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연구논문

예수의 성육신과 증산의 인신강세: 종교학적 의의에 대한 고찰

김종만1,*
Jong-man Kim1,*
1Research Professor, Research Institute of Korean Studies, Korea University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mail: kjmif@naver.com

© Copyright 2020, The Daesoon Academy of Science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May 28, 2020 ; Revised: Jun 30, 2020 ; Accepted: Aug 01, 2020

Published Online: Aug 31, 2020

국문요약

예수의 성육신과 증산의 인신강세는 기독교와 대순진리회의 중요한 신(교)학 이론이다. 두 이론은 각 종교의 신앙적 서술을 위해 필요한 교리적 장치들이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연구는 종교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그것을 변증, 설명하려는 신학적 종교연구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본 논문은 신(교)학적 방법인 아닌 종교학적 방법으로 예수의 성육신과 증산의 인신강세를 탐구한 논문이다. 그러므로 각 종교를 대표하는 신학적 입장에서 보면 모를까 종교학적 연구방법으로 보자면, 한 종교의 관점에서 다른 종교의 이론을 거대 담론적 성격으로 규정하는 작업은 불가능하고 큰 의미가 없다.

우선 성육신은 전통 신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유일신 하느님이 원죄를 지닌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라는 인간을 통해 유일회적으로 하강한 사건이다. 인신강세는 그 종교적 특징들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므로 이 둘을 통일적으로 고찰하려는 시도 자체가 객관적인 종교연구 방법이라 할 수 없다. 다만 본 논문은 예수의 성육신과 증산의 인신강세를 특정한 신(교)학적 입장들이 아닌 3인칭, 즉 종교적 관점으로 이해함으로써 거기에 나타난 종교적 의의를 찾아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증산의 인신강세 개념은 예수의 성육신 개념에서 차용되었다는 김종서의 입장을 연구방법의 전제로 활용할 것이다.

따라서 이 논문은 예수의 성육신과 증산의 인신강세를 신(교)학적 입장에 따른 성육신 신학이나 인신강세의 교학적 관점에서의 연구, 즉 예수와 증산의 신적인 요소(vere Deus)와 인간적 요소(vere Homo) 전부를 통합하고 조망하는 “전체 그리스도”(Totus Christus)나 “전체 증산”에 대한 탐구를 지양한다. 대신 예수와 증산의 신적 선재성을 논의하는 초월적 요소나 형이상학적 측면은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검증적 기술이 가능한 형이하학적 차원에서 성육신과 인신강세의 의의를 해명한다. 이러한 연구방법론에 따라 본 논문은 예수의 성육신과 증산의 인신강세를 각각 “성육신 종교학”, “인신강세 종교학”이라는 가설적 명칭으로 전제한 후 논의를 전개했다. 그러나 성육신과 인신강세 종교학은 신적인 차원이 철저히 거세된 유물론적 해석이라는 비판의 요소가 내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월성의 현재적 이입성을 부정하며 지금 여기로서의 철저 현재성을 지향하는 성육신과 인신강세 종교학은 검증적 학문으로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The incarnation of Jesus and Jeungsan’s descending to earth as a human being are important theological theories in their respective religions, Christianity and Daesoon Jinrihoe. Both theories are the doctrinal devices necessary for the religious description of each religion. However, this kind of study is likely to result in a theological study that generates religious apologia or explanations. Therefore, it is impossible and meaningless to define the theory of another religion as meta-discourse in terms of one’s own religious viewpoint.

From a traditional theological point of view, the incarnation is an exceptionalist case wherein God descended as a human being named Jesus to save humanity from original sin. In the case of Jeungsan’s descending to earth as a human being, its religious features appear in various forms, so the attempt to unify these two is not an objective method of religious studies. However, this paper aims to find the religious significance of Jesus’ incarnation and Jeungsan’s descending to earth as a human being by understanding them from a third-person terminology or third-person religious viewpoint rather than from a specific theological position. To this end, this paper will use Kim Jong-seo’s position that the concept of Jeungsan’s descending to earth as a human being was borrowed from the concept of the incarnation of Jesus as the premise of the research generated in this paper.

Therefore, this paper avoids the quest for “Total Christ” or “Total Jeungsan” that integrates and views the divine and human elements of Jesus and Jeungsan. This is because such a research method becomes a theological study. Instead, it excludes transcendental elements or metaphysical aspects that discuss the divine pre-existences of Jesus and Jeungsan and clarifies the significance of the incarnation and Jeungsan’s descending to earth as a human being at the physical level in terms which are objective and verifiable.

According to this research methodology, this paper develops a discussion after presupposing the hypothetical names of “incarnationist religion” and “divine descent in human avatar religion.” However, the two presuppositions mentioned above contain elements of criticism that they are materialistic interpretations that completely eliminate connotations of divinity and religious significance. Nevertheless, it can be said that the two presuppositions have academic significance due to the way in which they avoid the current entanglement of transcendence and instead aim for modernistic relevance.

Keywords: 예수; 증산; 예수의 성육신; 증산의 인신강세; 성육신 종교학; 인신강세 종교학
Keywords: Jesus; Jeungsan; The Incarnation of Jesus; Jeungsan’s Descending to Earth as a Human Being; Incarnation Religion; Divine Descent in Human Avatar Religion

Ⅰ. 들어가는 말

예수의 성육신과 증산의 인신강세는 기독교와 대순진리회의 중요한 신(교)학 이론이다. 두 이론은 각 종교의 신앙적 서술을 위해 필요한 교리적 장치들이다. 자칫 이런 종류의 연구는 종교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그것을 변증, 설명하려는 신학적 종교연구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본 논문은 신(교)학 연구가 아닌 종교 연구이다. 그러므로 각 종교를 대표하는 신학적 입장에서 보면 모를까 종교학적 연구방법으로 보자면, 한 종교의 관점에서 다른 종교의 이론을 거대 담론적 성격으로 규정하는 작업은 불가능하고 큰 의미가 없다. 그것은 종교적 가치판단이 들어간 규범 학문이다. 이는 종교를 규범적으로 연구하는 방법인 종교신학이나 종교철학에서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종교를 검증적,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입장인 검증학문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성육신은 전통 신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유일신 하느님이 원죄를 지닌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라는 인간을 통해 유일회적으로 하강한 사건이다. 인신강세도 본문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겠지만 그 종교적 특징들이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둘을 통일적으로 고찰하려는 시도는 객관적인 종교연구 방법이라 볼 수 없다. 다만 본 논문은 예수의 성육신과 증산의 인신강세를 특정한 신(교)학적 입장들이 아닌 3인칭, 즉 종교학적 관점으로 이해함으로써 거기서 나타난 종교적 의의를 찾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증산의 인신강세 부분에서는 예수의 성육신 개념을 포괄했다는 김종서의 입장을 연구방법의 전제로 활용할 것이다. 왜냐하면 김종서의 입장과 달리 증산의 인신강세를 기독교 성육신 개념에서 차용했다고 보는 데 무리가 있다는 차선근의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기독교 성육신 관념의 주요 키워드는 유일신, 원죄, 구원으로 수렴되는데 증산은 기독교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고 원죄와 유일신 신앙에 대한 입장은 기독교의 그것과 다르므로 증산의 인신강세를 성육신 개념에서 차용했다는 주장은 적절치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 차선근에 따르면, 증산은 기독교가 유일신 신앙 때문에 실패할 것이고, 또 기독교는 인간이 스스로 원죄를 만든 죄인이라는 입장인, 반면 증산은 인간의 잘못과 죄를 인정하면서도 그 배경에는 상극에 치우친 천지의 잘못된 운행을 더 크게 부각한다. 따라서 “증산이 기독교 ‘유일신’ 관념을 부정하고 인간의 원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면, 이를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는 기독교의 성육신 관념을 증산에게 그대로 적용시키는 일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1)

이 논문은 예수의 성육신과 증산의 인신강세를 신(교)학적 입장에 따른 성육신 신학이나 인신강세의 교학적 관점에서의 연구, 즉 예수와 증산의 신적인 요소(vere Deus)와 인간적 요소(vere Homo) 전부를 통합하고 조망하는 “전체 그리스도”(Totus Christus)나 “전체 증산”에 대한 탐구를 지양한다. 대신 예수와 증산의 신적 선재성을 논의하는 초월적 요소나 형이상학적 측면은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검증적 기술이 가능한 형이하학적 차원에서 성육신과 인신강세의 의의를 해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형이하학적인 접근은 ‘역사적 예수’나 ‘역사적 증산’ 모색이라는 점에서 사회-정치학적인 환원주의적 연구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의 요소가 있다. 물론 신성을 제거하지 않은 채, 종교현상학적인 비교방법으로 성육신과 인신강세를 연구 할 수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연구방법은 신학이나 교학에서 이루어지는 신학적 서술로서 이는 역으로 ‘형이상학적인 환원주의’라는 비판의 소지가 있다.

