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종교적 대상으로서의 신(神)에 관한 논의는 종교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기원을 가지고 있다. 신(神) 관념의 기원이 곧 종교의 기원으로까지 다루어지는가 하면, 종교의 정의를 내리는데 있어서도 “신을 대상으로 하는 하나의 인간행위”로까지 규정짓기도 한다.
신(神)은 인간의 종교심의 대상이 되는 초인간적 위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정의되거나 명명(冥冥)한 중에 존재하며 불가사의한 능력을 가지고 인류에게 화복(禍福)을 내린다고 믿어지는 신령(神靈) 곧 종교상 귀의하고 또 두려움을 받는 대상으로 규정된다.1)
한편 신명(神明)은 하늘과 땅의 신령이란 뜻으로 신(神)의 준말이다.2) 이외에도 신명은 사람의 마음이나 정신, 신처럼 밝음, 신성함, 영험이 있음 등의 뜻으로 사용하는 용어다.3) 『주역(周易)』 「설괘(說卦)」에 “옛날 성인(聖人)이 역(易)을 지은 것은, 신명(神明)에 그윽이 이끌려 점(占)대를 만들었다.”라 했다.4)
일반적으로 신명(神明)은 첫째, 하늘과 땅의 신령, 둘째, 사람의 마음 또는 정신, 셋째, 신(神)처럼 밝음, 넷째, 신성(神聖)함, 다섯째, 영험(靈驗)이 있음 등의 뜻을 가진다.5) 이 글에서는 신명을 신과 동일한 용어로 보고 논지를 전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뜻과 세 번째 뜻, 그리고 네 번째 뜻과 다섯 번째 뜻을 종합하여 이해하였다. 흔히 신명은 신과 거의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고 이해되어 왔다.
이강오(1920~1997)는 증산교 신관의 특징을 의인신적(擬人神的) 다신관(多神觀), 신인동형적(神人同形的) 신관이라고 주장하면서, 증산의 신격은 유일신(唯一神)이라기보다는 지도적(指導的) 일신(一神)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6)
임영창은 『증산신학개론』에서 신과 신명은 내용이 같은 어휘이고, 신은 정신이라는 용어로 쓰일 때도 있지만 신명을 인격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신명의 분류라는 항목에서 첫째, 신명류(神明類)에서 지역별, 기능별, 가문 신명류, 원신(冤神)ㆍ역신류(逆神類), 지하명부신(地下冥府神), 기타로 나누고 있고, 둘째, 왕류(王類), 셋째, 신장류(神將類), 넷째, 정류(精類), 다섯째, 기타류로 분류하고 있다. 이밖에 그는 신명계에 포함되지 않는 수기(水氣), 지기(地氣) 등의 기운은 비인격적인 것으로 파악한다.7)
유병덕(1930~2007)은 한국 신종교의 사상들을 각기 최제우의 동학사상, 김항의 정역사상, 강일순의 신명사상, 나철의 삼일철학, 박중빈의 일원철학으로 규정한 바 있다.8) 한국 신종교 가운데 증산사상에서 신명사상을 가장 특징적으로 체계화시켰다고 평가한 것이다.
김탁은 『대순전경』에 나타나는 신격들의 역사적 유래와 기원에 대해 상당히 밝혔으며, 보편성과 신앙성이라는 두 축을 설정하여 증산교의 신격들을 여러 계열로 분류했다.9)
이경원은 대순사상에서의 신 개념을 신은 가치의 척도이면서 만물의 근원이 되며, 기운(氣運)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인간 사후의 존재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대순사상에서의 신은 다신론(多神論)과 범신론(汎神論), 또는 만유신론(萬有神論)의 형태를 두루 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대순사상의 신관은 상제라는 최고신의 권능과 주재에 의해 체계적인 통일의 모습을 이룬다는 특징을 지닌다고 강조했다.10)
최동희와 이경원은 증산의 신관에 나오는 다양한 신격(神格)을 신의 명칭에 따라 씨족신, 기능신, 자연신, 최고신으로 분류하고, 공간적으로는 천신(天神), 지신(地神), 인신(人神)으로 분류하기도 한다.11)
윤용복은 대순진리회 신 관념의 특성을 다신교(多神敎)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주장하고, 인격적 요소가 비인격적 요소보다 우위에 있으며, 인격적 존재인 상제가 우주적 규범을 재배치한다는 독특성을 지녔고, 인간적 기원을 지닌 신들이 많으며 특히 인간이 신격화되는데 아무런 거부감도 없다고 주장했다.12)
전반적으로 지금까지의 증산의 신관에 대한 논의는 정의, 분류, 특징을 일반적으로 서술하는데 그친 감이 있다. 앞으로 타종교와의 비교연구와 신관 자체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연구가 요청된다.
이 글에서는 증산이 주장한 신명의 개념과 위격에 대해 신명과 인간의 관계, 신명의 위격과 분류, 신명의 역할과 능력, 신명의 위상과 변화, 신명의 해원과 이상사회 등의 절로 나누어 살펴본 다음, 증산의 신명사상의 특징을 신인상관론, 신인감응론, 신인순환론, 신인공존론, 신인동질론 등으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이 글은 대순진리회의 경전인 『전경(典經)』 12판(1989)을13) 주된 인용서적으로 삼는다.
Ⅱ. 증산의 신명관(神明觀)
『전경(典經)』에는 신(神)의 의미를 담고 있는 다양한 명칭이 등장한다. 즉, 신(神), 신명(神明), 영(靈), 귀신(鬼神), 혼(魂), 백(魄) 등의 용어가 보인다. 이들은 제각기 고유한 개념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대체로 인간과 상대하고 있는 불가시적(不可視的)인 신비(神秘)의 존재라는 점에서 보편적 의미의 신(神)의 개념과 동일하게 사용되었다.
먼저 신 또는 신명에 대해 설명한 가장 대표적인 『전경』의 구절은 다음과 같다.
김송환이 사후(死後)일을 여쭈어 물으니 상제께서 가라사대 「사람에게 혼(魂)과 백(魄)이 있나니,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神)이 되어 후손들의 제사를 받다가 사대(四代)를 넘긴 후로 영(靈)도 되고 선(仙)도 되니라. 백은 땅으로 돌아가서 사대가 지나면 귀(鬼)가 되니라.」하셨도다.14)
여기서 주목할 점은 혼(魂), 백(魄), 영(靈), 선(仙), 귀(鬼) 등의 용어는 이 구절에만 보인다는 사실이다. 증산은 인간의 사후존재양식에 대해 이러한 다양한 용어를 사용했다. 증산의 핵심적인 주장은 “사람의 혼은 하늘로 올라가 신이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증산의 신관은 한 마디로 말해 만물개유신성론(萬物皆有神性論)으로 규정할 수 있다. 증산은 “천지간에 가득 찬 것이 신(神)이니라.”라고 말하여, 만물에 신이 깃들어있다고 주장하였다.
천지(天地)에 신명(神明)이 가득 차 있으니, 비록 풀잎 하나라도 신(神)이 떠나면 마를 것이며, 흙 바른 벽이라도 신이 옮겨가면 무너지나니라.15)
증산은 들판에 무수히 피어나는 풀잎 하나에도 신이 있어서 그 신이 떠나면 풀이 말라죽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흔히 무생물체로 여겨지는 집의 벽에도 신이 있어서 그를 주관하는 신이 떠나면 무너진다고 주장한다. 이는 천지만물에서 일어나는 온갖 현상과 사건의 배후에 신이 있거나 작용한다는 주장과 믿음이다. 결국 증산은 온갖 현상이 신(神)이라고 주장하며,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신이 작용하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전경』에 나오는 신격(神格)을 가진 신(神)과 관련된 용례는 다음과 같다.
