(moderation)에 있다. 뒤러는 이 이론의 고전적인 계통을 세웠으며 “과도와 과소는 모든 사물을 못 쓰게 만든다.”고 하였다. 이 개념을 미학적으로 사용한 것은 17세기의 혁신이었으나 중용으로서의 미 개념은 하나의 독자적인 개념은 아니고 대 이론을 특수하게 공식화한 경우였다. W. 타타르기비츠, 『미학의 기본 개념사』, 손효주 옮김 (서울: 미술문화, 2017), p.173.

『전경』, 교운, 1장 66절. “動於禮者靜於禮曰道理 靜於無禮則曰無道理.”

같은 책, 공사 1장 32절.

대순진리회 도장에는 ‘선녀직금’이라는 벽화가 있다. 여기에는 도의 이치와 형상의 아름다움이 잘 나타 나 있다. 선녀가 짜는 베의 씨실과 날실은, 경위가 바르고 한 치의 남고 모자람이 없는 완벽한 질서를 의미하고 선녀는 최고의 아름답고 완성된 인간의 상상 속 최고의 모습이기도 하다.

『대순진리회요람』, p.15.

『순자』, 「해폐」, “人生而有知 … 心生而有知,” 인간은 나면서부터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 마음은 나면서부터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다. 같은 책, 「천론」, “心居中虛 以治五宮 夫是之謂天君.” 마음은 가운데의 빈 곳에 거처하면서 오궁을 다스리니 이것을 천군이라고 한다.

심현섭, 앞의 책, p.234.

『순자』, 「해폐」, “兩疑則惑矣 天下無二道 聖人無兩心”

『한한대자전』 p.6.

일(一)과 심(心)의 결합은 중도와 본성, 혹은 공성(空性)의 비움과 실성(實性)의 채움 사이의 화합으로서, ‘텅빈’, ‘충만’과도 같은 진공(眞空)과 묘유(妙有)의 조화이다. 따라서 일심에는 무이(無二) 공성(空性)처럼 비워가는 네거티브한 면과 본성의 활동처럼 채워가는 포지티브한 면이 공존한다고 볼 수 있다. 김종욱, 「원효사상의 존재론적 해명」, 『철학사상』 48 (2016), p.21.

『전경』, 교법 2장 5절.

『대순진리회요람』, p.17, “한마음을 정(定)한 바엔 이익(利益)과 손해(損害)와 사(邪)와 정(正)과 편벽(偏僻)과 의지(依支)로써 바꾸어 고치고 변(變)하여 옮기며 어긋나 차이(差異)가 생기는 일이 없어야 하며 하나를 둘이라 않고 셋을 셋이라 않고 저것을 이것이라 않고 앞을 뒤라 안하며 만고(萬古)를 통(通)하되 사시(四時)와 주야(晝夜)의 어김이 없는 것과 같이 하고 만겁(萬劫)을 경과(經過)하되 강하(江河)와 산악(山岳)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이 하고 기약(期約)이 있어 이르는 것과 같이 하고 한도(限度)가 있어 정(定)한 것과 같이 하여 나아가고 또 나아가며 정성(精誠)하고 또 정성(精誠)하여 기대(企待)한 바 목적(目的)에 도달(到達)케 하는 것을 신(信)이라 한다.”

『전경』, 행록 3장 44절, “心也者鬼神之樞機也門戶也道路也 開閉樞機出入門戶往來道路神 或有善或有惡 善者師之惡者改之 吾心之樞機門戶道路大於天地.”

같은 책, 교법 3장 20절, 권지 1장 19절.

같은 책, 교법 2장 7절.

같은 책, 교법 2장 4절 13절, 교법 3장 20절, 권지 1장 18절, 예시 50절.

류욱렬, 「아름다움을 함께 행하다 : 발타사르의 미학적 신학」, 『피어선 신학논단』, 9 (2020), p.45.