그 점에서 필자는 어떤 시각에 따라 연구를 전개할 것이냐는 ‘관점의 연구’에 주목하여 두 인물의 사회-역사적 맥락에 치중하는 것이 신(교)학적인 주관적(신앙적) 고백보다 객관적(종교적) 기술에 가깝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본고는 이러한 연구방법론이 종교학 연구에 더 유의미한 요소가 있다고 보고 예수의 성육신과 증산의 인신강세를 각각 “성육신 종교학”, “인신강세 종교학”이라는 가설적 명칭으로 전제한 후 논의를 전개하겠다.

Ⅱ. 시대 배경

1. 예수 시대

예수는 주전 4년 팔레스타인의 한 곳에서 태어났다.2) 아버지는 목수인 요셉, 어머니는 마리아, 그리고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의 네 형제(막 6:3)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자매가 있었다. 예수는 갈릴리 시골 마을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았으며 모국어로는 팔레스타인의 언어인 아람어를 사용했다. 공생애 이전 대부분의 예수의 삶은 나사렛을 중심으로 살았으며 예수의 성장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3) 예수 탄생 당시 팔레스타인의 통치자는 에돔 사람 헤롯 대왕이었다. 헤롯 대왕은 아내와 자식들, 장모를 살해하고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은 감금, 고문, 처형하는 등 잔인한 철권통치를 행사하였다. 사실 그는 주전 37년, 로마가 유다의 왕으로 임명한 괴뢰정권의 통치자였다. 하지만 헤롯 대왕은 로마를 이용하여 큰 재량권을 가진 통치자가 되었고 이에 대한 대가로 팔레스타인을 로마 변방의 군사적 방파제 역할로 삼았다. 그는 잔인한 강압 통치를 펼쳤을 뿐만 아니라 성전 개축, 수로 건설, 도시화 작업, 극장 건설 등을 통해 예루살렘을 현대적 도시로 탈바꿈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규모 건설 사업은 무수한 노동자들의 희생을 초래했고 민중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로마의 철저한 주구 노릇을 한 헤롯 대왕은 특히 유다 농민들에게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폭압적이었다.4)

식민지하에서의 개발정책은 마카베오 혁명에 의해 확립된 이스라엘의 자립적인 기반을 근본적으로 잠식시켰으며, 그의 잔인한 폭정은 가히 광적이어서 민중의 저항과 원성이 높았다. 헤롯 대왕의 화려한 궁전에는 많은 후궁이 있었으며, 군대, 첩보원 등 엄청난 정권 안보 비용을 지출했다.5)

헤롯 대왕은 민중 착취를 통해 정권 유지비용을 위한 재정을 마련한다. 그 결과 이스라엘 경제 질서는 심각할 정도의 파탄 상태에 이르게 된다. 뿐만 아니라 헤롯 대왕은 전국에 요새를 건설하고 대규모의 호위군을 거느림으로써 혹시 모를 민중들의 저항을 원천 봉쇄한다. 그러나 예수가 탄생할 무렵인 주전 4년, 마침내 헤롯 대왕이 사망한다. 이후 왕실은 권력 쟁탈을 위한 이전투구 장이 되었고 군대 지휘권도 혼란에 빠져 정부의 치안유지 능력이 상실되었다. 그동안 로마의 식민지 점령 기간과 헤롯 대왕의 폭정에 억눌렸던 민중들의 분노는 각처에서 폭발하여 민중봉기로 발현된다.6)

특히 나사렛에서 남동쪽으로 6㎞ 떨어진 세포리스는 민중봉기의 거점으로 부각한다. 헤롯 대왕 사후 갈릴리의 민중 지도자 헤제키야의 아들 유다는 세포리스의 무기고를 탈취하고 도시를 무력으로 점령한다. 그러나 이 봉기는 곧 로마에 의해 진압된다. 사실 헤롯 대왕 사망 직후 일어난 민중봉기는 시리아의 로마 총독 바루스(Varus)의 1차 원정으로 무자비하게 진압되었다. 그는 약 18,000명 정도인 3군단의 대병력을 투입해 민중 소요를 잠재운다. 이후 또 다른 민중봉기가 발생하자 바루스는 나바태아 군대로 보강된 2차 진압군을 파견하여 갈릴리 지역의 저항의 본거지인 세포리스를 초토화한다. 이 진압으로 이천여 명의 민중들이 십자가형을 당하고 산더미 같은 시체들이 즐비하였으며 주민들은 노예로 팔려가게 된다.7)

이때 세포리스와 가까운 나사렛의 젊은이들이 이 봉기에 가담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미 집단살육 현장으로 변모한 이곳의 수많은 군중 가운데 봉기에 직접 뛰어들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생명을 잃거나 불구자가 되거나 노예로 팔려갔을 것이다. 한 마디로 나사렛은 지배자들에게는 반역이 끊이지 않는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었고, 나사렛 민중들에게는 한(恨) 많은 고장이었다.8)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신약성서는 나사렛을 부정적으로 기술한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

“우리가 알아본 결과 이 자는 몹쓸 전염병 같은 놈으로서 온 천하에 있는 모든 유다인들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키려는 자이며 나사렛 도당의 괴수입니다.”(행 24:5)

헤롯 대왕 사후 갈릴리는 그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가 통치(주전 4년~주후 37년)한다. 크로산(J. D. Crossan)의 연구에 따르면, 그는 주전 3년에 갈릴리와 베뢰아를 물려받은 후 세포리스를 갈릴리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요새화하여 오토크라토리스(autocratoris)로 명명한다.9) 나사렛 인근 지역인 세포리스의 도시화는 민중의 삶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새로운 도시의 건설로 농토를 잠식당한 농민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거나 도시건설의 건축노동자로 변모한다. 또한 세포리스 주변 지역의 농촌에서 생활의 기반을 갖지 못한 주민들이 건축노동자들의 노동력으로 투입된다. 도시화 이전 농토를 생활기반으로 삼았던 농민들은 도시건설을 위해 몰려든 노동자들에게 생활용품을 조달하는 공급자가 되기도 한다. 반면 “몸뚱어리 밖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짐꾼이나, 건축노동자, 비렁뱅이 등으로 도시의 하층민을 형성”한다.10)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예수가 태어나기 1세기 전에 가뭄, 태풍, 지진, 기근 등의 각종 자연재해로 무수한 농민들이 토지를 상실하여 빚쟁이로 전락하거나, 소작농, 일용직 노동자, 이농, 떠돌이 유민 등으로 전락했다고 기록한다. 뿐만 아니라 예수 시대에는 자연재해로 인한 농민층의 하층 분화 외에도 도시건설, 과중한 세금, 높은 소작료 등으로 농촌이 황폐화 되었다.11)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받은 예수는 건축노동자의 목수로 생계를 이어가며 민중들과 함께 착취와 박해의 현장 가운데 있게 된다. 주목할 사실은 예수가 로마 제국주의와 유대 지배층들의 이중적 착취로 생계 터전을 상실하여 사회 제도권 밖으로 이탈한 유민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복음서는 예수가 관심을 가진 유민들에 대한 이름을 다양한 방식으로 부른다.