신(공사 1장 29절, 교법 1장 49절, 교법 1장 50절, 교법 3장 2절), 호소신(好笑神)(공사 1장 16절), 통정신(通精神)(권지 1장 11절), 척신(행록 3장 16절, 행록 4장 47절, 교운 1장 2절, 교법 2장 14절), 선령신(先靈神)(교운 1장 33절, 교법 1장 54절, 교법 2장 14절, 교법 2장 36절), 황천신(黃泉神)(공사 1장 29절, 공사 3장 23절), 중천신(中天神)(공사 1장 29절), 서신(西神)(예시 30절), 배은망덕만사신(背恩忘德萬死神)(공사 3장 9절), 만사신(萬死神)(교운 1장 50절), 백복신(百伏神)(교운 1장 50절), 원통(冤痛)하게 죽은 신(교법 1장 47절), 원통하지 않게 죽은 신(교법 1장 47절), 동양의 모든 도통신(道通神)(공사 3장 15절), 삼십육만신(三十六萬神)(교운 1장 61절), 보은신(報恩神) (공사 3장 18절), 천하자기신(天下自己神)(공사 3장 39절), 천하음양신(天下陰陽神)(공사 3장 39절), 천하통정신(天下通情神)(공사 3장 39절), 천하상하신(天下上下神)(공사 3장 39절), 천하시비신(天下是非神)(공사 3장 39절), 황극신(皇極神)(공사 3장 22절), 무극신(无極神)(예시 88절), 아표신(餓殍神)(권지 1장 8절, 예시 11절), 만고역신(萬古逆神)(공사 3장 19절, 교법 3장 6절), 역신(逆神)(공사 3장 19절, 교법 3장 6절), 지방신(地方神)(교운 1장 63절), 동양의 문명신(文明神)(교운 1장 9절), 문명신(예시 12절), 지하신(地下神)(교운 1장 9절), 동양(東洋)의 도통신(道通神)(권지 2장 37절, 예시 12절), 선령(先靈)(행록 4장 44절), 전승자(戰勝者)의 신(교법 2장 23절), 패전자(敗戰者)의 신(교법 2장 23절), 예고신(曳鼓神)(제생 11절), 예팽신(曳彭神)(제생 11절), 석란신(石蘭神)(제생 11절), 원신(元神)(예시 3절), 군자신(君子神)(예시 50절)
『전경』에 신(神)이 접미사로 사용되어 앞에 나오는 어떠어떠한 특성을 나타내는 내용의 신으로 나오는 경우는 모두 53번 나온다.
그런데 증산은 신(神)(행록 3장 44절)이라는 용어를 신격을 지닌 존재라는 의미와 달리 단독으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인간의 마음은 귀신의 중추기관이요, 문이며, 길이다. 중추기관을 여닫고, 드나드는 문과 오가는 길의 신(神)은 때로는 선하기도 하고 때로는 악하기도 하다.”라는 구절에 나온다. 여기서는 귀신과 신이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신이라는 용어가 독자적으로 쓰였으며, 신에 대한 여러 서술이 언급되는 구절이다. 그리고 행록 4장 54절에 증산과 어릴 적에 같은 서당에 다니다가 죽은 신이 언급된다. 공사 1장 29절에서는 황천신과 관련되어 신이 독자적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교법 1장 49절에서는 신이 전체적 신적 존재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교법 1장 50절의 신은 인간 사후의 존재양식에 대한 내용에서 언급되었고, 교법 2장 23절의 신은 전승자의 신과 패전자의 신을 대변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을 따름이다. 또 교법 3장 2절에서 증산은 “천지(天地)에 신명이 가득 차 있으니, 비록 풀잎 하나라도 신(神)이 떠나면 마를 것이며, 흙 바른 벽이라도 신이 옮겨가면 무너지느니라.”라고 주장했다.
한편 『전경』에는 신도(神道)(공사 1장 3절, 교운 1장 9절, 예시 9절, 예시 73절), 신교(神敎)(교운 1장 9절), 신망(神望)(교법 1장 25절), 신인(神人)(행록 2장 3절, 행록 3장 10절, 행록 3장 34절), 신벌(神罰)(교법 1장 32절), 신응(神應)(교법 2장 23절) 등의 용례도 확인된다.
그리고 『전경』에는 척(행록 4장 47절, 공사 2장 4절, 교법 2장 44절, 교법 3장 4절, 예시 17절), 척신(행록 2장 16절, 행록 4장 47절, 교법 2장 14절) 등의 용례도 보인다. “척”을 척(斥)이나 척慼)으로 표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굳이 한자로 표기하려면 척(隻)으로 써야 한다.16) 이와 관련하여 척지다는 “서로 원한을 품게 되다.”는 의미로 사용되며, 척짓다는 “척질 일을 만들다.”는 의미로 사용된다.17) 척신이라는 용례에서 알 수 있듯이, 척신은 “척 즉 원한을 품은 신”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인간이 지니는 척이나 원한은 단순히 인간의 감정상태를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라 원한을 품은 신격으로까지 믿어졌던 것이다.
또 증산은 복마(伏魔)(교법 2장 15절)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엎드려 숨어있는 마귀 또는 악마”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는데, 복마라는 용어에서 증산이 신명들을 선신(善神)과 악신(惡神)으로 나누어보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전경』에서 신명(神明)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구절은 다음과 같다.
신명(행록 1장 29절, 행록 1장 38절, 행록 2장 20절, 행록 4장 8절, 행록 4장 11절, 행록 4장 40절, 행록 4장 54절, 행록 5장 4절, 공사 1장 1절, 공사 1장 3절, 공사 1장 10절, 공사 1장 16절, 공사 1장 29절, 공사 2장 19절, 교운 1장 8절, 교운 1장 9절, 교운 1장 20절, 교법 1장 29절, 교법 1장 66절, 교법 2장 17절, 교법 2장 44절, 교법 3장 1절, 교법 3장 2절, 교법 3장 4절, 교법 3장 22절, 교법 3장 44절, 권지 1장 9절, 예시 7절, 예시 9절, 예시 10절, 예시 17절, 예시 43절, 예시 67절)
이와 같이 『전경』에 신명이라는 용례는 총 33번 나온다. 이 외에도 『전경』에는 신명이라는 용례가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신명공사(공사 1장 12절), 신명들(행록 1장 29절, 공사 2장 19절, 교법 1장 29절, 교법 1장 42절, 교법 3장 5절, 교법 3장 22절, 교법 3장 44절), 대신명(大神明)(행록 4장 8절, 공사 2장 5절), 천지신명(天地神明)(공사 1장 9절, 교법 1장 42절), 후사를 못 둔 신명(공사 1장 29절) 동학신명(공사 2장 19절) 조선신명(朝鮮神明)(예시 25절), 도술신명(道術神明)(공사 2장 4절), 동학신명(東學神明)(공사 2장 19절), 복중팔십년신명(腹中八十年神明)(공사 3장 39절), 청국(淸國) 만리장 신명(예시 69절), 서양신명(西洋神明(예시 29절), 신명계(神明界)(교운 1장 9절), 신명시대(神明時代)(교법 3장 5절), 부안(扶安)지방 신명(교운 1장 63절), 신명계(교운 1장 9절), 조선신명(朝鮮神明)(예시 25절), 서양신명(西洋神明)(예시 29절)
이처럼 『전경』에 어떠어떠한 신명이라는 용례와 신명이 들어간 용례는 모두 26번 나온다.
