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오늘날 한국 종교계는 위기 징후가 여러 측면에서 감지되고 있다. 그 위기를 극복하려면 미래전망 회복에 따른 새로운 실존의미를 밝힐 필요가 있다. 아울러 종교지형의 다양한 변화를 예측하고 영성치유를 모색해야 한다. 21세기의 새로운 영성가치는 생명철학적인 생성과 나눔에 관건이 있다. 이에 따라 종교적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공동체의 조건도 자기 비움의 새 밝힘으로 과거 전통에서 벗어나 개신가능성을 밝혀야 한다. 본 연구는 대순진리회의 미래관을 정립하고자 동학과 참동학의 상관연동으로 대순사상의 참동학의 위상정립을 규명하고자 한다.
동학사상은 수운, 해월, 의암으로 계승되면서 시천주, 양천주, 인내천의 가르침을 제시하였다. 반면에 대순사상은 증산, 정산, 우당으로 계승되면서 해원상생의 천지공사, 수도법방의 시학시법, 천운구인의 인존구현의 가르침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수운이 받은 계시와 정산이 받은 계시의 차이가 드러나면서 동학과 참동학의 상관연동 모색이 요청된다. 참동학은 동학과 달리 증산종통을 계승한 정산에게 이어져 포덕ㆍ포교에 큰 변화를 나타냈다. 수운의 동학 창도는 한울님으로부터 주문(呪文)과 영부(靈符)를 받아 이루어진 것으로, 3대 교주, 의암(義庵)에 이르러 동학에서 천도교로 바뀌었다. 본 연구는 증산의 두 번의 계시 가운데 첫 번째 계시가 1860년의 수운에게 이루어지고, 두 번째 계시가 1917년의 정산에게 이루어짐으로써 수운득도와 정산포교 활동이 상관연동을 형성함에 주목한다. 구천상제, 증산이 수운에게 계시를 내렸지만, 수운이 대도의 참뜻을 밝히지 못했기에 1864년, 수운에게 내린 계시를 철회하였다.
수운은 ‘인의예지’의 유교윤리를 시천주의 영성차원으로 전환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유교 전헌(典憲)에 빠져 대도의 참뜻을 밝히지 못했기에 구천상제, 증산이 천명과 신교를 거두었다. 이러한 연유로 말미암아 구천상제, 증산은 직접적인 가르침을 전하고자 1871년 인간 세상에 강림하였다. 그는 동학운동의 실패를 예견하고 동학관련 신명해원을 위한 ‘대선생(代先生)’의 위상을 구천상제, 스스로에게서 찾았다.1) 동학실패를 거울삼아 참동학 세계를 열고자 천지공사를 통해 ‘생명지(生命知)’를 토대로 참생명 실천을 전개함으로 진여(眞如)의 ‘대원경지(大圓鏡智)’를 구현하였다. 또한 인간계를 중심으로 ‘성사재인’의 후천선경을 열기 위해 실패한 동학혁명을 새롭게 대체하고 새로운 차원으로 전개하려는 뜻에서 ‘대선생(代先生)’ 개념으로 대순의 미래상을 제시하였다. 아울러 조선해원이 남조선 중심의 구원이었지만, 구천상제의 탄강으로 ‘만국활계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의 도수를 집행함으로 세계구원으로 활로를 넓혔다.
천지공사로서 남조선을 알리고 조선을 ‘상등국’으로 전환시키는 도수를 통해 ‘참생명’의 진여가치를 살려냈다. 참동학은 정산의 ‘무극대도’를 통해 ‘참생각’이 발현된 ‘생각지(生覺知)’로 거듭나서 무극ㆍ태극의 상관연동을 이루어 개체성에서 벗어나 평등성지(平等性智)를 구현하였다. 아울러 포교 50년 공부를 완비하고 ‘단주해원’, ‘대두목 공사’ 등으로 천지공사 도수를 정비하였다. 동학 3대 교주, 의암은 동학의 가르침을 영성과 심성의 ‘상징적 교환’2)의 등가로 치환하여 동학을 천도교(天道敎)로 대체하고, ‘시천주’의 가르침을 ‘인내천(人乃天)’으로 바꾸었다. 1905년, 시천주가 인내천으로 전환된 상황에 대해, 상제를 무신론적 ‘비인격신’으로 강등시켜 신교가치를 현격하게 추락시켰다는 비판도 나타났다.3)
그러나 동학 3대 교주, 의암은 ‘시천주’의 영성차원과 ‘인내천’의 심성차원을 상징적 교환으로 살리고자, ‘이신환성(以身換性)’의 ‘생활지(生活知)’를 표방하면서, 마탈심에서 벗어난 묘관찰지(妙觀察智)와 감각에서 벗어난 성소작지(成所作智)를 함께 실천지로 활용하였다.4) 이에 ‘사람이 하늘이다’는 당위적인 동학선언은 우당의 ‘천운구인’과 연동하여 하늘 운으로 사람을 구하는 새 시대를 열고 생명철학 생성의 생활지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울러 동학사상의 시천주ㆍ양천주ㆍ인내천과 대순사상의 천지공사ㆍ시학시법ㆍ천운구인이 횡단으로 매개하여 영성에서 심성으로 이어지는 대화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참동학은 영성차원의 존재론적 당위 너머의 심성차원의 휴머니즘을 생성하여 균형과 조화를 모색함으로 인본사상으로 체화되어 인간존엄을 살리는 새 시대를 열었다.5) 이처럼 동학과 대순을 연동시켜 참동학 위상을 밝힘으로 참생명ㆍ참생각ㆍ참생활의 삼차연동으로 대순사상의 미래전망을 새롭게 규명하고자 한다.
Ⅱ. 시천주ㆍ천지공사 상관연동의 대순기화
『전경』 교운 1장 9절에 따르면, 구천상제께서 금산사 삼층전 미륵금불(彌勒金佛)에 머무는 동안, 제세대도(濟世大道)의 천명(天命)ㆍ신교(神敎)를 수운(水雲 崔濟愚, 1824~1864)에게 위탁했지만, 1864년 철회했다. 1871년, 구천상제는 한반도에 강세(降世)하여 지상천국 건설과 창생구제 진리를 선포하였다.6) 동학의 ‘시천주’는 하늘같은 인격주체의 ‘주(主)’를 한 몸에 모심으로써 ‘영성의 당위성’을 천명하였다. 수운은 ‘내유신령 외유기화를 안의 신령과 밖의 기화로 사람이 각각 옮겨서 아니 되는 당위’7)로 밝혔다. 이를 통해 안으로 느끼는 신령과 원만한 관계를 맺게 되어 ‘나’의 주체성, 한울님과 상통하는 기화의 영성작용을 낳아 ‘한울님 모심’의 규범이 실천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천주와의 영성대화’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8)
반면에 리차드 스윈번(Richard Swinburne)은 ‘신과 대화(God-Talk)’에서 ‘공공하는 영성’에 주목하며, ‘사실입증(fact verification)’을 위한 접근보다 서로 대화하는 공공작용을 중시하는 접근으로 이루어졌다.9) 이에 따라 ‘공공하는 영성’은 이성과 감성 그리고 의지 사이를 이어주고 매개하는 메타차원의 동사 쓰임을 강조하였다. 메타차원의 동사 쓰임으로서 기화 작용은 ‘활명개신(活命開新)’으로 근원적 생명력을 확보하며, 이화 작용은 ‘무심개신(無心開新)’으로 원만한 상호관계를 회복하고, 실화 작용은 ‘지성개신(至誠開新)’으로 일상생활에서 실천적 습관을 철저히 함으로써 삼차연동의 ‘공공하는 영성’에 대한 동태적 파악이 가능해진다.