가난한 사람, 소경, 절름발이, 앓는 사람, 중풍 병자, 나병 환자, 굶주리는 사람, 우는 사람, 불쌍한 사람, 죄인, 창녀, 세리, 과부, 귀신들린(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 박해 받는 사람, 억눌린 사람, 포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 율법을 모르는 무리, 군중, 작은 사람, 지극히 작은 사람, 말째, 철부지, 어린이, 이스라엘 가문의 길 잃은 양 … .12)

중요한 사실은 예수가 관심을 가진 이들은 인간으로서 위신도 명예도 없는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인간 이하의 사람, 즉 존엄성을 상실하고 ‘죄인’으로 낙인찍혀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성서는 이들을 억눌린 사람들, 박해받는 사람들, 포로들(눅 4:18, 마 5:10)로 묘사한다. 예수가 특별하게 관심을 보인 이 사람들을 현대적 용어로 각색하면 한계 상황에 처한 피압제자들, 소외당한 자들이었다. 이러한 암울한 시대 가운데 예수는 지속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착취 가운데 신음하는 민중들의 좌절과 고통을 목도하고 부자와 빈자의 갈등,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갈등, 계급 간의 갈등, 민족과 이념 간의 갈등 등 모든 불의한 요소를 갈아엎고 화해와 평등이 이루어지는 평등한 사회를 지향한다.13)

따라서 예수의 이런 활동은 착취와 억압으로 절망적 죽음에 직면한 민중들 사이에서 정치적 저항과 해방을 갈망하며 오랫동안 열망하던 메시아로서의 예수, 즉 메시아사상으로 수렴된다. 결국, 예수 성육신은 당시 민중들에게 하느님이 비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스스로 수육하여 모든 갈등과 고통을 해갈한다는 메시아사상의 신앙적 투영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2. 증산 시대

대순사상14)의 근원인 강증산(姜甑山 본명은 一淳)은 1871년 신미년 9월19일(음력) 전라북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현 전라북도 정읍군 덕천면 신월리)에서 태어났다. 『전경』 행록 1-6절에는 증산의 출생에 대해 “그리고 그 탄강하신 마을을 손바래기라고 부르며 당시에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全羅道古阜郡優德面客望里)라고 부르더니 지금은 정읍군 덕천면 신월리(井邑郡德川面新月里) 새터로 고쳐 부르도다.”로 기록한다.

증산의 탄생에 대해서는 여느 종교 천재의 출생과 마찬가지로 신이한 성격을 지닌다. 증산은 모친 권씨가 답내면 서산리 친정집에 있는데 하루는 하늘이 남북으로 갈라지고 큰 불덩이가 내려와서 몸을 덮고 온 천하가 광명하여지는 꿈을 꾸고 태기를 느낀 후 열세 달 만에 낳은 아이이다. 증산이 태어날 무렵 부친 또한 비몽사몽 간에 두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산모를 간호하고 그 뒤 이상한 향기가 온 집안에 가득하며 맑은 기운이 집을 두르고 하늘에 뻗쳐서 7일이나 계속되는 영이한 체험을 한다.15) 증산에 대한 이러한 신이한 탄생설화는 훗날 증산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후손들에게 생이지지(生而知之)한 종교 창시자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이를 통한 신도들의 현실적 여망(輿望)이 투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증산 탄생 당시 시대적 배경은 어떠했을까? 다른 말로 증산 당시 시대적 상황이 어떠했기에 대순사상과 같은 종교가 출현할 수 있었을까? 예수 시대와 마찬가지로 증산이 탄생한 19세 말의 조선의 시대적 상황은 암울함 그 자체였다. 구한말의 우리 민족은 세도가의 부패한 정치 상황과 외세에 시달리는 고난의 시기였다. 안으로는 외척에 잠식당한 변칙적 정치체제로 인한 정치 기강의 문란, 이에 따른 관료제도의 파탄을 초래하였고, 수취체제인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곡(換穀)의 삼정(三政)은 세도정치 하의 탐관오리들의 사복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갖가지 방식으로 농민들을 수탈한 탐관오리들의 욕망은 마침내 농촌경제가 몰락하고 국가 경제가 고갈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증산이 출생한 1871년은 같은 해 신미양요, 1875년 운요호 사건, 1876년 병자수호조약을 기점으로 연이은 열강들과의 수교통상조약으로(1880년에서 1899까지) 이어졌다. 그럼으로써 조선은 일본과 서양 제국주의 국가 간의 전쟁터로 변모하였다. 뿐만 아니라 중앙관료들의 부정 부패와, 민중 수탈, 가렴주구에 의한 경제적 파탄, 국내 지배층들의 권력 쟁취의 갈등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변동, 열강들의 침탈과 이권 다툼으로 인한 국제적 질서 파탄은 결국 민중들의 삶을 붕괴시켰고 봉기, 민란, 화적, 도적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대 환란으로 이어졌다.16)

19세기 말 조선 사회를 뒤흔든 사회적 모순과 혼란은 지주와 소작농, 빈농과 부농, 봉건적 농민지배과정, 봉건적 지배계급을 통해 나타났다. 이로 인해 민중의 불안, 가치관의 붕괴, 지배종교인 유교의 쇠퇴, 기성종교인 유불도의 화석화로 인한 사회병리가 초래됨으로써 기층민중들은 새로운 지도 이념과 지도자, 그리고 정신적 안식처를 갈망하게 된다. 민중들은 이때 등장한 동학과 전봉준에 대해 새로운 질서체계를 열망하였다.

그러나 동학혁명이 실패하고 동학군들에게 진인으로 믿어졌던 전봉준이 체포되자 민중들의 기대와 신뢰는 무너졌다. 또한 문호 개방으로 인한 서학과 기독교에 대한 문화충격은 외세에 대한 혐오를 낳았고 전통적인 유불도는 기층민중들의 정신적 위안과 물리적 해방과는 거리가 먼 종교로 변질되었다.17)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것에 대한 민중들의 불안과 사상적 혼란, 도덕적 가치의 퇴폐는 민중들에게 극단적인 암울함과 절망, 위기의식을 유발했다.

그러자 민중들은 조선왕조의 국운이 다하고 세계를 통일하는 새 왕조의 창건, 그리고 선천의 현실 세계가 후천의 신세계로 전환되는 개벽을 열망하게 된다. 이때 민중들 사이에서 증산은 “이 땅에 초 강력한 힘(Meta power)의 소유자인 절세의 도인(道人)이나 진주(眞主)가 출현하여 외세를 누르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희망이 신앙화 된 가운데 강세하였다.18) 증산의 강세는 극심한 혼란과 어지러운 세상 가운데 민중들의 현실 변혁적 열망이 신앙적으로 투영된 소산으로서 신이한 표상을 지닌다 : 스스로를 구천에 있는 상제이자 삼계 대권의 주재자로 말씀하신 증산께서 신성 ㆍ불 ㆍ보살의 하소연에 따라 천지, 신명계, 인류 등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강세하셨다. 증산은 자신을 천(天) 가운데 가장 높은 구천(九天)에 거하는 지고신이라는 자기인식과 함께 우주와 세계를 조화로운 질서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삼계가 혼란하여 도의 근원이 끊어지게 되었으며 혼란에 빠진 천지의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19)

증산은 아우성과 절규에 신음하던 민중들의 염원 가운데 서천서역대법국천계탑(西天西域大法國天階塔)으로 내려와 삼계를 둘러보고 천하에 대순 하다가 동토에 그쳐 1871년 인간의 몸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난 대순진리회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숭앙되는 구천상제 또는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로 호칭되는 최고의 신격을 지닌 하느님이다. 그가 직접 강세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 그러므로 우리는 개벽하여야 하나니 대개 나의 공사는 옛날에도 지금도 없으며 남의 것을 계승함도 아니요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니요 오직 내가 지어 만드는 것이니라. 나는 삼계의 대권을 주재하여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의 무궁한 선운을 열어 낙원을 세우리라 … 20)

대순사상은 최고신격인 구천상제의 인신강세에서 비롯되는데, 그 주요한 배경은 인존시대(人尊時代)이다. 인존은 신적 존재와 동일한 위격을 가진 인간을 나타낸다. 기존의 초월적인 신적 대상은 우주 역사의 주체로서 인간과 자연 위에 군림하면서 인간이 이를 숭상하고 신앙하는 태도였다. 하지만 인존은 “그 숭앙의 대상이 인간존재로 전환되어 인간이 절대 권위를 지니고 우주 역사를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새로운 인간출현을 의미한다.

『전경』 교법 2장 56절에는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라”라며 신적 존재가 하늘과 땅의 영역에 머물며 절대 권위를 행사하던 천존시대(天尊時代)와 지존시대(地尊時代)에서 인존시대로의 전환을 시사한다. 인존시대는 “신적 존재가 ‘인간’이라는 집에 머물면서 인간과 더불어 그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다.21) 이는 증산의 존호에서도 강조된다.