증산은 귀신(鬼神)이라는 용어도 사용했는데, 귀신(행록 3장 44절, 공사 3장 40절, 교운 1장 19절, 교운 1장 31절), 악독한 귀신(교법 1장 46절), 죽은 거지의 귀신(교법 1장 48절), 귀(鬼)(교법 1장 50절) 등이 그 용례다. 나아가 증산은 귀신세계(鬼神世界)(예시 46절)라는 글을 써서 벽에 붙이게 했다. 그리고 증산은 천지귀신주문(天地鬼神呪文)(공사 3장 40절)이라는 용어도 사용했다.
또 증산은 다양한 종류의 신장(神將)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신장(행록 1장 35절), 도로신장(道路神將)(권지 1장 13절), 괴질신장(怪疾神將)(제생 23절), 사십팔장(四十八將)(행록 2장 10절), 만수(萬修)(공사 3장 21절), 등우(鄧禹)(공사 3장 28절), 마성(馬成)(공사 3장 28절), 오한(吳漢)(공사 3장 28절), 이십사장(二十四將)(공사 3장 28절), 이십팔장(二十八將)(행록 2장 10절, 공사 3장 28절), 오방신장(五方神將)(행록 2장 10절, 행록 4장 39절), 육정육갑(六丁六甲)(행록 5장 21절, 예시 88절), 동서남북중앙신장(東西南北中央神將)(제생 11절) 등이 그 용례다.
이 밖에도 『전경』에는 선녀(행록 1장 10절, 행록 5장 15절, 행록 5장 21절, 공사 3장 6절), 후천진인(행록 1장 22절), 명부사자(행록 1장 34절), 천존(행록 2장 2절), 신인(행록 3장 34절), 조왕(행록 4장 36절), 신선(행록 5장 25절, 공사 2장 3절, 교법 3장 16절, 예시 28절), 망량(공사 1장 26절), 선인(仙人) (공사 3장 3절), 해왕(海王)(공사 3장 6절), 산군(山君)(공사 3장 6절), 신성(神聖)(교운 1장 9절, 교법 3장 26절, 예시 1절), 불(佛)(교운 1장 9절, 예시 1절), 보살(菩薩)(교운 1장 9절, 예시 1절), 하느님(교운 1장 25절, 예시 9절), 하늘에서 으뜸가는 임금(교운 1장 60절), 영(靈)(교법 1장 50절), 선(仙)(교법 1장 50절), 우사(雨師)(권지 1장 16절), 천상벽악사자(天上霹惡使者)(권지 2장 3절), 미륵불(彌勒佛)(예시 86절) 등의 신격(神格)에 관한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이처럼 『전경』에는 많은 다양한 신(명)들이 등장한다. 이에 대해 증산은 교법 3장 22절에서 조선 즉 우리나라가 신명들을 유달리 잘 대접하는 전통이 있는 나라라고 주장하였다. 세계사에 그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신들이 있다고 믿는 믿음의 역사가 우리나라에 오래전부터 전해져 왔다는 주장이다. 신들도 그들을 잘 대접하는 나라에 많이 관여하고 영향을 준다는 생각과 믿음이 반영되었다. 한 마디로 증산은 한국을 “신(명)들의 나라” 또는 “다수의 다양한 신들이 대접받는 나라”로 규정하고 있다.
증산은 삼계(三界)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있으며(공사 1장 1절, 공사 1장 2절, 공사 1장 3절, 공사 1장 4절, 공사 1장 9절, 교운 1장 17절, 권지 1장 11절, 권지 1장 21절, 예시 1절, 예시 5절, 예시 7절, 예시 8절, 예시 10절), 삼계공사(三界公事)(공사 1장 3절, 예시 4절, 예시 5절)와 삼계대권(三界大權)(공사 1장 1절, 공사 1장 2절, 공사 1장 4절, 권지 1장 11절, 권지 1장 21절, 예시 17절)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전경』 「예시」 5절에서 “그 삼계공사는 곧 천(天), 지(地), 인(人)의 삼계를 개벽함이요.”라 했다. 따라서 증산은 인간을 둘러싼 우주(宇宙)의 구조인 삼계를 동양의 전통적인 입장에서 천계(天界), 지계(地界), 인계(人界)로 구분하였다. 이는 각기 천상계(天上界), 지상계(地上界), 지하계(地下界)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증산은 이마두(利瑪竇) 즉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의 가장 두드러진 업적에 대해 교운 1장 9절에서 인류사는 곧 “천국 건설”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향해 이루어진 노정이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증산은 마테오 리치 이전의 시대에는 천상계, 지상계, 지하계의 삼계가 서로 넘나들지 못하는 폐쇄된 공간으로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증산은 “천국을 본뜨는 일”이 인류의 가장 큰 목표와 이상이라고 주장했으며, 현대문명의 본질과 바탕에는 신적 세계인 천국이 있다는 종교적 설명도 제기하였다.
증산은 교법 3장 5절에서 자신이 살았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를 “신명시대(神明時代)”라고 불렀다. 신명들이 행세하는 시대라고 규정한 것이다. 신명시대는 신명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대라는 뜻이며, 신명들이 이 세상의 역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시간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증산은 우주(宇宙)의 신성(神性)을 신(神) 또는 귀(鬼)라고도 표현했다. 귀도 신명의 일종으로 파악한 듯하다. 그리고 증산에게 있어서 신명세계는 귀신세계이기도 하다. 예시 46절에서 천지(天地) 즉 하늘과 땅이라는 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해, 달, 금수, 인간 등의 모든 유형적인 사물들은 모두 귀신세계로 환원되어질 수 있으며, 또 귀신세계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증산은 공사 3장 40절에서 아주 큰 사물부터 아주 미세한 사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이 천지 사이에 있는 귀신들에 의해 지배받고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증산은 교운 1장 19절에서 “귀신들 즉 신명들과 함께 천지공사를 본다.”고 주장하였다. 귀신은 모든 만물이 지닌 생명 그 자체이며, 진리이다. 따라서 신명 또는 귀신은 인간 존재의 근원을 밝히는데 있어서 물질적이고 유형적인 배경 이외에 정신적이면서 무형적(無形的) 세계의 배경을 이룬다.
그리고 하늘에는 아홉 개의 많은 하늘<천(天)>이 있다고 주장한 증산은 그만큼 많은 수의 신격(神格)이 높고 높은 하늘에 존재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는 그의 “여러 신성(神聖), 불(佛), 보살(菩薩)”로 표현되는 많은 신들의 간절한 호소에 의해 지상으로 강림했다는 선언에서 잘 알 수 있다. 당시 신의 세계인 신명계 역시 엄청난 겁액으로 표현되는 위기상황에 처해져 있었다고 주장한 점이 특기할 만하다.
한편 증산이 천지공사(天地公事)와 비슷한 뜻을 지닌 명부공사(冥府公事)를 했다는 전언도 있다.(공사 1장 3절) 여기서 명부공사는 삼계공사(三界公事)의 일부로 지칭된다. 공사 1장 5절에서는 “명부(冥府)의 착란에 따라 온 세상이 착란하였으니, 명부공사가 종결되면 온 세상 일이 해결되느니라.”라 했다. 그리고 공사 1장 7절에서 증산은 명부공사를 행했는데, 조선명부, 청국명부, 일본명부에 각각 전명숙, 김일부, 최수운으로 하여금 주장하게 했다.