수운은 한울님과 만난 영성차원의 동사 쓰임을 일상에 살리고자 ‘입도식’과 ‘치제식’으로 진행이 되는 포덕식 이외, 제수(祭需)를 차려 놓고 거행하는 ‘제수식’에 목검을 잡고 검결(劍訣)을 부르며, 검무를 추었다. ‘검결’은 경신년의 영성체험 이후 일 년 가까이 한울님과 영성 교감 차원에서 이루어졌다.10) 또한 수운은 입도와 치제를 통해 영성단련을 이어갔다. 아울러 강도회(講道會)를 열어 자신의 가르침을 구조화하고 체계화시켰다. 그런데 신유년 11월, 수운은 갑자기 먼 길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11) 유생들과 인근의 경주 최씨 문중 사람들이 심하게 수운을 비방하면서, ‘혹세무민’으로 내몰거나, ‘집안망신살’이 뻗친다는 등, 점차로 모함이 증대하게 되었다. 그 해 11월, 경주부사가 관인을 발포하면서 포덕을 중지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당시 영남 일대의 유림들은 각처의 서원으로 돌린 통문(通文)을 돌리고 동학은 혹세무민하는 ‘사도(邪道)’이기에 저지시켜야 된다는 여론이 비등(飛騰)해졌다. 그 후 수운은 스스로 그곳에서 자취를 감춘다는 뜻으로 ‘은적암(隱寂庵)’에 머물게 되었다. 은적암에서 겨울을 보내면서, 수운은 동학의 참 뜻을 밝히고자 「논학문」, 「도수사」, 「권학가」 등의 가사를 작성하였다.12)
포덕을 시작한지 5개월여 만에 은적암에 머물면서 새 계획에 착수하였다. 특히 검결은 동학의 영성체험이면서 동시에 무궁한 존재자로서 ‘공공하는 영성’가치를 천명한 몸짓이 되었다. 또한 후천개벽을 열기 위한 민중적인 열망에 대해 ‘동귀일체(同歸一體)’로 화답하였다. 실제로 동귀일체를 구현하기 위해, 수운은 21자의 동학주문을 내어 놓았다. 동학주문 가운데 강령주문은 ‘지기금지 원위대강(至氣今至 願爲大降)’이다. ‘지금 지기가 이에 이르렀으니 원하옵건대 대강이 되게 하소서’에 있듯이, ‘지기’는 대강이 되게 하는 주체를 말한다. 수운은 ‘대강’에 대하여, ‘기화지원야(氣化之願也)’13)로 풀이하였다. ‘지극한 기운인 지기가 주체가 되어 원만하게 융화일체를 원한다’는 뜻이다. 한울님과 원만한 관계를 회복하고자 융화일체가 되어 서로 간에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한다는 뜻에서 ‘혼원(混元)의 한 기운’을 중시하여 기화를 부각시켰다.
지기라는 것은 허령이 창창하고 간섭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명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형용이 있는 것 같으나 형상하기 어렵고, 들을 수 있는 것 같으나 보기 어려우니, 이것 역시 혼원의 한 기운이다.14)
지기를 바탕으로 움직임의 영성작용을 하는 동학의 우주론에서는 ‘무궁한 이 울’로 시작하지만 그 끝도 없다고 말한다. 이 우주는 한울님의 지기가 본체를 이루지만, 영성차원에서 동사 쓰임으로써 한울님 지기의 기화로 작동한다. 이에 ‘무궁한 이 울’로서 우주생명은 ‘하나의 커다란 생명의 유기체’를 이룬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생명작용의 유기체는 한울님의 지기의 기화작용으로 생명체의 다양성을 살리면서 신통(神通)을 포함하여 존재변혁의 여러 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이 작용을 통해 인간만이 존귀하지 않고 만물에게 까지 그 근원적 생명력, 지가가 미치기에 삼라만상과 더불어 정상적인 질서를 구축하면서 생명상호 간의 화해작용을 끊임없이 이어주고 매개한다. 개체생명은 우주생명과 상관연동을 이루며 서로 간에 이루어지는 원만작용은 미래를 함께 빚는 ‘공창(共創)’으로 작동한다. 이에 수운의 정심수도(正心修道) 덕목은 성ㆍ경ㆍ신이 되고, 「좌잠(座箴)」에서 수도자의 좌우명이자 지침서로 활용되었다. 수도자가 정성(精誠)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잃지 말고, 동시에 게으르지 않아야 되는 준거 틀이다.
정성은 자신에 대해서는 성실이지만, 한울님을 모신 존재로서는 덕성이다. 천하 만물 역시 한울님을 모시기에, ‘시천주’에는 공경하는 태도가 필수이다. 수운은 ‘믿는 행위’는 먼저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다시 생각하며 굳건한 심주(心柱)를 세워나가는 동사차원에서 이해했다. 믿는 마음이 확고할 때 마음을 다하는 정성이 우러나오며, 참된 공경으로 밝음을 유지하게 되는 ‘지극한 정성스러움은 신과 같다’15)고 한다. 믿음으로 심주를 굳건히 해야 비로소 도의 맛을 알 수 있고, 믿음으로 ‘성경(誠敬)’의 두 글자를 지켜내고 차차 닦다 보면, 「도수사」 내용처럼 무극대도를 성취한다고 했다. 결국 ‘성경신’ 석 자에 동학수련의 요체가 있다고 할 것이다.
우리 도는 넓고도 간략하니 많은 말을 할 것이 아니라, 별 다른 도리보다 성경신 석 자에 있느니라.16)
또한 수운은 조선 후기의 시대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울님으로부터 품부 받은 본래의 마음을 지켜내는 ‘수심(守心)’의 도리와 인의예지의 ‘정기(正氣)’ 도리를 함께 살리고자 ‘수심정기(守心正氣)의 실천을 중시하였다. 그런데 ’인의예지‘는 측은지심ㆍ수오지심ㆍ사양지심ㆍ시비지심의 발단이 되는 인간본성을 말한다. 이 사단은 태어날 때부터 품부 받은 성품으로, ‘유가사덕(儒家四德)’에 도달하는 실천적 입문이다. 그런데 수운은 본원적으로 내 안의 한울님을 모시고, 타락한 ‘각자위심(各自爲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울님으로부터 품부 받은 그 마음을 다시 회복시키고 지켜내어 일상생활에서 실천으로 이어지고 매개하는 영성작용을 중시하였다.
그 새 밝힘의 길은 ‘한울님 모심’으로 개개인이 영성작용으로 체화하고, 한울님의 우주생명과 함께하는 개체생명을 살리는 길이다. 이 새 밝힘으로 우주생명과 상관연동을 이루는 개체생명은 품부 받은 존엄을 살려내며 한울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경외지심(敬畏之心)을 유지한다. 이처럼 형식주의로 전락한 ‘성리주의(性理主義)’에서 벗어나 인성 밝힘을 한울님 모심의 공공작용으로 함으로, 수심정기는 본래의 마음을 지키고 올바르게 실천하는 길이 되어 유교의 전래방식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또한 수운은 「흥비가」를 통하여, ‘글 네 자 밝혀내어 만고사적(萬古史蹟) 소연하다’고 말하며 그 감회를 피력하였다. 무궁한 한울님을 모신 무궁한 존재임을 깨닫기에, 동학은 조선후기, 만인평등ㆍ만인공덕을 위한 ‘다시 개벽’의 디딤돌이 되었다.