존호를 ‘증산’(甑山)이라고 칭하게 된 이유는 ‘증(甑)’이란 떡을 찌는 시루에 해당하며 ‘산(山)’이란 고정 불변의 진리를 상징하는 사물로 일컬어진다. 이때 ‘시루’라고 하는 것은 하나하나의 낱개의 쌀알이 떡을 찜으로써 한 덩어리로 만드는 그릇이니 그 상징적 의미는 모든 분열된 족속과 문명 그리고 사상을 한데 모아 하나로 귀일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22)

구천상제가 강세하여 인간 증산이 된 것은 개벽 시대에는 사상과 문명 간에 어떤 갈등과 대립도 없이 그 정수가 모두 모여 한 덩어리의 세계가 됨을 의미한다. 주목할 점은 천존시대와 지존시대에서 인존시대로의 전환이다. 이는 숭배의 대상도 천지에서 인간으로 바뀌고 천지가 담당한 우주 역사를 인간이 주체가 되어 책임지고 이끌어감을 의미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 논문은 예수와 증산이 지닌 물리적인 역사적 배경에 집중하여 형이상학의 관점에서의 성육신이나 인신강세가 아니라 형이하학의 시각에서 성육신과 인신강세의 면모를 조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신으로서의 예수나 구천상제인 증산의 신적 선재성으로서 신성적 측면이 아니라 이천 년 전 팔레스타인과 19세기 말 조선이라는 역사성에 입각한 인간 예수, 인간 증산에 주목할 수 있는 소이가 마련된다. 따라서 기독교 성육신과 대순사상의 강세의 의미는 성육신 신학이나 인신강세 교학이 아닌 “성육신 종교학”, “인신강세 종교학”의 차원으로 조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Ⅲ. 성육신과 인신강세

1. 예수 성육신
1) 예수 성육신의 해석 방법론

‘성육신 신학’의 핵심은 ‘하느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이다. 이는 ‘신이 왜 인간의 몸으로 왔는가’라는 말로 환언 된다. 기독교 신학에서는 신의 존재와 신의 존재에 대한 인간의 인식론적인 측면이 전제된다. 그러나 종교학에서 성육신은 신의 존재라는 형이상학적 요소를 탐구하는 것 자체가 검증적 연구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신의 강림에 대한 현상적 의미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연구방법을 ‘성육신 종교학’이라 칭할 것이다. ‘성육신 종교학’이란 기독교 신학에서 다루는 성육신, 즉 예수의 선재성, 신성, 구원론, 삼위일체론 등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사변에 대한 경향성이 아니라, 신이 인간으로 온 이유에 대한 현상학적 의미 탐구에 집중하는 방법을 가리킨다. 이를 위해서는 그리스도론의 방법론에 대한 내용이 선행되어야 한다.

예수의 성육신을 논의할 때 전제되는 신학적 선 이해는 예수를 보는 방법론, 즉 그리스도론의 방법론에 있다. 여기에는 ‘대체적’으로 네 가지 방법론이 있다.23) 첫째는 위로부터의 방법론(method from above)이고, 둘째는 아래로부터의 방법론(method from below), 셋째는 역사적 예수의 탐구 방법, 넷째는 상황과 실천으로부터의 방법론이 있다.

첫째, 위로부터의 방법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서 인성으로 하향하는 방법론으로 고대교회의 그리스도론 대부분이 이에 속한다. 위로부터의 방법론에서 중요한 전제는 예수의 선재이다. 그리스도가 역사 속으로 개입하기 이전에 선재 했기 때문에 성육신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성부와 그리스도의 일치가 중요한 이론적 토대를 이룬다. 위로부터의 방법론은 선재와 성육신을 강조하기 때문에 연역적 형태의 논리적 경향성이 지향된다. 이 방법론의 교리적 근거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와 381년 칼케돈 공의회를 통해 구축된다. 니케아 회의에서 예수와 성부의 동일본질이 결정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삼위일체의 한 위격이라는 교리가 마련된다. 칼케돈 회의에서는 신성과 인성으로서의 예수의 두 본성이 확립된다. 결국 이 두 회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 동일본질, 두 본성”이 규정된 것이다.24)

둘째, 아래로부터의 방법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서 신성으로 상향하는 방법론으로 18세기 계몽주의 이후에 등장하였다. 아래로부터의 방법은 계몽주의의 특징인 합리주의적 사고와 역사적 사고의 영향으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연역적으로 전제하지 않고 예수의 삶과 죽음을 귀납적으로 고찰한다. 이 방법론은 합리성과 인간 이성을 강조하는 19세기 개신교 자유주의 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을 옹호하는 학자들은 19세기 슐라이어마(F. Schleiermacher)와 리츨(A. Ritschl), 20세기에는 틸리히(P. Tillich), 알트하우스(P. Althaus), 큉(H. Küng), 판넨베르크(W. Pannenberg) 등이 있다.25) 이 방법론은 예수의 사역, 선포, 윤리를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예수의 활동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그리스도의 신성을 연역적으로 전제하지 않으므로 신성을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삼위일체론의 구조가 형성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26)

셋째, 아래로부터의 방법론의 한 지류인 역사적 예수의 탐구 방법(quest of historical Jesus)이 있다.27) 이 방법론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에서 발전된 아래로부터의 방법론과 근원이 같은 것으로 신성으로의 예수가 아니라 인간 예수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아래로부터의 방법론과 유사하다. 그러나 차이점은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이 인성에서 출발해 신성으로 올라가는 상향식 방법이라면 역사적 예수의 탐구는 예수의 ‘신성’에 대한 어떠한 전제도 갖지 않고 오로지 인간 예수에게만 집중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역사적 예수의 탐구는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과 달리 인성과 신성의 일치나 성육신에 관심을 갖지 않고 역사비평적 방법과 사회비평이론, 문화이론, 언어분석방법을 도구로 삼고 귀납적 논리를 지향한다.28)

넷째, 상황과 실천으로부터의 방법론(method from context and praxis)이 있다. 이 방법론은 남미 해방신학의 그리스도론으로서 신성에서 출발하는 위로부터의 방법론과 인성에서 출발하는 아래로부터의 방법론인 인식론적 방법론과 뚜렷이 구별되는, 상황과 실천을 매개로 그리스도론을 전개하는 것이다.29) 이 방법론은 이론이나 인식론적으로 현재적 예수를 만날 수 없고 인간이 처한 ‘상황’과 그에 따른 ‘실천’으로만 현재하는 예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를 만나는 현장은 개인의 신앙적 차원을 넘어선 사회-경제적 차원에서다. 그러나 이 방법론은 특수한 상황이 매개되므로 그리스도론의 특수성이 반영되는 장점이 있는 반면 어떤 상황에도 제한되지 않는 그리스도론의 보편성이 담보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30)

2) 예수 성육신의 종교학적 의의

이 네 가지 방법론 가운데 성육신 종교학을 구성하기 위한 조건은 예수의 신성을 철저히 배제하는 역사적 예수의 탐구방법을 통한 “예수론(Jesuslogy)”과 상황과 실천으로부터의 방법론이다. 왜냐하면 성육신 종교학은 초세간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오늘의 구체적인 상황과 실천 가운데 그 의의가 구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육신 종교학은 초월성과 역사성의 양극적 합일의 사유인 “역사적 실천이 없는 신비 체험은 불구일 수밖에 없다.”는 니터(P. F. Knitter)의 진술과 신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의 “양극성(biopolarity)”과 “분화된 단일성(differentiated unity)”, “깨지지 않는 결속(an unbreakable bond)”의 차원에서 논구되지 않는다.31) 이러한 표현들은 역사적 매개를 통한 초월성, 즉 신비적 요소를 지향한다는 소브리노의 입장과 유사하다 : “하느님 나라를 위한 실천 행위 없이 하느님을 고백하기란 불가능하다. 역사적인 실제 삶 없이 영적 삶을 살 수 없다. 영이 육이 되지 않으면 영적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32)

소브리노와 마찬가지로 유동식 또한 양극적 합일을 통한 성육신의 사유를 추구한다. 그는 예수의 성육신 사건을 현상세계인 제1 우주와 이 세계를 넘어서는 제2 우주를 포월 하여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구체화 되는 사건으로 파악한다.