이외에도 증산은 “천지대신문(天地大神門)을 열고 공사(公事)를 행하셨도다.”(공사 2장 6절), “대신문(大神門)을 열어 49일을 한 도수로 하여 동남풍을 불어 일으켜 서양세력을 꺾으리라.”고 말하고 공사를 보았다.(예시 24절), “천지대팔문도수(天地大八門度數)”(예시 31절) 등의 용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천지공사를 부연하여 설명했다. 여기서도 “크게 신문(神門)을 연다.”는 말은 최고신의 주재 아래 여러 하위신들이 모여든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증산은 인간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현상의 이면에 신명의 활동과 작용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신명은 인간사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신적 존재다. 증산은 관운장(關雲長)의 신명이 “서양에 가서 대란(大亂)을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다.(행록 4장 12절) 인간이 사는 세상에 전쟁이나 난리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신명의 작용 때문이라는 말이다. 또 증산은 “악독한 귀신”(교법 1장 46절)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젊은 부인이 남편이 죽은 후에 따라 죽은 일을 가리켜 증산은 악독한 귀신이 무고한 인명을 살해했다고 평가했다. 권지 2장 37절에서는 진묵(震默)이라는 신명이 동양의 많은 도통신들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넘어가 서양의 문화를 계발시키는 일에 힘껏 노력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증산은 김갑칠에게 “우사(雨師)를 너에게 붙여 보내리니 곧 돌아가되, 도중에서 비가 내려도 몸을 피하지 말라.”라고 말했다고 전한다.(행록 4장 31절) 우사라는 신명은 비를 맡은 신으로 인간계에 비를 내리게 하는 존재라고 믿어진다.
증산은 “이제 해원(解冤)의 때를 당하여 모든 신명이 신농(神農)과 태공(太公)의 은혜를 보답하리라.”고 주장했다.(예시 22절) 그는 신농씨가 농사와 의약(醫藥)을 인류에게 가르치고 강태공이 인류에게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술법을 천하에 내어놓은 일에 대해 이제 신명들이 그 은혜에 보답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교법 2장 44절에 나오는 척은 척신이나 척을 지닌 신명(神明)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억울한 짓을 하면 도리어 자신에게 척이 되어 앙갚음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인간세계에서 상대방을 미워하는 행위는 곧 상대방의 신명이 척이 되게 만드는 일이다. 또 교법 1장 29절에 따르면 신명은 인간들이 자신의 자격에 합당하지 않은 자리를 탐내면 등을 쳐서 물리치는 존재이며, 어떤 사람이 덕을 닦는 일에 힘쓰며 선한 마음을 지니면 신명들이 마땅한 자리를 마련해 받드는 존재다.
증산은 “육정육갑(六丁六甲)을 쓸어들일 때에는 살아날 자가 적으리로다.”라고 말하여, 신병(神兵)들이 모여들어 사람들을 심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교법 3장 24절에서 신명은 사람에게 붙어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감시하는 존재라고 한다. 또 교법 3장 44절에서 증산은 자신이 이 세상에 다시 오는 때, 즉 지상에 이상사회가 이루어지는 때가 되면 화려한 전각이 엄청나게 많이 세워질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때가 오면 신명들이 그곳에 들어올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옷과 밥을 대접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동시에 신명은 이상향인 그곳에 오를 자격이 없는 인간들의 목숨을 앗아갈 위협적인 존재로도 여겨진다. 교법 3장 5절에서 증산은 인간들이 죄를 짓는다면 신명들이 불을 내뿜는 무시무시한 칼을 휘두르며 그 죗값을 갚으라고 요구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당하는 사람들은 정신줄을 놓게 될 정도로 떨게 되리라고 예언한다.
증산은 이상향인 후천선경(後天仙境)이 지상에 세워질 때가 되면 다음과 같은 세상이 전개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후천에는 … 모든 일은 자유욕구에 응하여 신명(神明)이 수종(隨從)들며 … 18)
원래 수종은 “남을 따라다니며 시중을 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신명인간수종론(神明人間隨從論)이 전개되었다. 후천이 되면 신명이 인간의 부림을 받게 될 것이라는 믿음과 주장이다. 여기서 무엇보다 눈여겨볼 점은 선천과 후천에서의 신명의 위상에 엄청난 변화와 반전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증산은 선천과 후천의 변화에 따라 신인관계의 완벽한 역전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즉 선천에서는 인간이 신명에게 휘둘리고 그 명령을 따르는 입장이었지만, 후천이 되면 오히려 신명들이 인간들의 명령을 떠받들고 따를 것이라는 주장이다. 신과 인간의 관계가 반전을 이루어 역전될 것이라는 종교적 희망과 전망이 제기된 것이다.
선천은 “비겁(丕劫)에 쌓인 신명과 창생”(공사 1장 1절)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계와 신명계 모두 큰 겁액에 빠져 있는 불완전한 상태에 처해 있는 시대였다. 이러한 처지의 신명과 인간을 구원하여 각기 안정(安定)을 누리게 하는 것이 증산이 행한 천지공사(天地公事)의 목표이며, 그 결과 이 땅위에 이루어질 새 세상이 바로 천지개벽된 후천선경(後天仙境)이다. 이러한 일에 대해 증산은 “오직 내가 지어 만드는 것”(공사 1장 2절)이라고 말하여, 자신이 처음으로 행하는 일이라고 천명하였다. 따라서 선천에서 후천으로 개벽되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은 오로지 증산에 의해 처음으로 제기되는 파천황적인 종교적 대사건으로 믿어진다. 선천에서는 신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제한된 능력을 가진 불완전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 증산의 주장이다. 이에 따르면 엄청난 재앙에 휩싸인 신들은 증산이 행하는 천지공사의 결과로 이 세상에 전개된다는 후천선경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완벽한 존재로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선천(先天)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相克)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三界)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災禍)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공사 1장 3절)라는 증산의 세계관과 그에 대한 진단이 전한다. 이러한 증산의 주장에 따르면 천, 지, 인 삼계 전체가 원한이 맺히고 쌓여 온 세상이 참혹한 재앙으로 가득 찼다고 한다. 천상계, 인간계, 지하계로 표현되는 삼계는 인간과 신명이 사는 세계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즉 신과 인간이 함께 공멸의 극한적 한계상황에 다다랐다는 종교적 진단이다.
후천이 되어야 비로소 신도 인간과 함께 진정 완성될 것이라는 주장이 증산이 예언한 핵심 가운데 하나다. 이에 따라 선천에서의 신명의 역할과 후천에서의 신명의 역할이 전혀 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증산은 후천이 되면 인간이 신을 부리는 시대가 전개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는 증산이 행한 종교적 행위인 천지공사(天地公事)의 결과로서 이루어지는 이상세계에 대한 전망과 믿음으로 전개되었다.