구천상제는 동학의 ‘시천주’를 디딤돌로 삼아 참동학을 전개하면서 ‘묵은 하늘’의 음양 혼란 시대에 천지공사 이행의 도수를 바로잡아 참생명의 기운을 여는 ‘후천개벽’을 공표하였다. 참생명 기운을 개신하는 후천개벽은 중도실상ㆍ화평세계를 여는 ‘천지공사’(天地公事)로 구체화된다. 천지공사의 실천기준은 ‘공공윤리 준수’와 연동되어 ‘삼계개벽’으로 가시화되었다. 삼계개벽은 ‘통달대도(通達大道)’ 구현으로 사회적 공공성을 표방하며, 참생명의 영성적 자양분을 흡입하고 사적 도통과 공적 선경을 이어주고 매개하는 가운데 공공동량 구제를 구축하였다.17)
이러한 공공동량 구제의 첫 단계는 천지공사에서 이웃 나라 ‘광정(匡正)’에서 시작하여 조선의 치국(治國)으로 이어진다. 이성ㆍ감성이 상관연동 하여 수평적 횡단매개의 음양합덕과 수직적 종단매개의 신인조화가 종횡무진으로 일원상을 이루어 성상원융으로 회통된다. 또한 공공동량 구제의 다음 단계는 하늘운세에서 땅의 운세, 나아가 세계운세를 여는 단계로서 보은ㆍ해원이 상관연동 하는 해원상생의 단계이다. 그리고 공공동량 구제의 궁극단계는 명부(冥府)까지 상생시켜 개체생명의 ‘사(私)’를 존중하는 ‘인존시대(人尊時代)’로의 이행을 의미한다.18)
일제 강점기에 보천교를 창시한 차경석은 원래 동학교도로서, 동학의 3대 교주, 손병희(孫秉熙)를 따르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길을 모색하였다. 차경석은 동학접주를 역임하고 고부성 함락에 동참한 아버지, 차치구(車致九, 1851~1894)를 따라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하였으며,19) 천도교(天道敎) 전남북 순회관(巡回官)을 지냈다20) 이처럼 차경석은 아버지를 통해 동학과 인연을 맺었다. 또한 차경석은 구천상제를 처음 만나 따르고자 하였으며, 뒷날 증산교의 한 종파, 보천교(普天敎)의 교주가 되었으며, 증산교단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인물이 되었다. 그런데 구천상제는 처음 차경석을 받아주지 않으려고 하자, 차경석은 『용담유사』 「교훈가」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십일 동안 제자 되기를 간청하였다.
실제로 차경석은 동학에 몸담고 다급한 상황에서 『용담유사』 「교훈가」의 구절, “여광여취(如狂如醉) 저 양반을 간 곳마다 따라가서 지질한 그 고생을 누구다려 한말이며”를 떠올렸다. 구천상제께서 동학가사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가져 오라고 하자, 차경석은 가사 집의 중간부분을 펴고 『용담유사』 가운데 「흥비가」 구절을 읽었다. 이는 구천상제께서 『용담유사』의 내용을 숙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유사성이 박공우에게 나타난다. 박공우는 동학주문을 외우며 수련을 할 정도로 동학을 깊이 공부하였다. 동학가사를 잘 알고 있었기에, 박공우는 동학가사를 외워 구천상제를 따르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김형렬은 필성이라는 인물과 함께 동학군에 가담하여 청주공방전에 참여했던 인물로 구천상제의 제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는 1918년, 금산사에 미륵불교라는 증산교의 교파를 세웠다. 교파 형성이후 김형렬은 태을주(太乙呪)를 쓰지 않고, 동학의 시천주(侍天呪)로써 수련했다.21) 이는 그가 동학교도였음을 반증한다.
구천상제는 자신의 행동과 생각이 동학보다 우월함을 은연중에 말하며, 자신이 동학의 수운을 대신할 인물로 언급하였다. 구천상제께서 동학을 소극적으로 비판하였음은 그의 언행들을 통해 추론할 수 있다. 동학의 3대 교주, 손병희가 교도의 신념을 고무하기 위하여 호남각지 순회할 차제에 구천상제께서 박공우를 보고 전주에 가서 손병희에게 더 이상 군중을 혹세무민하지 말 것을 주문하였다. 동학피해가 극도에 이르기에 전주순회는 불가하다는 것을 고지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낌새를 알아차린 손병희는 예정을 바꾸고 경성으로 돌아갔다.
구천상제는 사람들을 만나 사정(事情)을 듣고 해원과 연관하여 일관(一貫)된 타이름을 보여주었다. 아버지를 밀고하여 죽게 한 자를 찾아 복수코자 했던 차경석과 그 형제들에게 원심을 풀게 하였고, 가슴뼈를 돌에 맞아 가해자에게 복수코자 하는 박공우에게 가해자를 은인(恩人)처럼 여기라고 타일렀다. 이는 구천상제 권능으로 ‘포한(抱恨)’ 인간을 참생명으로 인도한 사례이다. 구천상제는 수운의 대리자이자 ‘대선생(代先生)’으로, “나를 좇는 자는 영원한 복록을 얻어 불로불사하며 영원한 선경의 낙을 누릴 것이니 이것을 참동학’이라고 정의하였다.22) 참동학은 ‘해원상생으로 구제창생하는 새 밝힘의 동학’을 말한다. 구천상제는 ‘태을주’와 함께 동학의 ‘시천주’ 주문을 참동학의 주문내용으로 포함시켰다. 구천상제는 『용담유사』 구절을 인용해서 조선의 도통군자의 모태가 자신임을 밝히면서 스스로 ‘참동학’의 주체임을 천명하였다.
이에 따라 대순사상의 미래관은 ‘참동학’과 상관연동 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23) 참동학을 위해 인신강세가 이루어지고, 구천상제의 강세지, 남조선 중심으로 생명철학 생성차원으로 전개되었다. 사람에게는 순간보다 영원을 선택할 자유의지도 주어져 있다. 신성과 만나는 지점에서, 사람은 다원ㆍ다층ㆍ다중의 세계를 발견하고 기화를 통해 궁극실재를 체화한다. 결국 대순기화의 전망은 일상에서 사물의 본성을 기화로 체화하는 전망이다. 한 없이 크며 동시에 한 없이 작은 우주세계는 시공을 벗어나기에 물질보다 광대무변의 기화(氣化)로서 체화된다.
인생은 불확실성으로 점철되어 있다. 사람은 운명적으로 죽음, 운명, 영원과 만남보다 불확실성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방황하게 된다. 사람은 실재와 꿈 사이에서 선택이 가능한 자유의지를 갖추고 있다. 성자들이 일깨워주는 의식으로 사람은 자신의 영성을 일깨우게 된다. 우주생명의 존재를 상기함으로 ‘절대(Absolute)’에 대한 의식을 일깨운다. 또한 기도를 통한 우주생명과 교감하면서 생명생성 이전 차원의 영역을 일깨우기에 ‘영원성(Eternity)’을 직감한다. 그리고 ‘확실한 기도(quintessential prayer)’를 바치면서 세상을 벗어나고, 현상의 배후에 작용하는 신성의 몽둥이(divine sap)로 신성을 일깨우고 체험한다.24)
신성의 몽둥이를 기화차원에서 체감하는 ‘초개인(transpersonal)’ 체화는 도처에서 이루어진다. ‘초개인’ 차원의 체화는 개체생명의 자아동일성을 벗어나서 보다 넓은 영역의 인간세계, 영성차원과 심성차원을 함께 포함시켜 매개한다.25) 이는 곧 개인과 개인 사이를 이어주고 매개하는 공공인식으로서의 참생각을 영성차원과 심성차원으로 이어주고 매개하여 원만한 상호관계를 맺게 됨을 의미한다. 수운은 구천상제로부터 영성 자양분에 해당하는 참생명의 메시지를 다시 개벽으로 선언하도록 계시를 받았다. 이는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라는 동학주문이다. 이것은 앞으로 구천상제를 모시고 조화를 정하는 조화문명 시대가 열리기에 도통문화를 일상에서 구현하는 성부시대에 들어섰음을 시사한다. 또한 이는 인류 문명이 새로운 문명으로 전환한다는 복음이 되어, ‘다시 개벽’을 전했다.