그는 시간과 공간으로 이루어진 현상의 세계를 시공 우주인 제1 우주로, 현상세계의 시공간을 초월한 저 너머의 세계를 영성 우주인 제2 우주로, 그리고 예수의 성육신 사건을 이 땅에 도래한 시공 우주와 영성 우주가 만나는 제3 우주로 구별한다.33)

앞선 진술과는 달리, 성육신 종교학은 초월과 현세를 전제하는 양극성을 고려하지 않고 철저히 비초월적 요소를 지향한다. 또한 연역적이거나 선험적인 예수의 신적 선재성을 긍정하는 신적 차원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역사성을 매개하여 초월성으로 내향하는 초월성의 역사적 이입을 철저히 차단함으로써 오로지 역사적 인간으로서, 이곳의 상황과 실천을 통한 성육신의 의미를 담보한다. 그 이유는 신이 예수 안에서 육신이 되었다는 성육신 신학은 하나의 역설(paradox)이기 때문이다. 성육신 신학에 역설의 요소가 내포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유한한 인간의 그 어떤 언어와 사상의 범주로도 하느님을 완전히 해명할 수 없다. 우리는 하느님을 객관화 할 수 없으며, 개념화 할 수도 없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면, 곧바로 모순에 빠지게 되며, 우리의 사상은 분열되고 여러 진술로 갈라져 결국에는 서로 조화할 수 없게 된다.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발언은 불가피하게 이율배반(二律背反)과 변증법적 모순을 지니게 마련이다. 이러한 신비는 종교경험 안에서 현실화되며, … 성육신의 신비도 바로 이와 같은 역설과 같거나 비슷한 역설이다.34)

우리는 성육신 신학에 함의된 예수의 신성과 신비성이라는 형이상학적 요소를 걷어내고 성육신 종교학을 통해 형이하학적인 성육신의 의의를 고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육신적 사유 방식을 포월(匍越)적35) 성육신이라 칭할 수 있다. 성육신 종교학은 정통적인 성육신 이해인 초월적 성육신은 말할 것도 없고 초월성과 역사성을 동시에 긍정하는 포월적(抱越的) 성육신 이해와 달리 형이상학적으로 환원불가능한 반형이상적인 성육신적 사유이다. 왜냐하면 포월적(抱越的) 성육신 이해는 초월과 내재를 둘 다 함의하는 포월, 즉 안고 넘어선다는 의미의 포월이라면, 포월(匍越)적 성육신은 ‘이 땅’에 기어다니는(匍) 즉, 상황의 현실화를 통한 실천의 구체화(越)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성육신 종교학은 순수이념의 초월계와 그것의 그림자로서의 현실계로 파악하는 그리스 철학이 가지는 이층구조의 세계관이나 실체론적 실재론을 철저히 부정하고 철저 인간과 역사만을 인정하는 단층구조로서의 세계관을 지향한다.36)

성육신 종교학의 방법론적 두 토대는 역사적 예수의 탐구방법을 통한 “예수론(Jesuslogy)”과 상황과 실천으로부터의 방법론이다. 전자를 통해 착상되는 예수상(像)은 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일시적으로 인간 세상에 환생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땅위를 걷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고대 신화론 세계관에서의 형체변형(metamorphosis)에 가깝다.37) 이와 달리 가난한 시골 갈릴리 농어촌에서 어린 유년시절을 보내고 청년기 이후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피나는 노동을 하며 혼란한 세상 가운데 신의 뜻을 깊이 사색하고 기도한 사람이었다. “즉 예수는 인간의 몸을 입고 환생한 신이 아니라 인간의 말씀과 형태, 곧 그의 존재가 하느님의 뜻과 혼연일체가 되어 살았던 분이었다.”38) 이처럼, 예수의 신적 선재성이 제거된 예수 성육신의 의미는 역사 참여이다. 니터는 역사 참여를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그것은 단순히 감정이나 고통에 대한 연민(compassion))이나 감정이 개입된 친교(communion)만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를 위해 함께 행동하는 협력(collaboration)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타인의 참살이를 추구하되 바로 지금 그렇게 한다. 그런 참살이가 방해받으면 그리스도인은 상황을 바꾸고자 소매를 걷어붙이고 행동한다. 이렇게 역사 참여는 현세 조건을 개혁하는 행위를 뜻하기도 한다.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라 역사의 동인(動因)이 됨을 의미한다.39)

그 점에서 예수가 성육신한 이유의 토대가 되는 성육신 종교학의 의의는 인간 예수가 억눌리고 짓뭉개진 민중들의 피 울음의 역사적 상황을 직시하고 그것을 해방하여 결국 사회적 정의와 해방의 실천으로 환원하는 역사 동인의 주체 됨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역사의 동인이 ‘운동의 관념화’로 귀일 되어 소멸하지 않고 ‘오늘 여기’에 구체적으로 생동하는 ‘운동의 현실화’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성육신에서 예수는 인간이 신화(神化)할 모습이 아니라 현실 인간을 위해 우리들 사이에서 ‘지금 여기’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속에서 비천한 종의 모습으로 수육(受肉)한 인간 실존(Dasein)이다.40)

2. 증산의 인신강세
1) 증산 인신강세의 내용

증산 인신강세의 핵심은 인간이 신이 된 것(化神)이 아니라 원래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서구 기독교의 성육신의 관념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41) 앞서 언급한 예수의 성육신과 마찬가지로 증산의 인신강세 또한 종단의 교학적 측면에서 보면 증산의 신적 선재성과 신성이라는 형이상학적 논의로 완결되는 증산 신학으로 그칠 수 있다. 따라서 본 절에서는 성육신 신학이 아닌 ‘성육신 종교학’ 탐구와 같이 ‘증산인신강세 신학’이 아닌 ‘증산 인신강세 종교학’ 논의로 수렴하고자 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하강한 증산 인신강세가 기독교의 성육신에 영향을 받았다는 종교적 영향사는 대순사상의 한국적 종교 지형의 형태에서 나타난다. 한국 종교는 고조선, 부족국가 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쳐 구한말까지 이어지며 형성되었다. 우선 한국 종교의 원초적 형태는 무속신앙42)이었다. 이후 한사군 시대 중국의 한문 문화로부터 유교, 불교, 도교가 유입되어 토착화된 이른바 전통종교의 시대가 형성되고 구한말에는 서구문화의 유입과 더불어 기독교가 전래 된다.43) 그러니까 한국 종교 지형은 무속신앙인 “고유 신앙에 중국문화를 매개로 동양종교가 포괄된 뒤, 근 이천 년간이나 지속되어 온 전통 종교적 지형에 19세기 말부터 다시 아주 근본적인 구조적 변혁”을 거치면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44)

중요한 사실은 구한말 근본적인 종교 지형의 구조적 변혁이 이루어질 시점에 즈음하여 증산의 종교가 탄생하였고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여 증산에서 연원한 대순사상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종교학자 김종서는 한국 종교사의 특징을 간략하게 언급한 뒤 대순사상의 의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한국 종교는 원초 형태에서부터 동양종교와 서양종교를 번갈아 포괄해 내면서 토착성과 동양적 국지성을 우선 차례로 타파하였다. 그리고 서양문화를 포함한 통문화적(通文化的, cross-cultural)인 세계적인 차원에로 확대되는데, 그 결정판으로 대순사상은 당대에 등장하고 있다. 대순사상의 근본 틀이 유불도 어느 전통종교에 서양 기독교에 치우치지 않고, 역시 무속적 고유성을 바탕에 유지하면서 동서양 종교들을 균형 있게 포괄해 내고 있는 점은 중요하다.45)

대순사상은 무속과 유불도의 전통문화, 그리고 구한말 서양의 기독교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종교적 특징을 지니면서도 새로운 종교로 창교 된 동학을 넘어서는 종교적 의의를 가진다. 즉 새로운 종교로 창도된 동학은 한울님(侍天主)을 모시고 있을 뿐, 스스로 하느님(上帝)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한 전통종교에서 서양종교로 넘어가는 도중에 나타난 “과도기적 종교형태”이다. 반면, 대순사상은 증산이 신이 된 화신(化身)이나 성육신의 개념으로까지 발전한 동양종교와 서양종교를 균형 있게 포괄한 한국 최초의 ‘융화적 종교’이다.46) 따라서 증산의 인신강세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그러니까 동학을 넘어 증산이 출현한 것은 하느님으로서 ‘성육신(聖肉身)’ 하는 예수의 기독교로 대표되는 서양종교의 핵심적 특징을 더욱 철저히 포괄해 낸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신적인 존재가 되는 이른바 철저한 ‘화신(化身)’ 개념이 완성된 것은 단군 이래 증산에서 처음이다. 그리고 증산 사상의 여러 측면 중에서도 그런 개념이 가장 잘 구체화 된 것은 바로 대순사상에서 라고 할 것이다.47)

김종서는 대순사상의 인신강세는 인간계와 구천의 신명계의 일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일이라며 이는 “한국 종교 상징체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뜻하는 것이요, 한국인의 종교 인식 전체가 완전히 바뀌는 거대한 종교혁명의 기점”이라고 평가한다.48) 증산 인신강세의 특징에 내포된 외부 종교적 평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증산 인신강세의 주요한 내용적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인간이 신이 된 것(化神)이 아니라 원래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化身, 聖身)는 점이다. 대순사상의 이런 성신 개념은 세 가지 대순으로 이해된다. 첫째, 상제께서 성신을 감추시고 순회하신 것, 둘째, 그 성신을 나타내시고 순회하신 것, 셋째는 그 나타내신 성신을 거두시고 본디에 복귀에로 화천 하신 것이다.49)