『전경』에는 척신, 원통하게 죽은 신 등의 용례는 있지만 절대적인 악신(惡神)이 뚜렷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신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선과 악을 지닌 여러 부류들이 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척신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신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원한을 지닐 수 있는 존재로 믿어진다. 무언가 자신의 욕구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있을 경우에 신(명)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원한을 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요컨대 증산은 신명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원한을 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증산은 자신이 어릴 때 먹 장난을 치다가 동무에게 이겼던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해주었다. 그런데 그 동무가 그 일에 억울함을 느껴 다른 서당에 다니다가 병들어 죽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른 후 그 아이의 신명(神明)이 원한을 품었다가 증산에게 해원시켜줄 것을 청했다는 이야기다.(행록 4장 54절) 이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신 또는 신명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원한과 소망을 지닌 존재라는 점이다. 천상계 최고의 신격으로 믿어지는 증산조차 한 사람에게 원한을 맺게 했던 것이다. 완전하고 완벽한 신비한 존재로만 믿어지고 인식되어 왔던 신은 증산에 의해 거부되고 부정된다. 증산은 신도 인간같이 원한을 맺는 불완전한 존재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하여 『전경』에는 “원통(冤痛)히 죽은 신”(교법 1장 47절)과 “원통이 없이 죽은 신”(교법 1장 47절)이라는 용례도 전한다. 증산의 주장에 따르면 신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해원(解冤)해야 하는 존재다.
그리고 증산이 말한 중천신은 후사(後嗣)를 못 둔 신명(공사 1장 29절)이다. 반면 황천신(黃泉神)은 후사를 둔 신명이라고 설명된다. 중천신들은 의탁(依託)할 곳이 없어서 황천신에게 붙어서 물과 밥을 얻어 먹어왔다고 한다. 따라서 중천신은 오랫동안 원한을 품어왔다고 전한다. 이에 증산은 중천신을 해원시키기 위해 중천신에게 복(福)을 맡겨 사(私)가 없이 고르게 나누게 하리라고 주장했다.
한편 증산은 “일본은 임진난(壬辰亂) 이후 도술신명(道術神明) 사이에 척이 맺혀있다.”(공사 2장 4절)고 주장했다. 인간계에 한번 일어난 전쟁은 그 전쟁이 끝났다고 하더라도 전쟁과정에서 생긴 많은 원한이 신명들 사이에 맺혀 있다는 주장이다.
증산은 천존(天尊)시대, 지존(地尊)시대, 인존(人尊)시대라는 시대구분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천신(天神), 지신(地神), 인간(人間)이 각기 가장 존귀한 존재가 되는 역사가 전개되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하여 증산은 이제 인존시대를 맞이하여 신은 인간에게 붙어서 해원한다고 강조한다. 신이 인간에게 역사(役事)하여 스스로의 원한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바로 선천에서 후천으로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설명되는 것이다.
또한 증산은 동학(東學)이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주창하였으나 때가 때 아니므로 안으로는 불량하고 겉으로만 꾸며내는 일이 되고 말았다고 비판하고, 동학은 후천(後天) 일을 부르짖었음에 지나지 못하여 각기 왕후장상(王侯將相)을 바라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릇 죽은 자가 수만 명이나 되어 원한이 하늘에 가득 찼다고 평가했다. 나아가 증산은 이러한 원한을 맺은 동학의 신명들을 해원(解冤)시키지 않으면 후천(後天)에는 역도(逆度)에 걸려 정사(政事)를 못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증산은 동학의 신명들을 해원시키기 위해 자신의 제자인 차경석을 내세웠다.(공사 2장 19절)
요컨대 증산은 신과 인간의 맺힌 원한들이 남김없이 풀어 없어지는 시대가 바로 ‘새 세상’인 후천선경이라고 주장했다. 신 또는 신명들의 깊은 원한마저도 풀어 없어지는 시대가 바로 이상향인 후천선경이라는 입장이다. 신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원한을 맺는 존재라는 것이 증산이 강조한 바이다. 그리고 증산은 신들의 원한도 모두 해소될 때 진정 이 땅에 지상낙원이 세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Ⅲ. 증산의 신명사상
신인상관론은 신과 인간이 별개의 다른 존재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한 관계에 있으며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주장이다.
인간의 웃음을 주관한다는 호소신(好笑神)이 증산의 천지공사에 참여했을 때 웃음을 조심하라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웃은 한 제자가 문득 오한과 통증으로 3일 동안 자리보전을 한 적이 있다.(공사 1장 16절) 그리고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박공우가 큰 돌에 맞아 가슴뼈가 상하여 혼절하였다가 겨우 일어나 수십일 동안 치료받은 일을 아뢰자, 증산은 그가 예전에 남의 가슴을 쳐서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한 일이 있었던 일이 척이 되어 앙갚음 받은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교법 3장 12절) 이러한 사례에서도 신계와 인간계의 밀접한 영향관계가 확인된다.
증산에 따르면 신명과 인간은 항상 교류하고 있고, 서로 응(應)하는 직접적 상관관계에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증산은 “심야자(心也者), 귀신지추기야(鬼神之樞機也), 문호야(門戶也), 도로야(道路也).”(행록 3장 44절)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증산은 천지신명이 운수(運數)자리를 찾아서 각 사람의 가정에 드나들면서 그 사람의 기국(器局)을 시험한다고 주장했다.(교법 1장 42절) 그리고 증산은 인간들이 상복제도(喪服制度)를 마련한 일에 대해 “죽은 거지의 귀신이 지은 것이니라.”라고 평가했다.(교법 1장 48절) 인간세상에서 거지로 살다가 죽은 후에 그 사람은 ‘거지 죽은 신명’으로 변한다는 주장에서도 인간과 신 사이의 확실한 상관관계를 엿볼 수 있다. 또 증산은 “명부(冥府)의 착란에 따라 온 세상이 착란하였나니라.”(공사 1장 5절)라고 주장했다. 신명계의 혼란은 인간계 혼란의 직접적 원인이 되며, 신명계가 혼란된 결과는 곧 인간세계의 혼란으로 직결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한편 증산은 교법 3장 4절에서 신명이 인간의 몸에 드나들면서 그의 체질과 성격을 바꾼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신명은 인간의 체질과 성격을 결정짓는 존재이기도 하다. 신명은 인간의 뱃속을 드나들 수 있는 존재로 묘사되었다. 이처럼 증산은 “신명은 항상 인간과 관련이 있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증산은 인간계와 신계가 상호 관련이 되어 있다고 굳게 믿는다. 인간과 신(명)은 함께 사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인간계와 신(명)계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과도 같이 영향력을 서로 주고받는 두 세계라고 주장한다. 교법 3장 8절에서 인간세상에서의 다툼이나 싸움이 신명계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확인된다. 인간계의 사건이 단순히 인간들끼리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신명계에 일정하고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또 증산은 교법 1장 54절에서 인간 사이에 벌어지는 분쟁과 다툼은 신명계에 있는 조상신들의 쟁투를 유발시킨다고 주장했다. 천상계에 있는 조상신들 사이에서 그 분란이 조정된 후에 비로소 인간세상에서의 다툼이 바로잡힌다는 종교적 설명이다. 이처럼 신과 인간은 서로 상호 교류하여 존재함으로써 서로의 가치와 존재를 부각시키고 그 상보적(相補的)인 틀 속에서 세계를 구성한다. 증산은 인간이 신과 단절된 관계가 아니라 인간 행위의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신(神)이며, 인간도 또한 신의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주체라고 주장한다.