그런데 조화문명의 주인공, 구천상제, 증산께서 이 동방 땅에 강세하고, 그의 무극대도 진리가 나와서 앞으로 전개되는 조화문명으로 인류문화가 전환된다는 메시지를 나타냈다. 상제께서 직접 설계하고 건설하는 새 문명이 ‘시천주 조화정’의 문명이다. 영성으로 대화하고 마음의 문을 여는 조화문명이 열리게 되었음이다. 그런데 서양의 제국주의는 서교를 앞세워 조선에 침투함으로, 오리엔탈리즘을 왜곡시켰다. 이로 말미암아 동방문화는 무(巫)의 문화로서 상대적으로 열등하다는 인식을 낳았고, 청수를 올리고 상제에게 기도하는 문화는 미신이면서 동시에 무(巫)이기에 금기시하는 풍조가 만연하였다.
근대화 물결을 타고 동방진수, ‘상제(上帝)’ 문화는 점차 해체되었다. 진리체화로 우주생명과의 관계성을 회복하고 영성과 심성이 상호 소통되는 체계가 무너졌다. 우주생명 신성은 ‘북두칠성(北斗七星)’으로 구현되기에, ‘영성 자양분’의 참생명은 북두칠성으로 표상되어 선현들은 칠성을 향해 서원하고, 성인식에서는 상투를 꽂았다. 몽골의 파지리크 고분에서는 북두칠성 방위에 맞춰 ‘칠성두(七星頭)’를 실천하였고, 옥경대 칠성을 ‘옥황(玉皇)’이라고 불렀다.
옥황은 천황(天皇), 천제(天帝), 천주(天主), 천신(天神), 상제(上帝)와 상통한다. 전통적으로 삼신을 본체로 칠성을 작용으로 상정하는 상제문화는 삼신신앙ㆍ칠성신앙과 상관연동으로 이루어졌다. 윷놀이도 북두칠성이 하늘을 도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삼신각(三神閣)이나 칠성각(七星閣)도 중국불교나 티베트불교에서 볼 수 없는 한국 신앙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영성 자양분으로서의 참생명 밝힘의 대순기화 전망은 영혼의 탈영토화에 수반되는 영성치유에서이다. 브래드포드 키니(Bradford Keeny)는 『창조적 치유(The Creativity Therapist)』에서 영성치유를 삼 단계로 정립하였다. 첫 단계는 영성접근의 무대설치 단계이다. 둘째 단계는 상호관계 치유를 위한 몸치장 단계이다.26) 여기서는 영성안경까지 착용하며 영성체화를 다각도로 모색하는데, 분장하며 영성적 황홀경에 들어갈 수 있도록 다양한 영성안경을 착용한다.27)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갈등극복과 치유검증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영성 자양분으로서 우주생명의 ‘영(spirit)’을 참생명으로 체화하며 ‘두각(unicorns)’의 형상으로 그 모습을 표현한다.28)
Ⅲ. 양천주ㆍ시학시법 상관연동의 대순이화
해월 최시형은 수운의 시천주 가르침을 계승하여 양천주로 변화시켰다. 그는 한울님을 비롯한 사람이나 만물 역시 공경함으로써 사회제도의 개혁을 통해 이룩하는 낙원이 아니라 참생각을 발현하여 세상 사람이 ‘여천지합기덕(與天地合其德)’하여 인품으로 낙원을 이룩하는 이화세계를 표방하였다. 메시아의 출현에 근거하기보다 개개인의 인격완성을 강조하며 인간본성을 도덕적으로 함양하여 현세낙원을 구현하는 의식이 정신개벽을 전개토록 하는 데 그 역점을 두었다. 아울러 해월은 개벽된 인간의 공동체로서 이화의 동귀일체(同歸一體) 이루고자 ‘새 땅에 사람과 만물이 총체적으로 새로워지는’29) 지상천국 구현을 참생각으로 생각하였다.
‘동귀일체(同歸一體)’로 이기적인 개체생명만을 내세우는 각자위심의 대척지점에 개체생명을 우주생명과 상관으로 연동시킨다. 특히 지공무사(至公無私)의 한울님 마음을 함양함으로 개체생명을 뛰어 넘는 우주생명 차원에서 ‘우리’ 정신으로 지상신선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해월은 ‘무궁한 나’로서의 존재를 깨닫게 되면, 개체생명이 우주생명과 더불어 서로 균형을 이루고 조화를 이루는 상관연동의 참생각을 이화세계로 전개한다. 해월은 1862년의 중추절을 맞아 스승, 수운을 만나고자 용담을 찾았다. 중추절 전 날 수운은 해월에게 ‘해월당(海月堂)’이라는 도호(道號)를 내렸다. 이듬해 8월 14일, ‘북접주인(北接主人)’을 명함으로 해월에게 도통을 전수하였다. 수운은 자신의 대도를 해월에게 물려주었기에, 해월은 동학의 2세 교주가 되었다.
해월은 수운순도 이후 관의 지목 등 온갖 고초를 겪으며 태백ㆍ소백산맥으로 숨어들어 동학교도들을 모아 교단을 정비하고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목판으로 발간하고, 수운과 마찬가지로 순도의 길을 걷는다. 수운으로부터 도를 이어받은 해월은 동학의 영적 조직, 접(接)을 통해 동학교도들을 동원하고 용담에 와서 강론을 듣도록 한 번에 40~50명씩 참가시키는 개접(開接)을 이어갔다.
‘개접’은 ‘접을 연다.’는 뜻으로 수운으로부터 시행된 것으로 한울님이 도를 열기에(開), 그 한울님과 접(接)한다는 뜻이다. 이는 최치원의 ‘접화군생(接化群生)’과 상통하여 뭇 생명을 한울님과 연동시키는 참생각에 근거하여 이화세계를 펼치고자 하였다. 동학에 입교한 사람들은 자신을 인도한 사람을 중심으로 ‘접(接)’이라는 ‘비공식 조직’을 이루었다. 점점 사람이 늘어나자 접은 ‘공식 조직’이 되었다. 각 처에 접주(接主)를 임명하여 교단을 관리함으로 ‘접’은 동학의 ‘뿌리 조직’이 되었다. 1890년대 초, 동학의 조직은 포(包)로 발전하여 공식적인 ‘결합 조직’이 되어 동학교도와 일반 농민들까지 체계적으로 결집하였으며, 동학혁명에 참여한 사람들은 포를 중심으로 동원되었다. 천주를 모시라는 수운의 가르침은 당시 사회기층을 흔드는 파격적 메시지였다. 동학 시천주 사상은 성리학 지배의 기존질서와 결별하게 만들면서, 19세기 초, 영국인이 미국에 정착할 때의 생존문제를 선악개념보다 중시한 모습과 흡사하였다.30)
해월은 수운순도 이후, 1865년부터 수운 순도일과 탄신일에 동학교도들의 비밀모임을 가졌다. 신분질서를 부정하는 혁명적 가르침과 적서 차별철폐를 주장하였다. 해월은 탁월한 조직 구성력과 혁명적 가르침, 그리고 소박한 인품이었지만 한울님의 인격적 주재성을 부정하고, '만물에 내재하는 한울님 모심'의 관점에서 ‘양천주(養天主)’를 표방하였다. 천지만물이 한울님 모신 존재이기에 물건조차 한울님을 모신 존재로서 자각하여 나와 한 몸임을 법성으로 깨달았다. 그래서 새소리조차 시천주의 소리로 인식하면서, ‘물오동포(物吾同胞)’라는 법성자각으로 경천(敬天)ㆍ경인(敬人)ㆍ경물(敬物)의 삼경의 도리에서 ‘사인여천(事人如天)’을 새 밝힘 하였다.