2) 증산 인신강세의 종교학적 의의

증산의 강세에 대한 종교적 의의는 이 정도로 하고 왜 증산이 강세하였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본래 신명계의 신으로 있던 증산이 왜 인간계에 강세하였는가? 구천에 있던 증산이 이 땅으로 하강한 이유는 혼란에 빠진 천지를 바로 잡기 위해서였다. 『전경』은 증산 상제의 하강 이유를 공사, 교운, 예시에서 각각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상제께서 어느 날 종도들에게 「내가 이 공사를 맡고자 함이 아니니라. 천지신명이 모여 상제가 아니면 천지를 바로 잡을 수 없다 하므로 괴롭기 한량없으나 어찌할 수 없이 맡게 되었노라」고 말씀하셨도다.50)

상제께서 「 … 서양의 모든 문물은 천국의 모형을 본뜬 것이라」 이르시고 「그 문명은 물질에 치우쳐서 도리어 인류의 교만을 조장하고 마침내 천리를 흔들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데서 모든 죄악을 끊임없이 저질러 신도의 권위를 떨어뜨렸으므로 천도와 인사의 상도가 어겨지고 삼계가 혼란하여 도의 근원이 끊어지게 되니 … 신미(辛未)년에 강세하였노라」고 말씀하셨도다.51)

상제께서 구천에 계시자 신성ㆍ불ㆍ보살 등이 상제가 아니면 혼란에 빠진 천지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호소하므로 서양(西洋) 대법국 천계탑에 내려오셔서 삼계를 둘러보고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동토에 그쳐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三十년을 지내시면서 최 수운에게 천명과 신교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셨다가 갑자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년에 스스로 세상에 내리기로 정하셨도다.52)

윤용복은 상제의 하강 이유를 “혼란에 빠져 멸망에 이르게 된 인류를 구원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함”이라고 적고 있다.53) 상제의 하강 이유에는 두 가지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첫째는 세상의 구원이고, 둘째는 서양문명에 대한 적대감이다. 서양문명이 조선에 뿌려놓은 부정의 씨앗들과 지배층들의 탐욕이 결합되어 세상에 혼란이 왔으니 이를 구원하여 새로운 세상을 연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의 성육신 이유와 매우 닮아있다.

증산의 인신강세의 이유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개벽’이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천지공사를 통한 문명의 변혁’이다. 서구 문명은 이마두에 의해 문운(文運)이 열리고 문명신에 의해 이룩되었지만 그 문명의 본질은 세속주의, 물질 중심주의이다.54) 비록 서구의 문명이 천국의 모형을 본뜬 것이지만 그 문명은 물질에 치우쳐서 인류의 교만을 조장하고 천리를 흔들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죄악에 탐닉하여 신도의 권위가 떨어지고 천도와 인사의 상도가 어겨지고 삼계가 혼란하여 도의 근원이 끊어지게 되었다.55) 증산은 당시 개화파가 지향한 서구 근대문명의 과학주의와 물질 중심 문명의 수용을 비판하고 “정신문명의 진작을 통한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조화로 변혁된 문명을 이루고자 하였다.”56)

이로써 증산은 천지공사를 단행하였다. 그래서 증산의 천지공사를 통한 새 문명의 모델은 인간 마음과 무도(無道)로 인한 상극의 법칙에 따른 이기적 배타성, 공격적 지배성, 타자와의 갈등이 아니라 공동체적 협동, 조화, 평화적 공존을 지향한다. 즉 증산이 건설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새 문명의 모델은 도를 이루고 덕을 세우는 도성덕립(道成德立)의 문명이다. 이는 증산이 천지공사 이전의 세상인 선천시대를 묵은 세상으로 보고 새로운 도의 창조, 즉 광제창생을 위한 상생의 도를 위한 개벽의 필요성 때문에 강세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증산이 바라보는 묵은 하늘의 현실은 어떤 것인가? 『전경』은 묵은 세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상제께서 어느 날 종도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묵은 하늘은 사람을 죽이는 공사만 보고 있었도다. 이후에 일용 백물이 모두 핍절하여 살아 나갈 수 없게 되리니 이제 뜯어고치지 못하면 안 되느니라」 하시고 사흘 동안 공사를 보셨도다. 상제께서 공사를 끝내시고 가라사대 「간신히 연명은 되어 나가게 하였으되 장정은 배를 채우지 못하여 배고프다는 소리가 구천에 달하리라」 하셨도다.57)

증산은 일용 백물이 모두 핍절하고 장정이 배를 채우지 못하여 배고픈 울부짖음이 구천에 달하는 상극의 세상인 묵은 하늘이 고쳐지고 상생의 도로 새 질서가 건설되는 개벽 세상을 주창하였다. 증산이 설파한 새로운 도는 서구의 과학기술을 그대로 수용하고 도는 지켜야 한다는 선천의 도인 동도서기론의 입장과는 달리 조화와 상생을 지향하는 도를 가리킨다. 허남진은 증산이 제시한 새로운 도는 “기존 전통사상뿐만 아니라 서구 사상까지 궁극적 가치들을 두루 조화하여 통섭(統攝)한 개념”으로 여러 갈래의 문화의 정수를 뽑아 통일시키는 삼계, 즉 신명계, 인간계, 자연계의 기존 운행질서를 새롭게 개편하는 재창조와 창조적 통합으로 파악한다.58) 증산은 서양문명을 부정적 요소로 파악하고 있으나 천지공사를 위해서는 동양의 유불선 뿐 만 아니라 서양의 법인 기독교까지도 아울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 지나간 임진란을 최 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에 불과하고, 진묵(震默)이 당하였으면 석 달이 넘지 않고, 송 구봉(宋龜峰)이 맡았으면 여덟 달에 평란하였으리라. 이것은 다만 선ㆍ불ㆍ유의 법술이 다른 까닭이니라. 옛적에는 판이 좁고 일이 간단하므로 한 가지만 써도 능히 광란을 바로잡을 수 있었으되 오늘날은 동서가 교류하여 판이 넓어지고 일이 복잡하여져서 모든 법을 합하여 쓰지 않고는 혼란을 능히 바로잡지 못하리라.59)

증산은 서양문물과 서교의 법을 분리해서 이해한다. 즉 물질에 치우쳐 인류의 교만을 드러내고 자연을 정복하고 천리를 흔드는 서양문물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서교의 법은 포괄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증산은 서양문물은 수용하고 서교의 법은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다.60) 증산은 공사 1장 35절에서는 서양문물에 대해 긍정적이지만 행록 3장 33절에서는 서양문물과 서교의 법을 반대한다. 증산에게 나타나는 이러한 양가적 태도는 예시 73절, 동서가 교류하여 판이 넓어지고 복잡해졌으니 모든 법, 즉 동양의 유불선뿐만 아니라 서교의 법까지도 합해야 한다는 포괄적 입장으로 수렴된다. 증산의 이러한 포괄적이면서 다차원적인 창조적 통합의 목적은 새 문명의 건설에 있고 “천지공사는 상극의 도에 갇혀 살아온 생명의 원과 한을 풀고 인류의 생명 살림의 길로 인도한 종교적 행위”61)임을 보여준다. 증산은 이러한 새 문명을 ‘조화문명’으로 칭하고 이는 “서양과 동양, 사람과 자연, 사상과 사상, 문화와 문화, 종교와 종교를 뛰어넘어 전 인류가 하나로 사는 상생 문명”으로 파악한다.62)

그렇다면 증산이 인신 강세한 이유인 천지공사를 통한 개벽, 개벽의 구체적 내용인 상생은 무엇일까? 상생의 내용을 구체화한다면 증산의 인신 강세의 목적이 더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우선 증산은 “천지공사의 목적이 선천의 상극지리의 모순과 갈등을 풀어내어 후천을 상생지리로 개벽하여 새 문명을 건설”하는 것으로 본다.63) 이에 대한 허남진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증산의 천지공사는 선천의 사회적 모순이 만연한 낡은 질서를 개벽하고 상생과 조화의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기 위한 종교적 행위였다. 천지공사는 삼계를 아우르는 공사라는 점에서 삼계가 분리되어 있지 않은 유기체적 관점을 전제하고 있다. 상극과 그로 인해 발생한 원(冤)을 세상이 혼란하게 된 근본 원인으로 파악한 증산의 핵심과제는 원(冤)을 풀어내고 상생을 구현하여 개벽을 실현하는 것이었다.64)