신인감응론은 “신과 인간은 서로 느끼고 응감한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신명과 인간은 상호작용하고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증산은 “교중(敎中)에나 가중(家中)에 분쟁이 일어나면 신정(神政)이 문란해진다.”라고 말했다.(교법 3장 8절) 인간세상의 종교단체나 집안에 분란과 싸움이 발생하면 이에 응하여 천상에 있는 신(명)들의 정치활동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증산은 풀잎 하나라도 신이 떠나면 마를 것이며 흙 바른 벽이라도 신이 옮겨가면 무너진다고 주장했다.(교법 3장 2절) 인간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물리적 현상과 사건의 이면에는 신성하고 초월적이고 영적인 존재가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물활론(物活論)의 일종으로서 기(氣) 또는 에너지가 세상에 편재해 있다는 주장 대신 신(神) 또는 신명(神明)이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만물과 만사에 신명이 작용하고 감응한다는 증산의 이러한 주장과 견해는 신인감응론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증산은 때때로 신명은 비, 천둥 등 지상의 기후변화에도 영향을 미치는 일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비가 내리거나 천둥이 치는 일에도 신명이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인간계인 지상에서 기후가 변하는 일에도 신명들이 모종의 역할을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증산에 따르면 신과 인간은 각각 별개의 존재로 독립해서 존재하지 않고, 상호간의 교류 속에 긴밀한 관계에 있다. 또한 신의 작용이 인간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며, 마찬가지로 인간의 행위가 신의 세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신의 작용이 인간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례로 증산은 “조선신명을 서양에 건너보내어 역사를 일으키리니, 이 뒤로는 외인들이 주인이 없는 빈집 들듯 하리라.”(예시 25절)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역적 경계가 뚜렷한 서로 다른 지역에 있는 신들이 각자의 위치를 옮겨가면서 일을 주도해나간다. 따라서 인간계의 배후에는 항상 신의 역사(役事)가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증산은 “우리나라를 상등국으로 만들기 위해 서양신명을 불러와야 할지니, 이제 배에 실어오는 화물표(貨物票)에 따라 넘어오게 됨으로 뱃소리를 낸다.”(예시 29절)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증산은 “조선신명을 서양으로 건너보내어 역사(役事)를 시키려 한다.”(예시 25절)고도 말했다. 신명들이 기차와 배의 화물표에 응감하여 먼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문명이기가 발명되어 인간들끼리의 교류가 널리 가능해지고, 먼 지역과도 교통이 가능한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러한 일에 발맞추어 신명들도 인간들이 사용하는 기차표와 배표에 기대어 비로소 먼 지역으로의 이동과 교류가 가능해졌다는 주장이다.
또 증산은 사람들이 외우는 주문소리의 곡조가 맞지 않으면 신선(神仙)들이 웃는다고 말하기도 했다.(공사 2장 3절) 고위급 신명으로 믿어지는 신선들은 인간이 외우는 주문소리의 곡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주문소리의 높고 낮거나 맑고 탁한 곡조의 정도에 따라 알맞으면 신선들이 좋아하고, 그렇지 못하면 비웃는다는 주장이다. 여기서도 신명은 인간의 목소리에 응감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신 또는 신명이 인간이 음식을 먹는 행위에 감응한다(교법 1장 49절)는 대목에서 신명은 인간의 일상적인 행위에도 민감하게 응감하는 존재라는 주장과 믿음이 확인된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신명은 인간이 차려준 제수(祭需)의 향기를 맡고 흠향하는 존재다.
신인순환론은 “신 또는 신명과 인간은 반복하는 순환구조 속에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신명계와 인간계는 상호 순환하는 관계에 있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우선 증산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생유어사(生由於死)하고, 사유어생(死由於生)하나니 … 19)
위의 인용문은 “인간의 삶은 죽음의 세계에서 연유하고, 인간의 죽음은 인간의 삶에 말미암는다.”라고 의역할 수 있다. 인간의 삶과 죽음이 서로 꼬리를 물고 순환한다는 뜻이다.
증산은 불교 이후에 전개된 동양의 윤회론(輪回論)을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행록 2장 13절에서 박금곡의 전생(前生)이 월광대사(月光大師)라고 주장하였는데, 전생은 내생(來生)을 전제하는 말이다. 따라서 증산은 전생, 현생(現生), 내생을 인정하며, 윤회론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증산은 “동학신자는 최수운(崔水雲)의 갱생(更生)을 기다리고, 불교신자는 미륵(彌勒)의 출세(出世)를 기다리고, 예수신자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나, 누구나 한 사람만 오면 다 저의 스승이라 따르리라.”라고 말했다.(예시 79절) 기독교인들은 창시자인 예수가 다시 이 땅에 태어날 것을 열망하고 있으며, 동학신도들은 창시자 수운 최제우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날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증산의 예언은 공사 1장 36절에서 중국 한(漢)나라의 명재상이었던 장량(張良, ? ~ 기원전 189)과 삼국시대 촉(蜀)나라의 유명한 책사인 제갈량(諸葛亮, 184~234)과 같이 훌륭한 재주와 식견을 가진 인물들이 이 세상에 많이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말에서도 확인된다. 여기서도 그가 윤회론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인공존론은 “신 또는 신명은 인간은 함께 어울려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증산은 신명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교법 2장 17절에서 사람마다 제각기 그를 보호하는 신명 또는 신명들이 붙어있다고 주장하였다. 사람은 단순히 육체와 정신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신비하고 초월적인 신적 존재와 함께 하는 성스러운 존재라는 주장이다. 여기서 신명과 인간은 함께 어울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공동체이며 복합체라는 믿음이 유발되었다. 증산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은 자율적이고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신(명)과 연결된 성스럽고 신비한 존재다. 이는 인간은 육체와 정신을 지닌 존재일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영적(靈的)이고 신적(神的)인 존재라는 주장이다.
또 증산은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러온 어떤 사람을 만나자마자 크게 꾸짖었는데, 이는 그 사람의 몸에 있는 “두 척신을 물리치려함” 때문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행록 4장 47절) 특정한 사람의 몸에 다수의 신이 모셔져 있다는 주장이다. 예시 67절에서 증산은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보던 중 글을 쓰던 한 제자가 방심하자 “신명이 먹줄을 잡고 지켜본다.”고 말했다. 여기서도 신명은 인간과 가까운 거리에서 인간의 행동 하나하나를 속속들이 바라보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로 믿어진다.
한편 증산은 실제로 자신의 한 제자에게 그 지역의 신명이 응감해 있다고 다음과 같이 주장하기도 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그를 호위하거나 보호하는 신명이 붙어있다는 주장이 확인된다. 신명은 단독으로 인간에게 붙어있는 경우도 있고, 다수의 신명이 특정한 인간에게 붙어있기도 하다고 설명된다.
그리고 증산은 자신의 친필저작인 『현무경(玄武經)』에 “심령신대(心靈神臺)”라는 구절을 쓴 적이 있다. “인간의 마음과 영혼은 신 또는 신명이 거주하는 장소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을 통해 신과 인간의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주장이다. 인간이 신을 모시거나 모시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성화(聖化)가 이루어졌다. 결국 인간은 속되고 동물적인 존재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신을 모시고 있는 신령스러운 성스러운 존재라는 설명과 입장이다.
신인동질론은 “신과 인간은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이 같다.”는 주장이다. 신과 인간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이러한 주장은 매우 혁신적이고 독창적이다. 이와 관련하여 증산이 주장한 신 또는 신명이 거의 대부분 인격신으로 제기되고 있고 비인격적 신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증산은 신(명)과 인간은 같은 성질을 지닌 존재라는 파천황적인 주장을 했다.
증산은 인간 사후의 영혼과 육체가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해 교법 1장 50절에서 사람에게는 혼과 백이 있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영(靈)도 되고 선(仙)도 되며, 백은 땅으로 돌아가 귀(鬼)가 된다고 주장한다. 결국 증산에게 있어서 혼, 백, 신, 영, 선, 귀 등은 모두 이 세상에 실존하였던 인간들의 사후의 다른 이름이다. “신성(神性)은 모두 인성(人性)의 꼴바꿈이며, 신격(神格)은 모두 인격(人格)의 꼴바꿈이므로, 신(神)이란 곧 인간 영체(靈體)의 다른 이름이다.”라는 주장이다.