마음의 감각이란 영적인 것들의 실재 개념에 대한 감각적 지식으로서 하느님의 영광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를 의미한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의 영적인 탁월성을 감각적으로 이해하게 해주는 것이다. 박완철, 「조나단 에드워드의 설교와 그의 마음의 감각 신학」, 『신학정론』 24(1) (2006), pp.218-229.

새프츠베리 이후 ‘관심’은 이해타산적인 태도를 전제하며 ‘무관심’은 대상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랑이외에는 그 어떤 관심도 없다는 뜻이다. 즉 무관심성의 핵심은 대상의 존재가 갖는 가치 그 자체에 천착하는 것이다. 박정훈, 『미와 판단』 (서울: 세창 출판사, 2017), p,45.

하선규, 「무관심성」, 『미학의 문제와 방법』, 미학대계 제2권 (서울: 서울대학교, 2019), pp.45-46.

손호연, 『아름다움과 악 2』 (서울: 한들 출판사, 2009), p.22,

『한한대자전』, p.2446.

W. 타타르기비츠, 『미학사1 고대미학』, 손효주 옮김 (경기: 미술문화, 2016), p.144. 피타고라스학파는 ‘미’대신에 ‘조화’라는 용어를 채택했다. 그들은 음들의 조화보다 심오한 조화의 표현으로 사물에 내재한 내적 질서의 표현으로 간주했다.

『전경』, 예시 8절.

같은 책, 교운 1장 9절.

같은 책, 예시 21절.

같은 책, 교법 1장 31절.

같은 책, 공사 3장 40절, “所願人道 願君不君 願父不父 願師不師 有君無臣其君何立 有父無子其父何立 有師無學其師何立 大大細細天地鬼神垂察.”

이정, 『유서』, 권 15, “道無無對 有陰卽有陽 有善卽有惡 有是卽有非 無一亦無三”

같은 책, 권 11, “天地萬物之理 無獨必有對 皆自然而然 非有安排也 每中夜以思 不知手之舞之 足之蹈之也.”

손형우, 『동양미학과 미적시선』 (서울: 대유학당, 2018), pp.57-58.

이주영, 앞의 책, p. 25.

“니꼴라 부리오의 관계미학은 예술작품의 의미와 상징을 알게 되면서 관객들은 더욱 감성이 자극되고 특별한 경험으로 공감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작가와 감정의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관객과의 관계에서 상호작용적인 소통을 구현하는 것으로 관객의 참여가 있어야 완성이 되는 작품이다.” 오태원, 「니꼴라 부리오의 관계미학 관점에서 본 현대예술의 상호작용성」, 『한국과학예술융합학회』 33 (2018), p.155. 관계예술의 존재 방식은 물질화되고 상품화된 상호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실행 가능한 유토피아를 제시하는 것이다. 조사라, 「니콜라 부리오의 관계미학 관점에서 본 1990년대 이후 국제미술전 비평 연구」, 『한국프랑스학논집』 99 (2017), p.301.

『전경』, 교운 1장 9절.

《전경용어사전》http://daesoon.org/about/dictionary.php?idx=29 (2021.01.15. 검색), “하늘ㆍ땅ㆍ사람 즉 천계(天界)ㆍ지계(地界)ㆍ인계(人界)의 세 가지 세계. 불교에서는 중생(衆生)이 생사유전(生死流轉)한다는 3단계의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를 삼계(三界)라 한다.”

『전경』, 예시 2절, 3절, 14절. “모악산하(母岳山下)에 금불(金佛)이 능언(能言)하고 육장 금불(六丈金佛)이 화위 전녀(化爲全女)이라.” 금불이 말을 하고 전녀(全女)가 된다는 것은 강(姜)씨 성으로의 강세를 의미한다.

같은 책, 공사 1장 3절.

같은 책, 행록 2장 1절, 4절, 7절.

명부란 조직화된 신의 세계를 총칭하는 말로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는 신명계의 조직기구와도 같다, 이경원, 『대순진리회 신앙론』 (서울: 문사철, 2012), p.102.