증산은 천지공사의 핵심인 상생을 “우리의 일은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이니라. 남이 잘 되고 남은 것만 차지하여도 되나니 전 명숙이 거사할 때에 상놈을 양반으로 만들고 천인(賤人)을 귀하게 만들어 주려는 마음을 두었으므로 … ”65)라고 밝힌다. 즉 상생은 천리와 인사가 합치되는 원리로, 홀로 잘 되기를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살리는 이타적 생활이 요구되는 새 생활의 질서를 가리킨다. 요컨대 증산이 제시한 상생의 기본적인 이념은 ‘살림’이다. 그렇다면 상생의 기본 이념인 ‘살림’, 즉 남을 살리는 일의 구체적인 실천은 해원(解冤)과 보은(報恩)으로 나타난다. 이는 남에게 척을 짓지 않고 남에게 억울한 원한을 짓지 않고 척이 되어 보복하지 않고 남을 미워하지 않고 먼저 원한을 풀고 원한을 풀기 위해서는 상대를 사랑해야 하는 해원과 내가 입은 작은 은혜라도 갚을 수 있는 보은으로 구체화 된다.66)

그러므로 증산이 인신 강세한 이유는 상극이 상생으로 변하는 개벽 세상, 즉 신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 가는 신인조화(神人調化)67)의 세계를 지향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신인조화의 이념에서 “모두와 함께 한다”는 천인공공(天人公共)이 나오는데 “천인공공은 사람이 하는 일이 곧 하늘의 뜻이고, 하늘이 하는 일이 인간의 뜻”68)이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결국 하늘의 일을 이 땅에 역사화 시키는 주체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증산의 인신강세의 핵심적 특징은 한마디로 ‘인간’ 중심적이라 할 수 있다.69)

그러므로 증산의 인간강세의 종교적 의의는 귀천, 우열, 빈부, 강약, 차별, 살생, 불평등, 불일치, 부조화, 적대를 넘어 모두와 함께 하는 신명계, 인간계, 자연계가 포섭된 유기체적 상생이라는 정치적 의미가 함의되어 있다. 하지만 이를 역사화시키는 동력적 주체는 바로 인간이므로 증산의 인신강세의 종교적 의의는 ‘정치 지향적인 인간 중심주의’로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인신강세는 오늘날 인간이 종교라는 울타리에 갇혀 종교에 의해 인간이 규정됨으로써 빈부와 차별, 우열과 불평등이 합리화되는 역리의 시대에 하늘의 뜻을 깨달아 인간의 주체성을 확립하여 인간이 종교를 규정함으로써 ‘인간 됨’이 바로 서는 순리의 시대를 선포하는 선각자의 앞선 종지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안식일의 주인은 사람이라는 예수의 선포와도 일맥상통한다.

Ⅳ. 나가는 말

예수의 성육신과 증산의 인신강세의 신성적(神性的) 성격은 신앙적 차원에서만 의미를 지닌다. 이는 역사적이거나 과학적 사실로서가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만 논의되는 될 수 있는 신(교)학적 차원이다. 그러므로 성육신과 인신강세는 종교적 신앙 차원에서 신학적 성격과 교학적 측면에서 각각 성육신 신학과 인신강세 교학에서만 나름의 의미가 있는 신(교)학이다. 이런 방식은 객관적 탐구나 증명, 그리고 기술(記述)을 요구하는 종교학에서는 설득력이 감세 된다. 물론 예수의 성육신과 증산의 인신강세에서 신성과 인성의 측면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문제는 성육신 신학과 인신강세 교학에 치중할 것이냐, 아니면 성육신 종교학이나 인신강세 종교학에 집중할 것이냐이다. 전자는 신성을 전제한 인성으로서의 성육신과 인신강세에 경향(傾向)함으로써 형이상학적인 포괄적 연구방법을 지향하는 것이고, 후자는 신성을 거세하고 역사적 예수나 역사적 증산을 강조하는, 즉 인성의 측면에 경향하는 형이하학적인 비포괄적 방법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논문은 후자의 방식을 따라 예수의 성육신과 증산의 인신 강세의 의의를 탐색하였다. 따라서 이 연구는 증산의 인신강세와 예수의 성육신의 교리적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종교학적으로 고찰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그 의의를 탐색하는 것, 그것도 신(교)학적 입장에서가 아닌 형이하학적인 관점으로 드러난 종교 현상에 주목하여 그 의의를 살피는 것에 몰두하였다.

예수의 성육신과 증산의 인신강세는 당시 외세의 침탈과 지배계급의 수탈로 절박한 삶의 현장으로 내몰린 팔레스타인과 조선의 민중들이 저항하고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종교적 완충제였다. 현실의 폭력과 박해가 심하고 이에 대항할 수 없는 최소한 물리적 수단조차 없을 때 민중들은 해방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자신들의 고난을 종교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다. 예수의 성육신과 증산의 인신강세는 외세와 내세의 이중적 착취 구조 속에서 절규하던 민중들이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종교적 극복 장치로 등장한 신앙화의 산물이었다.70) 그 결과 예수와 증산의 시대적 배경의 교차 현상과 서발턴(subaltern)적인 종교적 의의가 도출될 수 있었다.

언급하였듯이, 이 논문은 기존의 연구방법인 성육신 신학과 인신강세 교학을 통한 종단적 해석은 차치하고 성육신 종교학과 인신강세 종교학적 측면에서 탐색된 예수의 성육신과 증산의 인신강세의 의의를 고찰하였다. 그러나 성육신과 인신강세 종교학은 신적인 차원이 철저히 탈각된 유물론적 해석이라는 비판의 요소가 내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육신과 인신강세 종교학은 초월성의 현재적 이입을 부정하며 철저 현재성을 통한 운동의 현실화를 지향함으로써 ‘관념화된 신’의 표상을 지양하는 검증적 학문으로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는 이 연구를 바탕으로 종교 현상학적인 방법으로 예수의 성육신과 증산의 인신 강세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모색하는 비교 연구를 차후의 연구 주제로 삼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Footnotes

1) 차선근, 「수운과 증산의 종교사상 비교 연구 – 하늘관과 수행관을 중심으로」, 『종교연구』 69 (2012), pp.225-226.

2) 예수의 탄생 시기와 출생지에 대해서는 복음서의 기록들이 상이하다. 우선 출생 시기에 대해서 마태복음은 헤롯 아켈레오 통치 시기인 주전 4년, 누가복음은 시리아 총독 구레뇨에 의해 실시된 호구조사와 연관된 주후 6년으로 기록한다. 출생지에 대해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베들레헴으로,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은 아무런 언급도 없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한국신학연구소 성서교재위원회, 『함께 읽는 신약성서』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2), pp.21-25, 안병무, 『갈릴래아의 예수』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0), pp.18-20, 김동건, 『예수 : 선포와 독특성』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8), pp.22-37. Gerd Theissen/Annette Merz, The Historical Jesus: a comprehensive guide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8), pp.153-155, 164-166 참조.

3) N. Perrin, D.C. Duling, 『새로운 신약성서 개론』 하, 박익수 옮김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1), p.623.

4) 한국신학연구소 성서교재위원회, 앞의 책, pp.19-20.

5) 같은 책, p.20.

6) 같은 책, pp.20-22.

7) 같은 책, pp.22-25; John Dominic Crossan, The Historical Jesus: the life of a Mediterranean Jewish peasant (San Francisco: HarperSanFrancisco, 1991), pp.17-18.

8) 한국신학연구소 성서교재위원회, 앞의 책, p.25.

9) John Dominic Crossan, The Historical Jesus: the life of a Mediterranean Jewish peasant, p.18.

10) 한국신학연구소 성서교재위원회, 앞의 책, p.26.

11) 같은 책, p.28.

12) 앨벗 놀런,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 정한교 옮김 (칠곡: 분도출판사, 1980), pp.39-40.

13) 한국신학연구소 성서교재위원회, 앞의 책, pp.31-32 참고.

14) 대순사상은 조선조 말엽 대종교가인 강증산(1871~1909)과 그의 종통과 유지를 계승한 조정산(趙鼎山: 趙哲濟, 1895-1958) 도주, 조정산의 종통과 유법을 이어받은 박우당(朴牛堂: 朴漢慶, 1917~1996) 도전에 의해 성립된 종교사상을 말한다. 대순종학 교재연구회, 『대순사상의 이해』 (포천: 대진대학교 출판부, 1998), p.56.

15) 같은 책, p.74; 김홍철 외, 『한국종교사상사』 Ⅳ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8), p.7.

16) 대순종학 교재연구회, 앞의 책, pp.57-59 참고.

17) 같은 책, pp.59-61 참고.

18) 같은 책, pp.61-62.

19) 박인규, 「대순사상의 구원론 연구」, 『대순사상논총』 30 (2018), p.101.