증산의 “사람은 누구나 죽으면 신(神)이 된다.”는 이러한 주장은 기존 종교의 사상과 교리체계와 확연히 구별되는 다른 점이다. 지금까지 인간과는 전혀 동떨어져 신앙의 대상을 존재한다고 믿어져왔던 신(神)이 인간이 죽은 다음에 새롭게 존재하는 양식으로 ‘인간 모습의 꼴바꿈’이라는 주장이다. 증산은 인간은 누구나 죽은 뒤에 신(神)이 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신은 인간을 구성하는 본원적인 요소이자 또 별도로 독립된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존재로 믿어진다. 즉 증산에 따르면 인간은 신(神)으로 화(化)하는 존재다. 증산은 인간은 지성적 존재에서 영성(靈性)을 갖춘 신비한 존재로 인식하여 사고의 획기적인 전환을 시도한 인물이다.
우선 증산은 인간으로서 위대한 업적을 쌓고 영웅적 면모를 보인 인물들은 죽은 후에도 특정한 역할을 맡는 중요한 신(명)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신(神)과 인간(人間) 사이의 관계를 수평적 차원으로 규정했고, 그 본질도 동질적이라고 규정했던 것이다. 나아가 증산은 사람이 죽으면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에는 “누구나 신(명)이 된다.”고 강조했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신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에서 그리고 격절되고 분리된 신을 거부하고 신성시되고 숭배되던 신이 아니라 신과 인간의 조화와 친연성(親緣性)을 강조한 것이다. 증산은 인간을 신(명)에 종속된 존재로 보지 않는다. 인간의 근원과 본질은 신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증산에 따르면 신(명)과 인간은 본질적으로 동질의 존재다.
증산은 인류사에 ‘인간은 살아있는 신(명)’이라는 매우 담대한 종교적 명제를 제시하였다. 이는 동학의 시천주(侍天主)사상을 극대화시킨 종교적 주장과 선포다. 이는 인즉신론(人卽神論)으로 불릴 수도 있다. 동학의 천주(天主)는 최고신이나 주재신으로도 해석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단지 신령한 영적 존재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믿어졌다. 그리고 증산은 인간은 영혼과 육체를 동시에 가진 존재로서 둘 다 함께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보았다. 영육병진(靈肉竝進)이라는20) 용어에서 보이듯이 증산은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분리체가 아닌 복합체로 인식하고 있다.
한편 증산은 자연, 인간, 신이 생장렴장(生長斂藏)의 법칙에 따라 성숙되고 완성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러한 증산의 주장에 의하면 인류 역사는 인간의 성화(聖化)과정이다. 따라서 인간이 진정한 신성(神性)으로 승화(昇華)하는 과정이자 길이 인류가 걸어온 지난날의 역사다. 신인동질론은 신(명)은 인간의 사후존재양식이라는 주장과 믿음에서 제기되었다. 그렇지만 신(명)과 인간의 현실적 구분과 차별성은 엄존한다. 결국 신인동질론은 신(명)과 인간 사이의 판단기준이 모호해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렇지만 증산의 주장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인간은 신성한 영적 존재다. 인간은 신(명)에게 종속되고 지배받는 비천한 존재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신성하고 고귀한 존재다. 즉 인간은 신(명)과 함께 공존하는 동격적 또는 동질적 존재라는 주장과 믿음이다. 인간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새로운 사상이다. 이는 후천문명이 새롭게 전개되었을 때 비로소 구현될 이상향의 모습이기도 하다.
Ⅳ. 증산 신명(神明)사상의 특성과 의미
증산이 제기한 신명사상의 특성과 의미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증산의 신관에 등장하는 신 또는 신명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유일신(唯一神)이 독재적인 통치나 지배를 하는 신관과는 뚜렷하게 구별된다. 증산이 주장한 신은 최고주재신(最高主宰神)으로부터 주어진 직분에 따라 각기 제한된 지역을 맡거나 한정된 능력을 발휘하는 존재다. 나아가 증산은 천지간에 가득 차있는 것이 신(명)이라는 “자연의 모든 것이 신령스럽다.”는 만물개유신성론(萬物皆有神性論)을 주장했는데, 인간계의 모든 사건과 현상에도 신적 존재의 오묘하고 신비한 작용이 개입한다는 사상이다. 즉 증산의 신명사상은 다신론(多神論), 범신론(汎神論), 최고신론(最高神論) 등의 특색을 골고루 지니고 있다. 이러한 증산의 신명사상은 서양 기독교의 독선적인 절대유일신(絶對唯一神) 신앙과 인식체계를 철저하게 거부하고 부정하고 타파한다. 따라서 증산의 신명사상은 전통적인 동양의 신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관점에서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사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둘째, 증산의 신관과 신명사상은 인격신(人格神) 중심으로 설명되고 인식된다. 결국 증산의 신명사상은 인간 중심의 신관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증산이 주장한 신 특히 신명(神明)은 인간 중심의 시각에서 인식되고 이해되며 서술되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면 ‘비의 신’은 단순히 ‘비<우(雨)> 신’이 아니라 ‘비를 맡고 주재하는 인격적 신’이라는 뜻의 ‘우사(雨師)’로 명명된다. 특히 천계, 지계, 인계를 새로운 질서로 확립시킨다는 증산의 천지공사(天地公事)는 인간계에서 신명들의 협조와 협력 아래 이루어지는 종교적 행위다. 그리고 천상계 최고의 신격으로 믿어지는 증산도 인간계에 강림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직접 천지공사를 집행한다고 믿어진다. 여기서 증산의 천지공사가 신(명)계가 아니라 인간계에서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진다는 주장과 믿음이 특기할 만하다. 이는 기존의 세계질서와는 전혀 다르고 새로운 질서가 인간계를 중심으로 새롭게 확립되고 확정된다는 사상이다.
셋째, 증산은 자신이 살던 시대를 신명시대라고 규정했다. 증산은 다양하고 많은 신에 대해 말해주었으며, 천상계, 지상계, 지하계에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닌 수많은 신(명)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증산은 세상에는 온갖 신(명)들이 가득 차 있으며, 각자 맡은 바 영역을 지키며 제한된 능력을 발휘하면서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넷째, 증산은 신(명)들도 원한을 품는 미완성된 불완전한 존재라고 주장한다. 증산은 불완전한 신(명)과 인간이 함께 완성을 추구하는 과정이 지난 인류의 역사라고 주장했다. 이는 신(명)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불안하고 미숙한 상태로 존재했었다는 주장이다. 증산의 주장에 의하면 이제 신(명)들은 인간과 함께 이 세상에 이상향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며, 그동안 품어왔던 많은 원한을 풀어 없애고 간직했던 소망을 이루기 위해 힘쓴다고 강조된다. 그리고 증산은 신(명)은 인간과 함께 해원(解冤)을 통해 궁극적으로 후천선경을 건설하는 일에 매진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완성을 향한 노력에 신(명)과 인간이 동참한다는 주장이다. 이 세상에 이상사회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신(명)도 완성된 존재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다섯째, 증산은 신(명)계는 인간계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세계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밝혔다. 증산이 주장한 신계 또는 신명계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숨을 쉬고 살아가는 인간계와 상호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세계다. 증산은 인간계와 전혀 동떨어져서 따로 존재하는 신(명)계는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신(명) 또는 신(명)들만이 존재하는 세계는 인간계와는 상관없는 별세계로서 존재할 수 없거나 그 가치가 부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명)은 인간과 가까운 서로 긴밀하게 관련이 있는 존재로 주장된다.