구천상제의 계시는 정산에 이어져 참생각으로 구현되었다. 정산의 50년간의 공부는 수운에게서 어려운 도통군자 출현의 ‘성사재인(成事在人)’을 가능하게 하였다. 정산이 남조선의 세계구원과 도통군자의 출현을 위한 사명을 계승함으로 참동학을 구체화시켰으며, 단주수명31)과 조선해원은 의통(醫統) 공사와 상관연동 관계를 형성하였다. 만주 봉천지방으로 망명하였던 정산은 구국 제세를 정하고 입산 공부 도중 1917년 2월 10일에 증산의 대순진리에 감오득도(感悟得道)하는 종교경험을 한다.32) 동년(同年) 4월에 망명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여 전국각지를 편력 수도하다가 1925년 4월에 전북 구태인 도창현에 도장을 건설하였다.
무극도(無極道)를 창도함으로써, 정산은 증산의 계시(啓示)를 받고 ‘포교 50년 공부 종필’의 도수에33) 따른 종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정산은 계시와 연동하여 공부에 전력(全力)하였다. 수운(水雲)은 영성체험에 있어서, “어찌하여 이처럼 저에게 나타나십니까?”라고 묻자, 상제는 “내 뜻이 곧 네 뜻이기 때문이다.”34)고 대답하였다. 이는 상제가 수운의 마음과 자세를 보고 상제의 일을 성공시킬 수 있는 인물로 판단한 것을 말한다.35) 그 뜻이 정산에게 이어져 수도인의 각종 수도방법과 의식행사 및 준칙을 설법하고 시행할 수 있었다.36) 정산 가르침은 우당에게 이어지고 전수되어 오늘날의 대순진리회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되고 있다. 정산이 중시한 의례는 시학(侍學)ㆍ시법(侍法)이다. 또한 도주, 정산은 시학 시법으로 구분하고 공부반은 36명으로, 시학은 5일마다 초강식(初降式)을 올리고 15일 마다 합강식(合降式)을 올리며 45일이 되면 봉강식(奉降式)을 행하였다.
시법은 시학공부를 마친 사람으로서 하되 강식을 거행하지 않고 각 공부 인원은 시학원(侍學員) 정급(正級) 진급(進級)의 각 임원과 평신도로 구성하고, 시학원은 담당 공부반을 지도 감독하고 정급은 시간을 알리는 종을 울리고 진급은 내빈안내와 수도처의 질서유지를 감시하여 수도안정을 기하고, 시학관(侍學官)을 두어 당일 각급 수도 전반을 감독하도록 하셨다.37) 정산은 이 밖에도 기도(祈禱)와 의례에 사용하는 납폐지(納幣紙)에 대한 규격, 수도인들의 지극한 정성인 성금(誠金)의 문제와 축시(丑時) 기도 시에 올리는 법수(法水)에 이르기까지 수도인들의 수도생활에 필요한 항목들을 설정하였다. 이처럼 만물에 깃든 법성을 자각하여 참생각을 발현함으로 종단체제를 정비하고 의례를 정하여 의지할 바를 도법(道法)으로 명확히 설정함으로 도인들이 귀의할 바를 제도화(制度化) 함으로 생각의 ‘체험지(體驗知)’를 구현하였다.
참생각 밝힘은 증산을 계승한 정산역사에서 증산과 증정관계를 밝히는 대순이화로 나타났다. ‘포교 50년 공부’의 도수에 따라 ‘인간 상태’를 천지공사에 부합(符合)하게 하는 ‘참생각’ 전개였다. 도주, 정산은 1923년을 ‘이재신원(利在新元) 계해년이라’38) 말씀을 마치고 전교(傳敎)를 선포하였다. 전교의 내용은 4617년 전 황제헌원으로 시작하여 513년을 주기로 나타난 인류사의 성인(聖人) 및 종교역사를 망라한 것으로 ‘이재신원’이라고 함은 황제헌원으로부터 비롯한 성인 및 종교의 역사를 마무리하고 신원을 맞아 증산이 정한 무극대운(無極大運)을 받은 대도를 펼칠 것을 예시함으로, 1925년 도장을 건설하고 교리체계를 확정했다.
우주 일 년, 우주생명의 봄여름 가을겨울로서 낮과 밤이 바뀌는 것이 자연 질서의 근본이다. 낮에 일하고 밤에 쉬는 빛과 어둠이 우주생명의 근본이다. 지구가 태양을 안고 도는 하루 360도가 360일을 반복하면 우주생명의 일 년은 십이만 구천육백 도라는 도수를 낳는다. 그리고 우주의 하루 360년을 360회 반복하면, 우주생명 부모가 인간을 낳아 기르는 천지 우주생명의 일 년 주기, 12만 9천 6백년이 성립된다. 이는 빙하기 주기와 흡사하다고 할 것이다.
12만 5천년 만에 한 번씩 큰 빙하기가 온다면, 이는 우주생명의 겨울이 된다. 우주 일 년, 12만 9천 6백년을 봄여름의 선천과 가을겨울의 후천으로 나뉜다. 지금은 우주생명의 봄여름 철을 마무리 짓고 가을의 우주생명으로 들어가는 때로 알려져 있다. 이제 가을의 우주생명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여름에서 가을 되면 바람이 세차게 바뀌기에 옷을 갈아입으며 그 변화에 적응한다.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면, 계절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갈망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인간불행의 주요 원인은 집착에 있다. 이러한 집착을 제거하고자, 원하는 대상으로 말미암은 고통발생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깊은 성찰을 통해 대상을 향한 갈망이 불행의 원인이라는 통찰에 이른다.39)
자신의 자아정체성을 몸으로 규정짓는 한, 개체생명으로서 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개체생명과 우주생명 상관연동이 참생각 밝힘에 따른 ‘천인공공(天人公共)’이다. 천인공공으로 서로의 관계를 원만하게 발전시키는 이화가치를 자각함으로 지혜를 고양시킨다. 모든 현상 배후의 공성(空性, emptiness)을 자각함으로 현상의 이원갈등에 대한 균형을 회복하고, 내면자아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대상에 대한 지속적 갈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40) 천인공공의 대순이화 전망은 공성에 대한 통찰로 뭇 생명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이화관계에 들어선다. 이러한 과정에서 타자수용의 관대함은 지혜를 수반하면서 대순진리에 따라 올바른 견해를 갖추면서, 잘못된 견해에서 비롯한 원망과 원한을 치유하여 해원상생으로 나아간다. 이처럼 정산은 영성 자양분에 해당하는 참생명을 계승하여 참생각으로 구현하였다. 참생각을 교리 체계로 확정하고 종교적 상징41) 차원을 살려서 종지ㆍ신조ㆍ목적을 정하였다. 그리고 정산은 1958년 화천을 즈음하여 수도인의 각종 수도 방법과 의식절차를 확정하여 발표하였다. 종교경험의 행위적 표현으로서 의례는 이후 도법(道法)으로 자리 매김한다. 정산은 참생각을 종교 사업으로도 펼쳐 수도인을 위한 각종 사업, 피난민들을 돕는 교육사업 등을 전개하여 구제창생에 앞장섰다.