20) 『전경』 공사 1장 2절.

21) 대순종학 교재연구회, 앞의 책, pp.66-67.

22) 같은 책, p.75.

23) 여기서 ‘대체적’으로 네 개의 방법론이 있다고 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그리스도론의 방법론은 위로부터의 방법론과 아래로부터의 방법론이 있고, 아래로부터의 방법론의 한 흐름인 역사적 예수의 탐구 방법, 그리고 남미 해방신학의 그리스도론인 상황과 실천으로부터의 방법론이 있다. 역사적 예수의 탐구 방법은 광의적으로 볼 때 아래로부터의 방법론에 속한다. 하지만 협의적으로는 독립된 별개의 방법론으로도 분류할 수 있으므로 ‘대체적’으로 네 개의 방법론이 있다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김동건, 『그리스도론의 미래』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20), pp.26-51 참조.

24) 같은 책, pp.26-27. 위로부터의 방법론의 중요한 이론적 근거인 그리스도의 선재와 신성에 대한 성서적 전거는 요한서신(요 1:1 이하, 요일 1:1 이하)과 바울서신(고후 8:9, 빌 2:5 이하)이다. 위로부터의 방법론을 옹호하는 학자들은 고대교회의 터툴리안(Tertullianus), 오리게네스(Origenes),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카파도키아 교부들(Cappadocian Fathers), 중세의 아퀴나스(T. Aquinas), 안셀무스(Anselmus, Cantaberiensis), 종교개혁가 루터(M. Luther)와 칼뱅(J. Calvin), 현대 신학자 바르트(K. Barth), 브루너(E. Brunner), 몰트만(J. Moltmann) 등이 있다.

25) 20세기 틸리히, 판넨베르크, 큉의 아래로부터의 방법론은 19세기 아래부터의 방법론과 달리 그 내용이 상이한 형태로 나타나고 위로부터의 방법론과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자세한 것은 같은 책, pp.31-36 참조.

26) 같은 책, p.3.

27) 역사적 예수의 탐구방법에서는 예수의 메시아성을 전제하지 않지만 그 연구결과에 따라 예수를 한 명의 뛰어난 인물로만 인정하는 학자들과 메시아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귀결되는 학자들로 나뉜다. 전자는 라이마루스 (H.S. Raimarus), 슈트라우스(D.F Strauss), 르낭(J.E. Renan), 바이스(J. Weiss), 슈바이처(A. Schweitzer), 샌더스(E.P. Sanders), 크로산(J.D. Crossan), 펑크(R.W. Funk), 보그(M.J. Borg), 그 외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회원 대부분과 역사적 예수의 제3의 탐구(third quest)가 해당된다. 후자는 케제만(E. Käsemann), 폭스(E. Fuchs), 보른캄(G. Bornkamm), 에벨링(G. Ebeling), 예레미아스(J. Jeremias), 고펠트(L. Goppelt), 소극적이지만 타이센(G. Theissen), 그닐카(J. Gnilka), 한(F. Hanh) 던(J.D.G. Dunn)도 여기에 속한다. 같은 책, pp.39-40.

28) 같은 책, pp.37-41 참고.

29) 상황과 실천의 방법론을 따르는 학자들은 주로 남미 해방신학자들로, 대표적으로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과 칼케돈 교리를 수용하는, 즉 서구 그리스도론의 정통교리를 중시하는 보프(L. Boff)와 이러한 정통교리에서 자유로운 소브리노(J. Sobrino)가 있다. 같은 책, pp.42-43.

30) 같은 책, pp.42-45 참고.

31) “양극성(biopolarity)”과 “분화된 단일성(differentiated unity)”은 소브리노, “깨지지 않는 결속(an unbreakable bond)”은 스힐리벡스(E. Schillebeecks)가 고안한 개념이다. 폴 니터, 『예수와 또 다른 이름들』, 유정원 옮김 (칠곡: 분도출판사, 2008), pp.148-149 참고.

32) J. Sobrino, Spirituality of liberation: toward political holiness (Maryknoll, N.Y.: Orbis Books, 1988), p.4.

33) 서공석 외, 『내가 믿는 부활 : 삶의 신학 콜로키움』 (서울: 대화문화아카데미, 2012), p.198; 김종만, 「틱낫한의 ‘interbeing’의 관점으로 보는 개신교 재해석 : 성육신, 원수사랑, 예배」, 『사회사상과문화』 21 (2018), p.54에서 재인용.

34) 이신건, 『예수의 정체와 의미』 (서울: 신앙과지성사, 2013), p.66.

35) 포월(匍越)에 대해서는 김진석, 『초월에서 포월로』 (서울: 솔, 1994) 참조.

36) 한국신학연구소 성서교재위원회, 앞의 책, p.157.

37) 윤철호,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통전적 예수 그리스도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3), p.186.

38) 김경재, 『이름없는 하느님』 (서울: 삼인, 2010), p.95, p.98; 김종만, 앞의 글, p.57에서 재인용.

39) 폴 니터, 앞의 글, p.150.

40) 변선환 아키브 편집, 『그리스도론과 신론』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8), p.108.

41) 김종서, 「더 넓은 대순사상의 이해를 향하여」, 『대순진리학술논총』 1 (2007), p.131; 김종서, 「동서 종교간 충돌과 현대 한국의 역동적 신앙」, 『종교와 문화』 16 (2009), p.30; 차선근, 「대순진리회 상제관 연구 서설 (Ⅰ)」, 『대순사상논총』 21 (2013), p.102. 서론에서 밝혔듯이 이 주장은 차선근의 입장이 아니라 김종서의 의견을 차선근이 소개하고 있는 것임을 밝힌다.

42) 무속신앙에 대한 명칭은 학자별로 다양하다. 우선 이능화는 무속(巫俗)으로, 유동식은 무교(巫敎), 조흥윤은 무(巫)라고 칭한다. 그리고 샤머니즘이라고도 사용된다. 이에 대해서는 김승혜ㆍ김성례 외, 『그리스도교와 무교』, (서울: 바오로딸, 1998), pp.50-53 참조.

43) 김종서, 「더 넓은 대순사상의 이해를 향하여」, 『대순진리학술논총』 1 (2007), p.129.

44) 같은 글, pp.129-130.

45) 같은 글, p.130.

46) 같은 글, p.131; C. A. Clark, Religions of Old Korea (New York: Fleming H. Revell, 1932), p.16, pp.169-170.

47) 김종서, 앞의 글, p.131.

48) 같은 글.

49) 장병길, 「대순신앙의 구조」, 대순종교문화연구소, 『대순사상의 현대적 이해』 (포천: 대순진리회출판부, 1983), p.60.

50) 『전경』, 공사 1장 9절.

51) 같은 책, 교운 1장 9절.

52) 같은 책, 예시 1절.

53) 윤용복, 「대순진리회의 신관념(神觀念)의 특성」, 『대순사상논총』 21 (2013), p.12.

54) 허남진, 「강증산의 ‘개벽’과 새로운 문명」, 『대순사상논총』 32 (2019), p.115.

55) 『전경』, 공사 1장 9절, 교운 1장 9절, 예시 1절.

56) 허남진, 앞의 글, pp.115-116.

57) 『전경』, 교운 1장 11절.

58) 허남진, 앞의 글, p.119; 『전경』, 예시 12절.

59) 『전경』, 예시 73절.

60) 이에 대해서는 『전경』, 공사 1장 35절과 행록 3장 33절 참조.

61) 허남진, 앞의 글, p.119.

62) 같은 글, p.120.

63) 같은 글, p.124.

64) 같은 글, pp.124-125.

65) 『전경』, 교법 1장 2절.

66) 허남진, 앞의 글, p.126; 『전경』, 교법 2장 44절, 『전경』, 교법 3장 4절.

67) 신인조화(神人調化)는 서로 잘 어울리게 한다는 조화(調和)와 만물을 창조하고 기르는 대자연의 이치를 말하는 조화(造化)의 합성어로 신과 인간의 합일인 신인합일(神人合一), 신과 인간이 함께 이루어나간다는 신인공공(神人公共)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조화의 정점은 사상적인 조화를 넘어 신과 인간과의 조화이다. 노길명, 「대순사상의 신인조화와 사회변혁」, 『대순사상논총』 3 (2008), p.94; 허남진, 앞의 글, p.123.

68) 허남진, 앞의 글, p.123.

69) 윤용복, 「대순진리회의 신관념(神觀念)의 특성」, 『대순사상논총』 21 (2013), p.22.

70) 정승우, 『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 (서울: 책세상, 2005), p.83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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