여섯째, 증산이 주장하고 강조한 신(명)은 인간과 서로 감응하는 존재다. 신(명)들은 인간과 더불어 영향을 미치고 서로 작용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다고 믿어진다. 신(명)은 인간의 행동에 구체적으로 반응하고, 인간의 특정한 행위는 실제로 신(명)계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고 믿어진다.
일곱째, 증산이 강조한 신(명)과 인간 나아가 신(명)계와 인간계는 상호 순환하는 관계에 있다. 신(명)과 인간은 탄생과 죽음이라는 인간 삶의 시작과 끝이 끝없이 돌고 돌며 서로 연관되는 두 존재와 세계라는 주장과 믿음이다. 인간은 조상신들의 오랜 시간에 걸친 공덕과 공력에 의해 비로소 이 세상에 태어나며, 이승에서 정해준 수명을 다 산 다음에는 죽어서 저승에서 일정한 기간을 거쳐 신(명)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설명된다. 그리고 이 신(명)은 윤회의 법칙에 따라 또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믿어진다.
여덟째, 증산은 신(명)과 인간의 공존을 주장하고 있으며 상호조화와 합일을 강조한다. 그는 인간계와 단절되고 격리된 초월적이고 지고한 존재로서의 신(명)이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친숙하고 친밀한 존재로서의 신(명)을 상정하고 강조했다. 신(명)은 인간과 함께 존재한다고 믿어지며, 호위신명의 존재가 주장됨으로써 인간은 항상 신적 존재와 더불어 이 세상에 살아가는 존재로 주장된다. 증산의 신명사상은 신(명)계와 인간계의 조화, 공존, 공생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일부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이나 집단만이 신(명)계와 교통과 교류가 가능하다는 사상이 아니다.
아홉째, 증산은 신 또는 신명은 ‘인간 사후의 꼴바꿈’이라는 신인동질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인간은 누구나 죽어서 신(명)이 된다.”는 담대한 주장을 제시하였다. 그는 역사적으로 특별한 업적을 이루었던 실존인물들이 위대한 신격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주장하였다. 증산은 죽은 지 불과 수십 년이 지나지 않은 최제우, 전봉준, 김일부 등을 인간이 죽은 다음에 가는 세계로 믿어지는 명부(冥府)의 책임자로 임명했다고 믿어진다. 그리고 인류사 모든 신적 존재의 본질은 인간이라는 설명과 믿음을 제기한 증산은 인류 역사의 흐름을 인간의 완성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다. 증산은 지난 역사를 통해 인간은 부단히 최종의 완성과정을 향해 온갖 경험을 축적해왔고, 급기야 이 땅에 후천선경(後天仙境)이라는 이상향이 이루어지는 때가 되면 인간이 오히려 신(명)을 부리고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신(명)과 인간의 본질이 같다는 증산의 주장과 확신은 후천선경이 이룩되는 그 날까지 계속해서 이어져 나갈 믿음과 성약(聖約)으로 제시되었다.
Ⅴ. 맺음말
증산은 환상적(幻想的)이고 공상적(空想的) 존재였던 그리고 불명확(不明確)하게 추정되었던 신(神) 개념을 단호히 거부한다. 우선 증산은 “신(神)은 인간의 사후존재양식이다.”라고 주장하고 강조하여 신(명)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하며 신관을 새롭게 규정한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기존의 인간이 신(명)에게 억압받고 지배받던 존재로 인식되고 이해되던 상황을 벗어나 인간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드는 진정한 인간해방선언이다. 이제 증산의 이러한 선언을 통해 인간은 관념적이고 억압하는 신(神)으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하고 실천할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결국 증산은 신(명)의 억압과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중심의 신관을 새롭게 마련함으로써 새 시대와 새 세상의 도래를 선언하고 강조한 종교적 인물이다.
증산이 언급한 신(神)은 인간과 완전히 분리된 초월적이고 성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증산이 말한 신(명)은 인간의 영체(靈體)가 인간적 삶을 마치고 죽은 다음 신계(神界)에 들어가 천상(天上)의 지위에 따라 활동하는 존재를 의미한다. 따라서 증산의 신(명)은 초월적 절대주가 아니라 인성(人性)의 꼴바꿈이며, 인간과 동일한 욕구와 감정을 지닌 존재다. 그리고 증산이 말한 신(명)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원한을 품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증산이 말한 신(명)은 자신들의 품은 원한을 풀기 위해 인간사에 적극 관여하며 개입하여 인간을 통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리고 증산이 말한 신(명)은 인간에게 받은 은혜를 갚거나 원망을 앙갚음하는 존재이다. 나아가 증산은 신명들이 인간의 행동과 인식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인간의 행위를 심판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증산의 신관(神觀)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인간과 신(명)의 공존(共存)을 강조한 점이다. 증산은 살아있는 인간을 인간 자체로서만 이해하지 않았다. 인간은 누구나 그를 보호하는 보호신명이 함께 있다고 밝혔다. 인간을 인간만의 독립적 존재로 보지 않고 영적인 존재와 함께 살아가는 복합적 존재로 파악한 것이다. 기성종교의 신(명)들이 인간과 격절되고 분리되어 다른 별개의 세계에 존재한다고 믿어져 왔던 일에서 벗어나 증산은 신(명)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또한 증산은 신(명)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신관으로 혁명적 변화와 새로운 인식을 강조하였다. 신(명)에 대한 관점의 대전환을 촉구했던 것이다. 기존의 신(명)을 중심으로 삼던 신관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증산은 인간 중심의 새로운 신관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증산은 지배와 피지배, 주체와 종속적인 관계로 설명되고 믿어져 신(명)에게 억압받고 조종받기만 하던 기존의 인간에 대한 인식과 믿음에서 벗어나 인간을 주체로 한 새로운 신관을 제시하였다. 그는 기존의 신관에서 벗어나 장차 신(명)과 인간이 진정으로 화해하고 만나 새로운 이상적 신인(神人)관계가 정립될 것이라는 종교적 전망과 예언을 제시하였다.
이어서 증산은 장차 새로운 이상세계인 후천(後天)이 되면 인간의 뜻에 따라 신명들이 인간의 심부름을 하는 새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파천황적인 선언을 한다. 인간이 신(명)보다 우위에 있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선천(先天)은 인간이 신(명)의 의지에 따라 지배받고 신(명)을 섬기는 시대였다. 그런데 증산은 이제 곧 후천이라는 이상향이 곧 이 땅에 이루어지면 오히려 신(명)이 인간의 부림을 받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신(명)과 인간의 관계가 완전히 역전되는 것이다. 어쨌든 증산은 동양 특히 한국인의 고유한 신(명)관을 정리하고 나름대로 체계화시켜 집대성한 위대한 종교적 인물로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전통적인 한국 고유의 독특한 신(명)관을 재정립하여 자신의 독특한 신명사상을 제시하였다.
증산은 한국 전통적인 신관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하여 신명사상으로 체계화시킨 종교적 인물이다. 즉 그는 한국의 토착화된 신관을 새롭게 정리하고 정립하였다. 기존의 신명이라는 존재에 대한 단편적이고 산견되던 한국적 신관을 독창적으로 체계화하여 나름의 종교적 교리로 정립한 인물이 바로 증산이다. 따라서 증산은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을 잘 발현시킨 토착적 신관과 신명사상을 제시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