증정관계(甑鼎關係)의 정상화를 목적으로 참생각 차원에서 정산의 화천(化天)과 ‘자연적 열반’은 상통한다. 일반적으로 열반이 고통을 일으키는 마음이 사라진 것이라면, ‘자연적 열반’은 마음의 궁극차원, 공성(空性)을 자각하여 지속적 집착의 연쇄 고리, 육체가 하늘로 복귀함을 일컫는다. 내재하는 공성 통찰이 참생각의 구현, ‘자연적 열반(natural nirvana)’으로 이어져 원만구족의 이화가치를 살린다.42) 마음을 일심으로 유지하여 청정성을 유지하면 고통 원인이 사라짐으로 이화의 원만세계를 구현한다. 궁극적 진제(眞諦)와 관습적 속제(俗諦)는 이화세계에서 동시성 원리로 작동하는 수레의 양 바퀴이다. 이에 도주, 정산께서는 그 일체감을 “상제의 글귀를 외우시고 ‘상제께서 짜 놓으신 도수를 내가 풀어 나가노라’고 말씀하셨다.”43)
우리는 심리적이며 물질적 사건으로 점철되어 구속을 받는다. 우리들은 이 구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깊은 심연으로 잠수하기 위해서는 신비롭지만 실재가 아닌 차원을 관통해야 한다. 마음은 끊임없는 생각으로 유동적이다. 기후가 바뀌듯 정서도 요동치고 있다. 우리자신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변화와 조건의 광범위하며 역동적 춤사위에 놓여있음이다. 우리가 유동적인 쾌락에 집착을 느끼면 느낄수록 고통과 위협의 굴레에서 한계를 느끼는 자신을 관조하게 된다.44) 보은과 해원이 상생의 두 바퀴로 작동하여 수레바퀴를 굴러가게 하듯이, 지혜와 자비가 함께 수반되어 상생관계를 자각하고 실천하기에 법성원만 구족의 이화세계를 구현할 수 있다.
Ⅳ. 인내천ㆍ천운구인 상관연동의 대순실화
동학의 3대 교주, 의암 손병희(義菴 孫秉熙: 1861~1922)는 시천주를 인내천으로 전환하였다. 그는 1906년, 동학을 천도교로 바꾸며 일본신문에 광고를 내고 천도교 종지(宗指)를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 삼아 천도교 교리서, 『대종정의(大宗正義)』에 소개하였다. 동학사상이 ‘인내천(人乃天)’으로 전환된 것은 영성과 심성의 ‘상징적 교환’을 의미한다. 이는 사람이 “백년사는 물체로서 한 때의 객체”로서 몸”45)이 아니라, ‘실천지(實踐知, phronēsis)’의 주체로서, “성품이 있고서 몸이 있고, 몸이 있고서 마음이 있다”46)며 심성을 부각시켰다.
의암은 해월 최시형에게 성실한 생활태도와 지략의 역량을 인정받아 의암이라는 도호를 받았으며, 1897년 12월 24일, 제3세 교주로서 실제적인 사건을 맡아 처리하였다. 그리고 해월이 처형된 뒤, 마침내 3대 교주가 되었다. 그 이후 일본 망명생활 중 본국과 연락하면서 교세의 재건에 힘쓰면서 교도들에게 새 생활과 문명을 배우게 하고자 일본유학을 알선함으로써 상당한 유학생이 배출되었다.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국내의 교도들에게 진보회(進步會)를 조직하도록 연합체계를 강화하였다. 그리고 교도교양을 위해 「삼전론(三戰論)」을 발표하고, 의정대신과 법부대신에게 글을 보내어 정치개혁을 주장하였다.
『동경대전(東經大全)』의 ‘도즉천도(道則天道)’를 인용하여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면서, 동학의 생활정신을 되살렸다. 동학의 본지(本旨), ‘인내천(人乃天)’을 일깨워, 사람이 곧 하늘이니 세상 혼란이 마음의 혼란에서 빚어진 것으로 진단하며 심성으로 안정시켜야 된다고 역설하였다. 천도는 후천개벽(後天開闢)의 도이며, 후천개벽은 마음 변화이기에 인심개벽(人心開闢)에서 시작되는 것이지만, 인심개벽은 다시 정신개벽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용구를 필두로 친일 배교분자(背敎分子)들의 매국행위를 보고, 1906년 1월에 일본에서 귀국하여 2월 16일, 「천도교대헌(天道敎大憲)」을 반포하고 천도교 중앙총부를 서울의 다동(茶洞)에 설치하였다. 귀국 후 천도교의 교세 확장에 힘쓰며 친일 배교한 이용구 일파까지 회유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용구는 포섭공작을 펼치며 의암을 중상모략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의암은 일제를 배경으로 하는 일진회와 맞서는 것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닫고, 1906년 9월 17일, 이용구 이하 62명에 대해 동학 ‘출교처분(黜敎處分)’을 내렸다. 천도교에서 쫓겨난 이용구ㆍ송병준 등 친일파는 시천교(侍天敎)를 만들어 일제비호를 받으며 적극적으로 활약했다. 의암은 망명 중 민족혼을 일깨우고 독립정신을 함양시키는데 긴요한 생활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요체가 교육임을 깨닫고, 문창보통학교(文昌普通學校)와 동덕여자의숙(同德女子義塾)에 관계하고, 보성학원을 인수ㆍ경영하였다. 또한 의암은 천도교 측의 대표로 3ㆍ1운동의 주동자로 참가, 독립운동을 대중화하고, 일원화하면서도 비폭력으로 진행하도록 합의을 이끌어냈다. 1919년 3월 1일, 기념식을 거행한 뒤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1920년 10월,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1년 8개월 만에 병보석으로 풀려나 상춘원(常春園)에서 치료받았다. 「무체법경(無體法經)」은 1910년 2월, 통도사 내원암(內院庵)의 49일 수련의 결정체였다.
사회운동만으로 교단을 이끌어가기가 어려워지자, 의암은 종교수행 방침을 세웠다. 『무체법경』의 「성심변(性心辨)」에서는 성품과 마음이 근본에서 둘이 아니므로 상호 교환하여 ‘성심쌍수(性心雙修)’로 수행하도록 원칙을 세웠다. 「성심신삼단(性心身三端)」에서는 성(性)ㆍ심(心)ㆍ신(身)이 상관연동하기에 성신양방(性身兩方)을 수련하며, 「신통고(神通考)」에서는 수행으로 견성각심(見性覺心)에 이르고, 자심자성(自心自誠)ㆍ자심자경(自心自敬)ㆍ자심자신(自心自信)ㆍ자심자법(自心自法)으로 마음수행을 강조했다. 「견성해(見性解)」에서는 영혼 영토화의 마탈심(魔奪心)과 영혼 사물화의 물정심(物情心)에서 벗어난 진심(眞心)을 구하였다. 의암은 “영(靈)의 능력을 ‘만리만사(萬里萬事)’에 쓰는 것을 마음”47)이라 하고, 「삼성과」에서 단계를 거쳐 견성각심지에 이른다 했다. 「삼심관」에서는 허광심ㆍ여여심ㆍ자유심에 이르는 과정을, 「극락설」에서는 이 모든 것을 빠르게 성취하는 요체를 밝히고, 「성범설(聖凡說)」에서는 성품의 뿌리가 하나이므로 수행으로 자리심(自利心) → 이타심 → 공화심 → 자유심 → 극락심(極樂心)에 이른다고 하였다. 또한 「진심불염(眞心不染)」에서는 상대를 위하고 다시 위하는 ‘위위심(爲爲心)’의 자천자각(自天自覺)에서 나와 하늘, 성(聖)과 범(凡), 개인과 세상이 나뉘지 않는 해탈의 ‘극락심’에 이른다.
