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 2 증산사상 관련 정읍지역 농악 및 당산제

내용 비고
다섯 살 때에 천사께서 마을에서 농악을 보시고, 다른 굿은 즐겨하지 아니하시었으나, 농악은 평생 즐겨 하시었다. 모든 당산제가 농악을 그 필수요건으로 갖추고 있다.
하루는 걸군(乞軍)이 들어와서 굿을 친 뒤에, 천사(天師)께서 부인으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시고 친히 장고를 들어 메고 노래를 부르시며 가라사대 “이것이 곧 천지굿이라. 나는 천하 일등 재인(才人)이요 너는 천하 일등 무당이라. 이 당 저 당 다 버리고 무당의 집에 가야 살리라.” 하시고, 인하여 부인에게 무당도수를 정하시니라. 과거 상당수의 당산제의 경우에 무당굿이 포함되어 있었다.당산제를 주도하는 주체상으로 보자면, 남성 중심형·여성 중심형·남녀 공동주관형 등으로 구별되는데, 이 중에 여성들이 제사를 주관하는 경우가 12개 마을이나 되고, 대부분의 당산제에서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대등하거나 여성들의 비중이 높은 경우도 여러 군데 있다.당산제의 줄다리기에서 남녀가 서로 대등하게 겨루되, 그 결과는 여성 쪽이 반드시 승리하는 쪽으로 귀결되는 남녀-줄다리기가 거의 반드시 이 속에 포함되어 있다.
(보천교에서는) 행사만 있으면, 농악을 최고로 쳐서 항상 농악을 하였다. 보천교 본부 안에는 농악 치배들이 기거하는 집이 따로 있었다. 이 집에서는 소고·대포수 및 여러 치배들이 상쇠한테 ‘아침 문안’을 드렸다.농악인은 당시 조선 13도 사람이 다 왔다. 그래서, 치배들은 조선 13도 치배들 중에서 제일 잘 하는 명인들만 뽑아서 하도록 하였다. 상쇠는 함양 사람이 하였고, 대포수는 제주도 사람이 제일 잘 웃겼다. 외지에서 오는 교인들이 이 큰굿을 보고 감동하였다. 모든 당산제가 농악을 그 필수 요건으로 갖추고 있다.
농악에서 ‘도둑잽이’라는 것이 보천교 농악에서 나왔다. 이것은 아군이 적군을 포위해서 적군의 ‘도둑’이 훔쳐간 굿물/악기를 다시 찾고, 적군의 대장을 처단하는 일종의 군사놀이다. 이 놀이를 내가[월곡 차경석의 자제 차용남 옹] 어린 나이에 늘 보았는데, 그 규모가 엄청나 큰 장관을 이루곤 하였으며, 이를 보는 구경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곤 하였다. 모든 당산제가 농악을 그 필수 요건으로 하고 있다.이 보천교의 ‘도둑잽이굿’은 현재의 정읍농악 판굿에도 남아 전해지고 있다