『전경』, 예시 16절.

같은 책, 공사 3장 38절.

누미노제는 신과 세계와의 공감 속에서 지속적으로 탄생되고 각성되어지는 영적 체험이다. 신은희, 「감정과 공감의 누미노제」, 『신학사상』 173 (2016), p199.

강윤희, 「토마스 아퀴나스의 예술론에 따른 미(美)의 개념」, 『누리와 말씀』 42 (2017), p.44. 참조.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완전성은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차원에서 뿐 아니라 존재론적인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완전성 개념을 미적 요소로 다루는 것은 사물의 미가 사물의 감각적인 외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내부로부터 유래한다는 그의 기본적인 관점을 잘 드러내 준다. 장건익,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에 대한 앎」, 『가톨릭철학』 9(2007), pp.290-291.

장병길, 『대순종교사상』 (서울: 대순종교문화연구소, 1989), p.70.

『도덕경』, 2장, “天下皆知 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이경원, 『대순진리회 교리론』, (서울: 문사철, 2013), p.156.

『전경』, 예시 9절.

같은 책, 공사 1장 3절, 교운 1장 16절, 예시 9절, 예시 10절.

같은 책, 예시 6절, 9절, 교운 1장 16절, 교운 2장 18절, 교운 1장 6절.

같은 책, 교법 1장 2절.

《전경용어사전》 http://daesoon.org/about/dictionary.php?idx=29 (2021.01.15. 검색)

『전경』, 교운 1장 6절.

같은 책, 교법 1장 11절.

같은 책, 교법 3장 15절.

같은 책, 교법 3장 12절.

이지언, 「18세기 근대미학에서 울스턴크래프트의 ‘정의의 미’와 버크의 ‘미’개념 비교고찰」, 『미학』 79 (2014), p.185. 대상에서 발견되는 속성으로서의 미 개념이 아니라 인간행위와 결합되는 실천적 아름다움으로 미가 인간의 존엄성, 인간의 윤리적 문제와 결합하고 이성과 교육을 강조한 사회적 정의의 미를 추구한다.

심현섭, 앞의 책, p.43.

『전경』, 예시 10절.

심현섭, 앞의 책, p.275.

『전경』, 공사 1장 8절.

같은 책, 행록 5장 38절, “病有大勢 病有小勢 大病出於無道 小病出於無道 忘其父者無道 忘其君者無道 忘其師者無道 世無忠 世無孝 世無烈 是故天下皆病.”

같은 책, 공사 1장 36절.

같은 책, 행록 5장 37절.

같은 책, 예시 1장 36절.

같은 책, 교법 3장 24절, 권지 1장 10절.

같은 책, 교법 1장 11절.

『맹자』, 「양혜왕장구」 1, “仁者, 心之德 愛之理 義者 心之制 事之宜也.”

『전경』, 예시 81절.

【참고문헌】

1.

『전경』, 여주: 대순진리회 출판부, 2010..

2.

『대순진리회요람』, 여주: 대순진리회 교무부, 2010..

3.

『논어』.

4.

『도덕경』.

5.

『맹자』.

6.

『순자』.

7.

『유서』.

8.

『주역계사』.

9.

『중용』.

10.

민중서림편집국, 『한한대자전』, 파주: 민중서림, 2013..

11.

성낙양, 『동아새국어사전』, 서울: 두산동아, 2013..

12.

강윤희, 「토마스 아퀴나스의 예술론에 따른 미(美)의 개념」, 『누리와 말씀』 42, 2017..

13.

김종욱, 「원효사상의 존재론적 해명」, 『철학사상』 48, 2016..

14.

노자ㆍ왕필, 『노자도덕경과 왕필의 주』, 김학목 옮김, 서울: 홍익출판사, 2014..

15.

레오 엘더스, 『토마스 아퀴나스의 형이상학』, 박승찬 옮김, 서울: 가톨릭출판사, 200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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