우당(牛堂)은 1946년 4월, 태극도에 입도하여 정산의 신임을 얻던 중 1957년에 호(號)를 받았다. 1958년 2월 하순경에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총도전에 임명되었다. 또한 우당은 동년 음력 3월 6일, 정산의 유명(遺命)으로 종통을 계승하고 정산 화천에 따라 제반 업무를 책임졌다.48) 우당은 1969년, 서울에 도장을 건립하고, 종단 대순진리회를 창설한 후 1972년, 기본사업과 다양한 중요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하였다. 우당은 천운구인(天運救人)에 의한 인존구현의 새 밝힘으로, 참동학으로 천운이 열리고 인간구제로 이어지는 연원이 밝혀지게 되었다.49) 대순진리회 종단을 창설한 우당은 종단활동을 ‘사업’이라 규정하고, 기본사업으로 포덕ㆍ교화ㆍ수도의 사업을 정했으며, 구호자선사업ㆍ사회복지사업ㆍ교육사업을 삼대중요사업으로 확정하였다. 사업에 참여하는 수도인을 ‘일꾼’50)으로 부르고, 수도인에게 종단차원의 ‘사업’을 통해 운수를 받게 하였다.51) ‘종교사업’이기에 영리(營利)로 오해도 하였지만, 실사구시 맥락에서 ‘지성개신(至誠開新)’ 차원의 종교사업 추진으로 구천상제의 광구천하(匡救天下)와 광제창생(廣濟蒼生)을 참생활에 적용시켰다. 9년간의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널리 펴서 생활에 접목시키는 대순실화 차원이 알려지면서 참동학으로 표방하던 지상낙원의 복을 받고자 참생활의 습관적 변화를 살려갔다. 우당은 “운수를 받는 것이 사업이다.”라고 함으로써 『전경』에서 전명숙의 사례를 통해, ‘남을 잘되게 하는 공부’라 했던 증산의 뜻을 종단 차원에서 구체화시키게 되었다.52) 또한 우당은 참생활을 일상에서 구현하도록 죄악의 근원, ‘마음을 속이는 행위’를 근절시켜 나갔다.53) 이는 곧 훈회와 수칙의 ‘무자기(無自欺)’ 실천을 일상에서 양심을 속이거나 혹세무민하는 언행은 엄금함으로 일상에서 증정관계(甑鼎關係)의 참생명과 참생각을 연동시켰다.
우당은 증산유지와 정산유법을 실심으로 알리는 ‘사업’을 펼쳤다. ‘사업’은 남을 잘되게 하는 일로서, 사업을 총괄하며 정기적으로 시의적절한 훈시를 하였고, ‘종단체계’를 관리하였다. ‘체계가 와해된 연후에는 병법(兵法)의 신선이라는 한신(韓信)도 어쩔 수 없다’54)는 경전성구로 보아서도 천지공사로 인한 천리와 인사의 합일을 밝히는 것은 참생활 밝힘의 천운구인과 연동된다. 신앙심을 높여 진리도통의 진경에 이르도록 계도하는 것이다. 사람을 재활하는 천운구인을 자인 자각케 하여 인존시대를 열고자 동학주문을 대순진리회에서 활용하면서,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로 우주생명 시대를 예고하며 서로 서로를 매개하고 이어갔다. 태을주를 읽고 3ㆍ7일이면 신명체험도 일상생활의 습관을 통해 실제화로 이어지게 되었다.
일체의 시비분별에서 자유로워짐으로 영혼의 사물화에서 벗어나, 사건을 묘관찰지의 지혜로 물상을 성소작지의 지혜로 아우르는 참생활을 구현한다. 그리고 몸으로 우주생명의 수기(水氣)를 받아 내리며, 태을주를 염송하여 입에 침이 고이는 감로수 체험도 가능하다. 앞으로 닥칠 격변, 병란과 자연의 크고 작은 재난을 극복하는 참생활을 지성으로 실천한다. 우주생명과 상관연동으로 ‘태일(太一)’의 참생활을 실천함으로 개성화의 ‘태을’을 구현한다.
리차드 빌헬름(Richard Wilhelm)이 당나라 여동빈의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를 『황금꽃의 비밀(Das Geheimnis der Goldenen Blüte)』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동양명상에 대한 소개와 함께 동ㆍ서양의 종교태도를 상호 비교하며, 동양의 정신 수련에서 연마된 깨달음의 참 빛과 생활실천의 도에 관한 심리통찰도 묘사한다.55) ‘태을’은 무상지위(無上之位)로서 우주를 빚는 ‘일태수(一太數)’의 물을 표상한다. 무극과 태극의 상관연동을 위해서는 소주천의 연정화기와 대주천의 연기화신이 요청된다.56) 참생활의 밝힘에서 심성은 미래공동체 건설의 요체이며 그 정체성은 심성의 영향으로 종교생활을 상당수준의 도덕적 참생활로 인도한다.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에 해당하는 홀로코스트(Holocaust)의 충격을 경험한 이래 인간심성은 영혼의 식민지화를 경계하였다. 실제적으로 영성과 심성은 상징적 교환을 통해 사회병리 현상에 수반된 치유책을 제공한다. 영성적 사회운동은 미래공창을 나타내지만, 영혼이 마탈심(魔奪心)으로 현혹되면 억압기제에 벗어나지 못해 사로잡힌다.57) 영혼의 영토화로 물든 사람은 세상 악을 경험하면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로 말미암아 우울증에 시달리며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구속 상태에 처한다.58)
칼 융(Carl G. Jung: 1875~1961)은 이를 치유하고자 초개인 심성차원의 새로운 안목을 제공하였다. 칼 융은 먼저 ‘초개인 무의식’을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ness)’으로 개념화하며, 인간의 심성차원과 신성에 대한 경의 또는 숭배의식과 상관연동 관계를 밝혔다. 특히 그는 심층심리학 관점에서 신성보다 신성의 형상을 강조하였다. 그는 “신성의 실체적 존재에 대한 증명은 불가능한데 반해서, ‘신의 형상(Imago Dei)’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심층심리 접근에서 핵심적인 위상을 점유한다.”59)고 하였다. 이처럼 구천상제의 실체를 실재로 인식하기 어려울지라도 구천상제 형상을 심성의 태일로 재현함으로 만다라에 의한 심성치유가 가능하다.
그는 도덕적 완성을 추구하기보다 심상에 대한 생생한 관찰을 고수하였다. 자연, 영혼, 인생이 칼 융에게는 최고의 경이(驚異)이자, 신성으로 여겨졌다. 그는 존재의 최고 의미는 오직 그것이 존재한다는 데 있으며, ‘진정한 해방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했을 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헌신하여 철저하게 참여했을 때 가능한 법이라고 보았다. 우리는 칼 융을 통해 존재자체의 소중함과 경이로움을 깨닫고 내실화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자아의 통합 상징은 ‘태을금화(太乙金華)’의 심상이다. 자아와 태을금화를 통합의 상징기제로서 작동시키면 의식세계의 전체성을 표상할 수 있다. 이는 영혼의 사건ㆍ물상의 예속화에서 벗어나 탈사물화의 치유를 가능하게 한다. “자아자체는 심리적으로 총체적 형상으로 묘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다.”60) 칼 융은 영혼이 자유와 속박이라는 상반된 ‘대극’(對極: the opposite) 상태의 싸움을 벌이는 전쟁터로 보았다.
상반대극은 ‘변증법적 통합’을 통하여 완성경지, 선경(仙境)으로 수렴되어 도통진경의 지상신선을 이 땅에 출현시킬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식발달 상태를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성화 과정(The way of individuation)’에 직접적으로나 협동적으로 참여할 수가 있다.61) 또한 융에 의하면, 선(善)의 양지 이면의 음지로서도 작동하기 때문에 ‘그림자(shadow)’가 드리워진다. 부드러운 여성 형상 이면에 강골의 남성 형상이 움트고 있기 때문에 ‘여성성격의 남성상 (animus)이 나타나며,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외적 인격으로서의 ‘외적 인격(persona)’ 이면에 내적 인격, ‘남성성격의 여성상(anima)’의 힘도 미친다. 이는 심성차원의 일상생활에서 양극통합의 실화차원을 요청하거나 공공하는 영성 차원에서 지향함을 의미한다. 우리의 삶은 영혼의 사물화에 의한 대극갈등에서 벗어나야 된다. 그 대극 너머 심층심성을 회복하는 여정을 통해 영혼의 ‘탈사물화’의 개성화 과정을 중시하게 된다. 이러한 심성요청에 따른 자아 응답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을지라도 심층심리로 영혼의 개성화 과정을 통해 구현할 수 있다.62)
미래사회에서 심층심리 차원에서 궁극실재에 대한 소외감이 중중무진으로 깊어 가면 갈수록, 신성 형상과의 통합을 위한 실화 가능성이 더욱 요청된다. 사회적 공공성 차원에서 ‘신성 경험’을 일상생활에서 살리는 실화(實化, factual materialization)가 절실해진다. 또한 주관적 환상에서 심성치유로 ‘신성 형상’은 일상의 개성화를 이루는 대순실화의 생활지와 궤를 같이 한다. 그리고 무의식의 ‘신성 형상’은 대순실화를 통해 개성화의 전망으로 진행되며, ‘과학적 객관성’도 확보할 수 있기에 대순사상의 인존구현은 가시화 될 것이다. 아울러 개인적 의식차원에서 벗어나 집단 무의식차원에서 신성 형상을 태을금화로 구현하면, 개성화 과정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63) 대순실화로 ‘사교적 이미지의 구천상제’와 만남으로써 소외를 해소하는 ‘태을금화’를 일상에서 구현하여 ‘공존 속의 독자성(agency in communion)’64)을 살릴 수 있다.
유벌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종교의 미래를 다룬 『호모 데우스(Homo Deus)』에서 미래의 ‘데이터교’를 예견하였다. 언급한 데이터교는 실용적 계명을 갖추고, 데이터 흐름을 극대화 하며, 이단까지 포함하여 모든 것을 시스템에 연결시켜 작동시켜 생명의 거대한 웹을 연결하는 일이다. 데이터교는 정보자유를 최고선으로 다룬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편적이면서 메타윤리적인 실재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다.65) 그래서 데이터 흐름을 기록하고, 업로드하고 공유한다. 데이터교는 인간경험을 데이터 패턴으로 여김으로써 권위와 의미의 원천을 파괴하고, 18세기 이래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위력적 종교혁명을 예고한다.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 그리고 데이터 중심의 세계관으로 이동함으로 실용혁명이 성취될 것으로 보았다.66) 따라서 대순진리가 생활에 응용되는 관왕지도(冠旺之道)로서 세계시민성을 함양하는 자행화타(自行化他)의 세계종교로 발돋움하여 상생(相生)의 대순실화를 일상생활에서 살려내게 되면, 참동학을 살린 대순사상의 미래는 보다 밝아지게 될 것이다.
Ⅴ. 맺음말
본 연구는 대순진리회의 비전을 모색하고자 참동학 위상정립을 위한 미래관 규명에 초점을 두었다. 그 새 밝힘의 방향을 대순이화, 대순기화, 대순실화의 세 방향으로 모색하였다. 증산 구천상제는 1894년, 전봉준(全琫準)이 이끄는 동학군이 고부(古阜)에서 무참히 희생되는 모습을 보고, 무력항쟁을 금기시하였다. 증산 구천상제의 천지공사와 수운의 시천주사상은 상관연동으로 참생명의 기화로 종교미래의 청사진을 펼쳤다. 또한 증산 구천상제는 삼계대권을 행사하여 조화정부(調化政府)를 열고 무궁한 선경운수를 통해 세상을 건지고자 하였다.
동학의 개벽사상을 수용한 증산 구천상제는 『전경』ㆍ『대순전경』을 통해 동학의 완성자이며, 천지공사를 통해 참동학을 새롭게 구현하였다. 천지공사로써 상극(相克) 도수를 정리하고 상생(相生)의 도로써 후천선경을 세우고자 도수공사를 9년간 실천하였다. 동학과 대순은 상관으로 연동된 참동학이 되어 대순기화의 새 밝힘으로 민중운동을 영성운동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를 계승한 정산에 이르러서는 시학시법의 제도적 정비가 이루어졌다. 신과 인간의 조화관계를 이루어 사람의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신(神)의 일도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67) 천인공공은 대순이화의 새 밝힘으로 참생각을 펼치면서 사회적 제도화를 구현하였다.
의암의 인내천과 우당의 천운구인의 상관연동에 따른 인존구현의 새 밝힘은 생활의 실천지(實踐知)를 이루어 생활습관을 지성개신(至誠開新)하는 대순실화를 가능하게 하였다. 개체생명은 우주생명과 혼연일체가 되어 후천개벽의 생활지를 통해 복지를 구현하고 만민평등을 지향한 인존시대를 열었다. 동학과 참동학은 시천주와 천지공사 상관연동의 대화(對話), 양천주와 시학시법 상관연동의 공동(共動), 그리고 인내천과 천운구인 상관연동의 개신(開新)을 가능하게 하였다 대순기화ㆍ대순이화ㆍ대순실화의 삼차연동에 의해 참생명ㆍ참생각ㆍ참생활이 조화와 균형을 이룸으로 인존구현을 위한 참동학은 ‘공공하는 영성’이 되어 그 위상을 새롭게 하였다.
참동학 정신은 무극과 태극 사이를 이어주고 매개하는 ‘궁궁(弓弓)’의 공공하는 영성으로 삼차원 연동으로 작용한다. 이를 통해 지구촌의 상생미래를 위해 영성과 심성을 삼차연동으로 매개하며 대순진리의 원융법성(圓融法性)으로 새 밝힘 한다. 구천상제 메시지가 대순종통 계승자, 정산ㆍ우당으로 맥을 잇고 세계시민성과 연계하여 후천개벽 외연을 확산시킬 것이다. 아울러 자행화타의 상생공덕은 참동학의 ‘관왕지도(冠旺之道)’로서, 구천상제 덕화를 일상의 ‘궁궁’으로 심화시키는 가운데 대순미래를 ‘개벽영부(開闢靈符)’로 융평(隆平)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